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련 1,2동(道連洞)
도련(道連)은 사면으로 모든 길이 이어져 있다하여 불리워진 이름으로서, 옛부터 오곡이 풍성하고 평온하여 인근주민들이 부러워 도련드르라 불렀던 도련1동과 마을 모양이 매화꽃과 같다고 하여 매촌(梅村 속칭 맨촌)이라 불리우는 도련2동 마을은 일주도로에서부터 남측 봉개동에 이르기까지 동서에 위치해 있다.제주시에서 일주도로를 따라 조천읍 방면으로 삼양3동, 삼양2동, 삼양1동이 있으며, 삼양해수욕장 입구에서 봉개동 방면 도로 동ㆍ서측으로 도련2동, 도련1동 마을이 있다.
도련1동
옛부터 도련리(道蓮里)라는 명칭은 당초 물형으로 지었다고 하는데 연화도수형(蓮花倒水形)이라 하여 도련이라 하였고 그후 인구가 증가되면서 사면이 부락이 형성되어 동으로는 회천, 남으로는 봉개, 용강, 영평, 서으로는 거로, 북으로는 화북, 삼양이 연하여 중심에 있음으로 사통오달(四通五達)로 길이 이어졌음으로 도련(道連)이라 개명하였고 도련드르라 함은 동쪽은 당(黨)카름 서평대(西坪垈) 매촌(梅村) 병디, 남당지(南堂旨) 북은 상근(桑根)이 머르로서 토질이 비옥하고 오곡이 풍성함은 물론 주거지도 평온하여 인근부락 사람들이 부러워하여 드르라 불렀다. 총면적은 3.95k㎡ 이다.
유씨(兪氏) 득선(得瑄), 강씨 성업장의(成業掌義), 고씨(高氏) 원적(遠積), 양씨 판관(判官) 및 효자(孝子), 백씨(白氏) (선달; 先達), 신씨 (효자; 孝子), 이씨(李氏) 별감(別監), 김씨 학자(學者) 달현(達鉉) 한연(漢蓮) 석종부(錫鐘父), 기타(基他) 등(等) 창설씨족이 있다.
처음 설촌하신 유삼재(兪三宰)의 15세손 득선(得瑄) 년대미상(年代末詳) 선후손(瑄後孫), 대수추정(代數推定) 고려충렬왕 때, 1295년 하면 약 700여 년 전 이요.그 후 강장의(康掌議) 성업(成業)은 구공회당(舊公會堂) 터에 살았는데 인물이 활발하였다는데 현재 그 자손이 남군으로 이거했고,고참판(高參判) 익보(益普)는 회방과 입시(回榜科 入試) 삼성사에 종문이 현존하고 왕조실록에 실려있으며 가묘에 봉주하였다가 4ㆍ3사건에 재진하였고, 공이 자(字) 자겸 영종 15년 을미 1739. 12. 26생 연세 14에 향시진사, 25세에 등과, 35세에 정삼품 통정대부 의략장군명월진만호(宜略將軍明月鎭萬戶) 공조참판 중시조 말로의 26세손이고 영곡공 득종의 12대 손이며 참판공지성(參判公知盛)이 아들이다. 향선생 변성운의 문인으로 영종 52년 병신 1776년에 의략장군 명월진만후 통정대부겸 왕위장군을 역임하였다. 순조9년 을미 1809년에는 조정에 과상(課狀)을 올리어 고양부 삼성사에 있음. 순조25년 을유 1825년에는 나이 87세 노령인데도 제주 회방노인으로서의 왕의 특명을 받고 상경하여 옥수로 친히 기부찰찰(肌膚察察)을 받았으며 그 건강한 모습을 극구 칭찬하면서 가선대부 동중구부사 호조참판의 직위와 이로 말미암아 연삼대의 직품까지 추서하였다. 이듬해에 서울을 떠나게 되자 후한 예물을 내리셨고 급마회량을 주어 편히 가도록 하였다.고통정대부 훈련원 고종익은 부민(部民)이 환상곡 당시 1894 고종 31년 3백석을 대납하였으며 중현은 1889 고종26년 문학 덕망이 일세추존 받았고 의사 고사훈 독립운동가로서 현재 사라봉 모충사에 1977. 1. 25 비각이 건립되었다.양판관 제하(濟厦)는 판관으로 통치삼읍(通治三邑)한 공적이 지대하였고,濟廈(제하)同治 二年 癸亥 癸亥武科 甲科(동치 2년 계해 계해무과 갑과)通政大夫 行善 工主簿 經碧紗道察訪(통정대부 행선 공주부 경벽사도찰방)靑岩察제訪兼 參禮察訪 宜略將軍門將(청암찰제방겸 참예찰방 의략장군문장)行訓練院主簿 濟州鎭兵島節制都尉行 濟州判官(행훈련원주부 제주진병도절제도위행 제주판관)光緖 二年 丙子(광서 2년 병자)通政大夫爲祈衝將軍行龍양衛副護軍行龍양衛副護軍兼 慶州鎭後 營將討浦使府尹
(통정대부위기충장군행용양위부호군행용양위부호군겸 경주진후 영장토포사부윤)特拜格浦鎭水軍僉節制使道 丁酉 二月 二日生 光武 甲辰 十二月 一日 終(특배격포진수군첨절제사도 정유 2월 2일생 광무 갑진 12월 1일 종)백선달(운봉; 雲鳳)은기골이 장대하여 일대호걸로 칭하였고양효자(梁孝子)는 각(各) 지숙(智淑) 헌종 14년 도광 28년 무신생孝子 善事繼母平 以貧寒 山樵水漁(효자 선사계모평 이빈한 산초수어)以供 甘旨體無全 衣手足 抵以盡(이공 감지체무전 의수족 저이진)定省世鮮始公開 干官延知州 李奎遠(정성세선시공개 간관연지주 이규원)甚衿嘉尙成院 文而給焉(심금가상성원 문이급언)隆熙 四年 宣統 三年 康戌 五月 二日終(륭희 4년 선통 3년 강술 5월 2일종)신효자는 위(緯)정득, 자(字)공인, 영종을미 8월 11일생
동동(東洞) 촉대거리와 서동(西洞) 사장전이 있는데 촉대는 벼슬한 자가 있을 때 경축으로 세웠다고 하며 (당시 고종학) 사장(射場)은 활쏘는 연습장인데 현존하고 있다.
도련2동
제주시에서 6km 동쪽으로오면 삼양 2동 마을이 나오는 데 여기서 1.5km 남으로 올라온 곳이 도련 2동 마을이다. 주위에는 경작지대가 많고 송림지대, 밀감농원지대가 있다. 남쪽으로는 초원목장 지대가 있고 2km 경에 봉개동과 연접하고 있으며, 북으로는 1.5km 경에 소나무로 푸른 원당봉이 아름답게 보이고 동쪽으로는 조천읍 신촌리 소재 진드르 평지와 접하고 있다. 남서쪽으로는 도련 1동과 접하고 있고 한라산이 시원스럽게 보인다. 총면적은 1.45k㎡이다.
제주시 도련 2동 매촌 마을은 지금부터 500여년 전 서기 1450년경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전하여 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최초에는 탐라양씨(耽羅梁氏)가 살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고증할 자료가 없기 때문에 확실하지 않다. 풍천임씨(豊川任氏) 족보에 의하면 이조명종 때에 서기 1560년경에 풍천임씨 방순(邦順)이란 분이 제주에 유배되어 도련 2동 696번지에 은거 정착한 내용이 전해지고 있어서 이때부터 매촌 마을이 형성되었다 볼 수 있겠다. 그 후 서기 1580년경에는 남평문씨(南平文氏)가, 1650년경에는 원주변씨(原州邊氏)가 거주하고 그 후에 탐라고씨(耽羅高氏), 경주이씨(慶州李氏), 탐라부씨(耽羅夫氏), 밀양박씨(密陽朴氏), 고부이씨(古阜李氏), 경주김씨(慶州金氏), 남양홍씨(南陽洪氏), 거창신씨(愼氏), 광산김씨(光山金氏), 신씨(申氏), 진주강씨(晉州姜氏) 그 외에 여러 성씨(姓氏) 가문이 이 마을을 지켜오고 있다.설촌 당시 이 마을 주위 개역샘미에서 이 마을을 바라보니 매촌(梅村)꽃형 같이 보인다 해서 매화매(梅)자에 마을촌(村) 자를 써서 매촌(梅村)이라고 이름 지었다고 한다. 그리고 매촌, 삼양동, 도련이구, 도련이리, 도련이동, 삼양동 병함 행정구역으로서의 동의 변천(洞變遷) 되었다.
현재 매촌(梅村)을 맨돈지라고 부르고 있는 것은 당시 부락지명이 매둔지(梅屯地)였는데 시대가 흐르면서 매촌(梅村)을 맨촌으로 불리워지는 것과 같이 매돈지가 맨돈지로 불리워지게 되어 맨돈지라 부르고 있다. 여기서 맨돈지는 부락명이 아니라 부락지경명(部落地境名)이다.
도련 지석묘군
고인돌은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서, 거대한 바위가 지상에 드러나 있고 그 밑에 고임돌, 묘역 시설, 무덤방 등이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대부분 무덤으로 쓰이고 있지만 공동 무덤을 상징하는 묘표석 또는 종족이나 집단의 모임 장소나 의식을 행하는 제단 또는 기념물로 사용되는 것도 있다.
도련 고인돌군 2기는 1971년 제주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도련 고인돌 1호와 도련 고인돌 2호는 각각 제주시 기념물 2-8호, 2-9호로 지정되어 있다.
지석묘는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 고인돌이라고도 부르며, 주로 경제력이 있거나 정치권력을 가진 지배층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4개의 받침돌을 세워 무덤방을 만들고 그 위에 거대하고 평평한 덮개돌을 올려놓은 탁자식과, 땅속에 무덤방을 만들고 작은 받침돌을 세운 뒤 그 위에 덮개돌을 올린 바둑판식으로 구분된다. 제주시 도련동에 있는 이 고인돌은 바둑판식으로 덮개돌 크기는 길이 2.45m, 너비 1.75m로 거북등 모양으로 인위적으로 다듬은 흔적이 보인다. 받침돌의 높이는 0.15㎝ 정도로 3개가 덮개돌을 받치고 있는데, 한쪽은 높이 22㎝로 들려 있어 제주도 고인돌 유형 중 아치형 고인돌로 여겨진다. 덮개돌의 거북등 모양은 일본 북구주(北九州)에 분포하는 고인돌의 특징으로 제주시 외도동에도 분포되어 있다.도련 고인돌 1호
제주시 도련2동 526번지에 위치해 있다. 상석의 규모는 길이 245㎝, 폭 175㎝, 두께 35-40㎝이며, 장축은 북서 방향이다. 지석은 북서쪽·북동쪽·남동쪽에 각각 3매가 고여 있다.도련 고인돌 2호
제주시 도련2동 529번지에 위치해 있다. 밭에 있으며, 상석의 규모는 길이 222㎝, 폭 205㎝, 두께 15~20㎝이며, 장축은 북서 방향이다. 지석이 없는 개석식 고인돌로 추정된다.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