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하장(年賀狀) 유감
문화는 대부분 시류에 편승하여 소비된다. 문화를 창조하며 즐기고 대를 이어 잇는 것은 동물과 인간을 구분하는 요체다. 동물의 사고와 행동도 문화 개념에 근거하여 구분 가능한지 모르겠다.
어떤 생물이든 생존본능에 따른 것이 아니라 즐거움을 위한 사고와 행동이 있다면 문화라는 잣대로 들여다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럼에도 오직 인간만이 문화를 창조하고 유통하며 소비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삶이란 단순히 의식주에 의한 생명의 이어감이 아니라 행복 사슬 속 적절한 곳에 자신을 위치시키는 일이다.
디지털 세상으로 급변하면서 문화 소비 형태와 방식이 완전히 달라졌다. 우리는 출력물을 소비하던 세대다. 디지털 소비 형태는 낯설고 때로는 당혹스럽다.
지금 세대는 스마트폰 달력으로 일정을 계획하고 관리한다. 종이 달력은 점점 자취를 감춘다. 편지도 그림엽서도 보기 쉽지 않다.
관광지의 그럴듯한 문화재나 풍경 사진도 디지털화된 지 오래다. 보내는 이의 정성스럽고 곡진한 마음과 글씨가 담긴 연하장도 보기 쉽지 않다. 소비가 생산을 견인하는 것은 진리다.
유년기 문화 소비는 주어진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창조하고 생산하는 것들도 꽤 많았다. 많은 것들이 부족한 시기였지만 영혼이 맑았음은 분명하다. 그때는 배가 고팠다. 안락함과 따뜻함이라곤 없었다. 지친 마음에 감성의 빈곤은 더욱 문제였다.
그림을 그린다. 고픈 배와 아픈 마음을 안고 작은 종이에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린다. 아직 부엉이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달밤이다. 서까래 걸린 호롱불 탓에 감나무 가지 그림자가 방문에 희읍스름하다. 낯선 사람이 골목길을 지나는지 까치 운다.
겨울 해는 노루 꼬리보다 짧다. 땔감을 아끼려 시래깃국만 살짝 끓여 낸 작은방 아궁이는 불기운이 없다. 해가 지자마자 어둠이 몰려들며 작은방 아랫목은 온기가 꺼져가기 시작한다. 앉은뱅이책상 아래 다리를 포개어 앉은 채 두꺼운 마분지를 오려 그림엽서를 만든다. 그림이라기도 뭣한 엽서를 만든다고 몇 시간을 그러고 있다.
저녁 설거지를 마친 누나는 “니 에북 그림 그린다야. 내 것도 몇 장 그려주라.” 하면서 추임새를 넣는다. 괜히 하는 소리임을 알면서도 크레용을 잡은 손가락이 되알져진다. 바람이 거세지는지 문풍지 우는소리가 들리고 옆집 대밭을 지나 넘어온 달빛이 문지방을 넘는다.
형이 쓰다가 버린 크레용과 물감을 방바닥에 널어놓고 벼루에 먹도 적당히 갈아 붓을 걸쳐 놓았다. 그림엽서 크기로 어설프게 자른 종이에는 실개천이 휘돌아 드는 초가집과 눈 쌓인 장독대 그림이 그려진다.
달력이나 그림책에서 본 붉게 떠오르는 해와 한 쌍의 학이 하늘을 보며 우는 모습도 그린다. 대나무나 소나무 그림도 그럴듯하다. 겨울이 깊어지고 새해가 가까워질 때쯤이면 늘 연하장을 흉내 낸 그림엽서를 만들었지만 정작 보낸 적은 없다. 왜 그리 연하장을 만들고 싶었던지 지금도 의문이다.
텔레비전도 라디오도 없던 시절, 겨울이 되면 산에서 나무를 하고 소죽을 끓였다. 마음속에는 교회의 종소리가 울리고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을 주고 가는 꿈을 꾸기는 했다. 나이가 좀 더 많은 여자아이들은 끼리끼리 모여서 자수를 놓고 군밥을 해먹으며 긴 겨울밤을 보냈다.
가끔 꿈속에서 알지도 못하는 할아버지가 주고 간 선물을 찾다가 잠을 깬 적도 있다. 그런 날이면 유독 새벽바람이 심하게 불었다. 이른 아침밥을 짓는 불기운이 아랫목에 따뜻하게 돌 때까지 내쳐 이불 속에서 뒹굴었다. 어떤 날은 두엄을 쟁여놓는 오두막 초가지붕에서 고드름이 툭툭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오고 가는 이 하나 없는 추운 겨울밤, 어설프긴 했지만 조악한 그림엽서나 연하장(年賀狀)을 만드는 것도 행복이다. 혼자만의 세계에서 꿈을 꾸듯이 그림을 그리고 의미를 부여했다.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세상을 보는 것도 나름 의미 있는 나이가 있다. 이룰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지만 아름다움을 꿈꾸는 어린 영혼은 짧은 감성의 시간에도 기쁨을 얻는 법이다. 스스로 만든 그림엽서를 보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축복이다.
삶을 아름답고 의미 있게 만들어 주는 것도 따지고 보면 별게 아니다. 자신이 만든 문화를 나눌 사람이 있다면 성공한 삶이다. 밝은 곳을 지향하는 사람은 멋진 문화의 생산을 넘어 선한 문화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문명인이자 문화인이다.
남의 마음에 깃들려면 자신이 밝고 가벼워야 한다. 자신을 받아들이는 다른 사람도 결코 어두운 마음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 마음은 언제나 밝음이다.
오래전 파리를 여행하다가 어느 무명 화가가 그린 그림을 산 적이 있다. 그때도 그랬으니 지금도 파리 몽마르트르 언덕에 가면 수많은 무명 화가들이 그림엽서를 팔고 있을 것이다.
하루하루 삶은 고단하나 창작의 기쁨은 그것을 충분히 상쇄하리라는 생각을 한다. 화가들이 만드는 소품은 일상의 어려움이 녹아있는 듯하여 볼 때마다 애잔한 마음이다. 그림으로 보아도 좋을 만큼 예술적이기도 하지만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아야 하는 그들의 고단한 삶이 그 속에는 녹아있다.
멀리 에펠탑이 보이는 센 강변을 그린 소품이다. 그 순간 불현듯 어릴 적 엽서를 만들던 생각이 나서 제법 비싼 값을 치르고 그림을 샀다. 화가에게는 그림이 삶이지만 어렸을 적 추억을 되작여볼 수 있는 마법의 문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언제부턴가 그림을 마음에 두지 않는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피어있는 해바라기 그림도 군자처럼 의연한 가을 색 가득한 국화도 마음에서 멀어진지 오래다. 하지만 참 알 수 없는 일이다. 이렇게 한파가 엄습한 아침에 문득 어릴 적 그림을 그리던 생각이 떠오르고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 그림을 그려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마음의 평온함과 정신적 안정감을 주어 치매 예방이나 기억력 재생에 도움이 된단다.
한 해 수고로움을 위로하고 인사 겸 건강하고 행복한 새해 맞기를 염원하며 연하장을 주고받는 시기다. 인터넷에 떠도는 정성 없는 연하장을 보내는 것은 한 해를 마감하는데 적절하지 않다.
손으로 직접 만들고 그린 연하장을 보낼 수 없다면 차라리 진심을 담은 문자를 보내는 것이 차라리 낫지 않을까. 아무리 디지털 시대라도 소비하는 문화가 그 사람의 인격이자 품격이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이선생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