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유럽.
가고 싶었던 곳이지만 워낙 광범위해서 자신이 없던 곳이다.
말이 北유럽이지 얼마나 넓은 곳인가.
모스크바 - 상트페테르부르크 - 헬싱키 - 스톡홀롬 - 송네피오르드 - 오슬로 - 코펜하겐을 둘러본다.
여기를 다 돌려면 "모스크바"(Moskva)에서 장거리를 달려야 하며 배도 두 번 타야 한다.
하지만 망서리다 보면 어느 하나도 볼 수가 없다
기회가 생긴 김에 먼 길을 떠난다.
창가의 자리가 불편하긴 하지만 나는 이 자리가 좋아한다.
공중(空中)에서 내려다 보는 경치는 지도(地圖)로는 느낌이 부족했던 공간(空間)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가끔은 이런 좋은 자리가 내 차지가 되는 행운(幸運)을 얻는다.
비행기(飛行機)의 항공표시 지도(航空標示 地圖)에 "바이칼 호수"(湖水 : Lake Baikal)가 보인다.
바이칼 호수를 가 본 적은 없지만 이름을 안다는 것만으로도 친근감이 있다.
다는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안 본 것보다는 훨씬 좋다.
지도(地圖)로만 볼때는 이렇게 클 줄 몰랐다.
비행기에서 내려다 볼 때 이렇게 바다처럼 보인다면 얼마나 큰지 짐작이 간다.
7~8시간이 지나 약하게 비가 내리는 "모스크바"(Moskva)에 내려 가까운 호텔로 향했다.
이 호텔은 빙 둘러 객실(客室)이 있고 중앙(中央)은 넓직하게 식당(食堂)과 휴게실(休憩室)로 되어 있다.
천정은 유리로 마감이 되어서 전천후(全天候)로 이용되고 있는듯 했다.
그리고 어느 객실(客室)에서 보아도 식당과 종업원의 움직임을 볼 수가 있다.
호텔로 이동하는 동안 가이드가 단체 여행에 대해 말한다.
단체 여행을 즐겁게 하는 세 가지 팁.
1, 날씨, 2, 가이드, 3, 팀의 결속 이란다.
일기와 가이드는 이미 바꿀 수가 없으니,
다만 같이 간 일행이 서로 양보하고 도와야 즐거운 여행을 할 수가 있단다.
맞는 말이다.
서로 모르고 이제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지만 서로 양보하고 배려하고 시간을 지켜야 즐거운 여행을 할 수가 있다.
그런 사람만 있기를 빌며,,,
아니 내가 그런 사람이 되려고 마음가짐을 하며 잠자리에 든다.
6월 13일.
아침 일찍 일어나 식사를 하고 "붉은광장"으로 가기 위해 버스에 오른다.
"모스크바"의 교통난(交通難)은 유럽 제일이란다.
버스가 출발하자마자 차(車)로 넘쳐나는 길로 들어선다.
걸어가는 것이 훨씬 더 빠르겠다.
게다가 비마저 심하게 내려 길 가의 모습을카메라에 담기도 어려웠다.
이곳은 지하철(地下鐵)이나 기차역 같다.
맞은 쪽에는 이름모를 "러시아 정교회" 건물이 있다.
어릴 때 학교에서 배울 때는 러시아에는 종교도 없다고 했는데,,,,
정교회(正敎會) 문 위의 "성화"(聖畵)
붉은 광장 주차장 건너편의 호텔인듯한 고풍스러운 건물.
드디어 목적지에 오긴 했는데 11시를 훨씬 넘긴 후다.
오전에 봐야 할 것들을 찬찬히 둘러 보기는 애초에 틀려 버렸다.
"붉은 광장"(廣場) (Krasnaya Ploshchad)으로 들어가는 입구(入口).
맨 오른쪽 건물이 "크레물린 궁(宮)" (kremlin)이고, 가운데가 "러시아 國立 歷史 博物館"(State Historical Museum)이란다.
왼쪽 두개의 녹색 첨탑(尖塔)이 있는 작은 건물이 "復活의 門" 이라고 하는 "붉은 광장"으로 들어가는 입구(入口)이고,
맨 왼쪽의 붉은 건물은 "전쟁 박물관"(戰爭 博物館 : Museum of the War of 1812)이란다.
다행스러운 것은 차가 멈추자 비도 조금 잦아들었다.
"러시아 국립 역사 박물관" (國立 歷史 博物館 : State Historical Museum)
박물관(博物館) 앞에는 기마상(騎馬像)이 있다. 누굴까?
"게오르기 콘스탄티노비치 쥬코프"(Georgii Konstantinovich Zhukov)의 기마상(騎馬像).
"게오르기 콘스탄티노비치 쥬코프"(Georgii Konstantinovich Zhukov)원수(元帥)의 상(像)이란다.
1923년에 "쥬코프"는 "부르루코프 기병(騎兵)" 연대장(聯隊長)이 된다.
그리고 독일(獨逸)로 가서 "지휘참모 과정 교환 교육"(指揮參謀 課程 交換 敎育)을 수학(修學)한다.
이때 독일측 장교(獨逸側 將校)로는 우명(有名)한 "만슈타인"(Manstein) 대령(大領)이 러시아로 오게된다.
이후 몽골지방의 "칼킨골"전투(戰鬪)(Battle of Khalkhin Gol)에서 최초(最初)의 "대규모 소련 전차대"(大規模 蘇聯 戰車隊)로
일본군(日本軍)을 단 일격(一擊)에 파죽지세(破竹之勢로 격파(擊破)한 공로로 "소비에트 영웅" 칭호를 받고 "스탈린"의 주목을 받는다.
그후 소련군(蘇聯軍)의 참모총장(總參謀長)이 되었지만 1941년 6월 22일 독일군(獨逸軍)이 소련(蘇聯)을 공격(攻擊)하자
"쥬코프"는 "스탈린"에게 "우크라이나"의 수도도시(首都都市)인 "키예프"(Kiyev)를 포기하고
철수(撤收)를 종용(從容)하여 "스탈린"을 화나게 한다.
"스탈린"은 그에게 "바보 멍텅구리"라는 모욕적인 말을 했다고 한다.
"쥬코프"도 "스탈린"에게 지지 않고 대들며 말했단다.
"참모총장(總參謀長)이 바보 멍텅구리 취급 밖에 못 받는다면 저는 할 말이 없습니다.
전선(戰線)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라고,,,,,,,
"스탈린"은 "쥬코프"를 참모총장(總參謀長)에서 해임(解任)시켜 "레닌그라드"(Leningrad)의 최전선(最戰線)으로 보냈다.
당시 "스탈린"의 실책에 대항(對抗)한 사람은 "쥬코프" 이외에는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레닌그라드"(Leningrad)를 파죽지세(破竹之勢)로 공격(攻擊)해 오는 독일군(獨逸軍)을 성공적(成功的)으로 막아내어
그의 능력을 인정받은 "쥬코프"는 "스탈린"의 부름으로 다시 "모스크바"로 향한다.
"모스크바" 전선(戰線)에서 독일군(獨逸軍)을 격퇴(擊退)시킨 1941년 12월 그는 소련(蘇聯)의 최고사령관(最高司令官)에 오른다.
흥미로운 것은 옛날 "교환장교"(交換將校)로 왔던 독일(獨逸)의 "만슈타인"(Manstein) 대령(大領)도
"히틀러"에게 바른 말을 한 사람이였다고 한다.
하지만 "히틀러"는 바른 말을 하는 "만슈타인"을 군(軍)에서 떠나게 한다.
어느 시대(時代)나 통치자(統治者)에게 바른 말을 하는 사람과 통치자(統治者)의 눈을 가리는 사람이 있다.
어떤 사람을 선택하는가는 통치자(統治者)의 몫이다.
기마상(騎馬像)을 옆에서 보면 말발굽아래 "나치"의 깃발이 보인다.
그리고 앞쪽에 말이 짖밟고 있는 물체는 무엇이며 뭘 표현한 것일까?
얼핏 보기에도 용(龍)의 모습이다.
저 장군(將軍)의 이름이 공교롭게도 서양인(西洋人)들이 좋아하는 용(龍)을 퇴치한 성인(聖人)과 같은 "게오르기"(Georgii)다.
아마도 그래서 나치를 용(龍)에 비유해서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전쟁 박물관"(戰爭 博物館)(Museum of the War of 1812).
"바스크레센스키門" : 부활(復活)의 門 (The Resurrection Gate : Воскресенские ворота)
"붉은 광장(廣場)"으로 들어가는 "부활(復活)의 문(門)"은 17세기(世紀)에 만들어 졌다고 한다.
"스탈린 "시절에 군대(軍隊)의 행진(行進)에 방해(妨害)가 된다고 철거(撤去)했다가 1995년에 다시 복원(復元)했단다.
"復活의 門" 앞에는 푸른색의 "이베트스카야"(YvetteSkaya)라고 하는 작은 정교회(正敎會) 건물이 있다.
그리고 그 앞에는 바닥에 둥글고 특이한 문양(紋樣)이 있는데 내가 도착하자
여러 명의 젊은이가 그안에 들어가 경건하게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자료사진>
결국 이 문양(紋樣)은 사진으로 담지 못하고 말았다.
부활의 문( 復活의 門) 첨탑(尖塔).
"이베트스카야"(YvetteSkaya) 러시아 정교회(正敎會).
안에 사람들이 가득하고 기도하는 소리가 밖에까지 들렸다.
지붕에는 러시아 정교회(正敎會) 상징의 십자가(十字架)를 들고있는 천사상(天使像)이 있다.
좌측 "復活의 門" 위의 이콘(icon).
우측 "復活의 門" 위의 이콘(ic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