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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하나님 정말 있을까요 라는 제목으로 함께 생각해 보려 합니다.
신앙을 하시는 분들에게 물으면 분명이 계신다고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밖에 나가서 믿지 않는 자들에게 물으면 있다고 할까요? 없다고 할까요?
신앙을 하시는 분들도 좋은 것이 있다 하니까 하나님께서 계시든 아니계시든 상관없이 그냥 자리 지킴이로 신앙하시는 분들이 많다고 합니다.
오늘 여러분들은 어떠한지 오늘 함께 생각하면서 우리 모두 하나님을 만나시는 은혜가 함께하길 축복합니다.
욥 23:8-9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계시고 뒤로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편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수 없고 그가 오른 편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은 구약의 믿음의 조상 가운데 한 분인 욥의 기록입니다.
욥은 지금 하나님께서 계시다는 말을 합니까? 계신지 아니계신지 모르겠다는 말입니까?
우리도 살아가면서 이런 경우를 경험할 때가 있습니까?
그럼에도 욥과 같은 경우를 만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욥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욥기에서 소개하는 욥을 이런 사람이라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욥 1:1 “우스 땅에 욥이라 불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그에게 아들 일곱과 딸 셋이 태어나니라 그의 소유물은 양이 칠천 마리요 낙타가 삼천 마리요 소가 오백 겨리요 암나귀가 오백 마리이며 종도 많이 있었으니 이 사람은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훌륭한 자라”
가장 휼륭한 자라는 개정 성경의 번역을 개역성경은 가장 큰 자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온전하고 정직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난 자다.
이런 사람이 살다가 어떤 일을 경험하게 됩니까?
하루아침에 천재지변으로 인하여 재산이 다 날라가고 나머지 재산들은 약탈을 당하여 다 없이 함을 당합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읽은 것처럼 아들 일곱과 딸 삼명은 맏이 집에서 모여서 식사를 하다가 태풍이 와서 집이 무너져 열 남매가 다 죽었습니다.
이만하면 하나님께서 과연 계시는가 라는 의심이 나올 법 합니까?
거기다가 욥의 몸은 어떻게 됩니까?
성경의 표현대로 보겠습니다.
욥 2:7-8 “사탄이 이에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서 욥을 쳐서 그의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종기가 나게 한지라 욥이 재 가운데 앉아서 질그릇 조각을 가져다가 몸을 긁고 있더니”
이거까지는 믿음의 사람에게 견딜 만한 일들입니까?
여러분들은 모르지만 저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저는 아마도 견디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의 입에서 오늘 어떤 말이 나왔습니까?
시작 때 읽은 말씀이죠?
욥 23:8-9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계시고 뒤로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편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수 없고 그가 오른 편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않고 왼편으로 가도 볼 수 없고 오른 편으로 가도 볼 수가 없다....
하나님 있는 거 같다는 말입니까? 없는 거 같다는 말입니까?
우리도 그럴 때가 있습니까?
이런 책이 있다고 합니다. “신 없음의 과학”
리처드 도킨스라는 사람이 저자라고 표지에 나옵니다.
책 소개 글에 보면 “신에 얽메일 것인가? 과학으로 자유로울 것인가? 라는 부제가 적혀 있습니다.
책에 보면 2007년 9.30일 미국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 워싱턴에 4명의 기자가 모였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들의 모임이 무신론 혁명을 촉발한 또 하나의 역사가 되었다고 스스로들 주장하고 있습니다.
모인 사람들을 보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과학자이자 저술가로 알려진 책의 저자인 “리처드 도킨스”, 그리고 미국의 철학자로 알려져 있고 인지과학과 공학종교를 넘너드는 “대니얼 데닛” 그리고 신경 과학자이며 미국의 대표적인 논객이라는 “샘 해리스” 또한 세계적인 정치학자이자 저널 리스드 레닌 문학상을 수상한 “크리스토퍼 히천스” 이들이 모인 결론은 인본주의와 세속주의에 힘을 실어 주었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그들의 대담이 책으로 출간된 것입니다.
결론은 어떻게 났을까요?
저는 그 책을 읽어보지 않았지만 그 책의 결론은 신이 없다고도 하지 않았고, 있다고도 하지 않았고 그냥 종교의 틀에서 벗어 나자는 것이 그들의 결론이었다고 합니다.
세상에는 신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을까요?
없다고 믿고 사는 사람들이 많을까요?
신이 없다고 믿는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그러한 생각으로 산다고 생각하십니까?
저의 생각입니다만 신이 없는 것처럼 그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수년 전 살인죄로 검거 되어 조사를 받던 중 오래전에 연속 적으로 일어난 경기도 화성군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이 밝혀지게 되었음.
그의 범죄와 관련된 내용입니다.
이모라고 알려진 그는 수년 동안 이렇게 여러곳을 돌아 다니면서 14명을 죽여서 시체를 유기한 그런 사실을 털어 놓아 백성들을 충격의 도가니로 몰아넣었음.
그러면서 경찰은 엉뚱한 사람을 잡아서 20년 동안 옥살이를 시켰고요.
여러분들도 그러한 뉴스 보셨나요?
여러분들은 그런 뉴스 보시면서 하나님께서 계시다면 왜 저런 사람이 저렇게 사람을 죽이는 일들을 저렇게 묵인 하셨을까 하는 생각 해 보시지 않으셨습니까?
진짜로 귀신이 있다면 자기를 죽인 사람들을 가만히 두겠습니까?
장화 홍련이라는 고전을 들어 보셨습니까?
이야기 속에는 억울하게 죽은 사람의 귀신이 나타나서 복수를 하고 하는데 실제로는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지도 못하였고 듣지도 못하였습니다.
그런 것을 보니 귀신도 없고 신도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습니까?
수년 전 세월 호 사건이 일어났을 때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계시다면 어떻게 그런 일들이 일어나도록 두셨는가 하는 말들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왔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런 예기를 많이 들어셨나요?
어린 생명들이 바다 속으로 빠져 들어갈 때 하나님께서 진짜 계시다면 어떻게 그런 일들을 그냥 방관하고 계셨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 외에도 우리 주변에는 하나님이 없는 듯한 그런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볼 때도 그런 생각들지 않습니까?
어떻게 하나님을 무시하는 세력이 어렵고 힘든 나라를 그렇게 압박하고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가는 일들을 하도록 하실까 하는 생각들지 않습니까?
오죽이면 믿음의 거장이라고 하였던 욥의 입에서도 이런 말이 나왔을까요?
욥 23:8,9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계시고 뒤로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편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 편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세상에는 하나님께서 또는 신의 존재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일들도 많이 일어나지만 하나님께서 계신 듯한 그런 일들도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저는 그런 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발자욱이라고 이해를 하고 그렇게 말씀을 잘 드립니다.
오래전에 한 집사님 옆집에서 작은 가정 요양원을 하고 있었는데 주변에 여러분들이 그곳에서 세상에서 고칠 수가 없다고 하는 병을 가진 사람들이 그 요양원에서 치료 되는 것을 보고 너무 신기 해 했다고 합니다.
근데 그분의 시동생이 있었는데 일찍 부모님께서 돌아가시어서 형님집에서 학교를 다녀서 형님과 형수님을 부모님 따르듯이 그렇게 따랐는데 한번은 등교길에 깜빡하고 내려야 할 곳을 내리지 않고 있는데 옆에 계시던 아주머니가 아니 학생 학생은 하동에 내려야 한다고 하지 않았니 하는 말을 듣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하동역에서 기차는 서서히 출발을 하는데 가방을 둘려 메고 가는 차에서 뛰어 내렸는데 그때의 충격으로 머리를 다쳤는데 그때부터 간질 증세가 있었다고 합니다.
병원에서 진단을 받고 약을 잘 먹고 학교 다니는데는 큰 어려움 없이 다녔다고 합니다,그래서 중학교 나오고 고등학교 나오고 이제는 대학에 들어갔는데 학교 졸업 때 쯤 되어서 운전을 배워야 되겠다 생각하고 운전을 배우러 갔는데 건강에 대하여 여러 가지를 묻는데 말을 하다가 간질증세가 있다고 하니 운전학원에서 배울 수가 없다고 하드랍니다,
운전을 할 수가 없으면 나중 성인이 되어서 무엇을 할 수가 있겠는가 하는 마음에 자포자기가 되어서 교제 중에 있는 여자 친구에게 자기는 간질 병이 있기 때문에 자기와 계속 교재를 하면 불행하게 되니까 우리 여기서 그만 만나자 하고 헤어졌답니다.
그리고 저 지리산에 가서 혼자 목숨을 끊어도 잘 찾을 수 없는 곳을 보고 이곳에 와서 죽어야 되겠다 생각하고 집으로 와서 부모님 같았던 형님과 형수님에게 사실을 말씀을 드렸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간질은 회복 불가능한 병이고 이 병을 가지고 있으면 사람 구실을 할 수가 없으니 저는 집을 나가겠습니다.
그러니 찾지 마시고 돌아오지 않으면 죽었구나 그렇게 생각하시라고 하면서 하직 인사를 하고 일어서는 시동생을 호되게 나무라면서 그깐 일을 가지고 그러느냐고 하면서 내가 잘 아는 수양원이 있는데 그곳에는 암 환자들도 회복된다고 하는데 우리 그곳에 가서 원장님 말을 한번 들어보자 하고 간청을 하여 데리고 갔답니다.
그리고 원장님을 만나니 원장님 말씀은 어떤 사람에게도 확신을 주는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예 회복될 수 있습니다 라는 말을 잘 하지 않으시는 분이라고 합니다.
제가 나을 수 있습니까 라는 말에 하나님을 만나시고 하나님께서 고쳐 주시는 경험을 하게 되면 회복 될 수 있습니다 라는 말만 하드라 합니다.
그럼 어떻게 치료 하나요 라고 물으니 특별한 치료 방법은 없습니다 라고 하면서 가지고 온 약은 다 버리시고요 이틀 금식을 하고 물만 먹고 상태를 보고 그 다음 말씀을 드리겠다고 합니다.
그러니 그 환자가 그곳에 있으려 하겠습니까?
그 청년이 일어서더니 나하고는 하나도 맞는 것이 없네요,
우선 하루도 약을 먹지 않으면 발작이 일어나기 때문에 하루도 약을 끊고서는 살 수가 없고요 음식을 먹지 않아도 바로 발작이 오기 때문에 금식도 할 수가 없습니다 하면서 좀 신경질 적으로 일어서서 가려고 하드랍니다,
그런 시동생의 바지 가랑이를 잡아 당기면서 죽으러 간다매 라고 형수가 울면서 말을 했다고 합니다.
죽으러 간다매 여기서 금식하다가 죽어, 여기서 약 먹지 않고 지내다 여기서 죽어, 그러면 우리가 묻어 줄 수가 있지 아무도 없는 지리산까지 가지 말고 여기서 죽으란 말이야 하고 소리 쳤답니다.
그러니 그 청년은 이성을 찾고 그럼 약은 먹고 음식은 먹지 않고 이런 방법으로 하기로 하고 그곳에 있기로 했답니다.
방이 없어서 한쪽 가에 있는 사용하지 않았던 방을 청소를 하고 우선 그곳에 있기로 합의하고 있었답니다.
빈속에 약을 먹으면 얼마나 해로울까 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본인이 그렇게 하기를 원하여서 그렇게 하라고 했답니다.
그리고 원장님은 그 청년을 볼 때마다 괜찮아요 가 건네는 말 전부였다고 합니다.
첫날이 지나고 둘째 날이 되었습니다,
또 만나서 괜찮아요 하니 예 저 약도 끊었어요 하드랍니다.
원장님이 전하시는 말씀을 들으니 진짜로 하나님께서 계시는 것 같고 그 하나님께서 고쳐 주시면 고침을 받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가지고 온 약은 필요 없을 것 같아서 다 버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약을 쓰레기 통에 버린 그날 저녁에 이상증세가 왔답니다.
간질을 앓으시는 분들은 그런 증세가 오는 것을 조금 안다고 하드랍니다.
손발이 힘이 없어지고 떨리는 것 같고 가슴이 두근두근하고 그런 증세가 그날 밤에
약을 다 버린 그날 밤에 왔답니다.
버린 약은 방 청소하시는 분이 다 가지고 가서 쓰려기를 버리는 곳에 다 버렸는데
증세가 나타나니 불안하였습니다.
그러니 할 수 있는 것은 이곳에서 배운 그 전능하신 하나님께 기도하는 방법 외에는 없었습니다.
기도한다고 그 증세가 없어 집니까?
그래도 그 청년은 간질 증세로 인하여 몸 부림을 치면서 기도하였답니다.
하나님 저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고 약을 버렸습니다.
도와 주세요 하고는 성경을 가슴에 안고 기도하다가 그런 증세가 와서 정신을 잃었는지 기도하다가 잠이 들었는지 아침에 깨어보니 반듯이 누워서 성경을 가슴에 꼭 안고 있드랍니다.
간질 증세로 발작을 하였다면 가슴에 성경이 있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손과 발도 흩으려져 있을 것이고 그런데 가슴에 성경을 꼭 껴안고 그렇게 일어났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생각에 하나님께서 고쳐주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삼 일 째 원장님이 그 청년을 만나서 괜찮으셔요 라고 물을 때,
원장님! 어제 밤에 하나님께서 저의 간질을 고쳐 주셨습니다 하드랍니다.
이 청년 하나님께서 고쳐 주신 거 맞습니까? 하나님을 만난 것 맞습니까?
간질은 현대 의학으로 고칠 수 있는 병이 아니죠?
이 청년에게 하나님께서 계신가 하고 물으면 무엇이라고 대답하겠습니까?
그 후 그는 먼저 사귀다가 헤어진 아가씨를 다시 만나 가정을 이루어 살아가는 모습을 보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십니까? 하나님께서 고쳐주신 거 맞습니까?
제가 지난번 야외 예배 때 간증 시간에 말씀드렸죠?
병원에서도 다 죽는다고 했고요? 아이들 외 할머니는 안동에서 사위가 죽는다고 해서 울면서 오셨다고 했습니다.
저는 유행성 출혈열이라는 진단을 받았을 때 암 환자가 그렇게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암이라면 적어도 3개월은 사는데 나는 고작 한달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명에 대한 애착이 저에게도 있었다는 것이죠.
죽기 전에 본다고 저희들 집에서도 왔다 갔고요, 마지막으로 볼 사람들 거의 다 보고 갔습니다.
그때 아는 간호사가 와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자기는 남편이 병으로 죽어갈 때 살려달라고 하지 않았다면서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때를 써보라고요.
구약에 나오는 이스라엘왕 히스기야는 죽을 병에 걸렸을 때 때를 써서 다른 말로는 살려달라고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하였을 때 15년을 더 살게 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 15년 기간이 어떤 기간인지 아시나요?
그 기간에 므낫세가 태어 났고요. 남방유다는 므낫세의 배도로 멸망의 길을 가게 됩니다. 저는 그런 것을 알기에 때를 쓸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 가장 합당한 길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드릴 뿐입니다.
그런중 목사님의 방문으로 마태복음 7장에 기록된 이 말씀을 읽어 주시더라는 말씀을 제가 드렸습니다.
마 7:7-11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이 말씀 그 전에도 많이 들었고 잘 아는 말씀이고요 저도 다른 사람들에게 많이 전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날 전혀 새롭게 들리는 것입니다.
그래 살려달라고 기도드리자 라는 마음으로 다른 기도를 드리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 저 살려주세요, 저 아직 너무 젊습니다, 하여야 할 일도 많이 있고요.
저희들 남은 생애는 저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여 살도록 그렇게 해 주소서 라고 기도드렸습니다.
그때 말씀 드린 것처럼 화장실 가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서 소변기를 가지고 갔습니다.
소변을 받아 놓으라는 의사의 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소변 보고 싶어도 나오지를 않아서 약 5일 정도 지나는 동한 보지 못하였습니다.
화장실에가서 소변을 보는데 아픈 통증을 느끼면서 무엇인가 툭 튀어 나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보니 개구리 알 같은 것이 소변기에 가득하였습니다.
그것을 의사에게 보여 주었더니 의사분이 말씀하시길 이제는 산 것 같습니다 라고 하드랍니다.
그러나 이제는 소변이 너무 많이 나올 것입니다. 집에 있다면 탈수 현상에 빠져 생명을 잃을 수가 있지만 이곳은 병원입니다. 라고 하시더랍니다.
그래서 그날부터 소변양 만큼 링겔을 맞았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하루에 5000씨씨 맞았다고 생각하는데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한달을 지내고 퇴원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제가 누웠던 침대는 명당이 되었고요 퇴원도 하지 않았는데 예약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퇴원하여 집으로 가는 길이 새롭게 보였습니다.
나무들이 너의 살아 돌아옴을 축하하는 듯이 춤을 추는 것처럼 보였고요.
마을 뒷산들이 덩실덩실 춤 추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일년이 지난 후 저희들 손길이 필요한 교회를 찾아 무보수로 교회를 섬기는 자급 목회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그때 큰 아이는 두 돌이 되지 않았고요.
작은 아이는 백일이 되었습니다.
저는 세상의 돈 보다 하늘의 것을 더 사모하여 아직 교회를 섬기는 일을 그만두지 못하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요? 때로는 힘이 들고 경제적으로 어렵고 고생되는 것처럼 느껴도 버리지 못하고 이렇게 사는 것은 누가 계시다는 것을 확신하기 때문일까요?
저를 사망에서 일으켜 주신 하나님께서 계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제가 힘이 들어서 포기 아닌 포기를 하고 고향 집에서 부모님께서 함께 살고 싶어 하시어서 부모님 모시고 산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의반 타의 반으로 자급사역을 접고 고향으로 와서 고향교회에서 즐겁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안식일 오후 딸이 아빠 다리가 아파 하고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때 교회 청년들이 모여서 함께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다리를 걷으니 빨간 반점이 여기 저기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차에 태워서 아랫동네로 가서 보건소 소장에게 보였더니 소장의 얼굴이 하예 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큰 병원에 가 보라고 했습니다.
대구 동산 병원으로 갔습니다. 안식일 오후라 당직만 있었습니다.
아이의 상태를 보더니 여기 저기 전화를 하더니 입원하라고 해서 입원을 시키고 저는 집으로 왔습니다.
월요일 병원에 갔더니 아이가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들으니 알레르기 자반증이라는 병인데 이 병으로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예기를 듣고 저는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병원 바깥 마당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저 저를 살려주신 아버지여 지금 저의 딸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우리 딸을 살 그리고 그 다음 어떤 기도를 드려야 할까요? 그런데 살려 주세요 라는 기도가 나오질 않습니다. 살려 하려는데 하나님께서 이런 음성을 들려 주십니다.
이 사람아 네 딸이 그렇게 중하냐? 지금 세상에는 죽어가는 수 많은 영혼들이 있는거 보이지 않느냐 라는 음성이 들려서 딸을 살려 달라는 기도를 드리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병실에 와서 엄마에게 그 말을 하니 자기도 기도하니 그런 음성이 들리는 거 같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다시 우리의 손길이 필요로 하는 교회로 가자 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시 필요로 하는 교회로 갔습니다.
그렇게 죽어가던 아이를 하나님께서는 또 다시 기적으로 살려 주시고 지금까지 건강하게 하나님안에서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작고 작은 발자국 소리를 들어보니 하나님께서 살아계신 것 같습니까?
아직도 없는 것 같습니까?
여러분들은 인정을 하시든지 하지 않든지 하나님께서는 살아 계십니다.
그런 하나님 다시 믿지 못하여 아이들 교육 문제로 자급 사역을 두 번째 접고 경산으로 와서 큰 교회에 다녔습니다.
이번에는 저의 통장을 비게 만드셨습니다.
빈 것 뿐 아니라 수 많은 부채들로 저희들을 꼼짝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저희들 힘으로 도저히 갚을 수 없는 빚을 졌습니다.
그렇게 세상 적으로 절망 중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다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경제적으로 많은 부채를 가지고 그것을 갚지 못해 허우적 거리시는 성도님들 계신다면 저를 만나 면담을 해 보시길 바랍니다.
제가 경산에서 많은 사람들을 해방시켜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함께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아내와 만나서 이제는 좀 쉬면서 교회를 도우면서 살자가 하면서 교회는 목사님을 모시고 저희들은 나왔습니다.
그리고 집도 깨끗하게 단장하고 집안을 정원같이 꾸미고 이제는 밖에서 복음을 전하면서 살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또 다시 저희들에게 가라고 하셨습니다.
저희들이 살고 있는 집 크지는 않지만 너무 좋고 평안하고 행복한 집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을 뒤로 했을 때의 세 번의 경험을 하였죠?
저의 생명의 위경에 놓였던 경험이 첫 번째 경험이고요.
뒤로 돌아 섰을 때 딸의 생명이 위경 가운데 들어갔던 것이 두 번째 경혐이고요.
제가 가진 모든 것을 다 털어 버린 것이 세 번 째 경험입니다.
다시 부르심에 어찌 거절할 수가 있습니까?
그런데 이제는 자급 사역 가지 않겠다고 했던 아내가 어떻게 나올까 제가 염려를 많이 했습니다만 이렇게 응해 주시어 함께하게 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라 생각됩니다.
아내가 싫어하지 않도록 제가 진교로 올 수 있도록 머리를 좀 썼습니다.
아무리 머리를 써도 진교 성도님들이 반대하면 올 수가 없었는데 우리 성도님들께서 환영을 해 주시어서 저는 다시 우리 진교 성도님들에게 큰 빚을 졌습니다.
살아가면서 갚도록 하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저는 보이지 않은 하나님의 사랑의 줄에 메어서 꼼짝 없이 하라고 하시는 일을, 있으라고 하시는 장소에서 할수밖에 없습니다.
때로는 저의 모습 가운데서 하나님의 성품과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 나타날지라도 저는 하나님의 존재를 절대적으로 믿고 살아 왔고 그렇게 살려 합니다.
우리 성도님들도 그렇습니까?
사도 바울이 전한 말씀하나 올리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이 사도바울의 간증이 저의 간증입니다.
저는 이 바울의 간증이 우리 모두의 간증이 되길 소원합니다.
이제는 우리 모두 우리 자신을 위해 살지 마시고요.
얼마의 시간이 될지 잘은 모르지만 남은 우리들의 생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그리스도를 위해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살다가 다시 오시는 주님의 재림의 날, 우릴 시랑하시고 우릴 사랑하심으로 지금까지 인도 해 주셨던 그 주님 오시는 날 감격으로 함께 주님 뵙게 되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