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동장씨 숙부인 묘지
(매년 음력 10월 초3일 인동장씨 황상공파에서 묘제를 지내고있음)
하양허씨 17세 군수輔의 셋째 아들
18세 량(亮) 중종 1540년 庚子登文科 弘文館교校理 奉常寺僉正
墓 하양현 北椧谷壬坐 有碣傍孫東默撰 配淑夫人淸道金氏 父戒孫 有无만男墓合封
女 張崑 仁同人參議 竹亭公潛子
“첫날밤 창호지에 비친 그림자에 놀란 신랑은 달아나고 말았어요.
대나무 그림자를 칼로 알았던 것.
족두리도 벗지 못하고 신부는 한을 지닌 채 죽습니다.“
그림자가 자신의 戀敵(자객)이라고 놀란 나머지 그길로 도망치고 말았다.
그런데 신랑을 기다리던 신부는 그 자리에 몇 날 며칠 먹지도 않고, 자지도 않고, 기다림에 지쳐서 마침내 한을 품고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시신은 삭지도 않고 살아있는 것처럼 앉아 있었다.
“당신이 오시는 날까지는...
천년이 지나도 눈감지 않을 저희 슬픈 영혼의 모습입니다.
당신의 따슨 손길이 저의 목덜미를 어루만질 때,
그때야 저는 자취도 없이 한 줌 티끌로 사라지겠습니다...
당신이 오셔서 다시 천년토록 앉아 기다리라고, 슬픈 비바람에 낡아가는 돌비석이 있습니다.“
버림받은 허씨부인을 위한 조지훈(본명:조동탁)의 시 석문의 일부다. 부인은 죽어서도 문학작품으로 나타났고 홈싯골은 더욱 이름나게 하였다.
소고(小考)
버림받은 장씨 부인이 죽어서도 신방을 지킨 거룩한 여인이다.
소박받은 허씨부인을 위한 조지훈(본명:조동탁)의 시 석문에서 한 맺히 신부의 죽음을 알린다.
부인은 죽어서도 문학작품으로 나타났고 홈싯골은 한 여인의 한 맺힌 애절한 골짜기의 전설로 남게 하였다.
" 첫날밤 창호지에 비친 그림자에 놀란 신량은 달아나고 말았어요."
대나무 그림자를 자객과 칼로 알았던 것
족두리도 벗지 못하고 몇날 며칠을 물 한 모금, 잠 한숨 못 잔채 신랑을 돌아오기를 기다리다 신부는 한을 지낸 채 죽습니다.
당신이 오시는 날까지는~~~
천년이 지나도 눈 감지 않을 저희 슬픈 영혼의 모습입니다.
당신의 따슨 손길이 저의 목덜미를 어루 만질때, 그 때야 저는 자취도 없이 한 줌의 티끌로 사라지겠습니다.
당신이 오셔서 다시 천년이 넘도록 앉아 기다리라고요.
슬픈 비바람에 낡아가는 돌비석은 낡아 갑니다. "
소박(疏薄 : 아내가 미워서 처나 첩을 박대하는 것. 구박하다, 야박하다, 야속하다. 등한시하다.)
이처럼 소박(疏薄) 맞은 여인이 되어 세상 밖을 나갈 수 없었던 죄인 아닌 죄인으로 여겨지던 시대인데 당시 상황을 연상해 보세요.
천하에 하나 밖에 없는 무남독녀 귀한 딸을 시집보내는 기쁨이 순간에 슬픔과 파멸로 바뀐 교리공의 심정과.
첫날반 신랑은 달아나고 족두리 쓴채 무작정 기다려야 하는 신부는 죄인이 아닌데 죄인되어 세상밖을 나올수 없지요.
..........
비갈에 숙부인으로 봉작을 받았다. 죽음을 애도하고 명복을 기원하는 내용이 없어 아쉽고
계비의 자녀들 이름과 업적을 숙부인을 정실로 인정하고 올린것 같다.
매년 인동 장씨 황상공파 가문에서 묘제를 봉행하여 상처받은 영혼에 큰 위로가 되지 않을까 .
'여자가 한을 품으면 한여름에도 된서리가 내린다'고 합니다. 맺힌 한을 이 글을 통하여 따슨 손길이라 받아주세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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淑夫人 墓碣
숙부인의 묘비
※淑夫人-조선(朝鮮) 시대(時代)에 당상관(堂上官) 정3품(正三品) 문무관(文武官)의 아내에게 주던 봉작(封爵).
淑夫人 河陽許氏之墓
숙부인 하양 허씨의 묘
夫人姓許氏 貫河陽 文敬公 諱稠之后 校理公 亮之女
부인의 성은 허씨요 관향은 하양이며 문경공 휘 허조의 후손 교리공(校理公) 휘 허량의 따님이다. ※校理=玉堂-조선조 홍문관 교서관 승문원의 종5품 벼슬
適我八代祖 參議府君 無育未歸 沒于本庭 葬校理公墓下
나의 8대조 참의부군(參議府君)에게 시집와서 자식이 없이 시가(媤家)로 오지 않고 친정집에서 돌아가시니 친정 부친인 교리공의 묘아래 장례를 치렀다.
※參議-정3품 당상관 府君-돌아가신 아버지나 남자. 無育=無後-자식이 없음. 未歸-시가로 오지 않음. 本庭-親庭
繼妣陽城李氏 副司直 諱薰之女 生六男一女
후처는 양성이씨로 부사직 휘 이훈의 따님으로 6남 1여를 낳았다.
※副司直-조선(朝鮮) 시대에, 오위에 딸린 종5품(從五品) 무관(武官)
長諱天翰 號臥川, 次諱景翰 主簿 號愼菴, 次諱光翰 號自醒亭
맞아들은 성함이 장천한이고 호는 와천(臥川)이며 둘째는 경한으로 벼슬은 주부(主簿)이고 호는 신암(愼菴)이다. 셋째는 공한으로 호는 자성정(自醒亭)이다
※主簿-조선(朝鮮) 때 돈령부(敦寧府)ㆍ봉상시(奉常寺)ㆍ종부시(宗簿寺)ㆍ내의원(內醫院)ㆍ사복시(司僕侍) 및 그 밖의 여러 관아(官衙)에 딸린 종6품(從六品)의 낭관(郎官) 벼슬
次諱龍翰 湖岐村 次諱鳳翰 號宵翁 次諱鴻翰 判官
넷째는 용한으로 호가 기촌(岐村)이고 다섯째는 봉한으로 호가 소옹(宵翁)이고 여섯째 아들은 홍한으로 벼슬이 판관(判官)으로
※判官-조선 때 돈령부 한성부 상서원 봉상시 등 여러 관아의 종5품 벼슬.
俱以文章學行著于世 女適金宗孝 鳴呼 夫人 以燀赫名
문장(文章)과 학문과 덕행을 모두 갖추어 세상에 드러났다. 사위는 김종효(金宗孝)다. 오호라 부인(夫人)께서는 명성(名聲)이 불꽃이 피어오르듯 드러났으나
※文章-한 나라의 문명(文明)을 형성(形成)한 예악과 제도(制度). 學行-학문과 덕행. 夫人-남의 아내의 존칭. 燀赫-불꽃이 피어오르듯 드러나다.
家不幸 本宗無嗣 不肖耳孫 未能修簏之裕 數尺短碣 始玆辦竪
가문의 불행으로 종손이 무후(無後)로 불초(不肖) 잉손(仍孫)이 거행하는데 넉넉하지 못하여 두서너 자되는 짧은 빗돌을 처음 갖추어 세웠는데
※耳孫-자기를 뺀 7대손(七代孫). 잉손(仍孫). 無嗣=無後-자손을 낳지 못해 대를 잇지 못하는 것임.
而世天遼宿 聞見淺膚 如是略綽 記了豈敢 曰顯刻云
여러 대를 객지에서 묵고 견문(見聞)이 천박하여 이와 같이 감히 대략을 기록하고 마치면서 묘비에 새기노라. ※聞見-듣고 보는 것으로 깨달아 얻은 지식(知識). 淺膚-천박하다. 略綽-대략. 대충 ※顯刻-글씨나 문장을 환히 드러나게 새긴 것이라는 뜻으로, 묘비(墓碑)를 이르는 말.
八代孫 晉弘謹識 上之十一年 乙巳 竪于羡道
8대손 진홍이 삼가 적는다. 정조11년 을사년에 이도(羡道)에 세우다.
※羡道=羨道(연도)-羡道-외부에서 무덤방으로 통하게 만든 일종의 통로, 乙巳年은 정조9년임.
以十代孫 希彬書 歲久剜瀝 字不能辨 補闕更斲貞珉
10대손 희빈이 글씨를 섰는데 새월이 오래되어 비바람에 깎기고 씻기어 글자를 알아보기 어려워 흠을 보완하여 단단하고 아름다운 돌에 다시 새기니
※剜瀝-깎기고 씻기다. 補闕-흠을 보완하다. 更斲-다시 새기다. 貞珉-단단하고 아름다운 돌.
而從此吾祖妣事蹟 重煥於無窮矣
이로부터 나의 조비의 사적이 거듭 빛나 무궁하기를 바라노라.
※從此-이로부터. 事跡-사건(事件)의 자취.. 重煥-거듭 빛나
西紀1976年 丙辰 春分節 16世 奉祀孫 張漢圭 敬識
서기1976년 병진년 춘분절 16세 제사를 받는 주손 장한규가 공경이 적고
※春分節-매년 3월 20일. 21일.
13世孫 龍勳謹書
13세손 용훈이 삼가 글씨를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