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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료, 무농약, 무제초제로 벼농사를 짓는 송광일박사의 자연재배 현장]
* (codec 문제로 영상이 나오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그 때는 [You Tube]에 올려놓은 같은 영상을 열어보시기 바랍니다. 이 주소를 클릭하세요: http://youtu.be/LW1whVxUbxk)
(새로운 농업기술/농업생산 방식에 관한 영상파일을 왜 이 [영상 아카이브]에 올리느냐고 의문을 표시하는 분들이 있을 것 같아서 약간의 설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인간이 생명유지를 위해서 외부로부터 음식을 섭취하는 것은 기본적이고도 필수적인 행위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살아나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무슨 음식을 어떻게 섭취하느냐는 나라나 민족집단에 따라서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이것이 바로 ‘문화’이고, ‘음식’문화는 한 민족의 문화의 가장 중요한 부분의 하나이지요. 따라서 문화를 연구하는 인류학자가 음식문화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연구활동의 하나이지요. 그런데 이 음식문화는 어떤 재료를 어떻게 요리해서 어떻게 먹느냐를 포함하고 있지요. 또한 음식재료, 즉 우리가 어떤 식으로 생산된 식재료를 먹고 있느냐는 것은 바로 우리의 건강상태와 직결됩니다.
근래에 와서 우리는 과연 우리가 먹고 있는 식품이 안전한지를 심각하게 생각하는 단계에 와 있습니다. 넘쳐나는 가공식품에 포함된 각종 화학물질은 더 말할 것도 없지만, 그 원재료인 농식품 마저도 비료와 농약, 그리고 제초제 없이는 농사를 지을 수 없는 ‘과학영농’의 시대에 살면서 알게 모르게 얼마나 많은 유해한 물질이 우리의 식생활을 통해서 우리의 몸 속으로 들어가는지 자세히 알 길이 없습니다. 다만 안전/건전하지 못한 식재료라고 하드라도, 그것을 먹고 금방 건강에 이상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그 식품/식재료의 안전성을 의심하는 것은 무리이기에 혹시 불량식품이라고 하드라도 그런 유해물질이 우리 몸 속에 쌓여가고 있기는 하지만 우리가 그것에 주목하기는 어렵습니다.
현대의 ‘과학영농’은 인류의 식량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지대한 공헌을 해왔지요. 이것은 비료와 농약, 그리고 제초제의 발달로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가지가 인류의 건강에 심각한 문제를 가져다 준다는 점에 대한 인식이 점차 높아져 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당장 우리가 이 과학영농을 포기하고 옛날로 돌아갈 수는 없는 일입니다. 식량생산 부족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과학영농은 결과적으로 우리의 건강을 위협하고, 우리의 토지를 황폐화시키고 지하수를 심각하게 오염시키고 있지요. 최근의 유기농 운동이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등장하고 있기는 하지만, 유기비료 그 자체도 현대의 각종 화학물질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각종 동물의 분료를 사용한 유기비료에도 동물사료에 포함된 화학물질이 여과되지 않았고, 더하게는 농작물의 생장에 인간의 간섭이 개입되기에 작물들은 스스로 먹이(영양)활동을 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는 약체의 식재료로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최근에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자연재배’입니다. 비료와 농약, 그리고 제초제를 일체 쓰지 않고, 여기에 더해서 농사를 위해 논밭을 일체 갈지도 않고 농작물을 성공적으로 재배하는 기술입니다. 이것은 실로 우리의 상식을 뒤집는 영농방식입니다. 영양분을 일체 공급하지 않고도 농사를 지울 수 있다? 상식에 어긋나는 일 같지만, 이로서 각종 화학물질 및 인간의 건강을 위협할만한 유해물질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식재료가 생산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식재료에 대해 여러가지로 의문이 제기될 수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탄생한 그 식재료는 어떤 과학적 검증실험에도 열려있는 새로운 방식의 기술입니다. 이미 13년전부터 50여종에 달하는 채소를 이 자연재배로 생산해온 한 농장에서 재배하는 작목의범위를 넓혀 벼농사에까지 성공적인 결과를 내고 있는 한 사례를 여기에 소개하는 바입니다.
나는 지난 3년여 이 자연재배의 세계를 탐색해왔습니다. 한국과 일본의 자연재배 현장을 두루 탐방해오면서 가장 오리지널하고, 같은 원리를 다양한 작목에 성공적으로 적용시킨 한 사례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이 영상클립을 본 [아카이브]에 올립니다.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만, 어떤 방식으로 농사를 지어 어떤 식재료를 생산하는지는 ‘물질 문화’(material culture)의 한 부분이고, 이것은 바로 인류학의 연구 주제인 ‘문화’이기에 이 영상 클립을 인류학과의 [영상 아카이브]에 올리는 것입니다.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이문웅)
비료도, 농약도, 제초제도 전혀 쓰지 않고, 김 메기도 하지 않고 벼농사를 짓는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방식으로 벼농사를 성공적으로 짓고 있는 사람이 있다. 무슨 그런 헛소리를 하느냐고 하겠지만 여기에 그 [자연재배] 현장을 소개한다.
그는 최근 [기적의 채소]라는 책을 낸 바 있는 송광일박사(광주광역시 광산동 양산동)이다. 벌써 13 년째 자연재배를 실천하면서 각종 채소를 생산해온 송박사가 자신의 자연재배 방식이 거의 모든 농사에 적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내기 위해서, 복숭아, 사과, 포도 등의 과일도 성공적으로 생산해내었다. 그의 자연재배 방식이 특이한 것은 이것들이 모두 시설재배, 즉 비닐 하우스에서 재배한다는 점이다. 왜 그가 각종 야채를 비닐 하우스 속에서 재배하는가? 그의 대답은 우리의 상식을 뛰어넘고 있다. 그 대답인즉, “물을 통제하기 위해서.” 식물의 씨앗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해서부터 일단 안정이 될 때까지만 물을 공급하고, 그 후로는 물을 통제 함으로서 식물이 광합성을 하고, 뿌리(와 잔뿌리)를 많이 내어 스스로 살아나가도록 유도하기 위한 조치라고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식물은 살아남기 위해 처절한 몸부림을 치는 과정에서 세포조직이 단단하고 맛있는 식재료로 탄생한다는 것이다. 송박사의 비닐 하우스에는 전혀 냉난방을 하지 않기에 하우스 운영에 추가적인 비용도 전혀 들지 않는다. 또한 하우스 안의 농지는 전혀 밭갈이를 하지 않는다. 작물은 출하할 부분(채소나 과일 등)만 채집하고 필요 없는 부분은 모두 그 자리에 남김으로서 그것이 유일한 거름(?)이 되는 셈이다. 이 하우스 재배의 운영 비용은 씨앗을 뿌리고 거두어들이는 노동력이 전부이고, 비료나 농약, 제초제, 김 메기 비용 등의 추가적인 비용을 일체 들지 않는다.
이 자연재배 기술이 하우스가 아닌 자연상태의 노지에서도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해보이기 위해서 송박사는 7년 전에 노지에 논농사를 계획했고, 금년에 6년째의 수확을 했다. 나는 2년 전(2010. 6. 29)에 처음으로 송박사의 안내로 그의 논(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산동 242번지)을 방문한 바 있다. 당시엔 모내기 후에 벼가 15센티 정도로 자랐을 때였다. 논에는 벼가 싱싱하게 잘 자라고 있었고, 그가 선택한 ‘우렁이 농법’으로 우렁이들이 논의 잡초들을 왕성하게 먹어 치우고 있었다. 그 해 송박사로부터 보내온 자연재배의 현미 쌀을 먹어보고는 식감이 좋고 구수한 밥맛에 나는 실로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금년에는 꼭 이 논의 수확 직전 상황을 보고 싶어서 송박사를 찾았다. 이번이 송박사의 자연현장을 네 번째로 찾은 탐방이었다. 황금 빛의 그의 벼농사 현장은 생기가 충만했다. 두 필지로 나누어진 그의 논은 모두 2,400평이었고, 나란히 있는 그의 논 옆에는 일반의 관행농업 벼농사를 하고 있어서 뚜렷이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금년에는 이 지역에 적어도 세 번에 걸쳐서 큰 태풍이 지나가면서 이 일대에 많은 피해를 주었다고 한다. 주위의 많은 관행농업의 벼들이 태풍으로 쓰러져서 피해가 많았고, 벼 알들이 말라버리는 논이 많았다지만, 송박사의 자연재배 논의 벼는 굳건히 버텨냈고, 알곡이 충실하게 영글었다. 벼 자체의 건강상태(?)가 좋았기 때문에 이런 어려움들을 버텨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내가 다녀 온지 사흘 후에 이 논의 수확행사가 있었다. 나는 다시 가지 못했지만, 송박사의 생명과학연구소의 이형근씨가 수확장면을 담아준 사진들을 합쳐서 여기에 선보이는 영상 클립을 편집해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자연재배의 세계 일면을 보여주기 위해 이 아카이브에 소개한다.
송박사의 금년 수확은 한 마지기당 석 섬정도로 일반농의 평년작 수준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주위의 일반농들은 금년에 피해를 많이 봐서 평년작 수준을 훨씬 밑돈다고 한다. 참고로 작년에는 더 수확이 좋아서 이 논에 넉 섬을 수확했다고 한다. 역시 금년에도 자연재배의 힘을 여실히 보여준 셈이다.
참고로 이 영상클립에서 송박사가 소개하고 있는 일반농과 자연재배의 농사방식 차이를 한번 음미해보자. 일반농에서는 논농사를 시작할 때 일단 논을 갈아엎고, 물을 댄다. 그 후 노타리(콤바인에 칼날 같은 장치를 달아 논의 흙을 분쇄하고 뒤 흔들어 놓는 작업)를 하고 이 노타리 작업과정에서 화학비료를 뿌리고, 노타리 뒤에 제초제 병 3개를 달고 뿌리면서 작업이 이루어 진다. 이 때문에 논에는 풀이 나지 않는다. 그 후에 모를 옮겨 심고, 3일 후에는 제초제, 또 보름 후에도 제초제를 뿌려야 풀이 나지 않는다. 그 후에도 비료와 농약 살포는 끝없이 이어진다.
그러나 송박사의 자연재배 논에는 비료도 농약도 일체 치지 않고, 단지 우렁이를 사다가 풀어놓고, 우렁이로 하여금 잡초 청소(?)를 시킨다. 관행농업에서는 우렁이가 농약 때문에 살지 못하지만 자연재배 농에서는 우렁이가 신나게 먹이 활동을 해준다.
송박사의 이 자연재배 논농사 현장에는 여러 지방으로부터 최근 수많은 농민들이 단체로 다녀갔다고 한다. 이런 상황의 연장선상에서 최근 전라남도 고흥군에서 송광일박사의 자연재배를 도입하기 위한 ‘시범단지’를 조성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는 사실은 우리나라 농업발달사에 귀중한 도약의 한 사례로 기록될만 하다. 이를 위해 고흥군은 [자연재배 사업단]을 조직했다고 한다. 금년(2012년)에는 한 필지(전남 고흥군 풍양면 당두리 소재; 논 6,000평)에서만 시험재배가 시작되었고,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시범단지’의 자연재배가 실시될 예정으로 현재 지역 농민들로부터 지원자를 모집 중이라고 한다. 여기에는 군 당국으로부터 만약 자연재배가 실패할 경우 손실보전을 해 줄 것을 약속한 모험적인(?) 재배이지만, 벌써 지원자가 넘쳐서 선별 해야 할 지경이라고 한다.
금년 시험재배를 실시한 농가와의 통화에서 전해들은 바와 함께 이 시험재배를 주도하고 있는 송광일박사의 말로는 금년엔 약간 늦게 모내기를 했고, 9월에는 대형 태풍 [볼라벤]의 직격탄을 맞아 ‘흑수’상태가 심해서 큰 차질이 예상되지만 인근의 관행농 벼농사에 결코 뒤지지 않은 상태라고 한다. 이번 고흥군의 모험(?)은 새로운 혁신적인 영농방식을 도입하여 지역활성화의 기틀을 확립하려는 지방자치단체의 선도적인 발전전략으로 평가될 만 하다고 생각한다.
참고로 이 영상클립(7분22초 분량)은 나의 네 차례 송박사의 농장 탐방 중 2010년 6월에 담은 영상과 금년(2012년 9월)에 담은 영상, 그리고 그 사흘 후의 수확작업을 담은 사진(이형근씨 촬영)을 순차적으로 합쳐서 하나의 영상으로 편집한 것이다. 수확장면의 배경음은 현장음이 아닌 일반 경운기 작동 소리를 삽입해서 분위기를 살렸다.
송광일박사의 자연재배는 실로 ‘경의롭다’고 표현할 수 밖에 없었다. 아무런 화학비료도, 퇴비도 주지 않은 채 농약도, 제초제도 일체 사용하지 않고 이루어낸 성과로는 도저히 믿겨지지 않을 정도이다. 작년에도 송박사의 포도와 복숭아, 사과를 맛본 적이 있어서 그 당도(糖度)랑 맛이 지금까지 결코 경험하지 못했던 ‘놀라운 자연재배의 세계’라는 생각은 했었지만, 금년엔 그 결실의 현장을 직접 보면서 탄식을 금할 수가 없었다.
2013년 6월13일, 앞으로 수확시기까지 한 달여 남겨놓은 상황이지만 그의 포도밭은 실로 장관이었다. 옮겨다 심은 지 불과 2년 만에 이 정도의 장관을 빚어내다니! 앞으로 한 달여 후에 완전히 익었을 때 빚어낼 칼러풀한 포도밭은 상상을 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다른 포도 밭에서도 이런 식의 결과를 얻어낼 수 있을까? 송박사의 포도나무 수령은 2~3년생이지만, 이 농장이 개설된 지 14년이고 처음부터 한번도 땅을 갈지도 않았고, 비료(회학비료도 퇴비도)를 전혀 투입하지 않았기에 이미 땅은 자연재배를 위한 준비가 거의 완료된 상태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이렇게 인내심을 가지고 땅을 일구어 왔기에 현재의 자연재배가 가능했을 것이다.
송박사의 포도밭에는 포도 수확 외에도 나머지 기간에는 무우, 배추 등 다른 채소를 재배하기도 한다고 한다. 자연재배에 대한 인식이 아직 높지 않은 상태에서 자연재배의 결과가 어떤 것인지를 그 현장의 생생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이 영상 클립을 [아카이브]에 올려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 (송광일박사는 작년에 출판된 단행본 [기적의 채소](2012.9월; 청림Life)의 저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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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이 영상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만한 글이 이미 이 [동영상 자료실]에 올려놓은 <무비료, 무농약, 무제초제로 벼농사를 짓는 송광일박사의 자연재배 현장>(아래의 바로가기 주소를 클릭하면 열어볼 수 있습니다)의 해설에 실려있습니다. 편의를 위해 해당 부분만을 아래에 옮겨놓겠습니다.
[바로가기]: http://vaa.anthropology.or.kr/dong/content.aspx?page=2&txtSearch=&search=&idx=592&gubun=
새로운 농업기술/농업생산 방식에 관한 영상파일을 왜 이 [영상 아카이브]에 올리느냐고 의문을 표시하는 분들이 있을 것 같아서 약간의 설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인간이 생명유지를 위해서 외부로부터 음식을 섭취하는 것은 기본적이고도 필수적인 행위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살아나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무슨 음식을 어떻게 섭취하느냐는 나라나 민족집단에 따라서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이것이 바로 ‘문화’이고, ‘음식’문화는 한 민족의 문화의 가장 중요한 부분의 하나이지요. 따라서 문화를 연구하는 인류학자가 음식문화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연구활동의 하나이지요. 그런데 이 음식문화는 어떤 재료를 어떻게 요리해서 어떻게 먹느냐를 포함하고 있지요. 또한 음식재료, 즉 우리가 어떤 식으로 생산된 식재료를 먹고 있느냐는 것은 바로 우리의 건강상태와 직결됩니다.
근래에 와서 우리는 과연 우리가 먹고 있는 식품이 안전한지를 심각하게 생각하는 단계에 와 있습니다. 넘쳐나는 가공식품에 포함된 각종 화학물질은 더 말할 것도 없지만, 그 원재료인 농식품 마저도 비료와 농약, 그리고 제초제 없이는 농사를 지을 수 없는 ‘과학영농’의 시대에 살면서 알게 모르게 얼마나 많은 유해한 물질이 우리의 식생활을 통해서 우리의 몸 속으로 들어가는지 자세히 알 길이 없습니다. 다만 안전/건전하지 못한 식재료라고 하드라도, 그것을 먹고 금방 건강에 이상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그 식품/식재료의 안전성을 의심하는 것은 무리이기에 혹시 불량식품이라고 하드라도 그런 유해물질이 우리 몸 속에 쌓여가고 있기는 하지만 우리가 그것에 주목하기는 어렵습니다.
현대의 ‘과학영농’은 인류의 식량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지대한 공헌을 해왔지요. 이것은 비료와 농약, 그리고 제초제의 발달로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가지가 인류의 건강에 심각한 문제를 가져다 준다는 점에 대한 인식이 점차 높아져 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당장 우리가 이 과학영농을 포기하고 옛날로 돌아갈 수는 없는 일입니다. 식량생산 부족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과학영농은 결과적으로 우리의 건강을 위협하고, 우리의 토지를 황폐화시키고 지하수를 심각하게 오염시키고 있지요. 최근의 유기농 운동이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등장하고 있기는 하지만, 유기비료 그 자체도 현대의 각종 화학물질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각종 동물의 분료를 사용한 유기비료에도 동물사료에 포함된 화학물질이 여과되지 않았고, 더하게는 농작물의 생장에 인간의 간섭이 개입되기에 작물들은 스스로 먹이(영양)활동을 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는 약체의 식재료로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최근에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자연재배’입니다. 비료와 농약, 그리고 제초제를 일체 쓰지 않고, 여기에 더해서 농사를 위해 논밭을 일체 갈지도 않고 농작물을 성공적으로 재배하는 기술입니다. 이것은 실로 우리의 상식을 뒤집는 영농방식입니다. 영양분을 일체 공급하지 않고도 농사를 지울 수 있다? 상식에 어긋나는 일 같지만, 이로서 각종 화학물질 및 인간의 건강을 위협할만한 유해물질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식재료가 생산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식재료에 대해 여러가지로 의문이 제기될 수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탄생한 그 식재료는 어떤 과학적 검증실험에도 열려있는 새로운 방식의 기술입니다. 이미 13년전부터 50여종에 달하는 채소를 이 자연재배로 생산해온 한 농장에서 재배하는 작목의범위를 넓혀 벼농사에까지 성공적인 결과를 내고 있는 한 사례를 여기에 소개하는 바입니다.
나는 지난 3년여 이 자연재배의 세계를 탐색해왔습니다. 한국과 일본의 자연재배 현장을 두루 탐방해오면서 가장 오리지널하고, 같은 원리를 다양한 작목에 성공적으로 적용시킨 한 사례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이 영상클립을 본 [아카이브]에 올립니다.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만, 어떤 방식으로 농사를 지어 어떤 식재료를 생산하는지는 ‘물질 문화’(material culture)의 한 부분이고, 이것은 바로 인류학의 연구 주제인 ‘문화’이기에 이 영상 클립을 인류학과의 [영상 아카이브]에 올리는 것입니다.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이문웅)
이 영상은 앞서 올린 [놀라운 자연재배의 세계(1)_송광일의 포도 농사(2013년)]와 같은 탐방에서 포착한 것이다. 이 농장은 그의 포도 밭과는 차로 약 30분 정도의 거리에 있다. 이 밭은 송광일 박사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땅으로 1981년부터 1990년까지 10년간 관행농업을 하다가 다른 사업에 몰두하면서 농사를 그만둔 채 10여년간 방치해두었다가 8년전부터 자연재배를 시작하여 사과와 복숭아를 재배하고 있다. 200평 크기의 비닐 하우스 4동에 도합 800평정도의 시설재배이다.
여기서는 자연재배의 시작부터 하우스 재배였지만, 난방은 일체 하지 않고 다만 빗물을 통제하기 위한 방책으로만의 시설재배였다. 그간 송박사가 터득한 경험적인 지식으로는 빗물을 받지 않은 식물이 더 세포조직이 탄탄하고 건실한 열매를 맺고, 과일의 당도도 월등하게 높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8년여 지난 지금 와서 보니 이 하우스에는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나서 비닐이 벗겨져서 빗물에 노츌되는 부분이 많지만, 이렇게 이미 땅심이 안정화 단계에 들어선 경우에는 더 이상 비닐로 씌워졌든 비에 그대로 노출되든 거의 상관이 없는 것 같다고 한다. 그는 이제 더 이상 벗겨진 비닐을 다시 씌우려는 게획도 없도 그럴 필요도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송광일박사의 자연재배는 실로 ‘경의롭다’고 표현할 수 밖에 없었다. 아무런 화학비료도, 퇴비도 주지 않은 채 농약도, 제초제도 일체 사용하지 않고 이루어낸 성과로는 도저히 믿겨지지 않을 정도이다. 작년에도 송박사의 포도와 복숭아, 사과를 맛본 적이 있어서 그 당도(糖度)랑 맛이 지금까지 결코 경험하지 못했던 ‘놀라운 자연재배의 세계’라는 생각은 했었지만, 금년엔 그 결실의 현장을 직접 보면서 탄식을 금할 수가 없었다.
2013년 6월13일, 앞으로 수확시기까지 한 달여 남겨놓은 상황이지만 그의 사과 및 복숭아 밭은 실로 장관이었다. 앞으로 완전히 익었을 때 빚어낼 칼러풀한 과수원의 모습은 어떻할지 참으로 기대되었다.
다른 과수원에서도 이런 식의 결과를 얻어낼 수 있을까? 이 농장이 자연재배를 사직한지 이미 8년이 지났다. 처음부터 한번도 땅을 갈지도 않았고, 비료(회학비료도 퇴비도)를 전혀 투입하지 않았기에 이미 땅은 자연재배를 위한 준비가 거의 완료된 상태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이렇게 인내심을 가지고 땅을 일구어 왔기에 현재의 자연재배가 가능했을 것이다.
이 영상에서는 송박사의 안내로 복숭아와 사과나무를 섞어서 심어놓은 농원을 두루 다니면서 그의 농사방식에 대해서 들었다. 한가지 특히 재미 있었던 것은 과일 나무가 진드기 무리들의 공격을 받은 곳이 군데 군데 있었다. 그런 곳에서는 무당벌레(lady bird/lady bug)가 이 진드기를 잡아먹으려고 몰려들었고, 또 한편으로는 진드기의 배설물을 주 먹이로 삼고 있는 개미들이 와서 그 무당벌레들을 내쫓고 있는 등, 사실상의 3자간의 '전쟁'이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더러는 개미들은 진드기의 무리들을 다른 잎으로 옮겨서 마치 '사육'하듯이 보호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진드기를 무당벌레로 부터 지키는 모습을 송박사는 '보초선다'고도 표현하고 있었다. 아무튼 송박사는 복숭아와 사과에 대한 병충해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모든 것이 자연적으로 치유되도록 그대로 내버려두고, 이렇게 해도 자연재배는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니 자연재배의 세계는 참으로 '경이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논농사에서 <모내기>는 가장 중요한 과정 중의 하나이다. 논갈이를 하고, 물을 담아 모가 뿌리를 잘 내릴 수 있도록 부드럽게 하고 평형을 이루기 위해 써래질을 했으며, 사람들이 줄을 서서 힘들게 모심기를 했었다. 지금은 트랙터와 이앙기가 있어서 훨씬 편해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못자리를 만들고, 볍씨를 뿌려서 키운 모를 이앙기로 모내기를 하고 있다.
그런데 모가 아니라, 분무기에 볍씨를 쏟아 부어 넣고, 마치 논에 농약을 뿌리듯이 볍씨를 뿌리면서 관행농업의 모내기 과정을 모두 마친다? 그 현장은 마치 텔리비젼을 통해서 더러 봤던 월남전에서 화염방사기로 숲을 태우기 위해 불을 뿜어내는 것 같기도 하다. 이렇게 해도 벼농사가 가능할까? 현실적으로 이렇게 벼농사를 짖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은 땅을 갈지도 않고(쟁기질을 전혀 하지 않고), 화학비료든 퇴비든 비료를 전혀 사용하지도 않고, 제초제도 필요 없이 벼농사를 짓는 ‘자연재배’의 방식이다.
나는 작년에 하동에서 이런 논밭의 밀 수확 현장을 답사한 적이 있었지만, 그 때는 사흘 전에 이미 볍씨를 뿌려놓은 상태에서 이루어진 밀 수확 장면이었기에 꼭 볍씨를 직파하는 장면을 포착하고 싶었다. 금년에는 전남 진도에서 자연재배로 농사를 짓는 박주홍씨가 마침 볍씨 직파의 기회를 알려주었기에 만사를 제치고 찾아가봤다. 여기에 소개하는 영상은 더 많은 사람들과 그 현장의 움직임을 공유하고자 편집한 것이다.
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하율리에서 올해로 4년째 자연재배 농사를 짖고 있는 박주홍씨는 귀농민이라고 한다. 그의 인터넷 블로그(http://blog.naver.com/jhpark0070.do)에 올려놓은 “내가 먹을 것은 내가 직접 만들자! 농업과 농촌을 미래의 희망으로 . . . “라는 말은 그와 그의 가족이 왜 고향을 찾아 귀농했는지를 말해주는 소박한 심정을 잘 표현해주고 있는 것 같다. 그에게는 귀농으로 당장 큰 돈을 벌어보겠다거나 큰 꿈을 이루어보겠다는 생각을 읽을 수 없었다. 다만 여러 군데 흩어져 있는 그의 농사 하나 하나를 마치 자연재배의 실험장 같이 여기는 그의 생활태도에서 나는 한국 자연재배 발전에 대한 희망의 씨앗이 싹트고 있음을 읽을 있었다.
2013년 6월 13일 나는 진도읍에서 진도 토박이 박주언씨의 차편으로 박주홍씨의 하율리 댁으로 찾아갔다. 그날 목포역에서 진도까지의 차편은 목포에서 진도군립민속예술단으로 출근하는 한흥수씨(대금 연주가)의 차편 도움을 받았다. 이 두 개의 차편은 모두 김현숙선생(목포대학교 문화인류학과 박사과정, 강사)이 주선해주었다. 이 세 분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말씀을 전해드리고 싶다.
박주홍씨는 콤바인으로 밀 수확을 하든 중에 댁으로 돌아왔다. 나의 볍씨 직파 현장을 보여주기 위해 밀밭 한 곳에는 수확을 앞으로 이틀간 미루었기에 우리는 우선 그 밀밭으로 갔다. 이때 김현숙씨도 틈을 내어 현장으로 찾아 왔다. 밭에 도착한 박주홍씨는 가져간 볍씨 포대를 분무기의 통에다 쏟아 붓고 등에 지고 전원을 켜서 900평의 밀밭에 볍씨를 뿌려대기 시작했다. 사각형의 밀밭 두렁을 따라 우선 한 바퀴를 마치 화염방사기를 쏘듯이 뿌리고, 다시 돌아와서 나머지의 볍씨를 털어놓고 그 넓은 밭의 3분의 1씩 두 줄로 한번씩만 들어가 지나가면서 양쪽으로 씨를 뿌리는 것으로 씨뿌리기는 간단히 끝이 났다. 이렇게 씨뿌리기를 한 밭에는 2~3일 후에 밀 수확을 하면서 콤바인으로 자른 밀대는 잘게 잘라서 밀밭에 그대로 뿌린다고 한다. 이렇게 하면 새들이 볍씨를 쪼아먹는 것도 피하고 잡초의 성장도 저지하는 ‘멀칭’효과를 내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볍씨를 뿌린 밀밭은 고군면 지막리에 위치하고 있었는 데, 마침 그날 밀 수확을 하고 있었던 밭이 있어서 그곳으로 이동하여 수확하는 장면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약 1km정도 떨어진 고군면 배들이에 위치한 두 번째 밭에서 박씨는 콤바인으로 밀 베기를 계속했고, 나는 이 현장을 역시 카메라에 담아 이 영상의 후반부에 편집하였다. 이 밭에는 사흘 전에 이미 분무기로 볍씨를 뿌렸다고 한다.
박주홍씨가 전해준 그의 자연재배 농법 이야기를 좀 옮겨보자. 그가 이렇게 직파한 볍씨는 전년에 수확하여 건조시킨 상태에서 아무런 추가적인 조치도 하지 않은 채 직파한 것이라고 한다. 관행농업에서 못자리에 볍씨를 뿌리기 전에 물에 담가서 소독을 한다든가 하는 과정도 일체 여기서는 찾아 볼 수 없었다. 올해로 4년차의 자연재배 농사를 하는 박주홍씨의 방식은 아직 완전한 의미에서 ‘자연재배’라고 할 수는 없다. ‘자연재배’라면 ‘무비료, 무농약’이 필수 이지만, 아직 박씨의 농사는 거기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완전한 자연재배에서는 씨앗과 땅이 조화를 이루고, 자가 채종한 씨앗이 자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땅심’이 준비되어 있어야 하지만 아직 이 땅은 거기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박씨는 초기 년도에는 관행농에 비해 약 1/3을 투입했고, 해가 거듭될수록 그 양을 주렸다고 한다. 하지만 비료는 벼의 성장 상태에 따라 농부가 가늠해야 하는 것이고, 딱히 "1/3이다"라고 정의 할 수는 없다고 한다. 박씨의 경우 작년에(3년차 무경운 논) 관행농업에 비해 비료를 약1/5정도 투입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양은 같은 논에서도 벼의 성장 상태에 따라 투입량이 약간씩 달라진다고 한다. 성장이 좋은 곳은 적게, 성장이 더딘 곳은 많게 투입하고, 농약은 풀 관리를 위해 <침투이행성제초제>를 썻다고 한다. 그 외에는 다른 일체의 농약(살균, 살충제 등)을 사용하질 않았다고. 침투이행성제초제의 경우 전작물의 재배상태가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예로 올해 밀/보리가 좋은 경우, 확실이 풀은 거의 없는 상태가 된다고.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재연재배의 ‘땅 만들기’은 5~6년 정도 비료와 농약을 주려나가다가 그 후에는 전적으로 비료와 농약,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은 채 농사를 지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박주홍씨가 하고 있는 이 농법이 이영문씨가 창안한 ‘태평농’인데, 실제로 이영문씨는 경남 하동과 사천 일대에서 4만여 평에 달하는 농지에서 쌀과 보리/밀의 이모작을 전적으로 ‘자연재배’의 방식으로 벌써 20여 년에 걸쳐서 성공적으로 하고 있다.
박주홍씨는 어떻게 해서 이 ‘자연재배의 세계’로 발을 딛게 되었을까? 14년 동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앞으로 농사를 어떻게 지어야 할까를 고민하기 시작하면서 "그래! 농사란 생명을 다루는 직업"이란 것이 떠올리게 되었고 "생명이란 무엇인가?"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고 한다. 인터넷 상에서 ‘생명’에 대한 이것 저것을 검색하던 중 한 블로그에서 SBS-TV다큐 "생명의 선택"(2009년 11월22일 방영)을 보게 되었고, 거기에서 ‘자연재배’라는 단어를 알았다고 한다. 다시 "자연재배"라는 키워도로 여기 저기를 검색하던 중 이영문씨의 ‘태평농법’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전에 검색하던 자연재배는 일종의 철학적인(?) 내용이었다면 태평농법은 체계적인 ‘농법서’같았다고. 대단위 면적을 ‘무경운’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다는 것은 그에게 “감히 상상도 못할 정도의 엄청난 충격을 던져주었다”고 한다. 그 다음 해(2010년) 3월의 태평농 정기교육에서 “이영문선생을 처음 뵈었을 때의 기억이 아직도 드라마처럼 생생하다”고 했다. 하지만, 교육은 알고 싶었던 농법보다는 ‘생태’만이 계속 강조되어서 "그래 좀 더 깊숙이 들어가봐야겠다" 싶어 임원에 가입하고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박주홍씨는 현재 태평농회원들의 조직인 ‘태피들’의 회장직을 맡고 있다. 이 영상 클립에서 박주홍씨가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분은 바로 ‘태평농의 창시자 이영문선생’이다.
이렇게 그의 자연재배 경험에 대한 경험정보를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도록 허락해준 박주홍씨와 현장 탐방에 자리를 함께 해준 박주언씨와 김현숙씨에게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리는 바이다.
내가 지금까지 즐겨 써왔던 ‘자연재배’라는 용어는 사실상 ‘식물재배’, 또는 더 좁은 범위에서는 ‘채소재배’에서 ‘무비료, 무농약, 무제초제’로 심지어는 ‘땅을 갈지도 않은 채’ 짓는 농사’를 의미하였다. 그러나 이런 방식의 먹거리 생산은 단지 농업생산만이 아니라 축산에도 적용되어 건강한 식재료가 생산되고 있어서 ‘자연재배’보다는 ‘자연농업’이라는 개념이 더 포괄적일 것 같다.
자연재배에서는 식물에 전혀 아무런 영양분도 투입하지 않고, 식물이 스스로 살아남을 생존전략을 강구하도록 유도 함으로서 세포조직이 치밀하고 단단한 식재료를 생산한다. 그러나 동물을 사육하기 위해서는 상황이 다르다. 물론 동물을 방사하는 상태로 사육하는 경우에는 먹이 감이 없거나 부족한 계절에 사육자가 약간 추가로 사료를 공급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동물을 일정한 공간에 가두어놓고 사육하는 경우에는 사료의 질과 사육동물이 어느 정도로 넓은 공간에서 충분한 활동을 할 수 있는지가 그 축산물의 질을 결정할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심히 우려하는 바의 축산물들은 좁디 좁은 공간에서 동물들이 잘 움직일 수도 없이 공장사료로만 키우고, 또 단기간에 체중을 불릴 수 있는 성장촉진제며 질병을 예방하거나 치료하기 위해 투입하는 각종 약제 및 화학물질들은 이제 사실상 소비자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여기에 소개하는 영상에서 군산의 권영호씨는 이런 관행적인 축산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자연농업의 방식으로 ‘꺼먹돼지’를 키우고 있다. 그의 농장은 오늘날 우리의 식생활이 ‘부드럽고, 달고, 고소한 것’만을 추구하는 풍조가 건강을 약화시키거나 해치고 있다는 점을 반성하면서 ‘거친 음식을 먹자’는 ‘반소사(飯疏食)’라는 구호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꺼먹돼지를 자연농업 방식으로 키우고 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농장을 ‘반소사(飯疏食) 농장’ (http://cafe.naver.com/bansosa)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한자의 ‘먹을 반(飯), 거칠 소(疏), 먹거리 사(食)’에서 따온 것이다. 식(食)자는 ‘사(食)’로도 읽히는 데서 이런 재미있는 명칭을 만들어 냈다. 그의 농장에서 생산되는 돼지고기를 주 메뉴로 그가 운영하는 한 식당의 이름도 ‘반소사(飯疏食)’로 내걸었다.
그의 농장에서는 돼지를 철제 파이프로 우리를 만들어 그 속에서 키우기는 하지만 돼지들이 활동하는 데에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공간을 주고 있고, 정기적으로 철제우리의 문을 열어서 돼지들이 밖으로 나와서 더 넓게 움직이고, 풀이나 농작물의 수확 후 부산물을 먹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고 있다. (최근에 그는 농장을 옮겨서, 아직 이 영상에서 보이는 우리 앞의 농토에는 농사가 시작되지 않았다.) 권영호씨는 이 농장에서도 앞으로 자연재배로 농사를 지어 돼지들에게 더욱 양질의 사료를 제공해주려는 준비를 하고 있다.
반소사 농장의 돼지에게는 공장사료를 철저히 배제하고 있다. 권영호씨는 군산 지역의 여러 대형 레스토랑으로부터 협조를 얻어 음식물 찌꺼기를 수합해서 주 사료로 활용하고 있다. 그는 이렇게 수합한 잔반에다 미강(米糠)(정미소에서 현미를 정제하는 과정에서 떨어져 나오는 ‘쌀눈’과 ‘쌀겨; 이 과정을 거쳐서 얻어지는 백미에는 쌀알의 영양이 5%뿐이고 미강이 전체 영양의 95%를 차지하고 있고 한다.)을 추가해서 사료를 준비한다. 좀 구체적으로는 대형 플라스틱 통에 잔반을 한겹 넣고 그 위에 같은 두께의 미강을 한 겹씩, 이렇게 겹겹이 넣어서 약 2주일간 숙성시킨 후에 돼지 우리의 먹이 통에 매일 한 차례씩 일정량을 공급한다. 이 외에도 그는 농산물 시장에서 폐기 처분되는 부산물들을 수집해 오고, 또 농장 주변의 풀을 베어서 추가적인 사료로 공급한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키운 돼지의 분뇨에서는 다른 대형 기업형 돈사에서와 같은 가스의 문제가 전혀 없다고 한다. 실제로 그의 돈사에는 절반은 왕겨를 넣어줘서 마른 상태이고 다른 절반은 분료로 질퍽한 상태이다. 공장사료에 의거하지않은 채 자연농업으로 사육하는 돼지의 돈사 바닥은 질소와 이산화탄소(CO2)의 배출로 인한 가스 문제가 거의 없다고 한다. 따라서 권영호씨는 돈사 바닥의 퇴적물을 거두어내고 새로 흙과 왕겨로 깔아넣는 작업을 일년에 한번 또는 두번 정도로 하고, 이렇게 들어낸 퇴적물은 시간을 두고 부숙(腐熟)시킬 필요도 없이 바로 유기퇴비로 농토에 투입해도 좋은 상태라고 한다. 권영호씨는 자신의 경험적인 지식에 의거해서 대형 돈사의 분뇨에서 발생되는 가스의 문제는 상업적으로 생산되는 사료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권영호씨는 자신의 [반소사 농장]에 정확히 몇 마리의 돼지가 크고 있는지도 별로 신경을 쓰지도 않는다고 한다. 지금까지 한번도 전국을 강타한 유행성 축산 질병으로 어려움을 겪어본 적도 없고, 돼지들은 때가 되면 자연스레 수정, 임신, 분만을 스스로 하고, 새끼들은 우리의 경계도 개의치 않고 들락거리면서 자유스럽게 자라고 있었다. 또한 그는 돼지를 엄청나게 크게만 키우는 데에 관심이 없다. 대체로 18개월 정도 키운 중돼지 정도가 가장 맛이 좋은 고기를 얻을 수 있기에 그는 이런 사육방식을 고집한다고 한다.
반소사 농장의 돼지고기 맛은 어떨까? 솔직히 말해서 나는 아직 그렇게 맛있는 돼지고기를 먹어본 적이 없다. 물론 이 돼지들에 레스토랑의 잔반이 주 사료로 공급되었기에 조리과정에서 사용되었을 약간의 조미료나 첨가물로부터 전적으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미강을 섞어 숙성과정을 거쳐서 사료로 재탄생되면서 그런 화학물질의 농도는 약화되었을 것이고, 무엇보다도 상업적으로 생산된 공장사료와 사육과정에서 투입되는 각종 화학물질로부터는 전적으로 자유롭다는 점이 ‘건강한 식재료’로서의 지위를 인정받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 (참고로 이 영상을 기록한 반소사 농장 탐방[2013.05.27]에는 경기도 양평에서 자연재배 농장 <혜림원>을 경영하는 김주진씨가 함께 하였다. 흰색 상의의 권영호씨와 대화하는 분이 김주진씨이다.)
키무라 아키노리(木村秋則)씨의 자연재배 사과농사를 다룬 책 [기적의 사과](이시카와 타쿠지 지음, 2008.7)이 출판된 지 불과 2년 만에 일본 동북부 지방에서는 큰 단위의 지방자치 단체마다 자생적으로 키무라씨의 자연재배 방법을 따라 배우려는 물결이 거세게 번져나갔다. 이 물결은 주로 지역마다 자생적으로 조직된 [키무라 아키노리 자연재배연구회]를 중심으로 퍼져나갔다. 이런 물결은 지금까지 농민들이 직면해 왔던 어려움과 고민들에 대한 해결을 모색하는 데에 키모라씨의 자연재배는 좋은 교훈적인 처방이 된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었으리라.
나는 2010년 여름 일본의 자연재배 현장탐사에서 키무라씨의 사과농장을 탐방하려고 시도했으나 그의 빈틈이 없이 짜진 일정 때문에 허락을 얻지 못하고 바로 혹카이도로 올라가서 이 지역의 자연재배연구회의 거점이라고 할 수 있는 오비히로시 소재 오리카사 농장(折笠農場)을 방문하기로 허락을 받아냈다.
오비히로는 혹카이도의 중심도시 삿포로(札幌)에서 특급열차로 동남쪽 방향 두 시간 40분 정도의 거리에 있었다. 이날의 탐방(2010.9.6)에도 나는 아내와 동행했다. JR오비히로역에 도착하니 이 지역의 자연재배연구회 활동가인 Horita(堀田 忍)씨가 역에 마중 나와 있었다. 그는 Kobe의 Amagasaki 출신으로 도시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자연에 가까운 생활을 하고 싶어서 이곳 혹카이도로 와서 정착했다고.
우리는 그의 차로 약 30분정도의 거리 있는 오리카사 농장으로 향했다. 이동 도중에 내다본 농촌지역은 한국에서 보는 경관과는 달리 마치 미국의 남부지역을 통과하고 있는 것 같은 분위기였다. 농장의 사무실에 도착하자, 마침 역시 [木村秋則自然裁培硏究會.北海道]의 핵심 4인 멤버 중 한사람인 Hayashi Katsuhiko(林克彦)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오비히로/토카치(十勝) 지역의 최상류층의 젊은이로 카나다에서 2년간 교육을 받은 경험도 가지고 있었다. 이 분이 자연재배에 관심을 가진 것은 참 좋은 인연이라 생각되었다. 이렇게 혁신적인 농업기술이라면 무엇이든지 실천에 옮겨볼 수 있는 마인드와 재력을 가진 사람이 자연재배 연구회의 멤버로 합류했다는 점은 좋은 징조라고 생각되었다. 후에 다른 자료에 보니 그 역시 키무라씨의 자연재배 사과 재배기술을 도입하여 이미 도카치에 사과단지를 일구어 생산하고 있었다.
이어서 이 농장의 Orikasa Masurao(折笠 健) 대표가 사무실에 도착하여 인사를 나누었고, 농장의 실정에 관해 설명해주었다. 이 농장에서는 여러 가지로 실험을 하고 있지만, 주로는 감자와 콩(몇 가지 종류)을 자연재배하고 있었다. 우리는 우선 콩 밭으로 나가봤다. 콩밭은 무성했고, 여러 가지로 비교 실험재배를 하면서 자연재배와 유기재배를 이곳 저곳 나란히 병행하고 있었다. 이 넓은 땅에서 이런 식으로 여유롭게 실험재배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이렇게 광대한 혹카이도 농촌의 이점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역시 혹카이도는 일본의 ‘천혜의 보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농장은 오리카사 가족이 4대째 이 자리에서 농사를 짖고 있는데, 물론 오랫동안 관행농사를 지어왔고 자연재배를 시작한 것은 극히 최근이라고 한다. 이 농장은 사무동과 창고에서 가까운 거리에 8년전 비닐하우스 한동을 지어서 자연재배를 실험하고 있었다. 여기에는 미니토마도, 가지 등을 심어놓았다. 역시 토마도는 물을 주지 않아서 흙이 탄탄하게 말라있었지만, 가지는 물을 주고 있어서 땅이 촉촉했다. 그 옆에는 3년 전에 심었다는 자연재배의 사과밭이 있었다. 키무라씨의 [기적의 사과] 같은 자연재배의 사과밭을 나는 처음 접한 셈이다. 역시 여기도 밭 전체가 풀이 무성했고, 아직 3년밖에 되지 않아서인지 사과는 탁구공만한 것이 몇 개씩 여기 저기 열려있었다. 아마도 앞으로 2~3년 안에는 정상적으로 열매를 맺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우리는 점심시간이 되어 점심을 하려 나가는 도중에 다른 감자재배 밭을 보여주었다. 감자는 겉으로 봐서는 마치 병이든 것 같이 수확이 좋지 않은듯한 모습이었지만 오리카사씨가 줄기를 뽑아서 보여주는 감자는 아주 큰 것은 아니었지만, 충실하게 자랐고 그 수도 아주 많았다. 이 감자 밭은 계속해서 같은 밭에서 재배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품종과 해를 걸러서 종을 바꾸어가면서 재배한다고 한다.
우리는 오리카사, 호리타, 하야시 등 세 사람과 함께 다섯 명이 오비히로의 교외에 위치한 맛있는 소바야에 가서 점심을 들었다. 점심 후에는 재미있는 광경을 보여준다면서 가을연어(Akisake) 잡이 장소로 이동했다. 마치 공사 현장 같이 일꾼들이 20명 정도가 작업을 하고 있었고, 한편으로는 잡은 연어를 컨테이너에 싣고 떠나는 트럭 등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엘리베이터 같이 생긴 기구로 담아서 건져 올린 약 30~40센티 정도의 연어를 건져 올리면 사람들이 급히 기절시키는 방식으로 몽둥이로 때려 눕히고 있었고, 이 연어를 다른 한편으로는 컨테이너에 담는 작업이었다. 강 아래로 내려다보니 바다에서 산란을 위해서 도착한 연어가 무수히 많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이 작업은 이 지역의 연례행사라고 한다. 이 연어의 알을 채취해서 부화시키고, 그 새끼들을 다시 바다로 내려 보내는 사업장의 거점이었다. 사실 일본에서는 이런 연어로 수많은 식표품이 생산/판매되고 있었다. 역시 이 연어는 일본인의 식생활문화의 중요한 한 부분으로 정착한 것 같다.
우리는 여기서 오리카사씨와 하직하고 오비히로 시내의 중심부에 위치한 하야시씨의 금년에 새로 문을 연 Cafe인 [十勝Toteppo工房]에 도착했다. 과거에 이곳에 있었던 지방의 철도 역을 인수하여 새로운 문화시설을 만든 것으로 아주 인상적인 카페였다. 주로 부인들인 고객들이 많았고, 여기서 함께 판매되고 있는 농산품도 적지 않았다. 우리는 이어서 이 하야시 집안이 경영하는 인근의 Hotel Hokkaido를 둘러보았다.
3시반경에 오비히로를 떠나 삿뽀로로 가기 위해 오비히로역으로 향했다. 호리타씨와 하야시씨가 역까지 바래다 주었다. 아주 친절한 대접에 감사를 표했고, 이분들이 혹카이도에 자연재배라는 새로운 문화를 접목시키기 위해 열심히 뛰고 있는 모습이 아름다웠고, 믿음 직 했다. 아무튼 혹카이도의 자연재배연구회가 앞으로 좋은 열매를 맺기를 기대하면서 우리는 오비히로를 떠났다.
무비료, 무농약, 무제초제의 자연재배’ 기술은 어느 날 갑자기 세상에 등장한 것이 아니다. 오래 전부터 많은 선각자들의 지혜와 농민들의 실험정신이 집적되어 도달한 새로운 농업생산방식이었다. 하나의 기술적인 혁신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서 널리 확산되는 계기를 마련했던 것은 대체로 하나의 사건이었다. 일본에서 ‘자연재배’의 대표적인 아이콘인 키무라 아키노리(木村秋則)의 [기적의 사과]의 등장이 이런 사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일본 혼슈 북단의 아오모리현은 일본의 대표적인 사과 산지이다. 이 지역의 히로사키(弘前)시에서 사과농사를 지어온 키무라씨는 화학비료와 농약의 폐해로 인한 경제적, 정신적, 그리고 신체적인 한계상황에 까지 이르러 한때는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 즈음에 그의 머리 속에 떠오른 한 가지의 섬광 같은 생각, 즉 “산의 나무들은 왜 비료와 농약 없이도 잘 자라고, 해마다 열매를 맺고, 또 그 열매는 썩지도 않을까?” 이에 대한 해답을 찾아서 그는 거의 10년 가까운 세월을 비료도 농약도 주지 않으면서 사과나무에 대한 관찰과 돌보기를 계속한 끝에 드디어 그의 사과나무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도달한 그의 자연재배 사과농사는 벌써 30년을 넘겼고, 매년 건강하고 값비싼 사과를 생산해내고 있다.
키무라씨의 자연재배 사과농사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일본 NHK-TV 방송에서 2006년 초에 시작된 한 새로운 프로그램 씨리즈에서 사과농가 키무라 아키노리 편(NHK [プロフェッショナル仕事の流儀: 木村秋則の仕事], 방영일: 2006.12.7.)이 방송을 타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그 후 한 논픽션라이터 이시카와 타쿠지(石川拓治)가 1년 반에 걸친 탐방취재를 통해 단행본 [기적의 사과](幻冬舍, 2008.7)를 내놓으면서 키무라의 사과는 더 넓은 세계로 알려지게 되었고, 드디어 ‘자연재배’의 대표적인 아이콘으로 자리를 굳히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책은 이듬해에 번역 출판([기적의 사과], 이영미 옮김, 김영사, 2009) 되었다. 2010년에는 Yoko Ono재단에서 이 책의 전문을 영어로 옮겨서 인터넷(IMAGINEPEACE.com) 상에 올려놓게 되면서 구글 번역 소프트웨어(Google Translate)를 통해서 세계의 독자들이 다양한 언어로도 읽을 수 있게 되었다.(참조: Akinori Kimura’s MIRACLE APLES: http://imaginepeace.com/miracleapples/)
내가 ‘자연재배의 세계’를 처음으로 접하게 된 계기도 한국의 한 텔레비전 방송(SBS-TV; “생명의 선택(2)_다음 천 년을 위한 약속”; 2009-11-22)에서 짤막하게 키무라의 [기적의 사과]가 소개되면서부터였다. 이 때부터 나의 일본과 한국의 자연재배 현장 탐방이 시작되었다. 2010년 여름 일본 니이가타에서 시작된 나의 탐방은 혹카이도를 둘러서 도쿄로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나는 아오모리의 키무라씨를 만나고 그의 사과밭을 찾아보고 싶었지만, 이 때 이미 그는 전국적인 유명인사가 되어 강연과 회의, 자연재배 강습 등으로 출장이 많아서 면담 예약을 받을 수가 없었다. 니이가타에서 혹카이도로 가는 도중 아오모리의 히로사키시를 지나쳤지만 약속을 얻지 못해서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그 후 다음해인 2011년 여름의 일본 자연재배 현장 탐방여행에서도 키무라씨를 면담하려고 여러 번 접촉을 했었지만 “내년 말(2012년 말)까지 일정이 잡혀있어서 시간을 낼 수 없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래서 나는 다른 길을 택하기로 했다. 일본의 자연재배계에서 나온 여러 가지 문헌들에서 키무라씨의 사과농사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학술적인 연구를 계속하고 있는 한 과학자의 논문을 접하면서 이 분을 만나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분은 아오모리현의 히로사키(弘前)대학의 스기야마 슈이치(杉山修一; 농학생명과학부 생물학과 생태환경 코스) 교수였다. 사실 스기야마 교수는 키무라씨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그의 사과 농사의 경영에 대한 이론적인 백업을 해주고 있는 분이었다. 키무라씨를 만날 수 없다면, 스기야마 교수를 만나서 [기적의 사과]와 관련된 ‘자연재배’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것이다. 스기야마 교수와의 이메일 접촉에서 나는 쉽게 면담약속을 받아낼 수 있었다.
2011년 9월 9일 나는 히로사키대학의 스기야마 교수의 연구실로 찾아 갔다. 그의 연구실에는 키무라씨의 사과밭에서 채집해온 여러 가지 표본들이 쌓여있었다. 특히 병충해를 입은 사과 잎 샘플들이 많았다. 스기야야 교수는 그날 키무라씨의 자연재배 농법이 2011년 6월에 UN의 국제식량농업기구(FAO)로부터 [세계중요농업유산 시스템](GIAHS; Globally Important Agricultural Heritage Systems)으로 인증을 받았다는 사실을 실은 잡지 [농업 르네상스](제8호; 1011년 가을호) 한 권을 나에게 전해주었다. 이것은 키무라씨가 이시카와(石川)현에서 벌리고 있는 자연재배 농법을 ‘자연재배-AK 방법(Natural Farming-AK method)’으로 인증해주었다는 것이다.(여기서 ‘AK’라는 것은 ‘Akinori Kimura’의 첫자를 딴 것이다.) 이GIAHS 인증은 FAO가 2002년부터 시작한 프로젝트로 차세대를 계승한 중요한 농법과 생물다양성 등을 가진 지역을 인정하는 것으로 이시카와현에서 벌리고 있는 키무라의 자연재배 방식이 그 영예를 얻었다는 사실을 접하고 축제분위기에 들뜬 분위기를 그 잡지는 주요 기사로 실었다.
나는 스기야마 교수와 연구실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 도중 내가 여기까지 와서 키무라씨의 농장을 한번 보지도 못한 채 가는 것이 안타깝다는 내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이 말을 듣고 스기야먀 교수는 즉석에서 한가지 제안을 했다. 비록 키무라씨는 만나지 못했지만 그의 사과밭을 보고 싶다면 안내하겠다고 했다. 이것이 바로 내가 바라던 바였다. 우리는 바로 연구실을 나서서 스기야마교수의 차로 이와키산(岩木山) 기슭에 위치한 키무라씨의 사과밭으로 향했다. 목적지까지는 차로 약 40분 거리인 것 같았다. 가는 도로 주변은 온통 사과밭의 연속이었다.
거의 목적지에 도달해서 큰길에서 꺽어서 한창 들어가는 도중 멀리서 키무라씨의 사과밭이 시야에 들어왔을 때 차를 몰던 스기야마교수가 “아! 저기 키무라씨가 있네!”라고 했다.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천만 다행이었다. 알고 보니 키무라씨가 지방의 강연과 강연 사이의 약간의 틈을 이용해서 집에 들렸다가 사과밭을 둘러보러 나왔다는 것이다.
크지도 않은 키에 깡 마르고, 피부는 햇볕에 검게 탔지만 아주 건강한 모습이었다. 비디오와 사진으로 많이 봐왔고, 또 그의 특유의 소리 내어 웃는 모습이 나에게는 아주 친숙했기에 마치 옛 친구 같이 대할 수 있었다. 사과밭 입구에서 인사를 나누고 사과나무 사이로 걸어 들어 가면서 영상에서 많이 본 그 길이라 마치 자연재배의 순례 길을 걷고 있는 것 같았다. 바로 이곳이 지난 2~3년간 국내외의 수많은 사람들이 벤치마킹 탐사 차 다녀간 곳이라니 지금 그 장소에 서있는 나도 마음이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자연재배’가 키무라씨로부터 시작된 것은 분명 아니지만, 그의 [기적의 사과] 때문에 ‘자연재배’의 개념이 더 널리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하겠다.
우리는 약 한 시간 반 정도에 걸쳐서 자연재배와 일본 국내에서의 자연재배 운동에 관한 그의 활동 등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최근 이시카와(石川)현에서는 현지사의 선언으로 “내년(2012)부터 전면 자연재배를 도입하기로 했다”든가, 이제 일본의 거대 종합상사들이 이 자연재배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든가, 일본의 주류업계의 메이저인 선토리가 대규모의 포도원을 조성해서 앞으로 자연재배 포도주를 생산할 계획이 본격적으로 시행에 들어갔다는 등의 희망적인 소식도 전해 들었다. 나는 이미 여러 문헌을 통해서 그의 활동과 성과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친숙했지만, 직접 만나서 이런 희망적인 소식들을 접하니 참으로 반가웠다. 늣 여름의 사과밭에는 이미 어둠이 찾아 들기 시작했다. 키무라씨의 바쁜 시간을 더 이상 빼앗을 수 없다고 생각되어 우리는 서둘러서 하직하고 사과밭을 떠났다.
키무라씨와 스기야마 교수, 이 두 분은 [기적의 사과]와 땔래야 땔 수 없는 관계인 것 같다. 키무라씨는 현장에서, 그리고 스기야마 교수는 연구실에서 활동하면서, 혹시 현장의 사과에 무슨 새로운 변화가 있다면 스기야마 교수는 그 샘플을 채집해서 바로 분석에 들어가고 두 사람 간의 상호작용이 자연재배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참으로 바람직한 관계인 것 같았다. 스기야마 교수는 최근에 [대단한 밭의 대단한 흙](すごい畑のすごい土)( 幻冬舍, 2013.5)라는 책을 내면서 ‘무농약, 무비료, 자연재배의 생태학’이라는 부제를 달았다. 사실 이 책의 내용은 거의 전체가 키무라씨의 사과재배와 그 사과밭의 토양을 연구한 결과이다. 또한 최근에 웹 상에 올려놓은 (위에서 언급한) [세계중요농업유산 시스템; GIAHS] 인증을 받은 ‘자연재배-AK 방법’(http://www.akinorikimura.net/ak-method/)의 해설에는 저자가 키무라 아키노리와 스기야마 슈이치 두 사람의 이름으로 되어 있는 것도 이 두 사람의 관계를 잘 말해주고 있다. (위의 [바로가기] 주소를 클릭하면 영어와 일본어로 된 해설을 바로 열어볼 수 있다. 또한 위의 [첨부파일]을 클릭하면 한국어로 된 해설을 다운 받을 수 있다. 이 첨부파일은 웹 브라우저 [Google Chrome]으로는 쉽게 열리지만, [Internet Explore]로는 잘 열리는 것 같지 않았다.)
금년(2013년)에는 키무라씨의 ‘기적의 사과’ 스토리가 일본에서 저명한 배우들을 등장시켜 상업영화로 제작되어 일본 전역의 극장에서 개봉되었다고 한다. 아마도 이것을 계기로 ‘자연재배’에 대한 관심은 더욱 높아 질 것으로 기대된다. 이 영화에 대한 더 자세한 정보는 이 영화의 홈페이지를 참조하기 바란다.
[신비로운 자연재배의 세계]
이문웅(서울대 명예교수; 인류학)
(이 원고는 송광일박사의 자연재배 관련 신간 서적[기적의 채소], (출)청림Life, 2012. 9월 발간]에 ‘감수의 글’로 쓰여진 원고입니다. 이 원고는 이 책에 “무비료, 무농약, 무제초제 자연재배의 놀라운 기적”(18~35쪽)이라는 제목으로 전문이 삽입되어 있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이문웅)
아무 비료도, 농약도, 제초제도 치지 않고 농사를 짓는다? 그러고도 채소와 과일을 길러내고, 논농사를 짓는다? 심지어는 논과 밭을 갈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이제 쌀 수확량은 거의 관행농업의 평년작 수준에 도달했다고? 이건 꿈 같은 이야기 아닌가? 그러나 이것은 이미 10여 년의 자연재배 농사를 경험해온 송광일박사가 쌓아온 노하우이고 실천의 성과란다. 이 정도의 성과는 어디선가 다른 자연재배자들도 이미 달성한 수준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송광일박사가 그의 자연재배 경험에서 정립한 이론적인 틀은 단지 자연재배 기술의 차원을 훨씬 넘어서 인류의 건강복지에 대한 관심을 드높이는 데에 결정적으로 기여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가 처음으로 내놓는 이 책이 어떤 놀라운 결과를 가져올지 기대가 된다.
화학비료와 농약, 그리고 제초제의 폐해에 대해서 많이 들어 왔지만, 그렇다고 달리 먹고 살수 있는 식재료를 찾기도 어렵다. 이 인류문명의 성과(?)를 외면하고 살아갈 길은 막막하다. 오늘날 많이 찾는 ‘친환경의 유기농’이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것인가? 그것도 아니란다. 어떤 식재료가 우리 몸에 좋은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송광일박사의 ‘압력이론’은 안전한 식재료를 추구하는 데에 귀중한 열쇠를 제공해줄 수 있을 것 같다. 비료 제공과 같은 인간의 영양 간섭 없이 자연상태에서 식물이 생장하는 것과 같이 자랄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 준다면 식물은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 스스로 치열한 먹이활동을 하게 된다. 이런 과정에서 식물은 결과적으로 세포조직이 치밀하고 건강한 식재료, 즉 ‘고전압 식품’으로 탄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고전압/저전압 식품’의 개념과 함께 송박사가 또 내세우고 있는 ‘패스트 푸드’의 새로운 해석은 우리의 일반적인 상식을 뒤집어놓고 있다. 즉 금방 조리해서 먹는 음식, 또는 기다리지 않고도 반 조리된 음식을 즉석에서 마무리해서 먹을 수 있는 음식만이 ‘패스트 푸드’가 아니라, 식재료의 생산과정에서부터 영양공급이라는 인간의 개입에 의해서 생장하게 되면 식재료로는 부실하게 생산된 작물이 되고, 그런 재료로 조리된 음식을 모두 ‘패스트 푸드’의 개념에 넣고 있다. ‘고전압/저전압 식품’의 개념과 ‘패스트 푸드’의 새로운 해석. 나는 이 두 가지를 자연재배를 다룬 어떤 서적에서도 접한 적이 없다. 사실 이 두 가지는 자연재배와 함께 우리가 어떤 음식을 먹고 건강하게 살 수 있을지를 생각하는 데에 귀중한 지침을 제공해 줄 것이다. 이것이 내가 송광일박사의 자연재배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또 이 책의 출판을 크게 환영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문화인류학자인 내가 왜 자연재배에 관심을 갖느냐고 의문을 표시하는 소리가 주위에서 들린다. 분명히 말해서 자연재배는 농업분야이다. 또한 문화인류학자의 관심 분야는 인간의 삶, 즉 생활양식이다. 우리가 무엇을 먹고 사느냐는 문제는 생활양식 중 어쩌면 가장 중요한 부분의 하나이고, 이것은 곧 문화의 한 부분이다. 따라서 우리가 어떤 식재료에 기초해서 식생활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식재료는 어떻게 생산된 것인지, 과연 그것이 우리의 건강을 담보해줄 만한 안전한 식재료로 생산되고 있는지는 곧 문화현상이고, 문화인류학자가 학문적으로 연구하기에 적절한 주제가 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식재료를 생산하는 방법의 하나인 자연재배에 관심을 가져왔다.
오늘날 현대문명의 발달에 힘입어 식량생산과 확보는 실로 경이적이라고 할만 하다. 비료와 농약의 발달에 기초한 과학영농의 덕분으로 식량생산은 적어도 과거에는 상상을 할 수 없을 정도의 적은 농업인구로도 전 인구의 식량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정도에 이르게 했고, 계절에도 상관없고 세계 어디에서 생산된 것이라도 쉽게 구할 수 있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와 함께 우리는 이제 우리가 먹는 식재료가 과연 건전한 것이냐를 심각하게 걱정하게 되었다. 비료와 농약이 과다하게 투입되면서 각종의 화학물질이 우리의 인체에까지 도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이제 위협적인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또한 날로 늘어나고 있는 각종 질병은 우리의 몸이 이런 질병에 얼마나 취약해 졌는지를 잘 말해주고 있다.
OECD의 통계에 의하면 농업분야의 단위 경작면적 당 비료의 사용량에 있어서 한국이 세계 최고의 수준이라고 한다. 근래에 와서 많은 사람들이 비료와 농약의 과다사용을 우려하면서 친환경의 농법으로 ‘유기농업’을 거론하고 있다. 나도 그런 줄 알고 이제는 유기농의 세계적인 메카로도 불리우는 쿠바의 ‘도시농업’에 관심이 많았다. 쿠바의 유기농은 서방의 경제봉쇄로 비료와 농약을 생산 및 수입할 수 없는 상황에서 쿠바가 해결책으로 찾아낸 지렁이 농법에서 비롯된 것이었고, 결과적으로 건전한 식품을 생산하게 되어 이제는 서방으로 식품 수출은 물론이고 해외로부터 관광객을 유치하는 데에 결정적인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에 일조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쿠바의 도시농업을 탐방하기 위해서 나는 2009년 2월 한 달간 아바나를 여행하면서 유기농업의 현장을 탐방하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자연재배’의 개념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 해 하반기에 나는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일본의 자연재배 전문가 기무라 아키노리(木村秋則)씨의 ‘기적의 사과’와 함께 송광일 박사의 자연재배 농장이 잠깐 소개되는 것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것이 내가 자연재배를 처음으로 접한 계기가 되었다. 그 후 나는 곧 송박사에게 연락하고 그의 농장을 탐방하였다. 이미 10여 년간 자연재배를 해온 이 농장의 작물들이 화학비료나 퇴비, 그리고 농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은 채 이렇게 싱싱하고 건전한 식재료를 생산하고 있다니 실로 경탄을 금치 못했다.
점차 자연재배의 세계로 빠져들면서, 나는 이것이 일본에서는 거의 70여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지금까지 나는 전공분야 연구에서 일본의 문화탐사를 주로 해왔기에, 나는 이를 계기로 자연재배의 현장을 탐사하는 데에 관심을 집중하기로 작정했다. 지금까지 일본의 니이가타, 아키타, 아오모리, 혹카이도, 도쿄, 간사이 지역의 자연재배 생산 및 유통 현장을 두루 탐방하였고, 아울러서 우리나라의 자연재배 현장들도 탐방하면서, 나는 이 자연재배가 적어도 식량생산에 관한 한 인류문명이 마지막으로 지향해야 할 방향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지금까지 내가 자연재배 현장을 두루 탐방한 바에 의하면 “자연재배에는 한가지의 통합된 농법을 기대할 수 없다”는 잠정적인 결론에 도달하였다. 물론 무비료, 무농약, 무제초제의 자연재배라고 할지라도, 지역에 따라서 토질, 기후 조건이 다르고 또 작물에 따라서도 다르기에 작물 생산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는 너무나도 많다. 따라서 생산자들은 각기 나름대로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자연재배에 관한 서적들이 적지 않다. 그 중 상당한 부분이 일본의 자연재배 관련 서적을 번역한 것이다. 또한 이런 문헌들과 함께 일본의 자연재배 노하우를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접하고 자연재배를 실천하고 있는 분들이 많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자연재배를 실천하고 있는 분들 중에는 순수하게 독창적으로 자연재배 농법을 개발하여 실천하고 있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이런 농법이 우리나라의 실정에 맞는 것으로 인정받아 널리 보급된 사례를 찾아보기는 힘들다. 또 한가지 안타까운 일은 우리나라에선 아직 자연재배를 유기농과 구분하지 못하거나, 유기농업의 한 분야로 간주하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자연재배의 실천 방식이 농장에 따라서 다양한 방식이라고 하드라도, 그것이 철저하게 ‘무비료, 무농약, 무제초제의 자연재배’ 방식으로 생산되는 것이라고 한다면 어떤 길을 택해서 가든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면 상관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다양한 자연재배의 현장을 탐방하고 각기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진화하고 있는 노하우를 생산자와 소비자들이 공유할 수 있는 정보광장을 구축하는 것을 내 생애의 마지막 과제로 삼을 작정으로 노력 중이다.
송광일 박사를 만난 후로 나는 곧 그의 자연재배 실천 경험은 너무나도 소중하다고 생각되어 이런 책을 쓸 것을 권해왔었다. 송박사의 자연재배에서는 이 분야의 다른 사람들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하고도 특별한 점들이 찾아 볼 수 있었고, 우리나라에서 자연재배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에 귀중한 자극제가 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송광일박사는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스스로 자연재배의 길로 들어섰다.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농사꾼들과 같이 그도 관행농업으로 농사일을 시작하였고, 축산업도 해보았다. 그러나 비료와 농약, 그리고 축산사료의 문제를 경험하면서 이것이 옳은 길이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렀고, 1983년부터 자연재배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니 벌써 30년 전의 일이다. 15년 넘게 혼자서 갖가지 실험을 해온 끝에 1999년에 현재의 장소에 농장을 개설했다고 한다. 그 후 농업에 관한 좀 체계적인 학문연구를 하기 위해 전남대학교 대학원에서 농학박사학위(2002-2010)도 취득하였다.
송박사는 ‘자연재배’의 개념도 갖지 않은 채 이 농장에서 비료와 퇴비를 쓰지 않고, 농약과 제초제도 치지 않은 채 농사를 지었다. 그의 농사방식이 주변에 알려지면서 2008년에는 ‘기적의 사과’로 널리 알려진 일본의 자연재배가 기무라 아키노리씨가 한국에 강연 왔던 차에 그의 농사방식을 전해 듣고 이 농장을 방문했다고 한다. 그 때서야 비로소 송박사는 그의 농사방식이 ‘자연재배’라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그 때까지 그는 자신의 농사방식을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이득이 되는 ‘양생농법’으로 불렀다고 한다. 이렇게 누구로부터도 자연재배의 원리나 방법을 전수받지 않고 스스로 터득한 그의 자연재배는 실로 놀라운 기술적 혁신(innovation)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그는 지금까지도 일본의 대표적인 자연재배 이론가이며 ‘자연재배계의 구루’로도 불리울 만한 후쿠오카 마사노부(福岡正信; 1913~2008)와 카와구치 요시카즈(川口由一; 1939~ )의 자연재배를 알지 못하고, 우리나라에서 번역 출판된 그들의 책을 접한 적이 없다고 한다. 이들은 세계 퍼마칼쳐(permaculture; 지속가능농법)분야에서도 널리 알려진 선구자들이다.
송박사는 대학원 연구과정에서 생물생리학을 전공했다고 한다. 이 학위과정에서 그가 도달한 ‘전압이론’(tension theory)은 아마도 자연재배의 원리와 건강한 식재료의 이해에 귀중한 열쇠를 제공해줄 것으로 나는 확신한다. 이 이론은 모든 물질의 이동은 전압(voltage/tension)의 차이에서 발생한다는 데에 착안하고 있다. 예컨대 빨대로 컵에 든 음료수를 빨아들이려면 압력을 높여야만 입에 들어온다. 그런 힘도 없다면 빨아 마실 수가 없다. 식물이 영양을 흡수해서 에너지로 전환시키는 것도 역시 압력의 차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영양이 부족할 때는 잔뿌리를 많이 키우거나 영양원을 찾아서 뿌리를 길게 뻗어서 해결한다는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식물의 세포조직은 치밀해지고 탄탄해지며, 여러 가지로 어려운 생존조건에서도 살아남는 강인한 식물로 살아남게 된다. 이것이 곧 고전압 식품이 되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인간이 비료나 퇴비를 주면 식물은 더 이상 스스로 살아남기 위한 노력을 할 필요가 없기에 숙숙 잘 자라기는 해도 병충해에 취약한 식물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이것이 겉으로는 잘 자란 농작물 같이 보이지만 세포조직은 느슨한 약체의 식물로, 부드러운 이런 농작물은 벌레들이 공략하기엔 아무런 문제가 없는 먹이가 된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송박사는 우리의 일반적인 상식과는 달리 농약보다는 화학비료가 더 문제라고 과감히 평가하고 있다. 물론 농약도 나쁘긴 하지만, 비료는 작물을 약체로 만들어서 결국 우리의 몸을 질병에 취약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농작물은 생산과정에서 비료나 퇴비 등의 영양분을 투입했느냐 여부에 따라서 ‘고전압 식품’이 되기도 하고 ‘저전압 식품’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자연재배의 식재료는 세포조직이 치밀하고 탄탄해서 병충해의 피해를 입지 않거나 극히 적고, 이런 식재료는 사람의 신체를 건강하게 해 준다는 것이다. 자연재배 식품의 가장 뚜렷한 특징은 썩지 않는다는 점이다. 즉 자연재배의 농작물은 시간이 지날수록 속에 있는 수분이 증발되어 시들고 말라서 결국 과일의 경우에는 딱딱한 고체로 바뀔 뿐이지, 썩어서 냄새를 풍기지는 않는다. 이것은 실로 놀라운 현상이다. 자연재배 농장 주변에는 버려진 채소나 과일로 썩어서 냄새가 진동할 것 같은 데, 이런 현상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고전압/저전압 식품의 개념과 관련 있는 또 하나의 개념으로 송광일 박사의 독창성이 엿보이는 것이 ‘패스트 푸드’의 개념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금방 조리해서 즉석에서 먹을 수 있는, 또는 시간을 들이지 않고 쉽게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음식을 ‘패스트 푸드’라고 불러왔다. 헴버거, 도너츠, 후라이드 치킨, 피자 등이 그 대표적인 것이다. 그러나 송박사는 식재료의 생산과정에서 자연에 맡겨서 서서히 생장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비료나 퇴비 등의 영양분을 투입해서 성장을 촉진시켜서 부실하게 생장한 식재료를 모두 ‘패스트 푸드’에 포함시키고 있다. 이와는 반대로 자연의 순리에 따라서 스스로의 힘으로 서서히 생장한 식품을 ‘슬로우 프드’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패스트 푸드’는 모두 ‘저전압 식품’이고, 이것을 먹는 인간의 신체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한 ‘슬로우 푸드’에 비해서 그 효율성이 훨씬 떨어진다는 것이다. 인삼의 경우에 그 구분이 분명해진다. 즉 수십년 또는 백여년 동안 인간의 눈에 띄지도 않고 자란 산삼은 전형적인 ‘슬로우 프드’인 반면에, 비료와 농약을 치면서 삼밭에서 키운 인삼은 ‘패스트 푸드’라는 것이다. 물론 양자는 우리가 잘 알듯이 가격 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런 ‘패스트 푸드’의 개념과 함께 우리가 먹고 있는 식재료를 생각한다면, 관행농업으로 생산된 식재료는 거의 예외없이 ‘패스트 푸드’에 속한다. 다만 산과 들에서 채취한 야생의 산나물이나 식재료가 있다면 그것들은 ‘슬로우 푸드’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관행농업으로 생산된 ‘패스트 푸드’가 모두 나쁘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이런 ‘패스트 푸드’의 개념은 우리 몸에 이로운, 세포조직이 치밀하고 탄탄한 건강한 식품을 추구하려는 우리의 노력에 교훈적인 아이디어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겠다.
다른 한편 이 ‘패스트 푸드’의 개념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먹는 식재료를 생각하는 데에 새로운 전망을 제공해주고 있다. 흙에 뿌리를 내리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양분을 투입한 물에 띄워서 키우는 수경재배(또는 양액재배) 식품은 건전할까? 조밀한 닭장에서 키운 상업적 양계장의 닭과 농촌에서 풀어놓고 키우는 토종 닭의 맛은? 양식한 생선보다는 자연산의 생선을 더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패스트 푸드’에 잘 길들여진 젊은 세대보다는 장년 및 노년세대의 사람들이 과거 화학비료가 거의 사용되지 않았던 시대의 ‘어머니의 손맛’을 그리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은 단지 ‘어머니의 손’만이 아니라, 어머니가 사용 하신 식재료 자체가 달랐을 가능성이 더 클지도 모른다.
송광일 박사의 자연재배에 관해서 듣는 사람들이 거의 일반적으로 의문을 제기하는 부분이 바로 그가 ‘하우스 재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책에서도 이 점을 다루고 있지만, 그는 빗물을 통제 또는 조절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식물의 생리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송박사는 식물이 필요한 만큼만 스프링클러 또는 점적관수로 물을 제공하고, 식물 자체가 치열하게 먹이활동을 하도록 유도함으로서 강인한 식재료, 즉 고전압의 슬로푸드를 생산하려는 장치가 바로 시설재배인 것 같다. 송박사의 농장을 방문할 때마다 나는 그가 작물들에게 고통을 주거나 아니면 착취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그는 이런 방식으로 ‘건강한 식품’(healthy food)을 생산해내고 있다.
송박사가 모든 작물을 시설재배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가 자랑스럽게 내놓고 있는 복숭아와 쌀은 노지에서 재배하고 있다. 역시 시설재배와 같이 여기서도 비료 및 퇴비, 농약, 제초제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심지어는 경운(논갈이)도 하지 않는다. 쌀 수확량은 이제 예년의 일반재배 수준에 도달했다니 놀랍기만 하다. 나도 송박사가 재배한 채소며 복숭아, 그리고 쌀을 먹어봤지만 그 맛이며 식감은 경이롭다고 표현할 수 밖에 없을 정도였다. 여기에는 비료와 농약, 제초제에 드는 비용이 전혀 없고, 노동력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뿐만 아니라 관행농업에서 농약의 독성으로 심각한 피해를 해마다 반복해야 하는 농민들의 고생, 그리고 비료와 농약의 과다한 투입으로 우리의 땅이 망가져가고 있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 자연재배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인류의 희망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나는 이 자연재배의 세계를 탐험해 나가면서 하나의 심각한 의문이 점점 더 나의 사고를 가로막고 있는 느낌을 숨길 수가 없다. 비료나 퇴비를 포함한 아무런 영양을 공급하지 않고도 농사를 지을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런 자연재배의 농작물은 세포조직이 치밀하고 탄탄해서 병충해로부터 비교적 자유롭고 농사에 위협적이지 않다는 사실에 과학영농을 표방하는 농학의 전문가들 및 농정 당국자들은 왜 외면해 왔는가? 이런 사실을 모른다는 것은 적어도 말이 되지 않는다. 만약 그런 자연재배가 사실이 아니라면, 그것을 과학적으로 밝히는 것이 학문의 정도일 것이다. 관행농업에서 필수적인 화학비료와 농약 제조는 실로 거대한 산업이다. 일본에서도 자연재배를 가장 격렬하게 반대하고 외면하는 것이 일본농협(JA)라고 한다. 어쩌면 가장 큰 수입원일지도 모르는 화학비료와 농약의 공급이 끊긴다는 것은 경영상의 치명적인 타격일 것이다. 우리나라의 사정이 어떠한지는 나는 아직 모른다. 아직 본격적으로 자연재배가 널리 보급되고 있지 않아서고 그렇겠지만, 앞으로 전개될 방향은 비슷할 것으로 생각된다.
나는 2011년 9월에 일본의 자연재배 현장 탐사에 나섰다가 사과의 주산지인 아오모리현의 히로사키시(弘前市)에 위치한 히로사키대학의 농학생명과학부 스기야마(杉山修一) 교수를 찾아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는 이 도시에 있는 ‘기적의 사과’로 유명한 기무라 아키노리씨의 자연재배 사과원을 연구하고 있는 분이다. 그는 인터뷰 중 “우리 학자들은 현장의 농민들을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어요. 그들은 매일매일 현장에서 수많은 변수들을 직접 고려하면서 현재의 상황을 수정하고 보완해나가면서 농사를 짓기 때문이지요.”라는 말을 전해주었다. 학문 평생 기간에 사회과학을 했던 나도 충분히 공감이 가는 말이었다. 과학자들은 현상을 해명하는 데에 특정의 변수만을 떼내어서 ‘만약 다른 조건이 같다면’이라는 가정하에 이 변수들 간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를 연구한다. 그러니 학자들이 농민들의 현장사정을 따라갈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자연재배로 무비료, 무농약, 무제초제의 농법으로, 그리고 농사짓는 땅을 갈지도 않고 건강한 농작물을 생산할 수 있다는 엄연한 사실을 농학자들은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작년에 사실 나는 기무라씨를 찾아서 그의 자연재배에 관해서 듣고 싶었다. 만나줄 것을 요청했지만 2012년 말까지 그의 일정이 꽉 짜여져 있어서 만나줄 수가 없다고 그의 사무실에서 알려왔다. 그는 근래에 자신의 자연재배 경험을 전국적으로 소개하려고 나서면서 너무나도 바쁜 분이다. 나는 스기야마 교수를 만나는 것으로 만족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교수는 마침 친절하게도 히로사키에 왔으니 기무라씨의 사과밭을 잠깐 보고가겠느냐고 제안하기에 기꺼이 응했다. 그러나 예상치도 못했는데, 사과밭에는 기무라씨가 있는 것이 아닌가! 지방의 강연과 강연 사이에 시간의 틈이 있어서 잠깐 집에 들렸다고 했다. 천만 다행이었다. 기무라씨의 ‘기적의 사과’ 밭에서 기무라씨를 만난 것이다. 9월 초순의 늦은 오후에 내 눈에 들어온 주먹 만한 크기의 탐스러운 사과들. 가지마다 자욱히 달린 광경은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이것들이 모두 무비료, 무농약, 무제초제의 자연재배로 키운 사과들이라니! 약 한 시간 반정도의 만남에서 그로부터 들은 몇 가지는 앞으로 자연재배 농법의 확산에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되어 잠깐 소개하고자 한다.
지금 일본에서는 특히 동북부 지방을 중심으로 곳곳에 ‘기무라 자연재배 연구회’라는 동호인 그룹이 조직되어 있다. 그 중 노도(能登)반도에 위치한 이시카와(石川)현에도 기무라씨가 특별히 정성을 쏟고 있는 데, 좋은 성과를 얻고 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최근 이시카와의 타니모토(谷本正憲) 현지사는 “내년(2012)부터 이시카와현의 쌀농사는 자연재배로 간다!”고 선언했다는 것이다. 또한 더 놀라운 사실은 여기에 이시카와의 농협(JA)이 찬동했고 이 켐페인에 합류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일본에서는 전국의 지자체마다 자기네들의 브랜드로 농작물을 생산하여 한정된 시장에서 경쟁하느라고 사활을 걸고 있다. 특히 후쿠시마 원전의 폭발로 인한 방사능 문제의 여파로 이제 식품의 안전성이 더욱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기는 하지만, 안전한 식품 브랜드를 내세워서 전국적인 시장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는 이시카와현의 발상은 기발하기도 하고 놀랍기만 하다. 또한 이날 기무라씨는 이시카와현의 한 자연재배 식품 축제에 일본의 대기업 종합상사인 이토츄(伊藤忠), 마루베니(丸紅), 닛쇼이와이(日商岩井) 등이 관계자를 파견하여 관심을 표명하였다고 전해주었다. 아무래도 이것은 일본 유수의 종합상사들이 “이 자연재배의 농산물에 승부를 걸만하다는 계산이 끝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을 낳게 했다는 것이다.
이 책의 거의 마지막 부분에서 송광일박사는 식량사정이 열악한 북한에 우리나라가 많은 비료를 제공해주고 있다는 점을 상기시키면서, 화학비료와 농약이 필요 없는 자연재배가 도움이 될지 모른다는 운을 떼었다. 바로 이점은 내가 자연재배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지속적으로 생각해오던 부분이다. 쿠바는 외화 부족으로 화학비료와 농약을 마련할 수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유기농으로 전환하여 결과적으로 전화위복이 되었지만, 송박사의 전압이론에 의거하면 여전히 쿠바의 유기농 작물은 인간이 투입하는 유기비료를 주영양분으로 하기에 고전압 식품에는 미치지 못하는 셈이다. 그러나 북한에 자연재배가 보급된다면 화학비료와 농약이 필요 없기에 당장이라도 시행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북한을 지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이 자연재배가 정착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기에 이 기간을 버틸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만약 이것이 성공적으로 정착된다면 자연재배 식품을 한국이나 중국에 높은 가격으로 팔고 중국으로부터 싼 일반재배의 농산물을 수입해오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식량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도움을 줄 수만 있다면 남북한 간의 평화 유지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 책은 자연재배에 관한 책이기는 하지만, 저자는 사실상 자신의 ‘전압이론’에 의거하여 식품이 인간의 신체에 미치는 영향 및 질병과의 관계를 논하는 내용을 더 많이 담고 있다. 또한 이런 과정에서 우리의 상식을 뒤집는, 어쩌면 도발적(?)이기도 한 주장 및 가설들을 많이 들어내고 있어서 논란의 대상이 될 만한 부분도 적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그것들은 앞으로 각 분야의 많은 전문가들에 의해서 검증될 것이고, 이런 과정에서 더러는 저자의 주장이 잘못된 것이라는 점이 밝혀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논의가 활발히 전개되도록 가설을 제기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학문과 농업기술, 더 나아가서는 의학의 발전에 기여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여하튼 이 책 속에 담긴 획기적인 주장 및 가설들은 저자의 10여 년에 걸친 자연재배의 경험에 기초한 것이라는 점에서 나는 송광일박사의 용기와 열정에 뜨거운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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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정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