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획기적인 암 치료법
(레 1:1-17)
오늘 우리가 레위기를 처음 들어가면서 1장 말씀 '획기적인 암 치료법'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 증거합니다.
획기적인 암 치료법. 이건 좀 비유적인 말이지요. 이 제목을 보시고 내 몸에 암이 이 지금 있는데 치료받겠구나 생각하셨던 분들 한테는 죄송합니다마는 여기서 말하는 획기적인 암 치료법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마음의 암을 뜻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실감하지 못해서 그렇지 사실은 죽은 뒤에 다가올 심판과 지옥 이런 것을 생각하면 몸의 암은 비교컨대 사실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할 수 있어요.
암을 당해서 지금 고통을 겪고 있는 분들에게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은 사실은 주제넘기도 하고 사정을 너무 모르는 말이 될 수 있습니다. 암이 얼마나 고통스럽습니까?
그러나 정말 이 세상에서 당하는 고통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사실은 사실대로 말해야 될 것은 영원히 지옥 불에 들어가서 고통을 당하는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아마 제 목사생활 평생에 여생에 정말 잊혀지지 않을 그런 말씀이 제 머리 속에 기억이 되어 있습니다.
자주 말씀을 드렸습니다. 밴쿠버에서 목회할 때 김현진 집사님, 나이가 41살밖에 안 되신 분인데 뇌종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한 1년간 앓다가 돌아가시게 되었는데 그 분께서 간증처럼 목사에게 해 주신 말씀이 뭐냐?
뇌종양이라고 하는 뇌에 생긴 악성 암, 이 암은 '마음의 암을 고치기 위한 하나님의 암 치료요법'이었다 하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래서 제가 내용을 좀더 어떻게 이해를 하고 하시는 말씀인가 궁금해서 좀 물어보면, 뇌종양 때문에 삶의 모든 가능성이 다 단절되고 내 마음에서 삶에 대한 어떤 소망이나 희망을 갖지 못하게 되는 상태, 이런 상태에서 주님의 십자가를 붙잡고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과 연합하는 그런 믿음의 고백을 통해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보게 되었다는 겁니다.
하나님을 보고 천국을 마음에 실감하게 되면서 느끼는 것은 그 전의 삶이 하나님을 못 보고 천국을 실감하지 못하고 살던 그때에 한국에서 펀드매니저를 해서 남부럽지 않을 돈을 벌고 하던 그런 시절이 정말 무서운 암에 걸려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마음에 보이지 않는 상태, 천국이 마음에 보이지 않는 상태, 그래서 뇌종양인데도 불구하고 감사가 절로 나오는 지금과 비교해보던 과거, 멀쩡하게 온 몸이 건강하게 살고 있었던 그 때가 너무 암울하게 느껴지고 너무 치명적인 오류 속에 빠져있는 것으로 느껴지는 그런 상황, 이 두 상황을 비교해볼 때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다는 것이 굉장한 사실이라는 것을 알게 되니까, 뇌종양이라는 것이 그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그러졌던 암을 바로 고쳐주는 치료제였다 이렇게 고백을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내용을 담고 있는 나의 뇌종양은 나의 마음의 암을 고치시려는 하나님의 치료였다 라는 그 고백, 잊을 수가 없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여러분!
오늘 레위기 전체 주제는 율법을 말씀하십니다. 특별히 제사법과 성결법을 얘기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위한 규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 된 자들이 살아가는 규정을 말합니다.
이렇게 하면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구원을 얻는다 라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얻고 하나님의 백성이 된 사람들이 이 땅을 살아가는 규정을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의해서 선택받은 백성들의 운명적인 존재의 형태가 어떻습니까? 여러분?
하나님과 묶여 있다는 것이에요.
어제도 말씀드렸지만 하나님과 괄호로 묶였습니다. 어쩔 수 없이 하나님과 함께 2인 3각의 운명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어쩔 수 없이 함께 할 수밖에 없는 그런 하나님과의 관계를 어떻게 바람직하게, 지금 상대하고 있는 분이 하나님 아니십니까? 바람직하게 관계를 유지해나갈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일평생의 과제가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성공이 과제가 아닙니다. 내 인생의 목적? 이런 것에 연연해 할 수가 없습니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법칙 같은 것을 염두에 둘 여지와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것이에요.
가장 바쁘고 절박하게 내가 해결해야 될 것이 무엇이냐 하면, 지금 묶여서 함께 살아가야 되는 지금 이 자리에 와 계신 하나님, 내 앞에 지금 존재하고 계신 이 하나님, 이 그리스도의 부활하신 영, 이 분과 어떻게 함께 살아가느냐 하는 것이 과제라는 것이에요.
내 인생의 꽃을 피우는 것 이것이 우리의 과제가 되어선 안 된다는 것이지요.
여러분!
그래서 레위기의 제사법이라고 하는 것은 이렇게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것, 이게 왜 힘이 들어요?
우리가 더럽잖아요. 우리가 죄인이지 않습니까?
거룩한 하나님께 나아가서 그 하나님과 함께 묶여 온전한 파트너십을 이루어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 제사라는 것이 그러기 위한 장치입니다.
레위기가 힘주어 말하는 제사라는 것이 그런 하나님과의 관계를 아주 온전하게 해주어서 하나님과 묶인 상태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가 제사인데, 오늘 첫 번째, 『번제』에 관한 얘기가 나옵니다.
이 번제, 히브리말로 ‘올라’(hl;[o(5930)입니다. 그런데 이 '올라'라는 뜻이 뭐냐 하면 ‘하늘로 오르다’라는 뜻입니다. 히브리말의 '올라'와 우리말의 말뜻의 표기가 비슷하지 않습니까? 하늘에 오른다...
그런데 이 번제를 드릴 때에 그 모양이, 우리가 늘 주의 깊게 보지 않고 넘어가는 부분일 수 있는 이 부분이 얼마나 인상적인 지 몰라요.
자, 소를 데려옵니다. 소나 양이나 비둘기를 가지고 번제라는 제사를 드리는데 어떻게
드리느냐?
소나 양을 가지고 오면 제사 드릴 자가 손을 얹고 내 속에 있는 모든 죄를 다 소나 양에게 옮겨 놓습니다. 손을 대면 그런 약속이지요. 하나님의 제사 규정에 따라서 하나님이 그렇게 인정해주시는 거예요.
그럼 이런 약속을 통해서 내 죄가 다 옮겨졌잖아요.
그 옮겨진 소를 죽입니다. 죽여서 피를 받아요. 철철철철 피가 나는 걸 양동이에 담아서 그 피를 제단 사면에 뿌리고 발라요.
그 다음에 가죽을 벗겨냅니다.
그리고 살을 다 저며내요. 각을 떠요.
그 다음에 내장을 다 끄집어내서 씻어요. 정강이, 다리 같은 거 다 깨끗하게 물로 씻어요.
그런 다음에 다 제단 위에 올려놓고 태워요.
아니, 어차피 태울 거라면 통째로 죽여서 올려놓으면 된잖아요. 왜 그렇게 잔인하다 싶을 정도로 껍데기를 다 벗겨내고, 살을 다 저며 내고, 배를 갈라서 내장을 다 꺼내고, 정강이 이런 부분을 다 잘라서 토막을 내서 제단에 올려놓은 다음에 불로 태웁니까? 왜 이렇게 제사를 드려야만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요한 의미가 있어요.
말씀드린 대로 내가 드릴 제사물에 대해서 손을 얹고 안수를 하잖아요. 그러면 내 죄가 그 속으로 다 들어갔습니다.
그러므로 죄인인 나의 모습과 지금 내가 안수하고 있는 소가 동일시되는 거예요. 동일시 되어서 그대로 내 모습을 나타내는 겁니다. 영적인 차원에서.
특히 죄와의 관계, 하나님과의 관계를 망쳐놓는 죄라는 것, 하나님과 나와 함께 묶일 수 없는, 나와 함께 편안히 하나의 파트너로서 함께 살아갈 수 없는 이유가 죄 라는 놈 때문에 그렇거든요.
근데 이 죄를 없애야 되니까 그래야 하나님과의 관계가 원활해지니까 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하여 손을 얹고 그럼 이 죄가 옮겨간단 말입니다.
그 죄가 옮겨진 동물이 본래 난데 그 모습이 어떤 모습이냐?
껍질을 벗겨내고, 피를 다 뽑아내고, 살을 다 저며 내고, 내장을 다 끄집어내고, 온 사지를 토막을 내야 될 정도로 이 죄악이라고 하는 암이 온 몸에 퍼져 있는 상태인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에요.
번제를 이렇게 드린다는 겁니다. 태우기 전에 완전히 조각을 내버려요. 칼로 군데군데 다 저며요. 다 벗겨내고 찢어내고 발라냅니다.
왜? 왜 이렇게 잔인하게 끝까지 토막까지 내버립니까?
내 죄를 받은 그 짐승이 나와 동일시되는 상태에서 나에게서 나간 나의 죄악이 어떤 것이냐 하면, 아주 골수에까지, 신체의 가장 깊은 곳까지 죄라고 하는 암이 다 펴져있는 상태인 것을 드러내주시고 있는 겁니다.
그러므로 내가 죄인이라고 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지금 다른 나라 교회는 제쳐놓고 한국교회의 위기가 있습니다. 그게 무엇인줄 아십니까?
이렇게 철저하게 아주 골수에까지 파묻혀 들어가 있는 죄악된 인간이 갖고 있는 그 생각과 그 소원과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세계관과 가치관을 그대로 묵과해버린 채, 그들이 갖고 있는 필요와 소원을 이루어 주겠다고 기독교를 전파하고 있는 것이에요. 지금...
그게 아니에요.
뼈 속까지 숨어 있는 죄를 죽이기 위해서 껍질을 벗겨내고 살을 다 저며 내고 내장을 다 끄집어내고 기름기를 잘라내고 정강이를 절단을 내서 다 태워버려야 되는데, 이렇게 철저하게 죽이고 죽이고 죽여야 되는데 지금 내 속에 있는 생각을 강화시켜버린다는 겁니다. 내가 지금 갖고 있는 소원을 이루어준다고 얘기하는 겁니다.
이것은 기독교가 아니지요. 기독교가 아닐 뿐만 아니라 이건 큰일입니다.
이건 뭐냐 하면 오히려 암을 확장시켜주는 거예요. 암을 번식시켜 주는 겁니다.
이렇게 완전히 하나님과의 관계가 틀어져 버렸어요.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이 17절「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것이 뭐냐?
죄악으로 물들고 찌들어버린 인간이 태워져 버리는 것.
여러분, 화장터에서 사람을 화장하면 어떻게 됩니까? 가루만 남아요. 그게 죽는 거예요.
번제가 뭐냐 하면 하나님 앞에서 그렇게 태워버리는 겁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온전하게 하기 위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뭐냐 하면 나의 존재 자체를 아예 태워버리는 겁니다. 가루로 만들어 버리는 겁니다.
어떤 나? 이 세상을 사랑하고 있는 나. 세상과 관계 맺고 있는 나. 세상에 매여 있는 내가 완전히 타서 재가 되어야 된다는 것이에요.
이러한 영적인 암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은 게 번제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럼 현실 생활에서 적용해 봐요.
껍질을 벗겨내고, 살을 저며 내고, 피를 뽑아내고, 내장을 다 끄집어내고, 사지를 절단해서 다 불사르는 그럴 정도의 죄악이 우리에게 어떻게 나타나고 있느냐?
여러분, 말도 못해요.
내 생각, 내 가치관, 내 판단기준, 내 소원 이런 것들이 내 가죽이고, 내 피고, 내 살이고, 내 내장이라는 것이에요. 다 태워버려야 되거든요.
그럼 어떤 상태냐? 예를 들면 이런 상태에요.
제가 아는 목사님 사모님이 미국에서 생활하시면서 큰 교통사고를 당하셨습니다. 일제 승용차를 어렵게 구입하셔서 타고 내려오시면서 여름이었으니까 창문 네 개를 다 얄고 바람이 이렇게 들어오는데 카브리오 뭐 덮개 차는 아니지마는 너무너무 정말 미국에 국도를 달리고 또 제가 있던 프린스턴 지역이 아름다웠습니다. 아주 잘 정리된 그런 동네였는데 그 아름다운 동네의 국도와 깨끗한 도로를 달리면서 하나님께 감사했다는 것이에요.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여건을 허락해주신 것을 감사했는데 그만 오다가 사고를 당한 겁니다. 차를 폐차 시킬 정도로 큰 사고를 당했다는 겁니다.
그래 사모님이 하시는 말씀이 어떻게 하나님께 감사의 찬양을 올리고 있는 그 순간에 이런 사고가 날 수가 있느냐 라고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이것을 저의 문제로 받아들였어요.
우리가 그렇잖아요. 환경이 좋습니다. 어렵지만 일제 차량을 구입하셨습니다. 깨끗한 환경에서 공부를 할 수 있게 특권을 받았습니다. 모두가 세상적으로 봐도 다 좋은 상태입니다. 그럴 때 감사했습니다. 찬양했습니다. 그리고 폐차를 시킬 정도로 사고를 당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왜 그랬을까요?
우리가 우리의 하나님을 향한 감사가 거죽에 발린 감사일 수가 있다는 것이에요. 지금 거죽 밑에 이 벗겨낸 가죽 밑에 살에는 암덩어리가 퍼져 있어요. 다시 말해서 껍데기 하나만 벗겨내도 우리의 감사가 없어질 그런 감사를 하고 있다는 겁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에 갇혔습니다. 아시아 선교에 힘쓰다가 하나님이 막고 유럽 선교로 마게도냐 사람을 꿈에 보이게 해서 유럽 선교로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빌립보는 유럽 선교의 첫 번째 교두보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선교의 방향을 빌립보로 왔는데 빌립보에서 죽지 않을 만큼 매를 맞게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시켜서 선교의 방향을 바꾸고 선교를 하고 있는데 그리스도를 전하고 있는데 왜 이렇게 하나님께서 죽지 않을 정도로까지 핍박을 당하게 하시는 겁니까?
도대체 바울의 감사가 어디까지 가야 됩니까? 이럴 때 감사해야 됩니까?
그런데 감옥에서 찬양과 기도를 올리며 감사를 드립니다.
이때 지진이 일어나게 되지 않아요?
여러분, 결국 뭡니까?
이 세상에서의 삶의 마음의 상태가 어떤 상태냐?
거죽을 벗겨냅니다. 살을 저며 냅니다. 그런 고통이 있습니다.
그러나 깊이 깊이 골수에 까지 들어가 완전히 뻗어버린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때 감사하는 겁니다. 이게 죽은 것예요.
산 사람이면 지금의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이 모양을 보고 감사가 나올 수가 없다는 것이에요.
그런데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뭐냐?
내가 너를 인도할 때 네가 생각할 수 있는 한계, 너의 기준을 가지고 판단할 수 있는 그런 한계 안에서만 인도한다면 내가 어찌 하나님이 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다는 겁니다.
그 감옥에 들어간 핍박을 통하여 옥사장이 구원을 받고 이렇게 되었습니다마는 감옥에 들어간 것으로 인해 아무런 선교의 열매가 맺혀지지 않았다 한들 하나님이 그렇게 인도하신다면 우리가 어떡하겠어요?
우리가 착각하고 있는 것이 있어요. 우리의 감사라는 것이 얼마나 얄팍한 것인지 여러분, 욥을 한 번 생각해보세요.
자식이 10명이 다 죽었습니다. 한두 명이 죽었다는 것이 아니에요. 그것도 욥의 마음에 하나님이 데려가셨다고 믿는 겁니다. 그 누구도 아닌 하나님이 데려가신 겁니다. 사탄이 데려갔지만 하나님이 허락 하에 데려갔으니까.
그리고 있는 재산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우리는 몇 십만 원만 손해를 봐도 벌벌 떨고 있지 않습니까? 근데 다 잃어버렸습니다. 이유가 없어요.
몸에 병이 났습니다. 자, 살갗을 벗겨 냅니다. 살을 저며 냅니다. 완전히 사지를 절단해버립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고백을 합니다. “하나님이 주셨으니 하나님이 갖고 가신다.”이게 죽은 겁니다.
이렇게 할 때 욥을 회복시키시고, 바울과 실라의 감옥에서의 찬송을 들으시고 지진을 일으키시고.
왜요? 「향기로운 냄새니라」.
이 정도로 완전히 죽을 때 하나님의 기쁨이 표현되는 거예요.
금방 어려움이 있을 때 그 어려움을 맞이해서 우리가 십자가를 붙잡고 이겨냅니다. 그랬다가 그 문제가 해결이 되고 한 달쯤 지나면 또 다시 해결된 그 상황과 그 환경과 이 세상의 상태를 마음에 담아서 그게 좋아져 버립니다. 또 그게 좋아져 버려요.
결국 우리의 과제가 뭡니까?
완전히 죽는 겁니다. 내 소원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죽는 겁니다.
왜요?
나를 향하신 내 인생을 위한 소원은 하나님이 갖고 계시니까.
내가 소원 하나도 안 해도 돼요. 내가 내 인생의 목적을 제발 몰라도 돼요.
내 인생의 목적을 왜 그렇게들 알려고 애를 써요? 나를 꽃 피우려고 하는 것 아닙니까?
저는 어제 이비인후과에 가서 알레르기 검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서구형 알레르기래요. 무슨 말이냐고 그랬더니 전부 꽃 알레르기에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꽃 알레르기가 그리 많지 않대요. 진드기라든지, 고양이라든지, 개라든지, 집안에 있는 먼지라든지 이런 알레르기인데 저는 전부 꽃 알레르기에요.
아마 제가 그렇게 기도를 해서 그런가봐요. 내가 내 인생의 꽃을 피우기 위하여 살고 있는 게 아닙니다 라는 말을 내 속마음에는 꽃 피우고 싶은 마음이 있더라도 기도를 그렇게 올리니까 아마 꽃 알레르기가 생긴 것 같아요.
여러분, 내 인생의 꽃에 대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세요. 내 인생의 꽃을 피우기 위해 사는 게 아닙니다. 내 인생의 꽃은 하나님이 알아서 피우실 것입니다.
내 평생의 과제는 죽이는 거예요. 그래야 이 땅에서 하나님이 나타나십니다.
죽입시다! 죽여요! 이게 암을 치료하는 법입니다.
우리 전신에 암이 퍼져 있어요.
폐암의 특징이 뭐냐면 폐암 말기 때까지 통증이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폐암인 줄 알고 열어보면 이미 온 몸에 퍼져 있는 겁니다.
마찬가지에요. 지금 교회에 교인들의 상태가 이런 상태에요.
죽이는 것에 익숙해 있지 않아요. 삶의 과제가 죽이는 것이라는 것을 몰라요.
그러니까 매일같이 성공하는 사람의 7가지 법칙만 쫓아다니고, 내 인생의 꽃을 위해서 목적을 찾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을 필요로 하는 거예요. 하나님을 필요로 해...
그래서 목적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겁니다. 굉장히 위험한 거예요.
하나님을 생각하면 내 인생을 위한 목적은 하나님이 갖고 계시고 하나님이 이루어 가십니다. 양이 목적 있는 것 봤어요? 목자만 따라 다니면 됩니다.
목적과 목장 큰 차이가 있는 것 아닙니까“?
번제!
가죽을 벗기고, 피를 받고, 살을 각 뜨고, 절단하고, 내장을 꺼내서 다 태워버리는 이유, 뼈 속 깊숙이까지 우리의 암 같은 죄악이 퍼져 있기 때문에 주님의 십자가 사건이 번제단 사건으로 일어난 것입니다.
오늘도 십자가 붙잡고 기도하는 가운데 완전히 죽게 해달라고 간구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070530)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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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멘 아멘!! 목사님 늘 귀한 말씀 감사드립니다. 정말 목사님 같으신 분이 한국교회에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