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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쯤 11월 25일-26일 '축령산의 인연들'
-연도가 정확하진 않지만 대충 맞을거란 생각을 합니다.
산 여행글 옛날 게시판에 있는 거 읽어보고 재밌어 올립니다. 날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네요. 물론 내가 쓴거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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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왔거나 나와야 했던 사람들
배선생 : 스키장 개장한다고 유니텔 스키동과 함께 용평으로 날랐음. 골드윈 스키복에 나인 엑스 카빙스키에 장비만 선수급이고 그 나이에 여자애들로부터 오빠소리 듣기를 좋아하는 아직까지 장가를 못간, 한마디로 정신없는 친구임. 항상 자기일이 먼저고 야영은 뒷전임.
전대장님 : 처음엔 이번 야영을 미루자고 하시다가 다음주도 모두 모일 가능성이 없어지자 강행하자는 메일을 보내신 분임. 실제적으로 이번 야영의 주도자이며 16시경에는 축령산 휴양림에 계실거라는 메일이 최종적으로 도착됨. 항상 야영장에 먼저 와 계시는 분으로 우리팀의 정신적 지주임.
내선생님 : 전대장님과 같은 학교에 근무하고 호형호제하는 사이임. 고3 담임인 관계로 일 요일마다 출근해서리 진짜 야영은 못하셨고 가끔 늦게까지 계시거나 다음날 아침에 왔다가 또 학교로 가시는 우리나라 교육계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분임. 그럴때마다 아쉬움을 수능 끝나면 야영에 반드시 참가하겠다는 말로 대신함. 김치스팸참치 요리의 대가임.
조선생 : 곱상한 외모와는 다르게 귀신잡는 해병을 만기제대한 친구임. 가끔 정곡을 찌르는 말로 간담을 서늘케하지만 산과 관련된 일에 있어서는 적극적이지 못한 단점을 가지고 있음. 종종 자기혼자 배낭메고 산에 다니는 엉뚱한 데가 있는, 차분한 억양의 젠틀맨임.
손선생 : 금요일날 전대장님이 야영을 연기하자는 글을 본인의 홈피 게시판에 올렸는데 이걸보고 옳다구나 싶어 이번 일요일엔 가족과 함께 놀러간다는 가당찬 계획을 세웠다가 토요일 강행을 결정하는 바람에 축령산 야영장에서 24시경엔 서울로 돌아 간다는 야무진 계획을 세웠음. 항상 한달에 한번 있는 야영에 비중을 두고 행동하는 우리팀의 몇안되는 행동하는 지성인임.
나 : 뭐든지 결정되면 밀어부치는 저돌적인 사람으로 일찍부터 가장으로서의 역할에 있어 서는 문제점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학교에서도 고집불통, 철면피로 동료교사나 학생들 사이에서 소문나 있는 사람으로 산에 가자고 했을때 자기말에 따르는 사람을 총애하고 최고로 쳐주는 요즈음 보기드문 뜨거운 열정의 소유자이나 가끔 한번씩 자기맘에 들지 않으면 돌아버리는 차가움으로 인해 오해도 많이 받음.
임선생 : 영악일당들 옆에 위치한 중학교의 전산교사로 산악 또라이들을 양산하는 대산련 한국등산사관학교 출신임. 낭가파르밧에서 난다데비를 거쳐 최근 2002 초오유등반을 결정하면서 같은 목표의 영악팀과 접촉하고 있음. 오늘도 얼음 찾아서 강원도를 헤메다가 반쯤 붙어 있는 얼음을 보고서야 자신의 무모함을 깨닫는 전형적인 이 시대의 산악인임.
이사장 : 마석에서 장비점을 운영하는 마석산악회의 실세. 마석이란 불모지에서 장비점을 운 영하면서도 거기에 개의치 않는, 가게내에 인공홀드를 엄청 박아놓은 깨어있는 산악인이자 똥이야기의 대가. 그리고 그 이야기의 주인공임.
서국장 : 또라이들을 양성하는 한국등산사관학교의 주무이자 대산련 서울시연맹의 사무국장. 엄청난 주력을 자랑하면서도 방송에 출연해서 담배를 끊겠다는 딸과의 약속을 끝까지 지키는 진정한 사나이. 쌍꺼풀진 커다란 두눈속에 우수를 잔뜩 담고 있는 왕년에 안나푸로나를 등반한 골수 산악인임.
결혼식을 마치고 토요일 오후 17:12분에 어린이 대공원을 출발했다. 식당에서 캔맥주 하나는 뜯어 먹고 곰바우인지 뭔지 이쁘게 만들어 놓은 놀고 있는 소주를 한병 챙겨서 축령산으로 향했다. 구리를 지나니까 차들로 막힌다. 아마 오늘 스키장 개장한다고 그러나... 진주아파트 있는데서 건전지와 담배를 사는데 몸에 한기가 온다. 어렵쇼! 요새 감기 걸려서 고생하는 사람들 많이 봤는데... 그래 무리하지 말자 속으로 다짐을 해본다.
쉼터 휴게소에서 좌회전 했다. 운전하는 손선생 말로는 천마산 들어가는 이 길로 새길이 나서 이쪽이 마석시내를 경유하는것 보다 빠르다고 한다. 오늘 야영을 혼자 생각해 본다. 아마 전대장님이 먼저 와 계실거야, 구리 조선생은 늦게 온다고 했고. 동원중학교 임선생도 23시경에는 온다고 했지. 게다가 대산련의 서국장님도 별일 없으면 참가하겠다고 했으니 이번엔 제법 텐트장 분위가 잡히겠는걸. 흐뭇...
18시 25분 휴양림 도착. 입구에서 입장료를 낼려고 했더니 아무도 없다. 아마 손님이 없으니 철수했는가 보다. 꽤 급한 아스팔트길을 올라 주차장에 차를 박았는데 으련히 있을줄 알았던 대장님의 차가 보이지 않는다. 다른 차로 오셨나... 카고백에 장비를 넣어 왔더니 손선생과 둘이서 옮기기도 쉽다. 아마 서울 근교의 휴양림중에서 여기가 가장 텐트장과 주차장이 가까우리라. 대장님께 휴양림 사무실 윗쪽으로 자리를 잡으라고 했는데 텐트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대장님도 물론 보이지 않고. 일단 데크위에 짐을 올려놓고 사무실 옆에 있는 공중전화에 가서 대장님 휴대폰 번호로 전화를 했다. 불발. 꺼두고 있단다. 왜 가지고 다니시는지... 다시 내선생님께 전화했더니 죽는 목소리로 감기라고 한다. 서서히 모든 것이 빗나가고 있는듯한 느낌이다. 내선생님 말로는 학교에선 대장님이 오늘 산에 간다고 하셨다고 한다. 내려온김에 사무실로 가서 표를 끊었다. 데크 사용료 4,000원 입장료 1,000원 주차료 3,000원을 지불했다. 혹 메모 남긴 사람이 없는냐고 했더니 없었다고 한다.
일단 텐트치고 부기걸고 커피 한잔 끓여먹고 있자니 도착한지 한시간이 지나 있었다. 부기를 거는데 줄이 없어 한참을 승갱이 하다가 데크 주변에서 비닐줄을 주워서 드디어 달았다. 손선생이 깃발을 거꾸로 묶었다가 나로부터 지적을 받고나서 푸는데도 거꾸로 푸는 것을 보고 갑자기 히말라야가 생각났다. 거기서라면 이해를 할수 있는 상황이지만...
작은 텐트를 데크에 쳤기 때문에 공간이 남아 있어서 거기서 전을 폈다. 캔맥주 두통은 손선생이 모두 먹고 나는 아까 결혼식장에서 챙겨온 곰바우 소주를 홀짝홀짝 했더니 한병을 다먹어 간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22시가 넘어가는데도 아무도 연락이 없고 전나무와 전나무 사이에 달아놓은 부기가 펄럭일 때 마다 누가 온 것 처럼 보여 눈길이 자꾸 그쪽으로 쏠린다.
바람은 자꾸 차가와지고 손선생은 우모복으로 부족한지 침낭을 가지고 와서 이불을 덮어쌓듯 몸을 감싸고 있다. 통나무집에는 처음 우리가 왔을 때는 한집만 불이 켜져 있었는데 차츰차츰 불이 다 들어왔다. 그리고 오르락 내리락 하는 통나무집 사람들이 신기한 듯 우리를 쳐다본다. 뭐가 신기하노... 토요일 날 거대도시 서울 주변의 야영장에 야영하는 팀이 우리뿐이라는게 더 신기한 일이지...
오징어를 한 마리 구웠다. 곰바우는 짜지 않아서 좋다. 나는 이상하게스리 소주맛이 짜다고 느껴진다. 그래서 술을 못먹나... 가까이에 가로등 할로겐 등불이 2개나 있고 또 멀리도 몇 개가 있어 야영장 분위기가 나지않아 손선생이 주변에 있는걸 두개나 꺼버리고 가지고 온 개스등을 밝혔더랬는데 휴양림 사무실에서 아저씨가 한사람 나오더니 우리가 껐던 역순으로 다 켜버리고 사라졌다. 우리는 그저 웃고 있을뿐...
할로겐 가로등 뒤로 보이는 오동나무 낙엽군이 주변의 검은 낙엽에 대비하여 몹시도 이국적으로 보인다. 저기서 침낭 깔고 잠을자면 오동잎 냄새가 한달은 갈 것 같다. 주차장에서 곱마우 꺼내러 내려갔을 때 본 하늘엔 올때의 날씨와는 다르게 별이 초롱초롱 했다. 서울을 조금만 벗어나도 제법 별을 볼수 있는게 무슨 행운처럼 느껴진다. 오늘은 이야기가 많다. 살아가는 이야기부터 멀고 먼 가야제국의 이야기까지. 이렇게 둘이서만 서너시간을 이야기한적이 없었는데 한잔씩 하면서, 찬바람 맞아가면서, 오지 않는 사람들을 기다리면서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해야만 했다.
22시가 지나면 누군가 오겠지 오겠지 하다가 22시 30분이 지나서는 포기를 하고 급기야 보따리 싸서 같이 서울 가자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난 그냥 남기로 했다. 아무도 오지 않으면 오지 않는대로 산은 좋지 않은가... 엎어져 잠만 자도 얼마나 좋은데... 이제 대화도 무르익어 어떤 내용을 다루더라도 시간에 구애받지 않을 때 쯤 갑자기 영란∼ 이라고 길게 우리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시계를 보니까 23시다. 정확하구먼. 아마 임선생이 왔나보다. 반갑게 엉덩이를 일으키니 별스럽게 배낭을 메고 한 사나이가 등장했는데 기다리던 임선생이다.
강원도에서 오는 길이란다. 얼음찾아서... 병인가보다. 벌써 얼음이 얼리가없는데, 오히려 눈을 찾아 갔더라면 그런대로 어를릴 상황인데 말이다. 하는 말이 곧 서국장님도 도착할거라고 한다. 그럼 오늘은 주객이 전도된 외인부대의 날? 치킨을 가져왔다고 배낭을 까는데 얼음장비가 와르릉 떨어진다. 흐흐흐... 자전거 첨 배울 때 한밤중에 자전거를 끌고 나가던 때가 생각난다. 저게 열정인가... 이제 저런 시기는 나에게선 지나갔다. 이제 청년 권정철이 아니라 장년 권정철의 시대로 들어섰다.
초오유 이야기를 했다. 맥시멈 12명. 개인 비용 5백정도. 두팀이 준비를 하고 허가는 한팀으로 받는다. 순전히 교사팀으로 구성을 할려고 했는데 틀어지고 있다. 그래도 이렇게 총대를 메는 사람이 있으면 행운이다. 지난번 우리팀의 원정때 동분서주하던 내모습이 오버랩되자 이번 기회를 놓칠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것도 짱짱한 임선생 후배들이 팀을 받혀준다면 금상첨화가 아닌가... 시기에 있어서는 조정이 필요했다. 몬순이 끝난 9월로 잡고 있는데 사립학교인 우리 팀의 성격상 겨울방학때로 조정하면 어떻게 2월은 양해를 받을 수 있을거 같았다. 그렇지만 8천의 동계등반이 보통일이 아닌만큼 더 많은 검토가 필요한 상황이다.
그러고 있는데 서국장님이 나타났다. 혼자가 아니라 마석에서 한잔 하면서 같이 있던 마석산악회 장비점 사장님과 함께. 갑자기 우리는 부산해 졌다. 바로 밑의 데크로 자리를 옮기고, 부대찌개를 끓이고, 매트리스를 깔고 술잔을 돌리고... 알파인 스타일로 술을 먹는건 언제나 마음에 든다. 술잔이 돌 때 덜먹고 싶으면 조금만 먹으면 되니까. 임선생이 소주에 영비천을 섞어놓은 무슨 보약먹는거 같은 냄새가 펑펑 나는걸 뚱뚱한 날진수통에 가뜩 가지고 와서 우리는 그걸 다먹어야 했다. 거기에 장비점 사장님이 가지고 온 금강산 샘물도 거의 바닥을 봐야 했고.
오랜만에 꾼들과 이야기를 하니 그 특유의 입담들에 유쾌해 졌다. 그리고 뭔가 소주에 타게 되면 먹기가 순해져서 주량을 통제하기가 힘이 든다. 이렇게 막먹었다가 고생한적이 무릇 기하이뇨... 국장님 주력은 이미 잘알고 있다시피 더먹자형이다. 끝이 없다. 그런데 장비점 사장님도 만만치가 않다. 대단한 분들은 일단 표시가 나지않는다. 취했다. 깜빡 조는 사이에 정신을 차리니 그 재미있다는 '똥사건'이 지나가 버렸다. 다시 들려 달랠수도 없고. 물론 나중에 손선생을 통해서 들었건만 그날의 파안대소하던 분위기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으음... 때에 따라선 똥이야기도 웃음의 최대 소재가 되는구나.
마지막으로 커피 한잔씩 끓여먹고 헤어졌다. 택시를 호출해서 부른다는걸 손선생이 집으로 들어가니까 그걸 타고 모두 떠났다. 나만 혼자 남겨두고. 같이 가자는 손선생 말에 내일은 어떻게 서울 들어가나 하고 걱정하다가 어떻게 되겠지 하면서 남아 있기로 결정했다. 아까부터 따뜻한 침낭이 미치도록 그라웠는데 드디어 02시 30분에 소원성취를 하게 된 것이다. 서둘러 음식 찌꺼기를 텐트 안으로 옮기고 썰렁한 텐트안에 혼자 들어갔다. 술을 많이 먹어서인지, 담배를 많이 피어서인지 몹시 어지러웠다. 헌혈때문인가...
꿈을 꾸었다. 지금은 생각도 나지 않지만, 내가 칼에 찔렸던거 같다. 혹은 찔리진 않더라도 곤궁에 빠진 사람으로 나왔다. 그러다가 잠에서 깼다. 그런데 내가 매트위에 있지않고 매트아닌 텐트 바닦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그래서 깨어났나... 억울했다. 폭신한 매트위에서 잠을 자야하는데. 혼자 투덜거리고 있는데 갑자기 텐트 밖에서 코를 골고 누군가 자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내가 아직도 꿈속인가? 아니었다. 진짜로 누군가 자고 있는 것이다. 순간적으로 무슨 귀신 이야기의 시작 같아서 두려웠지만 텐트의 지퍼를 열었다.
눈에 익은 침낭... 손선생이었다. 그냥 둘려다가 머리까지 덮고 자는 모습이 추워보여 흔들어 깨웠다. 마침 그때부터 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 때문에 다시 돌아왔을까... 감복을 할려는 준비가 되어 있었는데 서국장님 일당이 마석에서 다시 술집에 들어갔다고 한다. 아침에 전화하면 서울 같이 들어가기로 했다면서. 절반의 감복... 그래도 서울 가지않고 다시 돌아온게 어디냐... 그럼 텐트 안에 들어올 것이지 했더니 아무리 불러도 깨어나지도 않고 잠에 잔뜩 빠져있어 그랬다고 한다. 03시 30분쯤 도착했다고 한다.
다시 누웠다. 나는 아직 취기가 가시지 않아서 몸을 움직일 때 마다 속이 울렁거린다. 요즈음 이런 경우가 별로 없었는데, 거기에 섞어 마신 술이 되어서인지 머리가 깨질 듯 아프다. 담배를 많이 피운것도 작용을 했으리라. 더 이상 도저히 잠을 이룰수가 없어서 손선생을 텐트에 두고 혼자 밖에 나왔다. 어디 커피라도 끓여 마시면 좋아지겠지 하면서 물을 끓였다. 비 때문에 어두워서 그렇지 벌써 시간은 07시가 다되어 간다. 통나무집에선 아직 아무도 일어나지 않은 듯 정적만이 맴돌고 있다.
이슬비냐, 안개비냐... 갑자가 개스가 꽉끼더니 바로 앞의 통나무 집이 사라졌다. 커피를 먹는데 뜨거운 김이 개스와 섞여서 마치 대사없는 영화를 보는 느낌이다. 개스속에 드러나는 할로겐의 등불이 기세가 꺽인 촛불을 보는 느낌이다. 이제 제법 사방이 젖었다. 혼자 있었더라면 예상대로 잠은 실컷 잤겠구먼. 이젠 돌아 가야지. 손선생도 아침엔 들어가야 할거고. 그럼 이번 야영은 불발? 아니지 초오유를 위한 첫발자욱이지, 본격적인 첫발자욱. 꼭 전대장님은 결정적인 순간엔 자리를 함께하지 못하는데 이유가 뭘까... 초오유완 인연이 없는걸까... 어제밤의 흔적을 찾았더니 데크위가 난장판이다. 혼자 이리저리 치우고 어제밤에 먹다남은 부대찌개를 다시 먹을려고 봤더니 완전히 꿀꿀이 죽이 되어있다. 하이에나 라는 별명의 내가봐도 위생상, 인격상 문제가 있길래 쓰레기 장으로 올라가 버리고 라면을 끓였다.
아직도 자고 있는 손선생을 깨워서 라면 몇 젓가락 뜨고 비가 제법 오는 가운데 철수를 시작했다. 카고백에 이것저것 쑤셔넣고 휴양림 사무소를 지나오는데 웬 아저씨들이 커피를 빼먹으며 기념사진을 찍고 있어 누군가 봤더니 허영호씨다. 아는척 했더니 야영이 좋았겠다면서 어디 원정 준비하느냐고 묻는다. 특유의 제천말이 정감이 간다. 지난번 한산의 초모랑마 원정의 실패로인한 잡음이 아직도 가시지 않아서 마음이 아프다. 영웅은 영웅으로 받아 들이면 좋으련만...
08시 45분 철수. 축령산 들어오는 입구에서 손녀 때문에 구리의 한양대 병원으로 향하는 초로의 할머니를 태웠다. 이것도 인연이 아닌가... 허영호씨를 만나서 자세한 사건의 경위는 모르지만 그를 동정하게 된 것과 입원한 손녀가 좋지 않다는 연락을 받고 차편 때문에 어려워하는 할머니에게 도움을 주게된거 하며, 기나긴 대화로 말미암아 나의 길을 어느정도는 이해하게 된 손선생과 그리고 다시 돌아온 장고가 아닌 오월이 아부지...
난 나의 모든 인연들을 사랑하고, 순종하고, 또 느낀다.
그날 서울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우리는 말이 없었다. 우리들의 즐거운 분위기가 할머니에게 누가 될까바 그래서 우리는 아무말도 하지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