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암이라는 선고를 받았을 때 암 선고 받은 사람은 나을 길이 없지 않느냐며 전화가 많이 왔었습니다.no way out side라고 그래도 할 수 없으니 희망을 가지고 가보자고 했습니다. 옛말에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이 있는데 정성을 지극히 들이면 하늘이 감동한다는 말도 있어서 약초, 침, 뜸이 효과가 있다는 과학적으로 검증도 된 것이고 그러니까 거기 가서 반신반의해서도 안 되고 한의사가 시키는 대로 주는 대로 내 살길은 이것 밖에 없다 라는 의지로 따랐습니다. 그걸 계속 먹고 해야 되지 의심하고 이럴꺼 같으면 아예 안 가는 것이 났다. 지금까지도 다른 약을 먹지 않습니다.
제가 암인 것을 확인한 것은 2000년도 정기 건강종합검사를 한 결과로 알았습니다.평소에 건강했기에 이틀 있으면 검사결과가 나오는데 그걸 보지 않고 남편과 외국 여행을 다녀 온 후 병원에 결과를 보러 가서 알았습니다. 평소 남편이 술도 많이 마시고 해서 남편의 검사결과가 안 좋게 나오면 어쩌나 걱정 했는데 의뢰로 의사선생님이 나에게 한 번 더 검진을 받는 것이 좋겠다고 했습니다. 딸은 눈이 퉁퉁부을 정도로 울며 “엄마, 엄마, 검사 다시 한 번 해보자”해서 다시 검사를 했습니다. 그때부터 병원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서울로 가려고 했는데 아시는 분이 00병원 00교수가 간의 권위 있는 전문가라고 하여 그곳에서 수술을 했습니다. 1달 정도 병원에 입원을 했고, 수술이 잘 됐다 하여 퇴원을 했습니다. 그런데 한 3개월이 되었을 때 갑자기 상태가 안 좋아지기 시작하여 다시 병원에 재입원을 했습니다. 병원에서 1달 정도 지내다가 의사선생님이 도저히 힘들겠다고 거기다가 폐까지 전이되어 한 3개월 정도 생존할 수 있다는 선고를 받고 퇴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가족들만 알고 저는 잘 몰랐습니다. 가족들은 내가 안 보이는 곳에서 많이 울었다고 했습니다.
아들이 민속한의원을 찾아내어 마지막으로 이곳 가자고 했습니다. 아들은 민속한의원의 위치까지 다 알아놓고 1주일이나 1달정도 있을 것을 계획으로 가자고 했습니다. 차에서 내리자 마자 공기가 너무좋아 내가 살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무신론자인데 아침마다 산책을 하면서 기도도하고 산에 올라가서 산신님에게 절도하고 이렇게 좋은 고을에서 약차 물먹고 살 수 있도록 도와달라며 애원했습니다. 입원당시 10m도 못걸었던 내가 한의원 밑에 있는 마을까지 내려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치료약을 먹는 것을 비롯하여 마늘과 약차를 먹는 것도 억지로 먹었습니다. 원장님이 “환자는 바보가 되어야 한다.”라는 말이 나를 말하는 것 같아서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병에 대해서도 모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원장님이 마늘, 약차 물, 약도 많이 먹어야 된다고 해서 하루도 안 빠지고 물에 희석해서라도 먹고, 약차 물은 자다가 일어나서도 마시고 한방약도 끝까지 먹었습니다. 아들들이 마늘을 먹어야 산다며 산더미처럼 쌓아서 먹기도 했습니다. 못 먹으면 김치에 싸서라도 다 먹었습니다. 단전호흡도 하루도 안 빠지고 다녔습니다. 스케줄대로 하니 점점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자유분방한 남편도 그곳에서는 잘 있었습니다. 3개월 입원 후에 잠시 부산으로 돌아왔는데 코가 맵고 목이 따가웠습니다. 그만큼 한의원의 공기가 좋다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환자가 바보가 되어야 된다고 생각한 것은 자신의 병을 너무 잘 알아서 죽을 수도 있다라는 것입니다 한의원에 입원하면서 조금 낫을 만하면 다른 병원으로 옮기는 사람을 자주 봤습니다. 조급해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많이 안타까웠습니다. 한의원치료를 형광등에 호롱불 켜놓은 것같이 미개한 방법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저는 한의원치료는 본초의학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입원하여 6개월정도 민속한의원에서 치료를 하고 병원에 가서 다시 검진을 받았습니다. 병원교수는 “이것은 어떻게 나았다고 이야기 할 수도 없고, 낫게 된 원인을 모르겠다. 기적을 초래했다, 형태만 있고 없어졌다”라고 했습니다. 지금도 그 교수님께 인사하러 다닙니다. 다른 레지던트 젊을 의사가 있었는데 안 되는 것은 한의원이라도 가셔야 되지 않겠냐고 말했습니다. 다 시 한 번 그 여교수를 찾아갔는데 그때 한의원에 잘 가셨던 것 같다라고 말했습니다. 현대의학으로써는 치료 할 수 없는 병인데 나았다고 했습니다.
한의원에서 열심히 했듯이 집에 와서도 지속적으로 약찻 물 먹고, 마늘도 먹고, 뜸을 떳습니다. 뜸은 한 3년정도 했습니다. 지금도 쑥뜸 자리가 남아있어서 목욕을 하러 대중탕에 가면 사람들이 왜그러냐고 물어보는데 쑥뜸해서 그렇다고 쑥뜸이 너무 좋다고 이야기 해줍니다. 집에서 뿐만 아니라 외국에 놀러갔을 때도 뜸을 뜰 정도였습니다. 내가 편도가 약한데 죽염 물로 씻어내었더니 많이 좋아졌습니다. 한번은 아는 한의사와 지인들과 함께 민속한의원에 갔는데 뜸 하는 것을 보고 그 지인들도 지금 뜸을 뜨고 있습니다. 남편은 민속한의원을 제 2의 고향이라고 할 정도로 애정이 남다릅니다. 남편의 정성으로 내가 나았다고 생각하고 고맙다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남편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예전에는 평소에 애먹이고 혼자 안 돌아다닌 곳이 없고, 정치한다고 돈도 많이 잃었고, 해외여행도 혼자 다니고 했는데 아내가 아픈 것은 하늘이 맛 좀보라고 벌 준거라고” 여담으로 이야기합니다.
암을 진단받고 벌써 9년이 지났습니다. 지금은 다른 치료는 하지 않고 예방차원에서 약차와마늘 죽염만 꾸준히 먹고 하고 있습니다. 밖에 나가면 얼굴이 너무 좋다고 건강한 사람보다 더 건강한 것 같다고 주위사람들이 이야기 할 정도로 건강해 졌습니다. 해외여행을 갔을 때 장시간 비행기를 타도 끄떡없을 정도입니다. 남편은 내가 아플 때 나와 함께 가겠다며(죽겠다며)몸을 혹사하고 술을 많이 마시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지금은 남편의 건강이 저보다 더 안좋아 진 것 같다고 합니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암은 불치병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특히 한의원치료를 한다고 하면놀라는 사람들에게 약을 못 찾아서 그렇지 희망을 가지고 치료하면 다 나을 수 있다고 말하고싶습니다. 예전에 제가 치료할 때는 재정적인 부담 때문에 약값을 걱정하는 사람도 많았는데 지금은 제가 치료할 때보다 혜택도 좋아졌고 주 치료를 한의원에 믿고 열심히 시키는 대로 치료하면 반드시 낫는다고 생각 합니다. 한의원 풀밭에 앉아서 노래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면 그때만큼은 아픈 것을 잊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그때 같이 입원했던 환자가족들하고 지금도 교류를 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왔던 ooo라는 그 친구는 집에 왔었고, 우리도 그 집에 가기도 했습니다. 익산, 대구에 있는 사람들에게 전화가 오면 “나 죽었는 확인 전화했나봐” 라며 웃으며 전화통화를 합니다.
병마의 시달리는 환자들을 위해서라도 이 이야기가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고통 받는 환자들에게 제가 의술이 있어서 줄 것도 아니고 경험담이나마 말로 전해서 신세진 민속한의원에 보답이 되고환자들에게는 많은 위로가 되었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민속한의원 원장님들에게 정말 고맙고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