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십자가를 지고... >
오늘의 첫째 독서는
‘주님의 종의 노래’라고 불리는, 이사야 예언서의 한 대목입니다.
사람들은 주님의 종을 모욕하지만,
그는 그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그를 도와주시고, 그를 의롭다고 하시며,
그의 가까이에 계신다는 것을 그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주님의 종은 물러서지 않고, 하느님 말씀에 따라 자신의 길을 걸어갑니다.
마르코는 이사야가 말한 ‘주님의 종’이 바로 예수님이라고,
주님의 종이 겪는 고난은 바로 십자가라고 해석합니다.
그런 마르코의 신학을 오늘의 복음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마르코복음 8,27-35은 두 대목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대목은 8,27-30입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질문하십니다.
“(사람들이/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이는 신약을 관통하는 중요한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당신은 그리스도입니다.”(직역)
마르코 복음서는 1,1에서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고
하느님의 아들이시라고 선언합니다.
그리고 8,29에서 베드로가 예수님을 ‘그리스도’시라고,
15,39에서 백인대장이 ‘하느님의 아들’이시라고 고백합니다.
베드로의 고백이 복음서의 한가운데인 8,29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닐 것입니다.
둘째 대목은 8,31-35입니다.
베드로의 고백을 들은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이 어떤 길을 걷게 될 것인지 가르치십니다.
다니엘서 7,14에 따르면 ‘사람의 아들’은
세상의 최종적이고 영원한 통치자입니다.
따라서 이사야가 예언한
메시아(=그리스도)와 같은 의미를 가진 호칭입니다.
신약시대의 유다인이라면 그 호칭들 아래서
위엄있게 권력을 휘두르는 임금의 모습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알아듣기 힘든!) 부활에 대해 가르치십니다.
이때 다시 한번 베드로가 등장하여 예수님께 반박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다음과 같은 꾸짖음을 듣습니다.
“가라! 내 뒤로! 사탄!”(직역)
여기서 사탄은 유혹자를 뜻합니다.
광야에서 만났던 사탄처럼 예수님을 유혹하지 말고,
예수님의 뒤로 가라는 뜻입니다.
“내 뒤로!”라는 표현은 마르코복음 1,17에도 나옵니다.
거기서 예수님께서는 시몬과 안드레아를 부르면서 말씀하십니다.
“자! 내 뒤로!”(직역) 그리고 8,34에도 나옵니다.
“만약 누군가 내 뒤로 따라오려 한다면⋯.”(직역)
첫째 대목이 ‘예수님은 누구이신가?’를 묻는다면,
둘째 대목은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를 질문합니다.
그 질문에 대해 오늘의 복음은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라고 대답합니다.
어쩌면 너무나 단순한 대답인데 새삼 당혹스럽습니다.
문득 어깨를 짚어보는데,
분명히 거기 있었던 십자가를 어디서 잃어버린 것일까요?
최승정 베네딕토 신부 | 사제평생교육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