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지맥 1구간(진도대교-망금산-금골산-첨찰산-왕무덤재).지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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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금산~금골산~철천산~오목재
정유재란 때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승전지인 명량대첩지 울돌목위에
놓여진 우리나라 최초의 사장교인 진도대교를 건너서 들머리에
도착한 때는 11시를 막 넘긴 시각이다.새로 닦여진 왕복4차선의
자동차 전용도로를 슬쩍 빠져나온 버스는 곧바로 좌측의 차도를
찔끔 따르더니 길가에 슬그머니 멈춰선다.
지맥의 산꾼들이 그동안 버스 안의 지루했던 인내의 시간을 단숨에
벌충하려 하는지, 잠시잠깐의 여유로움 없이 곧바로 차도 우측의
절개지를 마구잡이로 기어 오른다.두꺼비나 맹꽁이 같은 양서류
등이 물 속에서 빠져나와 뭍으로 그리고 숲으로 기어 들 듯이.
빤히 올려다보이는 멧덩이의 정수리 한복판에 뾰족하게 솟구쳐 있는
진도타워를 겨냥해서 그런 식의 기어오르는 행위로 오늘 산행은
발행이 된다.산을 오르는 길은 지맥의 GPS가 그어놓은 금을 추적하는
운행이다.사철 푸른 관목들의 상록수림을 헤치며 오르막 치받이길을
올려친다. 습설의 흰눈이 내려앉은 산길은 예상한 것보다는 산행을
거스를 정도의 적설상태는 아니다.습기를 잔뜩 머금은 흰눈에서는
뽀드득거리는 소리 만이 간간이 들려올 뿐이다.
진도대교와 울돌목
등 뒤로는 진도대교의 위용과 그 너머 육지의 그림같은 해안가
풍광이 눈길을 잡아끈다.그리고 벽파진 앞 바다와 울돌목으로,
서해로 날카로운 이빨이 삐죽삐죽 돋아있는 입을 쩌억 벌리고 있는
바닷길이 한눈에 들어온다.
때는 1597년 8월29일부터 9월15일까지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은
이곳 벽파항에서 많은 시간을 체류하였다.벽파진에서 이순신의
함대는 태풍으로인한 배의 보호에 만전을 기울인다.혹독한 추위를
견뎌내며 수군의 보호와 보존에 빈틈이 없었으며 해상기동훈련과
야간전투에 적절하게 대응하여 적을 물리 친 곳으로 벽파진에서의
야간전투를 통해 조선수군의 사기를 드높힌 현장이기도 하다.
그리고 적들의 이동 상황을 눈밝혀 살피던 곳이 이 망금산인 것이다.
적들의 침입여부는 물론이고 그들의 이동상황과 움직임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전망대인 것이다.그러한 보루 역할의 망금산 멧부리의
높이는 해발 111.5m이다.
망금산 정상의 진도타워
이윽고 진도타워가 자리잡고 있는 망금산 멧부리에 닿게 된다.
그러나 진도타워의 건조물로 들어서려면 가로막은 쇠난간을
넘어가야 하겠다.번듯한 진출입로를 근처에 두고 지맥을 아금받게
잇겠다고 '길없는 길'을 냅다 들이친 탓으로 산객은 월장까지 서슴지
않고 있는 거다.왜적의 침입여부와 그들의 이동상황 그리고 움직임
등을 눈밝혀 감시하는 절처의 역사적인 기념 건조물 망금산
진도타워를 무색케하는 몰염치한 행위가 아닌가.
성지나 다름없는 구역에서의 행실에 따른 염치로 마음 한구석은
께름직하기만 하다.왜란시의 이순신 장군과 수군들의 모습이 담긴
구조물이 진도타워 앞 마당 끄트머리에 자리하고 있으며 명량해전
당시 진도의 참전 의용군들의 이름과 유공이 담긴 장방형의 검은
석판이 진도타워를 뒤로하는 진출입로 길섶의 석벽을 장식하고 있다.
망금산 진도타워를 뒤로하고 진출입로를 벗어나면 차도를 만나게
되는데, 좌측 방향을 겨냥하여 그 차도를 따른다.
따르고 있는 차도의 우측 절개지 위쪽으로는 왕복 4차선의 자동차
전용도로가 시원하게 뻗어있다.저만치 우측으로 자동차 전용도로를
빠져 나갈 수 있는 굴다리가 보인다.
망금산의 이순신 장군과 수군들
지맥의 방향대로라면 우측의 굴다리를 빠져나가서 곧바로 자동차
전용도로를 좌측으로 끼고 내처 발걸음을 이어가는 게 괜찮아
보이는데 길라잡이는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 굴다리 어귀에서
곧바로 자동차 전용도로의 갓길로 올라 선 뒤에 그 갓길을 곧장
이어나가는 거다.이런 과정이나 저러한 과정이나 지맥의 줄기는
제대로 밟아나가는 수단에 불과하지만 자동차 전용도로로 불쑥
들어서는 행위는 바람직 스러운 행위는 아니지 싶다.
어쩔 수 없는 막바지에나 마지못해 써먹을 수단을 쉽게 사용한
한 것이라 하겠다.
한참을 자동차 전용도로의 갓길을 재미없고 처량맞게 따른다.
저 앞의 도로 좌측 바깥가에 이동통신탑이 세워져 있는데 그쯤에서
갓길 옆 가드레일을 넘어서면 자동차 전용도로를 굴다리를 통해서
가로지르는 차도를 만나게 된다.우측의 굴다리를 빠져나가서 좌측의
차도를 따르면 이내 삼거리 차도가 기다린다.신동교차로다.
좌측의 차도는 진도읍과 팽목항 쪽이고 우측의 차도는 대사리 쪽이
된다.
좌측의 차도를 따르다가 곧바로 송전철탑이 세워져 있는 우측의
숲을 겨냥하여 발걸음을 옮긴다.소나무들이 듬성듬성 서 있고 관목의
상록수들이 빈 곳을 채우고 있는 숲길이다.그리고 또 그들 사이를
비집고 자리잡은 가시넝쿨들이 이악스러운 행티를 부리려고 공격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나지막하고 밋밋한 멧부리를 두엇 넘어선다.
금골산 전경
지맥의 산줄기를 뭉턱 잘라 낸 공사현장으로 지맥의 산길은 불쑥
들어선다. 등성이 한복판까지 공사 구역이 차지하고 있는 게다.
공사현장을 가로지르고 언덕이나 다름없는 멧부리를 넘어서면
거대한 송전철탑 곁도 지나가게 된다.
지맥의 산길은 수렛길이나 다름없는 널찍한 행색을 띠기 시작한다.
추측컨데 송전철탑을 세우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생겨 난 작업로일
가능성이 높다.작업로 길섶에는 잣나무 묘목이 식재되어 있다.
작업로를 벗어나면 고만고만하고 올망졸망한 멧부리 서넛을
넘어서게 된다.좌측의 골짝 너머 기암괴석의 멧부리 행색의 금골산이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하다.가파른 내리받이 산길을 짓쳐내려서면
산길은 늘 푸른 상록수림이 빼곡하게 자리하고 있는 초록의 숲길이다.
산길의 갈피를 잡을 수 없을 지경으로 상록수림이 빼곡하게 들어 차
있는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그 틈새를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무지막지한 가시넝쿨들이 아닌가.
애면글면 천신만고 끝에 그러한 더티한 험로를 빠져나오면 오르막
치받이 산길이 기다린다.치받이 산길을 올려치면 삼거리 갈림길을
만나게 되는데 금골산 정상(우측)과 안농마을/신동마을(직진)의
등하행 산길이 나 있는 삼거리 갈림길이다.
금골산 정상을 오르는 치받이는 데크계단이 안내한다.데크계단을
모두 올라서면 다시 한 번 더 삼거리 갈림길이 나오는데 금골산
정상(우측)과 해언사(좌측)방향이 엇갈리는 삼거리에 '마애여래좌상'
쪽을 가리키는 이정표의 손짓도 눈에 띤다.
금골산 정상으로 향하는 길목의 좁다란 공터에는 운동기구 두어 개가
나란히 놓여 있기도 하다.유선형의 암봉줄기를 몇 분여의 발품을 보태면
닿게 되는 암봉 멧부리,해발195m의 금골산 정상이다.
금골산 멧부리 암봉에서의 조망은 입을 다물지 못 할 만큼 화려하고
시원하다.사방팔방 막힘이 없는 황홀한 조망에서의 눈의 호사를
만끽하고 다시 되돌아 조금전의 마애여래좌상 입구가 있는 삼거리
갈림길로 돌아온다.
마애여래좌상으로 이어지는 산길은 바위절벽에 잔도처럼 나 있는
위험천만의 벼랑 길이다.그러나 철제 H빔을 군데군데 기둥으로
삼았으며 비교적 굵직한 와이어로프 두 가닥을 고정로프로 기다랗게
묶어놓아 안전에 만전을 기하고 있으므로 보기보다 위험하지는 않은
곳이다.바위절벽을 깎아서 계단까지 닦아놓은 벼랑길이다.
바위절벽 밑으로 반달모양으로 깊숙히 침식이 되어 패여 들어간
지점의 바위 벽에 마애여래좌상이 새겨져 있다.그리고 반달모양으로
깊숙하게 침식되어 패여들어간 굴 안의 천정이나 주변의 바위표면은
점점이 침식이 된 벌집모양의 반점이 특이하고 괴이하기만 하다.
마애여래좌상
그곳을 되돌아 서서 조금 전에 내려섰던 가파른 바위 벼랑길을
또 다시 올려친다.삼거리 갈림길로 돌아와 이번에는 '금성초교'를
가리키는 이정표의 손짓방향을 따른다.그 길은 어귀에 데크계단이
이끌게 된다.데크계단의 안내를 받으며 계단을 내려서면 '추락주의'
라고 써 있는 입간판까지 세워놓은 전망바위가 눈을 홀리게 하는
조망을 펼쳐보이며, 긴 의자도 두엇 마련해놓고 입산객을 유혹한다.
데크계단이 한번 더 가파른 경사의 내리받이 길을 안내한다.
그리고 만나게 되는 해언사 갈림길, 우측의 3시 방향의 연산마을을
가리키는 이정팻말의 지시를 따라야 한다.
노란색 물탱크 곁을 지나면 지맥을 가로지르는 임도로 내려서게 된다.
양회임도를 가로지러 자드락밭 한가운데를 질러 발길을 잇는다.
흰눈이 뒤덮혀 있는 자드락 밭을 우정 가로지르고 생각하니 '봄똥'이
재배되어 있는 밭으로 보이기도 하고 배추를 수확하고 난 뒤끝의
채소 밭 같기도 하다.혹시 봄똥 재배지를 훼손한 것은 아닌지.
자드락 밭을 뒤로하고 올라선 작달막하고 밋밋한 멧부리,이동통신탑이
독차지하고 있는 해발 63m의 무명봉이다.이 무명봉을 내려서는 완만한
내리받이 길은 잡목과 가시넝쿨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는 더티한
산길이다.
석굴과 마애여래좌상
밀양박가의 묘를 지나고부터 지저분함은 다소나마 씻기게 된다.
묘지를 지나면 완만한 내리받이 길을 따르게 되고 곧바로 비교적
널찍한 자드락 밭의 오른쪽 밭 둑을 따라 오르막 산길을 따르게
된다.금골마루(좌측)로의 등하행 산길이 있는 갈림길을 지나면
긴 의자 두 개가 마주 보고 자리한 쉼터를 지나게 된다.
그리고 맞닥드리는 삼거리 갈림길,이곳에서는 우측의 3시 방향으로
급선회하면 저만치 사각지붕의 정자가 산객을 기다린다.
사각정자를 뒤로하고 자드락의 보리밭 곁을 지나고 나면 곧바로
2차선 차도로 들어서게 된다.2차선 건너의 마을이 연산마을이다.
좌측으로 2차선 차도를 따르면 연산마을 버스 정류소를 만나게 되며
차도 삼거리와 맞닥드린다.마주 보이는 두 차도는 신기/대사(좌측)와
해남/금골 방면의 차도인데 지맥의 방향은 버스정류장을 지나자마자
우측 방향의 차도를 따라야 한다.
'우정가든'식당을 지나면 좌측으로 마을 길이 보이는데 그 마을길로
접어들어야 한다.마을길 어귀에 흰천막을 씌운 빗돌이 하나 모셔져
있다.마을의 수호석으로 추앙을 받고 있는 바위인지 붉은 벽돌로
사각의 보호벽으로 치장까지 받고있는 모양새다.
마을의 양회임도를 따르면 마지막 농가 왼편의 대나무 숲 옆으로
양회임도는 이어진다.
대나무가 무성한 양회임도의 언덕을 넘어가면 임도는 널찍한 전답
사이로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4차선 자동차 전용도로가 앞을 막아서고
2차선 차도 두 곳이 차례로 겹쳐가며 겹겹이 지맥의 줄기를 가로막고
있다.세 개의 차도에는 오고가는 차량들도 뜸하고 한가하다.
이 틈을 노려야 할 터이다.냅다 세 개의 차도를 막무가내로 횡단한다.
그리고 들입다 들어선 숲을 조금 벗어나면 임도를 만나게 되는데
이 임도가 다하면서 산객을 기다리는 것은 묘지들 뿐이다.
숲길을 따를 수록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묘지들의 숫자가 점점
불어난다.공동묘지인 거다.
공동묘지를 벗어나고 이전의 산길보다 눈이 좀더 두텁게 내려앉은
산길을 올려치면 해발 237m의 밋밋한 설매봉이다.
설매봉
조망도 마뜩찮은 설매봉을 뒤로하는 산길도 여느 산길보다 두텁게
눈이 내려앉아 있다.늘푸른 상록수들의 이파리에도 주렁주렁 흰눈이
남아있다.후두두 푸른 이파리에 남아있던 눈덩어리가 모자 위로
떨어지고 부서진 눈가루들이 목덜미에 날아든다.
엄장한 소나무 한 그루가 범강장달처럼 버티고 서 있는 붕긋한
멧부리를 넘어서면 완만한 내리받이 길이 이어지는데, 개다래 넝쿨들이
배낭을 잡아채고 발목을 감아대며 올무 노릇까지 서슴치 않는다.
평지나 다름없는 행색의 해발 222m을 지나면 정수리나 별반 고저의
차이가 없어뵈는 밋밋한 억새의 등성이가 군내면의 둔전들판의 광활
하고 시원스런 조망을 내놓는다.다시 산길은 개다래 넝쿨을 비롯한
넝쿨식물둘과 잡목들의 더티한 내리받이 산길이다.
해발222m봉 전경
편백나무 숲이 시작이 되는가 하더니 불쑥 양회임도로 내려서게
된다.대나무 숲 사이로 난 양회임도를 따르면 이내 송산마을이다.
마을 고샅을 빠져나오면 2차선 차도의 언덕배기와 맞닥드린다.
챙재다.언덕배기 우측으로는 주유소도 보이고 길섶에 우뚝 서있는
교회입간판도 눈에 들어온다.
지맥의 줄기는 언덕배기를 곧장 가로질러 벌건 흙의 절개지를 오르고
자드락 밭을 횡단하여 두어 기의 묘지를 지나서 숲으로 들어간다.
벌목현장을 좌측으로 끼고 가파른 치받이 산길을 올려친다.
온갖 잡목과 넝쿨식물들이 등천한 붕긋한 멧부리를 넘어서 밋밋한
능선을 따른다.
얼핏 상석 같아보이는 기암을 지나고 상록의 수림을 올려치면
오르게 되는 멧부리,해발 161.2m의 철천산 정상이다.
철천산 정수리를 내려서면 산갈은 편백나무들이 거뭇한 그늘을 드리운
숲길이다.햇빛이 사라지고 사위가 잿빛으로 변하더니 날벌레들이
바람을 타고 이리저리 휘돌 듯이 흰눈이 휘돌아 치는 바람의 결을
따라 춤을 추며 내리기 시작한다.
편백의 숲을 빠져나와 가라앉은 안부에서 다시 올려치는 치받이
산길도 여전하게 편백의 숲길이다.
그리고 이상한 일이 하나 생겨났다. 그것은 산길 주변의 잡목이
깨끗하게 다듬어져 있다는 거다.이발소에서 말끔하게 면도를 마친
수염자리의 모습이 아닌가.그러한 산길을 따라 올라선 붕긋한 멧부리,
해발 262m의 용장봉이라는 표지기가 바람에 나부낀다.
말끔하게 다듬어진 산길은 용장봉을 내려서는 내리받이라고 다를 게
없다.
산길은 부지불식간에 석성의 성곽위로 이어진다.이 성곽은 혹시
진도의 용장산성의 연장선 상의 석성은 아닌지 모른다.
용장산성은 고려 원종 때 배중손이 진도에 와서 3년에 걸쳐 몽골에
항쟁할 때 근거지로 삼았던 성이다.그러나 성은 이미 삼국시대부터
있었다고 여겨지며, 현재 남아있는 성은 남도포에 만호부가 처음
생긴 것이 조선 세종 20년 정월이므로 1438년 이후에 축성하였다고
생각된다.이 용장산성은 1964년 6월10일 대한민국 사적 제126호로
지정이 되었다.
말끔하게 다듬어진 산길과 돌성의 성곽을 따르며 올려친 치받이
산길이 내놓은 멧부리,해발 266m의 상봉이다.철천산 정상에서나
용장봉 멧부리에서 바라다 볼 때는 상봉의 멧부리는 뾰족한 멧부리가
아니겠는가 여겨졌는데 막상 오르고 보니 붕긋한 모양을 띠고 있는
행색이다.
용장산성과 상봉 전경
가파른 내리막 산길이 곧바로 시작이 된다.정신없이 내리꽂히듯이
내리닫는 내리받이 산길이다.그런 뒤의 완만한 산길이 한동안
이어지더니 시나브로 고도를 높여 나가는 오르막 치받이 산길이
헐떡임을 부추기고 진땀을 요구한다.
그런 뒤에 내놓은 멧부리,삼각점이 권위를 부여하고 있는
해발 228.6m의 출일봉이다.멧부리의 행색은 붕긋한 편이고 덤불과
잡목은 상당히 다듬어져 있는 멧부리다.
출일봉을 내려서는 산길이 문제다.산길은 희미하고 가시넝쿨이
대추나무에 연 걸리듯이 얽혀있으며 잡목들이 가세한데다 그 잡목들도
어느 것은 날카로운 가시까지 장착을 하고 산객의 빈 틈을 노리고
있는 거다.가시가 없는 잡목들은 거기에 비하면 점잖은 편이고
가시를 장착하지 않은 넝쿨들은 양반에 속한다고 할 수 있겠다.
무지막지한 가시넝쿨과 가시나무들의 극악스러운 반대를 무릅쓰고
도망을 치듯이 구르듯이 내리꽂히듯이 가파른 내리받이를 더듬더듬
거리며 고도를 시나브로 낮추어 나간다.
험악스러운 덫의 간악한 굴레를 벗어나려는 인내와 끈기가 바닥을
드러 낼즈음에서야 그 험로의 굴레를 벗어나게 된다.
묘지들이 하나 둘 나타나고부터 그 진출입로 덕분에 험로를 빠져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아닌지 모른다.묘지들을 벗어나면 양회임도가
기다리고, 양회임도 우측으로 수확을 앞 두고 있는 너른 배추밭의
곁을 지나면 곧바로 2차선 차도에 이르게 되는데,오늘의 날머리
오목재다.휘몰아대는 서풍에 몸을 맡긴 눈발들이 날리기 시작한다.
으슬으슬 찬기운이 옷깃을 파고들기 시작한다(16시).
진도에 와서는 자랑하지 말아야 할 것이 우선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글씨 자랑이고, 둘째는 그림 자랑, 그리고 셋째는 노래 자랑
이다.글씨와 그림은 한국 남화의 본거지로서 소치 허유~미산 허형
~남농 허건, 임인 허림~임전 허문의 직계 4대에 걸쳐 5인의 화가를
배출하면서 세계에서 드물게 큰 화맥(畵脈)을 이어가고 있다.
또 소치의 5세에 속하는 현손 중에서 붓을 잡은 화가가 6명이나
된다하니 가히 세계적인 화가 집안이라 할 만하다.
그래서 주민들은 우스갯소리로 진도의 허씨 집안은 "빗자루만
잡아도 명필이 나온다."고 말한다.이러하니 글씨와 그림은 어디에
내놔도 꿀릴 게 없으며 견줄만한 상대의 고을도 고르기 쉽지 않으리.
그리고 노래는 그 유명한 진도 아리랑이 아니겠는가.손을 꼽는 것이
모자라도 한참 부족하게 이 지역의 국악인들의 성가는 국악의 무대를
주름잡고 있으니 이 또한 타의추종을 불허한다고 할 수 있겠다.
굳이 두엇을 더 덧붙이라고 등을 떼민다면 개 자랑이고 주량(酒量)
자랑이 될 터이다.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누누한 설명이 필요없는
진돗개가 그것 아닌가.그리고 수줍은 처녀의 발그레한 볼을 닮은
색상의 홍주는 또 어떤가.알콜돗수 40도 남짓의 홍주로 단련된 진도인
들의 주량을 어찌 술좌석에서 앉은뱅이처럼 주저앉힐 수 있겠는가?
눈보라가 휘날리는 오목재,어한을 하려면 40도 남짓의 홍주를 냅다
두어 잔 입 안에 털어부으면 해결이 될 터이다.그러나 주어진 상황은
그리 발전할 환경이 안 된다.만만한 탁주나 안다미로 서너 잔
들이키는 것으로 대신 할 수 밖에 없지싶다. (2017,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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