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손자병법’과 ‘월급루팡’
○예나 지금이나 유행가와 드라마는 사랑타령 일색입니다. 그래서 사랑타령을 하지 않는 유행가와 드라마가 눈에 들어옵니다. 1987. 11. 18. KBS2 TV에서 방영된 ‘TV 손자병법’이라는 드라마는 특이하게도 샐러리맨의 애환을 담아 당시 샐러리맨의 사랑을 많이 받은 드라마입니다. 물론 오현경, 장용, 서인석 등 연기가 출중한 배우들의 연기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당시에는 드라마 속의 주인공들도 나름 애환이 있었겠지만, 당시와 지금은 샐러리맨이 근무하는 회사의 근무환경이 달라도 너무나 다릅니다. 당시에는 엑셀이 보편화되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상당수의 기업에서 사무직 근로자의 수요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사무직, 게다가 정규직 근로자의 수요 자체가 대폭 감소했습니다. 그리고 당시에도 야근을 밥 먹듯이 한다고 했지만, 지금보다 훨씬 널널한 근무환경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당시를 기준으로도 근로시간은 다음 대법원 판결(대법원 1992. 11. 24. 선고 92누9766 판결)과 같이 실근로시간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드라마 속의 주인공들은 근무시간에 사적인 전화도 하고, 구내매점에 가서 잡담도 합니다. 이러한 것은 모두 근로시간에서 배제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이러한 사적 행동이 거리낌이 없이 허용되었습니다. 지금은 대다수의 기업이 파티션을 설치하여 동료근로자와의 무의미한 사적인 접촉을 차단하고 근무에 집중하도록 합니다.
○‘TV 손자병법’상의 주요 배역들은 모두 사무직 근로자들입니다. 그런데 사무직 근로자들의 구조적 특징은 재량적 성격의 근무를 한다는 것입니다. 가령, 특정 사안에 대하여 기안을 올린다거나 향후 투자계획을 세운다거나 하는 등입니다. 이러한 업무는 질적으로 판단을 하여야 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런데 근로기준법은 오로지 양적인 측면만 규정하고 있습니다. 재택근무와 같이 회사에서 완수하지 못한 작업은 집에서도 할 수 있는데, 당시에는 사무실에 앉아만 있으면 일단 근무를 하는 것으로 간주를 했습니다. 재택근무가 좋은 이유 중의 하나는 공동작업을 빌미로 남의 작업에 속칭 ‘숟가락 얹기’가 통용이 어렵다는 점입니다.
○요즘에는 단어 자체가 거의 사어가 되다시피 했는데, 당시에 유행했던 말이 ‘처세술’입니다. 근무실적으로 평가를 받는 것이 아니라 상사에게 환심을 사서 승진과 보직에서 유리한 자리를 차지하려고 사회 곳곳에서 ‘처세술’이 광풍을 일으켰습니다. 근로자들의 정당한 인사평가가 있으면 족한 것이지 ‘처세술’과 같은 인간공학으로 출세를 도모한다는 것은 기업의 발전을 위하여서라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스티브 잡스같은 유형의 근로자라면 절대로 경영진으로 승진이 어려웠을 것입니다.
○‘TV 손자병법’은 당시에 나름 잘 나가는 회사를 모델로 그린 드라마입니다. 아날로그 감성이 묻어나는 드라마로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물론 실제로도 당시의 회사는 그런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보면, 근무시간에 사적인 행동을 너무 많이 하고 낮에는 설렁설렁 하다가 무의미한 야근을 하는 등 근무의 비효율성이 눈에 들어옵니다. 근로자들에게는 정감어린 근무환경일 수 있지만, 사용자에게는 ‘월급루팡’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요즘 사무직 근로자들은 ‘TV 손자병법’의 시대처럼 널널한 근무환경에서 근무를 할 수가 없습니다.*
<근로기준법> 제50조(근로시간) ① 1주 간의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② 1일의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8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③ 제1항 및 제2항에 따라 근로시간을 산정하는 경우 작업을 위하여 근로자가 사용자의 지휘ㆍ감독 아래에 있는 대기시간 등은 근로시간으로 본다.
구 근로기준법 제42조 제1항(현 제50조 제1항), 부칙 제3조 제1항은 1일 또는 1주일을 단위로 하여 과중한 근무시간을 제한하고자 하는 규정이므로 위 법조문의 근로시간은 실근로시간을 의미한다. (대법원 1992. 11. 24. 선고 92누9766 판결)
시업시간 이전에 조기출근토록 하여 시업에 지장이 없도록 하는 것을 근로시간으로 인정하여 임금이 지급되어야 할 것인가 여부는 조기출근을 하지 않을 경우 임금을 감액하거나 복무 위반으로 제재를 가하는 권리의무관계라면 근로시간에 해당될 것이나 그렇지 않다면 근로시간에 해당되지 않음(근기01254-13305, 1988. 8. 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