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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무예 여행 스크랩 24반 무예의 유래
天風道人 추천 1 조회 124 13.08.22 13:12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http://bluekb.na.fm/24반무예
1) 24반 무예의 유래

24반무예는 우리가 잘 아는 임진조국수호전쟁(임진왜란)을 계기로 형성되었습니다.
당시 조선은 200년이나 지속된 평화적 분위기에 안주하다가
그 동안 전국시대를 통해 무기와 기술이 정예화된 왜군의 침략을 받아서 참담한 패배를 경험하게 되고 위협감을 느낀 중국은 병력을 파견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조선은 당시 인재를 총동원하여 조선,중국,일본 3국 무예의 정수를 뽑아 독특한 무예 체계를 구성하게 됩니다.

24반 무예는 시기적으로 1596년부터 1790년까지 200여년이라는 오랜 기간에 걸쳐 만들어진 것입니다.
왜란을 거치면서 동양3국의 모든 무예가 선보이고 이중 가장 우수한 무예들이 집대성되어 이루어진 것이 24반 무예입니다.
왜란은 호란을 겪으며 민족을 지키기 위한 민족적 열망이 "무예도보통지" 에 수록된 24반 무예로 나타난 것입니다.
이같이 24반 무예는 그 형성과정에서부터 강인한 민족주체의식의 발현과정이었으며, 외래 침략자에 저항하는 애국,애족사상의 발로였습니다.

(가) 무예도보통지 서문

 우리나라 군사를 조련하는 제도는 삼군은 근교에서, 위사는 금원에서 조련시켰는데,
금원에서 군사를 조련하는 것이 가장 성황을 이룬 시기는 세조때부터이다.
그러나 궁시 한가지에만 그쳤을 뿐 창검등 다른 기예는 들어보지 못하였다.

 선조께서 왜구의 침략을 평정하고 척계광의 기효신서를 구하여보고
훈국랑 한교를 임진왜란에 참전한 명나라 장사들에게 보내어
그 기법을 두루물어서 곤봉등 6기를 다 해득케 하여 도보를 만들었다.
효종때에는 전대에 이루어놓은 공적을 이어받아 내 열을 자주 행하였다.
그러자 단련범위가 조금 넓어졌다. 그러나 6기뿐으로 그 세목은 더해진 것이 아니다.
영조 25년 사도세자가 서를 섭정할 때 죽장창등 12기를 더하여 도보를 만들어서 6기와 같이 연결토록 하여 강습케 하였다.

현륭원의 뜻에 따라서 18기의 명칭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래서 무의식과 같이 전형을 이어서 익히게 하였고 또 기예등 6기를 다시 늘여서 24기로 하였다.
이미 명을 받고 익힌자가 2-3인이나 된다.
원속의 도보를 모아서 의,예,전의 잘못을 바로잡고 그 원류를 찾고 제도를 고쳐서
명물로 하여금 예술의 묘용을 살려서 한 권의 책을 펴냈으니 그 책이름을 무예도보통지라 하였다.

 대개 격자지법이 더 자세히 증보되었을 뿐아니라 금원에서 군사를 조련하는 진전이 이 때에 나왔다.
오위진병장도설과 함께 교외에서 군사를 조련할 지남이 되어 서로 씨와 날을 이루어 공전하니 아름답다 하지 않겠는가 ?
그러나 내가 일찍이 먼저 행진을 말하고 뒤에 기예를 말하였는데
병가들이 늘 하는 말에 병가의 오교에서 기예를 연습하는 것을 두 번째로하고 진치는 것을 세 번째로 하였으니 어째서인가 ?

 무릇 해와 달과 별의 행운을 밝히고 형태의 기이한 수를 살피어
그 그침을 담장과 같이 하고 움직임을 비와 바람같이 하는 것이 이 진법의 좋은 덤이다.
그러나 그 안쪽으로 부딪히고 밖으로 공격하는 것은 부득불 손,발,기계로서 바탕을 삼아 진을 펴는데 있어서
대적할 것이 없음은 어로지 치고 찌르는 민첩한데 달려 있으니 군사를 논하는 차례가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
진실로 이 책의 각종 법식을 행하는 것은 서울을 지키는 군사와 재주있는 무관들이 말로 용호의 도략을 익히고
화살을 매겨 길게 당기고 하면 모두 비호와 같이 빠른 무사가 되고 나라를 저버리지 않는 충실한 무사들이 된다.
계속해서 이 책을 증보간행하는 본 뜻은 만억년 세월이 흐르도록 교유를 밝힘이 진실로 이런 것이겠다 하여 힘쓰노라..

정조 14년 여름

2) 24반 무예의 구성

24반 무예는 우선 검을 기초로 하는데
본국검,제독검,쌍수도,예도,왜검,쌍검으로 검법이 6가지 이며
예도에서는 기본자세 24가지를 먼저 배우게 됩니다.
왜검은 숙종때 일본에서 유래된 것으로 토유류,은광류,천유류,유피류, 등 4 가지 검법이 있고 교전이 따로 독립되어 있습니다.
검 이외에 장창,죽장창,기창,당파,낭선,등패의 창종류와 관우가 썼던 월도,협도 이밖에도 편곤,공방,권법
그리고 마상술 6가지 등 총 24가지 기예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무예도보통지"에 수록된 24반무예(二十四班 武藝)는 다음과 같이 편성되어 있습니다.

무예도보통지

1권

장창, 죽장창, 기창(기창2), 당파, 낭선

(1) 장창(長槍)

장창은 '무예도보통지'에 前譜와 後譜가 수록되어 있다.
제시된 규격에 의하면 길이가 1장 5척(4.5 m )이고
재질은 주목이 제일이고 잘 부러지는 合竹이나
허리가 휘청거리는 것을 사용해서는 안된다고 한다.
여기에는 騎兵用과 步兵用이 있으며,
그 이름만도 이화창,사가창, 마가창, 금가창, 장비신창,오현신창,
괴돌창, 괴도창,아미창, 월창, 지설창이 있고,
보병이 사용하기에 마땅한 것으로도 소목창, 약유창, 아경창, 태령필창등이 있다.

창이란 원래 나무류를 날카롭게 한 것인데, 중국의 전설적인 黃帝가
동이족 蚩尤(자오지 천황)와 더불어 싸운 것이 창이고,
제갈량이 나무로 만들기 시작했는데
그 길이는 1장 2척이고 철로써 창 끝을 씌우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창 자루는 질려(바닷가에 기생하는 남가새 나무)가 제일 좋고,
그 다음은 뽕나무가 좋고, 그 다음은 단풍나무가 그 다음이라 한다.

장창은 그 기원이나 효능면에서 볼 때 창류 중 으뜸이라고 할 수 있다. (長槍故 藝中之王)
임진왜란 때 명나라의 원병과 우리나라의 의병 연합군에 의한
평양성의 탈환도 장창 돌격전에 의한 것이고,
로마의 장창 밀집부대는 그 명성이 세계에 으뜸이었다.
즉 파상적인 격자지법과 신축자재한 굴신법으로 민집돌격에 적합하다 하겠다.

(2) 죽장창(竹長槍)

길이자 20자(尺), 머릿날이 4촌(寸), 손잡이 5척이며, 손잡이 이상은 물감을 바른다.
한자 용어로 수, 긍, 극 이라 하여 재료는 積竹(적죽:合竹)이고,
제갈량이 만든 苦竹槍은 百葉竹이다.

중국의 "화양국지(華陽國志)라는 책에서,
"백엽죽은 가지 하나에 백엽인데 이에 상한 사람은 반드시 죽으며, 그 길이는 2장 5척" 이라고 했다.
그러나 조선조의 훈련원에서 사용한 것은 길이가 20척(6m)이고 끝날이 4촌(12cm)이었다.

기예자체는 다른 것에 비해 단조로우나 길이가 가장 길고 창끝의 날카로운 날로서 좌우로 파상적인 공격을 감행하여
대적을 압도할 수 있다.
이 창법의 강점은 무었보다도 길다는데 있다.

- "한국의 전통무예-학민사

(3) 기창(期槍)

기창(旗槍) 두 가지 기원을 갖는다.
첫째는 명나라 문황 (성조황제)의 무적의 기창부대로서,
대적을 만날 때 마다 요기(요기:날래고 용감한 기병)을 통솔하여 중앙을 돌파하고
적 후방에서 깃발을 합세하여 싸우면 적이 크게 무너졌다는 기록에서 보이는 것처럼 이른바 마삭지류(馬삭之類 : 기병용 창)로써 기원이다.


다른 또 하나의 기원은 고려사 與服志에 소개한
이른바 노부지기(의장용의 뜻)로써 법가(=어가)를 호위하는 의장 소기창대의
모든 軍伍(군오)가 旗를 단 槍을 높이 들고 유사시의 사태에 대비하여 한어지세(공격과 방어술)를 연습하도록 한 것이다.

기예로써의 기창은 그 발생 경위에서도 밝혀진 바와도 같이 적의 중견을 습격하거나,
기습을 당했을 때의 혼전을 대비한 것이기 때문에
저돌적인 돌격자세와 함께 전후좌우로 자유자재한 공격법을 습득하기 위한 기법으로 편성되어 있다.

창의 길이는 9촌(27cm), 창자루길이는 9척(2.7m)이다
기창2(騎槍)

창은 길이가 15척으로 보장창(步長槍)과 같다.
(4) 당파(當巴)

당파는 차(叉:작살)인데, 鐵파와 木파가 있다.
철파의 머리는 직인(直刃:정봉)과 횡노(곁가지)가 모두 철이고,
목파는 철인과 목횡 위에 철노 철피를 씌운 뒤에 못질을 한다.
길이는 7척 6촌이고 무게가 5근이다.

기예로써의 당파는 보병 對 보병 , 보병 對 기병으로 대적할 수 있고,
곁가지가 있어서 이른바 화전(火箭:불화살)을 설치할 수 있다.
앞뒤로 전진/후퇴하면서 영활한 공방을 할 수 있다.
이의 사용법에 웅우출진파(雄牛出陣파), 산문칠매복파(山門七埋伏파),호란한진파(番王倒角파),직행호파(直行虎파), 호란한진파(호蘭限進파),등 5家가 있다.


(5) 낭 선(狼先)

척계광이 말하기를 "낭선은 길이가 1장 5척이며 무게는 7근이다.
대나무와 철 두가지가 있으며 9층, 10층, 11층의 가지를 붙인다. 더우기 선봉이 절묘하다.
그 선봉의 무게는 반근 이상으로 역시 가지를 붙인 것이다. 손에 가까운 2층을 제외하고는 나머지는 구관을 거꾸로 하여 쓴다.
낭선대의 뒷부분은 조금 무거우므로 중간부분을 잡으면 앞뒤가 서로 균형을 이루는데 그래도 뒤가 무겁고 앞은 무겁지 않다."

2권

쌍수도, 예도24세, 예도총보, 왜검

(6) 쌍수도


척계광이 말하기를, "쌍수도는 날의 길이가 5척인데,
밑부분 동호인(;구리로 싼 날)이 1척이며, 칼자루의 길이는 1척 5촌으로 전체의 길이는 6척 5촌이며, 무게는 2근 8냥이다
이는 왜구가 중국을 범하기 시작하면수부터 시작되었다.
그들이 이 칼을 가지고 춤추듯이 뛰어, 섬광이 번득이는 앞에 우리 병사는 탈기되어 버렸다.
왜구가 한번 뛰면 1장여 밖에 있는 조우자가 양단이 되어버린 것은 무기가 예리하고 두 손을 사용하여 힘이 지위지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들만의 전용으로 쓰고 있으니 막을 수가 없고, 오직 조총수만이 가히 겸할 수 있다.
적이 멀리 있으면 총을 쏙, 가까이 있으면 칼을 쓴다."


본명은 장도이며, 지금 쌍수도라고 부르는 것은 쌍수를 사용하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이 검제를 사용하지 않고 오직 요도로 대신 연습한다. 다만 그 이름만이 있을 뿐이다.
모원의가 말하기를. "장도는 왜놈들의 체제이다. 보병에게는 매우 날카로우나 옛날에는 갖추지 못했다.
그러나 '중화고금'의 주에 이르기를, "한세전에 고제께서 백사를 베었는데, 칼 길이가 7척 이었다. "
쌍수도보

기세-검을 오른 어깨에 메고 선다.
견적출검(見賊出劍)-검을 한바퀴 돌려 쌍수로 검을 잡아 검끝을 땅을 향하게 하여 왼발을 든다.
지검대적(持劍對賊)
향좌방적(向左防賊)-왼쪽 하단을 쳐내어 막는다(左脚右手).
향우방적(向右防賊)-오른쪽 상단으로 쳐내어 막는다(右脚右手).
향상방적(向上防賊)-왼손바닥으로 검등을 받아 상단 방어(左脚右手).
향전격적(向前擊賊) / 향좌일격(向左一擊) / 향우일격(向右一擊)
초퇴방적(初退防賊)-왼발 한걸음 물러나 왼쪽으로 돌아 뒤로 뛰어 물러선다.(右脚右手)
진전살적(進前殺賊)
지검진좌(持劍進坐)-한걸음 뛰어나가 오른손 외수로 검을 잡고 검을 땅에 세워 앉는다
(右脚右手). 식검사적(拭劍伺賊)-일어서며 검을 씻는 동작을 한다(右脚右手).
섬검퇴좌(閃劍退坐)-오른발 뒤로 빠지며(左脚右手) 검을 뒤로 숨겨, 왼손을 민다.
진전살적(進前殺賊) / 향상방적(向上防賊) / 진전살적(進前殺賊)
휘검향적(揮劍向賊)-내략세, 외략세, 내략세를 세 번 하며 나간다.
진전살적(進前殺賊) / 향상방적(向上防賊) / 진전살적(進前殺賊) / 일자(一刺)
재퇴방적(再退防賊)-우측으로 돌아(오른발을 뒤로 빼어 돈다), 검을 어깨에 메고 세 번 후방으로.
향상방적(向上防賊)-왼발 진보, 검을 오른 어깨위로 앞을 보며 받았다가 오른발이 뒤로
한걸음 물러서면서(左脚右手) 向上防賊勢를 한다.
향전격적(向前擊賊) / 지검진좌(持劍進坐)
식검사적(拭劍伺賊) / 향좌방적(向左防賊)-일어나며 오른발 뒤로 빠지고(左脚右手)
拭劍伺賊勢로 검을 씻으며 한바퀴 돌리고, 두 번 되었을 때
쌍수로 다시 잡아 向左防賊勢(左脚右手)를 한다.
향우방적 / 향상방적 / 향전격적
향좌일격(向左一擊) / 향우일격(向右一擊)
삼퇴방적(三退防賊)-初退防賊勢와 같은 방법으로 물러서되 우측으로 돌아온다(右脚右手).
향전살적(向前殺賊)-右手右脚 나아가 들어치기를 두 번한다.
지검진좌(持劍進坐) / 식검사적(拭劍伺賊) / 장검가용(藏劍賈勇)
(7) 예도 24세

1.거정세(솔을 드는 격)
왼편어깨에서 오른쪽으로 내려치고(좌각전향) 다시 왼쪽을 향하여 허리를 가르고(좌각전향) 퇴보군란세 로 칼을 세워 앞을 막는다.(좌각후향)
2.점검세(칼을 점하여 찌르는 격)
오른쪽으로 칼을 내려 뻗고 있다가(우각전향) 한번 흩어 돌려 찌르고(우각전향) 왼쪽으로 향하여 나가며 다시 찌른다.(좌각전향)
3.좌익세(왼편 날개를 치는 격)
오른쪽 어깨위에 칼을 걸치고 섰다가(우각전향) 바로 왼쪽으로 상대 왼쪽어깨를 내리 눌러치고(우각전향)
나아 가며 찌르고(좌각전향) 직부송서로 앞을 향해 역린자로 다시 나아가 찌른다.(우각전향)
4.표두세(표범의 머리를 치는 격)
좌각전향으로 섰다가 우각전향하며 내려치고 다시 나아가며 치되 좌수상 우수하로 내려 치고(좌각전향)
한번 뛰어올라 용약일자세로 찌른다.
5.탄복세(배를 헤치고 찌르는 격)
찌르는 자세로 섰다가(우각전향) 나아가며 찌르고(좌각전향) 다시 나아가며 찌른 후
(우각전향) 금계독립세 로 섰다가 좌요격한 후 한바퀴 돌아 우요격으로 허리를 가른다.(우각전향)
6.과우세(오른편을 걸쳐 치는 격)
칼을 발밑으로 내리고 있다가(우각전향) 위로 올려치고(올려치기 자세:우각전향)
다시 올려치고(올려치기 자세:좌각전향) 다시 나아가며 허리를 가른다.(우각전향)
7.요략세(도도히 ?는 격)
칼을 발밑으로 뒤로 내리고 있다가(좌각전향), 나아가며 올려치고(우각전향) 좌수상
우수하로 나아가며 올려치고(좌각전향) 장교분수세로 하되
우수상 좌수하로 좌각을 돌고 앞을 향해 한번 돌아 친 후 벤다.(우각전향) 8.어거세(수레를 미는 격)
찌르는 자세로 섰다가(좌각전향)
바로 찌르고(좌각전향) 뒤로 뛰어 물러 봉두세로 칼을 내렸다가 조금 꺾는다.(우각전향) 9.전기세(깃발을 펴듯 치는 격)
오른편 어깨위에 칼을 걸치고 섰다가(우각전향)깃발을 펴듯 내려치고(우각전향)
좌우상, 우수하로 나아가 다시 내려치고(좌각전향) 뒤로 돌려 내려치되
손은 다시 우수상, 좌수하로 하고 (베어걸어 점한다)칼로 조금 꺾는다.(우각전향)
10.간수세(안전하게 보고 직면하여 치는 격)
운광류의 시작 자세보다 조금 높은 자세로 수비류로 섰다가(우각전향)
바로 찌르고(우각전향)다시 나아가 찌르고(좌각전향) 금계독립세로 섰다가 좌요격, 우요격으로 가른다.
11.은망세(은구렁이가 담을 넘는 격,사방을 공격한다.)
왼쪽 어깨 너머로 칼을 뻗고 칼날로 뒤로 보고 섰다가(우각전향)
좌수검으로 뒤로 돌아 치고 (좌수상, 좌각전향) 다시 뒤로 돌아 우수검으로 치고 (우수상,우각전향)
90도 오른쪽으로 돌며 좌수검으로 치고 (좌수상,좌각전향) 다시 뒤로 돌아 운수검으로 친다.(우수상, 우각전향)
12.찬격세(베어 치는 격)
좌협수두로 섰다가 백원출동세로 나아가 치고(우각전향)
금계독립세로 섰다가 좌요격,우요격세로 가른다.
13.요격세(허리를 치는 격)
허리베기 준비자세로 섰다가 나아가며 허리를 베고(좌각전향)
다시 나아가며 허리를 베고(우각전향)나서 그대로 찌른다.(우각전향)
14.전시세(날개를 펼치는 격)
오른발을 들고 칼끝이 밑으로 가게 섰다가(쌍수도 1,2 연상할 것) 돌려 들어올려
찌르고(우각전향)나아가며 내려친다.(좌각전향:거정세 1번 격)
15.우익세
왼쪽 어깨위에 칼을 대고 내려친다.(좌각전향)다시 나아가며 어깨를 치고 (우각전향)
왼발을 나아가며 허리를 가른다.
16.게격세(들어치는 격)
칼을 가슴에 대고 오른발을 오른쪽으로 옮기며 수평으로 치고
왼발을 왼쪽으로 옮기겨 다시 수평으로 치고 왼발나가며
좌수검으로 내려치고(좌수상) 우각후퇴하며 허리를 가른다.(우수상)
17.좌협세
왼발 앞으로 찌르기 준비를 하고(단복) 왼발 나아가며 찌르고
오른발 나아가며 찌르고, 금계독립하여 좌요격, 우요격을 한다.
18.과좌세(왼편으로 걸쳐 치는 격)
요격(허리치기)자세로 준비하고(우각전향:올려치기연상) 좌각나가며 올려치고
우각나가며 올려치고 다시 한 번 반복한 후 금계독립세로 좌요격,우요격을 한다.
19.흔격세(흔들어 치는 격)
칼을 왼쪽 어깨밑에 대고 섰다가(우각전향) 바로 목을 가르고 찬격세로 돌며 내려치고,
좌각이 앞으로 나아가며 조천세로 막고 다시 좌각 뒤로 빠지며 찌른다.
20.역린세(비늘을 거슬러 찌르는 격)
왼발 나아가며 찌르고 왼손을 뻗어 칼을 뽑고 오른발을 동시에 갖다놓고 준비자세로 하고
오른발을 나아가며 목을 내려친다.
21.염시세(날래를 거두고 치는 격)
오른발을 앞으로 하고 왼발을 뒤로 하되 칼을 왼발 밑으로 내려 놓고 오른발을 뒤로 빼며 올려치고
왼발을 뒤로 빼며 다시 올려치고 '왼발을 나아가며 올려치고 다시 왼발을 나아가며
올려치되' ' '부분때는 반박자 빠르기로 빠르고 보폭을 넓게 한다.
이어서 금계독립세로 좌요격, 우요격한다.
22.우협세(오른편으로 찌르는 격)
찌르기 기본동작자세에서(좌각전향) 찌르기 1,2번을 한 후 좌각전향 상태에서 그대로 거정세로 내려친다.
23.봉두세(봉황의 머리로 씻는 격)
칼을 앞으로 내려고 섰다가(우각전향) 들어올려 두손으로 엇가른 후
왼발 나아가며 찌르고 오른발 나아가며 (45도) 게격으로 왼발을 끌어 모으면서 몸통을 뺀다.
24.횡층세
** 예도 총보


지금 사용하고 있는 환도의 날 길이는 3척 촌, 칼 자루의 길이는 1척, 전체 무게 1근 8냥이다.
모원의가 말하기를, "옛날에는 칼이 전투에 쓸만 하였다.
그러므로 당 태종은 검사 천명을 두었다.
지금 은 그 검법이 전하지 않으나 끊어진 조각이나 부스러기 책끈 중에 결가(訣歌)가 있으나 그 서술 내용이 자세하지 않다.
근래에 호사자가 있어서 조선이 그 세법을 구비하고 있음을 얻어 진실로 중국이 잃은 것을 사예에서 구하니,
서방의 [등운]과 일본의 [상서]가 유일한 것이다.

조선세법은 처음 안법, 격법, 세법, 자법부터 연습한다.
격법에 다섯가지가 있다. 즉 표두격, 과자격, 과우격, 익좌격, 익우격 등이다.
자법에도 다섯가지가 있다. 즉 역린자. 탄복자, 쌍명자, 좌협자, 우협자가 그것이다.
그리고 격법에는 세 가지가 있다. 즉 거정격, 선풍격, 어거격이 그것이다.
세법에도 세 가지가 있다. 즉 봉두세, 호혈세, 등민세 등이다.
옛날에 병사를 말하는 자는 반드시 검에 대해서 말했으나, 지금은 진에서 사용하지 않는다.
나는 해외에서 널리 탐구하여 그 방식을 얻기 시작하여 다시는 이를 늦추지 않았다.
근래 변방의 관리들이 등이 두텁고 길이가 짧은 칼을 만들기를 바라고, 군사들은 자못 편리한 이 칼을 쓴다."


[청이록]에 이르기를, "당나라의 칼은 작고 짧게 갖추어져 항시 겨드랑이에 차고 다니는데, 이름하여 요품이라 한다."고 하였다.


환도는 중국의 요도이다.
구보에 게재된 쌍수도, 예도, 왜검, 쌍검, 제독검, 본국검, 마상쌍검은 명칭은 비록 같지 않으나 사용되는 바는 모두 요도이다.
양날 칼을 '검' 이라 하고, 한날 칼을 '도'라 하는데, 후세에는 '검'과 '도'가 서로 혼용되었다.
고대에는 검을 숭상하고, 후세에는 도를 숭상한 것은 칼의 날카롭고 둔한 차이에 관계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습속이 같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은 비단 검술만 전해지지 않을 뿐 아니라 칼도 함께 드물다.
모원의가 검술이 전해지지 않음을 깊이 탄식하고 스스로 검보를 찬술하였다고 하는데 의문의 여지가 있다.
그리고 또 생각을 전하는데, 그 하나는 그 결과를 조선에서 얻었다고 하고,
하나는 그 법식을 해외에서 얻었다고 하는데, 그 뜻이 막연하고 헤아릴 수 없을 지경이다.
그 설이 신기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신뢰하게 하나 그 뜻이 미미하다.
대저 검(劍)은 옛 법식이니 지금에는 요도로 사용된다.
지금의 숭상함은 그 용도가 심히 넓은데 있다.

(8) 왜검

토유류 운광류 천유류 유피류

모원의가 말하기를, "일본도(日本刀)는 크고 작고, 길고 짧은 것이 일정하지 않다.
매 사람마다 하나의 장도(長刀)를 갖는데, 이를 패도(佩刀)라 한다.
그 칼 위에 하나의 소도(小刀)를 꽂고 편리하게 잡용(雜用)한다.
또 하나의 한 자 길이의 찌르는 칼(刺刀)은 해수도(解手刀)라 하고, 한 자가 넘는 것은 급발(急拔)이라 하는데, 역시 찌르는 류이다.
이 세 가지를 지니고 필요에 따라 사용한다.
칼은 극히 강하고 날카로와서 중국이 미치지 못한다.
칼의 크고 작음을 막론하고 반드시 자루 위의 한 면에는 칼 이름을 새기고, 다른 한 면에는 자호(字號)를 새겨 고금의 현부(賢否)를 판별한다.
창·검 역시 그러하다.
일본 산성군(山城君:관백) 전성시기 각 섬의 명장(名匠)들을 모두 불러 창고에 가두어 세월을 한정하지 않고
그 공력과 기교를 다하여 만든 것을 상고도(上庫刀) 한다. 그 중에서도 '영구(寧久)'라 하는 것이 제일 좋다.

[왜지]에 이르기를, "왜적은 용감하고 어리석어서 생사 따위를 어찌 생각하지도 않고,
싸울 때마다 문득 피투성이가 되어 3척 검을 잡고 춤을 추면 앞에 막을 자가 없다."하였다.
[왜한삼재도회]에 이르기를, " 검술은 원의경을 중흥조로 한다.
그는 젊은 시절에 평치의 난을 피해 승정곡에 이르러 이인(異人)을 만나 검술을 익혔는데,
이를 세칭 신도류(神道流)라고 한다.
일향수애(日向守愛), 주이향(洲移香)이 일찌기 제호권현에게 자기의 업이 더욱 정진되기를 빌었더니,
꿈에 원숭이 모양의 신이 나타나 세상에 이름이 높은 깊은 비전을 가르쳐 주었는데, 이를 음류(陰流)라고 한다.
모원의의 무비지에 실려있는 음류의 원숭이뜀, 원숭이의 회전 등의 수법과 그림이 보인다.
그 이름이 다른 나라에까지 울렸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추종자 상천무장(上泉武藏), 수신강손(守信綱損)이 그 검법을 보완하여 신음류(新陰流)라 불렀는데, 세상에 크게 성행하였다.
후에 호전죽내, 두군단석, 산과박전, 유생소야, 경중 등 제가(諸家)가 모두 이 두 유파에 근원을 두고,
여기에 새로운 뜻을 가미하여 한 유파를 만든 자도 많다.
또 파라는 것은 도검의 자루이다. 칼끝은 망봉이라 한다." 칼 콧등은 칼의 코이다.
[사기] 주에 이르기를 칼입 곁에 가로 튀어나온 것으로 금, 은, 동, 철, 진유 중 철로써 진실로 오래된 것이 더욱 좋다.
그 오래된 것은 약간 붉은 색을 띤 미끄러운 흑색이다.
이 모두는 두들겨서 만들고 값싼 것은 지어 부어서 만든다.
뢰는 칼머리의 장식이다. 목관은 칼머리 양면을 금과 철로 만들어 색상으로 장식한 것이다. 초는 칼집이다.
두터운 박목을 이용하여 만든다. 가볍고 연하여 칼에 녹이 슬지 않게 한다.
여기에 검은 칠이나 붉은 칠을 한다. 섭박고초(;접어서 두드리는 칼집)도 있다.
상어에도 몇 가지가 있다.
즉 하고, 매화교, 호표국악교 등이다. 표는 칼 끝의 구리이다. 지금은 금, 은, 동, 철 및 뿔 등을 많이 쓴다.



군교 김체건은 잘 달리며 무예에 민첩하고 절묘하였다.
숙종조에 일찌기 사신을 수행하여 일본에 들어가 검보를 얻어 기예를 배워왔다.
상께서 불러 시험해본즉 김체건은 칼을 떨치며 매달려 도는 것 같고 발뒤꿈치를 들로 엄지발가락으로 걸었다.
왜검보에는 네 가지가 있는데, 토유류, 운광류, 천유류, 유피류가 그것이다.
유(流)라는 것은 의경의 유파 신도류나 신강의 유파 신음류라고 칭하는 것과 같은 것들이다.
김체건이 그 술법을 전하였는데, 지금은 오직 운광류만이 행해지고, 중간에 그 기법이 실전되었다.
또한 김체건이 그 기법을 연출하는 사이사에에 새로운 뜻이 나와서 이를 교전지세(交戰之勢)라 하여 교전보라고 칭하고,
이를 구보와 나누어 하나의 검보로 하였다. 그러므로 이제 왜검보에 부속시켰는데, 그 근원이 왜검보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또한 교전보에 그려진 칼은 모두 양날이었으나 이제 한쪽날 요도로 고쳤다.
이는 두 사람이 교전의 세를 연습하는 중에 찔리고 베이는 것을 염려해서이다.
겉과 속이 몇자 되는 나무로 요도(腰刀)를 대신하는데, 속칭 목검이라 한다.
지금 왜검을 연습하는 칼 역시 요도이다. 무릇 칼의 날카롭기는 왜인들이 최고이다.
그러므로 그 칼을 법식을 그림으로 실어 놓았다.

3권

제독검, 본국검, 쌍검, 마상쌍검, 월도, 마상월도, 협도, 등
(1) 제독검


제독검 14세는 이여송법으로 전해지고 있다.
신종조에 제독으로 동쪽으로 온 사람은 이여송, 유정이며 남창인이다
. 도독 현의 아들로 벼슬은 총병, 마귀, 동일원, 이승욱 등 여러 사람이고, 유정이 대도(大刀)로 천하에 이름을 떨쳤다. [징비록]에 이르기를,
"계사년 여름에 한성 묵사동에 병으로 누었더니 천장 낙상지가 병들어 누워 있는 나를 찾아와서 말하기를,
'조선은 아직도 미약한데 적은 아직도 국경 안에 있으니 명나라
원군이 돌아가기 전에 병법을 연마하여 가히 나라를 지키십시오.'하였다.
나는 즉시 장계를 올려서 금군 한사립으로 하여금 70여 인을 초모하여 낙상지에게 가서 가르쳐 주기를 청하였다.
이에 낙상지는 자신의 장하에서 장육삼 등 10인을 뽑아 교사로 삼고, 창·검·낭선 등 기예를 연습하였은즉
낙상지는 이제독의 휘하이므로 제독검이라는 명칭은 여기에서 나왔다."
증군 이원이 말하기를 "제독이 이 땅에 있을 때 통진 금씨의 딸을 시녀로 취하여 몸에 지니고 있던 칼을 주면서 떠날 때 말하기를,
아들을 낳으면 이름을 천근이라 하라."하였다. 과연 천근을 낳아서, 천근의 후손들이 거제에 많이 살고 있다.

영조 병인년(1746)에 통제사 이언상이 천근의 현손 무춘으로부터 그 칼을 제독의 가문에 돌려 주었다.
그 칼의 길이는 3자 4치이고, 칼콧등은 9치이며, 두 개의 구멍이 있다.
칼날의 너비는 1치 5푼이며, 윗 부분 베이는 곳은 1치 2푼이다.
칼등의 두께는 3푼 리이며, 끝부분 베이는 곳은 1푼 5리이다. 칼날 면에 '張'자가 원호 안에 있는데, 해서 양각이다.
위에 완연의 틈이 희미하게 있다. 지금도 녹슬지 않고 껄끄럽지 않다.
이것이 비록 격자지법과 다르나, 이를 즐겨 제독검이라 부르는 까닭에 이를 취하여 그림을 그리고, 그 사유를 병행하여 기록하여 둔다.
 제독검보

대적출검(對敵出劍)-정면을 보고 검을 어깨에 메고 왼손을 허리에 찬다.
진전살적(進前殺賊)-우각우수(右却右手)로 앞을 한번 치고, 즉시 뛰어친다.
향우격적(向右擊賊)-오른편으로 돌아 右却右手로 우측을 향해 한번 치고,
향좌격적(向左擊賊)-왼편으로 좌측을 향해 친다.
向右擊賊 / 向左擊賊
휘검향적(揮劍向賊)-왼발을 들고 검을 왼어깨에서 오른허리까지 뒤로 걸쳐 메고 대각선으로
베며 오른편으로 돌아 휘검향적세(揮劍向賊勢)를 한다.
진전살적(進前殺賊)-우각우수로 앞을 한번 내리친다.
초퇴방적(初退防敵)-左廻身 360도 방신(防身)하며 右手右脚으로 물러선다.
검은 왼쪽을 방어.
再回防賊 / 三回防賊
향후격적(向後擊賊)-三回防賊에 바로 이어 재빨리 뒤로 돌아 내리친다.
향우방적(向右防賊)/향좌방적(向左防賊) / 향우방적/향좌방적 /진전살적
용약일자(勇躍一刺)-오른발 한걸음 나아가 뛰어 찌르고,
향좌격적(向左擊賊)-왼편을 향해 비스듬히 내려 치되 坐脚右手로 뛰어 친다.
휘검향적(揮劍向賊) / 진전살적(進前殺賊)
재퇴방적(再退防賊)-右手右脚(오른발이 앞)으로 右廻身하며 물러선다. 검은 오른쪽을 방어.
再回防賊 / 三回防賊
進前殺賊 / 進前殺賊-우각우수로 나아가며 殺賊勢를 한다.
식검사적(拭劍伺賊)-오른발을 뒤로 무른후 오른손으로만 검을 잡고 검을 두 번 돌려 씻는다.
장검가용(藏劍賈勇)-왼손으로 검을 바꾸어 잡고 어깨에 검을 숨겼다가 빠르게 두 번 뿌리고 마친다.

(2) 본국검 (本國劍)


增 예도와 같은즉 요도이다.
[여지승람]에 이르기를, "황창은 신라인이다.
[이언]에전하기를 7세에 백제에 들어가 거리에서 칼춤을 추는데 구경꾼이 담장을 이루었다.
백제왕이 그 소문을 듣고 불러 당에 올라 칼춤을 추두록 명하였다. 황창랑은 이로 인하여 왕을 찔렀다.
그리하여 백제인들이 그를 죽였고,
신라인들은 그를 애달프게 여겨 그의 얼굴을 상으로 가면을 만들어 칼춤을 추는 모양을 지금까지 전하게 하였다."라 하였다.

案 황창은 황창이라고도 하는데, 신라에서 제도화한 화랑이다.
술랑, 영랑 등의 분류이다. 그러므로 황창랑이다.
화랑도의 무리는 일찌기 수천인이 서로 충성과 신의를 권하고 이에 힘쓴다.
또 신라는 왜국에 이웃하였은즉 그 칼춤 추는 기기들이 반드시 서로 전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황창랑으로 인하여 본국검의 기원이 밝혀졌는데,
만일 모원의에 이르러 이처럼 조선에서 검보를 얻어 서역의 [등운]과 비교한즉,
이것은 조선이 스스로 본국검의 검보를 창안한 것이다.
또한 일본의 [상서]와 비교한즉 이는 조선이 중국의 검보를 전한 것이다.
물론 그 창안한 것과 그 전한 것이 지금부터 모원의 재세 시까지 백수십년이 지났은즉, 서로 주고 받는 자가 누구이며,
또 어떻게 된 것인지 조금도 확인할 수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어찌하여 스스로 전수하고 자습하지 않고,
반드시 모원의의 [무비지]에 기대어서 전습하는지 역시 알 수 없는 일이다.
전에 이미 모원의에게 가탁하여 말하고, 이제 또다시 본국검 아래에서 논리를 편다.
본국검보

정립.오른발 나가며 발도. 왼발을 오른발 옆으로 당기며 칼을 왼편에 세워 지검대적세.
우로 뒤돌아 내략세. 진전격적
좌로 뒤돌아 왼발 들며 금계독립(1회)
왼발 오른발 나가며 진적격적
좌로 뒤돌아 왼발 들며 금계독립(2회)
왼발 오른발 나가며 후일격
후일자 - 좌우로 칼을 감아돌려 찌르기
맹호은림1회 - 좌향상방적, 오른편으로 돌아 왼발 나가며 일격
맹호은림2회 - 좌향상방적, 오른편으로 돌아 왼발 나가며 일격
안자세 - 오른발을 왼쪽으로 감아 좌로 270。 돌아 오른발 나가며 걸쳐베기.
칼을 좌우로 감아돌려 역날로 명치 찌르기.
직부송서 - 우로 뒤돌아 오른발 나가며 찌르기
발초심사 - 좌로 270。 뒤돌아 오른발 범세로 반보 나가며 좌하단 눌러 막고 표두압정.
좌우전 일자 - 칼을 좌우로 감아돌려 오른발 제겨 찌르기.
좌로 뒤돌아 왼발 조천세, 오른발 감아나가며 좌로 뒤돌아 오른발 조천세
왼발 당기며 좌협수두세.
왼발이 오른발 앞으로 꼬아 우로 뒤돌며 항우방적(외략세), 오른발 내리며 후일격
전기세(내략) - 우로 허리 틀어 뒤올려베고, 오른발 내리며 진전살적.
좌로 뒤돌며 오른발 들어 금계독립.
왼발 내려 나가며 좌요격
우로 360。돌며 오른발 나가 우요격. 왼발 나가며 후일자로 찌르기.
장교분수세 - 좌로 뒤돌며 좌중단 방어.
백원출동세 - 오른발 금계독립 좌협장검.
우찬격세 - 왼어깨에 걸쳤다가 우로 빗겨 베고, 우로 180。 돌아 우하단 방어
용약일자 - 왼발 뛰어 나가며 하단 찌르기.
좌로 뒤돌아 후일격. 좌우전 왼발 나가며 역날 찌르기(후일자),
칼 빼내며 우로 뒤돌아 향우방적(외략), 오른발 나가며 우하단으로 빗겨베기
오른발 제겨 나가며 향전살적 2회
시우상전-오른발 안으로 스쳐올리고 오른발 앞으로 밀어 찌르기
왼발을 앞으로 당기며 우협정립. 착검
(3) 쌍검(雙劍)

增 칼날 길이 2자5치, 칼자루 길이 5치 5푼, 무게 8냥
"녹영의 쌍칼은 좌우에 쌍으로 간직한다. 전체 길이는 2자 1푼인데 칼날의 길이는 1자 6치이다.
넓이는 1인치이고, 구멍은 반원이다. 두께는 2푼이다.
아울러 칼집에 넣으면 칼자루 길이 4치 9푼이며, 목질에 붉은 실을 감으며, 끝은 철로 만든 집게이다."

[무편]에 이르기를,
"송 태종은 용사 수백인을 선발하여 칼춤을 가르쳐서, 모두 칼을 공중에 던져 몸을 솟구쳐 좌우 양손으로 받았다.
북융과 접하여 거란의 사신을 맞아 편전에서 연회할 때 검사들이 웃옷을 벗고
북소리가 요란한 중에 칼을 휘둘러 뛰고 던지며,
서릿발 같은 칼날을 잇달아 부딪쳐 공중 가득히 춤추듯이 나는 모습을 보여주니, 거란 사자가 보고 두려운 기색을 띠었다.
성을 순시할 때마다 무예를 뽐내 칼춤을 추며 앞을 인도케 하니, 적들이 성을 타고 앉아 바라보고 간담이 떨어졌다고 한다."


[무편]에 이르기를,
쌍칼은 남이 만일 일복호세로 나의 머리와 다리를 쳐오면 왼손으로 막고 오른손으로 한번 쓸어버린다.
만일 남이 곤봉으로 부숴오면 피하였다가 몸을 뒤집어 칼로 한번 쓸어버린다.
남이 만일 일수평창으로 내 다리를 빼러 오면 오른손으로 막고 왼손으로 한번 쓸어 버린다.
남이 만일 일독구세로 내 다리를 찍어오면 왼손으로 막고 오른손으로 손아귀를 찍는다.
남이 만일 일단제세로 나의 겨드랑이를 쳐오면 좌우를 불구하고 한손으로 막고 한손으로 쓸어버린다.
남이 만일 노승타장세로 나의 다리를 쓸어오면 왼손으로 막고 오른손으로 한번 쓸어버린다.
만일 곤봉으로 부숴오면 피하였다가 곧 손아귀를 꺾는다.
남이 만일 일횡룡창세로 나를 빼러 오면 왼손으로 막고 오른손으로 한번 쓸어버린다.
남이 만일 일선인교화세로 나를 찍어 오면 왼손으로 막고 오른손으로 한번 쓸어버린다.
남이 만일 일로관함식세로 내 다리를 찍어오면 칼로써 십자로 얽어막고 한 칼로 손아귀를 찍는다.
남이 만일 일편포세로 나를 쳐오면 오른손으로 막고 왼손으로 한번 쓸어버린다.
남이 만일 일거수조천세로 칼로 나를 쳐오면 왼손으로 막고 오른손으로 한번 쓸어버린다.
남이 만약 일호헐세로 나를 쳐오면 좌우를 불구하고 한손으로 막고 한손으로 쓸어버린다.
칼을 사용하는데 법이 있다.

(4) 마상쌍검(馬上雙劍)


增 보쌍검(步雙劍)과 같은즉 요도이다.
모원의가 말하기를. "단도와 수도(手刀)와 대략 같다. 말 위에서 실용할 수 있다."
[영귀지]에 이르기를, "하간왕 우가 관중에서 이미 패하였으나 진안이라는 급사가 있었다.
그는 항상 붉은 말을 타고 양손에 칼을 들고 있었는데,
그 길이가 모두 7척이었고, 말을 몰아 칼을 휘두르면 향하는 곳마다 적이 쓰려졌다."고 하였다.


案 우리나라 쌍검은 단도를 택하여 사용하며, 녹영 쌍칼은 요도보다 짧다.
모원의가 단도로써 마상에서 사용하게 한 것은 대개 그 양손을 사용하기 때문이며
, 길면 사용 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진안이 마상에서 능히 7척 길이의 두 칼을 사용한 것은 이것이 비록 보통 사람을 넘는 용기이지만,
항구적으로 편리하게 사용될 기술은 아니다.

  마상쌍검보

맨처음 항우도강세를 하되, 오른손으로 고삐를 잡고 왼손으로 두 칼을 아울러 잡되 하나는 세우고 하나는 끼고 말을 몬다.
손책정강동세를 하되, 오른손으로 즉시 낀 칼을 가져 왼쪽을 향하여 펼쳐 열고 오른손으로 앞으로 정하고 왼손은 뒤로 정한다.
인하여 한고환패상세를 하되, 왼손 칼을 오른쪽 겨드랑이에 껴지고 오른손 칼로 향후격적한다. 뒤를 향하여 후려친다.
운장도패수세를 하되, 오른손 칼을 왼쪽 겨드랑이에 왼손 칼로 향후격적한다.
비전요두세를 하되, 왼손 칼을 오른쪽으로 휘둘러 방신하고 오른손 칼을 왼쪽으로 휘둘러 방신한다.
인하여 향전일격을 한다.
벽력휘부세를 하되, 오른손 칼을 왼쪽으로 휘두르고 왼손 칼을 오른쪽으로 휘둘러 방신한다.
인하여 앞을 향하여 일격한다.
왼쪽을 보고 방신하되 오른손 칼을 왼쪽으로 휘두른다.
오른쪽을 보고 방신하되 왼손 칼을 오른쪽으로 휘두르기를 세번 하여 항우도강세로 끝낸다.
또 말을 돌려 한고환패상세를 하고, 또 운장도패수세를 정한 수 없이 하여 항우도강세로써 마친다.
(5) 월도


칼자루 길이 6자 4치, 칼날 길이 2자 8치, 합한 무게 3근 14냥, 곁가지 날에 '이'를 끼운다.
황동으로 장식한 자루에 붉은 칠을 하고, 철준을 단다.
[예기도식]에 이르기를, "왕충의 논형에서 마땅히 도검의 언월구와 본조의 녹영 언월도를 비유할 수 있다."고 한다.
전체 길이는 7자이고, 날 길이는 2자 4치5푼이며, 위가 도톰하고, 뒤로 쳐다보면서 가지 날이 되고, 칼날을 용 입으로 물고 있다.
높이는 1치 5푼이고 구멍 철판으로 하며, 두께가 2푼이다.
자루의 길이는 4자 2치 8푼이며, 둘레는 5치 2푼으로, 목질에 붉은 옷칠을 하고 끝에는 철준을 단다. 그 철준의 길이는 4치이다.



[무비지]에 그려져 있는 언월도와 [예기도식에 그려져 있는 그림은 같으나,
오직 [무비지]에 그려져 있는 그림에는 중이가 꽂혀 있고, [예기도식]에 그려져 있는 것에는 이가 없다.
우리나라의 월도는 가을 낙엽처럼 엷고, 형식은 중국의 것보다 조열하나 서슬이 사납고 위맹하여 가히 적의 간담을 떨어뜨린다.
그 중량을 무겁게 할 필요는 없고, 보통 사람으로 하여금 감히 들지 못하게 하였으나 중국의 것을 형식상 본뜨는 것도 가히 할 것이다.

[병장기]에 이르기를,
"큰 칼은 무기로 쓰는 날 끝으로 가히 끊고 해칠 수 있다.
말을 베일 수 있어서 일명 감도라고도 하는데, 칼 길이는 7자, 날 길이는 3자, 자루길이4자이고, 밑에는 쇠끌을 사용했다.
기마용, 보병, 수병, 육군 모두 사용할 수 있다. 모양이 눈썹 끝같이 생긴 것을 미첨도라고 한다.
봉의 부리같은 모양을 봉취도라고 하며, 누운 달 모양같은 것을
언월도, 머리에 이른 것을 계도, 면이 모난 것을 방도라고 한다.
다시 유구도, 수도, 거도, 도도, 태평도, 정로도, 조천도, 개천도, 개진도, 획진도, 편도, 단도 등은
각기 그를 사용하는 사람의 기예의 등급에 따른 것이다."
모원의가 이르기를, '언월도는 연습할 때 그 웅실함을 보여주는 것이지, 진에서는 사용할 수 없다."고 하였다.


(6) 馬上月刀


보월도와 같다. [삼재도회]에 이르기를,
"칼을 쓰는 데는 왜인들만큼 묘리를 터득한 사람들이 없다.
그런데 그 도법에는 몇 가지 기예가 있다. 수가 높고 파하는 법을 알면 방어에는 무난하다.
오직 관운장의 언월도는 도세(:칼의 위력)가 원래 크며,
그 36 도법은 [병장기]에 기록되어 있어서 모르는 이가 없다.
칼 종류 중 이것을 제일로 삼는다. 특히 마상월도는 길어야 한다.
모름지기 앞으로는 말머리를 넘어야 하고, 뒤로는 말꼬리를 지나야 하기 때문이다."

[도검록]에 이르기를,
"관우는 유비를 소중히 여겨 신명을 아끼지 않았다.
스스로 도산의 철울 채취하여 두 개의 칼을 만들어 새기기를 만인과 공패라 했다.
공은 애석하게도 물속에 던져버리고 말았다고 한다. "


언월, 미첨 두 가지 칼은 모두 칼날이 넓고, 자루는 길고 그 사용법은 같다.
그러므로 [무경]에서는 언월도를 칼 중 제일로 삼는다.
도요도미 히데요시는 미첨도를 사랑하여 항상 그 좌우에 배열하였다.
그러나 모원의는 언월도는 실전 진에서는 사용할 수 없다 하였고,
상순은 논하기를 미첨도와 야도는 사용하기 힘들다 하였는데,
또한 혹시 옛날과 지금의 사용법이 때에 따라 달랐지 않았을까?
임진왜란 때 관운장의 영령이 나타나서 평양성을 탈환하였다.
도산 전투에서도 관운장의 신위가 분기하여 왜인들의 묘기를 쓸어버린 것은,
관운장이 저승에서 우리 동방을 도와줘서 우리나라가 면면하게 계승되는 복을 받은 것이다.
동방원정군은 사당을 짓고 영혼을 안정시켰다. 신종황제가 돈을 내려 비용을 분담하였다.
무릇 왜인들의 칼쓰는 솜씨로도 언월도의 휘두름 아래서는 피할 곳이 없었기에
그를 일컬어 검 중 제일이라는 것은 헛말이 아니다.
애석한지고, 36법이 전해지지 않음이여!

마상월도보

맨처음 신월상천세를 한다. 즉 왼쪽 겨드랑이에 칼자루를 끼고 말을 몰되 오른손으로
칼자루 앞을 잡고 왼손으로 칼자루 뒤를 잡아 이마 위로 높이 든다.
인하여 백호포휴세로 오른쪽 겨드랑이에 칼을 감춘다.
즉시 추산어풍세를 하되 오른쪽을 보고 한번 휘두른다.
도로 청룡등약세를 하되 오른손을 아래로 감추고 인하여 칼을 세워 높이 들고,
춘강소운세를 하되 왼쪽을 돌아보며 한번 휘두르고,
추산어풍세를 하되 오른쪽을 돌아보며 한번 휘두르고, 또 청룡등약세로 앞을 향하여 한번 친다.
왼쪽을 돌아보며 한번 휘두르고. 오른쪽을 돌아보며 한번 휘두르기를 세번 하고,
자전수광세를 하되 오른손으로 오른쪽 겨드랑이에 칼을 감추고 마친다.
말을 돌리게되면 백호포휴세로써 인하여 추산어풍세, 춘강소운세를 정한 수 없이 하고, 자전수광세로 마친다.

(7) 협도(挾刀)



지금 사용하는 협도의 자루 길이는 7자, 칼날의 길이는 3자, 무게는 4근이다.
칼자루에 붉은 칠을 한다. 칼등에 이를 낀다.





구보에 그려진 협도는 끝날 등이 비스듬히 휘었는데,
[무비지]에 그려진 계도, 필도와 지금의 협도를 비교하면 같이 않다.
그러므로 지금 쓰여지는 것으로 바꾸어 그리고,
나란히 병행하여 [무비지]의 미첨도와 왜인들의 장도(長刀)를 그린 것은 대동소이하기 때문이다.


모원의가 말하기를, "일본도에에는 몇가지가 있다.
크고 자루가 긴 것은 파도(;장도는 전투에 임하여 앞을 열며 전진하는 것이다)로 쓰인다.
이것을 일컬어 선도로 칼집을 엮어 어깨에 멘다. 혹은 손에 쥐고 뒤를 따르는데 소용되므로 대제라 이른다."


[왜한삼재도회]에 이르기를, "무비지에서 말하는 선도대제는 세속에서 말하기를 야도라 한다.
근세에는 사용하지 않는데, 자루의 길이는 3~4자이다. 삼재도회에서 말하는 이른바 장도가 있고, 무체도가 있다.
평상국에 이르러 오로지 미첨도에 혹하여 늘 이 칼을 좌우에 놓아 두었다."

협도보

용약재연세 - 중평세 - 오룡파미세 - 오화전신세 - 중평세
용광사우두세 - 우반월세 - 용광사우두세 - 창룡귀동세
중평세 - 단봉전시세 - 오화전시세 - 중평세 - 단봉전시세
중평세 - 용광사우두세 - 좌반월세 - 용광사우두세
은룡출해세 - 용광사우두세 - 오운도정세 - 수검가용세

(8) 등패



척계광이 말하기를, "늙은 등나무 손가락만한 것을 사용하여 골등으로 하고,
대나무 껍질을 촘촘히 감아 중심이 밖으로 튀어 나오고 안은 비우면 모든 화살이 들어와도 손이나 팡에 이르지 못한다.
둘레는 처마처럼 높이 솟아나서 화살이 이르러도 미끄러져 새거나 사람에 미치지 않는다.
안에는 등나무로 상하 두개의 고리를 만들어 잡을 수 있도록 하였다. 각 병사마다 하나의 방패와 요도를 잡고, 칼을 손과 팔에 싣고 한손으로 표창을 잡아 던지면 상대는 반드시 급히 응한다.
방패를 따라 뚫고 들어가게 하려면 반드시 낭선으로 하여야 한다.
만일 낭선이 없으면 긴 무기로 하여야 한다."
또 말하기를, "북방에는 등나무가 없어서 버드나무에 가죽을 대서 대신한다.
호마가 빨리 달리고 또 회갑(;투구와 갑옷)이 있으므로 반드시 표창을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



지금의 등패는 직경이 3자 7치로, 앉으면 은신하기 부족하여 조금 넓혀 중국식과 같이 하는 것이 마땅하다.
또한 지금의 등패는 잡는 곳을 부드러운 뽕나무로 하여 중국식과는 다르다.


모원의가 말하기를, " 근세에 조선인이 방패로서 조총을 막는데, 타당한 방법이다."라 하였다.
[병장기]에 이르기를, "등패는 무게가 가볍고 단단하여 비와 습기를 두려워 할 것이 없고, 보병에게는 간편하다."고 하였다.
[천공개물]에 이르기를, "간과(干戈)라는 이름은 가장 오래된 것으로, 방패와 창이 서로 연관되어 이름을 얻은 것이다.
대개 오른손으로 단도를 잡은즉 왼손으로 방패를 잡는다. 세속에서 방패라는 것는 이것을 말한다."고 하였다.
[염곡자록]에 이르되, "방배는 팽배인데, 보졸용은 8자 으륵배, 마군은 주칠배를 사용한다."
척계광이 말하기를, "요도는 칼 길이가 3자 2치이고 무게는 1근 10냥이다.
칼자루의 길이는 3치이고, 칼날은 순강을 쓴다. 칼자루는 짧아야 하고 모양은 굽어야 한다.
여러가지 완전패에는 거리끼지 않는다."고 하였다.
또한 말하기를, "표창 머리는 크고 길이는 5치이며,
무게는 4냥, 머리 직경 6푼, 길이 7자, 끝 직경 2~3푼, 주목이나 대나무 모두 된다.
철봉은 무겁고 커야 한다. 자루는 앞이 무겁고 뒤가 가벼워야 한다."

등패보

기수세 / 약보세 / 저평세 / 금계반두세 / 저평세
저평세 / 약보세 / 곤패세 / 저평세 / 매복세 / 선인지로세
매복세 / 곤패세 / 매복세 / 선인지로세
매복세 / 곤패세 / 매복세 / 약보세 / 사행세

4권

권법, 곤방, 편곤, 마상편곤, 격구, 마상

(1)권법


척계광이 말하기를, "권법은 흡사 전투기술로써의 예비가 없는 것처럼 보이나
사실은 수족을 활동시키고 지체의 힘쓰는 법을 익히기 위한 무예의 초보이다."라 했다.
모원의가 말하기를, "점 찌고 획 긋는 법을 안 연후에 8법을 가르치고, 말 안장에 의지할 줄 아는 이후에 말달리는 것을 가르칠 수 있다.
권법도 마찬가지이다."라고 하였다.
[무편]에 이르기를, "권법에 세가 있다는 것은 변화하기 때문이다.
횡, 사, 측, 면, 기, 립, 주, 복 모두 장호가 있어서 가히 지킬 수 있고 가히 공격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세라 한다. 권법에는 정해진 세가 있는데, 실용에는 정해진 세가 없다.
당하여 임기로 그를 활용한다. 변화에는 정해진 세가 없으나 실용에서 실세하면 안된다.


[시경] 소아편에 무권무용직위난계(無拳無勇職爲亂階)의 주(注)에 권은 힘이라 했다.
이아편에 호랑이를 맨손으로 친다. 큰내를 맨발로 건넌다.[춘추좌씨전]에 진후가 꿈에 초자를 때렸다는 것은 권박(拳搏)이다.
또한 [변한서] 애제기에 아뢸 때 활쏘는 법과 무희를 관람하였다. 주에 수박은 힘을 겨루는 것이므로 무희가 된다.
[감연수]에 손바닥 치는 시합을 기문(期門)이라 하는데, 힘을 헤아리는 행차를 즐겨하였다. 그 주에 변은 수박이다.
당 · 송 이래 그 술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그 하나는 외가(外家)라 하고, 또 하나는 내가(內家)라 한다. 외가는 소림(小林)이 성하다.
내가(內家)인즉 장송계가 정통하였다. 장송계를 계승한 것은 바로 사손 13로(老)이다.
그리고 그 법의 기원은 송나라의 장삼봉이다.
장삼봉은 무당의 단사로 홀로 적 백여명을 죽였다.
그리하여 드디어 절기로써 세상에 유명해졌다.
잠상봉으로 말미암아 이후 명나라 가정 때 사명에 전해졌는데, 장송계가 가장 정통한 것이다.


[영파부지]에 이르기를,
"소림법은 사람을 치고 솟구치며 뛰며 분기하여 뛰어넘는 것을 위주로 하는데, 혹 실전되어 소홀함이 있다.
그러므로 왕왕 사람들이 복원을 꾀하는 바가 있다. 이에 대해 장송계의 법은 적을 방어하는 것을 위주로 한다.
따라서 곤액을 당하지 않으면 술법을 발휘하지 않는다.
발휘하면 반드시 기량을 다한 바 되어 피함을 꾀할 틈이 없게 된다.
그러므로 내가의 기술은 더욱 좋다. 사람을 치는 데는 반드시 그 혈이 있는데, 훈혈 ·사혈 등이다.
그 혈에 따라서 가볍게 또는 무겁게 치면 혹 죽기도 하고 혹은 현기증을 일으켜 기절하기도 하며,
혹은 벙어리가 되기도 하는데, 털끝만큼도 차이가 없다.
더욱이 신비로운 것은 경, 긴, 경, 근, 절 다섯 비결은 입실제자가 아니면 서로 전하지 않는다.


대개 이 다섯은 보통으로는 사용되지 않으나 신비하게 쓰여지는 것은 마치 병가의 인, 신, 지, 용, 엄과도 같다할 것이다."
[내가권법]에 이르기를,
"외가로부터 소림에 이르면 그 술법이 더욱 정교해진다.
장삼봉은 이미 소림권에 정통하였는데,
다시 따르고 뒤집어 이를 이름하여 내가라 하는데, 그 한 두 가지만 터득하여도 소림권을 이기기에 충분하다.
왕정남 선생이 단사남을 따라 배워, 홀로 그 나머지 전부를 터극한 속에 그를 헤아려 베우고, 그 요체인즉 수련에 있다.
수련이 이미 성숙해지면 돌아볼 필요없이 주위 사정을 헤아려 손을 펴서 종횡 전후로 응하여 모두 긍계(肯棨 ;가장 중요한 곳)에 합당해진다.
그 수련법은 연수자 35에 연보자 18이 있는데, 총섭하여 육로(六路)와 십단금(十段錦) 중 각기 가결(歌訣)이 있다."

[육로]를 해석하여 이르기를,
"두문(斗門)은 왼쪽 어깨를 아래로 내려뜨리고 주먹으로 위를 쳐서 앞을 당하고,
오른손을 수평으로 밖으로 향하여 두 주먹을 상대하는 것이 두문이 된다.
오른발로 발 뒤꿈치를 들고 앞으로 기울여 기대고, 왼발 뒤꿈치로 뒤로 기대는 것을 연지보(連枝步)라 한다.
오른손은 두 손가락으로 왼손을 따라 갈고리처럼 나가고, 다시 갈고리처럼 나타나는 것을 난추마(亂抽麻)라 한다.
오른발이 역시 오른손을 따르고, 왼발을 향하여 앞으로 갈고리처럼 나아가고 다시 갈고리처럼 나타나 소탑보를 지으면,
이 또한 다시 연지통비장권(連枝通臂長拳)이다.
오른손이 먼저 음출로 길게 내뻗고, 왼손은 젖가슴 밑에 댄다.

왼손이 오른 주먹을 따라 역시 길게 뻗을 때 오른손 젖가슴 밑에 댄다.
이렇게 똑같이 주먹을 4번 길게 뻗는다. 발은 연지로 되고 길게 뻗는 주먹을 다라 아주 작게 비빈다.
좌우로 길게 뻗은 긴 주먹은 대상에 곧바로 뻗는 것이 필요하다. 손등이 안을 향하고 밖을 향하는 것은 병법 중 살상용 주먹이다.
선인조천세(仙人朝天勢)는 장차 왼손으로 길게 오른쪽 귀 뒤를 쳐서 왼쪽 앞을 찍고,
손을 아래 젖가슴에 대고 왼발을 왼쪽으로 문지르듯이 하면서 오른손으로 왼쪽 귀 뒤를 치고,
오른편 앞을 찍고 아래로 걸어 꼿꼿이 세우고, 왼 주먹은 등을 뒤틀고 오른 주먹은 바르게 코앞에 당하여 조천세(朝天勢)와 비슷하다.
오른발 뒤꿈치를 성큼 나아가 앞을 가로 지른 것에 당하게 하고,
밖을 향해 기대게 하고, 왼발을 丁자 모양으로 뾰족하게 하는 것을 선인보(先人步)라 한다.
무른 보행에는 모두 쭈그리고 굽힘이 있어야 하고, 꼿꼿이 걷는 것은 병법에서 금하는 바이다.
포월(抱月)은 오른발로 오른쪽을 향하여 뒤까지 이르는 것이며,
대살보(大撒步)는 왼발을 따라 오른쪽으로 돌며 좌마보(坐馬步)를 하며,
두 주먹은 평음으로 상대하는 것을 포월이라 하고, 다시 앞으로 문질러 손은 다시 두문(斗門)으로 돌아오고,
발은 연지(連枝)로 돌아와 사장권(四長拳)이 좌우권의 긴요한 점을 수렴한 것이고,
또한 가슴 앞쪽을 당하여 오른쪽은 밖으로 왼쪽은 안으로 양쟁(; 양발 뒤꿈치살)을 겨드랑이에 끼고,
채직을 후두르듯이 발을 비벼 돌려 향하여 오른발은 앞에 있고, 왼발은 뒤에 있으면서 오른발이 곧 앞으로 나아가면서 거듭 밀쳐나가고,
오른손바닥을 위 아래로 뒤집어 어깨는 곧바로, 팔꿈치는 수평으로 가로 굽히고, 앞을 각척 모양으로 왼손으로 찍듯이 연 뒤,
왼손을 겨드랑이에 대고 한번 회수하며 얼굴을 돌리고, 왼손 역시 손바닥을 위에서 아래로 뒤집으며 왼발을 역시 위와 같이 한다.
살추(煞鎚)는 왼손을 평음으로 가로 젓고, 오른손은 뒤를 향하여 왼손바닥에 이르기까지 친다.
오른발은 오른손을 따라 가지런히 왼발 뒤까지 나간다. 충로(衝爐)는 오른손이 뒤를 향하여 몸을 뒤집어 바로 찌고,
오른발은 뒤를 향하여 따라 돈다. 왼발은 걸어 일어나고,
왼주먹은 아래로 내려치면서 왼편 무릎 위에 나타나서 조마보가 된다.
이는 오로지 소림법을 파하기 위한 것이다.
루지알금권 등법은 오른손으로 왼쪽 뒤꿈치 살을 부여잡고 왼손은 즉 오른손을 따라 안으로 일으켜 세우고,
왼발은 윗쪽 앞을 핍보하고 오른발을 따라 나갔다가 물러나 인하여 다시 연지보를 하고, 양손은 인하여 두문하고,
두 발을 흔들어 두 발을 오른쪽으로 비벼 좌마보를 취한다.
양 손주먹을 평음으로 가슴 앞에 나타나, 장차 오른손으로 평직으로 날개처럼 쳐 열었다가 다시 가슴에 이르기까지 거두어 들이고,
왼손 역시 이같이 한다.
[십단금]에 이르기를,
좌산호세(坐山虎勢)는 두문을 일으켜 연지족으로 오른쪽으로 비벼 좌마를 취하고, 양손주먹은 평음으로 가슴에 나타난다.
급보삼추(急步三追)는 오른손으로 흩뿌리듯이 열고,
왼쪽으로 몸을 돌려 손이 앞에 있을 때 인하여 연지보로 되고, 이렇게 나아갔다 물러난다.
염보(殮步)는 순환하며 세번 나아간다.
따라서 쌍도(雙刀) 염보는 왼편 어깨를 곧장 아래로 늘어뜨렸다가 주먹을 바로 세워 앞을 당하고,
오른손은 수평으로 밖으로 향하고, 또 왼손을 안으로 양발을 팽팽히 하는 것을 염보라 한다. 곤착진퇴삼회는 장차 앞손은 아래를 문지르고 뒷손은 찍어나가기를 세번 나아갔다 세번 물러난다.
무릇 찍는 법은 위는 둥글게, 가운데는 바르게, 아래는 둥글게인데, 이는 도끼 모양과 같다.
분신십자는(分身十字) 양손은 이내 가슴에 나타나고 왼손으로 흩뿌리듯 열고,
왼발은 왼손을 따라 나가고 오른손은 길게 내뻗어 순환하여 세번 내지른다. 오른손이 인하여 가슴에 나타나고, 오른손으로 흩뿌리듯이 열고,
왼발로 면을 돌려 왼손으로 길게 내뻗어 역시 순환하여 세번 내지른다.
가도작귀영체는 오른손, 다시 또 왼손으로 안으로 찍는 법은 앞과 같다.
곤착법은 다만 얼굴만 돌리고 단지 세번 찍고, 오른손을 이용하여 몸을 돌린다.
유권전보는 주먹을 아래로 늘어뜨리고 왼손은 돌려치고, 오른손은 아래로 내밀고 위로 나아간다.
음면을 다 갖추고 왼발은 왼손을 따르고, 오른발은 오른손을 따르고, 오른발을 오른손에 늘어뜨려 문지른다.
얼굴을 돌리지 않고 두 끈을 맨다.
곤착퇴귀원로는 왼손으로 몸을 뒤집어 세번 찍고 물러난다.
도수전진(蹈隨前進)은 왼손은 수평으로 가슴에 댔다가 돌려 흩어 열고 평직으로 뻗고,
오른손은 주먹을 덮어 왼팔 가운데 끝나는 데까지 위로 친다.
왼발은 왼손 따라 염보로 들어오고, 몸을 뒤집어 오른손 역시 수평으로 가슴에 댔다가 위와 같이 한다.
곤착귀초비보는 오른손으로 뒤를 찍고 오른발로 문지른다.
금계독립긴반궁은 오른손은 다시 찍고 오른발은 비벼 돌리며, 왼손은 위로부터 아래로 내려꽂고
왼발은 조마보로 반보 나아가고, 오른발을 따라 다시 연지보를 한다.
즉 육로는 권충, 조마보, 좌마, 사평, 양고이다. 즉 육로는 양시요파, 환두문, 전좌마, 요파이다.
육로와 십단금은 같은 점이 많다. 대략 육로는 뼈를 연마하여 능히 긴장하도록 하고,
십단금은 긴장 후에 또한 방개하도록 한다.



중국의 24창, 32권은 기회에 따라 백번 변한다.
비록 혹 몇가지 자세가 서로 연결되어 반드시 자세를 이루지 못할지라도
자세는 서로 승계하여 연결과 맥락이 마치 [주역]의 서괘처럼 끊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모원의는 조선의 검세를 역시 세법, 자법, 격법으로 구분하여 논하였고,
이미 우리나라의 예도는 이미 모원의의 논설에 실려 있다. 이에 속보로써 복습한다.
즉 전법으로써 말한다면 척계광의 보에는 반드시 두 상대가 있다.
두 상대란 갑이 탐마세를 지으면 을은 요단편세를 짓고,
갑이 칠성권세를 지으면 을은 기룔세를 취한다는 것 등과 같이 모두 공수 자연지세이며,
오늘의 법칙이 처음 모세를 짓고 다시 모세를 지어 처음부터 끝까지 모여서 일통을 이룬다.
이미 본의를 잃었다가 또한 항차 갑을이 같이 한 자세를 취하여 마치 그림자가 그 형상을 따라 상박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안시측신세와 구류세 등 몇 자세에 지나지 않아서 끝나버린다.
두 상대가 메고 새로 치고 변화하여 이로부터 거의 유희처럼 차례로 행해진지 이미 오래되었으므로 이로 인하여 구보가 되었다.
그러나 식자는 당연히 열가지 자세를 잃어버렸음을 스스로 알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에는 그 비결을 증입한다.


(2) 곤방


척계광이 말하기를 "길이는 7척, 무게는 3근 8냥, 날 길이 2치의 중봉이 있다.
한 면에 기배(起背)가 있고, 한 면에 혈조가 있어서 정교하게 갈아 무게는 다량이다.
이 기법 중에는 모두 일타이자(一打一刺)가 있는데, 날이 없다면 어떻게 찌르겠는가?
이제 작은 날을 붙이나 다만 날이 없다면 어떻게 찌르겠는가?
이제 작은 날을 붙이나 다만 날이 길면 방두가 힘이 없어 다른 사람의 곤방을 누를 수 없게 된다.
단지 2치 길이의 오리 주둥이와 같은 모양이면 가하다.
때리면 날카로운 곤방의 이점을 살리고, 찌르면 날카로운 날이 되어 양자가 서로 보완한다.
남방에서는 곤이라 하고, 북방에서는 백방이라 한다."



[병장기]에 이르기를, "곤방제에 여섯가지가 있다.
모두 단단하고 무거운 나무를 취한다. 길이가 4~5자이고, 그 윗부분을 쇠로 감싼 것을 가려 봉이라 한다.
머리 부분에 날카로운 칼날을 붙이고 아래에 쌍갈고리를 거꾸로 매단 것을 구봉이라 한다.
이리 이빨처럼 위에 곧은 침을 단 것을 낭아봉이라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고르게 굵은 것을 저봉이라 하고, 보리 타작하는 도리깨같은 것을 철련협봉이라 한다.




임진란 때 일시에 삼국의 정예가 모였다.
중국의 장창, 우리나라의 편전, 왜국의 조총은 이로부터 천하에 유명해지기 시작하였다.
세상에 전하기를 장창은 무예 중의 왕이요, 곤 역시 무예중의 으뜸이라 한다.
이는 곤이창의 반단(半段)이고,
척계광이 오리주둥이를 붙이기 시작한즉 창과 곤이 서로 표리를 이루어 여러 무기의 용신이나
수족의 자세는 모두 곤방법 이외에서 나온 것이 없다. 그러므로 모원의도 모든 무예의 기본을 곤방법으로 삼는다.


그리고 곤방법의 으뜸은 소림이다. 소림에 대한 설은 정종유의 종법을 밝힘보다 상세한 것이 없다.
정종유는 속언에 이르기를 "천번 내려 치는 것이 한번 찌르는 것만 못하다."는 말이 있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소림곤은 3푼은 곤법이고, 7푼은 창법으로 창을 겸하고 곤방을 연대하는 이와 같은 소림곤이 곤법 중 백미이다.
이제 종법을 밝힌 6로보를 해독한 것은 이로써 병법을 논하는 자의 거울로 할 것을 기대하였음이다


(3) 편곤(鞭棍)


지금 사용하는 편의 길이는 8자 9치이고, 자편은 2자 2치 5푼이며,
곤의 길이는 10자 2치 5푼이다. 모두 단단한 나무에 붉은 칠을 한다.


속칭 철연가를 편곤이라 하는데, 곤의 머리에 2자 되는 나무를 끼워서 편에 끈이 달린 것처럼 한다.
그러므로 편곤이라 하는데, 그러나 이제 이 도보의 보편곤에는 편과 곤이 둘인데,
마상편곤에 이르면 다만 한가지 무기일 뿐으로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잠시 여러 서적들을 널리 고구하여 명품으로 판단해 보면 곤은 봉이다.
속명의 주장, [예기도식]에 실려있는 연가,
[무비지] 소재 백봉은 지금 사용하는 편곤과 비교하면 훨씬 견장하므로 함께 그림으로 제시한다.

[예기도식]에 이르기를,
"[통전] 위공수성편에서 말하는 연가는 벼를 두들기는 도리개 모양과 같은데,
담장 밖에서 성 위의 적을 치는데 사용한다."
우리나라에서 정하여 사용하는 나무 규격은 좌우 양손에 쥐는 봉장 1자 5치 5푼이고 가의 길이는 7치 5푼,
둘레는 모두 2치 5푼이다. 모두 황유를 바른다. 양끝의 집게는 철수로 각각 고리를 붙이고, 쇠줄을 연결한다.

(4) 마상편곤




지금 사용하고 있는 편장은 6자 5치이고 자편은 1자 6치이다.
합죽의 속껍질을 한줄로 하고, 혹은 붉은 색이나 검은 색칠을 한다.
모원의가 말하기를 "철련협봅은 본래 서융으로부터 출발한 것으로 마상에서 사용되어 한나라의 보병과 대적하였는데,
그 모양이 농가의 타맥하는 도리깨와 같았는데, 쇠로 장식하여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치는 것이 편리하였다.
그러므로 한나라 군사 중에서 잘 쓰는 자는 서융인들보다 교묘하였다."


[남풍잡기]에 이르기를,
"적청이 농지고를 정벌할 때 야밤중에 곤륜관을 넘어 기병 2천명을 적 후방으로 보내
표창과 방패로 무장한 마군의 돌격을 받아 모두 머무를 수 없었는데, 마상철련가로 치니 드디어 모두 쓰러졌다."
[속대전]에 이르기를,
"편추는 출마 후 오른손으로 채찍을 잡고 뒤를 향하여 쳐들고, 또 양손으로 앞을 향하여 쳐들고,
인하여 좌우를 향하여 한번씩 각각 휘둘러 매번 한번씩 친 후 문득 좌우로 한번씩 휘두른다.
여섯개의 허수아비는 서로 28보씩 거리를 두고 좌우로는 서로 마보로부터 3보씩 거리를 둔다."

마상편곤보

맨처음 상골분익세를 하되 왼손으로 고삐를 잡고 오른손으로 곤을 잡아 높이 들며 말을 몬다.
청룡등약세를 하되 두 손을 이마 위로 높이 든다.
춘강소운세를 하되 왼쪽을 돌아보고 한번 휘둘러 방신한다.
백호포휴세를 하되 양손을 이마 위로 높이 든다.
벽력휘부세를 하되 왼쪽을 향하여 한번 친다.
인하여 왼쪽으로 돌아보고 방신하고
비전요두세를 하며 오른쪽으로 향하여 한번 치고
인하여 오른쪽으로 돌아보고 방신하여 마친다.

(5) 격구




[경국대전]에 이르기를 장시(;격구체)는 길이는 9치이고 너비가 3치이며, 자루의 길이는 3자 5치이고, 공둘레는 1자 3치이다.
출마표는 구표와 50보를 띠어둔다. 구표와 구문은 200보 거리를 둔다.
구문 내의 거리는 5보이다. 쳐서 구문을 빠져나가면 15푼 점을 주고, 빗나가는 자는 10점을 준다.


[용비어천가] 주에 이르기를,
"고려시대에 매년 단오절에 예선에서 뽑힌 무관 중 나이 젊은 사람이나 의관자제들이 한 길가 넓은 곳 구규에 용봉장전을 설치하고,
장막 앞ㅍ 좌우에 각 200보를 허용하는 그 길 가운데 구문을 세우고,
길 양편에 오색 금단으로 장식한 부녀의 막에 명화로 수놓은 방석을 깐다.
격구자는 성대한 복장과 온갖 꾸밈을 다하여 궁극 사치가 화려하였다.


안장 하나의 비용이 중인 열집의 재산의 값과 맞먹었다.
2대로 나우어 좌우에 섰다가 기생 한 사람이 공을 잡고 걸어가는 중 주악이 그치면 공을 길 가운데로 던진다.
좌우에 있던 대오 모두가 말을 달려 공을 다투는데, 먼저 집는 자가 수격이 되고, 나머지 모두 물러난다.
서서 구경하는 자 산적한 것 같다.

격구보

맨처음 기 아래 말을 몰 때 장으로써 말목과 말귀와 더불어 가지런함을 비이(比耳)라 한다.
장으로써 말 가슴에 닿는 것을 할흉이라 한다.
몸을 기울여 드러누어 장으로써 말꼬리에 비김을 방미하 한다. 말을 달려 공을 훑어 놓은 곳까지 이르러 장의 안쪽으로 비껴 공을 높이
쳐드는 것을 배지라 한다.
장의 바깥으로 공을 밀었다가 끌어 들어 던지는 것을 지피라 하고, 또 이르기를 도령이라 한다.
인하여 비이로써 왼쪽으로 돌아 또 할흉하고, 두번째 방미하고,
공을 던지는 곳에 이르러 다시 공을 끌어들임을 이르러 구을방울이라 한다.
이같이 하기를 세번 하고 이에 말 달려 치며 행구하라.
세번 돌기를 마쳤으나 지세가 편편하지 못하여 가히 행구치 못할 때면 혹 네번, 혹 다서번 돌아도 무방하다.
첫 행구에서 놓치지 않으면 비이로써 두번, 혹 세번 하라.

비이한 후에 손을 들어 놓아쳐 손을 높이 들리고 아래로 드리워 양양함을 수양수라 한다.
수양수는 정한 수 없이 하나니 구문을 나가는 것을 한을 삼으라.
공을 던진 후에 허수양수를 하고, 또 방미를 하고,
또 공을 비껴 끌어들여 수양수로써 홍문을 향하여 던져 들거든,
인하여 공을 좇아 문으로 나가
허수양수로 공 둘레를 세번 돌아 한번 끌어들여 도로 홍문으로 들어와 도청 장막을 지나면 북을 울린다.
인하여 비이로써 달려 말을 몰아 운지로 돌아와 마친다.


혹 비이할 때 수양수를 미처 못하여 공이 이미 문으로 나갔거든 곧 구문 안에서 허수양수를 하고,
또 구문 밖에서 역시 허수양수를 하고,
혹 공이 구문 앞에 이르러 그칠려고 하거든 다시 치고 달려 구문으로 나감이 또한 무방하다.

(6) 마상재(馬上才)


제 1세 - 달리는 말 위에 서거나 삼혈총을 쏜다.
제 2세 - 좌우로 말을 뛰어 넘는 것으로 속칭으로 좌우칠보라 한다.
제 3세 - 말 위에서 도립(;거꾸로 서기)한다.
제 4세 - 가로 누워 말 위에서 거짓 죽은체 한다.
제 5세 - 좌우의 등자 뒤에 몸을 숨긴다.
제 6세 - 세로 누워 말꼬리를 베고 눕는데, 혹은 좌우로 몸을 감추거나 좌우로 넘나
드는 것을 구분하여 여덟가지 세로 하기도 한다.
이상의 기법은 단마를 사용하여 하기도 하고, 쌍마를 사용하여 하기도 한다.




[업중기]에 석호는 재주 부리는 사람의 옷을 입고 원숭이 모양을 짓고 말 위를 달리는데,
혹은 말 옆구리에 있기도 하고, 혹은 말 머리에 있기도 하고, 혹은 말 꼬리에 있기도 하여 달리는 것 같았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원숭이 말타기라 하였다.
이는 즉 마상재의 시작이라고 알려졌다.
[소편금중]에는 단오절에 용주표기지희라는 놀이가 있는데,
표기하는 자라는 것은 한 사람이 말타고 깃발을 들고 앞서가고,
뒷 사람이 말을 타고 뒤따라 가되, 각자 말 위에서 기교를 부려보며 대개 말타는 것을 연습하는 것인데,
이는 실제의 몽고의 제도이다.


그러한즉 명나라나 조선조에서도 이러한 기교가 역시 있었지만,
원나라에서 이르기를, 단오절은 고려의 격구와 서로 부합한다.
이탁의 안사람의 [마기부]에 요지 금안지상하여 번개처럼 달려가는 모습이 심히 아름답다.
몸을 옥등 곁에 맡기고 질풍처럼 속여 달린즉 그 체제를 이미 가히 생각할 수 있다.
오늘 중국에서 통칭 입마기라 부르는 것 중 안장에 올라 등을 돌리는 것이나,
북처럼 왔다갔다 하는 것은 초마류이다.
순풍기라는 것은 가로눕는 류이다.
방거상이나 투운환이라는 것은 등자 뒤에 몸을 숨기는 류이다.
목가(木架)를 설치하고 여러가지 자세를 익숙하게 연습하는 것을 잔가라 하는데,
그러나 그것이 사서에서 산견되는 것은 역시 [좌전]에 진나라 군사 승차를 뛰어넘어 타는 것으로부터 상고할 수 있을 것이다.
가거(駕車)는 반드시 말로써 하는 것인즉, 넘어 타는 초마류이다.
[사기]에 이광이 흉노에 잡히어 두 말 사이에 묶여 있었는데,
이광이 거짓 죽은체 하였다는 것은 두 말에 가로 누었다는 것이다.
장형의 [서경부]에 장대로 도려를 찾는다고 하였다.
부현의 [서도부]에는 도려인은 발이 빠르고 홀연히 발뒤꿈치로 매달렸다가 넘어졌다 한다.
[사물원시]에 도려는 이내 놀이기예의 이름이라는 것은, 몸이 가볍고 줄타기를 잘하며,
발뒤꿈치를 들고 배를 돌리는 것의 이름이다.
지금 안장 뒤에 몸을 감추는 것을 할 때 혼괴지세라는 게 있다.
[교방기]에 한무제 때 한 어린이가 번근두에 절묘하여 능히 장대를 타고 도립하여 역행연도라 불렀다.
즉 옛날의 지행은 자라 종류이다.


진나라 함강 연간에 시랑 고진이 말하기를, 발로는 하늘을 밟고 머리로 땅을 밟으니,
천지의 순서에 반하고 인륜의 도리를 크게 손상하는 것이 도립이다.


[당서]에 배민이 혜에 포위되어 말 위에 서서 칼춤을 추었는데, 사방에서 모여든 화살을 모두 칼로 막아 동강냈다.
[징비록]에 내금위의 조웅이 용감하여 능히 말 위에 서서 달리면서 적을 죽일 수 있었는데, 즉 지금의 제 1세이다.
명나라 왕발이 단오에 기사, 격구, 시연을 보고 시를 지어


"어지러이 오고 가는데 더욱 빨라 말 위에 있는 것을 보면 어느새 말 배에 숨어 있다."
즉 지금의 제 5세로, 소위 등라장신이며, 제 6세는 세로 누운 것과 비슷하다.
격구의 방미는 대개 옛날의 치마시예통에서는 희마라 한다.
그러므로 [진서]에 환현이 은중감에게 청사 앞에서 말놀이를 했는데, 창으로 은중감과 비겼다.
[수서] 심광전에, 심광은 용감하고 재빨라서 희마를 잘해 천하제일이고, 육비선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또한 팽성에는 항우의 희마대가 있은즉, 지금의 마기라는 것을 비록 희마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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