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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민의 삶은 우산 펴기다
(학1:1-15)
1. 다리오 왕 제이년 여섯째 달 곧 그 달 초하루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로 말미암아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여 이르노라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하느니라
3.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4. 이 성전이 황폐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주하는 것이 옳으냐
5. 그러므로 이제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니 너희는 너희의 행위를 살필지니라
6.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확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 중심으로 <선민의 삶은 우산 펴기다>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증거 합니다.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 받은 자들이 선민입니다.
흔히 교인이라고 말하지요. 그리고 구약시대 때, 이제 이스라엘은 망하고 없는 때니까 남 왕국 유다, 물론 북 왕국 이스라엘의 흩어진 자들 중에서도 하나님께서 여전히 선민으로 생각하시고 부르시는 남은 자들이 섞여있기는 합니다.
자, 선민이 어떻게 정의되든지 내가 선민입니다.
그런 면에서 선민으로서 이 땅에서 삶을 살아가는 것이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우산 펴기’입니다.
여러분!
‘식은 죽 먹기’라는 말이 있어요, 참 쉽다는 표현이지요.
어떤 일이든지 ‘아 그거? 식은 죽 먹기야!’ 쉽다는 겁니다.
이 땅에서 선민으로서 살아가는 것이 우산 펴기라고 한다면 이보다 쉬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산을 만드는 일도 아니고, 하다못해 우산을 스케치북에 그리는 일도 아니고, 우산을 펴는 일입니다.
이 우산 펴기를 못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선민의 삶은 이 땅에서 살아갈 때, 우산 펴기에 불과한 것이고, 또 불과하다는 말은 쉽다는 표현을 하기 위한 단어이지만, 이게 또 선민의 특권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우산 펴기가 식은 죽 먹기보다 더 쉬울 수 있습니다마는 한없이 한없이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도저히 우산을 못 펼 때가 있어요.
우산을 손에 잡았습니다.
그런데 그 우산을 한 손으로 잡고 다른 한 손으로 우산살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서 죽 밀어 올려야 되잖아요?
그 밀어 올리는 부분을 ‘런너’라고 얘기한답니다. 피스톤 같은 부분 있지 않습니까?
우산의 중앙에 대가 있는데 그 우산대를 상하로 움직이는 피스톤 같은 것을 ‘우산런너’라고 얘기합니다.
그 우산런너를 쭈욱 밀어서 올리면 되는 거예요, 우산 펴기가 참 간단합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런너를 잡고 우산대를 따라서 쭉 끝까지 밀어 올리지 않고, 우산살을 붙잡고 우산을 펴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여러분은 뭐라고 생각하시겠어요?
정신병자라고 그러겠죠?
아이가 어렸을 때 기억이 납니다. 아이가 기어서 우산을 막 잡으려고 하는데 우산 전체가 잡혀지지가 않죠, 우산살 하나를 잡고 난리를 치다가 우산살을 꺾어버렸습니다.
우산살을 잡고는 절대 우산이 펴지지 않습니다.
초등학생만 되어도 우산살을 잡고 우산을 펴려고 하는 사람을 보면 정신병자라고 말할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 말도 안 되는 이 이야기가 선민들의 삶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정신병자 선민이 있다는 거예요. 정신병자 선민.
우산 펴기와 같은 삶을 한 손으로 우산 손잡이를 잡고 다른 손으로 우산런너를 쭉 밀어서 우산을 펴지 못하고 우산살을 잡고 펴겠다고 우산살을 꺾고 있는 정신병자 같은 선민들이 수두룩하다는 얘깁니다.
그것을 학개서가 지금 책망하고 있고 나무라고 있고 경고하고 있는 것이에요.
여러분, 1장 2장, 두 장으로 이루어진 이 학개서의 내용 중 우리가 읽은 부분은 어떤 내용 중에 들어있는 부분인가 하면 시대적 배경이 이렇습니다.
BC 605년에 1차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자들이 거의 70년 정도의 세월이 흐른 뒤에 바사 왕 고레스가 칙령을 발표하면서 포로들을 다 자기 나라로 돌려보낼 때, 유대민족에게도 고향 땅 팔레스틴으로 돌아가서 성전을 재건하도록 허락을 합니다.
그래서 돌아와서 BC 537년부터 성전재건 작업에 들어갔는데 얼마 안 돼서 그곳에 자리 잡고 있던 사마리아 사람들, 이제 혼혈이 다 되어 버렸지요, 북 왕국 이스라엘의 순수한 유대민족으로서 피를 물려받은 게 아니라 혼혈이 되어버렸어요.
그래서 사마리아 사람들이 방해공작을 펼치게 됩니다.
거기에 더해서 고레스 왕을 이어서 왕이 된 바사의 캄비세스 2세라는 왕은 팔레스틴 지역에 대해서 전혀 무관심한 정책으로 일관해 나갑니다.
게다가 거기로 이주한 사람들이 자기의 생계를 걱정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 됩니다.
그래서 ‘성전건축이 이렇게 방해 받고, 또 왕도 무관심해서 지원이 끊어지고, 우리도 먹고 살기가 바쁜데 성전건축이 문제가 아니라 먼저 농사부터 짓고 집부터 짓고, 제대로 삶의 모습을 갖추자!’ 라고 해서 살기 시작한지 16년이 흘러버렸습니다.
때는 바야흐로 주전 520년이 되었는데, 예루살렘에 있는 학개 선지자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지면서 16년 동안 이어져 가지 못하고 있는 성전건축 사업에 대해서 유다민족을 앞에 놓고 책망을 하게 됩니다, 그 내용이에요.
책망의 내용을 보면, ‘이렇게 성전이 황폐한 상태에서 너희 집을 판벽한 집으로 건축해서…’ 판벽하다는 것은 지붕을 얹어놓고 벽을 막고 아주 그럴듯하게 집을 지었다는 뜻입니다.
아주 정식으로 제대로 집을 지었음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아주 그럴싸하게 집을 짓고 거주하는 것이 옳으냐?’
그리고 5절과 6절에 ‘너희는 너희의 행위를 살필지니라,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확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한 마디로, ‘너희가 성전을 건축하지 않고 한번 안정되게 살아보겠다고 성전건축을 중단한 채로 성전은 폐허상태로 남아있는데 좋은 집 짓고 좋은 직장 갖고 농사짓고 산다고 될 것 같으냐?’ 안될 거라는 얘깁니다.
그리고 너희의 행위를 한번 돌아보라는 얘깁니다.
그래서 쭉 내려가다 보면, 7절에 ‘자기 행위를 살필지니라’라는 얘기가 또 나와요.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또 살펴보라는 겁니다.
그래서 8절에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그 다음 9절에 또 말합니다.
‘너희가 많은 것을 바랐으나 도리어 적었고 너희가 그것을 집으로 가져갔으나 내가 불어 버렸느니라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것이 무슨 까닭이냐 내 집은 황폐하였으되 너희는 각각 자기의 집을 짓기 위하여 빨랐음이라’
학개 선지자는 상황을 완전히 뒤집어버리는 겁니다.
자, 학개 선지자의 권고를 받고 나를 살펴봅니다.
사마리아인들이 반대를 했고, 왕의 지원이 끊어졌습니다.
그래서 가만 둘러보니까 먹고 살 길이 막막해요.
그래가지고 생계를 유지하고 생존하기 위해서 집짓고 농사짓고 직장생활하면서 열심히 벌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16년이 지났는데 마음대로 되지 않아요.
학개 선지자가 이 상황을 뒤집어 놓는다는 거예요.
이 사람들이 생각할 때는 살펴보아도 뭐가 잘못된 건지 알기가 쉽지 않아요.
내가 먹고 살 길이 막막한 상황에서 어떻게 성전을 지을 수가 있겠나?
매 끼니가 지금 해결되지 않고 있는데, 내 생활이 보장이 안 되고 있는 상황인데, 내가 거할 집이 없는데 어떻게 성전을 짓는 일을 계속 밀고나갈 수가 있겠느냐?
아무리 살펴봐도 잘못을 모르겠어요.
그런데 학개 선지자는 뭐라고 말하느냐 하면,
‘너희가 상황이 안 좋아서 성전건축을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지? 먹고 살 끼니도 없는데 성전을 어떻게 짓느냐고 생각하고 있지? 천만의 말씀, 완전히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거다. 성전을 먼저 짓지 않았기 때문에 너희가 먹을거리가 없는 것이고, 너희는 너희 일이 잘 안 되기 때문에 성전을 못 짓는다고 생각하는데, 성전을 먼저 안 지었기 때문에 너희 일이 잘 안 되고 있는 것이다.’ 라는 겁니다.
이게 바로 선민 됨에 스며들어 있는 특징입니다.
선민이 아닌 사람들은 성전건축과 아무 상관없이 잘 먹고 잘살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합니다만 선민의 삶은 성전건축과 연관되어져서 성전건축이 먼저 일어나지 않으면 벌어도 벌리지 않고 모아도 모여지지를 않고 먹어도 배부르지 않고 마셔도 흡족하지 않고 입어도 따뜻하지 않는다는 얘깁니다. 성전건축이 먼저 이루어지지 않으면…
이게 선민이에요.
‘어? 성전건축을 미리 애를 쓰지 않았는데도 나는 잘 먹고 잘사는데?’
아마 선민이 아닌가 보죠?
선민이라면 반드시 지금 성전건축이 갖고 있는 그 의미가 실현되지 않았는데도 잘살고 있는 그 상태가 싹 사라져버리고 말 겁니다.
선민이 아니라면 성전건축에 담겨있는 그 의미가 나에게 적용되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잘사는 것, 그대로 유지될 수 있어요.
선민 괜히 하는 것 아닌지 몰라요, 여러분!
자, 성전건축의 의미가 뭡니까?
왜 성전을 먼저 건축하라는 겁니까?
성전이라는 집을 지으라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 아니죠.
성전이라고 하는 집의 기능이 뭐예요?
첫 번째 솔로몬 성전에 비하면 스룹바벨 성전이 학개의 권고를 듣고 재건되어 완성됩니다마는 아주 보잘 것 없고 초라해요.
집 지으라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게 아니에요.
성전의 의미는 거기에 법궤가 들어있었고 말씀이 들어있었고 성전 문 앞에 번제단이 있으면서 하나님의 임재가 이루어지고 임재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게 되어서 하나님과 하나로 함께하는 임마누엘의 의미가 성전에 들어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의미를 말하면 6절에 말씀하신 대로 ‘씨를 뿌리려느냐? 씨를 뿌리기 전에 하나님과 함께하기 위한 준비를 해라, 수확하느냐? 수확하기 전에 하나님과 함께할 준비를 갖춰라’ 이겁니다.
‘먹느냐? 아니, 먹기 전에 하나님과 함께할 준비를 먼저 갖추어라, 그렇지 않으면 먹어도 배부르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과 함께함이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으면 먹어도 배부르지 않고 마셔도 흡족하지 않고 모아도 모여지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서 바람으로 후~ 불어서 다 날아가게 하실 것이다.’
성전건축을 하라는 의미는 ‘아, 내가 하나님과 함께 해야지!’라는 이 과제를 씨뿌리는 것보다, 수확하는 것보다, 먹고 마시고 입는 일보다, 집을 짓는 일보다, 재산을 모으는 일보다 먼저 하라는 얘깁니다.
그러면 그 모든 삶의 과제들은 다 저절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을 학개 선지자가 얘기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우산 펴기죠.
여러분, 씨뿌리는 것, 우리 삶에 꼭 필요한 우산살 중의 하나입니다.
우산을 살펴보니까 여덟 개의 우산살이 있더라고요.
수확하는 것, 또 하나의 우산살 중의 하나입니다.
먹는 것, 아주 중요한 우산살이죠.
마시는 것, 입는 것, 직장생활 하는 것, 그리고 기획하는 것, 9절에 보면 ‘너희가 많은 것을 바랐으나’ 이게 기획하는 것이고 소원하는 겁니다.
이렇게 여덟 개의 삶의 우산살들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이 여덟 국면에 마음을 나눠주면서 살아갑니다.
이 세상의 모든 이방인들, 불신앙인들, 선민이 아닌 사람들은.
그들의 삶은 우산이 아니에요.
그러나 선민의 삶은 우산으로 주어집니다.
그러므로 내 삶이 활짝 펴지려면 절대로 우산살에 손대지 마세요!
씨뿌리는 것, 이것은 우리 식으로는 영업행위 하는 것이고 투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수확하는 것, 돈 벌어들이는 겁니다.
먹고, 입고, 마시고, 이건 뭐 비유로 할 필요도 없어요.
그리고 직장생활 하는 것, 삯군, 삯을 받는다고 하잖아요? 직장생활 하는 겁니다.
그리고 9절에 ‘많은 것을 바란다’ 기획하는 것이고 소원하는 겁니다.
이걸 다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당연하지요.
그런데 선민에게는 절대 절대로 안 됩니다.
이건 우산살을 끌어당겨서 우산을 펴겠다고 하는 것과 똑같아요.
우산을 펼 때를 가만히 한번 생각해 보세요.
자, 왼손으로 우산대를 잡습니다.
그리고 오른손으로 우산살이 나와 있는 우산살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서 런너를 잡고 쭉 밀어 올려서 꼭대기까지 더 이상 갈 수 없을 때까지 밀어 올리게 됩니다.
자동우산도 결국은 런너가 꼭대기까지 올라가야 펴지는 거지요.
그리고 그곳에 머물러 있어야 되는 겁니다.
우산살을 잡고 우산을 펴는 사람은 세상에 없어요.
그런데 선민인 우리가 미쳤나 봐요. 제정신이 아닌가 봐요.
돈을 벌려고 그래요, 돈 버는 우산살을 잡고 내 선민으로서의 삶을 펴려고 해요.
곡식을 수확하는 우산살을 잡고 그것으로 내 삶을 펴려고 해요.
먹고, 마시고, 입고 하는 일에 마음을 다 뺏기면서 그것으로 내 인생의 삶을 펴려고 그래요.
미쳤나 봐요,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렇게 합니까?
그게 당연한 일 같습니까?
학개가 말씀합니다.
‘너희 행위를 살펴볼지라’
‘아무리 살펴봐도 문제가 없는데? 내가 돈 버는 일에 신경 쓰고 수확하는 데 신경 쓰고, 먹고 입고 집 짓고 하는 데에 신경 쓰고 사는 게 뭐가 이상할까?’
그게 미쳐서 안 이상하게 보이는 거예요.
선민인데도, 교인인데도 그런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은 우리가 미쳤기 때문이에요.
제정신이 아니기 때문인 거죠.
선민이라면 우산살에 손대면 안돼요.
손잡이 잡고는 그 우산 속에 있는 런너를 쭉 끝까지 밀어붙이면 됩니다.
꼭대기까지 밀어붙이면 돼요.
우리 마음을 이 세상의 여덟 측면, 여덟 개의 우산살 그 어느 것에도 닿지 않게 하시고, 우산살이 걸리면, 내 양복 소매에 우산살이 하나 걸려서 올리려고 하면 우산살이 부러집니다.
그러니까 내가 하나님께로 내 마음을 밀어붙이는 겁니다.
우산대의 꼭대기까지 런너를 밀어붙이듯이 내 마음을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로 밀어붙이는데, 우리는 ‘하나님, 돈 주세요, 사업 잘되게 해주세요, 이렇게 이렇게 해주세요’ 이 세상의 여덟 개의 우산살 중의 하나를 끼고 올라가려고 합니다, 끼고 올라가. 그러면 부러져요.
바깥으로 우산살을 잡아당겨서 펴려고 하는 것이나, 하나님께로 가겠다고 하면서 옷소매에 우산살을 하나 걸고 가는 것이나 똑같이 우산살을 부러뜨리고 맙니다.
그래가지고는 펴질 수가 없어요.
위로 올리면 올릴수록, 우리가 돈 문제나 사업문제나 건강문제나 자식문제나 집안문제를 한쪽마음에 담아두고 하나님께 나가서 기도하면 할수록, 하나님께로 나가려고 하면 할수록, 그 우산살은 안쪽으로 휘어져서 꺾어지게 됩니다.
절대로 우산살은 손대지 말아야 돼요.
단지 내 마음은 이 세상의 여덟 가지 측면 모든 것을 마음에서 다 잊어버리고 마음에서 죽고 마음을 온전히 다 우산의 런너를 꼭대기에 밀어붙이듯이 하나님께 밀어붙이면 하나님으로부터 여덟 측면의 계획이 쫙~쫙 뻗어나가면서 펴지게 된다는 겁니다.
이걸 못 믿는 거예요, 이걸 못 믿는 것 이게 바로 선민으로서 제정신이 아닌 거라는 겁니다.
어디 돈 벌 것에 마음을 뺏깁니까?
어떻게 먹고 마시고 집짓고 사는 것에 마음을 뺏깁니까?
어떻게 이 세상에서 비전을 가지고 무엇을 바라보며 그것을 이루겠다는 생각을 합니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정신이 나간 거죠.
그건 선민이 아니거나 미친 선민이죠.
선민이 뭐하는 자들입니까?
마음을 제일 먼저 모두 다 하나님께 밀어붙여 하나님만 들이는 겁니다.
그래서 내 마음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괄호로 묶이는 거예요.
앞에서 스바냐가 수치에 대한 얘기를 했습니다.
수치가 왜 생기는 겁니까?
하나님이 앞에 계시는데 입을 열어 답을 말했을 때 생기는 겁니다, 답은 하나님밖에 몰라요.
내 감정도 답이 아니고, 내 의지도 답이 아니고, 내 생각과 판단도 답이 아니에요.
그런데 너무 확신에 차서 화가 난 감정을 다 폭파시켜버립니다.
나중에는 창피해서 고개를 들 수 없는 상황이 빚어집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랬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 하나님 앞에 있을 때 수치가 발생하고 그것을 교만이라고 얘기해요.
자기감정에 충실한 것이 교만이에요, 그게 정답이라고 믿고 밀고나가는 거니까.
누구 앞에서? 하나님 앞에서.
그러면 ‘하나님이 어떻게 앞에 계실 수가 있겠습니까?’ 라는 것을 지금 학개 선지자가 얘기하는 거예요.
하나님이 앞에 계심 자체를 과제로 삼으라는 거예요.
하나님과 함께할 수 있는 방법, 그래서 괄호로 묶어서 제로와 1로 표현한 것 아닙니까?
자, 여러분!
하나님과 함께 하면서 하나님이 앞에 계신데도 불구하고 내가 마음을 돈 버는 일에 쓰고 자식 기르는 일에 빼앗긴다는 것은 데이트 하는 동안에 애인을 앞에 두고 레스토랑에서 세 시간 동안 잡지나 신문 보고 있는 것과 똑같아요.
마음을 거기다 뺏겨서는 하나님과 함께 있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는 그런 일이 용납이 안 되는 겁니다.
여러분, 믿읍시다.
여덟 가지 측면의 삶의 국면이 있어요, 여덟 개의 우산살과 같은 것이에요.
이것이 쫘악 펴지려면 하나님으로부터 퍼져 나가야 돼요, 가운데 우산대 꼭대기의 꼭짓점과 같은 하나님으로부터 쫙 퍼져 나가야 됩니다.
우리는 그걸 손대면 안돼요.
그 비유를 우리의 현실로 갖고 와서 얘기해 보면, 우리 마음이 아예 돈 버는 일을 잊어버려야 됩니다.
십자가에서 죽어야 돼요.
자, 우산을 쭉 올리다가 말면 우산이 펴지지 않아요.
딸깍 소리가 날 때까지 꼭짓점을 완전히 지나가야 돼요.
그래야 머물러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펴져있는 상태로 머물러 있으려면 주님의 십자가에서 내 마음이 자꾸 소매에 우산살이 걸리듯이 이 세상 문제에 걸려있는 상태로 우산을 펴려고 하는 이 상태가 죽어야 돼요.
어떻게 죽습니까?
돈 문제가 마음에 걸려옵니다.
내 마음이 돈 문제의 우산살에 걸려있는 동안 절대로 내 삶은 펴지지 않습니다.
돈 문제는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어요.
하나님이 계획하신 우산살이 펴지면 돼요.
그런데 내 마음이 걸고 있어요, 내 자식문제에 내 마음이 걸고 있는 한 절대로 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계획 속에 펴져야 될 우산살이 따로 있어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자식문제를 해결해서 마음의 평안을 얻으려 하지 말고, 돈 문제를 해결해서 마음의 평화를 얻으려 하지 말고, 건강문제를 해결한 뒤에 마음의 평안을 얻으려 하지 마세요.
돈 문제 그대로, 자식문제 그대로, 건강문제 그대로, 인간관계문제 그대로 다 놔둬요.
그리고 내 마음은 하나님 때문에 평강하기 위하여 십자가 붙잡고 기도하세요.
자식문제에 대해 죽게 하시고, 돈 문제에 대해 죽게 하시고, 건강문제에 빼앗겨진 마음을 다 회수해서 하나님께로 밀어붙여 올리는 겁니다. 끝까지 다.
모든 문제에 대해 내 마음이 다 죽어버리는 것, 이게 바로 손대지 않는 거예요.
다 잊어버려요!
다 잊어버린다는 게 어떻게 확인이 됩니까?
내가 지금 문제가 있는데도, 세상적인 기준으로 보면 여전히 모자람으로 가득 차있는데도 하나님 계시기 때문에 평안한 상태가 되는 것, 이게 바로 손 안대는 거예요.
적극적으로 하나님께로 나가는 겁니다.
그렇게 하나님께로 나가서 마음이 밀어붙여지면 하나님이 계획하신 우산살들이 다 펴져 나갈 것이에요.
제일 먼저 성전건축을 하라는 이유가 뭡니까?
성전 자체가 하나님과 함께하기 위한 수단이니까.
그러므로 목사님들께서 학개가 성전건축 재건하라고 경고하는 이 말씀에 똑같은 내용을 담아 설교를 하시려면 ‘우리 예배당 짓자’로 나와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그거는 본문을 오해한 거라는 겁니다.
성전건축의 의미가 하나님과 함께하는 데에 첫 번째 관심을 두라는 얘기라고 한다면, ‘주님의 십자가를 붙잡아라!’가 학개가 성전을 건축하라는 경고와 같은 내용이 된다는 겁니다.
십자가를 붙잡지 않고는 하나님과 함께하고 하나님으로부터 평강과 기쁨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그래서 십자가 붙잡고 모든 문제에 대해 죽고,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적극적으로 기쁨과 평강을 회복하라고 설교함으로 교인들이 그렇게 될 때에 교회의 예배당 짓는 것은 여덟 개의 우산살 중의 하나로서 하나님의 뜻 안에서 저절로 되어져 갈 것이에요.
온 교인의 마음을 그리로 몰고 가지 않아도, 그건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되는 겁니다.
만약에 그렇게 했는데도 안 지어진다면, 그건 하나님의 뜻이 아닌 거죠.
뜻이 아닌 걸 굳이 하려고 그럽니까?
선민의 삶은 우산 펴깁니다.
이처럼 쉬울 수가 없어요.
왜 그 어려운 돈 벌려고 합니까?
왜 그 어려운 자식 때문에 끙끙 맵니까?
왜 그 어려운 다이어트 하려고 합니까?
그냥 내 마음을 통째로 우산을 펴듯이 쭉 꼭대기에 계신 하나님께로 다 드려버리면 이 세상의 여덟 개의 우산살 어느 것 손 하나 대지 않아도 다 펴지게 돼있습니다.
이게 특권 아닙니까?
이 특권을 제대로 누리실 수 있는 선민으로서 오늘 하루를 살아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제가 선민이라면 제 삶의 구조는 우산처럼 만들어져 있을 것입니다.
이제 펴기만 하면 됩니다.
그 어려운 세상일들 때문에 마음이 번뇌하지 않게 해주시고 그저 우산 펴듯이 내 마음을 주님의 십자가의 도움을 받아 하나님께로 쭉 밀어붙여 올려 질 수 있게 하여 주셔서, 오늘 하루 온전한 우산 펴기가 아름답게 이루어지고 유지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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