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비 열전 1-1
오늘부터 조선왕조 27명 왕들의
여자에 대해 알아보려고 합니다.
특히 왕비나 빈 등 당사자 입장에서
이야기가 전개 될 것이다.
그녀들이 주연이고 왕은 조연인 셈이다.
주인공을 바꿔서 이야기를 엮어서
보는 것도 재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태조 이성계와 여자들)
태조는 첫번째 부인 신의왕후 한씨와 후처
신덕왕후 강씨와 네 명의 후궁(첩)을 두었다.
드라마 '용의 눈물' 을 본 사람들은
이 글이 좀 식상할 줄 모르겠네요.
그러나 드라마는 드라마이고
편집자 글은 편집자 글입니다.
제1 본부인 신의 왕후는 한씨였다.
이성계가 저 함경도에서 힘자랑할 때
고향 함흥에서 결혼한 본 부인이다.
충숙왕 복위6년(1337)9월 안변부에서 태어나
아버지는 '한경'이고 어머니는 신씨였다.
한씨는 꽃다운 나이 방년 15세에 17살 먹은
이성계와 결혼했는데 요즘 같으면
어린 것들이 결혼했다고 생각할 줄 모르나
조혼이 대세였던 당시에 빠른 것도 아니었다.
한씨는 전형적인 현모양처였다.
남편이 왜구를 토벌한다고 전국을
헤집고 다닐 때 출장 많이 다닌다고
불평 한 마디 하지 않고 살림을 꾸려갔다.
애들은 첫째 방우를 위시하여 아들 여섯과
경산 공주, 경순 공주 등 8명을 생산했다.
* 애를 낳는 것을 생산이라고 쓴 것은
비속어가 아니고 존칭어랍니다.
이성계가 장기간 출타 후 귀가하면
꼭 아이들을 하나씩 만든 것을 보면
부부간에 금슬이 좋았던 모양입니다.
아다리를 아주 잘 맞추었다는 것이다..
한씨는 아이들 키우면서 어미의 삶을 살았다.
이성계가 개성에서 명문가 따님인
곡산 강씨를 세컨드로 두어도 투기한 적이 없다.
적어도 기록상으로는...
참 좋은 아내이자 엄마의 전형적인 상이었다.
모든 남자들이 첫 부인으로 이런 여자를
부인으로 맞기를 원할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녀는 1391년 9월 23일
이성계가 왕이 되기 일 년 전에 55세의 나이로
하느님과 인터뷰(?) 하시러 가 버렸다.
남편이 삼십년 동안 전쟁터를 누빌 때 한시도
마음이 편할 날이 없었고 남편 걱정에 노심초사,
6남2녀 애들 키우고 집안 뒷바라지만 하다가..ㅠㅠ
요즘 뇨자들에게 한씨를 본받으라고 하면 바로
주먹이나 부엌칼이 도마와 함께 날아올지 모른다.
남자들이여!
입조심해야 한다.
속에 있는 말을 함부로 내뱉으면 안 된다.
자고로 '남자는 입이 무거워야 한다'고 한 것은
이런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이다.
자연스럽게 서열 2위에 있던
신덕왕후 강씨가 1인자의 자리에 오른다.
중전으로... 강씨!
요즘으로 치면 김건희 정도가 되지 않았을까?
아주 또이또이한 여자였다.
강씨는 공민왕 5년(1356)에 태어났다고 한다.
태조 이성계가 1335년에 태어났으니
19살 차이가 난다. 19살...
좀 거시기 하지만 이성계가 원래 무골 타입에다
힘께나 썼으니 얼마나 강씨를 이뻐했겠는가?
슬하에 방번과 방간, 경순공주를 두었다.
실록에 의하면 이성계가 강씨 말은
100% 다 들어주었다고 한다.
이방원이가 정몽주를 선죽교에서 철퇴로 원샷으로 죽였다는 것을 알고 대발노발 아니
노발대발 했는데 이때 강씨가 말렸다고 한다.
"대장부가 쫀쫀하게 뭐 그런 걸로 화를..."
그래서 이성계는 화를 풀었다고 한다.
강씨 집안 내력이 흥미롭다.
강씨 아버지는 고려 때 판삼사사를 역임한
강윤성의 둘째 딸로 엄니도 진주 강씨이다.
* 判三司事
고려 시대에 둔, 삼사(三司)의 으뜸 벼슬.
품계는 종일품으로 재신(宰臣)을 겸하였다.
강윤성의 아비 강서는 조선의 연산군과 비슷한
방탕한 충혜왕에게 아첨하여 그의 총애를 받았다.
마치 연산군 채홍사의 임사홍 부자처럼...
강서의 셋째 아들 윤충은 천하의 바람둥이였고,
신덕왕후 강씨 언니는 신귀에게 시집갔다가 개경의 고관대작들과 스캔들로 개경을 들썩이게 만들었다.
신귀는 신돈의 친척이었고
나중에 신돈과 함께 처형되었다.
참 대단한 집안이었다.
신덕왕후 강씨는 빼어난 외모와 지략을 갖추고
개성의 상류계층에서 자기 역량을 십분 발휘한다.
남편의 출세를 위하여.. ㅎㅑ~ 부럽다..
오늘은 요기까지...내일 또 계속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