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과 서울에서 사례관리 강좌를 마쳤습니다.
공부가 재미있었습니다. 배움이 풍성했습니다.
선생님들께서 잘 듣고, 묻고, 나눠주신 덕입니다.
고맙습니다.
이런 질문을 이메일로 받았습니다.
물어주시니 고맙습니다.
선생님 질문으로 다시 생각했습니다.
"장애인과 사회적 약자에 대해서 한 번만 생각해봐 주세요.
장애인이 사회적 약자인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장애인을 지칭하는 말로 ‘약자’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은 조심스럽게 느껴집니다.
‘약자’라는 단어 자체가 장애인에 대해 동정을 유발하는 단어로,
장애인을 약한 존재, 또는 도움을 주어야만 하는 존재라는
동정의 시각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장애인’ 이라는 단어는 장애인을 ‘장애가 있는 사람’이란 뜻으로 객관적으로 표현하는 단어입니다.
노인, 아동, 청소년처럼 대상을 분류하는 객관적인 단어로 ‘장애인’이란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장애로 인해 일상생활에서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당사자와 환경의 개선으로 어려움을 극복하고 불편함 없이 생활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여 장애인 전체를 사회적 약자로 표현하는 것은 조심스럽습니다."
'약자'에 관해서는 <복지요결>에 관련 글이 있고,
'장애인'에 관해서는 <사회사업 글쓰기>에 이미 정리했습니다.
약자
사람 자체를 약자로 보지 않습니다.
1) 이른바 스테레오타이핑, 후광 효과, 상동적 태도를 경계합니다.
어떤 사람이 속한 집단의 특성으로써 그 사람도 그럴 것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어떤 상황에서 본 당사자의 어떤 모습으로써 다른 상황에서도 그럴 것이라고 일반화하지 않습니다.
같은 집단이라도 사람 나름이고 같은 사람이라도 상황 나름이라고, 그렇게 보고 그렇게 돕습니다.
2) 사회사업 대상자라고 함은 사회사업 도움을 받는 상황 ‘그때 그 일에서’ 그렇다는 말입니다.
그 사람 자체를 사회사업 대상자로 보지 않습니다. 장기간 여러 가지 도움을 받을지라도 그러합니다.
다른 상황 ‘다른 때 다른 일에서’도 대상자인 것처럼 그렇게 보거나 그렇게 대하지 않습니다.
온갖 상황에 개입 보호 지도 관리하려 들지 않습니다. 당사자가 요청하거나 동의하지 않으면 더욱 삼갑니다.
<복지요결 해설> (2023.2.13.)
장애인
우리 현장에서 오래전부터 사용한 이 단어도 돌아봅니다.
사회사업에서 ‘장애’는 어느 한쪽의 문제가 아닙니다.
당사자의 능력이 뛰어나도 그 이상을 요구하는 환경과 만났을 때 경험하는 약함이 ‘장애’입니다.
시각적으로 약한 이가 그런 그를 배려하지 않는 상황 속에 놓였을 때 경험하는 게 시각 장애입니다.
시각에 한정하여 그 상황에서 약자가 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시각 장애인’이 아니라 ‘시각 약자’라 함이 옳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는 시각에서만 어려움을 경험하지만 그를 부를 때 ‘시각 장애인’이라 부릅니다.
아니, 그냥 ‘장애인’이라 부르는 일이 더 많습니다.
그는 시각을 요구하는 환경 속에서만 장애를 경험하지만,
그의 다양한 모습 가운데 하나인 ‘부족함’으로 그를 규정하는 용어인 겁니다.
구슬 씨는 앞을 보지 못하는 불리한 신체적 조건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 살아가며 이런저런 장애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항상 모든 일에서 장애를 가지고 있는 ‘장애인’이라 불리는 건 억울합니다.
그때 그 일에서 상황적 약자일 뿐입니다.
늘 장애인이라 불리면 그의 다른 것들 또한 문제가 있어 보이는 선입견이 생겨납니다.
시각적 약자인 구슬 씨를 시각 장애인이라 부르기 시작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호칭이 그냥 ‘장애인’으로 굳어집니다.
그 사람의 약점으로 만든 명칭 속에서 어떻게 그의 강점 따위를 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약점이란 ‘상자’에 가두어 부르는 말이 무섭습니다.
어떤 사람의 호칭이 그의 부족함에서 만들어낸 것이라면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모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그 마음에 편견이 자라납니다.
구슬 씨를 그저 ‘구슬 씨’라 부르면 좋겠습니다.
구슬 씨는 그 사회에서, 그 상황에서 어떤 장애를 경험할 뿐이지 항상 무언가 부족한 ‘장애인’이 아닙니다.
당장은 이 용어를 아예 다르게 쓰거나 전혀 사용하지 않기 어려워 보입니다.
적절한 때와 알맞은 말을 궁리하지만, 가능한 상황에서는 바르게 쓰고 싶습니다.
사람을 끝까지 사람으로 돕고 싶다면, 그 사람을 바르게 불러야 합니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호칭이 그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결정합니다. 말이 그에 대한 의식을 만듭니다.
용어가 사람 사이 장벽과 고정관념을 만들어 낸다면 이를 다듬어 사용합니다.
사회사업가는 약자 곁에서 일하는 사람이기에 더욱 바른 말을 씁니다.
약자를 혐오하거나 차별하는 말을 가려 씁니다. 말이 의식을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생각대로 실천합니다. 말하는 대로 이루어집니다.
말과 글은 당사자를 향한 주문呪文이 됩니다.
사회사업가의 말과 글에 사람을 살리는 온기를 담았으면 좋겠습니다.
어느 장애인 전용 화장실 안내문. ‘장애인은 보호자와 함께 이용하세요.’
장애인 곁에 있는 사람은 보호자?
장애가 있으면 나이나 장애 유형에 상관없이 보호자가 필요하다는 건,
장애인을 미숙하고 덜 성장한 사람으로 보는 시선이 바탕에 있어 보입니다.
<사회사업 글쓰기> (김세진, 구슬꿰는실, 2022) '말에 담긴 철학 2 : 당사자를 부르는 말'
철수 씨.
철수 씨는 노래를 참 잘합니다.
노래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강자입니다.
철수 씨를 '장애인'이라 부르면
그 호칭 때문에 사람들은 철수 씨가 모든 일에서 어려움이 있는 듯 여깁니다.
노래 불러야 하는 일에서도 부족하다 느끼고 도와주려 합니다.
철수 씨는 철수 씨일 뿐입니다.
단지, 시각 능력이 필요한 상황에서만 장애를 경험하기에
시각에서 약자입니다.
구슬 씨.
구슬 씨는 신체 능력이 뛰어납니다.
몸 써야하는 상황에서는 강자입니다.
구슬 씨를 '장애인'이라 부르면
그 호칭 때문에 사람들은 구슬 씨가 모든 일에서 어려움이 있는 듯 여깁니다.
몸 써야하는 일에서도 부족하다 느끼고 도와주려 합니다.
구슬 씨는 구슬 씨일 뿐입니다.
단지, 지적 능력이 필요한 상황에서만 장애를 경험하기에
지적에서 약자입니다.
철수 씨와 구슬 씨는 그때 그일에서만 약자입니다.
그냥 '철수 씨'고 '구슬 씨'입니다.
구슬 씨를 초기면담한 뒤 기술할 때는
'지적장애인 김구슬 씨는....' 하고 쓰기를 꺼립니다.
'김구슬 씨는 .... 입니다. 지적 장애가 있습니다.' 정도로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