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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개 따기
한승필
내 생전에는 두 번 다시 가볼 수 없을 것 같은, 아니 죽은 뒤 영혼마저도 가볼 수 없을 것 같은, 그곳은 오직 우리 밑바닥 인생들만의 깃발이 펄럭이는 지상천국이었다.
이제 와서 그곳을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늘상 주변머리 없는 말투로 상대방의 홧덧이나 돋워 오장육부나 뒤집는 주제이고 보면, 글로 쓰는 것 역시 그렇다. 앞뒤가 맞지 않는 너저분한 글나부랭이로. 그 긴 이야기를 조목조목 빠짐없이 적나라하게 써내려 갈지도 조금은 의문이다. 자우지간에 이런 엄살은 집어치우드래도 나는 그곳에서 모처럼만에 졸장부에서 벗어나 사내답게 굴었고, 또한 그 동안의 삶에서 느껴보지 못했던 가슴 뿌듯한 희열과 그 누구도 맛보지 못했을 것 같은 자아만족에도 흠뻑 취해 있었으니 말이다.
우리 하층 인생들의 고달픈 살이가 다들 그렇고 그렇다보니, 나 같은 인생 역시 그러한 틀 속에서 벗어날 수 없었는데, 나는 우연히 아니 다행스럽게도 내 괄괄한 성격에 딱 맞는 맞춤옷 같은 세상을 만나게 된 것이다. 지금 다시 돌이켜 생각해봐도 어찌 그런 일이 내게 일어났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지만, 여하튼 나는 그곳에서의 생활에 매우 만족스러웠던 것만은 사실이다. 따지고 보면 그곳은 ―갑자기 말을 바꾸는 것 같지만― 남들이 생각하는 별천지도 아니다. 솔직하게 말한다면 지옥 중의 지옥인, 결론은 사람이 사람을 무자비하게 죽이는 피비린내만이 진동하는 아수라장의 전쟁터였던 것이다.
그곳에는 내가 주야장장 빠지고 마는, 상다리가 휘도록 잘 차려진 술판과, 콩깍지가 씌었다하면 천하일색 양귀비로 둔갑 질하는 그 흔한 길거리의 계집들도 없었다. 어찌 보면 숨이 막혀 졸도할 일이지만 그래도 나는 아무런 불만 없이 지낼 수가 있었다. 사실 내가 그곳을 천국이라고 말한다면 남들은 나를 보고 미친놈이라고 말할 것이다. 아니 그보다 더, 실 이득만 챙기는 금전만능주의자라면 시거리를 붙으며 어떻게 그런 곳이 천국이냐고 을러댈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나는 사내답게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네 따위가 천국을 말할 자격이나 있냐’고 핏대를 올려가며 반박했을 것이다.
틀림없이 내가 천국에 갔었던 것만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데, 나는 지금 천길 나락같은 지옥으로 다시 떨어졌다. 그 지겹게만 살아왔던 현실세계, 하루아침에 뒤바뀐 이런 개지랄 같은 운명도 다 있단 말인가. 나는 타임머신을 타본 일이 전혀 없는데, 이거야 원 도무지 뭐가 뭔지….
어지럽다.
나는 지금 지독한 갈증 때문에 우선 목이 타서 견딜 수가 없다. 속은 또 왜 이렇게 따갑고 쓰린 것인지, 나는 잠에서 깨어난 순간부터 오직 샘물이 흐르는 소리만을 환청 속에서 넙죽넙죽 받아먹고 있다.
다시 잠을 잤으면 좋겠다. 순간, 나는 발광하듯, 게거품을 내뿜으며 ‘내 천국의 삶을 박살내버린 철천지 원수 놈들아!, 하고 외쳤지만 내 말을 듣는 이는 아무도 없다. 아니 내 주위를 둘러싼 사람들의 귓속에는 내 말이 꽂히지 않는 듯하다. 아직도 비몽사몽중이란 말인가, 아아, 나는 다시 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데….
적군과 아군이 마구 뒤섞여, 치고 박으며, 쏘아대고 찔러댄 공방전은 땅거미가 밀려오던 초저녁부터 시작되어, 칠흑 같은 하늘이 희뿌윰하게 밝아올 무렵인 새벽녘이 되어서야 장막을 걷어내듯 끝이 났다.
지옥이다.
갑작스런 적군의 기습공격에 통신망이 끊어진 아군은 지휘체계부터 엉망이 되어 순식간에 무너졌다. 전방고지의 제일선 보병부대에 소속된 나는 내 위치가 어딘지도 모를 만큼 제정신이 아니다. 장교와 사병을 구별할 수 없는 판국에 누가 누구를 지휘하는 상황인지 작전도 있을 수없다. 그 속에서 나는 나를 지키기 위한, 아니 본능적인 방어개념 마저 무너진 상황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싸움을 위한 싸움만을 미친 듯 하고 있다. 가끔 조명탄이 터지고 있었지만, 적과 아군을 구별할 수 없는 어둠속에서 정신없이 쏟아지는 포탄 아래 오직 야수의 본능만이 날뛰고 있을 뿐이다. 나는 누구를 상대로 총을 쏘고 대검으로 찔렀는지 그것마저도 분간할 수없다. 여기저기서, 포탄에 쓰러지는 자들이 터트리는 단발마의 비명과 아우성은 사방 골짜기에 넘쳐흘렀고, 나는 다행이 목숨이 붙어 있었지만 이미 이성을 잃은 지 오래다.
날이 밝아 세상이 환하게 드러나자 전투는 끝났지만, 내 눈에 들어난 전경은 고지의 언덕과 골짜기의 여기저기에 널브러진 그 수를 셀 수없는 적군과 아군의 시체들 뿐이다.
나는 아직 숨을 쉬고 있는가, 코를 찌르는 역한 피비린내가 온 산야에 진동하고 있다. 적군도 아군도 모두 사라진 고지의 찢겨진 진지에는 어젯밤의 그 고막을 찢을 듯 하던 포성도 이미 멎은 지 오래다. 시간이 멈춘 것처럼 세상은 적막하다 못해 숨을 쉬기에도 벅차다. 나는 치밀어 오르는 구토증을 간신히 참고 있을 뿐이다.
어젯밤까지만 해도 내 주위에는 수많은 전우들이 왁자지껄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지금은 단 한 사람도 없다. 도대체 그들의 목숨은 어찌된 것일까. 나는 무시무시한 악몽 속에서 발버둥치고 있다. 아직도 정신이 혼미하다. 아찔한 현기증을 느끼며 나는 비몽사몽 중에 있다. 한참 뒤, 나는 안개를 밀어내듯 주먹 쥔 손으로 두 눈을 부빈 뒤 다시 정신을 모아 사방을 둘러본다. 여전히 내 눈에 들어오는 전경은 포격으로 부서진 진지들과 찢겨지고 넘어진 아름드리 나무들, 그리고 넝마처럼 널브러진 적과 아군의 시체들, 그 뿐이다.
이 넓은 고지에 정말 목숨이 붙어있는 자는 오직 나 뿐이란 말인가, 설마 그럴 리가…. 도대체 누가 이기고 누가 진 싸움이란 말인가, 나는 기억에 떠오르는 전우들의 이름을 골짜기가 울리도록 목이 터져라 불러본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메아리 뿐, 그 어느 골짜기에서도 ‘여기요, 하고 대답하며 일어나는 자는 없다. 여전히 나 혼자 뿐이다.
전쟁이 터지던 날, 그 이전 까지만 해도 세상은 온통 마시고 취하고 떠들고 비틀거리며 먹고 싸고 했는데, 지금 세상은 불바다가 지나간 듯 순식간에 절망 뿐인 잿더미만 남아있다. 여전히 고지에는 적요만이 흐르고 있다. 나는 무너진 참호 안에서 기어 나와 다시 한 번 전우들을 애절하게 불러본다. 모두 다들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지금 여기에는 적군도 아군도 시체 외에는 없다. 혼자라는 두려움에 나는 미친 듯 진지 속을 돌아다녔지만, 역시 살아남은 자는 없다.
다시 목이 탄다. 아니 그 타는 목마름을 심신의 고통 속에 잠시 망각하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도무지 인내심만으로는 참을 수 없는 허기와 갈증이다. 무의식중에 허리에 찬 수통을 열어 입에 대고 흔들어 본다. 기대한 만큼 물은 한 방울도 떨어지지 않는다. 고지 밑의 골짜기를 둘러보았지만, 물이 흐를만한 시내는 가까이에 없다. 이 높은 고지에 샘물이 솟을 리도 없다. 물을 찾아 가자면 너무도 길이 멀다. 나는 무심결에 가슴속 안주머니에 손을 넣어 본다. 담뱃갑이 잡혔다. 나는 한 개비를 뽑아 물고 불을 붙여 한 모금을 길게 빨아 삼켜본다. 가슴속 밑바닥까지 목덜미를 타고 내려가는 연기의 쾌감이 기가 막힐 정도로 짜릿하다. 순간, 다시 어지러웠다. 여전히 입안은 버적버적 타들어 가고 있다. 지독한 갈증이 담배 한 모금으로 풀어질 리도 없다.
나는 힘겹게 몸을 세워 본다. 땀으로 흠뻑 젖은 군복에서는 찐득한 소금물이 한 되 박쯤 적셔진 듯 무겁고 칙칙하다. 오늘 따라 시원한 바람도 없다. 나뭇가지들의 흔들림이 멎어 있다. 여간 만만치 않은 삼복더위다. 빌어먹을 이런 날엔 보신탕, 아니 삼계탕, 호화스런 것들은 집어 치우더라도 오직 물 한 대접에 건빵 한 봉지만 있었으면 만족해할 일이다. 내 집의 냉장고 안에는 마실 것 정도는 충분히 넣어져 있었는데, 아내는 언제나 부식품 외에도 여름 더위를 식힐 수 있는 주스나 보리차, 또는 우유와 과일들을 그득히 채워두는 게 일이었다. 가족을 먼저 생각해서라기보다 본인이 먼저 남들보다 더위를 참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체질적인 문제지만, 누룩돼지 같은 비곗덩어리가 이 살인적인 무더위를 이겨내려면 냉장고에 매달리는 방법 외에는 달리 묘책이 없었을 것이다. 갑자기 집이 그리워진다. 에어컨은 없지만 시원한 바람을 내는 선풍기 앞에서 러닝셔츠 차림으로 장구 배를 드러내고 느긋하게 딩구는 일도 기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가 어딘가, 나는 지금 목숨이 저당 잡힌 전쟁터에 있지 않은가. 태평스럽게 아니 그 정도는 아니지만 타고난 천성답게 게으름을 피우며 한가하게 여가를 즐긴다는 생각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지할애비가 죽었다 해도 개인의 자유가 용납될 수 없는 군대이고 보면.
나는 차츰 주위의 비참한 환경에 적응이 되어가고 있다. 이미 두려운 생각은 없다. 나는 흐느적거리는 걸음걸이로 사지가 찢겨진 채 피범벅이 된 전우들의 시체주위를 맴돌아 본다. 생사를 확인하는 작업일리 없다. 나는 그들의 몸에 찬 수통속의 물을 찾고 있다. 그러나 물이 든 수통은 발견되지 않는다. ‘모두가 목말라 죽은 놈들 뿐인가, 순간 나는 그런 와중에도 시체들 속에서 중대장과 소대장, 그리고 내가 이끌었던 분대원들을 찾고 있다. 그들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아니 그들의 시체는 너무도 심하게 훼손되어 있다. 그렇다면 우리 중대 역시, 모두 전사했단 말인가. 저 혼자 살겠다고 탈영한 놈은 없겠지…. 그래도 우리중대는 훈련이 잘된 최정예가 아니던가. 그들을 잠시 의심했던 일이 부끄럽다. 사실 나 역시 목숨이 붙어 있다는 사실이 의심스러워질 만큼, 어젯밤의 포격과 총성은 강도가 높았다. 그토록 치열한 공방전 속에서는 개미새끼 한 마리도 살아남지 못했으리라. 나는 부대의 후방 쪽에 위치한 취사반을 둘러본 뒤, 한참 만에서야 찢겨진 시체들 속에서 물이 들어있는 수통 한 개를 겨우 찾아냈다.
고지에서 마셔보는 물맛이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 여기에 건빵 한 봉지가 추가로 있었으면 기가 막힐 일인데…. 그러고 보니 나는 건빵을 지급 받은 일이 기억에 없다. 분명히 비상식량인 건빵은 지급되었을 것이다. 이런 빌어먹을, 어떤 놈이 몽땅 차지했단 말인가. 보급 수령하는 놈들의 수작일 것이다. 비겁한 놈들이 적당히 중간에서 먹어치웠을 것이다. 군대에도 도둑놈이 있단 말인가? 무슨 군대가 이따위란 말인가.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나는 대기업의 당당한 사무직 사원이 아니었던가. 나는 지금 넥타이를 맨 정장차림이 아니라 푸르딩딩한 얼룩무늬의 전투복 차림이다. 다시 지독한 허기가 밀려와 허리통을 꺾는다. 여기에 김이 무럭무럭 나는 밥은 없다. 아니 입안에 넣고 씹을 것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어떤 놈이 이 높은 고지까지 아침 배식을 날라다 줄 리도 없다. 진지 후미의 취사반 역시 쑥대밭이 된 마당에, 누가 나를 배불리 먹이겠는가.
나는 이제 어디로 가야하나, 나의 소속부대는? 갑자기 앞일이 걱정된다. 비록 여기에 남은 자는 혼자 뿐이지만, 나는 아직 군인이다. 내게 후퇴나 철수를 명령한 자는 없다. 아니 그런 명령을 전달받을 자도 없다. 이런 판국에 내가 알게 무언가, 다시 한 번 사방을 빙 둘러보지만 주위는 온통 사방이 가려진 험준한 산줄기들 뿐이다. 도무지 어디로 가야할지 방향감각이 잡히지 않는다. 이 넓은 고지에 달랑 혼자남아 말없는 시체들 속에서 진지를 사수한다는 것은 바보짓이다. 그렇다면 나는 이 지옥 속에서 탈출해야 하는 것인가, 본대 복귀의 명령도 떨어지지 않는 상황 속에서… 근무지의 이탈은? 탈영이다. 그리고 군법에 의해 재판에 넘겨지리라.
어느새 햇빛의 열기가 살갗을 태우고 있다. 굶주림과 더위마저도 나에게는 적이고 전쟁이다. 나는 서늘한 녹음 속에 빠져들고 싶다. 피로가 밀려와 잠시 서있는 일에도 힘이 부친다. 진지는 모두 무너져 있다. 시체만 쌓인 참호 속에 몸을 눕힐 수는 없다. 나는 총대를 집고 서서 먼산만을 바라볼 뿐이다. 다시 어젯밤의 전투상황이 나를 긴장시키고 있다. 그래, 나는 아직 이 고지의 유일한 단 한명의 군인이 아닌가.
무심코 고지 아래의 골짜기를 내려다 본 순간, 나는 동물적인 본능으로 땅바닥에 몸을 납작 엎드린다. 움직이는 물체가 희미하게 눈에 들어온다. 그들은 나의 위치에서 몇 백보 떨어진 골짜기에서 굼벵이처럼 움직이고 있다.
적군인지 아군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일단의 무장병력이 내가 있는 진지를 향해 올라오고 있다. 그들의 행군은 개미처럼 느리다. 나는 무너진 참호 옆의 사각진 바위를 은패막 삼아 몸을 숨긴 뒤, 그들을 향해 총부리를 겨눠본다. 사정권 안에 들어오기만 하면 방아쇠를 당길 작정으로 정조준의 자세를 취해본다.
적군인지 아군인지, 나는 잔뜩 긴장된 상황 속에 그들의 숫자를 의식적으로 세어보고 있다. 하나, 둘, 셋, 넷…. 모두 일곱 명이다. 군장이 가벼워 보이는 것으로 보아서 소총수들 같다. 그들은 경계태세가 아니다. 마치 소풍이라도 나온 듯 골짜기를 둘러보며 대열도 짖지 않고 있다. 언덕을 기어오르는 걸음걸이도 몹시 힘들어 보인다. ‘아니 저런 넋 빠진 놈들도 군대란 말인가’ 나는 바위 뒤에서 계속 그들의 행동에 모든 신경을 집중하고 있다. 마치 하늘을 날고 있는 독수리를 경계하는 산토끼처럼. 그러나 이내 나의 가슴속에서는 긴장감이 풀리기 시작한다. ‘저렇게 군기가 빠진 놈들 쯤이라면’ 도대체 놈들은 무얼 믿고 저렇게 태연할까, 칠대 일의 전투라고는 하지만 은근히 자신감이 앞선다. 놈들의 눈에는 골짜기의 즐비하게 늘어진 전사자들이 보이지 않는단 말인가, 나는 갑자기 자존심이 상해서 견딜 수가 없다. ‘저놈들은 어젯밤의 전투로 넋이 나간 모양이군, 나는 그들의 무사태평한 행동에 부아가 치밀어 올랐지만 이성을 잃지 않으려고 흐트러진 정신을 다시 가다듬어본다. 여전히 방아쇠에서는 손을 떼지 않고 있다.
조금만 더 가까이를 중얼거리고 있는 사이에 그들은 사정권 안에 들어와 있다. ‘아니 놈들은 적군이 아닌 아군이 아닌가. 나는 그들을 정확하게 식별한 뒤 그들에게 겨눴던 총대를 높이 들어 “어이 여기다 여기”하고 나의 위치를 알린다.
“빌어먹을, 모두 죽었는데 저놈들은 멀쩡하게 살아있었군.”
나의 위치를 파악한 일곱 명의 아군들은 엉금엉금 기어오르던 행군에 속도를 높여 바짝 다가오고 있다. 나는 아군이 나타나자 다시 힘이 솟기 시작한다.
곧 바로 고지의 진지에 도착한 사내들은 내 어깨의 견장을 보고 부동자세로 경례를 올린다. 사내들의 계급을 보니 인솔자인 병장 외에는 모두가 이등병들이다. 사내들은 군장을 맨 전투복 차림이지만 티끌하나 묻지 않은 말쑥한 모습들이다. 마치 길거리의 건달패들을 모집해온 느낌이다. 나는 인솔자인 젊은 병장의 옆구리를 총대로 툭 건드리며 “어디서 굴러먹다온 놈들이냐?” 하고 일부러 악에 복받인 듯 고함부터 질러본다.
“오늘 도착한 신병들입니다. 사령부의 명령으로 보충 병력으로 편입하라는 지시를 받고 왔습니다.” 젊은 병장은 부동자세로 보고하고 있지만 여유만만한 선임병의 완벽한 자세다.
“보충병이라고?”
“어젯밤의 전투는 누가 이겼습니까?”
“이 새끼야, 보면 모르겠어. 눈깔은 뒀다 뭐하나, 우린 엉망으로 당하고 있었는데, 지원도 하지 않고 이제 와서 그따위 개소릴 지껄이나? 보다시피 우린 전멸했다.”
“하지만 중사님은 건재하시잖습니까!”
“에헴, 그렇지. 본관께서 이고지에 주둔하고 있는 이상, 아군의 승리가 확실하지. 허지만 적군은 진 게 아니야, 작전상 후퇴했을 뿐이란 말이다. 그들도 이 고지의 중요성을 안다면 다시 공격할 것이다. 알았나?”
나는 혼자 살아있다는 이유로 신병들 앞에서 조금 우쭐거리고 싶다.
“후방에서 저희는, 어젯밤의 전투가 이토록 치열했으리라고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저는 오직 사단본부의 명령에 따라 보충병들을…” 하고 병장은 서슬 퍼런 나의 태도에 주눅이 들어 말꼬리를 흐린다.
“흠, 보충병들이라…? 지금 여기엔 장교고 뭐고 없닷. 그래 본부에선 여기 사정을 전혀 모른단 말이지?”하고 나는 신병들의 얼굴을 정면으로 꼬나본 뒤 “이 따위 햇병아리 몇 놈을 보충병이라고 보냈단 말이지? 햇햇해, 이거야 원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보이는데…, 아니 총소리만 들어도 죽어 자빠질 놈들이 아닌가!” 하고 무시해버린다.
내 말투에 몹시 당황한 병장은 검면적은 웃음을 피식 흘리며 “저래 뵈도 제식훈련은 받은 놈들입니닷.” 하고 대답한다.
“훈련이라?”나 역시 피식 웃음을 흘렸지만 신병들의 태도에는 기가 막힌다. 그들은 모두가 노병들이다. 젊은 장정들은 어디로 빼돌리고 저 따위 쓸모없는 노인네들을 끌어 모은 것일까. 나는 형편없어 보이는 보충병들의 흐트러진 태도만 보아도 울화가 치밀어 올라와 견딜 수가 없다. 이게 무슨 병정놀이란 말인가, 언덕을 올라올 때 눈치 챘지만 체력마저도 형편없어 보인다. 지금 신병들은 모두가 진땀을 뺀 듯 맥 풀린 모습들이다. 내 앞에 부동자세로 서있는 일 하나로도 고역들을 치루고 있다. 나는 그러한 이자들이 역겹게 느껴진다. 오늘 밤 이자들과 함께 다시 전투를 치룰 일이 왠지 두려워진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부터 저들은 내 명령에 죽고 살 수 있는 부하들이 아닌가, 나는 신병들의 흐트러진 자세를 바로 세운 뒤 신상 기록부터 파악해 본다. 대충 어림잡은 나이로도 사오십 살은 먹어 보이는 늙다리들이다.
“에헴, 본관은 예비역 출신이신 허중사님이시닷. 너희들도 예비역들인 갓?”
“아닙니닷. 이들은 군대 경험이 전혀 없는 신병들입니닷!” 하고 병장이 보고한다.
“신병? 흠, 군대 경험이 전혀 없다? 그렇다면 젊었을 때 빈들빈들 농땡이나 깠던 놈들이란 말이지? 흠, 좋다. 본관께서 지금 당장 군대 맛을 보여주겠닷. 병장, 먼저 재식훈련부터 제대로 시키도록.”
“허중사님, 저들은 지금.” 하고 병장은 나의 갑작스런 명령에 매우 난처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면 총검술을 시켜볼까?”
“그건 더욱 안 될 일입니닷. 신병들은 먼길을 걸어오느라고 지금 매우 지쳐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습니닷. 더욱이 위생병도 없는 곳에서 만약에 불상사라도 일어난다면…”
“이것도 저것도 할 수 없다면 이런 병신들과 함께 개죽음이라도 기다리란 말인갓?” 나는 땅바닥에 침을 딱 뱉으며, “이런 빌어먹을, 사단 사령부는 도대체 무얼 하는 놈들만 우글거린단 말인가! 에이 개새끼들, 제자리로 돌아가 쉬엇!”하고 알량한 아량을 베풀어 본다.
나는 너무도 기가 막혀 꼴불견들인 사내들의 얼굴들을 정면으로 한 놈 한 놈 노려본다. 그런데 놈들의 낯짝이 어딘가에서 본 듯한 낯이 익은 모습들이다. ‘어디에서 봤더라? 나는 그들 중에서 가장 낯이 익은 늙은 사내를 노려보며 기억속을 더듬어 본다. 사내는 나를 잘 알고 있다는 눈치다. 대충 짐작이 가지만 나는 중사의 체면을 유지하기 위해 안면몰수 해버린다. 사사로운 인연으로 군기를 흐릴 수는 없다. 나는 무조건 시치미를 떼버리면 그만이다. 중사의 권한으로 그 정도의 위력은 부릴 수 있다. 나는 병장을 불러 내가 쉬었던 바위 그늘 밑으로 끌어들인다. 신병들은 뙤약볕 밑에 놔둔 채로다.
휴식에 들어갔지만, 신병들을 생각하면 여전히 걱정이 앞서 마음부터 무거워진다. 나는 반쯤 눈을 감은 채 늙은 신병의 신상을 기억속에서 더듬고 있다. 그는 나보다도 십오 세 이상은 나이가 먹어 보인다. 한참 연상인 것만은 틀림없다. 빌어먹을, 저자가 왜 하필이면 내 밑으로 왔을까, 제일 나이가 많은 노병은 우리 임대아파트 길 건너편의 주유소 영감이다. 미터기를 조작해서 엉터리로 기름값을 올려 받아먹던 악덕 기름장이 최영감이 아닌가, 몇 번인가 외상값 때문에 입시거리가 붙어 멱살까지 잡힌 뒤 따귀까지 맞았던 기억을 나는 잊지 않고 있다. 나는 그 뒤 영감의 기름값을 떼어먹기 위해 정문을 두고 일부러 뒷길을 택했다. 결국 기름값은 미수로 남았겠지만, 영감은 아직도 외상값만은 잊지 않고 있으리라. 어쩌면 기름먹인 장부에 적어놓았을지도…. 그러고 보니 주유소 최영감을 포함한 여섯 명의 신병모두가 사회에서 잘 알고 지냈던 사이들이 아닌가, 사실은 잘 알고 지냈다기보다도 어딘지 모르게 대면하는 일이 늘상 거북스러운, 아니 잡아먹어버리고 싶도록 껄끄러운 자들이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나는 지금 저자들의 위에 앉아있다. 나는 가슴 뿌듯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장난스런 손동작도 취해본다.
두 번째 사내는 내가 몸담았던 금강 그룹의 영업부 김부장이다. 오십 초반의 욕심으로 뚤뚤 뭉쳐진 배불떼기로 그 거대한 몸을 주체하지 못해 늘상 뒤뚱거리는, 그래도 여색만은 죽자살자 밝힌다. 사내의 부하 여성들에게 늘상 치근거리는 염치도 무엇도 없는 뻔뻔스런 인간이다. 그래, 이 작자는 최영감보다 더 악질적으로 나를 괴롭힌, 아니 이자는 나를 아예 사람 취급도 하지 않았다. 업무가 비비 꼬이는 날엔 언제나 부하 직원들을 달달 볶아대면서 특히 나를 볼 때면 잡아먹지 못해서 안달을 하는, 더욱이 나의 면상에서 노골적으로 내뱉는 말이 “능력이 없으면 자진 사표를 쓰라”는 말과 함께 날카로운 눈초리로 쏘아보며 사사건건 시비조로 물고 늘어졌던, 아니 그는 나를 인간이하의 벌레 취급했던 자다.
세 번째 신병은 이과장 그리고 네 번째 신병은 조대리, 이들 두 사람 역시 나의 상사였다. 두 사람은 사십대 초반으로 나이나 성격이 비슷한 사내들로 바짝 마른 장작개비들이지만 나와는 입사동기들이면서도 평사원인 나와는 달리 줄이 좋아 승진이 빨랐던 자들이다. 이들 역시 나를 월급만 축내며 자리만 차지한 무능력자로 취급했다. 더군다나 자신들은 수도권의 대학출신들이라며 늘상 지방대학 출신인 나의 촌스러움과 개성 없는 행동을 비웃었다. 더욱이 이자들은 입사동기인 나를 술좌석에서 마저 동석하는 일을 꺼려했다. 언제나 나를 따돌림 했던, 김부장보다 더 비겁한 작자들이다.
다섯 번째는 또 누구인가, 그렇다. 이자 역시 늘상 나와 악연으로 만났던 고등법원의 박검사가 아닌가. 금강 그룹의 비리를 조사한다며 나의 사생활에 끼어들어 집중 추궁하던 악덕검사다. 수도권 변두리의 소형 임대아파트가 전 재산인 나를 세무 조사했던 비겁한 놈, 진짜로 들춰내야 할 거물급들은 돌려세워 눈감아주고 나 같은 조무래기를 잡아 옭아 넣으려 했던, 그래 이자야말로 나를 사회의 쓰레기 취급했던 쓰레기 중의 쓰레기가 아닌가. 사십 앞뒤의 나이로 부모의 재산을 얼마나 상속 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십여 년의 법관 생활로 그토록 어마어마한 재산을 모을 수는 없는 일이다. 어딘가에서 들었던 얘기지만 박검사의 재산은 강남의 빌딩과 고급 아파트에 수도권 근방의 수만 평 전답과 통장에는 또 그 얼마일지 모르는 거액이 들어있다고 하는데, 그는 외제차에 그 아내는 외제의 고가 보석으로 온몸을 두룬, 그야말로 상상도 못할 거부라는 것이다. 사업가도 아닌 국가공무원 주제에 아무리 법관의 보수가 높다 할지라도 뇌물에 의한 부정한 짓거리를 하지 않고는 모을 수 없는 재산이다. 법을 집행하는 자가 법을 어겼다는 짓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이다. 더욱 이자는 병역마저 면제 받았던 놈이 아닌가. 학력으로 보나 신체조건으로 보나 누가 봐도 이놈은 나보다 나은 것이다. 아니 영양상태 역시 나보다 잘 처먹고 잘 싸댄 박겁사가 낳을 것이다.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나 보약이란 것을 모르고 살아왔다. 아내는 삼복더위에도 보신탕은 고사하고 삼계탕 한번 끓여준 적이 없다. 쥐꼬리만 한 박봉을 염치없이 들이미는 주제에 내 건강에 무심한 아내를 탓할 처지는 아니다. 내 처지는 뒤로 미뤄 접어 두더라도, 법을 집행하는 법관이 먼저 법을 어기는 짓거리를 했다면, 좋다. 나는 오늘부터 이놈 앞에서 육법전서에도 없는 법을 만들어 집행하리라. 악법도 법이라면 무식 법도 법이 아닌가. 여기에는 오직 군법만이 있을 뿐이다.
나는 바위 그늘 밑에 누워 고개를 삐쭉 내민 뒤 다섯 번째 신병을 손짓해 불러본다. 얼굴 전면에는 일부러 정이 넘쳐흐르는 맏형의 미소를 지어 보이며. 그는 정면으로 내리 퍼붓는 햇빛이 불편했던지 재빠르게 내게로 달려온다. 나는 “편히 쉬어라” 하고 부드럽게 말해본다. 그러자 그는 감동적인 얼굴이 되어 “허중사님, 저를 알아보시는군요!” 하고 당돌하게 말한다. 순간 나의 참았던 인내심이 와르르 무너진다.
“내가 너를 안다고? 이등병은 똑똑히 들어랏. 여긴 군대닷. 난 네놈의 상관이닷. 그리고 여기 젊은 병장은 나이는 어리지만 네놈보다 군 경력이 많은 선임 병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도록. 또한 사회에서의 경력은 아니 직책 따위는 인정해줄 수도 없다. 다시 말해서 그 누구도 네놈의 과거 따위는 알려고도 하지 않을 것이며 알아주지도 않을 것이다. 여기 군대에는 군대만의 법이 있다. 이등병은 사사로운 일로 본관에게 알랑거리지 말도록. 알아들었으면 제자리로 돌아가라. 이 얼빠진 짜식아!”하고 나는 두 눈을 부릅뜬 뒤, 그를 제자리로 돌려보낸다.
‘흥, 너 따위 인간에게 동정을 베풀 이유는 없지’ 나는 그 이전의 그와 연관된 일을 떠올려 본다. 언젠가 나는, 음주운전으로 뺑소니 오해를 받은 친구를 변호하다 위증죄를 뒤집어 쓸 뻔했던 일을 생각해내고 몸서리를 쳐본다. 나는 그 때 얼마나 혼쭐이 났는지 모른다. 다시 생각해 보아도 치가 떨리는 일이다.
마지막으로 여섯 번째 신병의 신상문제다.
분명히 낯익은 얼굴인데, 나는 이자를 기억속에서 영원히 지워버리고 싶다. 놈과는 너무도 추잡한 악연으로만 연결되어 성깔대로라면 이 자리에서 당장 총살시켜버리고 싶다. 사내는 처음 만난 순간부터 내게서 눈길을 돌리고 있다. 아니 꼬리 내린 개처럼 잔뜩 겁을 집어먹고 있다. 그러나 도망쳐봐야 부처님 손바닥이 아닌가.
내가 놈들의 비행을 생각하며 단죄를 계획하는 동안, 병장은 군장을 베고 잠이 들어 가볍게 코까지 골고 있다. 그때다. 눈치 없는 기름쟁이 최영감이 엉금엉금 내게로 와서 앉는다. 나는 “이등병 무슨 용무인가?” 하고 먼저 입을 열어본다. “중사 나리, 실은 내가 당뇨 때문에, 합병증이 생기면 문제가 심각한디, 어떻게 높은 자리에 있을 때 좀 봐주더라고….”하는 영감은 울상이지만 나는 영감의 능구렁이 같은 속셈을 잘 알고 있다. 나는 갑자기 인상을 구겨 맹수로 돌변한다. “이런 빌어먹을 자식 봤나! 뭐, 중사 나리? 여기가 네놈 안방인줄 아는갓? 한 번은 봐주겠다. 허나 또 싸가지 없는 사제 말버릇이 나오면 그때는 용서하지 않겠다.” 하고 말한 뒤, 나는 그의 귀싸대기를 올려붙이며 “이병, 너는 이 세상에서 누굴 제일 높다고 생각하낫? 말해봐랏.” 하고 닦달하자 얼이 빠진 그는 “우리 할아부지, 아니 하느님이 제일 놓으십니다.”라고 대답한다. 그러자 잠을 자는 줄 알았던 병장이 일어나 한마디 거든다. 그는 내가 늙은 신병을 심심풀이 대상으로 불러댄 줄 착각하고 있다.
“이봐, 최이병. 그러면 군대에서 제일 높은 사람이 누군가?” 하고 병장은 군대식으로 제법 능글맞게 기름쟁이 영감을 다루고 있다.
그는 갑자기 당혹스런 듯 얼굴이 흙빛으로 변해 “그 분은 국군 총사령관 이십니다!”하고 씩씩하게 대답한다.
나는 병장에게 모든 것을 맡긴 채 뒤로 물러앉아 씩 웃어볼 뿐이다.
“임마 틀렸어!”하고 병장이 말하자, 영감은 안절부절못한다.
“그럼 누구십니까?”
병장은 능글맞게 “가르쳐줄 테니. 너는 내게 무엇을 보답할래?” 하고 묻는다. 나는 옆에서 거들먹이며 “대답하지 않으면 구보를 시키겠다.” 하고 엄포를 놓아본다.
“아이고 하나님 아버지, 제발 구보만은… 그리고 자비를 베풀어 용서해주십시오!” 영감은 구보란 말에 질겁을 한다.
“임마, 가르쳐 줄 테니 복창하랏. 세…세상에서 제일 높으신 분이 누구 시냐면 여기 계신 허중사님이시다. 알았나?” 하고 병장이 고함을 치자, 영감은 “옛.” 하고 복창을 한다.
“허중사님은 누구보다 높다고?”
“하느님보다 높으십니닷!”
“그러면 네 할애비와 중사님 중에는?”
“옛, 울 할아버지보다 중사님이 더 존경스런분입니닷.”
“흠, 이제야 무얼 좀 아는가 보군.”
다른 신병들이 낄낄 거리자, 영감은 어린아이처럼 눈물을 찔끔찔끔 짜댄다.
“어이구, 아가야, 자꾸 울면 매매한다. 뚝, 그쳤. 매매 맞을랫?” 병장은 한술 더 떠 최영감을 놀리고 있다. 영감은 아예 죽을상이 돼 있다.
나는 “본관은 군의관이 아니시다. 최이병 어린애처럼 엄살은 그만 피우랏, 자 이제 그만 제자리로 돌아가랏.” 하고 일부러 험한 인상을 지어보이며 내가 취할 수 있는 최대한의 위엄을 부려본다. 나의 서슬 퍼런 악다구니에 최영감은 잔뜩 겁을 먹고 엉금엉금 기어서 제자리로 돌아간다.
한 순간이 지나가자 금강그룹의 내 상사였던 김부장과 이과장 그리고 조대리가 함께 내게로 다가와 은근히 추파를 던지며 접근한다. 나는 최영감 앞에서 보다 더 험악한 인상을 지어보이며 위엄을 갖춰본다. 도대체 신병교육대에서는 이자들을 어떻게 교육시켰기에 이토록 군기가 빠져있단 말인가. 나는 먼저 “네놈들은 또 뭐?” 하고 소리쳐본다. 그러자 놈들은 꼬리 내린 강아지처럼 슬금슬금 제자리로 돌아가 버린다. 나는 신병들을 인솔해 온 병장을 쳐다본다. “강병장?” 하자 그는 선임병답게 “넷”하고 씩씩하게 대답한다. 나는 병장에게 군인들만이 통하는 눈치작전으로 교신해 본다.
“강병장? 신병들의 군기가 엉망이닷. 아직 민간인의 떼를 벗지 못했닷. 병장에게 명령하는데, 저 한심한 신병놈들의 군기를 똑바로 잡지 못하면 본관은 그 책임을 병장에게 돌리겠다. 알았나?”
나의 명령에 병장은 재빠르게 내 속셈을 알아차린다. 그는 내 눈빛만 보아도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가를 먼저 알고 있다. 나는 눈치가 빠른 병장이 마음에 든다. “그리고 본관이 한마디 더하겠는데, 본부요원들이 오기 전까지는 이 고지의 지휘권은 내게 있닷. 제군들은 명령불복종죄를 아는갓. 전시의 명령불복종은 총살형이라는 사실을 명심하도록. 본관은 제군들의 사소한 실수도 용납하지 않겠다. 여긴 전쟁터닷. 너희들은 소풍을 온 게 아니닷. 저 곳곳에 쌓여있는 시체들이 보이지 않는갓? 정신 똑바로 차리도록.”
나의 훈시가 끝나자, 병장은 군인 본연의 자세로 돌아온 듯 두 눈에 살기를 띄며 신병들을 집합시킨 뒤 즉각 행동개시다.
“이 개새끼들, 정신 상태들이 엉망진창이다. 여기가 네놈들의 안방인줄 알았낫! 너희들은 그 동안 푸근한 이불속에서 배부르게 처먹은 뒤 여편네 궁둥이나 두들기며 뒹굴었겠지. 허나 여긴 군대닷. 난, 지금 이 순간부터 네놈들의 정신 상태부터 뜯어 고쳐 놓겠다. 전원 차렷, 열중 쉬엇, 차렷, 동작이 느리닷, 다시 한 번 차렷! 그는 그렇게 신병들을 닦달한 뒤, 내게 다음 지시 사항을 묻는다. 나는 병장의 귀에 입을 대고 속삭이듯 작은 목소리로 명령을 전달한다.
“병장, 본관께서는 지금 몹시 목이 마르고 배가 출출하시닷. 다음 사항은 병장이 알아서 처리하도록”
병장은 복창한 뒤 신병들에게 명령한다.
“지금부터 군장 검사닷. 개수작 부리는 놈은 기합이닷. 각오하랏!”
드디어 병장은 신병들의 군장을 점검한다는 이유를 대어 몸수색에 들어간다. 곧 바로 신병들의 군장 속과 욧속에서는 담배와 음료수며 빵과 과자 쏘세지 등이 쏟아져 나온다. 나는 건빵 정도를 기대했는데 의외의 물건들이 내 앞에 쌓이자 흐뭇한 미소를 지어본다. 모두가 사회에서 사용되는 고급품들이다 병장은 젊은 청년답지 않게 신병들 앞에 인정사정없다.
“누가 사제품을 지니라고 했는가? 우리 군대가 거진줄 아낫? 국방부는 갑부다. 네놈들은 군수품을 외면했기 때문에 군법을 어겼닷.” 병장은 신병들을 요령 있게 아주 잘 다루고 있다. 나는 그저 “잘한다. 잘해!”를 입속에서 연발하며 그의 행동을 칭찬해준다.
“사제품은 압수닷. 또 다시 이런 쥐새끼 같은 짓을 하면 군법회의에 넘겨서 총살 시키겠다. 알았나? 이 사제품은 이 병장님께서 보관한다.” 병장의 서슬 퍼런 엄포에 신병들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소지품을 빼앗긴데 대한 분통함보다 다음에 있을 강압적인 구타나 기합이 더 두려웠던 것이다.
“다음 상황은요?” 하고 병장은 자신의 행동을 뽐내 보이며 내게 또 다른 명령을 기다린다.
“에헴, 불법인 사제품은 바위 뒤로 치우도록. 지금부터는 본관께서 지휘하시겠노라. 병장은 좀 쉬도록” 나는 느릿한 동작으로 거드름을 피우며 신병들 앞에 나선다. “에… 우리는 지금 휴식할 시간적 여유가 없닷!, 적은 언제 또 다시 기습해올지 모른닷. 먼저 본관이 참호 파는 임무를 주겠다. 이건 보병의 기본 의무닷. 자 그러면 최이병, 넌 당뇨라고 했지? 무리하면 해롭다 네가 들어갈 참호 하나만 파도록, 예 또 김이병, 이이병, 조이병? 너희들은 최일선 자리에 각각 하나씩, 그리고 무너진 참호안의 시체들을 치우도록, 썩은 냄새를 맡을 수는 없지 않은갓, 예, 또 박이병과 제일 젊은 놈 너희들은 보아하니 아주 건강해서 힘깨나 쓰겠군, 너희들은 각각 두 개씩이다. 시간은 점심때까지다. 꾀부리는 놈은 가만 두지 않겠다. 자, 그럼 요령 피우지 말고 각자 위치로 가서 작업하도록.”하고 나는 일방적으로 지시한다. 내 명령이 떨어지기 바쁘게 신병들은 야전삽을 들고 각자 위치로 흩어진다. 보나마나 죽을상들이다. 불볕더위 아래 서 있는 일 만으로도 죽을 지경인데, 사회에서의 육체노동이라고는 제 여편네와 밤일하는 것 외에는 전혀 힘을 써보지 못한 작자들이 참호를 판다는 것은 중노동에 해당된다. 나는 그들이 고역을 치르던지 말든지 무사태평으로 바위 그늘 밑에서 병장과 벌러덩 드러누워 휴식을 취해본다.
병장이 먼저 내게 의시 대듯 씩하고 웃어 보인다. 나는 신병들에게서 압수한 사제품들을 만져보며 흐뭇하게 웃어본다. 이것은 횡재다. 나는 먼저 이것저것 눈에 보이는 대로 깨물고 씹어본다. 그리고는 음료수를 마셔보며 병장에게도 이것저것을 먹어보라고 선심을 쓴다.
“짜식들, 군대놀이가 소풍인줄 알았나!”
나는 실컷 배를 채운 뒤, 군장을 베고 드러누워 본다. 병장은 먹다 남은 사제품들을 잘 정리한 뒤 자신의 군장 속에 보관해 둔다. 그는 언제 어느 때든지 나에게 충성(?)할 자세가 되어있다.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신병들의 작업하는 모습을 바라볼 뿐이다. 잠시 후 눈치 빠른 병장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신병들에게로 간다. 그는 신병들이 구슬땀을 흘리며 참호 파는 작업에 동참하고 있다. 그들이 하는 일이 마음에 차지 않는 모양이다. 나는 병장이 독려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저런 구렁이 같은 놈들, 보리흉년에 죽도 못 얻어먹을 놈들이군.” 하고 한심한 표정을 지어본다. 결국 그러다가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병장의 능력에도 한계성이 있다는 것을 눈치 채고 나도 직접 참호 파는 작업에 나설 수밖에 없다.
“너희들의 목숨을 지켜줄 참호다. 요령 부리지 말고 튼튼하게 만들어랏!” 나는 쉰 목소리로 톤을 높이고 있다. 신병들은 나의 독려에도 굼벵이처럼 움직인다. 나는 최영감과 박검사를 총대로 지적하며 그들 앞에서 직접 나의 삽질하는 방법을 시범해 보인다.
점심때가 한 시간쯤 지나서야 참호 파는 작업은 끝났다. 나는 그들에게 잠간의 휴식을 명령한다. 신병들은 지옥을 탈출한 자들처럼 파김치가 되어있다. 젊고 팔팔한 병장 역시 지쳐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나 역시 지쳐있지만, 신병들 앞에서 나의 약한 모습을 드러내 보일 수는 없다. 그러한 방법은 오랜 군대 생활에서 터득한 나만의 처세술이다.
“이거야 원, 적군이 오기도 전에 죽겠군!” 나는 여전히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투덜거림으로 일관한다. 결국 나는 그들에게서 압수한 사제 식량을 조금씩 나누어 지급해 준다. 병장이 눈치껏 행동한다. 나와 병장은 이미 배가 터지도록 포식한 뒤다.
나는 차츰 간교해지고 있다. 이게 군법이 아닌가. 군대식이라는 편리한 수법으로 나는 그들의 식량을 착복한 것이다. 양심의 가책은 느낄 필요도 없다. 여우의 근성은 교활함이 아닌가, 여우에게 성인군자 같은 넓은 도량이 있었다면 그것은 이미 여우일 수없다. 여우는 결국 여우로서 행동할 때 여우로서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신병들이 휴식을 취하는 동안 그들이 파놓은 참호들을 점검해 본다. 이따위 흙구덩이가 그들의 목숨을 지켜준다는 보장은 없다. 어쩌면 자신들이 들어갈 마지막 무덤이 될지도 모른다. 나는 조금 너그러워 지려고 노력해 본다. “여기, 본관도 집에 가면 처자식이 딸린 가장이시다. 제군들 역시 같을 것이다. 그러나 여긴 생사의 갈림길인 전쟁터라는 것을 명심하도록, 변명은 필요 없다. 싸워서 이기는 자만이 살아서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믿어라. 아무래도 본관은 실전을 경험한 사람이다. 여긴 명령에 죽고 사는 군대다. 개인행동은 금물이다. 우린 소수지만 적은 백일지 천일지 하느님도 모른다. 그러나 겁먹을 필요는 없다. 제군들은 오직 나를 믿고 따르라. 미래는 모르는 것, 난 제군들의 목숨을 지켜줄 수 없지만, 같이 죽어줄 수는 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죽느냐 사느냐는 단결 뿐인 것이다. 이 말을 명심하도록.” 나는 이들이 조금은 가련해진다. 사실 나 역시 지쳐가고 있다. 자신감 따위는 애시당초 없다. 다만 수많은 주검들 속에서 그래도 혼자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 조금은 위안이 될 뿐이다. 따지고 보면 이들은 나와 생사고락을 같이할 전우이며 부하들이 아닌가. 다만 이자들이 사회에서 높은 자리에 앉아 있었을 때, 그 유세로 나를 핍박했다는 사실이 조금은 마음에 걸릴 분이다. 어떤 때는 동정심이 떠오르다가도 갑자기 지난 일들을 생각하면 복수심이 또 고개를 들기도 한다. 과거를 생각하면 버러지만도 못한 놈들이라는 생각에 울화통이 치밀어 오른다. 그러나 그냥 내버려두자. 결국은 하룻밤도 못 견디고 썩은 시체가 되어 나뒹굴 목숨들이 아닌가. 괜한 복수심을 앞세워 내가 직접 저들을 단죄할 이유는 없다. 나는 지금 여우지만 악인의 탈까지 쓸 필요는 없다. 그래, 내버려두자. 난 놈들의 고통을 지켜보며 즐기면 될 것이다. 저 비겁한 놈들의 종말을.
나는 다시 은패막으로 삼았던 바위 그늘 밑으로 돌아온다. 신병들은 나의 훈시가 끝나자 자신들의 참호 속으로 제각각 돌아간다.
젊은 병장이 다가와 내 옆에 앉는다. 그는 무전기를 매고 있었다. 순간, 나는 본대와의 교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명령하자 병장은 본대로 무전을 친다. 나는 그의 행동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결과보고만을 기다리기로 한다.
한참 후에 “허중사님, 오늘 안으로의 화력지원이나 보충병역은 없답니다. 본부 역시 상황이 어렵답니다.” 하고 병장은 흙빛이 된 얼굴로 내게 보고한다. 예감했던 대로 상황은 절망적이다. 나는 다시 한 번 무전을 쳐보라고 명령한다. “뭐라고? 아무런 지원도 할 수 없다고? 그럼 우리보다 앉아서 죽으란 말인가? 그렇다면 우린 철수하겠다. 뭐 안된다고? 철수하면 명령불복종 죄로 처단 하겠다고? 야, 이 개새끼들아, 우린 여덟이다. 점심도 배식 받지 않았단 말이다. 싸움도 하기 전에 굶어 죽게 생겼다. 뭐라고…? 부식은 보내주겠다고? 빨리 보내지 않으면 이판 사판이닷! 굶어 죽을 바에는 본대부터 치겠다.… 뭐라구? 이런 개새끼들…뭐?… 알았다, 오버!” 병장의 말에 독기가 서린걸 보면 본부의 대답이 시원찮은 게 틀림없다. 나는 병장에게 아무런 말도 묻지 않는다. 도대체 본부는 무슨 끙끙이 속인지, 나는 맥이 풀려 제자리에 풀썩 주저앉는다. 어젯밤의 전투를 생각하면 몸서리가 쳐진다. 사실 죽음에 대한 공포심에 겁부터 난다. 나는 신병들 앞에서 태연한 척 하지만 그것은 하사관으로서의 자존심에 의한 허세일 뿐이다.
저들은 모를 것이다. 죽음을 망각한 채 죽음을 맞이하는 죽음의 순간을, 그것은 결코 숭고하거나 고귀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전쟁으로 인한 죽음은 천사 같은 죽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전투를 겪어보지 못한 신병들은 그걸 모른다. 그러나 이제 곧 알게 되리라. 그 허망한 죽음의 문턱이 얼마나 가까이에 있는지를.
사실 신병들은 운이 좋은 자들이다. 그들은 하루사이에 죽음을 피할 수 있었으니… 그래 오늘밤이다. 적은 반드시 밀려올 것이다. 운명은 또 다시 나를 지켜줄 것인가. 나는 병장의 심정을 잘 알고 있다. 그는 본부의 시원찮은 대답에 울상이 돼 있다. 나는 그를 위로하듯 “너무 걱정하지 말라.” 하고 말했지만, 사실은 모든 일이 부질없는 몸부림일 뿐이다.
“부식수령은 해주겠답니다.” 병장은 자신을 위로하고 있다.
“운명에 맡길 수밖에. 일단은, 신병들에게 만큼은 비밀로 하라. 저들이 알면 겁부터 먹고 동요할 것이다.”
“허중사님, 전 오직 중사님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겠습니다.”
“넌, 내 고향의 막냇동생 같구나. 녀석은 부모님을 모시고 농사일에 매달려 있지.”
병장과 내가 무전기를 들고 수군대는 소리에 신병들은 온 신경을 집중시키고 있다. 그들은 이쪽의 눈치만을 살피고 있다. 병장과 내가 다시 풀밭에 드러눕자 신병들은 저윽히 안심하는 눈치다. 사실 여기에서 지껄이는 말이 그쪽까지 울려 퍼질 리는 없다. 신병들의 참호와는 거리가 멀다. 신병들도 잡담을 주고받고 있었지만 이쪽에서는 전혀 아무 말도 들리지 않는다.
“병장은 어떻게 입대했나?”
“예비역이었습니다. 제대한지 일 년도 안 되어 재소집 되어 왔습니다.”
“흠, 나와 같군. 그런데 저놈들은 예비역도 아니야.”
“예, 그렇습니닷. 신병들은 군대를 모릅니다.”
“흥, 언제나 평화로울 줄 알았겠지! 우리가 군대에서 박박 기고 있었을 때. 저들은 사회에서 먹고 마시고 싸면서 돈과 여자에게 미쳐 돌아가고 있었겠지. 강병장은 집이 어딘가? 직업은?”
“시골입니다. 부모님은 농사를 짓지만 저는 잠시 도시에 나와 철공소에서 쇳조각을 두들기고 있었습니다.”
“그래? 난 무역회사 사무직 말단 평사원이었지”
“전 학력이 부족해서…”
“아니, 가방끈은 길어봐야 쓸모없어. 나 역시 승진 따위는 아예 포기한 몸이었지. 병장은 햄마질을 많이 해서 체격이 좋군.”
“어릴 때 운동을 좀.”
“격투기라도 했었나?”
“달리기하고 수영을 했습니닷.”
“선수였나?”
“아닙니다. 육상은 학교길이 멀어서 십리 길을 달리기로 왔다 갔다 했었고 수영은 마을 앞개울에서 개헤엄 좀 쳤습니다.”
“흠, 좋아, 좋아. 보병치곤 훌륭해.”
“통신병입니다.”
“임마, 우리에겐 보병이 제격이야.”
나는 강병장의 절대복종하는 태도가 마음에 든다. 마치 고향의 막냇동생을 보는 것 같다. 나는 빙긋이 웃어 보이며 그에게 담배 한 개비를 건네준다. 황송해하는 그에게 불까지 붙여주고 나도 한 대 붙여본다. 역시 내게는 담배맛이 최고다. 병장과 나는 끈끈한 전우에로 뜨겁게 가까워지고 있다.
“강병장, 고생 많았겠군. 나 역시 사회에선 막장인생이었어. 난 아무래도 군대체질이야.”
“어젯밤 같은 전투에서 살아남으신 걸 보면, 허중사님은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군대에는 강병장과 나 같은 사내들이 있어야 할 곳이지.”
신병들은 자신들이 파 놓은 참호 속에서 시체처럼 늘어져 있다. 나 역시 머릿속은 텅 빈 철모처럼 무거울 뿐이다. 나는 다시 병장에게 명령한다.
“야간전투에 대비해서 실탄과 수류탄은 충분하게 비축하도록.”
“그런데 허중사님 저녁 배식이….” 병장은 난감한 표정으로 말끝을 흐린다.
“그렇다면 강병장이 직접 본부로 내려가서 부식을 수령하라.”
“혼자서 말입니까?”
“신병, 한 놈을 데려가라. 난 강병장을 믿겠다.”
“중사님, 혼자서는 저자들을 다루기에 힘들 텐데요!”
나는 병장이 나를 염려하는 말에 감동하고 있다. 사실 저자들은 언제 나를 배반할지 믿을 수 없는 작자들이다. 언제나 자신들의 이익만을 따지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악행만을 저질러왔던 부패한 사회의 부류들이 아닌가.
병장은 참호속의 신병들을 집결시킨다. 그리고 부식수령에 따라갈 신병을 물색한다. 그러자 여섯 명의 신병들이 모두 나선다. 나는 두 눈을 지그시 감고 팔짱을 낀 채 신병들의 꼬락서니를 지켜보고 있다. 죽음의 순간을 조금이라도 연장시켜보겠다는, 아니 죽음의 현장을 떠나 절망적인 상황을 모면해보겠다는 안타까운 몸부림들이다. 병장은 누구를 호명할까. 망설이고 있다 나는 끝까지 지켜볼 심사로 끼어들지 않는다. 시골 출신들은 인정이 많아서 탈이다. 왜 단호하게 결정 짖지 못할까. 나이가 어려서 그런 걸까. 사실 신병들은 병장에게 비교하면 부모뻘이다. 그는 고향의 부모를 생각하는 것일까. 병장은 장대함과는 달리 순박한 사내다. 결국 내가 나설 수밖에 없다. 순간, 내 기억 속에서 영원히 지워버리고 싶은 여섯 번째 신병이 대열에서 나와 내게 매달린다. “중사님 저를 보내주십시오.” 그는 내게 애원하고 있다. “너는 안 돼!” 하고 나는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이번에는 조대리가 “전 두 다리가 튼튼합니닷.” 하고 일보 앞으로 나선다. “이런 얌통머리 없는 자식들, 저 혼자 살겠다는 심보인가.” 나는 그렇게 단정한 뒤 단호하게 “부식수령은 강병장 한 사람으로 충분하다. 병장, 두 시간을 주겠다. 네가 저녁 배식을 수령해 오랏.” 하고 명령해 버린다.
병장은 나의 명령이 떨어지자. 재빠른 동작으로 고지를 내려간다. ‘얼간이들, 난 병장에게 기회를 주고 싶다. 강병장 부디, 돌아오지 말라. 넌 살아야한다’
신병들은 멀어져가는 병장의 희미한 뒷모습이 산모퉁이를 돌아 살아질 때 까지 넋을 잃고 바라볼 뿐이다. 그들의 얼굴에는 다시 절망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지고 있다.
내가 병장을 보내놓고 다시 바위 그늘로 돌아오자. 다섯 번째 신병인 검사 출신 박이병이 내게 다가와 비장한 각오를 한 듯 당돌하게 나선다. 나는 그의 태도가 못마땅했지만 육대 일이라는 위기의식을 느끼며 “무슨 용무인가?” 하고 먼저 입을 연다.
“감히 허중사님께 한 가지 의문사항을 건의 드리자고 합니다!” 역시 그는 검사출신답게 만만한 사내가 아니라고 생각된다.
“뭐냐? 의문사항이라곳?” 나는 위엄을 잃지 않고 거만하게 노려본다.
“중사님은 병장이 돌아올 거라고 믿으십니까?”
역시 그의 질문은 날카롭다. 나는 그의 건방진 태도부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 자식은 아직도 군대를 법정으로 알고 있나, 나는 이런 자일수록 빨리 착각에서 깨어 나오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박이병, 너는 병장을 의심하는 갓? 건방진 놈, 그는 애국심에 불타는 병사다. 적어도 너 따위 겁쟁이는 아니닷. 똑똑히 들어랏, 넌 사내로서 국가가 위기에 처해 있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갓? 우린 국가의 부름을 받고 여기에 동원되어 왔다. 너는 무언가를 착각하는 모양인데, 우린 지금 병정놀이를 하는 것이 아니란 말이닷. 적어도 본관은 너와 다르닷. 난 오늘 밤 적이 오면 서너 명은 정조준으로 사살할 수 있겠지만, 아마 넌 겁에 질려 방아쇠도 당길 힘이 없을 것이다. 두고 봐랏!”
나의 군대식 으름장에 그는 처음의 당돌한 태도를 누그러뜨렸지만, 언제 다시 독사처럼 고개를 뻣뻣이 세울지 모른다. 나는 경고하듯 “신병들은 내 말을 똑똑히 들어랏. 강병장은 돌아온다. 왜냐? 그는 명령에 죽고 사는 군인이닷. 만약 그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나는 이 자리에서 목숨을 내놓겠다. 자, 다들 자기 위치에서 경계근무에 충실하도록.”
나는 신병들의 귀에 못을 박듯 호통을 쳐서 그들의 불만을 잠재웠지만, 솔직한 심정으로는 아무래도 뒷맛이 개운치 않다.
멋쩍은 기분을 쓰다듬으며 나는 다시 담배에 불을 붙여 본다. 몇 모금 빨아보았지만 이번에는 담배맛이 소태처럼 쓰디쓰다. ‘더럽게 맛이 없군, 나는 투덜거리며 몇 모금 빨지 않은 담배를 군홧발 뒷끔치로 짓밟아버린다. 아무래도 검사의 말이 맘에 걸린다. 그의 건방진 태도는 나의 자존심에 흠집을 내고 있다.
병장이 부식수령을 위해 본부로 떠난 지도 한 시간이 넘어 두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다. 나는 바위그늘 밑에서 잠시 졸고 있었다. 병장이 돌아오려면 두 시간으로는 어림도 없다. 홀몸으로도 불가능한 일을 부식박스를 들고 오려면 더욱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나는 깊은 잠에 푹 빠져들 수는 없다. 다만 잠을 자는 시늉을 하고 있을 뿐이다. 아무래도 햇병아리, 신병들은 믿음이 가지 않는다. 나는 사실 그들을 비밀리에 감시하고 있다. 결국 나의 군대식 감각 안테나에 걸려든 자가 있다. 그들은 나의 바위 그늘 반대편 언덕진 곳의 참호 속에서 둘만이 모여 수군거리고 있다. 검사출신과 사체시장의 큰손출신 두 신병이다. 두 사람은 힐끔힐끔 주위를 경계하며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말을 주고받는 것이다. 예감이 좋지 않다. 처음부터 느낀 직감이었지만, 두 사내는 아무래도 남에게 복종하지 않을 것 같은 반항아적 반골 기질이 넘쳐 보인다. 처음부터 내가 그들의 기세를 꺾어 놓았기에 망정이지 놈들은 나의 멱살이라도 잡고 흔들어댈 놈들이다. ‘이자들이 무슨 역적모의를 하는 걸까?’ 나는 놈들의 현장을 직접 목격하고 싶다. ‘호락호락 할 내가 아니지, 나는 낮은 포복으로 그림자처럼 그들의 참호 뒤로 접근하는데 성공했다. 두 사내는 나의 접근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한다. 그런데 두 사내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이 너무도 충격적이다.
“오늘 밤은 넘기지 못할 거야. 굶어 죽으나 총에 맞아 죽으나….”
“검사님, 아직 탈출할 상황은 아닌 것 갔습니다.
“신중해야 돼, 중사는 악질이야. 수백 수천 명이 죽어나는 곳에서도 살아난 물귀신 같은 작자라고!”
“검사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중사는 백발백중의 사수니까, 만약 튀다가 걸려 타켓트가 되는 날에는 억울하게도 탈영병이라는 오명을 쓴 채 죽겠지요.”
“좀 더 신중하게 상황을 지켜보자고!”
나는 두 사내의 말에 치가 떨렸지만, 참고 제자리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이런 죽일 놈들, 아직은 놈들을 처단할 기회가 아니다. 햇병아리들이지만 상대방과는 육대일이다. 놈들이 지금 당장이라도 반심을 품고 탈영을 행동으로 옮긴다면 그 어떤 수단으로도 상황을 되돌릴 수는 없다. 어설프게 잡도리했다가는 도리어 막판으로 대항해올 저들에게 당할 수도 있다. 병장이 돌아올 시간은 아직도 멀다. 사실은 그가 다시 돌아올지도 의문이지만 그 동안은 병장이라는 충직한 부하가 있었기에 신병들을 휘어잡을 수 있었는데 지금은 혼자가 아닌가. 저들이야말로 적군보다도 은근히 두려운 존재들이다.
내가 놈들에 대해서 고심하고 있는데, 주유소출신 최영감이 언덕 밑의 골짜기를 바라보며 내게 소리친다. “지원병이 오고 있습니다.” 내가 바위 그늘에서 나오자 참호속의 신병들도 어슬렁거리며 기어 나온다.
아, 나의 구세주여! 병장이 돌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승자의 미소를 지어보이며 은근한 눈빛으로 검사출신 신병과 사체업자출신 신병을 동시에 째려본다. 두 사내는 도둑놈이 제 발 저린 다는 식으로 나와의 부딪침을 피한다. 그리고는 다시 참호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상황이 자신들의 판단과는 정반대로 돌아가자 낙심하는 빛이 역역해 보인다.
바보 자식들, 군대를 겁쟁이 집단으로 착각하고 있었군! 그러나 겁쟁이는 기회주의자인 네놈들이 아닌가. 어젯밤의 전투만 보아도 우리 전우들은 한명도 빠짐없이 용감하게 싸우다 장렬히 전사하지 않았던가.
고지를 향하여 헐떡거리며 올라오고 있는 자는 병장 혼자가 아니다. 본부의 행정요원인 젊은 중사와 의무병인 일등병이다. 세 사람은 비상식량인 시레이숀 박스를 수령해오고 있다. 나는 세 사람을 구세주를 만난 듯 반갑게 맞이한다.
“허중사님께 보고 합니닷. 본대로 향하던 중, 여기 지원반을 만났습니닷.” 병장은 의기양양해 있다. 마치 사나이의 의리를 자랑하는 듯 여유 있는 미소까지 지어 보인다.
“모두들 수고했다.”라고 격려한 뒤, 나는 젊은 중사와 일병의 등을 다독여주며 “중사는 본대의 지원병인가?” 하고 미소까지 지어 보이며 “본부상황은 지금 어떤가?”라고 물어본다.
같은 계급이지만, 그는 나보다 아래다. 그는 신참중사지만 나는 고참중사가 아닌가. 그는 내게 거수경례부터 올린 뒤 “이렇게 까지 형편없이 당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하고 실망의 눈빛을 감추지 못한다.
“자네는 본부에 있었던 게 다행이었겠지, 보다시피 모든 게 박살이 났지. 적의 공격은 미쳐 예상할 수 없는 지점에서부터 시작되었지. 우리는 화력이나 숫적으로 중과부적이었다.”
“그럼 아군이 패한 전투였습니까?”
나는 중사의 집요한 질문에 조금은 짜증이 나있었지만, 이내 호기를 띄고 대답한다.
“우리가 당한 것은 사실이지.”
“지금, 우리는 겨우 열 명이군요. 적이 다시 온다면 큰일이군요.” 중사는 주위상황을 둘러보며 머리를 휘젓는다. 그는 아직 전투를 경험해보지 못한 본부의 행정요원이다.
나는 그래도 전투를 경험한 고참이 아닌가.
“중사, 전쟁을 숫자로 하는가? 어제 밤만 해도 적은 우리의 몇 배였어. 그러나 이 고지는 아직도 이렇게 아군의 손에 있지 않은가? 비록 나 혼자 살아남았지만 그들은 물러갔어. 이건 바로 우리가 승리했다는 증거이지.”
“중사님 그러면 탄약은 충분합니까?”
“이 사람아, 보다시피 널려 있는 게 탄약 아닌가. 걱정은 붙들어 매게나. 우린 지리적인 조건부터 적군보다 유리해. 그리고 이 고지의 중요성을 모르는 밥통들이 아니라면 본부는 반드시 지원해줄 것이다.” 하고 나는 젊은 중사의 불안감을 안정시켜준다.
신병들에 의해 보급품이 옮겨지자. 나는 박검사와 사체업자출신 김사장을 갈고리달린 눈으로 째려본다. 나는 속전속결을 좋아하는 성격이다. 이자들을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 먼저 단단히 단속해야겠다는 결심을 한다. 나는 즉석에서 “너희 두 놈은 이리나왓.” 하고 호명한다. “나머지는 모두 각자 위치에서 전투준비에 들어가도록.”
내 앞에 불려나온 두 사내는 무언가 나의 낌새를 눈치 챈 듯, 이미 잔뜩 긴장하고 있다. 나는 부동자세로 서 있는 두 사내의 앞뒤를 어슬렁어슬렁 걸음으로 한 바퀴 돈 뒤, 무겁게 입술을 연다. “예에, 난 싸나이닷. 네놈들도 불알 달린 사내가 틀림없겠지! 헌데 나는 네놈들의 계집 같은 행동이 맘에 들지 않아, 웬 줄 아나? 난 네놈들이 비겁한 겁쟁이라는 것을 알았거든, 도저히 사내라면 그럴 수 없는 것 말이다. 헌데 너흰 그것이 달렸단 말야, 그렇다면 사내구실을 할 수 없는 고자들인갓?
나의 수작에 옆에 서있던 나의 충실한 부하 강병장이 피식 웃음을 흘려본다. 그는 내가 심심풀이로 신병들을 놀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한마디만 묻겠는데, 박이병? 김이병? 장가는 갔나? 싸나이답게 솔직하게 말하랏. 법정에서는 거짓증인을 위증죄로 다룬다면서?”
“넷, 오래 전에 갔습니닷.” 두 사내는 합창하듯 동시에 대답한다.
“흠 그래? 그것도 했겠지, 그래서 자식도 낳았을 테고, 한데 말이야, 고자는 아닌 것 같은데 왜 여자처럼 쪼다 짓을 하는가 이 말이다. 아니 계집들만도 못한 짓을 하는가 이 말이다. 너희들도 알겠지만 이스라엘에서는 여자들도 군복무를 한다. 아니, 그녀들은 남자들과 똑같이 전투에도 참가한다. 헌데 네놈들은 아직 적군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 마당에 겁을 먹고 있어? 특히 너 박이병, 너는 병장이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그의 충성심에 먹칠을 했다. 책임질 수 있는갓?”
나의 지적에 옆에 있던 병장은 분노를 터트린다.
“저 자식이 나를 의심했습니깟?”
두 사내는 고개를 푹 숙여버린다. 이미 그들은 군화에 짓밟힌 풀잎보다 힘없고 초라한 신세들이다. 나는 이성적으로 생각해본다. 저들의 탈영계획을 물어 중죄에 처하지 않을 것을. 그래봐야 전력에 손실이 갈 뿐이다. 나는 병장을 한번 씩 바라본 뒤, “박이병, 김이병, 내 말을 똑똑히 들어랏. 난 참호 속에서의 비밀을 비겁하게 말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박이병. 너는 강병장을 모독한 죗값만은 받아랏 그게 싸나이다. 강병장, 박이병을 끌고 가랏.”
내 말이 떨어지자 병장은 그의 멱살을 틀어잡고 고지의 중앙 쪽으로 끌고 간다. 나는 “군기가 빠져있다. 적당히 교육시켜라.” 하고 그의 등 뒤에서 말해준다.
다른 신병들은 불똥이 자신들에게로 튈까봐서 전전긍긍하는 듯 이쪽으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는다. 새로 온 중사와 일병은 신병교육 정도의 기합으로 생각하는지 반대쪽 고지를 둘러보고 있다. 나는 혼자 남은 신병을 바위 뒤로 끌고 온 뒤, 닷짜곳짜로 그의 정강이부터 군화발로 걷어 차본다. 그는 안간힘을 써서라도 쓰러진 자리에서 일어나 부동자세를 취하려고 해보지면 움직이지 못한다.
“억울한가? 네가 저지른 죗가의 배상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보는데…?” 하고 나는 비웃음으로 그를 조롱해 본다. 그리고는 다시 그의 옆구리를 힘껏 걷어찼다. 나무토막처럼 딩구는 그에게 나는 다시 멱살을 잡아 흔든 뒤 “넌 군법도 사회법도 어긴 놈이야. 둘 중 하나만 선택하랏. 하나는 용서한닷.”
“사적인 감정이십니깟?” 하고 그는 모든 것을 체념한 듯 내게 무릎을 꿇는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며 애원한다. “허 중사님, 살려만 주신다면 모든 잘못을 고백하겠습니닷.”
“그래 좋다. 넌 싸나이다. 솔직해서….”라고 말했지만 나에게는 이미 온몸에 독기가 올라 있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지만, 이를 악물고 참아낼 뿐이다.
“용서해주십시오. 그 동안의 채무는 무효로 하겠습니다. 저도 그게 직업이다 보니,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래? 채무관계는 백지화시키겠다고? 그렇지만 받겠다고 발버둥 쳐봐야 내겐 먹고 죽으려 해도 땡전 한 푼 없다. 왠 줄 아는갓? 바로 네놈이 나를 거덜내버렸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중사님 여기서 제가 약속을 하겠습니다. 중사님의 채무액의 백배를 돌려드리겠습니다.”
그는 역시 거래하는 일에 수단이 좋다.
“좋다. 그런데 이개만도 못한 자식아, 내 아내와는 어떤 사이냐?” 나는 드디어 감정의 불화산을 터트리고야 만다.
“사모님과는 고향사람이라는 것 외에는 아무관계도 아닙니닷.”
“그래? 너 같은 악덕 사채업자 정도는 이 자리에서 한방에 끝낼 수 있다. 넌 탈영을 모의한걸. 인정하겠지?”
“제발 중사님!” 그는 내게 눈물로 애원한다. 나는 그런 그의 염치없는 행동에 염증이 난다. 죽이고 싶다.
“오냐, 더 이상 말하지 않겠다. 그러나 난 아직 너를 용서하지 않았다. 넌 군법을 어긴 죄 하나만으로도 즉결 사형감이닷. 돌아가랏. 총살형은 보류한닷.”
나는 결국 그를 돌려보내고 만다.
병장은 아직도 박검사에게 기합을 주고 있다. 사회에서는 모욕적으로 보이는 군대식으로, 그는 박검사에게 굴욕감을 안겨주고 있다. 나는 더 이상의 행동은 무리라는 생각에 병장의 기합을 중지시키고 그를 참호로 돌아가게 한다.
“강병장, 그만 해랏, 놈들의 인생이 가련하지 않는갓!”
병장은 그래도 분이 다 풀리지 않은 듯 칠 척에 가까운 그 거대한 몸을 흔들며 씩씩거린다.
“저 따위 인간들이 전우라는 것이 치욕적으로 생각됩니다.”
“난, 사회에 있을 때, 저 두 놈에게, 아니 신병놈들 모두에게 짓밟히며 살았었다.”
“암적인 존재들이었군요.…!”
“사회의 대표적인 악한들이었지.”
“복수할까요?”
“좀 더 두고 보자, 병력에 손실을 줄뿐이다. 병장에게 당한 자는 검사출신이지. 저자는 늘 나를 법으로 옭아매어 매장시키려고 했었지. 세상은 저런 놈들이 판치기 때문에 우리 같은 힘없는 자들은 늘 당하게만 돼있지. 강한 자들은 모든 일을 힘으로만 처리하거든. 따지고 보면 법이란 강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지. 약자를 보호한다는 것은 명분일 뿐이야. 내가 바로 그런 함정에서 당했었단 말이다.”
“제가 복수해드리겠습니다.”
나는 병장을 순박한 시골 청년으로만 알았는데 그는 의외로 나보다 더 눌려 사는 자의 폭발력 같은 강인함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약자들의 콤플렉스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겠지만.
“강병장, 복수는 복수를 부를 뿐이닷. 그리고 여기는 군대가 아닌가. 우린 저 비겁한 놈들과 같아서는 안 된다.” 하고 나는 강병장의 감정을 진정시키고 있었지만 내심으로는 여전히 그보다 더한 복수심에 불타고 있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지금 당장 일을 내버리고 싶다. 나는 검사도 미웠지만 사체업자 김사장이 더 죽이고 싶도록 밉다. 그는 내게 높은 이자로 빚더미에 올린 뒤 결국은 파산을 시켰다. 더욱 내게 고통을 준 것은 아내와의 일이다. 그는 채무를 미끼로 아내를 끌어내어 가정까지 파괴시킨 장본인이다. 나는 그와 내 아내의 사이가 어느 정도의 선까지 도달했는지 잘은 모른다. 그러나 아내와 나는 지금 별거생활 중이다. 아내는 내가 채무에 시달리게 되자. 외박이 잦았다. 본래는 살림밖에 모르던 여자였는데 지금은 밖에서 무슨 짓을 하고 돌아다니는지 늘 상 화장이 짙고, 무슨 뒷심을 믿고 그러는지 막판으로 대든다. 연놈들의 행위를 보지 않은 나로서는 증거가 없는 이상 그 어떤 불륜의 행위도 자백 받을 수가 없다. 사실 그 모든 실체를 알게 된다할지라도 그 뒤에 있을 어마어마한 충격을 감당할 자신감은 없는 것이다.
“허중사님, 오늘 밤 정도는 무사히 넘길 수 있을까요?” 한참 동안 내가 침묵하며 먼산만을 바라보고 있자, 병장은 은근히 근심 섞인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그는 아직 젊고 어리다.
“강병장, 넌 내 막냇동생 같아서 하는 말인데, 도망가랏!”
“중사님만 남겨 놓고는 갈 수 없습니다.”
“임마, 모두 죽을 수는 없단 말이야. 우린 이길 수 없다. 본부에는 샌님들만 있다. 본부의 지원은 꿈이란 걸 왜 모르는갓. 우린 하루살이들이닷!”
“전 싫습니다. 중사님을 두고는.”
“후회하지 마라. 난 저 쓸개 없는 놈들과는 죽을 수 있어도 너는 안 돼.”
그러나 강병장은 끝내 내 곁을 떠나지 않는다.
나는 그런 그의 행동과 의리가 기특해서 그의 등을 다독여준다.
긴 여름해가 넘어가고 있다. 저녁이지만 아직 세상은 밝은 빛으로 환하다. 나는 보급 상자를 뜯어 부대원들에게 저녁 배식을 한다. “야간 전투를 위해서는 배부르게 먹어두라!” 하고 말했지만 어쩌면 이것이 이세상에서의 마지막 식사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금은 슬펐다.
저녁식사가 끝난 뒤 나는 대원들을 집합시켜본다.
“제군들은 들어랏. 운명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적은 인정사정 없다. 경계근무를 철저히 하도록. 자, 그럼 건투를 빈다.” 하고 나는 비장하게 지시사항을 내린 뒤 나의 참호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다 주유소 최영감과 금강그룹의 김부장이 잔뜩 찌푸린 얼굴로 울먹이며 내 옷소매를 붙잡는다.
“존경하는, 아니, 하늘같은 허중사님. 제발 살려주십시오. 전 아직 처자식이….”
난 그들의 비굴한 태도에 침을 뱉고 싶었지만, 그래도 마지막 가는 인생들이 가련해져, “신병들은 들어랏 난, 하느님도, 네 아버지도 네 형도 아니시다. 그냥 허중사일 뿐이다. 더욱이나는 모가지가 수십 개 달려있는 것도 아니다. 목숨을 나눠줄 수는 없지 않은가. 자신의 목숨은 자신만이 책임질 수 있다.”라고 씁쓸하게 말해줄 뿐이다. 그래도 그들은 내게 삶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중사님, 살게만 해주시면 기름값은 아니 평생 무상으로 주유해 드리겠습니다.” 흥, 그래놓고서 외상으로 적어두려고…?
“중사, 아니 허대장님, 전 살려만 주신다면 회장님께 말씀드려 중사님을 사장, 아니 이사, …회장님은 제 매형이십니다.”
나는 기가 막혀, “그렇게도 살고 싶은가?” 하고 되물은 뒤, 최일선에 위치한 그들의 참호와 후미에 위치한 나의 참호를 바꾸어준다. 사실 여기에 안전지대는 없다. 단 일초라도 삶을 연장하고 싶은 그들의 소원을 짓밟아 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그들이 돌아간 뒤, 나는 다시 신병들의 참호를 시찰해본다. 나는 박검사와 김사장의 참호 앞에 도착하자. “사적인 감정은 살아서, 집에 돌아간 뒤 따지자. 내 의견에 이유 있나? 부디 죽지는 말아랏!”라고 당부한다.
고지 위에 어둠이 깔리자, 여기저기에서 죽음의 정적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낮에는 몰랐었던 부패한 시체의 썩은 냄새가 바람에 실려 고약하게 풍겨온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신병들은 긴장감을 풀지 않고 있다. 숨소리 마저도 들리지 않는다.
드디어 땅거미가 밀려와 세상은 어둠으로 가득 차고 있다. 나는 우리가 주둔하고 있는 고지 밑의 낮은 산등성이 너머에서 적군이 이동하는 모습을 직감으로 눈치 챈다. 그들은 어젯밤의 패배로 인한 타격이 컸을 것이다.
오늘만큼은 섣부른 행동으로 나오지 않을 것이다. 사실 그들이 우리가 처한 상황을 알고 있었다면 이제껏 가만있지 않았을 것이다. 적은 우리를 모른다. 이것만큼은 장담할 수 있는 일이다. 나는 젊은 중사와 병장을 손짓으로 은밀히 불러냈다. 두 사람이 참호로 들어오자 나는 그들과 마주앉아 작전을 세워본다.
“적은 틀림없이 어젯밤처럼 공격해오지는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적이 우리 사정을 모르고 있다는 점이 우리들로서는 다행이야. 놈들은 어젯밤 호되게 당했기 때문에 섣부른 행동은 하지 않을거야. 일단은 척후병을 보낸 뒤 우리의 사정을 정탐하겠지. 그런 뒤에 우리의 화력을 알아보기 위해 선발대로 공격해오겠지. 우리가 맞받아친다면 그땐 우리의 전력이 들통 나겠지. 결국 우리는 아무런 공격도 못해보고 앉은 자리에서 당하는 것 아닌가.”
“먼저 우리가 선수를 쳐서 적의 뒤통수를 쳐 교란작전을 해보는 건 어떨까요?” 중사의 작전은 이론적으로는 그럴 듯 했지만 나는 찬성할 수없다.
“작전은 그럴 듯하지만 이런 변변찮은 병력으로 무얼 하겠냐! 아군의 신병들은 훈련도 제대로 안 놈들이야.”
“그래도 기초 훈련은 돼 있잖습니까?”
“난, 저들을 믿을 수가 없어. 너무도 늙은 겁쟁이들 뿐일세.”라는 내말에 젊은 중사는 병장에게 명령한다.
“혹시 본부의 포대가 지원 포격을 해줄지도, 병장 본부에 포지원을 요청해 보라.”
“글쎄, 그렇게만 해준다면 우리에게 전혀 승산이 없는 것도 아닌데.”
곧 바로 병장은 무전을 쳐본다. 그리고는 실망스럽게 대답한다.
“포지원을 받기도 전에 먼저 적의 포격을 받게 될 것 같습니다. 아군의 포병은 다른 전선에서 포지원을 하고 있답니다.”
“이런 빌어먹을, 방법은 아무것도 없군. 천운에 맡기는 수밖에.”
“일단은 신병들을 단단히 단속해야겠습니다.”
“정신 무장이 안된 놈들이야.”
우리는 작전 회의를 끝내고 제각각 자신들의 참호로 흩어진다.
눈앞을 분간할 수 없는 여름밤은 깊어가고 있다. 우리들은 죽음의 순간을 기다리는 사형수처럼 긴장감에 쌓여 있었지만 적은 여전히 끔쩍도 하지 않는다. 나는 참호에서 나와 신병들의 개인참호를 시찰해 본다. 산허리 쪽의 이과장과 조대리의 동태를 먼저 살펴보기 위해 나는 그들을 방문해본다.
“이상은 없는갓?”
“눈앞에 수상한 그림자 몇이 스쳐지나 갔습니다. 사람인지 짐승인지 알 수 없어서⋯⋯ 그만.”
나는 그들의 어이없는 보고에 기가 막혀서 “이런 병신들, 보고해야 할 것 아닌가!”하고 낮은 음성으로 말했지만 더 이상의 야단은 칠 수 없다.
한심한 신병들, 최영감 쪽 참호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의 보고도 똑같은 것이다. 턱 밑까지 침투해 온 적에게 총 한방 쏘지 않고 돌려보냈다는 사실이 더욱 나를 맥 풀리게 한다.
나는 병장의 참호 앞에서 결국은 창자가 끊어질 듯 한 신음 소리를 토해 내고야 만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하고 병장은 긴장해 있다.
“적의 척후병이 우리의 턱밑까지 왔다간 모양인데, 신병놈들은 그런 사실마저 보고하지 않았네.”
“몇 명이었을까요?”
“서너 명이겠지.”
적의 그림자만 보고도 사지가 굳어버리는 신병들과 도대체 무슨 싸움을 하겠는가. 저놈들을 남겨두고 본대로 복귀해버릴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중사와 병장 그리고 위생병의 목숨이 안타까워서도 차마 신의 없는 행동은 할 수 없다.
이제 패전의 순간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그것은 바로 죽음이다. 사회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이 사치스러운 삶이었다고, 아니 행복한 시간들이었다고 잠시 과거 속에서 헤엄치며 자위할 수밖에 없다.
그때다. 시간을 먹어 치우는 일만이 상책이라는 생각으로 허튼 꿈에 빠진 순간, 기적은 일어났다.
내가 낮에 적군의 주둔지로 점찍어 둔 지역을 아군의 폭격기가 공습하고 있다. 대낮처럼 환한 불바다 속에서 적군들이 갈팡질팡 하고 있다. 폭격은 정확하게 적군의 목표물들을 박살내고 있다. 고지에서는 거리관계로 식별하기에 분명하지 않았지만 틀림없이 적군은 타격이 심각하다. 유류 차와 수송차량들이 화마에 휩싸여 훨훨 타오르고 있다.
젊은 중사가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참호 안에서 몸을 일으킨다. “적군의 진지가 엉망으로 부서지고 있습니다. 이런 젠장맞을, 병력만 충분하면 지금 공격해도 되는데⋯⋯.” 하고 그는 분통을 터트린다.
나는 긴 한숨만 푹푹 내쉴 뿐이다. “허중사님, 오늘 밤은 무사할 것 같군요. 공군에게 감사해야겠지요?” 하고 병장이 말했지만, 나는 적진이 불타고 있는 모습만을 바라보며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다.
“강병장의 구원요청을 공군이 들어주었군요.” 하고 젊은 중사와 위생병은 신이 나서 어쩔 줄을 모른다. 그러나 신병들은 여전히 참호 안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있다. 그들은 전쟁을 말로만 들었을 뿐, 실전 상황을 직접 눈으로 목격하는 것은 처음일 것이다.
한 순간의 공습이 지나가자 다시 고지는 조용한 침묵 속에 빠져든다.
“오늘 밤은 무사히 넘길 것 같다. 적군은 뒷수습에 정신이 없겠지. 그러나 경계근무는 똑바로 하랏!” 하고 나는 신병들에게 훈시한 뒤 “적은 언제나 우리 생각과는 다르게 행동한다는 것을 명심하도록”라고 긴장감을 불어 넣어준다.
여전히 적진에서는 밤하늘을 가르며 불길과 연기가 치솟고 있다.
기적이란 올 것인가 나 역시 인간이기에 살고 싶은 욕망은 끝이 없다. 사실 살아있다는 자신을 돌이켜 볼 때마다 죽음에 대한 의문은 두려움으로 변해간다. 과연 나는, 아니 이 지옥에서 한 사람이라도 살아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내가 아닌 누구라도 좋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풀잎처럼 가냘픈 인간의 작은 소망이 그런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삶, 살이라는 그것이.
또 다시 아침이 왔다.
우리들은 어제 보급해온 부식으로 아침 식사를 한다. 군대의 비상시에 먹는 부대 식사라는 것이 다 그렇고 그런 음식들이지만 모두들 식성들은 왕성하다.
해가 뜨자 또 다시 더위가 찾아온다. 샤워가 하고 싶다. 소낙비라도 내려준다면 서있는 자리에서 그대로 흠뻑 맞고 싶다.
내가 햇빛을 피해 바위 그늘로 돌아오자, 주유소 최영감이 내게로 온다. 나는 “근무지를 이탈해도 되는가?” 하고 말했지만 내 목소리에는 그 넘치던 힘이 빠져 있다. 그는 특유의 능글맞은 웃음을 지어보이며 “중사님은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하고 아부한다.
나는 “용무가 뭐냐?” 하고 너그럽게 말해본다.
“저는 어젯밤 공군이 폭격하는데 얼마나 떨었던지. 지금도 턱이 얼얼합니다. 그래서 저는 허중사님께 사죄하는 의미에서 선물을 하나 드릴까 합니다.”
“누굴 사죄하겠다는 거냐. 말하랏.” 나는 실눈을 뜨며 그의 다음 대답을 기다려본다.
“허중사님은 가장 사나이다운 분이십니다. 전 사회에 나가면, 영원히 중사님의 자가용에 무료로 주유해 드릴 것을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자필로 쓴 약속증서를 써왔습니다.”
나는 피식 웃으며 그가 내미는 종이쪽지를 안주머니 속에 집어넣은 뒤 “모르는 일이라고 발뺌하지는 않겠지?”라고 말해본다.
“천벌 맞을 짓을 감히 하겠습니까. 중사님은 우리 할아버지, 아니 하느님 보다 존경스럽습니다요. 믿어주십시오.”
“최이병, 내게 이 따위 뇌물을 주었다고 해서 특별대우를 받을 생각은 마랏.” 하고 나는 그를 돌려보낸다. 어젯밤은 무사히 넘겼다고 하지만 오늘 밤만은 아무래도 어려울 것이다. 그래 죽기 전에 네 멋대로 해봐랏!
최영감이 돌아가자, 곧바로 기다렸다는 듯이 김부장이 뚱그적거리며 내게로 다가와 진드기가 찰싹 눌어붙듯 멋대로 자세를 취하며, “전 여기 와서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존경스런 분을 만나게 됐습니다요. 어쩌면 허중사님의 밑에 있는 것이 행운인 것도 같습니다욧.” 하고 그 특유의 똥개 꼬리치는 행동을 한다.
“그래, 너는 또 뭐냐?” 나는 능글맞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아부는 하지마랏.” 하고 다짐해 둔다.
“그래서 저는 하늘같은 중사님께 약속증서를 한 장 써왔습니다욧. 전 살아서 돌아가면 저희 금강그룹 주식 일만 장과 회장님께 말씀드려서 이사나 사장직 한자리를 주선할까 합니다요.”
“그 따위 종이쪽지를 믿으라고?”
“아닙니다욧. 박검사를 입회인으로 써넣었습니다욧.”
“좋다. 접수한다. 편히 쉬도록.” 나는 그의 약속증서도 속주머니에 집어넣는다. 빌어먹을 놈, 뇌물과 아부로 부장자리까지 올라갔던가.
김부장이 돌아가자 이번에는 자기 차례라는 듯이 박검사가 숨이 턱까지 차오른 듯 헐떡거리며 뛰어온다. 나는 그를 냉랭한 미소로 바라보며 “널 부른 적 없는데.” 하고 말해본다.
“하하하, 죄송합니다. 저라고 존경스런 중사님께 선물을 빠뜨린 데서야 되겠습니깟!”
그 역시 유들유들한 사내다.
“넌 내게 무얼 선물할건데?”
“저자들처럼 시시한 선물을 드릴수야 없지요, 저는 저의 비리 한 가지를 고백하겠습니다. 그리고 강남에 있는 십 층짜리 빌딩을 드리겠습니다. 여기 그 증서를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만약에 사회에 나가 제가 허중사님을 괴롭힌다면 언제 어느때고 저의 비리를 폭로해도 좋습니다. 전 영원히 존경하는 중사님의 종이 되어 드리겠다고 결심하고 또 결심했습니다.”
“그래? 나의 영원한 똥개가 되겠다고?” 나는 흡족한 웃음을 지어보이며 그를 제자리로 돌려보낸다.
박검사가 돌아가자 이번에는 입사동기인 이과장과 조대리가 내게로 다가온다.
“너희들은 또 뭐냐?”
“어찌 저희들이라고 가만히 있겠습니까, 감히 높으신 분께⋯⋯.”
“그래 내가 누구보다 높은데?”
“저희 아버지, 아니 조상님, 아니 부처님 예수님, 아니 그보다 더 크신, 맞습니다, 중사님은 하느님이십니다.”
이놈들 역시 아부쟁이들이다.
“짜식들아, 주둥이만 놀리면 뭘 해, 부장이나 검사 정도는 돼야지.”
“저희들은 그분들처럼 갑부가 아니라서, 하지만 존경하는 중사님을 위해서라면⋯⋯.”
결국 이과장은 수도권에 있는 전원주택을, 조대리는 제 아내가 운영하는 상가를 통째로 주겠다고 약속증서 한 장씩을 내민다. 나는 또 날름 받아 속주머니에 구겨 넣어버린다. 그러나 마땅치 않을 만큼 빌어먹을 놈들이다. 정말 내가 바라는 진심하나를 눈곱만큼도 눈치 채지 못하는 놈들이 아닌가. 나는 골머리 아픈 세상, 그 무엇보다 술과 꽃 같은 계집이 더 좋은데.
마지막으로 사채업자 김사장이 내게로 와서 내가 진 채무를 무효로 하고, 그 채무액의 백배를 보상해 주겠다는 증서와 백지어음 한 장을 내 손에 쥐어준다.
나는 심드렁한 얼굴로 “여편네를 주겠다는 놈은 한 놈도 없군.” 하고 넋두리해 본다.
김사장은 역시 사채업으로 단련된 눈치가 빠른 사내다.
“하늘같으신 허중사님을 위해서 그 정도쯤이야 못할 것도 없지요. 그러나 저희 아내는 병쭈거리라서⋯지금도⋯아마⋯병실에 누워 있을 것입니다. 중사님이⋯받아만 주신다면⋯제 젊은 세컨드를 진상해 드리겠습니다만.”
“이놈아, 여자가 물건이냐?” 사실 나는 술과 담배에 찌들어서 잠자리에서의 행동이 늘 시원치 않다. 나는 이제 뇌물 앞에서도 노골적으로 뻔뻔스러워진다.
“어음 한 장이면 됐다. 가서 쉬어랏.”
나는 여섯 명의 사내들에게서 받은 뇌물만으로도 이제 뱃구리가 터져버릴 지경이다. 이런 행운, 아니 거저 들어온 대복을 누구에게 감사해야할까. 조용히 물러간 적군에게? 아니면 공군에게? 역시 나는 군대체질이군. 군대는 나 같은 밑바닥 인생에게 황제보다 강한 힘, 그렇다 권력을 주었다. 나는 그들의 약속증서가 믿기지 않아 신병들을 모두 불러 세운다. 그리고 다짐해둔다.
“너희들은 오늘 나와 맺은 약속을 어기지 말랏. 만약 약속을 이행하지 않을 시에는 네놈들의 무덤 속까지라도 따라가서 네놈들의 뱃데지 속 쓸개라도 따먹을 것이다. 명심하랏.”
그들은 나의 서슬 퍼런 명령에 합창하듯 우렁차게 “옛 쓸개라도 따가십시욧.” 하고 대답한다.
세상은 일 분 일 초라도 좀 더 버티며 살아 볼만한 그런 값어치가 있는 것일까, 그렇다. 살아 있다는 것은 그것 자체로도 행복한 일이다. 나는 신병들에게 모처럼만에 휴식시간을 준다. 이무다운 날씨에 그들을 감시하는 일 그것 하나만으로도 나의 업무는 벅차다.
싸움이 없는 전쟁터, 고지의 진지에는 그렇게 무료한 시간만이 흘러가고 있다. 그 누구도 긴장감에 빠져있는 자는 없다. 그들은 어제 일들을 망각하고 있다. 언제 닥쳐올지 모르는 운명 앞에서 인간은 너무도 태연하다. 나는 강병장을 불러본다. 병사들이 태평스럽게 휴식을 취하고 있는 기회를 틈 타, 한적한 둘만의 자리를 마련한 뒤, 그에게 담배 한대를 건네준다. 그리고 직접 불을 붙여준다.
“강병장, 사단본부에 여기 상황을 보고하라.”
그는 내가 명령하자 곧 본부에 무전을 친다.
“본부나오랏, 본부나오랏. 여기는 ◯◯부대.” 병장도 더위에 지쳐있다. 누구나 체력에는 한계가 있는 것일까, 젊은 그도 별 수 없는 모양이다.
“직접 중사님을 바꾸랍니다.”
나는 무전기를 건네받는다.
“여기는 본부, 여기는 본부. 허중사에게 작전을 시달한다. 고지 사수가 어려운 형편이면 철수해도 좋다. 다만 중사에게 다른 작전계획이 있다면 시행해도 좋다. 그러나 본부의 지원은 없다. 본부 역시 사정이 어렵다. 오버.”
“이런 빌어먹을.” 나는 신경질적으로 무전기를 땅바닥에 동댕이쳐 버린다. “어떻게 지켜온 고지인데, 마음대로 하란 말인가.”
병장은 나의 신경질적인 행동에 얼굴이 상기되어. “이 고지의 통수권은 허중사님께 있습니다. 사수입니까, 철수입니까?” 하고 나의 눈치를 살핀다.
나는 두 눈을 지그시 감아 본다. 본부로의 철수는 열 명의 목숨을 연장시킬 수 있다. 살아남을 수도 있는 기회이다. 순간, 고지사수를 위해 죽어간 전우들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억울하게 죽어간 전우들의 목숨 값은 누가 보상할 것인가.”
“강병장, 본대와의 무전 연락은 비밀에 붙이도록.”
“고지 사숩니까?”
“강병장은 내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겠다고 했지!”
“예, 그렇습니닷.” 그의 대답은 힘에 넘쳐있다.
“그래, 죽기 아니면 살기다. 난 억울하게 죽은 전우들 앞에 부끄러운 군인으로 남지 않겠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고지를 사수하겠다. 그러나 강병장, 너는 죽기에 너무 젊은 나이다. 살아서 돌아가랏. 명령이닷.” 나는 그를 사랑하는 진심을 그렇게 터트리고야 만다.
“그럴 수는 없습니닷. 전 허중사님과 생사고락을 같이 하겠습니닷.”
나는 병장의 결심에 눈물겨워서 더 이상 만류도 그 무엇도 결정지을 수 없다. “그래, 너는 나의 충실한 부하닷.” 하고 마음속으로 그의 용기에 감동할 뿐이다.
병장과 내가 바위 그늘로 돌아오자 젊은 중사와 위생병인 일등병은 본대와의 무전 연락을 눈치 챈 듯 “본부의 명령은 무엇입니까?” 하고 긴장되어 묻는다.
나는 “병장이 보고 했고, 보고 받았을 뿐이다.” 하고 짧게 대답해 준다. 그리고 그의 날카로운 눈빛을 외면하기 위해 다시 담배에 불을 당겨본다.
내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병장은 “사수하랍니다. 포병의 지원도 약속 받았습니닷.” 하고 거짓 보고를 한다.
“본부의 포병 지원? 거 좀 이상한데, 난 작전 실에 있었는데⋯⋯? 본부에는 보병이나 포병을 지원할 만큼 병력이 부족한 것으로 보았는데⋯거⋯ 이해할 수 없는 약속이군.” 역시 젊은 중사의 관찰력은 날카롭다. 나는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속마음을 들켜버린 부끄러움에 딴청을 부려본다.
“도대체 작전실의 참모들은 세상물정을 모른단 말야. 허긴 탁상공론만 하는 작자들이니 여기 사정을 알 턱이 없겠지.” 젊은 중사는 불만을 감추지 못하고 계속 투덜거린다.
“중사는 이유도 많다⋯ 본부의 명령인 것을 어쩌겠나!” 하고 나는 두루뭉술한 말로 얼버무리듯 변명했지만, 그는 마뜩찮은 얼굴로 자신의 참호를 향해 돌아가 버린다. 신병들 역시 모두가 미심쩍은 얼굴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나의 눈치만을 살핀다.
나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지만, 속셈을 감춘 체 주위를 휘둘러보며 제자리만을 빙빙 돌아본다. 수많은 눈빛들의 공세에 압도된 나 자신을 감추어 보자는 의도적인 행동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들의 불만을 잠재워보자는 심정으로 “제군들은 어젯밤 아군기의 폭격에 적군의 진지가 박살나는 현장을 직접 목격하지 않았는가. 적군은 공군에게 밀리고 있다. 이제 제군들도 전쟁이 무엇이라는 것을 조금은 눈치 챘을 것이다. 실전 경험이 있었던 본관의 생각인데, 사실 전쟁이란 별것 아니다. 내가 살기 위해 먼저 적을 죽이는⋯ 예에 그러자면 먼저, 정신을 똑바로 차린 뒤 적이 나를 조준하기 전에 내가 먼저 적을 쏘면 되는 것이다. 절대로 적을 두려워하며 겁내지 말라. 인간은 누구나 총칼 앞에 기죽기 마련이다. 이건 나의 경험인데, 싸움에는 아무리 훈련이 잘된 병사일지라도 누가 더 뱃장이 크냐가 관건이다. 전투는 영화처럼 특수부대원이 따로 없다. 인간은 총알 한방을 당해낼 수없다. 맞으면 죽는다. 또한 아무리 훈련이 잘된 병사래도 총탄이 날아오고 대포알이 터지면서 불바다가 시작되면 제정신으로는 싸움에 임할 수없게 된다. 다시 말해서 적이 나를 쏘기 전에 먼저 적을 쏘아라. 적은 내게 인정을 베풀지 않는다는 사실도 기억해 두라.” 하고 조금은 거들먹거리며 느긋한 자세로 실전에 들어갔을 때의 행동사항을 설명해준다. 사실 저들의 귓속에는 내 말이 쉽게 먹혀들어갈 리가 없다. 나 역시 대단한 각오로 적과 싸울 만반의 준비가 되어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저 햇병아리 신병들과 내가 같을 수는 없다. 적어도 나는 저들처럼 두려움 속에서 떨지 않는다. 따지고 보면 굴욕적인 삶만을 살아왔던 사회에서의 생활보다 목숨이 걸려있는 전쟁터에서 활개 치며 사는 일이 나은지도 모르겠다. 여기에는 그래도 개판치는 놈들만은 있을 수없다. 나는 사회에서 샌드백이었지만, 이제 최소한 이 고지에서 만큼은.
나는 다시 신병들에게 명령한다. 개인화기부터 철저히 점검하라고. 사실 그것이 개개인의 목숨을 지켜 줄지는 나 역시도 의문 사항이지만.
칠흑 같은 밤이 다시 찾아왔다. 고지는 숨죽은 듯 너무도 고요하다. 그 적요함에 눌려 풀벌레의 울음소리나 산짐승의 외침 소리마저 들리지 않는다. 그들은 포화를 피해 여길 아예 떠나버린 것일까. 나는 내 옆에 있는 병장에게 낮은 음성으로 속삭인다. “오늘 밤은 왠지 예감이 나쁘다.”고
내 참호의 왼쪽 후미에 위치한 참호속의 젊은 중사가 낮은 포복 비슷하게 허리를 굽혀 내게로 다가온다.
“아무래도 적진의 낌새가 심상치 않습니닷.”
“놈들은 뒤통수를 칠지도 모른다. 고지와 후방의 본부 사이에는 아무런 조치도 취해져 있지 않다. 우린 후방도 전방도 없다.”
“그렇다면 놈들은⋯⋯.”
나는 중사의 근심 섞인 말에 이마가 싸늘해지는 섬뜩한 느낌이 들어 “그래 맞아, 중사의 말대로 놈들은 후방으로 밀려들고 있다. 이런 빌어먹을, 중사는 병장을 데리고 후방을 정찰하고 오도록.”
내 명령이 떨어지자 젊은 중사는 즉시 병장을 데리고 고지 뒤 산비탈을 타고 내려간다. 나는 위생병에게 후방을 경계하라고 말한다.
순간, 조명탄이 터지면서 고지는 대낮처럼 환하게 드러난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생각에 다시 이마가 싸늘해진다. 미처 무엇을 생각하고말고. 아니 우리에게는 작전 따위는 있을 수 없다. 적의 화력이 고지를 향해 집중적으로 쏟아진다. 천지를 울리는 대포소리는 셀 수도 없다. 무엇으로 적의 포격을 막을 수 있단 말인가. 다행스러운 것은 아직 그 누구의 참호에도 포탄이 명중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아직은 움직일 때가 아니닷. 동요하지 말랏.”하고 내가 고함을 지르는 순간 정찰 나갔던 중사와 병장이 허겁지겁 고지로 올라오고 있다.
“힘내랏. 중사⋯.”
본부의 명령대로 철수했더라면, 하는 후회스러움에 나의 무모한 용맹을 모질게 자책해보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적은 물밀 듯 밀려오고 있다.
드디어 산 중턱에 떨어진 포탄의 폭발음과 함께 여기저기서 불길이 일어나고 있다. 불길이 일어나는 골짜기 풀숲 사이로 행정계 중사와 강병장의 모습이 잠깐 영상처럼 비춰 보인다.
결국은 끝인가, 적국은 그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앞뒤에서 개미떼처럼 밀려오고 있다. 항복의 표시인 흰 깃대를 세울 시간의 틈도 없다. 적이 인정을 베풀리. 없다. 보잘것없는 소총수로 적의 땅거죽을 뒤집을 듯 한 막강한 화력을 막는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다. 승패는 불을 보듯 뻔하다.
또 한 번의 기적은 없는 것인가, 내가 그토록 기대했던 아군의 공습은 없다. 오직 적군의 돌격만이 있을 뿐이다.
“허중사님!” 하고 젊은 중사는 괴성을 지르며 필사적으로 고지를 향해 뛰어온다. 도대체 이런 상황에서는 그 어떤 묘책도 없다. 중사의 몇 발자국 뒤에서 병장도 올라오고 있다. “바보 같은 자식, 본대 복귀하라고 그렇게도 일럿건만은⋯⋯.”
결국 젊은 중사는 고지의 참호 가까이에서 적의 총탄에 비틀거리다가 그 몸뚱이가 빙글 돌다가는 언덕 아래로 굴러 내려간다. 그의 뒤에 따라오고 있었던 강병장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잠깐 사이다.
나는 미친 듯 소리칠 뿐이다.
“쏴라, 보이는 놈은 모조리 맞춰랏!”
곧 아군의 참호 속에서도 반격의 총소리가 울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아군의 화력은 형편없다. 몇 방의 총알이 적진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지만 언덕을 올라오는 적군의 숫자에는 타격을 주지 못한 듯 아무런 변동도 없다.
“강병장, 강병장.” 하고 다급하게 소리쳤지만, 역시 대답은 없다.
순간, 불길한 예감이 머릿속을 스쳐간다. “그렇다면 너도 당했단 말인가” 나는 울분을 감추지 못하고 몸을 일으켜 세운 뒤, 적을 향해 방아쇠를 계속 당겨 본다. 역시 나의 명중률은 높다. 내 앞에서 적군은 쓰러지고 있다. 그러나 어림도 없는 일이다. 이미 신병들의 참호에서는 반응이 없다. 집중포화에 진지는 다시 엉망으로 부서지고 있다. 그렇다면 기름쟁이 최영감도 부장도 과장도 조대리도 박검사도 김사장도 위생병도⋯.
이런 쓸개도 없는 자식들이 나를 속였단 말인가. 나는 그들을 소리쳐 불러본다. 빗발치는 총탄 속에서 나의 악다구니는 떨어지는 가랑잎처럼 너무도 가냘프고 처량하다. 나는 울부짖어 본다.
“나쁜 놈들, 쓸개도 없으면서 나를 속엿?”
드디어 적군은 고지 위로 뛰어들기 시작한다. 그들을 상대로 대항하는 아군은 한명도 없다. 나는 또 다시 혼자다. 나는 어둠속에서 총검을 휘두르며 미친 듯 날뛰기 시작한다. 그물 속에 걸린 작은 물고기의 몸부림처럼. 적군은 이미 내 주위에서 겹겹으로 울타리를 치고 있다.
또 다시 나는 살아있는가.
온몸을 힘겹게 흔들어 본다. 손과 발이 움직여진다. 그리고 주위는 조용하다. 전투는 끝났는가? 나는 눈을 뜰 수없다. 눈꺼풀이 무겁기만 하다.
아, 쓸개를 떼어준다던 쓸개도 없는 놈들. 나의 주식은, 빌딩은, 무료주유권은, 젊은 세컨드는 검사의 비리는, 백지 어음은, 모두 포탄에 날아가 버린 것인가.
나는 다시 목이 탈 뿐이다. 골머리도 띵하니 아프다. 다행히 나는 포탄의 파편이나 적군의 총알을 피한 것 같다. 살아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만족해야 하는가, 나는 본대복귀를 하지 않은 어리석음을 자책하지는 않는다.
아아. 내 쓸개들, 그건 내꺼닷, 내껏!
“이봐욧. 허풍기 씨, 근무시간에 무슨 낮잠이욧!” 하고 누군가가 내 어깨를 세차게 흔들어 댄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기 싫다. 또 다시 고지의 처참한 패전을 바라보기 싫은 것이다.
“사무실이 떠나갈 듯 웬 놈의 고함은⋯!” 하고 누군가가 핀잔하는 말에 나는 땅바닥에서 고개를 든다. 아니 여기는 사무실의 책상?
“어젯밤엔 잠 안 자고 무얼 했기에⋯⋯. 그러니까 제발 좀 작작 마셔대란 말이욧! 그리고 쓸개라니, 어떤 놈이 허풍기 씨 쓸개라도 훔쳐갔단 말이욧?”
그는 전선에서 죽었다고 생각한 배불뚝이 고릴라 김부장이다.
아직 쓸개 한 놈은 살아 있었군!
첫댓글 좋은글 가슴으로 읽고 갑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