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용어: 영어
▶ 정부형태: 공화제
▶ 인구: 13,010,000명 (2005년 어림)
▶ 통화: 없음 (ISO 4217: {통화기호})
GDP: $305.81억 (94위) (2005년 어림값)
PPP: $2,607 (129위) (2005년 어림값)
▶ 역사
원주민은 부시먼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약 600년 전에는 쇼나족의 모노모타파왕조가 풍부한 금광을 바탕으로 강력한 세력을 떨치면서 짐바브웨를 수도로 삼고 번영을 누렸다. 그러나 17세기부터 금이 고갈됨에 따라 농목축 중심의 경제로 바뀌어 지방분권적 혈족사회로 분열하였다. 당시 이들 부족은 인도양에서는 포르투갈 세력, 남부에서는 줄루족의 세력에 밀려 오늘날의 마쇼날란드 지방으로 이동하였다. 또한 이 지역으로 들어온 줄루족은 19세기에 남쪽 지방에서 침입해 온 보어인(人)과 충돌, 지금의 불라와요 부근으로 물러났는데 이들을 은데벨레족이라 하고 이들이 차지한 영토를 마타벨렐란드라고 불렀다.
탐험가 D.리빙스턴이 빅토리아 폭포를 발견한 1885년경부터 영국과 접촉이 시작되었고 1870년 왕위(王位)에 오른 마타벨렐란드의 로벵글러는 영국과 조약을 체결하고 광업권을 부여하였다. 대신 영국은 연금(年金)과 무기를 대주면서 보호해주었고 1891년 마쇼날란드와 마타벨렐란드는 정식으로 영국보호령이 되었다. 그 후 트란스발에서 보어인의 침략, 로벵글러의 반란(1893)을 거쳐 1895년에 ‘로디지아’(세실로즈의 이름에서 따왔다)라는 지명이 생겼다.
1898년에는‘남(南) 로디지아 식민지’가 되었으며 1901년 보호령은 해체되었다. 1923년 10월에는 자치정부를 가진 식민지가 되었으며 1953년 8월 로디지아-니아살란드 연방을 형성하였으나 1963년 말에 해체되었다. 1961년 말에는 은코모를 당수로 하여 결성된 ZAPU(짐바브웨 아프리카 인민동맹)가 독립운동을 추진하였으나 1962년 말 더욱 과격한 투쟁을 요구하는 ZANU(짐바브웨 아프리카 민족동맹)가 시톨레를 당수로 하여 결성되었다.
이러한 민족 독립운동단체의 분열과 대립은 1965년 11월 스미스에 의한 백인정권의 일방적 독립선언을 가능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언 스미스 백인정권은 1969년 아프리카인 6,643명을 포함한 8만 8217명의 유권자(有權者)를 대상으로 신헌법 초안(新憲法草案)과 공화국 선언의 가부(可否)를 묻는 주민투표를 실시하여, 아프리카인의 72.5%, 전체적으로는 약 81%의 찬성을 얻었다. 그 후 10여 년 동안 스미스 정권을 적대시(敵對視)하는 흑인 해방운동 단체 사이에서 극히 심각하고 복잡한 변화를 겪었다.
1977년 말에는 백인정권과의 협상을 통해 흑인의 다수지배로 이행(移行)할 것을 주장하는 온건파 3당과 투쟁에 의하여 흑인국가를 건설하자는 급진파의 2정당으로 나뉘었으며 후자는 국외에 거점을 두고 게릴라전을 전개하였다. 이와 같은 흑인세력의 강화와 함께 국제적 비난에 부닥쳐 정세가 불리해졌음을 간파한 스미스 정권은 1979년 3월 흑인 온건파와의 타협으로 문제를 국내에서 해결하기로 합의, 같은해 12월 흑백공동내각으로 구성된 잠정 정권이 수립되었다.
이어서 1979년 1월에는 1969년에 제정된 헌법 대신 새 헌법초안을 작성하여 백인들만의 주민투표를 실시한 결과 압도적인 지지를 얻게 되었다. 이에 따라 국명도 ‘짐바브웨 로디지아’로 바꾸고 과도기적 체제를 갖추었다. 1979년 4월 새 헌법에 기초를 둔 단원제의회(單元制議會:백인의석 28석, 흑인의석 72석)의 총선거가 실시되었다. 백인 의석은 모두 스미스의 로디지아 전선(戰線)이 차지하고 흑인의석을 무조레와의 통일 아프리카 민족평의회(UANC)가 51석, 시톨레가 이끄는 아프리카 민족평의회(ANC) 12석, 통일 민족 연방당(UNFP)이 9석을 획득하였다.
따라서 무조레와가 총리로 취임하고 전총리 스미스는 무임소장관이 되었으나 시톨레는 선거가 불공정하였다고 주장하고 무조레와와 대립했다. 또한 급진파인 ZANU와 ZAPU가 연합한 애국전선(愛國戰線)은 총선거를 보이코트하고 게릴라 활동으로 반정부투쟁을 계속하였다. 더욱이 이 정권은 게릴라 단체를 일방적으로 배제하였기 때문에 UN(United Nations:국제연합) 가맹국으로부터 승인을 받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해 말 런던에서 모든 당사자들이 참가한 가운데 제헌회의(制憲會議)가 열렸으며 이 회의에서 이루어진 합의에 따라 1980년 2월에 총선거가 실시되었다. 이 선거에서는 로버트 무가베가 이끄는 좌경(左傾) 민족주의 게릴라 단체인 ZANUIPF(짐바브웨 아프리카 민족동맹)가 전체 의석 100석 가운데 57석을 차지하였으며 은코모가 이끄는 ZAPU(애국전선)는 20석을 획득하였다. 같은해 4월 18일 국가원수인 대통령에 카나안 바나나가, 총리에 무가베가 취임함으로써 영국으로부터 정식으로 독립하였다. 독립 후에 정치정세는 안정을 찾지 못하여 1981년 2월에는 무가베파와 은코모파 사이에 무력충돌이 일어나 30여 명이 넘는 사망자를 냈다.
또한 1982년 2월에는 은코모파 각료 4명이 쿠데타 음모혐의로 축출되었으며 4월에는 총리 무가베의 관저가 습격을 받았다. 이 밖에 백인 유괴사건, 공군기지 피습사건을 비롯한 갖가지 반정부활동이 잇따르고 있으며 짐바브웨의 경제적 구심점인 백인들의 국외탈출문제, 150만여 명이나 되는 난민(難民)의 국내귀환문제 등 해결해야 할 어려움이 많다. 무가베 정권은 사회주의를 내세우면서도 백인과의 융화를 꾀하는 한편 자본주의 체제를 존속시키며 장기 집권하였다. 그러나 반발도 많아 헌법 개정을 위해 1999년 4월에 설치된 대통령 위원회가 헌법 개정 자료를 수립하고 있으며 1999년 12월경에 의회에 제출하였다.
▶ 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