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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24사전Ab에서an까지
A
아벨라르 (Pierre Abélard, 1079-1142) 철인0705아벨라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7.(P.304)
프랑스 철학자 신학자이다. 그는 낭트(Nante, 44 Loire-Athlantique의 주도)가까이 있는 르 팔레(Le Pallet)에서 1709년에 태어나 1142년(63살)에 샬롱 쉬르 손(Chalon-sur Saône, 71 Saône-et-Loire의 부도) 가까이 있는 생 마르셀 기도원(prieuré de Saint-Marcel)에서 죽었다.
수사(chanoine) 퓔베르의 질녀인 엘로이즈(Heloïse 1101-1164)와 그의 사랑의 이야기는, 퓔베르가 고용했던 비열한자들에 의해 행해진 거세의 드라마를 연출하면서 완성되었다. 베르그송에 따르면 그 이야기는 프랑스 문화가 갖는 소설 같은(romanesque) 사랑의 첫 번째 이미지를 구성한다고 한다.
엘로이즈는 아르장퇴이유(Argenteuil) 수도원에 들어갔고, 아벨라르는 파리에 있는 생트-쥬느비에브(Sainte-Geneviève) 산 위 [수도원]에서 얼마동안 공공[대중] 강의를 한 후에, 자기 생애를 침묵과 고독으로 마감했다.
그는 철학에서 명성을 날렸다. 왜냐하면 한편으로 그 시대에 정신을 교회에 예속시키는데 반대의 투쟁을 했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 인식의 독창적인 이론을 전개했기 때문이다. 그 이론은 [보편논쟁의 관점에서 보면] 개념론(conceptualisme)이다. 개념론은 합리론과 동시에 경험론에 맞는 구체적 취향을 화해시키고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근대적 도덕론에서 보면, 그는 개인주의와 인본주의를 화해시키려 한다..
그의 저술로는 예와 아니오(Sic et non(1121), 변증법(dialectique)(1121), 신학입문(Introduction à la thélologie)(1125)가 있고, 아벨라르와 엘로이즈 사이의 편지 Lettres는 1870년 그레아르(Octave Gréard, R2x)에 의해 번역되었다. 질송(Etienne Gilson, 1884-1987)의 엘로이즈와 아벨라르에서 이들의 사랑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 (40PMJ)
(HB) 베의 전집(OE)와 잡문집(ME) 속의 인명 색인란에 아벨라르와 엘로이즈 항목이 없다. 줄리아(D. Julia)가 전하는 베르그송의 이야기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일화 속이라면, 슈발리에(J. Chevalier)의 대화록 속에 있을라나? (40PMJ)
* 그레아르(Octave Gréard, 1828-1904) 프랑스 교육자, 대학인. 고등사범학교 출신. 1875년에 도덕 정치철학 아카데미(l'Académie des sciences morales et politiques)에, 1886년에 프랑스 아카데미(l'Académie française)에 회원이 되었다. (43QLB).
일탈 aberration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7.(P.304)
일탈(aberration)은 이탈(déviation)을 의미한다.
자연적 목적으로부터 우회하는 모든 기능을 일컫는 것이다. 감관의 일탈이 수종증환자에게 [물을] 마시게 하고, 적응의 일탈이 몇몇 콜로라도 말들에게 자신들을 독약[중독]으로 죽게 만드는 식물로 영향 공급하게 한다.
정상적인 심리학적 삶은 실재에 주의에 의해 특징지어진다. 그런데 일탈의 개념은 실재에 주의를 일시적으로 잘 못하는, 즉 보다 특별하게 말하면, 심리적 부적응의 상태를 지칭한다. 아주 엄격하게 말하면, 일탈(aberration)과 이탈(déviation)은 구별된다. 전자는 예를 들면, 개인을 망각(oubli)의 상태나 순간적인 부적응의 상태를 일으키는 큰 놀람에 기인하거나 큰 피로에 기인하는 일시적 혼란을 의미한다. 이에 비해 후자는 영속적이고 유기체적이다. [후자는 신체가 습관처럼 잘 못을 저지르는 것에 속한다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위에 콜로라도 말이 그러하듯이. 프영 위키에는 콜로라도 말(cheval de Colorado, horse of Colorado)에 대한 이야기로 경주마가 있다는 이야기는 있어도, 식물을 먹는다는 이야기는 없는데 다른 곳에서 찾아보아야 할 것 같다.] (43QLB)
의지박약 aboulie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7.(P.304)
이 용어는 의지의 축소 또는 폐기를 의미한다. 중요한 의지적 결정은 어떤 경향성의 직접적인 표현이 될 수 없을 것이다. 그 결정은 “의지 일체의 부재”에 순간적으로 앞선다. 그 의지 부재에 의해 개인은 투명하게 결정하기에 앞서 그 자신자체로 고요하게 된다. 이러한 상태는 비의지(nolonté) 상태, 다시 말하면 무의지(non-volonté)이다. 이것은 하나의 정상상태이며, 의지 박약(aboulie)상태와는 아주 분명하게 다르다. 이 의지 박약은 결정하는 데에서나 실행하는 데에서 의지의 영속적 무능으로 번역된다.
이 의지 박약자들 가운데 이렇게 배열할 수 있다. 1. 선도적 행동을 가지지 못하는 자들, 이들은 다른 사람들을 따를 수 있을 뿐이다. 이들 가운데는 말로는 항거하지만 행동으로 나가지 못한다. 2. 욕구불만 자들(les inhibés) 또는 소심한 자들(les timides). 3. 불안정한 자들 모두. 이들은 연속적으로 시도를[하던 일들을, 직장을 자주 바꾸거나] 바꾼다. 의지 박약은 근본적으로 인격성의 부재이다. 또 어린이의 경우에 자주 부모들의 과장된 보호에서 또는 너무 강력한 부모의 권위에서 올 수 있다. 이 의지 박약은, 정서적이거나 전문적인 질서[영역] 속에서 초기의 궁지에 몰린 것과 같은, 개인의 콤플렉스에 관련될 수 있다. 정신분석학적 치료가 나아 질 수 있게 한다. 그럼에도 유일한 치료는 생활의 경험에서 또한 성공의 우연에서 올 수 있을 뿐이다. (43QLE)
외양화 abréaction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7.(P.304)
[한불 사전: (무의식적 욕구불만이나 콤플렉스에 벗어나기 위한) 외양화, 과도화 행위.]
[자신의 실수나 오류, 또는 잘못된 사실을 감추기 위해 다른 이야기를 과장되게 하는 경우가 이 외양화일 것이다.]
자기를 방어하기 위한 모든 심리학적 반작용을 의미한다.
놀람으로부터 자유롭고자 하는 또는 인격의 혼동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이야기하고자 하는 인간적 반작용을 아주 특별하게 지칭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그의 인격적 혼동이 계속되며, 그리고 자신의 인격의 균형을 취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이 방어기제는 똥 뀐 놈이 성낸다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43QLE)
절대 absolu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8.(P.304)
라틴어 압솔루툼(absolutum)에서 나왔으며 ‘분리된’(séparé)란 의미이다. [따로 떨어져서 다른 것과 독립되어 있으면서 자족적이고 완전한 힘을 지닌 것으로 이해되는 개념이다.] 절대란 다른 모든 것으로부터 독립된 것을 의미한다.
이 절대의 문제는 철학의 근본적 문제이다. 존재(l'être)가 자체적으로(en soi), 그 존재를 생각하는 사유[능력]와 독립적으로 현존하는가? 그 철학이 실재론(réaliste)이라고 하는 것은 파르메니데스, 플라톤, 스피노자, 쉘링처럼 [절대에 대한 물음에 대해] 긍정적으로 대답하는 경우이고, 관념론(idéaliste)이라고 하는 것은 피히테나 헤겔처럼 앞의 경우에 반대하는 경우이고, 불가지론(agnosticiste)이라고 하는 것은 칸트처럼 그것에 대해 대답하기를 거부하는 경우이다.
절대에 대한 탐구, 말하자면, 우리 자신(nous-même)과 다른 어떤 것에 대한 탐구는, 우리를 우리 스스로 상실할 수 있다고 할지라도, 모든 지적 작업의 동기이며, 심지어 헤겔이 말하기를 모든 인간 활동의 동기이다. 그가 쓰기를 “철학적 반성은 우리를 절대(l'absolu)에로 데려간다. 그러나 그 반성은 무한한 인내와 노력을 요구한다. 종교적 신앙, 황당한(romanesque) 사랑, 자살은 절대에 대한 조급함일 뿐”이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특권적인 순간들을 제외하고 인간은 결코 자기 자신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피히테 이래로 사람들은 거기에 도달하기 불가능한 절대 자체와 절대에 관련된 것들 사이를 구별하다. 이 후자에는 절대에 우리의 확신, 또는 신의 말씀 등과 같은 것이 있으며, 이것들을 인간은 철학적 반성에서 실현할(réaliser) 수 있다.
이러한 실현은 사람들이 절대지(le savoir absolu)라고 부르는 어떤 것을 특성을 지닌다. 이 절대지는 우주 속에 현존하는 모든 사물들을 포함하는 전체적 지식(le savoir total)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보다 높이 있는 지식을 말하며, 인간이 그의 사유의 훈련에서 자신에게 [속하지] 있지 않는 것과 동일시하는 지식을 말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절대지를 “사유와 존재의 일치”(l'identité de la pensée et de l'être)라고 정의하였다. 사실상 인간의 모든 행동 그리고 사유의 질서 속에서 정서적 모든 발견물은 주관적 창조의 일부, 객관적인 계시의 일부를 허용하며, 또 우리 자신으로 오는 부분과 존재로부터 오는 부분을 허용한다. 절대는 행동하고 발견하는 행복 속에서 모든 효과적 행위로 현재(present)에 있다. [이 정도의 절대란 것이 인간의 삶 속에서 현재 지금도 드러난다는 점에서 기억의 총체가 절대의 구체적 내용과 같다. 절대는 단지 외화된 것이 아니라 우리 속에 내재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이점에서 헤겔은 외재적 절대를 관념으로 보았을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국가일 것이다.] 그러나 철학적 반성만이 우리에게 이 특권적 계기들에 대해 인식하도록 허락한다. (43QLG)
[초판(1964)에: 사람들은 발작(Honoré de Balzac, 1799-1850)의 절대의 탐구를 읽을 수 있다.] (43QMC)
추상 abstrait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p. 8-9.(P.304)
떨어져 있는 것, 따로 있다고 생각되는 것.
예를 들어 ‘쥐’의 일반적 관념은 추상화된 관념이다. 현실에서 특별한 개들만이, 이러저러한 종, 이런저런 키의 개들만이 이 우리에게 제시된다. 여기서 추상관념은 일반적인 형상(une configuration)만을 떠올린다. 사람들은 추상(l'abstraction)과 내용(l'entité)을 구별한다. 전자는 관념일 뿐이고, 후자는 실재성을 소유한다. 초자연적인 내용으로는 정의(la justice)같은 것이 있다. 이 정의의 이상(l'idéal)은 모든 인간의 가슴속에 실재성에 상응하는 것같이 여긴다.
다른 예를 들면, 추상예술은 정서적 요소와 감정을 모든 구상적 요소(l'élément figuratif)의 지각과 분리한다. 현실에서 [다른 사람을 겁주는] 어떤 인물 또는 쥐를 겁주는 어떤 고양이가 있다. 그런데 추상예술은 한 인물 또는 한 고양이를 재현[표상]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두려움의 감정” 표현하는데, 색깔들과 비례의 단순한 놀이를 통해서 이룬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를 비구상(non figuratif) 예술이라고 말한다. 1910년부터 이 예술의 형식이 유럽에서 나타났다. 우선 러시아 예술가들로서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1866-1944), 말레비치(Kasimir Malevitch, 1878-1935), 소니아 들로네(Sonia Delaunay-Terk, 1885-1979) 등이 있고: 프랑스에서는 들로네(Robert Delaunay, 1885-1941), 오귀스트 에르방(Auguste Herbin, 1882-1960) 등이 있고: 네델란드에서 반 두스부그(Van Doesburg)가 있고, 이탈리아에서 알베르토 마녤리(Alberto Magnelli, 1888-1971)가 있다. [네델란드의 몬드리앙을 본문에서 소개하지 않았으나, 저자는 작품을 삽화로 제시하면서 강조하였다.]
* 삽화소개: 몬드리앙(Piet Mondrien 1872-1944)의 「꽃 핀 사과나무(Pommier en fleur)」(1912, 라에 시립미술관). 추상예술은 먼 과거로부터 요구되었다. 이론가들은 회교인들을 상기했다. 회교인들은 코란(Coran)이 창조의 형상[형식]에 대한 모방을 금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추상예술에 대한 도형과 무늬의 작품들] 걸작들을 남겼다.
* (초판(1964)에: 비용(Jacques Villon, 1875-1963: 본명 Gaston Emile Duchamp) 「공간(L'espace)」(루이까레 갤러리 소장, 파리) (43QMB)
부조리 absurde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9.(P.304)
의미가 박탈되어 있는 것.
사르트르(Jean-Paul Sartre 1905-1980)와 까뮈(Albert Camus, 1913-1960)에 따르면, 부조리의 경험은 실존(l'existence, 현존)의 진지한 경험으로부터 일 것이다. 부조리란 실존철학에서 다음과 같이 간주되었다. 하이덱거(Martin Heidegger, 1889-1976)에서 불안(l'angoisse)의 측면으로, 사르트르에서 삶의 가치 있는 모든 이유들에 대한 부재(l'absence)[가치 부재]로, 까뮈에서 우리들 조건의 불일치(l'incohérnce)로, 야스퍼스(Karl Jaspers, 1883-1969)에서 “숙명적 좌초”(l'échec fatal)로 생각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까뮈를 이어서 사르트르는 행동 속에서[삶에 참여 속에서] 부조리에 대한 유일한 은신처를, 또한 부분적이라 할지라도 우리의 실존에 의미를 부여하는 유일한 방식을 보기에 이른다.
까뮈가 자기 명상(méditation)의 주제들 중의 하나로 삼은 “시지프스 신화”(Le mythe de Sisyphe)는, 그 위에 올려놓으면 끊임없이 다시 아래로 굴러 떨어질 운명에 처한 그 언덕 위로 바위를 밀고 올라가게 운명 지워진 인간의 역사의 이야기이다. [까뮈가 19세에 베르그송에 관한 짧은 논문을 썼다는 주목한다. 이 끊임없는 하강에 대한 생명의 상승의 이야기. 창조적 진화 3장에서, 베르그송의 표현을 확장하면, 생명은 평준화(열역학의 엔트로피화)에 역행하여 끊임없는 상향하는 노력(운동)을 하는 숙명으로 생성이다. 이 생성의 노력의 결과에는 원래의 형상이라는 목적은 없다. 구원으로서 상층도 없고, 착하다고 맞이할 천국도 없다. 그러나 생명은 흐름 속에서 새로운 모습을 끊임없이 만드는 것이며, 이 모습이 상상의 신체이다. 모든 생명체의 몸이다.(43QMB)]
시지프스 신화는 실존의 부조리에 대한 감정을 잘 예시한 것이다. 이 실존은 여전히 우리의 노력을 요구하고, 이번을 마지막으로(une fois pour toutes) 정리되고 현실화될 수 있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의지에 호소한다. 부조리의 감정은 [행동과 실천을 포기한] 회의주의가 알지 못하는 말 못할 항거(une révolte sourde)[무의식적 항거, 분노]를 내포하고 있다. 이 회의주의는 조용하게 생명과 사물의 무의미(non-sens)고려한다.
(43QMB)
아카데미(학술원, 학당) Académie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9.(P.304)
[1963년 판에는 없음]
플라톤에의해 아테네에 거까이 정원에 세운 철학학교. 이 학교는 기원전 4세기에서 기원전 1세기에까지 지속되었다. [fr.Wiki, Académie 항목에서는 기원전 388년에서 기원후 86년까지 지속했다고 한다. / fr.Wiki, Justinien 항목에서는 유스티아누스는 529년에 다마스키오스(Damascios le Diadoque 458-538)가 이끌던 아테네의 네오플라톤주의 학교를 폐쇄하였다. 이 학교는 기원전86년에 문닫았던 유명한 아카데미를 연장한 것이다. 다른 곳에서는 학교는 529년 폐쇄되었다.]
사람들은 플라톤의 이론을 따르는 여러 분파들에 따라서, 고(古) 아카데미학교(Ancienne Académie)와 신(新) 아카데미학교(Nouvelle Académie)를 구별한다. 전자에 속하는 학자로는 [플라톤의 조카인] 스페우시프(Speusippe 407-339 av. J.-C.)와 [전임의 계승자인] 크세노크라테스(Xénocrate de Chalcédoine, 396-314)가, 후자에는 [5대 학교장] 아르케실라오스(Arcésilas de Pitane, Arkesilaos 315-241)와 [10대 학교장] 카르네아데스(Carnéade Karneadēs, 219-128)가 있다. [꺽쇠의 내용은 fr.Wiki를 참조하였다.]
(43QMC)
우연사건 accident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9.(P.304)
우연한 사건(événement fortuit)
철학에서 실질(la substance)과 대립되는 개념이다. 우연사건이란 실질을 파괴함이 없이 일어날 수 있거나 또는 사라질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예를들면, 생활에서 우연사건이란 우리의 인격을 변형시키지 않고서 일어나는 사건이다. 개인은 그것을 우연적이고 순수 물질적인 사실(fait contingent et purement matériel)이며, 깊은 존재이유와 관계없다.
(43QMC)
문화부적응: 문화변질, 이질문화 수용 Acculturation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9.(P.304)
라틴어 아드(ad): 문화의 만남. [아드(ad)는 라틴어 전치사로 프랑스어의 전치사 아(à)에 가깝다. 왜 이렇게 아드만 써놓는 지 모르겠다. 혹시, 아드 쿨투라(ad cultura, 문화에 관련하여)를 쓰다가 탈자 나온 것 아닐까? 아니면, 프랑스어 a-라는 것은 라틴어 ad-와 같다는 것을 쓰려다가 말았던 것이 아닐까?]
이 용어는 ‘문화의 만남’에서 나온 것인데, 환경(지리적 환경, 직업적 환경, 사회적 환경)의 변화에서 기인한 부적응을 의미한다.
문화부적응은 모든 이민자들에게 속하는 현상이다. 이 이민자들이 자신들의 문화 공간을 상실하였고, 자신들의 문화들 중 하나도 아직 발견하지 못하였을 때이다. 또한 졸부(nouveaux riches)에게 속하는 현상이다. 이 졸부들이 이전의 사회적 환경의 정신을 간직하면서 갑작스레 사회적 환경을 바꾸었을 때이다.
환경부적응은 전적으로 다음과 같은 사회현상일 수 있다. 아프리카의 옛 식민지 나라들처럼, 그 나라 사람들은 자신들의 전통적 가치와 문화를 상실했을 때이다. 그들은 서구 문화 속에서 자신들의 특수한 취향, 감정, 열망 등에 정확히 해당하는 가치를 발견할 수 없었다.
문화부적응은 심리학적 불균형과 사회적 가치의 상실로 설명될 수 있다. 여기서 새로운 이민자들의 경범(délinquance)의 경향이 나온다. 사회적 통합에 합류하지 못하는 감정과 현실적 의미의 상실은 신경증에 이를 수 있다. 참조: 신경쇠약(psychashénie)[이 용어는 쟈네의 용어로서, 우리의 일상어로 노이로제라고 말과 같다.]
(43QMC)
아킬레스와 거북이 Achille et la torture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0.(P.304)
운동의 불가능성을 증명하기 위하여 엘레아학파의 제논(Zénon d'Elée)의 논증
아킬레스가 거북이를 자기 보다 앞에 출발했다면, 아킬레스가 거북이를 결코 따라잡을 수 없다고 그는 증명한다. 왜냐하면 거북이를 따라잡기 위하여, 아킬레스가 달리기 시작했을 때, 그는 우선 거북이가 있었던 지점까지 도달해야 한다. 그리고 나서 아킬레스가 가는 동안에, 거북이가 도달했던 점에까지 또 도달해야 한다. 그리고 또다시 그 거북이가 갔던 점까지 이렇게 무한히 연속된다. 이 논증에 대하여, 아리스토텔레스는 대답하기를, 운동자체는 분할불가능하며, 공간의 측면에서 생각될 수 없다고 한다. 운동은 정확하게 공간적 “한계를 뛰어넘는”(franchir la limite)데 있다. 다른 용어로 말하면, 운동은 사람들이 느끼고 실현하는 “질적”(qualitative) 실재성이며, 합리적으로 표상하기 불가능한 것이다. (43QMJ)
체득 l'acquis 후천적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0.(P.304)
경험과 연구에 의해 체득되는 인식과 관념.
이 이론에 따르면 인간 정신은 기원적으로 “백지”(table rase)이다. 그 백지 위에 경험의 모든 자료들이 기입된다. 인식들은 경험으로부터 진행되고, 이성의 원리들은 습관으로 환원된다. 이 이론을 경험론(l'empirisme)이라 부른다. 록크와 흄에 따르면 정신 속에 있는 것 모두는 체득된 것이다. 경험론은 데카르트의 내재론(l'innéisme, 생득론 본유론)에도, 칸트의 합리론(rationalisme)에도 대립된다. * 반대개념 내재(inné) (43QMJ)
행동 action 또는 행위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0.(P.304)
물질적 힘의 또는 관념의 표출이다. [예를 들어] 인격의 행위(l'action d'une personnalité).
도덕(la morale)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 행동의 주체에서 제기된 문제들의 일체를 다룬다. 도덕은 다음과 같은 질문에 응답한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세계에서 인간의 운명(destination 정향)은 어떤 것인가? 두 개의 원칙적 대답이 있다. 어떤 이, 즉 에피쿠로스의 행복주의(eudémonisme)에 따르면, 인간의 최후의 목적은 행복(le bonheur)이다. 다른 어떤 이, 즉 칸트의 엄격주의(rigorisme)에 따르면, 최후의 목적은 덕(le vertu)이다. 그 철학은 행위의 가치의 문제를 연구한다. 즉 인간의 본질은 행동하는 것이다. 이것은 칸트 철학와 피히테의 초기철학 중점이다.
맑스주의에 따르면, “행동하고, 행동하는 것, 그것이 이 세상에서 존재이유이다”(agir, agir, voilà notre raison d'être ici-bas)고 말한다. 실존주의에서 “철학은 세계를 생각한다. 이제 세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헤겔, 하이데거 등처럼 철학은 사유하는가? 헤겔은 “철학자는 미네르바의 올빼미이다. 그 새는 낮의 정념에 피곤하여, [황혼에] 사색으로 후퇴한다. 따라서 이러한 주제에서 사람들은 참여(engagée)철학과 사색의 철학을 구별한다. 참여의 철학 [또는 실천의 철학]은 오늘날에는 맑스주의로부터 주창되었다. 사색의(spéculative) 철학은 기꺼이 플라톤과 헤겔로부터 주창되었다고 말한다.
심리 사회학(la psychosociologie)은 효과적[결과적] 행위의 조건을 연구한다. 군중(les masses)의 행동[월드컵의 거리 응원], 인민(peuples)과 민중(foules)의 교육, 선동(démagogie), 선전(publicité) 등을 다룬다. 심리학적 관점에서 사람들은 행동의 근본적 두 형식을 구별한다. 1. 놀이(le jeu)와 예술(l'art). 2. 노동. 전자의 두 가지는 자유(libre) 행위이이며, 후자는 구속적(contrainte)이고 규제된(réglée) 행위이다. (43QMJ)
행동방법 les méthodes actives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0.(P.304)
초등생의 창의와 그들의 인격 수양을 발전하도록 목표로 삼는 교육적 방법
프랑스에서 교육의 개선 작업을 주도하는 이 방법들의 정신은 지성의 다양한 함양을 바르게 하는데 목적이 있다. 이 방법들은 다음과 같은 실행에 있다. 1. 어린이들에게 익명으로 판단하지 말고, 자신의 인격으로 판단하여 말하게 하는데 있다. 2. 영화, 교육 방송, 언어 등을 통하여 서로 토론하는 것 같은 생생한 교육학적 절차를 이용한다. 이 방법은 몽테뉴가 말하듯이 “잘 채워진”것이라기보다 오히려 “잘 만들어진” 두뇌를 형성하기를 목표로 한다. 이 방법은 페스탈로찌(Pestalozzi, 쮜리리 1746-브루그 1827)에 의해 처음으로 연구되었고, 실천되었다. (43QMJ)
활동성 activités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p. 10-11.(P.304)
행동하는 능력(puissance d'agir)
활동성이 허용하는 의식의 수준에 따라서, 사람들은 심리적으로 인간 활동성을 여러 다른 수준을 구별한다. 그 도표는 다음과 같다.
■동물
-반사(reflexe): 자극에 대한 단순 반작용.
-본능 또는 경향: 어떤 방식으로 행동하는 충동이 있다.
■인간
∙습관
-작용(l'acte)의 단순 반복에 따라, 기계적으로 획득된 것이다. [걸음걸이]
-의지적 노력으로 획득된 것으로, 일련의 무의식이 되어버린 행동 [스포츠 선수]
∙의지적 행위: 인격성의 선택을 표현하는 의식적 행동
-합리적 활동성
예: 살빼고 싶다. 그리고 식사의 욕망을 대항하여 결심하고 [소식]을 실행한다.
-도덕적 활동성
우리는 이기적 동기와 독립적으로 의무에 의해 행동한다.
-창조적 활동성
예술적, 철학적, 과학적 활동성. (43QMJ)
적응 adaptation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p. 10-11.(P.304)
한 존재가 다른 존재에, 또는 그가 사는 환경에 전유하기(appropriation, 적응)
적응에 대한 생물학적인 두 개의 큰 이론이 있다. 1. 다윈의 이론이다. 그는 환경의 작용을 강조하고, 가장 잘 적응된 유기체를 선택할 환경의 능력에 있음을 강조한다. [환경은 우연이지 능력이 아니다. 그 능력은 어쩌면 플라톤이 말하는 키질과 체질일 뿐이다. 이것보다 더한 선택이라는 힘이 있다면, 그 자신도 모르게 상층의 권위에 의존하는 생각이 들어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 여기에는 은총이 개입될 소지가 있다. ] 2. 라마르크의 이론이다. 그는 반대로 스스로 적응하기 위한 유기체의 행동을 강조하였다. [자연에서 우연으로 생겨난 생명체가 자기 스스로 엔트로피를 역행하는 행위를 한다. 여기에 자유에 관한 문제가 들어있다.]
예를 들어 다윈에 따르면, 아프리카의 땅들은 건조하게 되고, 종려과 식물들(palmier)의 나뭇잎들은 점점 높이 올라갔을 때, 기린들(girafes) 만이 긴목으로 존속할 수 있었다. 다른 종들은 죽는다.
라마르크에 있어서 높이에 있는 잎들에 향해 애쓰는 것은 동물이다. 이 동물은 수세기의 과정을 거쳐서 그들의 목을 스스로 늘이고, 그리고 기린이 “되었다”(devemue, 생성되었다).
일반적인 방식으로 보면 이것은 세계에 적응에 의해 야기된 문제들이다. 베르그송에 따르면, 본능적 적응의 결함(defaillance, 파산)이 인간의 지성을 각성시켰다는 것이다. 추위를 방어하기 위해 집을 짓고, 짐승들에 대항하기 위하여 무기를 만들었다. [도구적 지성을 말한다]
심리학과 특히 정신분석학은 다른 인간들에 적응하기 위하여 또한 적응된 사회적 삶을 영위하는 유용한 도구일 수 있다.
인간관계의 수준에서 적응이란 타인과 대화할 수 있는 능력, 타인과 대립하는 대신에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정의된다. 이 대립에는 갈등(conflit 충돌), 질투, 열등의식, 우등의식 등이 속한다. 이러한 것들은 한사람이 다른 사람을 “지배하려고”(maîtriser)하는데 있다. (43QMJ)
[다윈의 기린에 대한 설명은 종려나무에 한정되어 있다. 그 기린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다른 풀을 먹으려 하면 안될까? 종려잎이 환경의 조건에 더 맞는 그 기린의 몸과 종려나무는 다른 관계가 아닐까? 그러면 그 숲에는 다른 동물은 죽었을까? 상호관계에서 다른 동물은 다른 식물과 짝짓기를 하고, 기린은 종려나무와 짝짓기를 한 것은 아닐까?(43QMJ)]
사춘기 청춘기 adolescence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1. (P.304)
사내아이의 경우에 14살에서 20살로 처녀의 경우에 12살에서 18살에 이르는 인간 삶의 기간.
심리학적 관점에서 사춘기는 성적 본능과 도덕적 종교적 정서의 갑작스론 발달이 표시되는 시기이다. 사내아이의 경우에 14살 또는 16살의 경우에 가정적 공간에 대립하는 신적 위기의 나이이다. 일련의 일반적 연구에서는 사춘기를 길게 잡고, 균형있고 안정된 성인 생활의 도래를 촉진한다. [이렇게 표현하고자 한 것이 아닐까, 현 연구는 사춘기의 기간을 좀더 폭넓게 잡고, 그 기안이 어른이 되는 연습기간으로서 좋은 점이 많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그리고 사춘기는 사회적 책임감을 의식하면서 사라진다. 참조: 나이(Age)
(43RKD)
아도르노 Theodor Adorno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1. (P.304)
참조: 프랑크푸르트 학파을 참조 하시오.
심정 affectivité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p. 11-12. (P.304)
정서 일체를 말한다. “이성”(raison)의 질서에 대립되는 “가슴”(coeur)의 질서를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일컫는 것이다. 사람들은 수동성의 상태에 연결된 정서와 행동(능동)에 연결된 상태를 구별한다.
근대 심리학은 심정 속에서 살아있는 존재가 그의 환경과 통합하는 생득적이거나 고 체득적인 연결의 일체를, 즉 자아가 생애에 연결되어 있는 깊은 표현을 본다. 이리하여 개인은 자신에게 좋다고 양분과 자신에게 해를 끼치는 양분을 “느끼는” 것에 틀림이 없다. 또한 그는 죽음 또는 큰 질병의 접근을 잘 느낄 것이다. 도스토옙스키(Fyodor Mikhailovich Dostoevskii, 1821-1881)의 백치(The Idiot, 1868 : L'Idiot)와 같은 작품은 고요한 행복감에 한껏 젖은 상태에서 간질 발작의 촉박함을 압박한다. 백조(le cygne) 같은 동물은 죽기 직전에 노래를 부른다. 심정은 모든 우리 심정들(affections)뿐만 아니라 또한 모든 관념들의 무매개적 근원일 것 같다.
철학에서 가장 합리적 사상가들, 플라톤, 데카르트, 라이프니츠, 스피노자, 피히테 등은 반성(réflexion, 반사) 발전과 방향정립에서 무의식적 동기와 심정의 역할을 알았다. 우리들 속에 신 또는 무한의 현전은 느껴질 수 있었으나 객관적으로 알져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심정(affectivité)과 감성(sensibilité)을 혼동하지 않아야 한다. 전자는 감성의 일체이고 후자는 감각의 일체이다.
* 도표
■ 수동적 심정(affections passives) - 쾌락과 고통의 감격(émotions)
■ 심정적 경향(tendances affectives) - 욕망과 충동과 같은 경사(inclinations)
- 사랑과 증오와 같은 정념(passions)
** 사진 설명: 삐알라(Maurice Pialat, 1925-2003)의 영화 우리들 사랑에서(A nos amours, 1983) “가슴(coeur)은 이성이 알지 못하는 이유들을 갖는다”. 파스칼의 주장이다. 그는 심정을 행실(conduite)의 원천으로 다시 확립하였다.
(43RKD)
아카페 agapé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2. (P.304)
무상 사랑(amour-charité), 무한 자비.
아가페는 도덕적 규범(précept)을 지칭할 뿐만 아니라, 신적 삶의 참여로부터 결과하는 행복의 형식을 떠올린다. 그것의 첫째의미는 종교이다. 사람들은 이 개념의 철학적 용도를 사도 바울(Saint Paul)에 기인하는 것으로 본다. [불교의 무상 보시와 자비가 아가페와 같은 의미이다.]
(43RKD)
나이 âge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p. 12-13. (P.304)
태어난 이래로 흘러간 시간
사람들은 객관적 나이와 심리학적 나이를 구별한다. 어린 시절의 시간이 성인의 시간보다 훨씬 천천히 지나간다. 심리학적으로 우리가 느낀 시간은 75세를 인간수명으로 할때, 17세 반이 중간을 구성한다.
정신연령(l'âge mental)이란 개인의 지성과 그의 실재적 나이 사이에 현존하는 연관을 규정한 것이다. 사람들은 정신연령을 지능지수(le quotient intellectuel, Q.I.)를 규정하는 테스트의 도움으로 측정한다. 예를 들어 매카노(Meccano) 조립 놀이, 또는 기본 산술학, 또는 보조대상들의 조합(빵칼과 포크 등)의 문제들을 제시한다. 이 문제들은 예를 들어 10살 즉 정해진 연대기의 나이의 정상적인 주체로서는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만일 8살 아이가 이것을 해결했다면, 그의 지성은 조숙(précoce)하다고 평가할 것이다. 그의 심리학적 나이는 평균나이를 1로 삼았을 때, 10/8 = 1.25가 된다. [즉 그 시기의 아이들 나이보다 심리학적으로 성숙하였다고 한다] 만일 12살 아이가 이것을 해결했다면, 그의 [심리학적] 지성지수(Q.I.)는 10/12 = 0.83 이 되어, 정상보다 열등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43RKI)
[매카노(Meccano) 회사: 영국회사로 혼비(Frank Hornby 1863-1936)가 1901년 설립하였고, 미국과 독일에도 자회사가 있으며 프랑스 자회사는 1912년 파리 9구역에 설립했다. 이 회사는 금속자료로 조립 건설하는 놀이기구를 만드는 회사이다. 혼비기차(les trains Hornby), 딘키 장난감(les Dinky Toys) 등으로 알려졌다.- en Wiki. (43RKI)]
불가지론 agnosticisme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3. (P.304)
인간 정신이 접근할 수 없는 절대(l'absolu)가 있다고 선언하는 철학적 학설과 태도를 말한다.
경험을 자료로 하는 한, 실증적 정신의 표현이며, 종교와 형이상학을 자료로서 하는한 회의주의이다. 전자에는 꽁트(Auguste Comte, 1798-1857), 후자에는 칸트(Immanuel Kant, 1724-1804)를 들 수 있다.
불가지론자(l'agnostique)는 신지론자(le gnostique)와 대립될 뿐만 아니라 독단론(le dogmatique)과도 대립된다. 전자는 비합리적 믿음을 고양하고 있고, 후자는 합리적 추론의 절대적 진리를 주장하고 있다. (43RKI)
공격성(agressivité)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3. (P.304)
공격적 태도의 경향, 또는 공격 경향성을 말한다. 이 단어는 라틴어(adgredi)에서 나왔으며 “어디로 향하다”(aller vers)라는 뜻이다.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는 이 개념을 분간해낸 첫 번째 학자이다. 그는 이 개념에서 경향성들 중의 하나로서 인간의 근본적 충동(pulsion)을 보았고, 이 개념에서 폭력과 파괴라는 부정적 측면만을 끌어냈다.
근대 심리학자들은 똑같은 방식으로 공격의 긍정적 측면을 고려했다. 공격성을 지닌 정상적인 인간은 “전진하는”(faire front) 성향이 있다. 심지어 정태적 상태에서도 그의 생명적 강건함은 무엇인가 시도할 예비적 성향을 띠고 있다. - 그래서 일상적 언어로 이렇게 표현되기도 한다. “공격을 스스로 느낀다” [이 말은 방어적 자세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기회가 있으면 언제나 공격적일 수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이 자세는 생의 본능일 것이다.]
공격성은 매우 큰 창조성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이야기로 전해지기를, 미켈란젤로(Buonarroti Michelangelo, 1475-1564)는 [작품 작업에서] 열정적 공격의 상태에서 [작품들을] 창조할 수 있었다고 한다. 공격성은 모든 행동의 첫 번째 계기일 수 있을 것이다. 마치 행복이나 은총이라는 정서가 성취된 행위 또는 완성된 작품의 마지막 계기 일 수 있듯이.
(42NLG)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Ainsi parlait Zaratustra,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3. (P.304)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1900)의 작품이며, 원제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Also sprach Zaratustra)이다. 이 철학적 시는 산문으로 쓰여졌고 네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1883년에서 1885년에 쓰여졌다. 이 책에서 초인(Surhomme)의 이론을 전개하였다. (43RKI) [이 항목은 구판에는 없다. ]
알랑 Alain 1868-1951, 본명 Emile Chartier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3. (P.304)
프랑스 철학자. 그는 1868년 바스노르망디(Basse-Normandie)지역 오른(Orne 61)주 뻬르셰(Mortagne-au-Perche)에서 태어나 1951년(83살)에 일드프랑스(Ile-de-France) 지역 이블린(Yvelines 78)주의 르 베지네(Le Vésinet)에서 죽었다.
그는 앙리 4세 고등학교에서 유명한 교수였다. 거기서는 그는 미래의 고등사범학교를 들어가 학생들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그는 여러 화제들(les Propos) - [행복론(Propos sur le bonheur, 1925), 교육론(Propos sur l'éducation, 1932), 문학론(Propos de littérature, 1934), 정치론(Propos de politique, 1934), 경제론(Propos d'économique, 1935) 등 다수] - 해변에서 대화(Entretiens au bord de la mer, 1931), 신들(Les Dieux, 1933), 예술들의 체계(Système des Beaux-Arts, 1920) 등의 작가이다.
이 짧은 “화제” 방식으로 그의 사상을 표현하는 방식은, 그를 “작은 사유자”로 취급 하는 몇몇 비평가를 우회하여, 그의 철학적 작업을 신중하게 연구하게 했다. 사실, 그의 “화제들”에 대한 겸손은 몽테뉴(Michel Eyquem de Montaigne, 1533-1592)의 수상록(Essais)에 대응하는 약간의 화답이다. 그는 여전히 구체적 사유 속에서 지각적 인식에 대해 전적으로 칸트적 이론을 발전시켰다. 그의 창조적 상상의 학설은 사르트르(Jean-Paul Sartre 1905-1980)의 상상물(l'Imaginaire)에 영감을 주었다. 그의 데카르트주의적 인본주의, 그리고 매혹적인 정식이 풍부하고 간략하며 상상적인 그의 스타일은 그를 일반 성인들에게 가장 많이 읽힌 철학자들 중의 한사람이 되게 했다. (43RLC)
소외 aliénation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4.(P.304)
권리 또는 자격의 결핍(privation).
정신적 소외(l'aliénation mentale)는 현시대에서는 심리학적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적 의미를 갖는다. 정신적 소외는 사회적 의미의 결핍, 정상적 사회 생활의 불가능성을 지칭한다. 비정상적인 생활이란 천재의 생활일 수 있고, 또는 단지 우리 사회 속에서 일어나는 이방인의 생활일 수도 있다.
라틴어 알리에누스(alienus)란 단지 “다른”(autre), “이방”(étranger)을 의미한다.
임상병리의 의미에서 “정신나간”(aliéné)이란 용어는 “광기”(fou)를 지칭하기 위해 쓰였으며, 정상에 “낯선”(étranger)이란 성격, 우리에게 특별한 사회적 습관들에 낯선이란 성격을 환기하게 한다.
노동소외(l'aliénation ouvrière)란 맑스주의가 강조하는 것으로, 단순히 자기 노동의 생산물을 소유하지 못하는 사실을 지칭한다. 노동자는 소외되어 있다. 왜냐하면 노동자가 단지 사물로서 취급되고, 또 노동의 도구로서 취급되기 때문이다. 또한 노동자가 노동의 생산물과 혜택으로부터 벗어나 있기에 노동으로부터 인격적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43RLE)
독일철학 allemande (la philosophie) <철사0705독일철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4.(P.304)
독일 철학을 특별하게 칭하여 18세기말 19세기 초의 철학을 말한다. 이 시기의 철학은 칸트에서 헤겔에 이르는 철학이며 독일 관념론,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라인홀트(Karl Leonhard Reinhold, 1758-1823), 피히테(Johann Gottlieb Fichte, 1762-1814), 야코비(Friedrich Heinrich Jacobi, 1743-1819), 셀링(Friedrich Wilhelm Joseph von Schelling, 1775-1854),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1831)을 이루는 위대한 시기이다. 이 시기는 라이프니츠(Gottfrid Leibniz, 1646-1716)와 이 철학을 재생산하고 대중화한 볼프(Christian Wolff 1679-1754)의 시기가 앞서 있었다.
그리고 이 시기를 이어서 등장하는 19세기에 한편으로 신칸트주의가 전개된다. 신칸트주의는 칸트의 인식이론을 깊이 파고들거나, 인식이론을 근대과학의 형식에 적용하는 학파이다. 이 학파는 마르부르크 학파이며, 코헨(Hermann Cohen 1842-1918), 나토릅(Paul Natorp 1854-1924), 카시러(Ernst Cassirer 1874-1945) 등이 있다. 다른 한편으로 바덴 학파의 가치철학이 전개되었다. 로체(Rudolf Hermann Lotze 1817-1881)와 리케르트(Heinrich Rickert 1863-1936) 등이 있다. 또 다른 한편으로 후설(Edmund Husserl, 1859-1938)의 현상학의 탄생이 있다.
20세기의 초반에는 라스크(Emil Lask 1875-1915)의 심오한 작품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그는 칸트의 비판과 현상학의 직관을 종합하려고 하였다. 또 하르트만(Nicolai Hartmann 1882-1950)의 자연 철학이 있고, 겔렌(Arnold Gehlen, 1904-1976)과 더불어 독일 관념론이 새롭게 등장하고,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의 존재의 철학, 야스퍼스(Karl Jaspers, 1883-1969)의 실존의 철학이 있다.
일반적인 방식으로 보아, 독일 철학은 긴 역사에서, 이중의 깊이를 파고들 욕망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하나는 관념들을 명증(clarté)하게 하는 대가로 전개되었는데, 그 기원에는 13-14세기의 에크하르트(Meister Eckhart, 1260?-1327)와 16세기의 뵈메(Jacob Bohme 1575-1624)의 신비주의 속에서 발견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독일정신에 알맞은 분석적 명증을 전개하였다.
이 역사에서 사람들은 두 가지를 구별할 수 있다. 하나는 후자에 경향에 영향을 입은 합리주의자(rationalistes) 전통이며, 라이프니츠, 칸트, 피히테, 후설, 라스크(Lask) 등이 있다. 다른 하나는 첫 번째 경향에 영향을 입은 낭만주의자(romantiques) 전통이며, 셀링, 헤겔, 하이데거 등이 있다. (40PMJ)
***
위의 것을 대충 정리하다 보면, 저자(줄리아)는 정통 독일 철학자들만 열거한 것이다. 우리는 [ ] 속에 독일 사상에 영향을 미친 철학자들을 첨가해야 할 것으로 본다.
에크하르트(Eckhart 1260?-1327), 뵈메(Boehme 1575-1624)
[루터(1483-1546), 뮌쩌(Thomas Münzer, 1489-1525)]
라이프니츠, 볼프, 칸트, [멘델스존], 야코비, 라인홀트(Reinhold), 피히테, 셀링, 헤겔
코헨(Cohen), 나트롭(Natrop), 카시러(Cassirer) / 로체(Lotze), 리케르트(H. Rickert)
후설, 라스크(Lask), 하르트만(N Hartmann), 야스퍼스, 하이데거, 겔렌(A. Gehlen),
[맑스(Marx), 엥겔스, 카우츠키, 룩셈부르크(Luxemburg), 리프크네히트 ]
[가다머]
[쇼펜하우어, {키에르케골} 니체]
[프레게, 비트겐슈타인, ]
[호르크하이머, 아도르노, 아렌트, 하버마스]
[아렌트, 마르쿠제 ]
택일 명제 alternative 교착, 진퇴양난, 딜레마 (양자택일)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4.(P.304)
한 명제의 진리가 다른 명제의 거짓을 이끌어내는, 또는 거꾸로도 마찬가지인 두 명제의 체계. [명제의 한쪽을 잡으면 다른 쪽이 틀리고, 다른 쪽을 잡으면 먼저 쪽이 틀리고, 둘 다 잡을 수 없음을 일반적으로 딜레마라고 한다.]
칸트의 유명한 “안티노미”(antinomies)는 택일명제들의 예들이다. “물질은 분리할 수 없는 요소들로 되어 있거나 또는 물질은 무한히 분할될 수 있다.” “세계는 창조되었거나 또는 세계는 영원히 존재한다.” 이 택일의 두 명제 사이에는 중간항이 없다. 따라서 하나의 명제를 거짓이라고 증명할 수 있다면, 다른 명제의 진리는 확립된다. 확장적 의미에서 이 용어는 둘 사이에서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을 지칭한다. 이리하여 “둘 중의 택일의 선택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전적으로 정확하지 않다. (43RLE)
알뛰세르 Louis Althusser 1918-1990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4.(P.304)
프랑스 철학자이다. 그는 1918년 알제리(Algérie)의 수도 알제(Alger)시 교외 4km 떨어져 있는 비르망드레(Birmandreis, 현 Bir Mourad Raïs)에서 태어나서 [알제 도시는 1962년까지 프랑스령이었다] 1990년(72살)에 일드프랑스(Ile-de-France)지역의 이블린(Yvelines 78)주 라베리에르(La Verrière)병원에서 죽었다.
그는 1948년(30살)에 철학교수 자격을 획득했다. 그 해 파리고등사범학교 교수자격시험-복습반 교수였으며, 또한 공산당원이 되었다. 그는 맑스 이론에 대한 반성에 전념하였다. 그는 헤겔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던 맑스의 젊은 시절 작품들과 자본론과 더불어 시작하는 소위 말하는 맑시즘 사이를 분명하게 구별했다. 그는 청년 맑스가 전개했던 소외 개념을 과학적이 아니라고 거부하고, 프로이트에서 중첩결정(surdétermination 다원적 결정)을 빌려온다. 그의 본질적 기여는, “국가의 이데올로기적 장치”라는 이름 아래 사법, 교육, 가족 등과 같은 제도들을 집합시키면서, 국가의 고전적 묘사를 새롭게 한 것이다.
주요저서로는 맑스를 위하여(Pour Marx, 1965), 자본론 읽기(Lire “le Capital”, 1965), 철학과 과학자들의 자발적 철학(Philosophie et philosophie spontanée des savants (1967), 레닌과 철학(Lénine et la philosophie, 1969) 등이 있다. (43RLE)
애타심 altruisme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5.(P.304)
1830년 경에 꽁트(Auguste Comte, 1798-1857)에 의해 창안된 개념이다. 이용어는 타인의 선에 대한 무상 배려(le souci désintéressé)를 지칭하기 위해 쓰였다.
이 개념의 기본요소는 충실(l'attachement), 경애(la vénération), 선행(la bonté)이다. 심리학적 문제는 이타심이 자연적 경향 즉 본성인지, 또는 이타심이 헌신(l'abnégation)과 같은 반성으로부터 나온 필연적인 결과인지 아는 것이다. 사실상 애타심은, 그 반대적인 이기심(egoïsme)과 마찬가지로 인격성의 구성, 개인적 의식의 형성작업이라는 것을 가정한다. 따라서 기원적 본능은 없다. 우리는 이기심만큼이나 애타심에도 책임이 있다.
애타심은 행복론(l'hédonisme)에 또 어느 정도는 공리론(l'utilitarisme)에 대립되는 도덕적 행실의 원리이다. (43RLE)
애매성 ambiquïté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5.(P.304)
단어, 표현, 사유에서 이중 의미를 가리킨다.
메를로퐁티 (Maurice Merleau-Ponty, 1908-1961)의 체계는 “애매성의 철학”이다. 그 철학에서 진지한 인간은 사유하는 인간이 동시에 행위하는 인간이며, 세상에 한발 물러서 있는 자임과 동시에 세상에 참여하는 자이다. (43RLE)
양면성 ambivalence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5.(P.304)
주체(환자)에게서, 주어진 상황 속에서 동시에 두 가지 상반된 감정들이 다시 느껴지는(ressentir 반향하는) 가능성을 말한다.
문학 속에서 인간 영혼 속의 심층의 양면적인 특성을 폭로한 사람은 도스토옙스키(Fyodor Mikhailovich Dostoevskii, 1821-1881)였다. 이 특성이란 개인이 방탕에 젖어듬과 똑같은 계기에서 순수성을 열망하는 것이며, 영혼이 사랑하는 계기에도 증오하는 것을 말한다. (43RLF)
영혼(âme) 개념0612영혼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5.(P.304)
생명 원리이며, 사유(pensée)와 감정(sentiment)의 자리이다. [생물학의 발전 이래로 우리는 영혼을 신체의 다양한 기능(faculté)과 역량(puissance)의 일부로서 간주하며, 개체의 인격을 지속하게 하는 힘으로 본다. 류적 영혼으로 다른 동물과 차이를 설명하고, 개인적 영혼은 타인과의 차이를 설명할 수 있다. 개인적 영혼들 각각이 모여서 유적 영혼이 되는 것이 아니라, 종 전체 공유하는 어떤 영혼을 유적 영혼이라 불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신체의 구조와 기능의 변형만큼이나 영혼의 변이가 일어나고 있고, 그래서 진화한다고 본다.]
두 가지 의미[사유와 감정]는 고대의 히브리 사상에서부터 유기체적 영혼(âme organique)과 사유하는 영혼(âme pensante)으로 구별되고, 또한 로마의 사상에서도 아니무스(animus)와 아니마(anima)로 구별된다. 두 번째 의미에서 첫 번째 의미로 환원은 생기론(Vitalisme) 이라 한다. [플로티누스, 스피노자, 베르그송은 여기에 속한다.] 첫 번째 의미에서 두 번째 의미로 환원은 유심론(Spiritualisme)이라 한다. 여기에 속하는 철학자는 플라톤(Platon), 라이프니쯔(Leibniz), 헤겔(Hegel)이다.
영혼과 신체의 통합(union)에 관한 문제는 데카르트가 다루었다. [베르그송도 물질과 기억 제4장은 이 주제를 다룬다.] 영혼 불멸의 문제는 플라톤이 파이돈(Phédon)에서 특별한 방식으로 전개된다. (39WLA)
기억상실(amnésie)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5.(P.304)
기억의 축소 또는 상실을 말한다.
기억 상실은 보존이 불가능한 경우 즉 고정의 기억상실(amnésie de fixation)이든지, 원하는 시기에 불러낼 수 없은 경우 즉 환기의 기억상실(amnésie de d'évocation)이든지 들 지칭할 수 있다. 기억상실은 뇌의 충격, 심리적 혼란, 간질, 히스테리 등으로부터 올 수 있다. 이 경우에 다른 심리적 충격이 처음의 충격들을 사라지게 하기 위해서 요청될 수 있다. [두번째 충격은 첫째 충격이전의 사실을 표출한다 하더라도 이전 상황으로 되돌릴 수 있는 가능성은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것은 감동적 대항 충격(un contre-choc émotionnel)이라 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관념연합의 심리학적 분석에 의해, (또는 정신분석학의 전이에 의한 연상의 분석에 의해) 진행하는 것이 더 낫다. 왜냐하면 망각은 일반적으로 사건의 억제에 연결되어 있다. 억제는 개인이 적응하지 못한 경우에서 생긴 것이다. 기억상실은 전적으로 정신적 파괴에 연결되어 있다. 그 예로, 치매(la démence), 일반적 마비(paralisie générale), 정신분열증(schizophrénie) 등이 있다. (43RLF)
몰도덕주의 amoralisme [몰아경에 맞추어 몰도덕으로 번역하면 어떨까?]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5.(P.304)
모든 보편적 도덕의 부정.
몰도덕(l'amoral)은 비도덕(immoral)이 아니다. 이 사람은 선과 악에 어떤 의식도 없으며, 도덕적 판단의 존재자체조차 의식하지 못한다.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1900)는 사회적 의미에서 몰도덕주의가 위대한 창조자들의 일상적 상태라고 증명했다. 베르그송(Henri Bergson, 1859-1941)은 도덕과 종교의 두 원천(1932) 속에서, 그 도시의 것들과 다른 가치들과 다른 신들을 공경했기 때문에 그들의 시대에는 위대한 범법자로서 생각되었던 사람들, 즉 소크라테스와 예수를 강조했다. 이 자들은 그 때문에 인류애의 가장 위대한 도덕주의자들이 되었다. 결론적으로 사회적 몰도적주의(amoralisme social)와 절대적 몰도덕주의(amoralisme absolu)를 구별할 필요가 있다. 전자는 협약들의 의미의 부재이며 후자는 인간적 가치들의 의미에 대한 총체적 부재이다. (43RLF) [인간의 협약들 모든 도덕들을 몰아서 묻어 보라, 그러면 새로운 사회에서 무엇이 솟아날 것인가? 평등 속에서 자유! ]
무정형 amorphe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5.(P.304)
[문어, 해파리, 해삼 같은 비유에서는 흐물거림을 의미한다. 인격에서 , 자기주장이 없이 마냥 끌려가는 무기력하고 무감각적인 인물 즉 멍청이를 지칭한다.]
성격의 근본적인 구성물들에서 감동성의 부재, 활동성 부재, 인격성에서 사건으로부터 오는 깊은 반향의 부재를 지닌 성격의 전형: 예로서 루이 15세(Louis XV, Le Bien-Aimé, 1710-1774, 재위 1715-1774, 루이 14세의 증손자)이다. [그는 다섯 살에 왕위에 올라 1723년(13살)까지는 오를레앙공 필립의 섭정으로, 1726년(16세)부터 친정체제까지는 부르봉공의 섭정 아래서 궁정의 사랑만을 받아서 “응석받이”(le Bien-Aimé)란 별명을 얻고 자랐다.]
르 센(René Le Senne, 1882-1954)이 말했듯이, [루이 15세의 경우에] 만일 군주제가 유습되지 않았다면, 역사적 표본으로 그런 성격도 “무감동”(apathique)한 성격도 없었을 것이다. 결국 “무정형적 인물들”은 간략히 말하자면 자신들 스스로 자발적으로 결코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43RLG)
사랑 amour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5-16.(P.304)
우리를 존재로, 대상으로 또는 보편적 가치로 향하여 나르는 심정(coeur)의 운동.
플라톤(Platon, 427-347 av. J.-C.)은 대화편 향연(le Banquet, Symposium)에서, 사랑의 여러 정도들을 구별하였다. 그에 따라면 사랑은 구체적 개인에 연관하기도 하고, 또 일반적 이념(idee)에 연관하기도 하며, 예를 들어 민족적 가치의 사랑, 직업적 가치의 사랑, 과학의 사랑 등이다. 또한 진리에 비추어서 연관하기도 하는데, 예를 들어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비밀 전수를 요구하는 사랑도 있다.
개인에 연관하는 사랑에 관한 한에서, 스콜라철학자들은 자선의 사랑(l'amour de bienveillance)과 탐욕의 사랑(l'amour de concupiscence)을 구별하였다. 전자는 타인의 선을 바라는 것이며, 후자는 단지 타인을 전유하려는 것이다. 전자만이 도덕적 가치이다.
심리학적 관점에서 사랑은 “결정화”(cristalisation)의 현상에 의해 형식이 이루어진다고 스탕달(Stendhal, Marie Henri Beyle, 1783-1842)은 사랑에 대하여(De l'amour)에서 쓰고 있다. [반짝이고 단단하고 고귀한] 결정화는 우리에게 정해진 인격과 교류가 제공하는 환희의 점진적 고정화에서 분석될 수 있다. 스탕달은 이 진실한 사랑을 “한(첫)눈에 반하기”(le coup de foudre)에 대립되며, “첫눈에 반하기” 아주 자주 사랑이 도래한 것만큼이나 빨리 사라지는 운명에 처한다.
도덕적 관점에서 사랑은 일반적으로 이기심과 대립되는 것으로 정의된다.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Lev Nikolaevich Tolstoi 1828-1910)가 썼듯이, “진실한 사랑은 개인적 착함을 부정하는 것을 기초로 하고 있다.” 크리스트교 도덕론자들은 사랑(amour)에서 자비(charité 자애)라는 최고의 덕목의 원천을 보았다.
철학적 문제는 사랑이 인식의 수단일 수 있는지를 아는 것이었다. 플라톤의 경우, 그리고 스피노자의 경우, 1806년 피히테의 경우 등이다. [플라톤의 경우는 향연과 국가편을 참조해야 할 것이고], 스피노자(Baruch Spinoza, 1632-1677)는 “신에 대한 예지적 사랑은 인식의 세 번째 단계에서 생겨난다”고 한다. [피히테(Johann Gottlieb Fichte, 1762-1814)의 작품 복된 삶을 위한 지침 또는 종교이론(Die Anweisung zum seligen Leben, oder auch die Religionslehre, Initiation à la vie bienheureuse 1806)을 참조해야 할 것이다.] 또는 사랑이 정신의 맹목적인 것인지를 아는 것이다. 여기에 대하여 데카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는 “사랑이란 우리가 그 어떤 방식으로도 통각하지 못하지만 우리 안에서 자극될 수 있는 정념이라”고 하였고, 니이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1900) [도 이와 비슷한 생각을 했으며],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 1788-1860)는 “사랑이란 종을 영속하기 위하여 개인에게 이루어진 함정일 뿐이라”고 하였다.
(43RLG)
분석 (l')analyse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6.(P.304)
자료를 자료의 원리들 또는 자료의 요소들로 분해하는 것을 뜻한다.
분석은 종합과 더불어 사유의 가장 일반적인 절차들 중의 하나이다. 물리학과 화학과 같은 세계에 대한 과학에서, 분석은 복잡하게 보이는 것으로부터 단순한 보이지 않는 것으로 이행하는 데 있다. 분석을 요구는 데모크리토스(Démocrite, Dêmokritos, 기원전 v. 460-v. 370)와 에피큐로스(Epicure, Epicuros. 기원전 341-270; 71살)에서부터 현대물리학에 이르기까지 사물의 제일 요소들을 탐구하는데 활발하게 한다.
인간 영혼의 영역에서 심리적 분석 또는 정신분석학은 인간의 행실 뒤에 있는 특히 인생에서 좌초[좌절] 뒤에 있는 깊은[심층의] 동기를 탐구한다. 이 심층동기는 “뒤엉킴”(complexes)의 존재에, 다시 말하면 실재적인 것에 부적응에 기인한다. 심리적 분석은 특히 꿈의 분석에 의해 이 동기를 재발견한다. 꿈속에서는 무의식(l'inconscient)이 체계적인 방식으로 표출된다. (43RL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