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한국신학교 토요일반
8학기 전도사 신용열 입니다.
어제(본 교회 주일 오후 예배 특송때)
"상한 심령" 찬양입니다....~~~♡♡
https://youtu.be/VyQlk2ZIrH8
🍒하나님이 구하시는 상한 심령의 제사(시편51:1-19)
14 하나님이여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피 흘린 죄에서 나를 건지소서 내 혀가 주의 의를 높이 노래하리이다
15 주여 내 입술을 열어 주소서 내 입이 주를 찬송하여 전파하리이다
16 주께서는 제사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17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
흠없고 온전한 찬양을 원하시는
주님께 영광돌리며
앞으로 더욱 주님만을 찬양하는
상한 심령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
저의 죄와 그 결과가 얼마나 뼈아픈지요, 그것이 저보다 주님 마음을 더 아프게 했기에, 참담한 눈물로 회개합니다.
더럽고 추악한 모든 죄를 말갛게 씻기신 주님의 보혈이 얼마나 귀한지 전하며
그 은혜에 합당하게 살게하소서.
🍎 상한심령의 찬양
소리향기 헌신예배때 오프닝 곡으로
상한심령을 올려 들이지 못해 이번 주일
오후 예배때 주님께 기도하는
심정으로 찬양으로 영광드리기 원하며,
(몸 컨디션이 안좋아 어찌될 지
모르겠네요 / 감기살짝~~~)
회개의 심령으로
본 글을 쓰는 내 자신과 우리 모두가
함께 생각하며 믿음으로 주님앞에 바로
서기를 원합니다.
사람은 처음부터 악한 존재로 태어난다. 그러하기에 심령이 찔림을 받아
상함을 입지 않으면 하나님 앞에 서지 못한다.
어떤 것이 상한 심령이며, 무엇이 심령을 상하게 하는가. 상함이 있은 후 반드시
치유가 있다. 평생을 교인으로 살면서
종교의 외적 의무에는 충실했지만,
아직도 심령의 진정한 상함을 입지 못한 분들에게 드리는
영적찬양의 상한심령의 찬양~~~~
{상한 심령으로 서라}는
죄와 불의에 대하여 치열하고도 투사적인 사람을 살다간 저자 존 번연의 고백적
저술로 그의 생애 마지막 작품입니다.
그는 자신이 젊은 날의 방황과 죄책에서 어떻게 벗어나 하나님께 사유함을 입었는가를, 시편 51편 17절의 다윗의 통회하는 마음, 상한 심령의 고백을 통해 객관성 있게 간증합니다.
상한심령의 마음으로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것은 하나님에 관한 지식은 우주창조와 그 계속적인 통치에서 빛을 발하기 때문에 말씀을 통하여
주님의 음성을 듣고 싶은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자기현현(自己顯現)은
명백하기 때문에 어떠한 변명도 허용되지
않기에 더우기 복된 생활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을 아는데 있기때문이다.
(요 17:3)
"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어떠한 사람도
행복에 이르는 데서 제외되지 않도록
하기위해, 인간의 마음속에 이미 말한 바
있는 종교의 씨앗을 심어 주셨을 뿐만
아니라 자기를 계시하셨으며 우주의
전(全) 창조 속에서 매일 자신을
나타내시는 것이다.
그 결과 인간은 눈을 뜨기만 하면
하나님을 볼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실로 하나님의 본질은
불가해 [不可解]한 것이어서
그 신성(神性)은 인간의 모든 지각을
훨씬 초월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든 창조물 위에 영광의 명백한 표적을
새겨 놓으셨으며 그것은 너무나 뚜렷하고
확실하기 때문에
아무리 무식하고 둔한 사람이라 해도
무지를 구실로 삼을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삶의 예배가 회복되어야 하며
예배와 삶이 같아지도록 기도하며
언행일치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자신을 위해서는 무수한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으면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와 기도, 말씀, 찬양함에는
늘 핑게가 많다.
그리고 우리는
무슨 일의 결정이나 진행에 있어
하나님께 먼저 묻지 않고 본인이 결정하고
그 다음 주님께 기도하는 우선순위의
인본주의가 먼저일 때가 있다.
음성듣는 제자의 훈련이나 말씀에
집중하지 못하고 나름 자신의
고집으로 일괄할때가 너무 많다.
상한심령의 회개와 거룩한 몸부림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이래서 안되고 저래서 안되고
핑게로 일관하는 삶은
하나님의 형상이라 말할 수 없다.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하고
하나님의 관한 지식에 있어서는
평생의 순종하는 믿음으로 주님앞에
설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일관하여 사는것,
우리가 세상에서 하는 일들의 삶이
모두 도구이어야지
육신의 정욕만을 위한 목적으로 사는 것은
어리석고 헛된 무책임한 믿음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온 인류에게 제시되었고
인간은 신적 지혜의 최상의 증거를
주셨지만 인간은 늘 배은 망덕하게
하나님을 대항한다.
여기서 인간의 더러운
배은 망덕이 드러난다.
인간은 자기안에 하나님의 무수한
사역으로 아름답게 꾸며진 공장과, 동시에
측량 할 수 없는 부요함이 넘쳐 흐르는
창고를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인간은 마땅히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데, 그와는 반대로 교만에
부풀어 스스로 잘난 체한다.
왜 상한 심령이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모든 제사를 대신할 수 있으며, 그리고 통회하는 마음이 모든 제물을 대신할 수 있습니까?
만일 그 사람의 마음을 상하거나 통회하도록 만들지 않고도 하나님을 경배하는 일의 외적인 것들 가운데 어느 한 가지라도,
아니면 그 모든 것을 다 합친 것들이 그 사람을 건전하고 올바르게 생성된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시킬 수만 있다면, 왜 상한 심령과 통회하는 마음이 다른 모든 것들을 다 합쳐 놓은 것보다 더 탁월한 것으로 간주되겠습니까?
"상한 심령,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께로 나아올 때 상한 심령을 결핍하고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나와 우리의 모든 봉사를 틀림없이 경멸하시고 거절하실 것입니다.
창조주는 자신의 주 되심을
창조에서 계시하셨기 때문에
피조물인 우리 인간은 그 분을
예배하며 나가는 매일 매일의
삶이 되어 지기를 오늘도 이 순간
소리향기 모든 분들에게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상한심령의 찬양으로
은혜받고 주님 만나는 귀한시간
되시길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