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롤로그
뉴질랜드 택시운전사로 살아왔던 존 민재 강! 누군가에 떠밀려 바다에 실족한다. 이능을 갖고 회귀해 운수업계에 돌풍 파란을 일으키며 평정해 나간다.
1화 악연(惡緣)
“우~와! 멋지다. 내려다보이는 저 풍경! 뉴질랜드의 압권절경 이네.”
뉴질랜드 서북단 해변 절벽, 베델스 비치로 남태평양 태즈메이니아가 시원스레 펼쳐졌다. 탐험가 에드먼드 힐러리경이 즐겨 찾았다는 힐러리 트레일.
토요일 오전, 여름 산행에 나선 민재가 등산 배낭을 멘 채 발 딛고 선 자리에서 감탄사를 연발했다. 힐러리 트레일이 민재의 자연쉼터였다.
“카오리 소나무 숲이 반지 제왕 세상 같아. 태곳적 운치가 확 느껴지는데.”
세상이 온통 민재에게 안기는듯했다. 태즈메이니아 태평양과 민재 몸이 하나 되었다.
“평소 택시 운전으로 하체 힘이 약했는데. 주말에라도 이렇게 한 번씩 등산을 하니 좀 나아졌어. 어제 금요일 밤도 정신없이 바빠 노곤했는데.”
민재가 혼잣말을 했다. 배낭을 나무 아래 내려놓고 기지개를 켰다. 고단한 발이 쥐가 난 듯 저려왔다. 두 팔을 높이 들었다.
민재가 절벽위에서 양손을 들고 돌았다. 세 바퀴째였다. 누군가 옆에 다가왔다. 동료 등산객이려니 반가운 마음에 가볍게 그에게 손을 들었다.
순간, 그가 인상을 쓰며 민재 손을 옆으로 확 잡아당겼다. 무방비 상태에 민재 왼쪽 발이 팍 꺾였다. 그대로 무게중심을 잃고 넘어졌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로, 바다 절벽 쪽으로 한 바퀴 구르다가 그만 천혜 낭떠러지로 나가떨어졌다. 전혀 예상 못한 일이었다.
"으~악!"
민재가 외마디 고함을 지르며 엉겁결에 절벽을 날았다. 아래는 새파란 태즈메이니아 태평양 바닷물이었다. 30~40m를 수직 낙하했다.
민재 손을 잡아 뿌리치며 넘어뜨린 그가 민재한테 독한 눈빛을 쏘았다.
“지난 번 나를 공개 망신시킨 녀석. 사과도 없이 어디다 손을 내밀어? 누구 본 사람 없지?”
막상 일이 크게 벌어지자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림자만 남겨두고 황급히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풍~덩!
트래킹 나선 다른 사람들이 바다 절벽으로 떨어지는 민재를 목도했다. 소스라치게 놀라며 응급 구조 처 111에 긴급히 신고 전화를 돌렸다.
마침 베델스 비치 해안을 순찰하던 해상 안전 보트가 전속력으로 민재가 떨어진 곳으로 질주했다. 인근 지역에서 해상순찰 비상 헬기도 떴다.
안전보트 해상 요원이 바다 물에 뛰어들었다. 건져 올린 민재를 해변 가로 옮겼다. 비상 인공호흡 후, 흉부 압박 지압에 심혈을 기울였다.
"꾸~역~ 프~억~”
민재가 바닷물을 토해냈다. 평생 쌓인 스트레스 기운도 쏟아냈다. 말 못 하고 가슴에 삭여둔 이민 생활의 한도 녹아서 나왔다.
몇 차례 계속한 뒤 헬기에 실었다.
"투카~ 투크!"
헬기 프로펠러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해졌다. 헬기가 곧바로 태즈메이니아 바다 위를 날았다. 오클랜드 웨스트 쪽이었다.
오클랜드 센트럴 중심부에 위치한 국립 병원 옥상으로 향했다. 오클랜드 병원 응급실이 부산해졌다.
간호사와 응급구조대원의 소리를 가뭇하게 들으며 민재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
“강민재! 넌 그렇게 밖에 못 사나? 해병대 깡다구 어디로 실종됐어! 뉴질랜드에서 이민생활까지 하면서. 참을 인자 세 개만 품고 살았나?
남에게 끌려 다니며 살지 말고 주도적으로 살아봐. 능력은 쓰라고 신이 준거야. 너를 바다로 빠뜨린 그 악연(惡緣)부류도 과감히 척결하고.“
“그 악연(惡緣). 그 사람이 누구였지요? 가물거리기만 한 데요.”
“강민재! 제대로 살려면. 참을 인자 하나는 빼고 독(毒)할 인자를 품고 살아. 이번 생엔 그 독한 면이 절대 필요해!”
해병대 고참이었던 강성윤 병장이 눈을 부릅뜨며 이병 강민재에게 소리쳤다.
“깡으로 악명 높던 강병장이 웬 훈시를 저렇게 살벌하게 하나? 동향이고 동성동본이라고 평소 잘 챙겨주던 강병장이 웬 일이지?”
그 사람? 누구였더라. 민재가 언뜻 기억을 되살리려는 찰나였다.
“찌르릉!”
요란하게 울리는 자명종 소리에 어렴풋이 민재가 눈을 떴다. 평소 택시운전 하던 대로 눈을 부비며 기지개를 켰다.
"워~흐~ 무슨 잠을 이리도 오래 잤나? 웬 꿈에 깡다구 짱이던 강병장이 다 나오고? 깜깜하네. 밤인가? 새벽인가?“
민재가 벽을 더듬어 스위치를 켰다. 일어나 책상 앞으로 갔다. 책상 위에 펼쳐진 다이어리에 택시 예약 잡(job)이 적혀있었다.
‘12월 3일. 월. 새벽 05:00. 대니 픽업. 써니눅에서 국제선 공항까지.’
탁상시계가 째깍거렸다. 작은 바늘은 4를 지나고, 큰 바늘은 30을 넘어갔다. 민재가 벌떡 일어났다.
화장실에 우선 들렀다. 일을 보고 손을 씻었다. 거울을 본 순간, 민재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거의 뒤로 자빠질 뻔했다.
“뭐야? 저 거울 속 얼굴은! 새파란 청년이잖아. 도대체 어찌 된 거지?”
20대 중반의 젊은 청년이 서 있었다. 민재 머리에 지난 순간 일들이 스쳐지나갔다. 머리를 두 손으로 감쌌다.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에드먼드 힐러리 트레일, 베델스비치에서 내가 손을 내밀었는데 그가 확 뿌리쳤고. 그대로 난 고꾸라진 채 바닷물에 떨어졌는데.”
민재 기억이 가물거렸다.
“해상 순회 요원 구조로 해안가에 옮겨졌고. 다음은 헬기에 실려 오클랜드 병원에 내려졌고~ 그 다음은?“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방으로 들어와 책상위 다이어리를 다시 펼쳐봤다.
‘2001년 12월 3일. 월. 새벽 05:00. 대니 픽업. 써니눅에서 국제선 공항까지.’
“뭐야? 2001년이면 20년 전이잖아. 지금이 2021년인데. 말로만 듣던 회귀라도 일어난 건가?“
민재 머리가 하얘졌다. 고개를 흔들었다. 그대로 망부석이 되었다. 그 때였다. 전화기 소리가 귀를 찌를 듯이 울렸다.
“따르릉!”
“네. 오클랜드 택시, 존 민재 강입니다.”
“국제선 비행기 타려고 택시 부른 단골 대니입니다. 지금 비가 세차게 내리는데요. 서둘러 와 주세요. 귀중한 비즈니스건으로 출장가니까요.”
“네. 대니 손님. 걱정 마세요. 지금 출발합니다.”
민재가 서둘러 옷을 걸쳐 입고 밖으로 나갔다. 밖에 주차해둔 차가 보였다.
‘오클랜드 택시. 153 번. 흰색 포드 팔콘 4,000CC 대형 택시.’
비가 세차게 사선으로 내렸다. 민재가 습관대로 차에 바로 올라탔다. 즉시 시동을 걸었다.
대니 집 써니눅 근처를 생각으로 더듬었다. 오랜 동안 오클랜드 택시를 운전한 관성이 그대로 작동됐다.
“서둘러야겠어. 10분밖에 안 남았는데. 잘못하면 국제선 손님 늦겠어.”
갑자기 차 뒤에서 큰 트럭이 육중한 클락션을 울렸다. 택시를 비켜주지 않으면 못 지나갈 좁은 도로였다.
민재가 재빨리 기어를 파킹에서 드라이브로 바꾸고 움직였다. 내친김에 손님 집 방향으로 향했다. 그 집에 도착하자 손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불안한 듯 손목시계를 들여다보기에 곧바로 공항으로 향했다. 비바람 치는 오클랜드 하버브리지를 지났다. 공항 방향 차들이 거북이 걸음이었다.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차량들은 정체되고. 손님은 자주 시계를 들여다보고.”
국제선 가는 손님에게 비상이었다. 민재가 아는 샛길로 빠졌다. 그 선택이 빛을 발했다. 가까스로 시간 맞춰 손님을 공항에 내려놓고 되돌아 나왔다.
“휴~우!”
민재가 안도의 숨을 쉬었다. 그때 바로 택시 콜(call)이 울렸다. 공항 근처 맹가레에서 오클랜드 쉐라톤 호텔로 가는 잡이었다.
“따닥이네~ 근데 뭐야? 숨 돌릴 여유도 없이 장거리 잡이 계속 이어지다니?”
손님을 공항에 내려놓자마자 바로 연결된 장거리 콜이었다. 택시를 부른 손님 집으로 서둘러 가서 우선 태웠다.
“맹가레 브리지에도 바닷바람이 거세졌네. 차체가 휘청거리잖아.”
민재가 핸들을 꼭 움켜쥐고 오클랜드 센트럴 쪽으로 조심스레 달렸다.
오로지 운전에만 집중했다. 행동이 먼저, 생각은 나중에나 할 일이었다. 월요일 출근시간이 전쟁터였다. 오클랜드 쉐라톤 호텔에 손님을 내려놓았다.
“이제 좀 쉬었다가 갈까?”
화장실에 들렀다 가려는 순간, 백인 손님이 뒷 도어를 열고 탔다.
"파넬 플리즈"
파넬로 향했다. 계속 이어지는 손님으로 쉴 새가 없이 움직였다. 파넬 로즈가든 근처에서 손님이 내렸다.
“이젠 좀 쉬어야겠어. 로즈 가든 화장실에 들러 일도 보고 목도 좀 축이고.”
민재가 화장실에서 거울 속 청년얼굴을 보고 또 뒷걸음 쳤다. 상황에 몰려 운전에만 몰입하다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과거와 현재가 롤러코스트를 탔다. 비틀거렸다. 가까스로 밖으로 나왔다.
로즈 가든 내 한국전쟁 참전 용사 비 앞에 멈췄다. 한국 가평에서 공수한 화강암 비석에 손을 얹었다. 차가운 기운이 가슴을 짓눌렀다.
민재가 비석에서 손을 떼었다. 상념에 잠겼다. 거대한 화강암 비문에 눈이 꽂혔다. 가슴속에 묵직한 기운이 빨려 들어왔다.
“이곳에서 새로운 삶을 각성해보다니? 참전 용사들은 한국을 위해 헌신했는데, 난 무슨 역할을 하라고 다시 태어났지?”
***
지난 생애가 파노라마처럼 흘러갔다. 어떻게 살아온 20년 뉴질랜드 이민 생활이었던가. 눈시울이 붉어졌다.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여의고 고학으로 고군분투 했고. 과감하게 뉴질랜드로 와서. 천신만고 끝에 영주권을 따고.”
혼자 중얼거렸다. 명치가 탁 막혀오는 듯 했다. 가슴을 어루만졌다.
“뉴질랜드 목조 전원주택 일을 했는데. 사고로 귀 청각이 손상당했고. 그래 시작한 게 운전이었고.
어렵사리 가정도 꾸렸고. 묵묵하게 택시와 버스 운전을 하며 생활 안정이 찾아올 무렵에.“
혼잣말에 익숙한 민재가 자신의 영어이름 존에게 계속 속을 털어놓았다.
“이젠 혼자잖아. 마흔일곱 살에서 스물일곱 살 나이로 다시 산다고? 그럼 이제부턴 어떻게 살아?”
주머니에서 손님이 팁으로 준 $5 뉴질랜드 지폐를 꺼내 들었다. 살아있는 분으로 지폐 초상에 실린 탐험가 에드먼드 힐러리경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현재는 2001년 12월. 그분과 동시대를 살고 있다는 게 꿈만 같네.”
민재 전생에서 그분이 운명하실 때, 택시를 운전하다 말고 파넬 성공회 성당 장례식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이번 생에서는 살아계신 그분을 내 택시 손님으로 꼭 모시고. 탐험 능력과 봉사 정신도 전수받아야지.”
민재가 과거 20년에 걸친 정보와 가진 능력치를 하나씩 헤아려봤다.
“187m 키. 75kg 몸무게. 해병대 깡과 끈기. 유창한 영어. 일본어. 중국어. 대학시절 신춘문예 당선한 필력. 전문 목수 실력. 부동산과 집을 보는 안목.”
또 있다. 그동안 체험과 능력을 되새기며 회귀 본능에 불을 붙였다.
“뉴질랜드 택시 운전에 터득한 택시 비즈니스. 뉴질랜드 시내 버스운전 하며 배운 버스 매니징 능력. 이번 생엔 운수업에 돌풍을 일으켜봐?
참전용사의 기운. 몸에 체득한 장미 향. 에드먼드 힐러리 경에게서 느껴지는 기운. 독할 인자를 품고 능력발휘 해서. 공헌하는 삶도 살고.“
민재가 카페에서 브런치를 들고서 나와 다시 로즈가든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유난히 짙은 장미꽃 앞에서 코 대고 장미향에 쑥 빠졌다. 장미꽃 세상으로 들어갔다. 향기가 온몸과 마음에 그대로 스며들었다.
민재 마음에 울리는 소리를 들으며 두 손을 불끈 쥐었다.
“악연(惡緣)을 지은 그 사람과 무리도 척결하고. 독(毒)할 인자를 품으라고! 평범에서 비범으로 출애굽할 세상이다.
뉴질랜드를 이제 내 편으로 만들고. 뉴질랜드 운수업계에 짱 기사 돌풍 파란을 일으키며 거침없이 나아가자!”
1화 끝 (5,355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