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없는 자연은 무덤도 없다(稀言自然,無痕)
자연은 말이 없다,
노자는 연안이씨에서 볼때 최초의 이씨(李氏)성을 받으신 분으로 먼저 생각하는 어른이다.
다음으로 이분은 인류에게 자연을 진실하게 다듬어 말씀을 전해 주신 분이시다
이분이 말씀한 내용을 우리가 음미하는 기분은 유달르다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가 이분의 후손일 수 있다는 기록을 통하여 부정하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이분의 D.N.A 가 우리에게 은연중 계승된 때문일가를 생각케하는 단계이다
이제 이 어른이 말씀하신 내용을 맛을 보기로 한다.
우리는 자연현상,자연의 모습을 자연이라 하지만 노자는 이런 의미로는 천지(天地)라는 용어를 쓰고 천지가 현상,작동하는 원리,이치 즉 '스스로 그러함'을 자연이라 일컫는다.
노자(李耳,老聘,伯陽)께서 자연은 말이 없다(稀言自然)이라하셨고, 공자도 '하늘이 무슨 말을 하느냐(天何言哉)하였으니 사실 "말없이 사시가 운행하고 만물이 생장한다'
오늘날 우리는 말을 잘 못하면 살아남기조차 힘든 세상에 살고 있다.
말을 안해도 아무런 관심조차 받지못하고 왕따당하기 십상이다.
반면,말만 잘해도 부귀영화를 다 꿰찰 수있다.
말로 먹고 사는 사람,언론 방송 연예인,학자,교사,정치인 뿐만아니라 넓은의미의 지식,글로 먹고 사는 사람까지 이땅의 기득권자들은 전부 말로 출세하고 취부해서 온갖 특권을 누리면서도 이에 그치지 않고 다시 말로써 사회적 약자와 서민을 울리고 신성한 인간의 권리를 유린,억압한다.
놀랍게도 노자,공자는 아니라 이처럼 말과 글의 사회적 역기능,악용 즉 말이 세상을 더럽히고 혹세무민한다는 것을 알고 시대를 초월하여 경종을 울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학문과 기술을 무조건 배척할 방법은 없다. 노자를 통해 우리 사회가 배워야 할 것은 말을 하고 글을 쓰되 <말같은 말을 해야 하고 글다운 글을 쓰게 해야 한다>는 것을 암시하신 것이다.
그러나 정작 현실은 정치,사회적으로 쓸모있는 말과 바른 소리,정론은 사라지고,말같지도 않은,쓸데없는 말,거짓말만 난무하고 횡행한다. 그런데도 이를 문제삼고 적극적으로 비판하거나 징치하자는 주장을 펼치는 사람도,세력도 미미하다.
빈말,허구,거짓을 지속적으로 확대재생산하면서 세상을 농락하는 언론 방송,대중매체를 비판할 대항언론이라도 살아있어야 하는데 언론의 자유가 침탈되어 형식은 갖추어져 있어도 내용을 채울 사람이 없다.
인터넷은 새로운 여론과 진실을 주도,형성하지 못하고 대중매체가 쏟아내는 그릇된 정보와 이슈를 따라가기에 바쁘다.
이제 인터넷상에서 자유롭고 활성화된 토론 문화는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이렇게 위축된 민주주의,진정한 언론,발언의 자유는 되살아나지 못하여서야 이 지구가 올바로 돌겠는가?.
노자가 강조한 것은 자연에 빗대어,거짓만 늘어놓는 위정자들에게 입을 다물라고 질타한 것이지 민중의 입을 막은 것이 아니다.
시민,네티즌들은 더 열성적으로 입을 열어 사회정의와 진실을 소리높여 말해야 하지않을까
한편,말(言)을 인간의 작위적 언어체계로 보고 이를 노자가 인정하지 않았다고 이해할 수있다.
인간은 아무것도 모른 상태에서 무작정 언어부터 배워버렸지만 알고보면 언어는 치명적 한계가 있다.
언어는 일반의 통념과는 달리 가치의 선악과 사물의 진위를 '정확히'설명하고 분별해 주지 않고,오히려 사실과 가치를 왜곡,전도시킬때가 많다.
노자가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를 말한 것도 인간이 언어의 사슬에서 해방되라는 것이다.
그러나 언어는 양날의 칼이다.
진실을 왜곡하기도 하지만 언어의 치명적 결함을 포착하고 언어를 바르게 사용하면 진실과 정의를 대변하고 증거할 수 있다.
또한 자연은 인위적인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도 원할하게 의사소통을 하면서 천지만물이 조화와,일치를 이루며 공생하고 있다.
고도의 언어체계까지 갖춘 인간이 위선과 허구에 사로잡혀 언제까지 비참하고 허망한 세상을 살아가는가?
노자를 조상으로하는 우리의 입장에서 몰때에 이미 예견된 세상을 사는 동안이나마 사람다운 삶을 찾아야 하는 것이 도리가 아니겠는가?
광풍은 아침 한나절을 불지 못하고 폭우는 하루종일 내리지 못한다(飄風不終朝,驟雨不終日)고 한다.
우리네 교육현실은 여전히 과거 수천년간의 전제 군주시대,지난100년간 압제,근래 장기간 군사독제 주입식 교육(일종의 세뇌)을 벗어나지 못하여 한번 찔러 넣은 지식은 무덤까지 안고가서 영원한 인생을 마감한다.
이런 생각은 바르지 못하니 이런 생각으로 일생을 살아가는 인생이 가엽다는 것이다.
특히 물렴치한 방법으로 얻은 권력과 지식을 얻게 된 기득권자들이 일방적으로 교육과정을 결정하는 마당에 문제가 없을 수 없는바, 특히 자연에 대한 시각과 자세에 관한 교육내용은 자못 심각한 수준이다.
노자가 계속 이야기하는 자연에는 권력,지배,소유도 없이 '모든 것이 평등하고 자유롭다'는 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사실,자유와 평등 이상의 진리도 윤리도 없다.자유가 진리라는 말도 있고 자유없이는 행복할 수도 없다하지 않은가.물론 자유는 모두의 평등한 자유다.자연은 개별적이든 생태 전체적이든 공생과 평화가 대원칙이다.여기에서 인간만이 이탈해 공생공영의 고리를 끊어버림으로써 모든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노자는 여기서 자연은 절대 '악하지 않고 평화지향적'이라는 것을 분명히 한다.아무리 거센 폭풍우가 몰아쳐도 하루를 넘기지 못한다는 것은 비록 일시적인 풍파는 막을 수 없다해도 365일 자연은 평온하고 선하다는 것이다. 하물며 인간이 어찌 자연을 거역해서 평화를 깨고 세상을 어지럽히며 자연을 망가뜨릴 수있겠는가. 자연의 이치에 반하고 결코 선하다고 할 수없는 인간만을 위한 현 제도,체제,인위적 문화는 결코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이미 그 징후가 뚜렷하다.문명이라는 이름으로 생태계는 송두리째 파괴되고 그 터전 위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가장 나약한 갈대적 인간의 미래가 담보될 리 없다.폭주하는 자본주의 욕망의 전차를 멈출수는 없다해도 감속시키거나 누구든지 뛰어내릴 수는 있다.
인생을 고해(苦海)라 하지만 그러나 철학적으로 깊히 고찰해보면 어떤 인생도 고해는 아니다.
인간은 무엇보다 "착각하는 동물"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자신이 최고요,제일 잘났다'고 믿는것이고 이것이.바람직한 현상이다.
문제는 자존감과 함께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더 불행하다'고 생각,착각한다는 사실이다.
남의 떡이 더 크게 보인다고.심지어 목욕탕에 가도 자신의 남성이 더 작다고 주눅이 들곤 하는데 학자들은 이를 전형적인 각도의 차이에서 오는 착시,착각이라고 한다.
인생도 결코 나만,내가 더 불행한 것이 아니다.부귀공명을 누리는 자들도 하나같이 불행하고 한없이 불쌍한 존재들이다. 자연에 부,권력,공명이라는 것은 없다.이를 정상적인 것이라고 여길만한 근거라곤 세상 어디에도 없다.남위에 올라앉아 억누르고 혼자 잘먹고 잘사는 걸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한다.일반인은 적어도 사회적으로 모욕과 저주는 받지 않고 살지 않는가.
그래도 살다보면 태풍우가 몰아치는 것처럼 감당할 수없는 시련과 고난이 닥칠 때가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노자는 말한다.
대자연의 광풍과 폭우도 한나절을 채 넘기지 못하고 물러난다.
하물며 자연에 비하면 한낱 미진에 불과한 인간에게 닥치는 고통과 공포가 얼마나 오래 가겠느냐고.
모든 위기와 좌절,분노의 순간도 시간이 지나면 말끔히 해소되고 평온이 찾아오는 것이 자연의 이치다.
생노병사라고 하지만 자연계에 이로인해 고통받는 존재는 하나도 없다.유독 인간만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타이틀에 걸맞지 않게 나약한 모습을 보인다.동물처럼 자연스럽게 생노병사를 받아들일 수는 없는 것일까
이제 극락보다도 좋고 천당보다도 살기 좋은 시대를 맞이한 것은 이미 전생에서 타고난 운명에 의한 각본이라고 불가에서는 말하지만 부정 할 수 없는 것은 옛날 사람들이 살던 방식과는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살 고 있는 이 진실만은 누구도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없을 만큼 확인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옛날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면서 산다는 것은 한정된 세월을 살면서 행복의 순간 순간을 잃어 버리고 낭비한다는 생각을 해 볼 때가 있다.
그러나 자연의 이치는 변화하지 않았다.
다소 환경이 좀 나아 진것 뿐이라는 점인데 인간은 말없는 자연에서도 숙명적으로 남겨야 할 무덤을 어떻게 장식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지만 이에앞서 인간은 행복하게 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이없는 욕망의 끈은 영생하여 존재할 것이냐 아니냐 하는 실로 절박한 분기점에 서있다는 점을 깨 닫고 죽는다.
그것이야 말로 인간이 남길 수 있는 속성이며,
그것이야 말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욕심이니,
오로지 인간만이 향유 할 수 있는 흔적으로서 비석을 세울 만한 가치있는 무덤이 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무덤의 비석돌에다 깊게 새겨넣은 들, 그 돌이 얼마나 오래 버틸 것이며,
사람의 기억에 심는다 한들, 그 기억이 몇백년을 지탱 할 수 있겠는가?
오로지 노자께서 "자연은 말이 없다"는 진리만은 수천년을 두고 더욱 가치를 드높히고 있건만..
[이글중 naver에 쓴 노자23에서 일부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