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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니엘의 아침을 맞이하라(2284.2024.12.31.-2025.1.1.송구영신예배)
창32:26-32
할렐루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 임재하셔서 우리 예배를 받으십니다. 오늘도 주의 전에 나오신 여러분 모두에게 하늘의 위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혹시라도 삶의 현장에서 상처와 상한 마음을 가지고 오셨으면 말씀 듣다가 위로와 치유함을 받으시고 질병과 싸우는 중이라면 여호와 라파 치료의 하나님을 만나서 치료받는 시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삶이 힘들고 지쳐서 오셨다면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은 새 힘을 얻으시기를 축복합니다. 무엇인가 계획하고 기도중에 있는 것이 있다면 응답받는 은혜가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삶이 해결되고 성령이 충만하여 기쁨과 감사와 웃음이 넘쳐나는 유쾌한 신앙생활을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서로 인사합시다--잘 되고 있습니다. 기도하면 됩니다. 축복한대로 됩니다. 오늘도 좋은 일이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새해가 시작이 되었습니다. 상주감리교회에서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시는 여러분들이 혹시라도 2024년도를 살면오면서 힘들고 어려운 터널을 지내오시고 계셨다면 오늘 말씀처럼 새해에는 일생일대의 가장 어려운 순간을 맞이한 적이 있다면, 어두운 터널에서 벗어나서 밝은 새해를 맞이하여 승리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안개가 자욱하여 길이 안 보일 때처럼 안개가 자욱한 삶을 살아왔다면 해가 돋으면 다 사라지는 것처럼 여러분의 앞에 안개가 사라지는 새해를 맞이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본문 31절‘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단순히 시간을 알려주는 말씀이 아닙니다.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다는 이 말씀 속에는 야곱의 생애 속에 깊은 어둠의 터널을 통과하는 때가 있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안개가 자욱한 앞이 캄캄함 야곱의 인생길에 해가 떠올랐다는 것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려고 형님 에서도 속였고, 아버지 이삭도 속였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빈손으로 외삼촌 집으로 도망을 가는 신세가 되었고 20년동안 고생고생 했습니다.
1.브니엘의 아침이 오기전에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에는 어두운 밤이 찾아옵니다.
안개가 자욱한 깊은 산속을 지날때에 얼마나 두렵고 무섭고 떨리는 일입니까? 한치의 앞도 보이지 않는 삶에서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살아온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을 축복하고자 합니다. 외삼촌 집에서 20년 살면서 열심히 살았지만 이번에도 외삼촌 집을 도망치듯 나옵니다. 딱히 갈 곳이 없었던 야곱은 고향으로 가기로 합니다. 그런데 야곱의 형님이 400명을 이끌고 야곱에게로 온다는 것입니다. 다급해진 야곱은 이제 독 안에 든 쥐처럼 되었습니다. 다시 외삼촌에게로 돌아갈 수도 없고, 고향으로 가자니 형님이 자기를 죽일 것만 같았습니다. 가만히 보면 야곱의 인생이 이 때만 어두운 밤을 맞이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야곱의 인생여정은 줄곧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는 것만 같았던 인생이었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도 그런 날이 한두번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야곱은 얍복 강가에서 자기 인생여정 중에 가장 칠흑 같은 밤을 보내게 됩니다. 목숨을 걸고 그 밤을 보내게 되는 것처럼 2024년도 여러분도 주어진 삶을 잘살아왔습니다.
이 밤에 야곱의 손에 잡힌 것은 그 어떤 것도 빠져나가지 못할 정도로 야곱은 움켜잡고 씨름을 합니다. 하나님의 사자마저도 야곱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가지 못할 정도로 야곱은 인생의 어두운 밤 막다른 골목에서 씨름을 합니다. 야곱이 이깁니다. 그리고 야곱의 이름이 이스라엘로 바뀝니다. 이제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야곱이 절뚝거리며 갑니다. 비록 야곱이 절뚝거리지만 그의 얼굴에는 기쁨과 환희로 가득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때 야곱 앞에 찬란하게 태양이 떠오릅니다. 한해를 보내며 새해를 맞이하는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들에게도 2025년도에는 찬란한 태양이 떠오르시기를 축복합니다. 야곱은 그 순간 초라한 야곱을 바라보시며 환하게 미소를 지으시는 하나님의 얼굴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야곱은 그곳의 이름을 ‘브니엘’이라고 짓습니다. 브니엘은 ‘하나님의 얼굴’이란 뜻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에는 어두운 밤이 찾아옵니다. 밤은 왜 이렇게 긴지, 마치 동짓달처럼 밤이 깊고 길기만 합니다. 이런 인생의 깊은 밤을 통과하지 않고 여기까지 오신 성도님은 한 분도 없을거라 생각합니다. 상주감리교회에서 예배드리시는 여러분 모두가 여기까지 살아오면서 인생의 깊은 밤을 지내오셨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인생의 깊은 밤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가 중요합니다. 인생의 깊은 밤이 오면 인생에 깊은 시름과 잠이 쏟아집니다. 그래서 인생의 깊은 밤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됩니다. 보통 이 순간에는 낙심과 고뇌로 인하여 씨름을 할 수 없습니다. 믿음이 좋았던 사람도 이 순간에는 이상하게 기도를 할 수가 없게 됩니다. 평소에는 기도를 열심히 잘 하던 분들도 인생의 밤이 너무 깊어지면 기도마저 하지 못하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인생의 깊은 밤에 얍복 강가에서 기도의 씨름을 합니다. 얍복 강가에서 하나님의 사자와 피 튀기는 씨름을 하고 이긴 야곱 앞에 브니엘의 태양이 떠올랐던 것입니다. 야곱은 드디어 브니엘의 아침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들이 혹여 인생의 어두운 밤을 보내고 계시다면 꼭 브니엘의 아침을 맞이하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이 말씀이 믿음이 되어서 상주감리교회 성도님들이 꼭 브니엘의 아침을 맞이하는 그런 2025년 새해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2.브니엘의 아침을 위한 얍복강에서 기도의 씨름을 했습니다.
야곱이 브니엘의 아침을 맞이하기 위해서 얍복 강가에서 기도의 씨름을 하였습니다. 본문 24절‘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우리들은 어떠하십니까? 브니엘의 아침을 위한 특별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야곱은 그 동안 인생의 깊은 밤을 통과하기 위해서 기도보다는 인간의 꾀를 사용했습니다. 아버지를 속여서라도 자신의 인생에 찬란한 태양이 떠오르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더 깊은 인생의 깊은 밤이 찾아왔습니다. 야곱은 인간의 꾀를 사용해서 인생의 밤을 통과하려는 마음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우리 인생에 쨍하고 해뜰날을 기대하며 살아가는 것처럼 외삼촌 집에서도 야곱은 여전히 자신의 인생에 쨍하고 해 뜰 날을 기대하며 다시 또 인간의 꾀를 사용합니다. 그 결과 야곱은 결혼도 하고 자식도 낳고 재산도 늘어났지만, 결코 야곱의 인생에 밝은 태양이 떠오르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야곱의 인생은 더 깊은 수렁,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만 같았습니다. 결국 야곱은 외삼촌이면서 처갓집에서 도망을 나와 얍복 강가에 도착합니다. 그곳에서 야곱은 일생 처음으로 가장 진지하게 하나님 앞에 서는 경험을 합니다. 이 때 야곱의 나이가 무려 90세가 훌쩍 넘은 나이가 되었습니다.
야곱은 어릴 때부터 하나님의 복을 받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형과 아버지를 속여서 하나님의 축복기도를 받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랬던 야곱의 나이가 이제 90세가 훌쩍 넘었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놀라운 것은 야곱이 어릴 때부터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복을 받고 싶었음에도 불구하고 90세가 넘도록 이토록 진지한 기도를 해 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평생 하나님의 복을 받고 싶은 마음이 항상 있었고, 또 평생 자신의 인생의 어두운 밤이 지나고 쨍하고 해 뜰 날을 기대하며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90살이 넘도록 한 번도 하나님을 붙잡고 진지하게 기도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것이 우리 성도들의 삶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축복은 받고 싶지만 기도하기는 싫습니다.
야곱은 이제 100살이 가까웠음에도 불구하고 체면이고 뭐고 다 필요 없이 전심을 다하여 하나님의 사자를 붙잡고 씨름을 하는 기도를 드립니다. 90살이 넘은 야곱이 씨름을 하며 기도를 하니 고관절이 어긋났습니다. 병원도 없고, 연세가 높은 분의 고관절 뼈가 어긋나면 앞으로 심각합니다. 그런 것 상관없이 야곱은 자기의 가장 중요한 고관절 뼈가 어긋났음에도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의 사자를 놓아주지 않고 기도를 합니다. 인생의 깊은 밤이 너무 길게만 느껴지나요?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평생 야곱처럼 인간의 방법, 세상의 방법들을 다 사용해 보았지만 인생의 어두움이 말끔하게 걷히지 않고 있나요? 그렇다면 인생을 송두리째 던지는 기도를 지금이라도 하나님 앞에 진지하게 드려야 합니다.
우리 인생에 브니엘의 아침을 맞이하기 위해서 기도의 중요성은 몇 번째 정도에 두고 있습니까? 우리의 인생에 브니엘의 아침을 맞이하기 위해서 기도보다 더 급하고, 기도보다 더 중요한 다른 무엇인가가 아직도 많이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여러분 기도보도 더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 야곱은 얍복 나루터에서 하나님을 만나, 밤새도록 씨름하였습니다. 그 씨름의 주도권은 누구에게 있었을까요? 그 주도권은 야곱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었습니다. 창32:24절‘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라고 말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을 했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야곱이 홀로 있을 때, 어떤 사람이 그를 찾아왔습니다. 어떤 사람이 야곱에게 씨름을 걸어 왔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고자 할 때, 우리를 만나주시고 우리를 변화로 이끄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결코 우리 자신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씨름의 주도권은 우리 인간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시고, 우리를 만나 주시고, 우리를 축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상주감리교회에서 신앙생활 하는 우리가 변화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은혜 받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축복 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변화되기를 원하고, 은혜 받기를 원하고, 축복 받기를, 우리들이 원하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이 변화되고, 은혜 받고, 축복받기를 더 원하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변화되고, 은혜 받고, 축복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홀로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예배의 자리에 나가야 합니다. 기도의 자리에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만났을 때, 꼭 붙잡아야 합니다.
야곱이 행한 일 가운데, 가장 잘 한 일이 무엇입니까? 어떤 사람이 찾아와서, 씨름을 할 때에, 야곱은 포기하지 않고, 그를 끝까지 붙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야곱이 어떻게 하나님을 이길 수 있었겠습니까? 야곱에게 힘이 있어서, 하나님을 이겼을까요? 여러분! 하나님이 야곱에게 져주신 것입니다. 야곱이 끈질기게 붙들고 있으니, 하나님이 그에게 일부러 져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어떤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쳐서 어긋나게 했습니다. 야곱은 굉장히 아팠을 것입니다. 야곱이 손을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야곱은 그 사람을 붙잡은 손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 어떤 사람이‘나로 가게 하라’고 말하는데도, 야곱은 그를 놓지 않았습니다.
창32:26절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나님이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쳐서, 야곱은 넘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곱은 하나님을 붙잡았던 손을 놓지 않았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하나님을 어떻게 이길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축복을 어떻게 하면 받을 수 있습니까? 끝까지 하나님을 붙들고, 놓지 않으면 됩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은 자녀인 우리들에게 복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여러분! 야곱이 허벅지 관절이 어긋나면서까지 받기를 원했던 축복은 무슨 축복이었을까요? 단순히 어떤 건강이나 물질, 출세하는 것을 원했을까요? 이미 야곱은 건강하였고, 자녀도 많았고,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다 가졌습니다. 부러울 것이 없었습니다. 더 얻고자 하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얍복 나루터에서, 야곱이 하나님께 구한 축복이 무엇입니까?
어떤 사람이 야곱에게 물었습니다. 창32:27-28절‘네 이름이 무엇이냐’,‘야곱입니다’,‘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얍복 나루터에서 ‘야곱’은 ‘이스라엘’이라는 새이름을 얻었습니다. ‘야곱’은 형 에서의 발뒤꿈치를 잡고 나온 데서 유래된 이름입니다. ‘야곱’은 인간적인 욕심을 가진 사람을 의미합니다. ‘야곱’은 무엇이든지 이겨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지어주신 이름입니다. 야곱은 얍복 나루터에서, 하나님을 만나, 씨름했습니다. 그날 밤 야곱은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습니다. 큰 변화가 그에게 일어났습니다. 이전에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남의 것을 속여 빼앗는 것을 당연시 했는데 이제는 달라졌습니다. 야곱은 이 모든 최선의 방법보다 가장 무게를 두고 중요하게 한 것은 역시 얍복 강가에서의 기도였습니다.
우리 인생에 브니엘의 아침을 맞이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주어진 삶에 항상 최선을 다하는 일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입니다.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합니다. 가정을 위해서도, 직장을 위해서도, 사업을 위해서라도, 가족을 위해서도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일들 중심에 기도가 없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모든 일들 보다 기도가 가장 중요한 것이 되어야 합니다. 야곱이 얍복 강가에서 하나님의 사자를 붙잡고 씨름을 하는 기도를 드리고 응답을 받습니다. 그리고 브니엘의 아침을 맞이 합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이게 웬일입니까? 야곱을 죽이겠다고 400명을 거느리고 오던 에서가 야곱을 보더니 ‘끌어안습니다. 웁니다. 입을 맞춥니다’ 기도로 맞이 하는 브니엘의 아침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우리가 인생을 열심히 살지 않아서 문제였던 것이 아닙니다. 기도로 브니엘의 아침을 맞이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기도 없이는 우리 인생에 변화를 가져오지 못합니다. 아무리 야곱이 형님에게 줄 예물을 준비하고, 자식들을 세 팀으로 나누어도 에서가 변화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아무리 최선을 다하고, 아무리 열심히 하여도 인생에 플러스보다는 마이너스가 더 많은 인생이 되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인생에 밤을 가져오고, 인생에 불행을 가져오게 하는 근본 원인들의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 아무리 노력하고 수고한들 무슨 소용이 있냐는 것입니다. 기도야 말로 변화를 가져오는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 에서를 변화시켜놓은 기도의 능력을 상주감리교회에서 송구영신 예배드리시는 성도님들이 경험하시기 축복합니다. 그토록 노력하고 수고해도 안 되던 것들이 기도의 힘으로 새해에는 변화가 되는 것을 경험하는 인생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3.브니엘의 아침을 위한 하나님과의 대면하여 복을 받았습니다.
야곱은 형 에서와의 관계 회복을 원했습니다. 야곱은 형과 화해할 수만 있다면, 많은 재산상의 손실을 감수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창32:14-15절‘암염소가 이백이요 숫염소가 이십이요 암양이 이백이요 숫양이 이십이요 젖 나는 낙타 삼십과 그 새끼요 암소가 사십이요 황소가 열이요 암나귀가 이십이요 그 새끼 나귀가 열이라’고 했습니다. 야곱이 형 에서를 위하여 마련한 예물입니다. 돈으로 계산하면, 엄청날 것입니다. 장인 라반의 집에서 살 때만 해도, 한 마리라도, 더 얼룩무늬나 점 있는 양이나 염소를 만들어 내려고, 눈에 불을 켜고 살았던 야곱이 이렇게 변화되었습니다.
여러분! 야곱은 얍복 나루터에서, 무엇이 진정한 복인지를 깨달았습니다. 야곱은 20년의 타향살이를 끝내고, 부모와 형제가 있는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돌아가면서, 무엇이 진정한 복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야곱은 ‘모든 축복의 주도권은 하나님께 있다’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야곱은 사람으로 나타난 하나님을 붙잡고, 놓지 않고, 축복해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는 허벅지 관절이 어긋나면서까지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놓지 않았습니다. 그가 원했던 복은 하나님이 아니면 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모든 축복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누리는 일반적인 복도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보다 더 본질적인 복은 영적인 복입니다. 모든 영적인 복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집니다.(골 2:3)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영생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는 복을 받았습니다.
야곱이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습니다. 야곱은 비록 다리를 절기는 했지만, 소망의 새 아침을 맞이했습니다. 그의 마음에 두려움이 사라졌습니다. ‘야곱’이 ‘이스라엘’로 변했더니, 형 에서가 변하고, 주변 상황이 변했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내가 변하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변합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들이 변하기를 바라기 보다는, 내가 먼저 변해야 합니다.
여러분! 진정한 축복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만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우리를 찾아오셔서 우리에게‘기도하라’고 말씀하여 주시고‘은혜 받으라’고 말씀하여 주시고, ‘복 받으라’고 말씀하여 주시는 주님을 끝까지 굳게 붙잡음으로, 우리의 기도의 제목들이 모두 응답받기를 소망합니다.
본문 30절‘그러므로 야곱이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야곱이 얍복 강가에서의 기도에 응답을 받고 아침을 맞이하게 됩니다. 야곱은 그곳의 이름을 ‘브니엘’이라고 지었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브니엘’은 ‘하나님의 얼굴’이란 뜻입니다. 야곱이 그곳 이름을 브니엘로 지은 이유는 야곱이 하나님의 얼굴을 뵈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얼굴을 빛으로 묘사합니다. 하나님의 얼굴은 곧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경건한 신앙의 고백 속에는 항상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기도가 많이 나옵니다. 반면에 세상은 어두움입니다. 세상을 보면 볼수록 우리 영혼에 어두움이 깃들고, 우리 삶에도 어두운 그늘이 드리우게 됩니다.
요즘 텔레비전 프로그램 중에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이 인기가 제법 좋은 것 같습니다. 세상에서 유명했던 사람들이 산 속으로 들어가서 사는 것을 보여줍니다. 저 사람들은 왜 저렇게 세상을 등지고 산 속으로 들어갔을까요? 세상의 어두움이 자기를 뒤덮어오는 것에 견딜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왜 그 프로그램이 인기가 좋을까요? 지금 세상의 어두움 속에서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이 자기도 그렇게 살고 싶다는 공감대를 얻기 때문에 인기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모든 현대인들이 저렇게 산속에 들어가서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저렇게 산속에 은둔하여 살아서 해결되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산속에 들어가도 우선 쉴 수는 있지만 그 영혼은 여전히 외로움과 고독 속에 지내게 됩니다. 텔레비전에서 그런 부분은 안 보여주고 있을 뿐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들은 이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며, 그 얼굴 빛을 비추이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야곱이 지금까지 100살이 다 되도록 열심히 살았지만 아침을 맞이하지 못했습니다. 이젠 늦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야곱을 보시기 바랍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을 얼굴을 바라보는 순간부터 이제 그 영혼이 환하게 밝아옵니다. 야곱의 생애 동안 태양은 늘 떠올랐습니다. 그러나 야곱의 생애에서 브니엘의 태양처럼 환하게 떠오른 적은 없었습니다.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 영혼이 밝아졌기 때문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들이 새해 아침에 브니엘의 태양이 환하게 떠오를 것을 믿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저는 여러분 가슴속에 브니엘의 해가 환하게 떠오르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모든 걱정과 슬픔과 고민이 사라지고 참 평안과 기쁨과 행복이 충만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축복하심과 역사하심을 경험하는 2025년 새해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한 우리 상주감리교회 교회 위에 브니엘의 아침 해가 환하게 떠오르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아울러 이 한반도에 브니엘의 아침 해가 찬란하게 비쳐져서 모든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제는 남과 북이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원수같이 생각하지 않고 형제애로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고 협력하고 용서하는 브니엘의 새날이 오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태양은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에도 떠오를 것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의 광채, 곧 브니엘의 태양이 상주감리교회 송구영신 예배에 참여한 성도들의 영혼을 환하게 비추어주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서 무엇을 보든지 밝게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얼굴의 광채, 곧 브니엘의 태양이 상주감리교회 성도들의 가정에 환하게 비추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서 상주감리교회에서 송구영신 예배드리시는 성도여러분의 가정에 어둠이 걷히고, 하나님의 희망이 가득 차고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2024년 송구영신예배 축복안수기도
2024년도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는 것과 같은
인생여정의 삶속에서도 지금까지
지켜주시고 보호해주시고 기도하여
승리케 하신 하나님아버지,
초라한 나의 모습을 바라보시면서도
환하게 미소를 지어주신 하나님아버지,
2025년도 새해를 맞이하여 기도의 힘으로
하나님과 대면하여 복을 받은 야곱처럼
000에게 어두움이 걷히고 희망이 가득찬
브니엘의 아침을 맞이하여
모든 근심과 걱정과 슬픔과 고민이 사라지게 하시고
참 평안과 기쁨과 행복이 넘치도록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인권,물권,영권의 축복을 받아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쓰임받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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