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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 方 廣 佛 華 嚴 經
第三會
須彌山頂帝釋宮中 忉利天(六品)
修因契果生解分
差別因果中 辨因
卷第十七
十七,初發心功德品
오늘은 동화사 한문 불전 대학원 2014학년도 제 6강째입니다.
오늘은
十七, 初發心功德品
그러니까 화엄경 7처 9회 중에서
제 3처 3번째에 해당하는 곳이죠.
처음에는 아란야 법보리장에서 1회차 설법이 끝나고
2회차 보광명전에서 현수품까지 해서 법문이 끝나고
3회차 도리천궁
그러니까 제석천 묘승전에 올라서 설법하고 있는 것 중에
처음에는 승수미산정품
승수미산정게찬품
십주품 그 다음에
범행품이 있었죠?
지난 시간까지 우리가 범행품까지 끝나고
오늘은
初發心功德品이 되겠습니다.
이 初發心功德品이라고 하는 것은
처음 初라고 하는 것은
이 발심에는 3 가지가 있는데
처음에는 믿음이 완전히 무르익는 것이 이제 信成就發心이고
신성취발심이 된 상태에서
충분히 믿음을 더욱더 발전시키는 解行發心이 있습니다.
알 解자 행할 行자,
解行發心에서 또 넘어가면
진정한 성인의 경지와 수행자로 갈 수 있는 見道品부터 시작되는
證發心이 있죠.
증득하는 발심이 이제 십지부터 이상이 증발심이라 하잖습니까?
여기서 初發心功德品이라고 하는 初는
제 첫 번째 신성취발심에 해당하겠습니다.
왜 신성취가 되느냐고 하면
2회차 설법이 무슨 법문이었죠?
십신 법문이었잖습니까? 그죠?
십신 법문에서 십신이 믿음이 완전히 무르익었다.
무엇을 믿는가?
이것은 우리 불교에 있어가지고 아주 간단한 문제죠.
자성청정을 첫 번째 믿을 것이고
두 번째는 부처님을 믿을 것이고
세 번째는 부처님의 교설, 법을 믿을 것이고 그 다음
네 번째는 수행하는 수행자를 믿는다.
처음에는 마음의 信根本, 우리 마음 심체 자성 청정의 근본을 믿는 것이고
그 다음에는 信三寶라, 불법승 삼보에 대해서 믿는 것이라.
이래서 현수품 말미에는 중간에 게송 중에 이런 게 나오죠.
信爲道元功德母요 長養一切諸善法이라.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도의 근원이요 공덕의 어머니라고 하는 것
도의 근원이라고 하는 것이
바로 우리 일심 자리의 근본을 말하는 것이고
공덕의 어머니라고 하는 것이
자리이타행의 지혜로써 자비롭게 세상을 구하는
일체의 모든 만행을 함수하고 있기 때문에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信爲道元功德母요 長養一切諸善法이자
또 모든 의심의 그물을 끊어버리고 涅槃無上道를 증득할 수 있다고
현수품에서 배운 바가 있습니다.
거기에서 입각해서 십신이 무르익고
십주에서 충분한 이해력의
또 계급을 십주에서는 발심주 그 다음에 뭐죠?
치지주
수행주
생귀주
구족방편주
정심주 그 다음에
불퇴주
동진주
법왕자주
관정주
이와 같이 점차적으로 올라가면서
마지막 관정주가 화려한 꽃이라고 했죠?
십주품에서는 낱낱이 행을 초주부터 해서 십주까지 나누면서
그 행이 깊어진 상태를 점차 점차 얘기를 해놨고
범행품에서는 통체적으로 깊이 법을 관해서
지혜를 증득해서 행을 행하기 때문에 뭐라 했습니까?
범행품이라고 했고
범행품에서 아까 말씀드린 대로
십신이 信爲道元이라, 믿음이 도의 근원이 되기때문에
初發心時便成正覺 初發心時卽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라고 하는
범행품 마지막 구절이 있었죠?
그래서 여기서 이제 初라고 하는 것은
십주초에 발심주, 초발심주 있죠?
거기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초발심공덕품이 되고
발심에 관한 것을 굉~장히 많이 설명을 해놓게 되겠습니다.
발심은 늘여서 얘기하면 발보리심
조금 더 늘이면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
이와 같은 뜻이 되겠습니다.
이 초발심이라고 하는데
처음이라고 하는 거는 신성취발심이요
그 다음에 십주의 초, 초발심주를 뜻하는 말씀이기도 하고
發이라고 하는 것은 뭐냐?
위로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구하기 때문에
上求菩提 우리가 下化衆生
늘 얘기하잖습니까? 그죠?
上求, 위로는 보리심을 구하기 때문에
그것을 일러서 初發이라고 합니다.
發, 發
그래서 初發心功德이라고 할 때 초발심공덕이라 할 때 發자,
마음을 일으킨다고 하는 거는 발보리심이다.
보리심에 대해서 보리심은 無上正等正覺, 上求菩提
그와 같은 위로 보리심을 구한다는 말은
삼세제불의 부처님의 지혜를 아는 것이고
그리고 일체중생의 의심의 그물을 찢어발기는 것이고
그 다음에 여래의 일심에서 무량한 공덕이 있다는 것
우리의 지금 청정한 일념이 장래의 여래의 열반가를 기약한다는
初發心時便成正覺이라.
이와 같은 3德에 대해서 믿음을 일으키기 때문에
그걸 열고 개발한다 해서 初發, 發이라고 그렇게 얘기를 합니다.
믿음이 이미 다 세워져 있고 2회차 설법에서
그것이 이제 끝까지 궁구해서 십주위를 통과해가지고
어느 정도의 소견을 열고
드디어 이제 십주를 통과해서
범행품에서 점안을 하고 오늘은 초발심공덕품입니다.
十七, 初發心功德品
초발심공덕품쯤 왔는데
지금쯤 오면 혹시 까먹었을지도 모르시겠는데
지금 하늘이 어느 하늘이죠?
도리도리 ㅎㅎ
도리천입니다.
도리천 설법 하면서
1회차 설법이나 2회차 설법에 나오지 않던 구절이 있었죠?
不離當處라,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遍滿十方이라. 그죠?
佛身充滿於法界라.
마치 報化非眞은 了妄緣이요
法身淸淨은 廣無邊이요
千江有水에 千江月이요
萬里無雲에 萬里天이라고 하는 것처럼
하늘에 一片 孤輪이 떠 있는데
한 조각 달이 하늘에 떠 있는데 강마다 비치듯이
부처님께서 覺
보리수 아래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不離當處하고
어디 하고 있습니까?
묘승전 제석천궁 묘승전으로 향하고 있죠?
야마천은 또 어떻습니까?
보리수 아래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으시고
도리천과 야마천에 가시고
보리수 아래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으시고
도리천 야마천 도솔천에 똑같이 가십니다.
그 뜻은 충분히 이제 설명이 됐고
여러분들께서 이해하고 있으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자! 여기서 이제
제 十七, 初發心功德品
해놨는데 책이 좀 틀렸죠?
17卷 해놨죠?
卷자는 이제 品자로 이렇게 바꾸셔야 됩니다.
뭐 그게 맞느니 틀리느니 이런 거는 이제 중요하지 않고
제가 생각하는 진정한 경전이라고 하는 거는
品도 없고 卷도 없고 심지어 글자마저도 없는 것을
저는 經이라고 사실은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것 우리가 공부라고 하는 것도 한문이죠.
여기서 공부한다 하면 글 공부하는 걸
흔히 일반적인 오류로 공부라고 합니다만
공부는 배운다, 배움이라든지 또 수행하는 닦음이라든지 뭐라 할까...
거룩함이라든지 고요함이라든지 이와 같은 걸 아주 슬기롭다든지
이런 것을 전체 이제 공부로 연관시킬 수는 있겠죠.
지금 우리가 공부하는 거는
피치 못해서 품을 따라 가고 권수를 따라 가고 무슨 이름을 따라 갑니다만
제가 엊그제 가만~ 히 앉아서 생각해보니까 그렇습니다.
이 화엄경보다 더 아름다운 경전이 있다 하면
저만의 경전이 있다 하면
제가 알고 있는 이름들이 많이 있습니다.
고유 명사들이
그런데 일단 바깥의 것도 다 소중하지만
낱낱이 저하고 인연이 됐던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들을 다~ 나열한다면
전부 잘 되라고 얼마나 아름답게 지어놓은 이름들이겠습니까? 그죠?
불명은 말할 것도 없고, 속명까지도
거룩하고 아름다운 존재들인데
그렇게 사람 이름만 가득히~ 채워놓더라도
저한테는 아름다운 제 이 세상의 한 경전인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는 어릴 때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지금은 화엄경을 가지고 놀고 있습니다.
어쨌든지 간에~
그런데 이 화엄경을 읽으시면서
조금 더 발전이 있게 우리가 살아가야 된다면
각자가 알고 있는 이름이 다 다를 것입니다.
공통적으로 알고 있는 이름도 있을 것이고
낱낱이 사람 사람마다 인연이 다르고
그런 태생이 다르고 그렇기 때문에
업연이 다르니까 이름이 다 다른데
낱낱이 사람들의 자기만의 경전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이름 중에서 듣기 싫은 이름도 있을 것이고
지워버리고 싶은 이름도 있을 것이고
너무 그리워서 애착이 가는 이름도 있을 것이고
또 김 소월의 시를 빌리지 않더라도 '초혼' 그죠?
내가 부르다가 지쳐 죽을 이름도 있을 것이고
그와 같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이름 자체는 전부 다 애초에 미운 이름도 좋은 이름도 없는 것인데
우리가 이제 내 몸에 집착을 하다가 보면 탐욕이 생겨지고
탐욕이 생겨지면 허망~한 망상분별이 생겨지고
허망~한 망상분별이 생겨지면 전도몽상이 생겨지고
그로 인해서 미움도 생겨지고 애착도 생겨졌는데
도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미움이고
좋아하는 것이 애착이냐 이말이죠.
잡고보면 착각이고 이제 놓고보면 좀 허무한 것인데
그런 데 대해서 이제 조금 가벼운 생각을 가지시고
또 각자 가벼운 생각을 가지면 어떻습니까?
이제까지 인연이 닿았던 그 모든 이름들에 대해서
낱낱의 하나의 경전이 아름답게 회향될 수 있다 하면
화엄경을 배운 공덕이 있을 것이고
여기서 오늘 처음 배운다고 하는 초발심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이해가 갈 수 있는 대목이겠죠.
이 초발심이라고 하는 것이
발심이 도~ 대체 바깥의 사람들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자기 자신을 전혀 못믿는다는 것이죠.
여기서 첫 대목부터 그렇습니다.
제석천왕이 법혜보살한테 묻습니다
묻는다는 거는 뭐 때문에 그렇습니까?
의심이 해결되지 않는 사람은 묻습니다.
진정하게 알고 싶은 사람은 묻습니다.
아만스러운 사람은 묻지를 않습니다.
알고 싶지 않기 때문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자기가 정말 살고 싶다면 어떻겠습니까?
의사에게 묻습니다.
또 의사를 알고 있는지 묻고 약을 묻습니다.
그러나 살고 싶은 생각이 없다. ㅎㅎ
내가 죽는지 사는지도 모르니까
병에 걸린지도 모르니까 묻지도 않는다.
어느날 조사해보니까 덜컥 이제 큰일났다!
자~ 여기서는 이 초발심공덕품을 설하는 이유는 이렇습니다.
이와 같은 공덕을 보여줘야 중생들이 믿음을 더 낼 수 있기 때문에
이렇습니다.
여기는 7 단락으로 전체적으로 나눠져 있는데
제 첫 번째 天王이 帝釋天이 청설하는 부분에 대해서부터 시작하겠습니다.
一,帝釋天王의 請法
爾時에 天帝釋이 白法慧菩薩言하사대 佛子야 菩薩의 初發菩提之心하야 所得功德은 其量이 幾何니잇고
제 17 권
1. 제석천왕이 대하여 묻다
그때 제석천왕이 법혜보살에게 여쭈었다. "불자여, 보살이 처음으로 보리심을 내면 그 공덕이 얼마나 되나이까."
一,帝釋天王의 請法
爾時에 天帝釋이 白法慧菩薩言하사대 佛子야 菩薩의 初發菩提之心하야 所得功德은 其量이 幾何니잇고
1. 제석천왕이 대하여 묻다
그때 제석천왕이 법혜보살에게 여쭈었습니다. "불자여, 보살이 처음으로 보리심을 낸다면 그 공덕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제석천이 묻는 것은 여기 위치가 어딥니까?
제석궁 묘승전에 있기 때문에 당연히 누가 묻습니까?
제석천이 묻습니다. 그죠?
이해 가세요?
제석천이 묻는 거를
'왜 뜬금없이 제석천이 물었을까?' 이러면
아~! 여기는 당연히 제석천 묘승전에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왜 물었습니까?
속성 정각한다는 말을 듣고 의심이 생깁니다.
앞 부분에 우리가 범행품 마지막에 뭐가 있었습니까?
초발심시에 즉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
그러니까 좀 점잖게 묻는 거죠.
'에이~ 그런 게 없어요.'
하지만 이렇게 슬쩍 묻는 것은 알고 싶기도 하지만
조금 의심스러워서 이렇게 묻습니다.
또 하필 누구에게 묻습니까?
법혜보살에게 묻습니다.
법혜보살에게 물은 것은 법혜보살은 당연히
1회는 보현보살
2회는 문수보살
3회는 법혜보살
4회는 공덕림보살
5회는 금강당보살
6회는 금강장보살
이와 같이 이 설법 회주가 되죠. 그죠?
제 3회차 회주에게 법주한테 법을 묻는 것이 당연합니다.
초심 이후에 우리가 덕을 어떻게 갖춰가지고
지혜의 경계를 꿰뚫어볼 수 있느냐?
이런 뜻으로 하기 때문에
법혜, 모든 법에 대해서 어떻습니까?
지혜롭게 판단할 수 있는 법혜보살에게 묻습니다.
법혜보살은 법에 대해서 여러가지 지혜를 가지고 있으니까
아주 무애변재 이제 자재하는 것이죠.
그 위에 초발, 초발심이 좀 늘이니까 거기 뭐라고 나왔습니까?
초발보리심, 그죠?
이 보리심이라고 하는 것은
육도 만행의 육바라밀의 주체입니다. 주체
아~주 주가 되는 것이
보리심이 있음으로 해가지고
자리이타행이 있음으로 해가지고
보리심이라고 하는 것은
최고의 근본 마음을 얻고자
거기에 대해서 얻고자 하는 마음을 이렇게 냈기 때문에
그것이 이제 모든 육바라밀을 작동시킬 수 있는 근원이 근간이 되죠.
그래서 이제 보리심을 지금 얘기하고 있습니다.
二,法慧菩薩의 說法
(1) 難說難解
法慧菩薩이 言하사대 此義甚深하야 難說이며 難知며 難分別이며 難信解며 難證이며 難行이며 難通達이며 難思惟며 難度量이며 難趣入이어니와 雖然이나 我當承佛威神之力하야 而爲汝說호리라
2. 법혜(法慧)보살의 설법
(1) 이치가 깊어서 이해하기 어려움을 말하다
법혜보살이 말하였다. "이 이치는 깊고 깊어서, 말하기 어렵고 알기 어렵고 분별하기 어렵고 믿고 이해하기 어렵고 증득하기 어렵고 행하기 어렵고 통달하기 어렵고 생각하기 어렵고 헤아리기 어렵고 들어가기 어려우니라. 그러나 내가 마땅히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자와 그대에게 말하리라."
二, 法慧菩薩의 說法이라
여기서부터는 이 설법은 정~말로 너무 깊어서
이 발심의 공덕은 너무 깊어서 설명하기 어렵다고 하는 부분을
이제 찬탄하는 게 있습니다.
이래 찬탄해야 누가 믿고 따를까요?
'화엄경이 굉~장히 좋다!'고 막 찬탄해야 우리가 따라 가잖아요?
오늘이 이제 저...날입니다.
이화에 월백하는 날이 며칠이죠?
3월 보름입니다.
오늘밤입니다.
오늘밤에 이제 배꽃 위에 보름달이 쏟아집니다!
하~~얗~게
그런데 배꽃에 달이 쏟아지든지 말든지... ㅎㅎ
그렇게 한 시절 바쁜 시절을 이제 살아가면 인생에 별로 의미가 없죠.
오늘이 바로 3월 보름이고
그 유명한 李花에 月白하고 銀限이 三鏡인제
一志春心을 子規야 알랴마는
그 다음 뭐죠?
다정도 병인양하여 잠 못들어하노라.
오늘밤에 잠 주무시면 눈썹 셉니다. ㅎㅎ
배꽃처럼 하얗~게 셉니다.
소쩍새가 요즘 잘~ 울잖아요?
밤 되면 그죠?
시내는 잘 모르겠지만 산에는 소쩍새 판입니다.
소쩍새가 요즘 이제
소쩍새를 촉나라 왕자가 죽어서 귀신이 됐다 그래가지고 뭐라 합니까?
귀촉도라 하기도 하고 또 접동새라 하기도 하고 자규라 하기도 하고
子規야 알랴마는 一志春心이라 하는 것
또 뭐라 하죠?
不如歸, 돌아간만 같지 못하다고 아무리...
또 뭐라 하죠?
농부의 입장에는 솥 적다고 그죠?
솥 적다 솥 적다 이러면 ㅎㅎ
솥 적다 하면 그 해 풍년 든다 하대요.
솥 크다 이래버리면 쌀이 좀 작고 솥이 너무 커가지고 ㅎㅎ
먹을 게 없어진다 그러고...
이름이 여러가지가 있죠.
하여튼 소쩍새가 이제 짹~잭~거리고 우는 이런 시절에
우리가 이제 봇물 터지듯이
이제 꽃을 만지면 요즘 향기가 진짜 묻어나요.
실제상황으로
꽃 옆에만 가 있어도 향기가 옷에 막 배일 정도로
그만큼 향기가 진동을 하고
잎사귀를 만지면
왜 잎사귀든지 버들피리든지 꺾으면 지금 어떻습니까?
물이 투두둑 떨어지고 잎사귀 만져도 물이 돋아나고
꽃을 만져도 향기가 막~ 돋아나거든요.
그런데 여기 초발심 하면서 우리가 착각은 하면 안됩니다.
믿음이 도의 근원이고 공덕의 어머니이기는 하지만
사과꽃 먹고 난 뒤에 사과 먹었다 하면 안되거든.
믿음 그것 하나 가지고 결과 다 증득했다고 이러면
초발심시변정각은 맞기는 하지만
그게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근원과 근본은 되기는 하지만
그것이 자체가 결과는 여전히 아니죠?
가야될 길이 있습니다.
벌 한 마리 앵~ 하고 요즘 막 꽃 찾아 날아다니는데
그 벌 한 마리 잡아먹고는 꿀 다 먹었다 이러면 안되죠. ㅎㅎ
그러니까 믿음 하고 인과 법칙을
잘~ 이제 우리가 보면서 공부해야 될 것 같아요.
자! 법은 진짜 힘든다 이거죠.
초발심했는 그 공덕은 알기가 힘든다.
(1) 이치가 깊어서 이해하기 어려움을 말하다
(1)
難說難解
法慧菩薩이 言하사대 此義甚深하야 難說이며 難知며 難分別이며 難信解며 難證이며 難行이며 難通達이며 難思惟며 難度量난탁량이며 難趣入이어니와
2. 법혜(法慧)보살의 설법
(1) 이치가 깊어서 이해하기 어려움을 말하다
법혜보살이 말씀하셨다. "이 이치는 깊고 깊어서,
아~주 깊다고 하는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해버리듯이
바닷물 표면부터 바닷물 바닥까지 꿰뚫어버리듯이
코끼리가 저 바다를 건너갈 때는 헤엄 쳐서 건너가나요?
뭐 어디 나뭇잎 타고 건너가나요?
어떻게 건너갑니까?
금강경 해설 보면
코끼리가 저 바다를 건너갈 때
바다까지 저벅저벅 밟고 건너갑니다.
그것이 이제 바다가 아무리 깊다고 하더라도
보현행원으로써 건너간다는 이런 뜻인데
인생이 아무리 파란만장하더라도
우리는 끝까지 그 이치를 바다까지 사무쳐서 밟고 간다,
하는 이런 뜻이 되겠죠.
깊고 깊다고 하는 것은
참 부처님의 그런 덕망이 자비로움이 대자대비가 한량없이 깊고
우리가 이치를 이판 사판 이 화엄경 볼 때
이 이치가 그것까지 있으니까 깊고
사람이 거룩하려면 그 행동이 바라밀행이 얼마나 깊겠습니까?
깊고도 깊은 와중에 지극히 깊기 때문에
여기는 뭐라고 해놨습니까?
甚深, 此義가 甚深하다, 이 뜻이 깊고도 깊어서
도저히 그릇에 담길 수 있는 물건이 아니기 때문에
넓고도 넓고 깊고도 깊다.
원효스님께서는 기신론 같은 데 뭐라 해놨습니까?
玄之又玄之로다, 참 심오하고도 심오하다.
그렇게 이제 말씀하셨죠.
말하기 어렵고
어떻게 이걸 말로 다 할 수 있겠냐!
그 다음에
그것도 기신론 얘기 빌리면
離言說相이니 離心緣相이니 그렇게 하잖아요?
생각할 수도 말 할 수도 없고
또 알기도 어렵고
참 어디 모양이라도 있으면 파악하기가 쉬울텐데
도대체 바람 모양이 없으니까 바람을 알기가 굉~장히 힘이 드는데
바람이 동쪽으로 가는지 서쪽으로 가는지 참 알기가 힘든데
나뭇가지가 이제 흔들리는 것 보면
'아!~ 동풍이 부는구나! 서풍이 부는구나!'
판단이 가잖아요? 이렇게
우리도 이제 이 마음이라든지 그 공덕이라든지
이런 이치는 알기는 힘든데
그 이치의 공덕이 바깥으로 드러나는 것 보면
그 사람이 과보 받는 것 보면 대충 알아지죠.
삿된 소견머리가,
인과를 부정하는 것이 업장 중에서 가장 두꺼운 업장입니다.
번뇌가 여러가지가 있는데
가벼운 번뇌도 있고 무거운 번뇌도 있는데
제일 두꺼운 번뇌가 삿된 소견머리라.
잘 알지도 모르면서
그러니까 어떤 종교는 예를 들자면
벌써 지동설 나올 때 그 종교의 의미는 다 끝나버렸습니다.
그러나 체재의 유지를 위해서 계~속 천동설 주장하다가
이제 살짝 바꿔서 지동설까지 하고 있는데
그렇게 바꾼다 해도 그거는 의미는 별로 없어요.
지금 여러분들께서 보고 계시는 화엄경은
숱한 역대전등 제대조사가 증명을 했던 부분들입니다.
부처님 당시로부터~
그러니까 무시할 수 없는 것이죠.
하나의 글로 보기에는
그냥 그렇게 가볍게 간과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는 것이죠.
難分別이며, 분별하기 어렵고
분별하기 어렵다고 하는 거는
분별이라는 말을 다른 말로는 지혜라고 얘기합니다. 지혜
지혜는 이제 자기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 있는데
업장이 두꺼우면 우리가 자력이 안되고 어떻습니까?
다른 데서 힘을 빌려와야 되잖아요.
자력이라고 하는 거는
스스로 분별력이 있다고 하는 거는
스스로 지혜가 갖춰졌다고 하는 것이고
지혜가 갖춰진 사람들은 고요합니다.
고요할 뿐만 아니라 그 이전에 뭐가 갖춰지죠?
믿음을 통해서 분명히 계율이 정확하고 도덕적으로 안정감이 있죠.
분별하기 어렵다.
일반사람들은 삿된 소견머리로는 그게 될 수가 없다 이말이죠.
여기서는 자력으로써 능히 판단할 수 없기 때문에
이제 분별하기 어렵다.
또 믿고 이해하기도 어렵다.
소갈딱지가 그냥 아주 좁쌀만한 사람이
이 화엄경을 이해하기는 굉~장히 힘이 들죠.
초발심공덕도 굉장히 힘이 들고
이해하고 싶은 생각도 없지. 뭐 지는...
그런데 흔히 합니다.
의리로 싸나이가...그 무슨 사나이가 있노...ㅎㅎ
대장부라고 하는 거는
어쨌든지 그냥 일생을 이렇게 본심을 위해서 힘을 쏟다가
그냥 가는 게 대장부죠.
그런데 조그마~한 이득 때문에 눈 발갛~게 설치면서
무슨 그게 이해가 되고 믿음이 오겠어요?
절에 왔다고 해서 믿어지는 건 아니죠. 잘~
증득하기 어렵다.
그 다음에
행하기도 어렵고 통달하기는 더 어렵고 생각하기도 어렵고
통달하기 어렵다고 하는 거는
수행하는 우리가 흔히 지혜를 갖추면 뭐라 합니까?
聞思修라고 이렇게 하잖습니까? 그죠?
통달하기 어렵다는 말은
修慧가 닦아도 능히 제~대로 알기 어렵고
생각하기 어렵다는 말은
聞思修 할 때 뭐에 해당합니까?
사유, 그죠?
思慧가 아~무리 생각하고 헤아리고 헤아려봐도
사유로써는 미칠 길이 없으니까 생각하기 어렵고
헤아리기 어렵고 또 들어가기 어렵나니라.
아~무리 들어가기 어렵다고 하는 것은
이제 여기서는 듣고 믿어보고 싶은데
도대체 믿을 수 있는 마음이 취입할 수 있는 상태가 안되는 거야.
도대체 믿고 싶은데 뭘 믿어야 될 지
부처님을 믿어야 될 지 법을 믿어야 될 지 스님을 믿어야 될 지
도대체 취입할 수가 없어.
믿음에 들어갈 수가 없으니까 들어도 잘 귀에 들리지가 않아요.
잘~ 들리는 거는 하나 있지.
내가 욕 했다 하면 그거는 막 바르르~ 끓는다. ㅎㅎ
저~쪽에서 입만 뻥긋해도 들리지도 않는 소리도 금방 알아채고
보이지도 않는 눈빛도 저~ 밑에서
'니 나 꼴쳐봤지?'
이러고... ㅎㅎ
안들리는 건 그렇~ 게 잘 듣고 욕은 그렇게 잘 듣는데
도대체 눈앞에서 손에 쥐어주는데도 보지도 못하고
그걸 지진이라 합니다. 지진
이렇게 '이것이 컵이다.'고
이래 손가락으로 딱! 가리켜주는데도 모릅니다.
이렇게...이것보다 더 한 거라.
'여기 봐라.'
이래도... ㅎㅎ
눈 감고 있으니 안 보입니다. 안 보여.
그래도 말씀하시네. ㅎㅎ
제가 뭐라 하니까 우리 학인 스님이 한 명이 이랬습니다.
"스님 제가 할!! 할까요?"
화살도 없이...ㅎㅎ
그게 할이라고 하는 줄 아는가보다... ㅎㅎ
그 다음에 들어가겠습니다.
비유로써 교량하는 대목이다.
비유는 뭐 때문에 합니까?
설명해도 설명해도 알아들을 수가 없으니까
마지못해서 비유로써 비유로써 그렇게 합니다.
그러나 비유는 비유일 뿐이지 진실을 설명하지는 못하죠?
그러니까 비유만 듣고 그냥 이해를 할 수는 있겠지만
비유만 듣고 이제 그쳐버리면
저녁에 해가 저물면 산에서 풀 먹던 소가 넘어갑니다. ㅎㅎ
속아넘어갑니다. 속아넘어가 ㅎㅎㅎ
해가 넘어가면 소가 넘어갑니다. (속아넘어갑니다.)
자~ 비유로써 교량하는 대목이다.
그러니까 지혜의 힘이 매~우 깊어가지고
수승한 이해력으로 이해하면 좋겠지만 이해할 수 없으니까
지혜가 뛰어난 사람이 수승하게 이해해가지고 하나 하나 비유로써
이제 우리에게 남겨놓은 것이죠.
雖然이나 我當承佛威神之力하야 而爲汝說호리라
그러나 내가 마땅히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자와 그대에게 말할 것이다."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는다고 하는 것은
아주 최고의 지혜력으로써 내가 현재의 내 모든 것을 동원해서
그대를 이해시키겠다고 하는 자비심이 묻어나네요.
그 다음에 여기서 바로 초발심공덕에 관한 비유를
11가지로 낱낱이 펼쳐나갑니다.
제일 먼저 이익의 그런 즐거움을 중생에게 주는 그런 비유를 하죠.
樂具라고 하는 그 대목을 인용해서 하는 것이 있습니다.
(2) 衆生利益과 初發心功德
佛子야 假使有人이 以一切樂具로 供養東方阿僧祗世界所有衆生호대 經於一劫하고 然後에 敎令淨持五戒하며 南西北方과 四維上下도 亦復如是하면 佛子야 於汝意云何오 此人功德이 寧爲多不아 天帝가 言하사대 佛子야 此人功德은 唯佛能知요 其餘一切는 無能量者니이다 法慧菩薩이 言하사대 佛子야 此人功德을 比菩薩初發心功德컨댄 百分에 不及一이며 千分에 不及一이며 百千分에 不及一이며 如是億分과 百億分과 千億分과 百千億分과 那由他億分과 百那由他億分과 千那由他億分과 百千那由他億分과 數分과 歌羅分과 算分과 喩分과 優波尼沙陀分에 亦不及一이니라
(2) 초발심 공덕에 관한 비유
"불자여, 가령 어떤 사람이 모든 즐길 거리로써 동방의 아승지 세계에 있는 중생들에게 한 겁 동안 공양하고 그런 뒤에 가르쳐서 오계(五戒)를 깨끗이 갖게 하며, 남방. 서방. 북방과 네 간방(間方)과 상방(上方). 하방(下方)도 또 이와 같이 하였다 하면 불자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사람의 공덕이 많다고 하겠는가." 제석천왕이 말하였다. "불자여, 이 사람의 공덕은 오직 부처님만이 아실 것 이옵고, 다른 모든 사람은 측량할 이가 없겠나이다." 법혜보살이 말하였다. "불자여, 이 사람의 공덕을 보살이 처음 발심한 공덕에 견주어보면, 백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천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며 백 천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며 이렇게 억분의 일. 백 억분의 일. 천 억분. 백 천 억분. 나유타 억분. 백 나유타 억분. 천 나유타 억분. 백 천 나유타 억분. 수분(數分). 가라분. 산수분. 비유분. 우파니샤타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느니라."
(2) 衆生利益과 初發心功德
佛子야 假使有人이 以一切樂具로 供養東方阿僧祗世界所有衆生호대 經於一劫하고 然後에 敎令淨持五戒하며 南西北方과 四維上下도 亦復如是하면 佛子야 於汝意云何오 此人의 功德이 寧爲多不아
(2) 초발심 공덕에 관한 비유
"불자여, 가령 어떤 사람이 모든 즐길 거리로써
아~주 장난감 좋은 걸 가지고 금이야 옥이야 하는 것
텔레비젼 한 대 주든지 뭐 하든지 간에
이 동방의 아승지 세계에 있는 중생들에게 한 겁 동안 공양하고
그러니까 사람들 어떤 집에는 전자렌지도 갖다주고
어떤 집에는 테레비도 갖다주고, 어떤 집에는 뭡니까?
좋은 건 다 갖다주는 거라.
한 집 한 집 한 집 갖다주면
한 여남은 집만 갖다주고 뭐 어디 여기 대구 어딘교?
중구 삼덕동만 다 갖다주고 해도 굉장한데
온~ 대구 시내 집집이 이제 전부 다 테레비를 한 대씩 다 갖다줬다.
예를 들어서 그걸 1년 하는 게 아니고 1년 2년 3년 백 년 동안 했다,
그러면... 백 년이 아니고 한 천 년 했다,
한 겁 동안이니까 굉장하죠?
그래 하면 이렇게 이제 해설하면 좀 편하실 겁니다.
그런 뒤에 또 가르쳐가지고
처음에는 물건을 잘~ 보시하고 그 다음에 또
오계(五戒)를 깨끗이 갖도록 해가지고
불도 속으로 바깥의 속세법도 즐기도록 해주고
출가법도 즐기도록 해주니까
그걸 대구 시내만 하는 게 아니고 서울 부산 대전 찍고 ㅎㅎ
이래 좍~ 다 했다. 어떻게 되죠?
남방. 서방. 북방과 네 간방(間方)과 상방(上方). 하방(下方)도
온 전 세계에 다니면서 그 정도 했다.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사람의 공덕이 많다고 하느냐."
天帝가 言하사대 佛子야 此人功德은 唯佛能知요 其餘一切는 無能量者니이다
제석천이 말하였다. "불자여, 이 사람의 공덕은 오직 부처님만 아실 것이고, 다른 사람들은 측량할 수가 없을 것이다."
우리가 얼핏 이렇게 짐작해봐도 그렇겠죠?
이 정도면
法慧菩薩이 言하사대 佛子야 此人功德을 比菩薩初發心功德인댄 百分에 不及一이며 千分에 不及一이며 百千分에 不及一이며 如是億分과 百億分과 千億分과 百千億分과 那由他億分과 百那由他億分과 千那由他億分과 百千那由他億分과 數分과 歌羅分과 算分과 喩分과 優波尼沙陀分에 亦不及一이니라
법혜보살이 말씀하셨다. "불자여, 이 공양 많이 한 사람의 공덕을 초발심공덕에 견주어보면, 백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천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백 천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이렇게 억분의 일. 백 억분의 일. 천 억분의 일. 백 천 억분의 일. 나유타 억분의 일. 백 나유타 억분의 일.
일자는 없지만 일자를 넣겠습니다.
천 나유타 억분의 일. 백 천 나유타 억분의 일. 수분(數分)의 일. 가라분의 일. 산수분의 일. 비유분의 일. 우파니샤타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느니라."
이래서 우리 초발심 자경문 배우다 보면 뭐가 나옵니까?
三日修心은 千載寶요 百年貪物은 一朝塵이라.
여기 가라분이라고 하는 것도
이것 터럭 하나를 이 머리털 하나를 쪼개가지고
백분의 일로 이렇게 쪼개놓으면 그것도... 요즘은 그 뭐라 하죠?
나노라 하나요? 그렇죠?
나노분의 일도 없을 것이요,
요새 만들었으면 그래 나올 거요. 경전이 ㅎㅎ
우파니사타라고 하는 것도 아~주 굉장히 작은,
눈에도 보이지도 않는
왜 허공 속에 있는 먼지를 능엄경에서 뭐라 합니까?
隣虛塵이라 하잖아요? 그죠?
차라리 공중 같다고 하는 것 그 정도의
차라리 비교할 수도 없다고 하는 것이죠.
유위법으로써는 무위법의 불사를 비교할 수 없다.
유위법 불사는 간단하잖아요.
집 짓는 게 유위법 불사입니다. 일단은
탑 세우고 집 짓고 탑사 경영하는 게 집 짓는 불사입니다.
우리는 이제 절 좀 큰 것 지어놓으면 굉장하다~ 하잖아요?
도도 그만 하면 좋기는 좋지만
도 닦는 것이 이제 우리한테는 더 큰 불사죠.
무위법의 불사를 지금 얘기하고 있네요.
그 다음에
(3)二乘法과 初發心功德
佛子야 且置此喩하고 假使有人이 以一切樂具로 供養十方十阿僧祗世界所有衆生호대 經於百劫하고 然後에 敎令修十善道하며 如是供養을 經於千劫하고 敎住四禪하며 經於百千劫하고 敎住四無量心하며 經於億劫하고 敎住四無色定하며 經於百億劫하고 敎住須陀洹果하며 經於千億劫하고 敎住斯陀含果하며 經於百千億劫하고 敎住阿那含果하며 經於那由他億劫하고 敎住阿羅漢果하며 經於百千那由他億劫하고 敎住辟支佛道하면 佛子야 於意云何오 是人功德이 寧爲多不아 天帝가 言하사대 佛子야 此人功德은 唯佛能知니이다 法慧菩薩이 言하사대 佛子야 此人功德을 比菩薩初發心功德컨댄 百分에 不及一이며 千分에 不及一이며 百千分에 不及一이며 乃至優波尼沙陀分에 亦不及一이니라 何以故오 佛子야 一切諸佛이 初發心時에 不但爲以一切樂具로 供養十方十阿僧祗世界所有衆生을 經於百劫과 乃至百千那由他億劫故로 發菩提心이요 不但爲敎爾所衆生하야 令修五戒十善業道하며 敎住四禪四無量心四無色定하며 敎得須陀洹果와 斯陀含果와 阿那含果와 阿羅漢果와 辟支佛道故로 發菩提心이라 爲令如來種性不斷故며 爲充徧一切世界故며 爲度脫一切世界衆生故며 爲悉知一切世界成壞故며 爲悉知一切世界中衆生垢淨故며 爲悉知一切世界自性淸淨故며 爲悉知一切衆生의 心樂煩惱習氣故며 爲悉知一切衆生의 死此生彼故며 爲悉知一切衆生의 諸根方便故며 爲悉知一切衆生心行故며 爲悉知一切衆生三世智故며 爲悉知一切佛境界平等故로 發於無上菩提之心이니라
(3) 이승법(二乘法)으로 가르치는 비유
"불자여, 이 비유는 그만두고, 가령 어떤 사람이 온갖 즐길 거리로써 시방의 열 아승지 세계에 있는 중생들에게 백 겁 동안 공양하고, 그런 뒤에 가르쳐서 십선도(十善道)를 닦게 하고, 이렇게 천 겁 동안 공양한 뒤에 4선에 머물게 하고, 백 천겁을 지낸 뒤에 사무량심(四無量心)에 머물게 하고, 억 겁을 지낸 뒤에 사무색정(四無色定)에 머물게 하고
백억 겁을 지낸 뒤에 수다원과에 머물게 하고, 천억 겁을 지낸 뒤에 사다함과에 머물게 하고, 백 천억 겁을 지낸 뒤에 아나함과에 머물게 하고, 나유타 억겁을 지낸 뒤에 아라한과에 머물게 하고, 백 천 나유타 억겁을 지낸 뒤에 가르쳐서 벽지불도에 머물게 하였다면 불자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사람의 공덕이 많다고 하겠는가." 제석천왕이 말하였다. "불자여, 이 사람의 공덕은 오직 부처님만이 알겠나이다." 법혜보살이 말하였다. "불자여, 이 사람의 공덕은 보살이 처음 발심한 공덕에 비교하면 백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천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백 천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내지 우파니샤타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불자여, 모든 부처님께서 처음 발심할 때에, 다만 온갖 즐길 거리로써 시방의 열 아승지 세계에 있는 중생들에게 공양하기를, 백 겁 동안이나 내지 백 천 나유타 억겁 동안을 지내기 위하여 보리심을 낸 것이 아니며, 다만 그렇게 많은 중생들을 가르쳐서 오계(五戒)와 십선업도(十善業道)를 닦게 하거나, 사선정(四禪定). 사무량심(四無量心). 사무색정(四無色定)에 머물게 하거나, 수다원과. 사다함과. 아나함과. 아라한과. 벽지불도를 얻게 하기 위하여 보리심을 낸 것이 아니고, 여래의 종성(種性)이 끊어지지 않게 하기 위한 연고며 일체 세계에 두루 가득하게 하기 위한 연고며 일체 세계의 중생을 제도하여 해탈케 하기 위한 연고며 일체 세계의 이루고 무너짐을 알기 위한 연고며 일체 세계에 있는 중생의 때 묻고 깨끗함을 알기 위한 연고며 일체 세계의 성품이 청정함을 알기 위한 연고며 일체중생의 욕락과 번뇌와 습기를 알기 위한 연고며 다 일체중생의 여기서 죽어서 저기서 태어남을 앍기 위한 연고며 일체중생의 근성(根性)과 방편을 알기 위한 연고며 일체중생의 마음과 행(行)을 알기 위한 연고며 일체중생의 삼세의 지혜를 알기 위한 연고며 일체 부처님의 경계가 평등함을 알기 위한 연고로 위없는 보리심을 내었느니라.
(3) 이승법(二乘法)으로 가르치는 비유라
(3)二乘法과 初發心功德
佛子야 且置此喩하고 假使有人이 以一切樂具로 供養十方十阿僧祗世界所有衆生호대 經於百劫하고 然後에 敎令修十善道하며 如是供養을 經於千劫하고 敎住四禪하며 經於百千劫하고 敎住四無量心하며 經於億劫하고 敎住四無色定하며 經於百億劫하고 敎住須陀洹果하며 經於千億劫하고 敎住斯陀含果하며 經於百千億劫하고 敎住阿那含果하며 經於那由他億劫하고 敎住阿羅漢果하며 經於百千那由他億劫하고 敎住辟支佛道하면 佛子야 於意云何오 是人功德이 寧爲多不아
(3) 이승법(二乘法)으로 가르치는 비유
"불자여, 앞에 그러한 비유는 좀 그만 두고라도, 가령 어떤 사람이 온갖 樂具, 장난감 거리로써 시방의
아까는 몇 세계였죠?
아까는 아승지 아니에요. 그죠?
자~ 이제 비밀을 또 한 번 밝힙시다.
여기서는 어느 정도입니까?
열 배로 이제 불어났습니다.
십 아승지 세계에 있는 중생들에게
얼마동안?
백 겁 동안 공양하고,
또 그러면서 점차점차 불어납니다.
그런 뒤에 또 가르쳐서 십선도(十善道)를 닦게 하고,
이렇게 또 얼마 동안?
천 겁 동안 공양한 뒤에 4선에 머물게 하고, 또 백 천겁을 지낸 뒤에
또 어떻습니까?
사무량심(四無量心)에 머물게 하고, 억 겁을 지낸 뒤에
점점 올라가죠?
사무색정(四無色定)에 머물게 하고 또 백억 겁을 지낸 뒤에 수다원과에 머물게 하고, 천억 겁을 지낸 뒤에 사다함과에 머물게 하고, 백 천억 겁을 지낸 뒤에 아나함과에 머물게 하고, 나유타 억겁을 지낸 뒤에 아라한과에 머물게 하고, 백 천 나유타 억겁을 지낸 뒤에 가르쳐서 벽지불도에 머물게 하였다면
여기서 점점 이렇게 수승하게 많아지잖아요. 그죠?
이렇게 하는 게 법이 뒤로 이제 자꾸 자꾸 올라가 증득하는 거죠.
불자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사람의 공덕이 많다고 하겠는가."
天帝가 言하사대 佛子야 此人功德은 唯佛能知니이다
제석천왕이 말하였다. "불자여, 이 사람의 공덕은 오직 부처님만이 알 것입니다."
그 다음 이제 법혜보살이 어느 정도인지 이제 설명하는 대목이 나오네요.
法慧菩薩이 言하사대 佛子야 此人功德을 比菩薩初發心功德컨댄 百分에 不及一이며 千分에 不及一이며 百千分에 不及一이며 乃至優波尼沙陀分에 亦不及一이니라
법혜보살이 말씀하셨다. "불자여, 이 사람의 공덕은 보살이 처음 발심한 공덕에 비교할 것 같으면 백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천분의 일에도 백 천분의 일에도 내지는 우파니샤타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한다.
何以故오 佛子야 一切諸佛이 初發心時에 不但爲以一切樂具로 供養十方十阿僧祗世界所有衆生을 經於百劫과 乃至百千那由他億劫故로 發菩提心이요 不但爲敎爾所衆生하야 令修五戒十善業道하며 敎住四禪四無量心四無色定하며 敎得須陀洹果와 斯陀含果와 阿那含果와 阿羅漢果와 辟支佛道故로 發菩提心이니라
무슨 까닭이냐. 불자여, 모든 부처님께서는 처음 발심하실 때에, 초발심시에
다만 온갖 즐길 거리로
不但, 해놨잖아요. 그죠?
不但은 우리가 비단 ~~뿐만 아니라 하잖아요. 그죠?
똑같은 말씀입니다.
非但 非特 非獨 非唯
非唯 이것 뿐만 아니라, 아닐 非자, 오직 唯자, 있죠?
다 똑같은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이게 문장에 나오면
뒤에는 이렇게 또 다시 저~ 뒤에
~~뿐만 아니라~ 이렇게 이제 말이 떨어지겠죠.
온갖 즐길 거리로써 시방의 열 아승지 세계에 있는 중생들에게 공양하기를, 백 겁 동안이나 내지 백 천 나유타 억겁 동안을 지내기 위하여 발보리심을 낸 것이 아니며, 또한 不但, 다만 그렇게 많은 중생들을 가르쳐서 오계(五戒)와 십선업도(十善業道)를 닦게 하거나, 사선정(四禪定). 사무량심(四無量心). 사무색정(四無色定)에 머물게 하거나, 수다원과. 사다함과. 아나함과. 아라한과. 벽지불도를 얻게 하기 위하여 보리심을 낸 것도 아니고
일체중생이 어떻습니까?
다 성불하도록 하는 거죠.
爲充徧一切世界故며 爲度脫一切世界衆生故며 爲悉知一切世界成壞故며 爲悉知一切世界中衆生垢淨故며 爲悉知一切世界自性淸淨故며 爲悉知一切衆生의 心樂煩惱習氣故며 爲悉知一切衆生 死此生彼故며 爲悉知一切衆生 諸根方便故며 爲悉知一切衆生心行故며 爲悉知一切衆生三世智故며 爲悉知一切佛境界平等故로 發於無上菩提之心이니라
여래의 종성(種性)이 끊어지지 않게 하기 위한 연고며
조그만 果는 須陀洹 斯陀含果 정도는 아니다 이거죠. 그죠?
일체 세계에 두루 가득하게 하기 위한 연고며 일체 세계의 중생을 제도하여 해탈케 하기 위한 연고며 일체 세계의 이루고 무너짐을 알기 위한 연고며 일체 세계에 있는 중생의 때 묻고 깨끗함을 알기 위한 연고며
그런 것 알 필요 없고 나는 돈이 최고야.
뭐 주로 이런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ㅎㅎ
일체 세계의 성품이 청정함을 알기 위한 연고며 일체중생의 욕락과 번뇌와 습기를 알기 위한 연고며 다 일체중생의 여기서 죽어서 저기서 태어남을 다 알기 위한 연고며 일체중생의 근성(根性)과 방편을 알기 위한 연고며 일체중생의 심행(行)을 알기 위한 연고며 일체중생의 삼세의 지혜를 알기 위한 연고며 일체 부처님의 경계가 평등함을 알기 위한 연고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하였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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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初發心時 卽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지선화 님!! 수고 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_()()()_
_()()()_
대장부라고 하는 거는
어쨌든지 그냥 일생을 이렇게 본심을 위해서 힘을 쏟다가
그냥 가는 게 대장부죠.
고맙습니다 나무 대방광불화엄경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