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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 2:1-7, 교회진단서 ① 에베소 교회, 23.11.5, 박홍섭 목사
“돈을 잃은 것은 조금 잃은 것이요, 명예를 잃은 것은 많이 잃은 것이요, 건강을 잃은 것은 전부를 잃은 것이다.” 어느 약국의 약 봉투에 적혀 있는 글입니다. 건강을 잃으면 생명을 잃는 위험한 지경까지 가기 때문에 이 문구처럼 누구나 건강의 소중함을 압니다. 건강을 잃었다는 말이 어떤 의미입니까? 신체의 정상적인 기능이 무너지고 상실되었을 건강을 잃었다고 합니다. 교회도 건강해야 합니다. 어떤 교회가 건강한 교회입니까? 하나님이 맡기신 교회 본래의 사명과 기능을 잘 수행하는 교회입니다. 어떤 교회가 건강하지 못한 교회입니까? 교회의 본래적 기능을 상실한 교회입니다.
계시록 21:1-22:5은 복되고 영광스러운 천상 교회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신부가 신랑을 위해서 단장한 것 같이 흠도 없고, 점도 없는 모습, 하나님의 임재가 막힘없이 충만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완전하게 반사하는 모습,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교회의 역할을 기쁨으로 완벽하게 기능하는 모습입니다. 천상 교회의 이 모습은 하나님께서 장차 이루실 교회의 복된 미래입니다. 반면에 계시록 2-3장은 지금 이 땅에서 그 영광을 소망하면서 전투하고 있는 지상교회의 모습입니다. 주님은 지금 터키의 서부 지방에 해당하는 소아시아에 있었던 일곱 교회를 당신의 불꽃 같은 눈으로 감찰하시고 그 진단 결과를 사도 요한을 통해서 보여주십니다. 이 진단에는 제대로 기능한다는 칭찬도 있고, 기능하지 못한다는 책망과 경고도 있고 처방에 해당하는 약속도 있습니다. 서머나 교회와 빌라델비아 교회는 책망이 없고 칭찬만 있습니다. 사데 교회와 라오디게아 교회는 칭찬은 없고 책망만 있습니다. 에베소 버가모 두아디라 교회는 칭찬도 있고 책망도 있습니다.
차례대로 일곱교회를 살피겠는데 오늘은 그 첫 번째로 에베소 교회를 보면서 우리의 모습을 점검하고 돌아보기를 원합니다. 당시 에베소는 육로와 해로의 교통요지였으며, 소아시아 지방의 가장 중심되는 도시였습니다. 상업이 발달했고 인구가 밀집되어 있었으며, 고대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인 아데미(다이아나) 신전이 있었고, 로마 제국의 황제숭배도 강요된 우상의 도시였습니다. 여기에 바울이 복음을 전합니다(행 18:16). 두란노 서원을 빌려 2년 동안 매일 복음의 진리를 전한 결과 아시아에 사는 자들이 다 주의 말씀을 듣게 되었고, 마술을 행하던 사람들이 어마어마한 양의 마술책을 가지고 와서 불사르는 회심의 일도 일어났습니다(행 19장). 하나님은 바울을 통해 이렇게 에베소에 교회를 세우셨고 바울은 거기서 3년을 목회했습니다. 바울 뒤에는 그의 영적 아들인 디모데가 목회했고, 나중에는 사도 요한까지 에베소 교회를 섬겼습니다.
이처럼 당시에 가장 신실하고 뛰어난 목회자들이 섬겼던 에베소 교회는 주님에게 어떤 진단을 받았을까요? 2-3을 보십시오. 먼저 주님은 그들의 행위와 수고와 인내를 칭찬하십니다.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안다”라는 말은 행위와 수고와 인내 세 가지 항목이 아니고 네 행위 곧 네 수고와 인내라는 뜻으로 행위 속에 수고와 인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기 수고는 그냥 대충 한 수고가 아니라 아주 격렬하게 힘을 소모하여 기진맥진하기까지 하는 노동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주의 이름을 위하여 격렬하게, 기진맥진할 정도로 수고하는 행위가 있는 교회였습니다. 그 수고를 인내하면서 했습니다. 이들은 참고 주의 이름을 위해 견디고 게으르지 않았습니다. 말만 하는 교회가 아니라 이런 행위가 있는 교회였습니다. 그저 하는 척하는 적당주의가 아니라 게으르지 않고 땀을 흘리는 수고를 지속적으로 참고 견디면서 행한 교회입니다.
특별히 이들의 수고와 인내는 악한 자들, 자칭 사도라고 하는 거짓 교사들, 특별히 ‘니골라당’이라고 불리는 이단과의 싸움에서 빛이 났습니다(6). 이들은 악한 자를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드러낸 교리적 분별력이 있고, 또 그 교리의 진리를 고수하기 위해 굉장히 애를 쓰는 교회였습니다(2). 정통 행위가 있고 정통교리가 있습니다. 이 정도면 괜찮은 교회 아닙니까?
그런데도 이 칭찬 뒤에 촛대를 옮기겠다는 무서운 책망이 나옵니다. 4-5이죠. 영어 성경은 책망할 것이 있다는 말을 거스릴 것이 있다고 번역했습니다. 보기 싫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처음 사랑을 버린 것을 회개하고 회복하지 않으면 이제는 너의 칭찬 거리인 참는 것도 보기 싫고, 견디는 것도 보기 싫고, 부지런한 것도 보기 싫고, 거짓 사도를 드러낸 것도 보기 싫고, 악한 자를 용납하지 않은 것도 다 보기 싫다고 하십니다. 회개해서 고치지 않으면 촛대를 옮기겠다고 하셨는데 촛대를 옮긴다는 말은 교회로서 기능을 끝내시겠다는 경고입니다. 비록 교회 간판을 계속 걸고 있고 교인들도 모이고 예배도 드리지만, 교회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교회에서 하는 모든 칭찬받을 만한 일들이 사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충격적인 말씀입니다.
에베소교회는 사랑이 있는 교회였습니다. 처음 사랑을 버렸다는 말은 처음에는 사랑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엡 1:15절을 보십시오. “이로 말미암아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이들에게는 믿음과 사랑이 있었습니다. 사도가 그 소식을 듣고 감사할 정도로 사랑과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40여 년이 지나 사도 요한이 밧모 섬에서 편지를 쓰고 있는 지금은 그 처음 사랑을 버렸습니다. 그 사랑에 근거한 처음 행위를 버렸습니다.
에베소교회가 놓친 처음 사랑과 처음 행위들이 무엇인지 본문은 침묵하고 있지만 창립 당시의 모습을 보면 짐작이 가능합니다. 행 19:8-10, 18-20을 보십시오. 바울은 에베소의 두란노 서원에서 2년간 성경을 강해했습니다. 날마다 했습니다. 어떤 사본은 매일 5시에서 11시까지, 지금 시간으로 11시에서 5시까지 점심시간을 빼도 매일 4시간 이상씩 말씀을 가르쳤다고 했습니다. 그 결과 아시아에 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 다 주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에베소교회의 창립 초기에는 매일 몇 시간씩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는 말씀에 대한 열정이 있었습니다. 20절에 보니까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었다고 했습니다. 말씀 때문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일들이 생겼고, 사람들은 주 예수의 이름을 높였습니다. 그리고 우상을 섬기고 잘못한 일들을 회개하면서 삶을 바꾸는 믿음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처럼 에베소교회의 초기에는 말씀에 대한 갈급함이 있었고 그 말씀을 먹은 사람들이 실제적이고 구체적으로 삶이 변하는 회개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더러운 책을 불태우고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약 40년이 지난 A.D 95년경 요한이 계시록을 쓸 당시에는 에베소교회가 이 처음 행위들을 버렸습니다. 처음에 주님의 사랑에 감격하여 말씀을 헐떡이면서 받아먹고 주님을 나의 전부로, 나의 생명으로, 나의 사랑으로, 나의 기쁨으로, 고백하면서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면서 삶의 변화를 동반했던 그 행위들이 없어졌습니다. 이들은 처음 복음을 받았을 때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선하심을 깨달았습니다. 감격했고 그 하나님의 사랑에 반응하여 그들도 주님을 사랑하며 주님을 섬기는 일에 자신을 드렸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 믿음과 사랑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종교적인 일과 형식적인 섬김만이 남아 있습니다. 말씀에 대한 사모함이 사라지고 설교는 지루하고, 예배는 시들한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당대의 가장 유명한 바울과 아볼로의 설교를 들었고, 디모데의 설교와 요한의 목양을 받았지만, 점점 말씀에 대한 식욕이 사라지고 신앙의 역동적인 변화가 사라진 이유가 무엇입니까? 처음 사랑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정통교리를 지키는 열심과 고난을 감내하는 지속적인 행위들은 여전히 있었지만, 하나님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습관적으로 행하는 타성이 되고 말았습니다. 수고가 있고, 행위가 있고, 교리가 있지만, 그 속에 변화가 없고, 좋은 일은 하는데 기쁨과 감사와 감격이 사라진 신앙이 되어버렸습니다. 다른 복음을 분별하고 거짓 사도를 몰아내면서 복음의 진리를 지켰는데 정작 그 복음의 진수인 사랑이 실종되었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무엇을 지킨 것입니까? 주님은 이들을 향하여 너희가 처음 사랑을 버렸다고 말씀합니다,
처음 사랑이 없어지자 어떻게 되었습니까? 자신의 영적 상태에 대해 애통함과 부족함이 없어졌고 자신이 변화되어야 한다는 생각도 없어졌습니다. 정통과 정행의 난로는 있지만 그 난로 속에 불타고 있어야 할 기쁨과 감사가 사라져버렸습니다. 자신들이 죄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눈물이 메마른 눈이 되어버렸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잘못을 찾아내는 데는 빠르지만,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고 돌아서는 일에는 너무나 더딘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한 40년 신앙생활을 하고 보니 처음의 감격과 기쁨과 겸손은 사라지고 자기는 믿음이 좋고, 진리와 교리를 바로 알고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헛된 자랑과 자기 의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향하여 너희가 어디서 떨어졌는지 깨닫고 처음 사랑을 회복하지 못하면 이제 너희들의 행위, 인내, 수고, 다 보기 싫다고 하십니다. 촛대를 옮겨버리겠다고 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교회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역사적 개혁신앙의 진리를 고수하고 지키고 가르치고 전수하는 일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해왔는지요?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다”는 주님의 책망 앞에 우리는 자유로울 수 있습니까? 우리는 처음 사랑을 버리지 않았습니까? 아니 처음 사랑이 있었습니까? 주님을 만났던 그 감격이 있었습니까? 여러분은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경험했던 그 순간이 있었습니까? 그 사랑에 반응하며, 그 사랑 때문에 기쁨으로 내 모든 것을 드리면서 주님을 섬겼던 그 순간이 있었습니까? 로마서 5:5의 말씀처럼,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여러분의 마음에 부은 바 된 적이 있습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이 좋으십니까? 그 좋은 하나님 때문에 힘에 지나도록 주님을 위해서 수고하며, 모든 고난과 어려움을 감당하고 인내하고 계십니까? 그렇지 않다면 어디서 처음 사랑과 행위를 잃어버렸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회복하라고 하십니다. 그런 적이 없다면 처음 사랑부터 가지게 해 달라고 기도하셔야 합니다.
주님은 세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생각하고, 회개하고, 처음 행위를 가지라. 5절을 보십시오.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라고 하십니다. 누구든지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귀 있는 자라면 회개의 영이 부어질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하지 말고 지금 즉시 생각하고 회개하여 사랑에 근거한 처음의 행위를 회복해야 합니다. 사랑 없는 나의 종교 생활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잘못된 것이며, 얼마나 하나님의 마음을 상하고 불쾌하게 했는지를 인정하고 고쳐달라 간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쁨 없는 의무를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으로 인한 기쁨으로 충만하게 채워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를 하늘의 기쁨과 거룩한 즐거움으로 채워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 즐거움 때문에 견딜 수 없도록, 하나님이 사랑스럽고 좋아서 견딜 수 없도록, 그래서 주님을 위해서 우리의 삶 전부를 다 드리고 싶어서 견딜 수 없도록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엉뚱한 즐거움에 사로잡혀서 세상의 성공과 명예와 쾌락과 언젠가 잿더미로 변할 것들을 기뻐하면서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주님을 향한 마음이 차갑게 식어버린 체 껍데기만 남은 종교인으로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주님은 묻고 계십니다. 언제부터 너희의 마음이 이렇게 냉냉해졌느냐? 언제부터 나의 은혜가 없어도 아무 문제 없는 삶이 되었느냐? 언제부터 기도를 잃었고 언제부터 나를 사랑한다는 고백을 잃어버렸는지 생각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회개하고 처음의 사랑과 처음의 행위로 돌아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에베소 교회를 향한 경고만은 아닙니다. 여기 등장하는 일곱 교회는 오고 오는 세대의 모든 교회를 대변하고 있기에 에베소 교회를 향한 책망은 우리를 향한 주님의 준엄한 책망이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은 우리가 처음 사랑을 가지고 신앙생활 하기를 원하십니다. 진리를 향한 우리의 싸움을 칭찬하시면서도 사랑이 없으면 다른 모든 수고가 다 허사가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속사람, 주님을 향한 우리의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를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른손에는 진리를, 왼손에는 사랑을 지닌 성도와 교회가 되라고 하십니다. 사랑이 빠지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교리적인 지식, 행위, 수고와 인내 그 모든 것이 주를 사랑하는 마음과 지체를 사랑하는 형제 사랑이 동기가 아니라면 그 교회는 제대로 기능이 발휘되는 건강한 교회가 아닙니다. 그러니 너희의 처음 사랑을 찾고 그 사랑으로 진리를 지키고 믿고 섬기며 행하는 이 일에 이기는 자들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이 약속을 붙들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나아가 사랑으로 이기는 교회와 성도가 되어 생명 나무 과실을 먹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