사진으로 지나 온 시간을 더듬어 본다.
개인 프로필 - Personal Profile - ( 1 )
38년간 공직생활을 하고 정년퇴직을 하며 지내온지 만 16년 시간이 지났다. 열심히 살아왔고
놀 줄도 알면서 여기까지 왔다. 흔적을 남긴 사진들을 정리하면서 나를 되돌아보는 지금이다.
이곳에는 정년퇴직을 하고 blog를 개설한 날부터의 흔적들이 담기고 있다. 그 이전에 흔적은
별도로 모여져 서재에 쌓아두고 관리되고 있다. 프로필이 관리되여오다 헝클어져 뒤죽박죽이
되어 이제 다시금 이곳에 흩어졌던 blog 프로필 란을 신설, 2017.7.27.부터 다시 정리하였다
크게 이루어 놓은 것은 없어도, 사진을 취미 삼아한다는 게 폼나게 잘하지는 못하고 항상 부족
해도 처음처럼 진솔히살아오며 예까지 왔다. 내 나이 칠십다섯이다. 아프니까 청춘이 아니라
나도 늙으니까 아픈 것이다. 이제는 이 모든 것을 순리로 받아들이면 되는 것일 거다.
2021.7.27. 하기, 송정학
베트남 퀴논 성 퓻캇 대대 베이스 상황실 앞 (1971. 9.)
☎ 나는 육군 갑종간부 제229기로 1년간의 육군 장교 정규 교육을 이수한 후 육군 포병 소위로
임관하여 육군 중위로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였으며 대한민국의 전 후방 각 부대에서 16년간을
복무하였다. 육군 소령으로 원에 의해 전역함과 동시 곧바로 국방부에서 임용한 5급 군무 행정
사무관으로 특채되어 국방부 예비군 육성 분야에서 22년을 근무함으써, 총 38년간을 대한민국
국방분야에 헌신한 후 정년퇴직을 하였다. 그때 나에 나이 오십팔歲에 공직에서 물러나며 국가
공무원연금 수급자가 되어 지금에 이르렀다.
월남 중부 퀴논 성(省) 고보이 습지대에서 작전을 지휘하면서 본대와 교신 중인 모습.(1971.10)
월남 전쟁터에서 맹호사단 제1연대 1대대 4중대 관측장교 임무를 수행할 때의 모습. (1971. 11)
월남 전쟁터에서 맹호사단 60 포병대대 A포대 전포대장 임무를 수행할 때의 모습. (1972.4)
월남 참전 기장
정년퇴직 그 후 ㅡ
정년퇴직을 했다. 일할 힘이 아직 남아있으나 제도가 그 힘을 힘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동안 많은 일을 했으니
집에 가서 쉬라고 한다. 20, 30과 50, 60이라는 말이 유행어가 된 요즈음, 2년 후면 인생 60 이 이제 막 시작되는
나는 무슨 일을 어떻게 하면서 살아야 하나 싶다.
아날로그 적 사고를 하고 있는지도 모를 내가 디지털 시대에서 살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나, "무엇을 하며 살 것
인가" 하는 생각으로 밤잠을 이루지 못한 때도 많았다. 나는 내 삶을 위해 근거 없는 이론을 또 하나 기억해 낸다.
"가장 좋은 삶이 되려면, 일생 동안 직업을 세 번 이상 바꾸어야 한다"라는 것이, 그것이다. 이 말은 현재의 나에
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 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내 첫 번째 직업은 21세 나이에 군복을 입고 16년 동안 근무, 육군
소령으로 전역한 직업 군인이었다. 내 두 번째 직업은 국방부 장관이 임용한 5급 軍務 行政 事務官으로 22년
동안 국방부 예하 제50 보병사단에서 예비군 동원업무 분야를 다루는 5급 사무관이었다. 행정고시를 치러 최초
5급 사무관에 임용된 일반직 공무원은 승진이 되는데 특채된 분야의 사무관은 아무리 업무를 잘 처리해도 4급
서기관이나 3급 이사관으로 승진할 수 없는 규제틀 속에 갇혀버린 공직 생활자였다. 그래서 솔직히 더 아등바등
설치지 않고 그저 최선을 다해 근무를 했는지도 모른다. 건강에 신경 쓰며, 그래도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는 건
근무 중 사단을 대표하는 모범 사무관으로 선발, 부부가 함께 청와대에도 초청되어 극진한 대우 속에 정부에서
주관하여 시켜주는 해외 산업 여행도 했었고... 솔직히 근무 중 늘 긴장하며 선두에 서서 모든 동료와 후배들께는
귀감이 되었던 생활을 했다. 그렇게 총계 38년 동안을 나 자신과 국가를 위해 일한 셈이다. 지금에 와서 투덜 대
면서도 그래도 잘 뒷바라지해준 아내 吳惠信 에게 큰 고마움을 전한다.
힘겨웠지만 열심히 국가를 위해 봉직했고, 국가유공자로 선발되어 훈장도 받아 들고, 58세의 나이에 정년퇴직
을 하게 된 나는, 집에 가서 쉬라는 강요 아닌 강요를 받은 후 나는 새로운 도전을 가능케 하는 신종 직업을 찾
지 않을 수 없었다. 나에게 걸맞은 세 번째 직업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로 극도로 고심도 했다. 그러나 이내 나는
정말 한없이 행복한 친구라는 걸 알게 되었다. 58세까지 열심히 같은 분야에서 일하면서 건강할 수 있었으니 더
무엇을 바라겠는가? 이제 튼튼한 두 다리 더욱 단단하게 유지시킬 여유를 찾고서 정신건강을 살 찌워야 하겠다.
사랑도 해 봐야겠다. 꼭 그렇게 살찌우는 건강한 사랑을 해보고도 싶은 거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렇다. 편안하게 마음 갖고 운동 열심히 하고, 지금껏 국가를 위해 봉사했다고 평생 주어지는
공무원 연금수급자가 되어있는 나 宋正學이다. 이제 월 이백칠십만 원이 주어지는 연금수급자가 되었으며 매
년 조금씩 인상될 금액이 합쳐 주어지겠지만 씀씀이를 조금만 줄이면 생활이 그렇게 지독 스리 궁핍 하지는 안
을 것이고, 지금처럼 국가에서 실시하는 직업교육 프로그램에 참여, 컴퓨터 교육과 내 취미와 교육을 습득하고
즐기면서 내 생활에 보태어 쓰면서, 초라하지 않고 당당하게 지금처럼 조용히 열심히 살아가면서 세 번째 직업
이 주어 진다면 받아들일 것이다. 힘으로 해야 하는 우직한 일은 있을 것이다. 해 보는 거다. 다 못 했던 해외로
여행도 많이 다닐 것이다.
남이 인정하지 않으면 어떤가. 내가 나를 인정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일할 힘이 내 속으로부터 솟아오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남에게 고용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고용하면 되는 것이다. 대문을 지키던지, 물건을
나르든, 심부름을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을 것이다. 60 대를 위한 신종 직업의 종류가 다양하면 다양할수록 이
사회는 더욱 기름질 것이다. 숨겨둔 자기 능력과 욕망에 합당한 새로운 직업을 가진 사람이면 비록 60 대지만
마음은 언제나 20,30대일 수 있지 않겠는가, 60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변하는 세태에 민감해야 한다는
것이라 생각한다. 인간은 20 30 이든 50 60 이든 특정 방식으로 정의되어 그 정의된 틀 속에 갇혀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바로 "삶의 활력"을 찾는 방법이 아니겠는가. 건강하자. 모든 일에 1등은 필요치
않다. 최선만은 다 하는 거다. 그리고 나를 사랑하는 것이다.
2005. 6. 30. 정년퇴직을 하면서... 송정학
2005. 10. 20. 정년퇴직 후 가을. 경남 창녕 화왕산을 오르며 필카로 찍힌 걸 스켄한 모습
대구에 名山 팔공산 깔딱 고개 마루에 서서 똑따기 사진기 셀카로 만들었다.... (2005. 가을)
2005년 10월 [허비][진등] 선배兄들 따라 설악산 대청봉-공룡능선-백담사로 첫 산오름을 시작하였다.
중국 황산 천도봉을 등지고 섰다.( 2006.11. )
숲 가꾸는 숲 해설사로 활동 (2006~2011년)
대구수목원 해설사 활동울 하며 나무에 이름표를 부착하는 모습. 동아일보 (2008,6.24) 게재
수목원 숲 해설사 회원들과 함께 ( 2009. 6)
숲 가꾸는 숲 해설사로 활동 (2006~2011년)
일본 규수 지방 여행을 하며 (2007. 6 )
일본 규수 지방 여행을 하며 (2007. 6 )
2009.1128. 진경이 잔칫날 폐백실에서
2010.3.4.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서 어머니는 허 윤 교수의 집도로 3번째 허리 수술 후 입원 7일 만에 퇴원을 했다.
7일 동안 나는 어머님 곁에서 함께 보냈다. 그 어려움을 겪으며 어머님은 내 손 꼭 잡으셨던 그때가... 그립습니다.
2011.5.4. 상경하여 仁川 본가에 들러 아버지 뵙고 인사드리고 냉면에 빈대떡으로 점심을 멋지게 했다.
초등학교 지킴이로 활동 (2012~2017년)
옆지기와 동해안 정동진 바닷바람을 맞으며
울산에서 강근이 부부와 하기 부부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서
이탈리아 베네치아 광장에서
로마 바티칸 구내 기념관에서
로마 바티칸 구내 기념관에서
바티칸 박물관에서
영국 국립 박물관에서
스위스 인터라켄 역 앞에서
독일 대학 구내를 돌면서
서유럽 5개국, 독일/ 스위스/ 이태리/프랑스/영국 여행 (2012.4.28~ 5.7.)
중국 장가계 여행 (2013.4/17 ~4/21 혼자 여행하였음)
중국 장가계 여행 (2013.4/17 ~4/21 혼자 여행하였음)
중국 장가계 여행 (2013.4/17 ~4/21 혼자 여행하였음)
중국 베이징 천안문 앞에서 ㅡ (북경 / 만리장성 여행 2014. 2 혼자 여행하였음)
중국 베이징 만리장성 위에 서서
중국 베이징/ 만리장성 여행 ( 2014.2. )
경북 영주 뿅뿅 다리에서 (2014.2)
대만 여행 ㅡ가족 전부 여행을 하였음(2015. 5 )
초등학교 지킴이 생활을 할 때는 항상 자전거를 타면서 학교와 학생들을 지켰다.(2012.7)
체코 프라하 공항에서
크로아티아에서
체코에서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청과 시장에서
슬로바키아 도심지에서
동유럽 5개국 체코/ 오스트리아/크로아티아/크로바 키아/헝가리 여행 (2015.3.3.~3.11)
이 사진기가 좋았는데 어느 날 사진기 3 대주고 좋다고 하나로 바꿔서 손에 들었지... 아쉬워했던 내 모습 (2015.9.)
정년퇴직 그 후 10년
이제 2015년 12월 20일이 되었다. 정년퇴직을 했던 날부터 꼭 만 10년 6개월이 지났다. 그동안에 나는
컴퓨터 공부를 했고, 숲 해설사. 학교 지킴이. 생활을 했다. 나이 들며 몸에 무딘 곳을 알아가며 각 분야
의사들을 미리 찾아가 진료를 받았고, 의사님이 나에 주치의랍니다. 하고 존경하면서 따르며 친하게도
지냈다. 내 몸 구석구석을 어디가 어떻다는 걸 안다. 자꾸 약해만지는 내 몸 스스로 인정하며 받아 들이
려 노력한다. 그동안 일본, 중국, 대만, 태국, 서유럽 6국, 동유럽 5국, 해외여행도 했다. 사진기를 두대
마련하여 사진도 찍는다. 처음 시작된 공무원 연금공단에서 지급되는 연금 월액수가 이백 칠십여 만원
에서 시작, 매년 조금씩 오르더니 2015년 연금 월액이 삼백십여만 원이 되었다. 그리고 2020년까지는
연금법 개정에 따른 조치로 인상이 5년간 동결되었다는 알림을 공무원 연금지 8월호에 게재되어 알려
왔다. 어제는 아내와 밥상머리에서 둘이 앉아 이런 얘기를 했다. 젊었을 때 열심히 국가를 위해 일을 했
으니까 크게는 만족하지는 않아도 매월 연금으로 생활하니 편하고 좋아? 했더니, 인정한다는 듯 웃는다.
이제 평일, 휴일 / 일요일에는 지하철 열차에 자전거도 함께 싣고 가 생각나는 목적지에 내려서 자전거
종주길을 달리면서 시간 보내면서, 맑은 공기도 마신다. [컴]도 다룬다. 사진 찍으며 동호회에도 나간다.
나에게는 부모님 두 분이 고향 仁川 에서 알콩 달콩 함께 생활하며 계신다. 올해로 아버님 연세가 91歲
어머님 연세는 89歲 가 되셨다. 나는 늘 마음을 쓰며 생활을 해야 한다. 더 천천히 모든 것을 다듬고 싶다.
더 사랑해야지. 손에 쥔 걸 아끼기지 말고 주자. 나와 인연이 닿고, 맺은 모든 이에게 사랑을 전해드린다.
야 야 야~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 ♪. 하는 노래가 들린다
2015.12.20. 하기, 송정학
2015. 12월 김광석 길에서 모습 (이 시기에 큰 사진기를 손에 잡았다.)
나에 blog에 올려 두었던 프로필이 흐트러져 깨져있는 것을 발견한 후
삶의 궤적 cafe에 프로필 ( 1 )( 2 )( 3 )으로 구분 다시 편집 보완하였음
2022.7.10. 보완 수정 : Old Boy. 송정학
ㅡ 프로필 ( 2 )로 계속 이어 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