〇 요산요수(樂山樂水)
우리가 흔히 ‘즐거울 락’자로 알고 있는 ‘樂’이란 글자는《한한대사전(漢韓大辭典)》(단국대 동양학연구소 간행)에 의거하면 대략 네 가지 정도의 음으로 나타남을 알 수 있다. 음악이라고 할 때의 ‘악’과 기쁘거나 즐겁다고 할 때의 ‘락’자, 좋아한다고 할 때의 ‘요’, 치료한다고 할 때의 ‘료’자 등으로 쓰인다.
그래서 산이나 물을 좋아한다고 할 때에는 요산요수(樂山樂水)라고 하게 되는데, 이와 관련하여《논어(論語)》옹야(雍也)편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보인다.
“지자(知者)는 요수(樂水)하고 인자(仁者)는 요산(樂山)하니 지자(知者)는 동(動)하고 인자(仁者)는 정(靜)하며, 지자(知者)는 낙(樂)하고, 인자(仁者)는 수(壽)하느니라.”
우리 식으로 해석하면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하니 지혜로운 사람은 동적(動的)이고, 어진 사람은 정적(靜的)이며, 지혜로운 사람은 낙천적이고 어진 사람은 오래 산다.”는 의미로 풀 수 있다.
지혜로운 자는 온갖 사리에 통달하기 때문에 두루 유통하여 마치 물 흐름처럼 막힘이 없어 물을 좋아하는 반면 어진 사람은 의리(義理)에 편안하여 사람됨이 중후하고 변함이 없어 마치 산과 같아서 산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쉼 없이 흐르는 물이 동적이라면 중후하고 변함없이 일정한 모습을 띤 산은 정적인 셈이다. 동적인 지자(知者)는 대체로 낙천적이고 정적인 인자(仁者)는 장수한다고 한다.
실지로 물을 보면 일정한 모습을 따로 갖고 있지 않으면서 변화무쌍한 모습을 보인다. 둥근 그릇에 담기면 둥근 모습을 띠고 네모 난 그릇에 담겨지면 네모 난 모습으로 보이지만 물의 성질을 잃는 것은 아니다.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아래를 향해 흘러가면서 막힌 것이 있으면 돌아가고 패인 곳이 있으면 이를 메워가며 앞으로 나아간다. 좁은 곳을 지날 때는 급하기도 하고 너른 곳에서는 천천히 제 갈 길을 간다. 때와 장소에 따라 잘 대처하는 데서 지혜로움을 상징하게 된 듯하다.
그런가하면 산은 어떤가? 늘 말없이 그 자리에 우뚝 서서 변함없는 모습을 띠고 있다. 물론 철 따라 그 모양은 달라지지만 여전히 장중한 그 모습으로 흔들림 없이 서 있는 것이다. 하나의 흙이나 돌, 나무나 풀 따위를 다 받아들이면서 조용한 가운데 자기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고 있다. 어진 사람의 행동도 마치 산과 같아서 말이나 행동을 함부로 하지 않을 뿐 아니라 남에 대한 배려나 포용을 통해서 그 자리를 항상 지키려고 한다. 그래서 또한 어진 자를 형상하게 되었다 하겠다.
같은《논어》의 이인(里仁)편에는 ‘인자(仁者)는 안인(安仁)하고 지자(知者)는 이인(利仁)’이라는 구절이 있다. 어진 자는 인(仁)을 편히 여기고, 지혜로운 자는 인을 이롭게 여긴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보면 인자(仁者)는 말할 것도 없지만 지자(知者)도 또한 인(仁)을 소중히 여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기야 인(仁)이 좋은 것을 모른다면 어찌 지혜로운 자라 � 수 있겠는가?
따라서 요수(樂水)하는 지자는 요산(樂山)이 이로움도 알 것이니 요산요수가 별개로 존재하기보다 어느 정도 동시성을 보일 때 그 의미는 더 크게 다가온다 할 수 있다. 그러니 요산요수를 하게 되면 자연 즐거운 삶을 영위하게 되고 또한 오래 사는 방도가 된다 하겠다. 삼국시대 신라에서 화랑도들이 경관이 좋은 산수를 찾아 심신을 단련했다함도 좋은 선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만물이 소생하는 따스한 봄날을 맞아 물가를 거닐고 산을 찾으면서 즐겁고 건강한 자신을 살찌워봄이 어떨까?
<건강과 행복> 2011년 4월호(단국대학교 병원 잡지)
첫댓글 물과 산이 다 좋아요..^^
같이 있으면 더좋은데.........
캡틴님..
주신글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