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동의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참가작 고골 작 강량원 연출의 <비밀경찰(The Inspector)>을 보고
공연명 검찰관
공연단체 극단 동
작 고골
연출 강량원
공연기간 10월11~13일
공연장소 아르코예술극장대극장
관람일시 10월13일 20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참가작 극단 동의 고골 작 강량원 연출의 <비밀경찰>을 관람했다.
필자가 금년에 관람한 극단 동의 작품은, 지난 4월 대학로 예술극장에서 공연한 서울연극제참가작 <샘플 054씨 외 3인>과 9월 초에 서계동 국립극장 소극장 판에서 공연한 <상주국수집>으로, 두 작품 다 강량원 작/연출로 창의력이 돋보인 우수한 공연이었다. 극단 동의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참가작 니콜라이 바실리예비치 고골(Nikolai Vasilievich Gogol, 러시아어: Николай Васильевич Гоголь)[1809~1852]이 1836년에 발표한 <검찰관 (Revizor)>은 관료사회의 부패를 폭로한 작품이다. 그 작품발표이후 고골은 유럽으로 피신해 그로부터 10여 년간을 로마에서 보냈고, 그 기간 동안에 대작 <죽은 혼 (Mërtvye dushi)>의 제1부[1841]를 집필하는 한편, <검찰관>의 비판과 비난에 대한 반론(反論)인 희곡 <연극의 종연(終演))>[1842], 중편 <로마>[1842]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소재로 한 최고의 걸작 <외투>[1842]를 완성했다.
<니콜라이 고골>
필자는 청년시절 니콜라이 고골의 <검찰관>을 공연한 적이 있어, 금번 극단 동의 <비밀경찰>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관극을 했다, 한 가지 지적하자면, 행정직이나 정치적인 사찰은 검찰이 한다. 범죄수사나 범인체포는 경찰소관이다. 조선왕조에서도 암행어사는 문관이 담당했다. 문과에 장원급제한 인물이 암행어사로 파견되어 지방관의 비리나 부패를 적발했다. 무과에 장원을 하면 의금부나 포도청에 들어가 범죄수사나 범인체포에 관계를 했을 뿐이다. 대륙법을 받아들인 국가거나, 영미법을 계승한 국가라도 검찰은 문관이고 경찰은 무관이다. 고골의 작품을 원용해 재창작을 했어도, 이 작품의 감사역은 검찰소관이지, 경찰의 직무범위와는 상관이 없다. 그렇기에 <비밀경찰>이 아니라 원작의 제목대로 <검찰관>이라야 바른 제목임을 필자의 노파심으로 전한다.
연극은 도입에 한 인물이 번쩍 들어 올린 선풍기의 바람을 정면으로 받으며, 읍장과 수행원이 기다란 천을 폭풍에 나부끼듯 흔들어 대며, 발군의 연기로 모진 바람에 날려가는 모습으로의 표현은 기상천외의 명장면으로, 향후 이 연극의 방향이 심상치 않음을 제시하는 듯하다. 장치 역시 24개의 합판을 엇갈리게 부착해 바탕을 백색으로 칠하고 상단만 짙은 하늘색이라, 언뜻 달동네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이어서 등장하는 관료들은, 분장에서 차림새까지 기괴하고, 마치 일제치하 만주에서 활약하던 마적 떼를 연상시키는 모습이라, 가슴을 졸이며 관극을 하게 된다.
<비밀경찰>이 고을에 나타났다는 소리에 관료들이 경악하며 당황해 하는 모습에서, 185년 전 고골 생존당시의 러시아의 모습이 현재 우리나라의 현실과 비교가 되어, 필자는 착잡한 심정이 되기도 했다. 이 연극의 독특한 점은 <비밀경찰>이 직접 등장하지 않고, 관료들이 허상을 향해 향응을 베풀고, 노래도 부른다. 이러한 관료들의 몰골과는 반대로 읍장의 부인과 딸은 우아하고 단정한 모습이다.
부인의 일거수일투족은 차려입은 의상과 함께 고귀한 신분임이 객석에서 감지되고, 첨언하면 작고한 어느 영부인을 연상시키기까지 한다. 딸은 동화속의 공주님 같은 차림새와 천진난만하고 귀여운데다가 예쁘기 그지없고, 은하수 쟁반에 초저녁별이 흐르는 듯한 음성으로 부르는 노래는 관객을 몽환의 세계로 이끌어 간다. 여하튼 <비밀경찰>이 나타났다는 소문에 당황해 하고 좌왕우왕(右往左往)하는 관료들의 행태는 군무와 합창으로 표현이 되기도 하고, 특히 버스에 동승해 차창 밖으로 내어다 보이는 표정은, 우리나라 청문회(聽聞會) 장면에서 볼 수 있는 질문자나 응답자의 모습과 비교되어 고소(苦笑)를 금할 수가 없다.
장면전환에 따라 허공에 배치된 붉은 등은, 북두칠성(北斗七星) 주위의 별자리로 보이기도 해, 평화스런 분위기를 자아내어, 관료들의 아비규환(阿鼻叫喚)과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그러한 속에서도 관료 각자의 독특한 개성과 성격창출이 탁월한 연기력의 바탕위에 명확히 들어나 감탄을 금할 수가 없고, 특히 향응 장면에서 천정에 가지런히 매어단 은쟁반과 관료들이 춤추듯 노래하듯 땀 흘리며 이동시키는 음식 운반 대는 최고의 향응으로 접대하려는 고을관료들의 의사가 들어있어, 하나의 허상인 <비밀경찰>이 아니라, 객석에 자리한 관객 모두에게 제공되는 진정어린 향응으로 받아들여져, 관객의 우레와 같은 갈채를 받는 명장면이 되었다.
대단원에서 그들이 동분서주(東奔西走)하며 환심을 사려던 비밀경찰은 허상임이 들어나고 곧이어 실제 비밀경찰이 들이닥침으로 해서 대경실색(大驚失色)하는 읍장과 관료들의 모습에서 연극은 끝이 난다.
읍장역의 김석주의 출중한 기량과 연기력은 살만했고, 부인역의 유은숙은 <상주국수집>에서의 탁월한 기량을 <비밀경찰>에서도 과시했다. 딸 역의 조은데는 진정 좋은데에 등장시킬만한 좋은 인상과 좋은 체격과 좋은 음성으로 호연을 보였다. 윤민웅과 조재걸의 관료 역 역시 발군의 기량을 여과 없이 연기력으로 들어냈고, 김문희는 <상주국수집>에서 노모의 개성창출과는 180도 다르게, 날렵하고 발랄한 동작과 산뜻하고 명쾌한 대사로 연기력을 유감없이 들어낸, 극단 동의 보배스러운 여배우다. 김미림은 <샘플 054씨 외 3인>에서 도입과 대단원에서의 독특한 연기로 관객의 뇌리에 각인되었고, 금번 <비밀경찰>에서도 그녀의 미모와는 정반대의 흉물스럽게 보이기까지 한 기괴한 분장으로의 열연은 그녀의 연기력을 가늠케 했다. 김정아야 말로 우리나라에 이러한 볼륨과 지성을 갖춘 아름다운 연기자가 있다는 것에 한국연극의 발전적 장래를 예측케 한다. <상주 국수집>과 <샘플 054씨 외 3인>에서 보여준 무대전체를 포용하는 듯싶은 연기력은 명배우 황정순 선생을 연상시키고, 그에 대비가 되기도 한다. 김진복과 강세웅, 그리고 박한영은 이 연극의 대들보다. 이 세 연기자의 각자 성격창출은 독특할 뿐 아니라 탁월하여, 이전 어느 작품에서도 그 유형을 찾아볼 수 없는 창의적 개성으로 관객의 가슴에 깊은 인상을 심어놓았다. 손인호와 이재호 역시 뒤지지 않는 연기력과 열정으로 <비밀경찰>을 원작에 대비되는 걸작연극으로 창출시키는데 이바지한 공신이다.
오케스트라 박스에서 열정과 재능을 객석에 쏟아낸 최덕렬 창작국악그룹 불세출의 연주가 탁월했고, 전우석, 박계전, 김용하, 박제현, 최덕렬, 김진욱이 열과 성을 다해 연주에 임했다. 무대미술의 홍시야는 칭찬받아 마땅하다, 그의 장치는 창조적이고 예술성이 높아, 잊을 수 없는 명장면으로 관객의 가슴과 뇌리에 각인시키는 마술사 같은 역할의 무대미술계의 보배로운 존재다. 홍시야의 다음 작품에도 기대를 한다. 김대희의 조명디자인 역시 뛰어났고, 권경은의 인쇄물 디자인은 팸플릿을 완벽한 예술작품으로 느끼도록 제작했다. 이남희의 무대감독, 서혜숙의 기획과 아르코예술극장 측의 베테란 무대감독 신동환, 조명감독 강지혜, 음향감독 이한규의 노련미가 어우러져, 극단 동의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참가작 고골 원작의 <검찰관>이, 비범한 연출가 강량원의 장인정신으로 새롭고 독특하게 재창작이 되어, <비밀경찰>을 세계 어느 곳에 내놓아도, 그 창의력을 인정받을 우수한 공연으로 만들어 냈다. 극단 동의 다음 작품에도 기대를 한다.
한국희곡창작워크숍 대표 박정기(朴精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