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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에 심겨진 뿌리 깊은 나무(1720.2016.1.3.첫주일) 렘17:5-8
할렐루야! 주의 이름으로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목사님도 사랑--옆사람과 인사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사랑하되 끝까지 사랑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절대로 포기하지도, 버리시지도 않습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생명주시고 살게 해주시는 사랑입니다. 오늘도 주의 전에 나오신 여러분 모두에게 하늘의 위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혹시라도 삶의 현장에서 상한 마음을 가지고 오셨으면 말씀 듣다가 위로와 치유함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삶이 힘들고 지쳐서 오셨다면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은 새힘을 얻는시간 되시기를 바랍니다. 무엇인가 계획하고 기도중에 있는 것이 있다면 응답받는 은헤가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모든 삶이 해결되고 성령이 충만하여 기쁨과 감사와 웃음이 넘치나기를 축원합니다.
2016년도 한해동안에 우리 모든 성도들의 가정이, 사업장이, 자녀들의 앞길에 매였던 것들이 풀어지는 역사가 일어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리고는 강변에 심겨진 나무처럼 항상 메마름이 없는 축복이 임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메마른 시냇가에 물이 흐르는 시냇가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함께 은혜받기를 원합니다. 수입이 별로 많지 않은 사람이 교회에 누구보다도 더 많이 헌금을 하고, 가정을 잘 꾸려 나가며, 자녀들도 모두 다 입히고 잘 먹여 행복하게 사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한 사람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의 월급은 나보다도 더 적은데 많은 헌금을 내고도, 내가 꾸려 나가는 것보다 더 가정을 잘 꾸려나가니 무슨 좋은 수가 있습니까?’,‘좋은 수가 있지요, 내가 한 삽을 퍼서 하나님께 바치면 하나님께서도 한 삽을 떠서 갚아 주시는데 하나님의 삽이 훨씬 더 크기 때문이지요’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내 삽은 작지만 하나님의 삽은 큽니다. 하나님의 삽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본문을 기록한 예레미야 선지자는 사람을 하나의 나무로 비유하면서, 어떤 사람은 사막에 심겨진 떨기나무와 같이 소망 없는 삶을 살아가고, 또 어떤 사람은 물가에 심은 나무처럼 소망이 넘치는 삶을 살아간다고 했습니다. 또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지 못한다고 신랄하게 책망하면서 그들이 택해야 할 근본적인 길이 무엇인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의 여덟 번째 설교인 본문에서 그는 저주받을 사람과 복 받을 사람을 대조해서 말합니다. 먼저 저주받을 사람은 사람을 믿으며, 혈육으로 권력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사람입니다. 이들은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에 거하는 자와 같습니다. 반면 복 받을 사람은 여호와를 의지하고 신뢰하며 그 분을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이들은 물가에 심은 나무 같아서 강변에 뿌리를 내리고 있어서 더위나 가뭄이 두렵지 않고, 열매를 끊임없이 맺는 자와 같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인간이 삶의 위기를 맞아 불행해지는 것은 전적으로 인간이 하나님을 바르게 신뢰하지 못하고 그분의 말씀대로 살지 못한 결과라고 말합니다. 시1편에서도 복 있는 자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은 물가에 심은 나무와 같습니다. 물은 말씀의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요7:38절‘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했습니다.
복있는 자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다고 했습니다. 냇가 중에는 물이 없는 메마른 냇가가 있습니다. 메마른 냇가에서 아무리 애를 써보아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마른 냇가에서 할 수 잇는 것이라곤 돌쌓는것, 썩은 냄새 나는 것을 맡는 것밖에는 없습니다. 지금 마른 냇가에 서 있다면 물이 흐르는 시냇가로 바꾸어야 합니다. 물이 흐르는 곳에서는 ‘물안경 쓰고 놀고 고동도 잡고, 물고기도 잡고, 멱도 감고’ 바꾸는 자는 복을 얻습니다. 물이 흐르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는 계절과 기후를 타지 않습니다. 언제 보아도 아름답고 싱싱하며, 풍성하고 만족스러움을 느끼게 됩니다.
복있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집에 심겨져 있기 때문에 환경과 처지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환난과 핍박, 곤고와 괴로움, 박해와 죽음이 와도 절대로 그 어려움을 타지 않습니다. 사시사철 마찬가지입니다. 마른 시냇가에 서 있다면 오늘 물이 흐르는 시냇가로 바꾸셔서 여러분이 복 있는 사람이 되시므로 여러분이 있는 곳마다 복이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강변에 심겨진 뿌리 깊은 나무는 신앙의 뿌리를 깊이 내린 믿음의 사람을 가리킵니다. 성령의 은혜를 지속적으로 공급받으면서 싱싱한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을 가리킵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이 이와 같이 강변에 심겨진 뿌리 깊은 나무들처럼 되어지기를 축복합니다. 그러면 과연 뿌리 깊은 나무는 어떤 특징을 갖고 있을까요?
1. 강변에 심겨진 뿌리깊은 나무는 요동함이 없습니다.
좋은 생각을 많이 해야 합니다. 생각이 잘못된 사람들이 일을 많이 저지릅니다. 범인들을 잡아보면 올바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지요. 우리는 항상 좋은 생각을 많이 해야 합니다. 시1:2절 ‘복있는 자는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했습니다. 복있는 자는 복된 일만을 생각합니다. 번영과 번창의 날에, 행복과 성공의 날에, 순탄한 환경과 유복한 날에는 그 나름대로 생각을 품을 수 있습니다. 역경과 불행의 밤에, 실패와 재앙의 밤에, 슬픔과 눈물의 밤에, 고독과 외로움의 밤에 그 나름대로 생각을 품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주야로 하나님의 말씀 중심의 생각을 품어야 합니다. 당연히 말씀중심의 생각을 품습니다.
8절‘그는 물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라고 하였습니다. 이 나무는 강변에 심어진 나무요 뿌리를 깊이 내린 나무라고 하였습니다. 특별히 이 나무는 심겨진 나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8절을 자세히 보면 ‘물가에 심어진 나무가’라고 하였습니다. 이 나무는 우연히 시냇가에서 자란 나무가 아닙니다. 이 나무는 선택된 나무요. 심겨진 나무입니다. 이 나무는 바람에 날려온 씨앗이나, 새가 물고 가다 떨어뜨린 씨앗이 우연히 그곳에서 자란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누군가에 의해서 그곳에 심겨진 나무를 말합니다. 길가에 버려진 나무가 아니라 주인이 돌보는 나무입니다. 그런데다가 그 뿌리를 강변까지 뻗쳤다고 할 정도로 뿌리를 매우 탄탄하게 박은 나무입니다. 그리고 이와 같이, 시냇가에 뿌리를 깊이 내린 나무와 같은 성도가 복된 성도인 것입니다.
7절에 보면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여기 7절의 ‘그러나’라고 한 말씀은 그 앞의 6절과 관계가 있습니다. 6절은 사람을 의지하고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의 결말에 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의 결과는 무엇인가? 6절입니다. 사막의 떨기나무 같습니다. 이는 열매가 없다는 것. 즉 무용지물이라는 것입니다.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합니다. 소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막의 건조한 곳, 건조한 땅은 생명체가 살 수 없는 곳입니다. 사람이 거하지 않는 땅에 거하게 됩니다. 고독 속에 위로와 기쁨이 없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생수의 근원을 찾아야 합니다. 생수를 마셔야 합니다. 영혼에 시원함을 줄 수 있는 영혼의 생수가 중요합니다. 요7:37에서 예수님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셔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사55:1절‘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 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생수는 복음입니다. 복음이 곧 생수입니다. 진실로 죄 사함 받고 구원받은 영혼은 시원함이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말씀이 곧 생수입니다. 말씀이 우리의 영혼까지 구석구석까지 시원케 합니다. 말씀 속에 영원히 갈 하지 않은 생수의 근원이 있습니다.
여러분! 광야는 메마른 곳입니다 불뱀과 전갈이 있는 곳입니다. 풀잎은 비의 은총을 입은 지 오래고, 열매를 상실한 나무들은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버린지 오래된 곳입니다. 한 마디로 광야는 멸망과 죽음의 땅입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에, 사람을 의지하고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의 결국이 바로 이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다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물가에 심겨진 뿌리깊은 나무와 같습니다. 뿌리 깊은 나무는 강변에 뿌리를 깊이 내리고 지속적으로 필요한 수분과 영양분을 공급받습니다. 물가에 심겨진 나무들입니다. 강변에 뿌리를 깊이 내린 나무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폭풍이 불어오고 비바람이 몰아쳐도 요동하지 않게 됩니다. 뿌리 깊은 나무는 웬만한 바람에는 끄떡도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땅속깊이 뿌리를 박고 있기 때문입니다. 뿌리 깊은 나무는 언제 봐도 듬직합니다.
복을 받는 비결이 어디에 있는가? 7절‘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여기 ‘그러나’ 이 접속사가 중요합니다. ‘그러나’의 이전은 지옥이요, 이후는 천국입니다. ‘그러나’의 이전은 저주요, 이후는 축복입니다. 우리 모두‘그러나’의 신앙 속에 거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여기 의지한다는 말은 ‘신임하다, 신뢰하다, 기대하다, 신용하다, 맡기다, 위탁하다’등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의미는 ‘하나님을 믿고 자신의 모든 것을 맡긴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가장먼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일이 가장 먼저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불가능한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한분 전능하신 우리 하나님 한 분밖에는 없습니다. 엘리야의 능력도 하나님을 의지하는데서 나왔습니다. 왕상18:32절‘저가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 그 돌로 단을 쌓고 단으로 돌아가며 곡식 종자 두 세아를 용납할 만한 도랑을 만들고’ 엘리야 선지자는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고 갈멜산 꼭대기에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영적 전쟁을 위해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부르짖을 때 하늘로부터 불이 떨어져 제단 위의 제물을 불살랐으며 하나님의 응답이 불로써 확인되었습니다.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할 때 일어난 중대한 사건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의 결과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 복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축복을 의미합니다. 아브라함은 샘 줄기의 복을 받았습니다. 이삭은 백 배의 결실을 맺었습니다. 야곱은 승리자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우리 모두 이 복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2. 강변에 심겨진 뿌리깊은 나무는 더위나 추위도 두렵지 않습니다.
8절‘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라고 하였습니다. 강변에 뿌리를 깊이 내린 나무는 뜨거운 태양이 작렬하는 폭염속에서도 그 잎이 마르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이 나무가 강변에 뿌리를 깊이 내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강변에 심겨진 나무는 말라비틀어지거나 말라 죽는 법이 없습니다. 그것은 언제나 바로 옆에 강물이 흐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해진 성도의 심령도 바로 이와 같습니다. 강변에 뿌리를 깊이 내린 나무는 더위뿐만 아니라 추운 겨울에도 걱정이 없습니다.
우리는 그 나무를 종려나무와 백향목으로 비유해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시92:12절‘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성장하리로다’고 말씀하였습니다. 이 가운데 종려나무는 유실수이고 백향목은 건축용 목재입니다. 백향목은 엄동설한에도 푸르름을 잃지 않는 나무입니다. 백향목은 주로 저 레바논의 높은 산에서 자랍니다. 여름에도 눈이 허옇게 덮여있는 그런 산에서 자라는 나무입니다. 그런데 이 백향목과 종려나무가 지니고 있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번성’입니다. 종려나무는 황야에서도‘번성’합니다. 더운데서도 번성하고 가뭄 때에도 번성합니다. 그리고 백향목은 산골짝에서도 번성하고 추운겨울에도 번성합니다. 종려나무는 그 수명이 ‘100년-200년’입니다. 이 종려나무는 늙어서도 결실합니다. 백향목은 그 수명이‘천년’입니다. 백향목은 그 때까지도 빛이 청청합니다. ‘번성’과‘형통’바로 이것이 돌보시는 이가 있는 나무의‘복’입니다.
시냇가에 심겨진 뿌리깊은 나무는 비록 뜨거운 태양이 작열할지라도 그것 때문에 상하지 않습니다. 그것 때문에 잎사귀가 마르지 않습니다. 아무리 햇빛이 뜨거울지라도 시냇가에 심기운 나무는 그 열기를 이기고도 남을 힘을 땅속에 깊히 박히 뿌리로부터 충분히 공급받기 때문입니다. 시냇가에 뿌리를 든든히 내린 나무에게는 뜨거운 햇빛도 오히려 유익합니다. 그 햇빛이 오히려 나무를 더 잘 자라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시냇가에 뿌리를 든든히 내린 나무에게는 살을 에이는듯한 추위도 유익합니다. 줄기와 가지는 추워도 생명의 젖줄인 땅속의 뿌리는 안전하게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성도들에게도 원치 않는 시련과 역경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그것 때문에 잘못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시련과 역경을 통과하면서 우리의 신앙인격이 더욱 성숙해지게 됩니다. 약1:2절‘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말씀했습니다.
왜 우리가 시련을 만났을 때 기뻐해야 됩니까? 그것은 시련이 시련으로 끝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시련이 반드시 우리에게 유익을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의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계셔서 우리로 푸르름을 잃지 않게 하시고, 언제나 싱싱함을 잃지 않게 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이 생명수 강가에 뿌리를 깊이 내리고 언제나 생수를 공급받아서 늘 싱싱하고 활기찬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3.강변에 심겨진 뿌리 깊은 나무는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습니다.
8절하에‘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고 하였습니다. 강변에 심겨진 뿌리 깊은 나무는, 우선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자연적인 빗물만 바라보고 농사짓는 소위 말하는 천수답을 하는 농부들은 가뭄이 들면 한숨과 걱정이 되고 마음이 바짝 바짝 타 들어갑니다. 논밭에 댈 물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관개시설을 잘 갖추고 저수지를 충분히 만들어 놓은 농부들은 웬만한 가뭄에는 전혀 걱정이 없습니다. 비가 안와도 평소에 저장해 놓은 물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강변에 심겨진 뿌리 깊은 나무도, 이와같이 가뭄에도 걱정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평지의 나무와 달리 강변에는 강물을 흡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성도들도 그와 같이 세상적인 가뭄에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세상에 온갖 가지 어려움이 닥치고, 인간적으로 부족한 것이 많을지라도, 풍부한 강물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채워주신다는 약속이십니다. 사실 알고 보면 세상의 모든 것들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셨고 하나님께서 주인이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이시는 것들임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뜻하시면, 우리에게 못 주실 것이 없고 못해주실 것이 없다는 것도 확신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세상적인 가뭄, 곧 부족한 것이 많고 주변 상황이 안 좋다고 해서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고 간구하심으로 참 평안과 복락을 얻으시길 축복합니다.
또한 8절 후반부에 보면, 강변에 심겨진 뿌리 깊은 나무는, 결실이 그치지 아니한다고 하셨습니다. 나무가 열매를 못 맺으면 그 나무는 죽은 나무요, 사람도 인생에서 뭔가 열매를 못 맺으면 허무한 인생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거의 본능적으로 무언가 목표를 성취할려고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을 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모든 사람들이 나름대로 열매를 맺으려고 몸부림을 치고 발버둥을 쳐도 모든 사람들이 다 열매를 맺는 것은 아닙니다.
성도가 ‘마르지 아니하는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은혜가 마르지 않아야 합니다. ‘기름먹인 가죽이 부드럽다’는 말이 있습니다. 평상시에 ‘아니요’하던 사람도 은혜 받으면‘아니요’ 하는 사람 없습니다. 평상시에 ‘없어요’하는 사람도 은혜 받으면 ‘있어요’합니다. 평상시에 ‘미워요’하던 사람도 은혜 받으면 ‘사랑해요’합니다. 평상시에 ‘못 하겠어요’ 하던 사람도 은혜 받으면 ‘하겠어요’합니다. 그래서 은혜가 마르지 않아야 합니다. 성도에게 있어서 은혜가 마르면 심령이 강퍅하게 됩니다.
사랑이 마르지 않아야 합니다. 사랑이 마르면 미워집니다. 여러분, 불행한 사람은 미움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미워하는 사람입니다. 성경에도 미움 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인이 아벨을 미워하였습니다. 에서가 야곱을 미워하였습니다.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미워하였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 된 사람들은 미움을 받은 사람들이 아니라 미워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형제를 미워하는 것은 곧 살인이라고 하였습니다. 마음속에 사랑이 마르지 않도록 사랑으로 충만하게 채워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머리는 차고 가슴은 뜨거워하는 것처럼 성도는 성령으로 가슴이 뜨거워져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가슴으로 해야 합니다. 머리로 하는 신앙생활은 따지기를 좋아하고, 나타내기를 좋아합니다. 우리 모두 성령 충만을 받아 새해에는 신나게 일합시다. 형통한 삶을 살게 됩니다.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여기 ‘그 행사’라는 뜻은‘그가 행하는 모든 일들’이라는 뜻입니다. 형통의 반대는 불통입니다. 즉 막혀서 할 수도, 갈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되지도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형통은 문이 열렸다는 말입니다. 일이 잘 된다는 말입니다. 할 수가 있다는 말입니다. 특별히 오늘 신년 첫주일 예배를 드리는 참 행복한 성도들은 이 형통의 복을 받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통해야 할 것이 잘 통해지는 것을 형통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과 관계에서 잘 이루어지는 것이 영통이며, 사람과의 관계에서 잘 이루어지는 것이 인통이며, 대소사의 일이 잘 이루어지는 것을 물통’이라고 합니다. 모든 것은 통하게 되어 있습니다. 통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안 됩니다. 그래서 안 통하는 것을 일컬어 불통, 즉 잘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안되고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통한다’는 말을 자주 씁니다. 나와 다른 사람과의 마음이나 생각이 같을 때 서로 통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관계가 좋아집니다. 부부간에 통하지 않으니까 싸움이 벌어집니다. 서로간의 미움이 일어나는 것도 통하지 않아서입니다. 통하지 않으면 정말 답답합니다. 전기도 마이너스 풀라스가 통할 때에 큰 힘을 발휘합니다. 아무리 좋은 기계, 좋은 전기시설이 있다고 해도 전기가 통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일단 통하기만 하면 아무리 큰 기게일지라도 움직이고, 환하게 됩니다. 이렇듯 통해서 잘되는 것, 무엇이든지 잘 나가는 것을 ‘형통’이라고 합니다. 부부간에 형통하고, 자녀간에 형통하고, 이웃 간에 형통하고, 성도간에 형통하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있어서 진짜 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잘 통해야 합니다. 이 말을 신통(神通), 혹은 영통(靈通)이라고 합니다. 왜 영통 해야 하는가? 모든 것에는 근원이 있습니다. 수돗물도 저수지, 전기는 발전소가 있듯이, 만들어진 것도 근원이 있습니다. 이 근원과 연결될 때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근원, 즉 생명의 뿌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명의 근원이 되시고, 축복의 근원이 되십니다. 약1:17절‘각양 좋은 것들이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온다’고 했고, 시73:28절‘하나님을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통해 있는 사람은 몇 만 볼트의 전기를 공급하는 발전소보다 더 큰 에너지원을 갖고 있는 것이 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전능하신 하나님과 통할 수 있습니까? 예수를 잘 믿는 것이 하나님과 통하는 통로가 됩니다(요14:6). 통하기만 하면 죄 사함, 자녀, 영생, 하늘나라의 기업을 상속받습니다. 성경 말씀은 하나님과 통하는 길입니다. 이 통로를 통하여 하나님을 알고, 만나고, 보화를 발견하게 됩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통하는 통로입니다. 기도하면 무한한 에너지를 공급받습니다. 낙심했다가 기도하면 힘이 통로를 통하여 엄청난 것을 공급받지만, 즉 형통케 되지만 그러나 통하지 않으면 답답해집니다.
신통하면, 인통(人通)합니다. 사람과 사람관계가 원만하고 좋아집니다. 행, 불행의 모든 것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하나님과 영통해서 충만해지면 다른 사람과의 관계는 잘 되게 하나님이 역사 하십니다. 그것이 영통의 힘입니다. 또 물통(物通)합니다. 물질과 물질이 들어 있는 환경을 정복, 다스립니다. 영통하면 형통합니다. 하나님과 통하면 사람과 통하고, 물질과, 환경을 통합니다. 이것을 우리는 ‘영권, 인권, 물권’의 복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복이 어디서 옵니까?
성전 중심, 예배 중심을 통해서 옵니다. 시118:24-26절‘이 날은 여호와의 정하신 것이라 이 날에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리로다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이제 구원하소서 여호와여 우리가 구하옵나니 이제 형통케 하소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우리가 여호와의 집에서 너희를 축복하였도다’, 시122:6-7절‘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네 성안에는 평강이 있고 네 궁중에는 형통이 있을지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아무도 돌보는 이 없는 버려진 나무가 아닙니다. 우리는 선택된 나무요 사랑의 하나님에 의해 심겨진 나무입니다. 하나님께서 돌보시는 나무입니다. 하나님의 사랑받는 나무입니다. 시냇가에 뿌리를 깊이 내린 나무입니다. 철을 따라 열매를 맺는 나무입니다(시1:3). 이러한 믿음과 확신을 갖고서 신앙의 깊이를 더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처럼 항상 싱싱하고 활기찬 그리스도인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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