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후손은 양공공할아버지 산소가 있는 현도면 죽전리에 살며 아버님(諾山承甲)이 부제학공파(양공공파)를 만들고 많은 일들을 하다가 타계하셨는데 필자는 직장에 매여서 신경쓰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현도면 면지 편집위원장을 맡아 현도면 역사를 밝히기 위하여 노봉서원 자료를 찾아 보니 북창 정렴이 양공공 할아버지 산소 밑에서 살았다는 기록이 나왔다. 그리고 여기 노산 출신 이조판서 유인숙이 정렴의 처삼촌이라는 것, 정렴의 처갓집이 노산이라는 것, 정렴의 아버지 정순붕이 을사사화를 일으킨 자라는 것 등이 밝혀졌다.
현도면 순흥안씨의 유래를 고려 때 순절한 양공공 할아버지 자손이라고 쓰려다가 역사서를 확인하여 보니 양공공 할아버지는 무진참화 때 이성계, 최영(崔瑩, 鐵原崔씨), 우왕, 조반(趙胖 白川趙씨)에 의하여 돌아가신 것으로 나타났다. 양공공 할아버지 처삼촌인 염흥방을 간신으로 몰아 도륙할 때 양공공 할아버지도 함께 도륙당한 것이다. 그래서 족보에서 이런 사실을 가르치지 않았구나 생각하니 답답하고 서글퍼졌다.
무신인 이성계와 최영은 문신들을 몰아내고 정권을 잡고, 나라를 모반한 명분을 세우려고 염흥방을 만고에 없는 간신으로 만들었다.
이런 사실을 모르고 후손들은 원수인 최영, 이성계, 우왕, 조반을 칭송한 적이 있을 것이다. 몰랐다고 하여도 후손이 조상을 욕되게 한 죄가 씻기는 것도 아니고 역사에 기록된 사실을 감춘다고 감추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사실을 사실 대로 밝힌 다음 올 바로 평가하여 억울하게 돌아가신 양공공 할아버지의 누명을 벗겨 드리는 일이야 말로 후손으로서의 가장 큰 효도이고 양공공파의 명예를 세우는 길이다.
2008년 10월 11일 대전 안양동의 뿌리공원에 순흥안씨 유래비 제막식이 있었는데, 비문에 양공공 할아버지의 참사는 언급되지 않고 벼슬한 선조들 이름만 쓰여 있었다.
2008년 11월 2일(음력 10월5일) 양공공 세향에 여기에 실린 내용을 인쇄하여 돌렸는데 내용을 읽어보지도 않고 거부반응을 나타내거나 이제 와서 이런 사실을 밝혀서 어쩌자는 것이냐, 족보를 고칠 수도 없는 일 아니냐 하며 언짢아하는 종원들이 있었다.
그러나, 양공공 할아버지가 참화를 당하였다고 하는 것은 600여년 전부터 고려 역사서에 쓰여 있다. 이미 다 알려져 있는 사실을 모르는 척하고 넘어가는 것이 양공공 할아버지의 명예를 지키는 방법은 될 수 없고 누명을 쓴 것이라고 사실 대로 당당하게 밝혀서 명예를 회복해야 한다.
2008년 11월 용근
연락처: 충북 청원군 강내면 월곡리 충청대학 식품영양학부
043-230-21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