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
"7개의 구능으로 펼쳐있는 포르투칼의 수도"
인구: 약 56만
대서양으로 흘러드는 데죠강 Rio Tejo 에 면한 시가지가 리스본
(포르투칼어로 리스보아로 발음). 인구는 약 56만, 유럽대륙 초서단의 수도로서 그리스 신화의 영웅 오디세우스에 의하여 세워졌다고 하는 유럽에서도 유수의 아름다움을 과시하는 리스본에는 어울리는 전설을 가지고 있어 이시가지는 세계사의 무대의 등장한 것이 예상 밖에 빨랐다.
기원전 1200년경 펜키아인이 좋은 항구로서 주목한 이래 유럽 남단에 위치한 시가지는 그리스인, 로마인, 이슬람교도와 그리스도교도는 이베리아 땅을 두고 치열한 전쟁을 개시하여 그 틈에 포르투칼은 스페인의 가스띠야 왕국에서 독립을 얻었다. 1249년 그리스도교도가 승리하여 국토회복(레곤기스타)를 완료하고 알폰소 3세는 리스본 천도를 하여 이리스본은 명실상부한 포르투칼의 중심지가 되고 뿌루고뉴 왕조로부터 요안 1세의 아웨스 왕조 에로의 변천 과정에서 수도로서의 지위를 확고히 했다.
15세기부터의 대항해시대에는 견직 향료 은 등 거액의 부를 손에 넣어 포르투칼 역사상 최고의 영화를 누렸다. 그러나 이러한 번영도 잠시, 16세기 후반부터 점점 국력이 쇠퇴하여 결국은 인접국가인 동시에 숙적인 스페인에 병합되고 말았다. 1640년 "레스타우르도레스"라고 부르는 용사들이 리스본에서 봉기, 굴욕의 지배를 타파하여 재 독립을 달성하였다. 하지만 1755년 이번은 포르투칼 사상 유수의 비극적인 사건 리스본 대지진 때문에 수도는 거의 괴멸, 대 화재가 발생하여 시가지는 6일간 계속해서 연소되었다. 여기에 등장한 인물이 본발후작. 파리를 모방하여 지금까지 남아있는 아름다운 시가지를 조성한 인물이다.
1807년의 나폴레옹 침공, 왕실은 식민지 브라질로 피난, 19세기 중엽에 브라질 독립, 1908년 카루로서 1세 황태자의 암살 등 일연의 사건 후 공화제가 탄생하였어도 정치 정세는 좀처럼 안정되지 않았다. 군부독제의 혼란기를 거쳐 살라자르의 우익 독재정권이 1968년까지 지속, 경찰국가와 더불어 시민들은 상호 감시를 받았고 밀고와 고문에 떨면서 공포분위기만 쌓여갔다. 그리하여 1974년 쿠테타가 일어났다.
안토니오 스피노라를 중심으로 군지반이 자유화를 외치며 무혈 혁명을 성공시켜 이 시기의 심볼이 붉은 카네이션 이였다. 다시 자유를 얻은 시민들은 이 사건을 "리스본의 봄"이라 불렀다. 그러나 남유럽의 이 소국은 재차 혼란기에 접어들어 정권은 전복을 수차례 1976년에 비로소 민주체제가 확립되었다.
유럽의 도시 중에서도 비교적 치안이 양호하여 안정된 리스본이 되었고 격통의 시대를 생각나게 하는 것은 벽에 그려진 낙서 정도였다. 그것마저도 지금의 평화로운 시가지에는 어울리지 않다. 그러나 혁명이 일어난 것은 분명히 30년 전의 일이다. 이곳에는 유럽 다른 나라처럼, 누구에게라도 알려져 있는 척도가 되는 역사적인 기념물이나 관광 표적물이 거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혼자만의 소박한 여행이 될 듯하다. 안내 책자와 그림엽서와 같은 것을 구입하여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이동하지 말고 어디로 갈까 꼼꼼히 점검한 후 혼자서 걷는 것에는 리스본이라는 시가지가 안성맞춤이다. 지하철의 정체된 공기를 느끼면서 계단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면서 어디에서 내리면 좋을까 불안한 생각을 하면서 지하철에 흔들리면서, 오리지날 시내를 둘러보십시오. 고색창연한 리스본에서 생애 잊을 수 없는 당신만의 멋진 회상이 되시도록 바라겠습니다.
Boa sorte(Good Luck)
작성: 파비우(FAB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