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포도밭 이야기
곧 세상을 떠나게 될 아주 절친한 사람이 숨을 거두기 전 당신에게 마지막 유언을 남기고 싶어 하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본 경험이 있는가?
“이리 가까이 와." 몸을 숙이고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려 애를 쓴다.
"얘기해주고 싶은 게 있어. 지금까지 기다려왔지만 이제 더 이상은 안 되겠어."
그가 남기는 말은 아마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그 말하려는 사람이 예수님이었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당신은 얼마나 귀를 기울였을 것이라 생각하는가? 당신에게 남긴 주님의 마지막 말씀을 얼마나 오랫동안 그리고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 열심히 숙고할 것이
라 생각하는가?
이 책을 읽어 내려가며 요한복음 15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 즉 배신을 당하시던 날 밤 제자들에게 남기신 마지막 말씀의 요지에 귀를 기울여보라. 그 다음 날 땅거미가 질 즈음에는 채찍에 맞아 찢어진 몸으로 예수님은 서서히 숨을 거두며 십자가에 못 박힌 채 달려 있게 될 것이다.
예수님은 그날 밤 자신이 하시는 말씀이 수년 동안 친구들의 뇌리를 떠나지 않고 울려 퍼지게 되리라는 사실을 잘 알고 계셨다. 때가 되면 '임종시 나누었던 대화'의 참뜻이 그들에게 전적으로 새로운 사고방식을 갖게 해줄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예수님께서 남기신 이 마지막 말씀을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나는 이 말씀을 '비밀'이라 부른다. 예수님께서는 분명 그 뜻을 확실 하게 드러내시려 했을 것이라 나는 확신한다. 비유와 숨겨진 뜻으로 남아 있어야 할 시기는 이미 지났다. 주님께서 는 모든 세대의 모든 제자들이 어떻게 풍성한 삶을 살 아야 하는지를 정확히 알고, 어떻게 하나님께서 그 일이 일어나게 하시는지 이해할 수 있기를 바라셨다.
구세주께서 말씀하셔야 할 순간을 얼마나 세심하고 자상하게 선택하시는지를 보라.
목요일 밤 다락방에서
그리스도인이 된 후 세월이 좀 흘렀다면 다락방에 관 한 이야기, 곧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나누었던 절정을 이룬 저녁만찬에 대한 이야기를 아마도 여러 번 들어보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베개에 기댄 자세로 주님을 바라보며 식탁에 둘러앉은 사람들을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주고받는 대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또 갓 구운 빵과 양파를 넣어 함께 볶은 고기 냄새도 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날은 유대인들이 종살이하던 애굽에서 탈출한 날을 기념하는 유월절 전날 밤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와 있었고, 그 해는 특히 메시아에 관한 소식으로 온 도시가 어느 때보다 떠들썩했다. 메시아가 모든 압제자들로부터 이스라엘을 영원히 구원하기 위해 유월절과 같은 그런 날에 오실 거라고 예언한 선견자가 한둘이 아니었다.
그러나 식탁 주위에 기대앉아 있던 그들은 다른 사람 들이 알지 못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메시아가 이미 그 곳에 와 계셨다. 거기 그 방에 그들과 함께 계셨다.
제자들은 그분과 함께 3년을 보냈으며, ‘나사렛 예수는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따를 만한 가치가 있는 메시아다'라는 똑같은 결론을 한 사람씩 차례로 내리게 되었다. 실제로 제자들은 갈릴리를 떠난 이후부터 새로운 나라에서 누가 어떤 위치에 오르게 될 것인지를 상당 시간 서로 논쟁했을 만큼 유월절 기간 동안 일어나게 될 사건들을 확신하고 있었다.
저녁 식사가 시작되었다.
"베드로, 고기 좀 이리 보내."
"야고보, 좀 일찍 성전으로 가보자. 수만의 천사들이 로마 군인들에게 보여줄 교훈을 놓치고 싶지 않거든" "여보게, 마태! 나라의 경제 사정이 역사에 남을 만할 정도라며!"
다락방에 모인 제자들은 새로 맞이하게 될 좋은 세월을 위해 서로 축배를 들며, 그 준엄하면서도 평화로운 저녁 시간이 밤늦게까지 이어질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예기치 않았던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타결
사도 요한은 분위기를 바꾸어놓은 사건이 벌어진 그 순간을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저녁 먹는 중 예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이에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씻기기를 시작하여" (요 13:3-5).
놀란 그들은 메시아가 그들의 발가락 사이를 문지르는 동안 부끄러움을 느끼며 그저 서로를 바라볼 뿐이었다. 대야 속에서 나는 물소리가 들렸다. 긴장한 제자들은 감히 아무 말도 못하고 머뭇거렸다. 내일이면 왕이 되실 분께서 왜 하인처럼 이러시는 걸까?
사태는 점점 더 심각해졌다. 예수님께서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21절)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어안이 벙벙해진 제자들은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때 예수님께서 결정타를 날리셨다. 해가 뜨기 전에 베드로가 주님을 세 번 부인하게 되리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해야 할 임무가 이제 결정지어졌다는 엄청난 사실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물론 예수님께서는 몇 달 전부터 보좌에 오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십자가를 지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신다는 사실을 알려주셨다. 그러나 그 경고는 메시아가 영광과 권세를 가지고 다시 오실 거라는 예측과 뒤섞였 고, 제자들은 자기들이 듣고 싶은 말만 골라서 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날 밤 예수님께서 그들의 마지막 희망까지 산산조각 내버리셨다.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터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그 어떤 공적인 승리도 배제해버리는 말씀이었다.
예수님께서 계속 말씀하셨다. "이후에는 내가 너희와 말을 많이 하지 아니하리니 이 세상 임금이 오겠음이라." 이 마지막 일격은 제자들의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예수님은 통치자가 아니며, 왕이 되지도 않을 거라는 사실에 도장을 찍는 말씀이었다.
이제 제자들의 얼굴에 나타난 고통을 볼 수 있다. 예수님의 말씀을 계속 들어보라. 그냥 듣기에는 평화스럽고 희망차기까지 하다. 그러나 위기감이 극에 달한 그 다락방에서는 각 구절구절이 제자들에게 절망적인 기분만 더해줄 뿐이었다. 그분의 말씀을 들으며 그들의 얼굴을 바라보라.
소자들아… 그들은 작고 힘없는 자신들을 느낀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그들은 두려움을 느끼며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의심스런 눈초리로 그분을 응시한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그들은 염려와 불안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그들은 적대적인 세상에서 의지할 데 없이 버려진 고아처럼 그분 앞에서 푹 쓰러진다.
다락방에서의 밤은 끝이 났다. 질문도 끝이 났다. 그리고 침묵 속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일어나라 여기를 떠나자" (요 14:31).
포도밭에 밝혀진 불빛
풀이 죽은 열한 명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라 계단을 내려가 차가운 밤공기 속으로 걸어 나갔다. 몇 사람은 길을 밝히기 위해 등불과 타고 있는 횃불을 들었다. 아마도 예수님께서 어디로 그들이 종종 함께 시간을 보내곤 했던 감람산의 동산으로 가고 있는지를 말씀해주셨거나, 아니면 그들도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거나 발자국 소리가 좁은 길을 타고 울려 퍼지는 동안 한 마디의 말소리도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뒤를 좇아 예루살렘의 꼬불꼬불 한 길을 따라 언덕을 내려갔다. 예수님은 성전과 떠들썩하게 절기를 지키는 군중들을 피해 오른쪽으로 돌아 도시 밖으로 그들을 이끌고 가셨다. 그리고 기드론 계곡 쪽을 향해 그들은 정직각으로 좌회전을 했다.
계곡의 곡선을 따라 난 언덕길을 가며 오래된 포도밭을 지나갔다. 수세대에 걸쳐 과실을 맺어온 잘 손질된 포도나무 사이를 일렬로 걸었다. 그들 왼쪽으로는 높이 솟은 도시의 성벽이 우뚝 서 있고, 앞쪽과 오른쪽으로는 겟세마네 동산과 배신자가 기다리고 있는 감람산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예수님께서 걸음을 멈추셨다. 줄지어 늘어선 포도나무들에 둘러싸여 있던 제자들이 모여들었다. 등불과 횃불이 밤공기 속에서 탁탁 튀는 소리를 내며 그들 눈앞에서 깜박거렸다.
예수님께서 손을 뻗어 포도나무 가지를 잡으셨다. 새로 싹을 낸 가지가 황금 불빛을 받으며 예수님의 손에 들려졌다. 그리고 말씀을 시작하셨다.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15:1).
그리고 이어 몇 분간 포도나무와 가지에 대해 그리고 포도밭지기가 포도밭을 어떻게 돌보는지에 대해 간략하게 말씀하셨다. 물론 제자들이 기대했던 그런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때가 바로 예수님께서 그들의 놀라운 운명을 드러내시기로 선택한 순간이었다.
하늘의 휘장
내가 만난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은 포도밭의 어두운 그늘 속에 서있었다. 제자들처럼 그들에게도 예수님을 따르는 일이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드러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혼란스러워했고 환멸을 느꼈으며, 마치 하나님께 배신이라도 당한 듯 여겼다. 당신도 그런가? 그렇다면 잘 들어보라. 그런 영적 위기를 경험하는 가장 주된 이유는 포도밭에서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거나, 아니면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수십 년 동안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온 나 역시 그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 때문에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졌고, 하나님과 맞서 씨름을 했다. 그리고 종종 실망과 의심, 심지어는 분노로 특징지어지는 영적 생활을 감수해야 했다. 그때를 돌이켜보면 하나님께서 내가 바라는 조건으로 나를 도와주실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음을 보게 된다. 그래서 가까이 다가가 듣는 일에 실패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다시 등불을 가진 사람들 안으로 이끌려 들어갔고, 거기서 들은 것이 결국 내 삶에 자유와 기쁨을 가져다주었다. 지금은 하나님께서 내게 원하시는 것이 하나님을 위해 열매를 수확하는 것임을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내 삶을 통해 그 일을 어떻게 이루어 오셨는지도 볼 수 있다. 예수님께서 그 결정적인 마지막 순간에 하신 말씀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싶은가? 모든 말씀이 다 중요하다. 제자들을 위해 하늘의 휘장을 걷으신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위해서도 그렇게 하기를 원하신다.
예수님께서 그날 밤 우리 생각도 하셨다고 나는 확신한다. 예수님께서는 의심 많은 도마와 앞뒤를 가리지 않는 베드로, 솔직한 나다나엘과 책략적인 야고보 속에 있는 우리를 보시고 사랑하셨다. 목적을 가지고 가장 절친했던 친구들을 포도밭으로 인도하신 것처럼 그분께서 당신을 이 작은 책자로 사랑스럽게 인도해오셨다고 나는 생각한다.
앞으로 보여주게 될 포도나무의 비밀은 자녀들을 육체적, 정서적, 영적으로 번성케 하시려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놀라운 계획이다. 그것은 사실 가족을 위한 비밀이라 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만찬을 마치고 성벽 외곽의 어둠속으로 곧장 나아가는 길로 줄곧 주님을 따라온 당신과 같은 제자에게만 실제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