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산악사에 영원히 빛날 금자탑 (조선매거진 월간산 편집장 안중국)
김용기씨는 난생 처음 암벽을 대하던 날 오전에 인수봉 취나드B코스를 뒤따라 올라본 다음 오후에 곧바로 의대길을 선등해버렸다는 천부적 바위꾼이다. 그 다음주엔 선인봉 물개길을 후등으로 오른 뒤 오후엔 표범과 박쥐 루트를 선등했다. 야영장에서 눈을 뜨자마자 바위에 붙으면 5개에서 많은 날은 7개 코스를 등반해야 직성이 풀렸다. 그렇게 겁없이 마구 오르다가 죽을 고비도 무수히 넘겼다. “마땅히 암벽기술을 가르쳐줄 선배가 없어, 몇몇 산에서 사귄 친구들과 떨어지고 구르며 직접 터득해야 했다”고 그는 젊은 시절을 돌이킨다. 96년 그가 낸 <사진으로 보는 실전 암벽·빙벽등반>이란 등반 기술서는 이러한 자신의 젊은 시절을 위로하기 위한 것이다. 자신과 같은 처지의 클라이머들을 염두에 두고 심혈을 기울여 자료를 준비했다. 출판을 맡았던 당시 평화출판사 허창성 사장은 “거의 감격스러울 만큼 자료 수집에 공을 들인 흔적이 보여서”라고, 적자가 뻔할 출판을 감행하게 된 동기를 밝힌 바 있다.
김용기씨는 마음에 드는 사진을 얻기 위해 한 장소를 대여섯 번 찾아가기 일쑤였다. 책 발행에 착수한 이후 설악산 적벽만 여덟 번, 대승폭의 경우는 여섯 번을 다시 찾아갔다. 그의 이런 정성은 고스란히 2004년 발행한 <한국암장순례>(중부권/남부권)로 이어졌다. 이 책은 한국 방방곡곡의 암벽루트를 총망라한 최초의 책자다. 이 책은 출판 당시의 우려와 달리 오래지 않아 3,000부 전량이 매진되었다. 산악서적이 거의 팔리지 않던 당시의 풍토로 보아 뜻밖이라는 반응들이었지만, 그가 책자에 들인 공을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였다. 그는 이 책자의 발행을 위해 전국 각지의 223개 암장을 일일이 찾아 돌아다니면서 암벽루트를 직접 확인했다.
이 책이 절판된 이후로도 재발간을 원하는 이들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간 새로이 개척된 루트들이 많았고, 기존의 루트도 바뀐 것들이 적지 않았다. 이에 김용기씨는 새롭게 자료를 보완하는 작업에 들어갔고 올해 마무리를 하게 된 것이다. 아마도 두번 다시 이만한 한국 암벽 가이드북이 나오기는 어려울 것이다.
김용기씨는 88년부터 10여 년 코오롱등산학교 암벽반과 빙벽반의 대표강사를 맡았고, 2001년 이후 지금까지 자신의 이름을 단 김용기등산학교(www.kimcs.com)를 운영하고 있다. 이 등산학교를 거친 산악인만 1,000명이 넘는다. 등산 교육과 저술에 이만한 공력을 들인 이 또한 찾아보기가 극히 어렵다. 2005년 대한산악연맹이 그에게 산악문화상을 수여했지만, 이 책자와 그의 등산학교가 갖는 의미나 무게를 생각하면 상의 크기가 외려 부족하다고 할 것이다.
|
클라이밍은 과학적이며 정교한 운동이다. 인간의 온힘을 다해서 오르는 행위다. 정신을 집중해야 하며 손가락 끝에서 발가락 끝까지 강한 힘을 요구한다. 정교한 움직임과 정확한 판단력을 요구하며 때로는 공포심과 즐거움을 느낀다.
클라이밍은 추락 하지 않고 올랐을 때의 기쁨을 만끽하는 것이다. 클라이밍은 강한 힘과 부드러움을 요구하고 민첩한 동작, 강한 정신력, 끊임없는 노력, 예민한 감각까지도 요구한다. 이중 어느 것이라도 소흘이 하면 여지없이 실패 한다.
클라이밍은 ‘도전’이다. 오르는 과정에서 공포심을 느끼며 추락의 위험을 감수하며 끊임없이 도전을 한다. 그리고 추락 없이 성공을 하면 짜릿하고 부듯한 쾌감을 느낀다. 나의 정신력을 집중하고, 도전하고, 최선을 다하는 클라이밍을 나는 좋아한다.
1975년 봄날 필자는 백운대 정상에 앉아 바로 앞에 있는 인수봉에서 하강을 하는 사람들이 내눈을 번쩍 뜨이게 하였다.
| |
“아, 바로 저것이다.”
다음날 바위를 하는 사람들을 수소문하여 난생처음으로 오른 루트가 인수봉 '취나드B' 였다. 바위 첫날 오후에 필자는 무작정 ‘의대길’을 앞장서서 오르면서 공포심과 어려움, 암벽등반에 대한 강한 매력을 느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암벽등반에 대한 집념은 37년 간 이어지고 있다.
‘이 길이 무슨길입니까?’ ‘아니, 무슨 길인지도 모르고 올라갑니까?’ 길 이름 한 번 물어보면 으레 날아오는 핀잔에 무한당하기가 일수였다. 당시에는 루트의 이름, 난이도 등 루트의 개요보다는 오르고자하는 의욕이 앞섯고 눈앞에 볼트만 보이면 ‘아, 저기가 길이구나’ 하고 올라갔으니 어떤 길을 올랐는지 몇피치 구간인지도 모르고 오르내렸다. 길이 아닌 엉뚱한 곳으로 오르다 추락하길 수없이 했지만 바위에 대한 열정은 전국암장으로 이어졌다.
우리나라 암벽등반사는 1930년대 초반에 시작되어 80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전국의 암장을 소개하는 암장소개서가 없는 실정이었다. 1990년 한국등산학교 동창회에서 발간한 <바윗길>은 국내최고의 자료로 클라이머들에는 없어서는 안될 귀중한 안내서였다.
필자는 1994년 <실전암벽빙벽등반>이란 책을 내면서 기술서보다는 한국의 암장소개서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지만 전국에 수천개나 되는 암벽루트들의 자료를 모으는 일이 예삿일이 아니어서 엄두를 내지 못했다. 때마침 조선일보사에서 발간하는 <월간 산>에서 1997년 연재를 재의했고 이를 계기로 그간 꿈꾸어오던 ‘전국암장순례’의 고생길로 접어들었다. 전국의 암장을 찾아가 개척자를 만나고 직접 루트개념도를 그리고, 등반을 하고, 사진을 찍고, 글을 쓰고 1인 4역을 해야 했다. 우리나라의 암장을 소개하는 일은 클라이머가 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루트 하나하나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모으고 취재를 하여 7년간의 연재를 마치고 한국 최초로 국내 암벽루트 전체를 소개한 <한국암장순례>의 중부권, 남부권, 총2권 700여 페이지로 2004년 조선일보사에서 단행본으로 출간하였다. 하지만 전국에 또다시 1,000여개의 루트가 개척되었고 필자는 또다시 3년간 루트조사를 하였다. 이번에 출간한 <한국의 암벽>은 지난번 <한국암장순례>의 자료와 추가로 900여개의 루트를 포함하였다.
<한국의 암벽>은 우리나라 전국의 72개 산, 290여개의 암장에 개척된 3400여 개에 이르는 모든 루트의 세밀한 루트개념도와 함께 루트길이, 바위형태, 난이도, 볼트, 개척자, 개척년도를 포함한 상세 정보와 찾아가는 길 안내까지 수록한 암벽등반 가이드북이다.
북한산 인수봉, 노적봉, 도봉산 선인봉, 설악산 적벽, 장군봉, 울산암을 비롯해 국내 대표적인 암장부터 울릉도, 제주도, 전국의 해벽까지 상세한 소개를 하고 우리나라 최고의 빙벽대상지 토왕성폭포, 대승폭포, 소승폭포, 송천 인공빙벽, 화천 딴산 인공빙벽 등 크고 인기 있는 13개의 빙벽을 소개했다.
한국 암벽등반의 시작인 1930년대부터 암벽등반의 역사, 개척자들의 애환과 꿈, 열정이 그대로 담겨있는 역사적인 기록서이자 안내서다. 전국방방곡곡을 15년간 직접답사 등반하고 루트개념도를 그리고 사진을 촬영하면서 손과 발로 쓴 취재기와 살아있는 현황정보를 편람식으로 수록한 <한국의암벽> 가이드북이다.
서울 경기권, 강원권, 충청, 전라, 제주권, 경상권 등 총5권으로 분류하였다. 특히 한국의 대표암장인 북한산의 인수봉, 도봉산의 선인봉은 ‘세부개념도’와 ‘사진 개념도’를 비교할 수 있도록 하여 이해가 쉽도록 제작하였다. 특히 인수봉과 선인봉의 새로운 루트를 업그레이드시키고 이해하기 쉽도록 하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취재 기간 중 힘들고 어려웠던 과정들은 전국 클라이머들의 열정과 집념, 친절, 아낌없는 협조가 필자에게 보람과 힘을 주었다. 암장에 대한 소중한 자료를 제공하고 사진촬영에 기꺼이 협조하고 헌신적으로 도와주신 각 지역의 개척자들과 클라이머들, 선배, 후배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특히 이용대선배님의 아낌없는 배려와 자료 제공 등으로 역사적인 오래된 자료들을 모으는데 큰 도움이 되었으며 이책이 세상에 나오게 해준 조선일보사 월간산 편집진에게 감사를 드린다.
<한국의 암벽>은 클라이머들의 책입니다. 취재기간중 많은 노력을 하였지만 다소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 필자의 15년간의 집념이 암벽등반을 하는 여러분의 손과 발이 되어 안전하고 즐거운 등반을 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더한 기쁨이 없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