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일시 : 2011년 9월 4일 08시 25분 - 17시 02분
산행 구간 : 군위 제2 석굴암에서 대구 지묘동 표충사로..
산행 거리 : 22km
총소요시간 : 8시간 37분
평균이동속도 : 시간당 약 2.5km
산 행 자 : 나홀로..
주요 구간별 산행 시간:
제2석굴암(08:25)- 동산임도(10:15)- 팔공산 주능(11:44)- 파계봉(12:16)- 들미재(13:38)- 거저산(14:05)- 지묘동 운동시설(15:15)- 동응해산(15:37)- 왕산(16:44)- 지묘동 표충사(17:02)
산 행 지 도
제 12호 태풍 탈라스의 간접 영향권에 들어서일까?
피부에 와 닿는 바람이 신선하다.
등산하기에 딱 좋은 날인 것 같아, 기분도 좋고..
하늘에는 먹장구름이 여기저기 바쁘게 움직이는데...
석조비로자나불좌상
군위 제2석굴암 경내에 들어서니 비로자나부처님이 은근한 미소로 지나가는 길손을 반긴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이 불상은 9세기 후반에 유행하던 비로자나불상으로 광배는 없고, 대좌는 일부 파손되어 사찰에서 보존되고 있다.머리는 나발에, 육계는 평평한 편이며 얼굴은 풍만하고 목ㅇ는 삼도를 표시하였으나 목은 짧은 편이다.
수인은 전형적인 비로자나불상의 모양을 하고 있으며, 각부의 모습은 양감을 느끼게 한다.
제2석굴암은 아도화상이 창건하였고, 천연동굴내의 삼존석불은 원효스님이 조성하였다고 한다.
이후 삼존석불 외 모든 건물들이 멸실되어, 20년전에 법등스님이 중창하셨다는데..
내가 바로 알고 있는 것인지, 틀린 말인지 나도 모르겠다..ㅎ
비로전 내부
학소대
학소대를 둘러보며 길가의 가을을 음미합니다.
주차장을 지나 지척에 있는 신리마을을 찾아 갑니다.
신리마을 초입에서 보는 청운대와 비로봉
신원농장이라는 팻말을 보고 임도로 진행합니다.
아마 신원농장이 이 과수원을 가리키는 듯..
과수원 마지막 지점에 산으로 올라가는 길이 열려 있네요.
마루금 옆으로는 도로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고..
조금 올라서니 도립공원 경계석이 보이고..
돌아서 보니 대율리 마을도 환히 보입니다.
팔공산 팔공성 내의 공군부대도 보이고..
동산임도
팔공산 탐방 8에서 지나 간 임도입니다.
선답자 산행기를 보면 이 임도전에 오재봉이 있던데, 오재봉이 어딘지도 모르고 지나칩니다.
아마? 좀전에 지나친 해발 595m 봉우리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은데, 아무런 표식도 없습니다.
팔공산 주능으로 올라가는 길에 보는 청운대
그래도 동산임도까지는 길이 그런대로 좋았는데, 임도 이후부터 팔공 주능까지는 멧돼지들의 식흔만이 발견될 뿐 사람의 흔적이라곤 시그널 몇 장만이 나그네를 반깁니다.
동산계곡
앞에 보이는 바위가 가마바위인 가 봅니다.
전망대에서 보는 청운대
전망대
조망이 나올 법한 뚜렷한 장소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큰 바위지대가 나오네요.
이 바위에 올라서니 사방이 잘 보입니다.
팔공산 주능 122번 지대입니다.
역시 팔공산 주능에는 산객들이 많군요. 경치도 빼어나고..
톱날바위 능선
릿지구간으로 좋지요.
여릿재도 보이고, 한티휴게소도 보입니다.
가산산성 방향
대구도 보입니다.
제가 가야할 길도 보이는군요.
갓바위 방향
팔공 골프장도 보이네요.
지나는 산님에게 사진도 한장 부탁하고..
앞에 보이는 바위가 치마바위인가요?
학생야영장 등산로가 새로이 생겼네요.
거저산 가는 길에 보이는 등산로 외에 하나가 더 생겼는건가..
파계봉
파계봉을 지나 들뫼능선으로 진입을 합니다.
들뫼가 아니고 들미가 맞는 것 같은데..
이 바위도 무슨 이름이 있지 않나요?
팔공학생 야영장 표지가 보입니다.
659봉
들미재로 가는 길에 장뇌삼 재배단지도 보입니다.
작년에는 못 본것 같은데..
들미재입니다.
가져간 물이 다 떨어졌네요.
들미재 조금 내려 와 "허브 위" 찻집 겸 농장에서 물을 조달합니다.
날이 은근히 많이 덥군요.
물도 많이 써이구요.
거저산 산불감시초소에서 보는 팔공산 정상부
거저산 정상입니다.
별다른 표식이 없군요.
좌로는 삼마산 가는 길이고, 직진하는 길이 지묘동 가는 길입니다.
이제 동구청 산악회의 왕누리 길을 따라 갑니다.
조금 진행하니 임도가 나옵니다.
내동과 신용동을 연결하는 길입니다.
가는 길에 보이는 서응해산과 도덕산
동응해산 이르러니 시멘트 포장이 되어있네요.
암만 찾아봐도 동응해산 가는 진입길을 못 찾겠습니다.
여기저기 들어가 보다가 이내 나옵니다.
계속 왕건 누리길을 따라 가봅니다.
무학산, 환성산, 낙타봉, 초례봉이 보입니다.
임도 길에 이런 쉼터도 있고..
억! 무슨 동네 운동시설터도 나옵니다.
여기가 지묘동 분들 운동시설지라는군요.
여기까지 많은 분들이 이용한답니다.
지묘동에서 임도따라 오면 약 40분 걸리는 거리랍니다.
응해산 가는 들머리는 여기에서 열려 있습니다.
산길을 올라서는데 많은 분들이 이용하는 길이 아닙니다.
길이 많이 묵어 있군요.
동응해산 정상
아무런 표식도 없는 이 동응해산에서 왕산가는 길이 걱정이 많이 됩니다.
지묘동 분들이 전혀 이용을 안하는 산길일 것 같습니다.
대구 칠곡주민들의 함지산 사랑하고는 거리가 먼 것 같은 예감이..
가는 길에 공산댐이 보입니다.
어릴 땐 저기가 여름철에는 수영지로, 겨울에는 스케이트장으로 각광을 받았던 동화천 유원지로 기억이 납니다.
왕산입니다. 왕이 있었다 하여 왕산이랍니다.
고려군과 백제군이 이 왕산 밑에서 큰 싸움을 벌인 동수전쟁터가 이 왕산 밑에 있는 지묘동입니다.
매복해 있던 백제군에게 밀려 고려군이 대파하고, 태조 왕건이 이 왕산까지 도망쳐 사색이 되어 떨고 있었다더군요.
그때 체구와 얼굴이 비슷했던 신숭겸 장군이 왕건의 옷과 깃발을 들고, 이 왕산을 내려가 왕건의 행세를 하며 대신 죽었답니다.
백제군은 신숭겸 장군의 목을 쳐 장대에 걸고(왕건의 목인줄 알고..), 승리가를 부르며 전쟁을 끝냈다는데...
내려가는 길에 다시보는 공산댐
돌아보는 응해산과 팔공산
저 응해산에서 왕산까지의 등산로는 칡덩쿨 천지입니다.
거미줄은 또 어떠하던지..
갈대와 칡덩쿨이 어우러진 산길은 어떤 의미를 두지 않고는 갈 수 없는 길로 보이집니다.
중간에 작은 산 앞은 지묘동, 뒤는 불로동
신숭겸 장군의 위패를 모신 표충사가 지척에 보입니다.
왕산을 다 내려와 보니, 이런 조그만 소로길이군요.
왕산 진입로를 찾을려면 신경을 쓰셔야 겠네요.
표충사 담장을 따라..
표충사 경내
공산 동수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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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 동수 전투(公山棟藪戰鬪)는 후삼국 시대인 927년 신라 공산(公山, 현 팔공산) 동수(棟藪, 현 지묘동)에서 고려의 왕건과 후백제의 견훤이 치른 전투로 견훤이 왕건군을 기습 공격해 대승을 거두었고 이곳에서 신숭겸 등 8명의 장수가 전사해 지명이 공산에서 팔공산으로 바뀌었다는 설화도 있고 반야월 등 대구의 대표 지명들이 이 전투에서 생겼다.
[편집] 배경
후삼국 시대 당시 고려와 후백제는 처음에는 별다른 충돌 없이 평화롭게 지냈으나 926년 9월 견훤이 고려 근품성을 공격하면서 전쟁이 시작되었다. 927년 견훤은 군사를 이끌고 대대적으로 신라를 정벌하기 위해 신라 근암성(현재 문경시)과 고울부(현재 영천시)를 공격해 함락시키고 수도 금성(현재 경주)로 진군했다. 신라 경애왕은 왕건에게 구원을 요청해 왕건은 1만 명의 군사를 원군으로 보냈다. 그러나 고려군이 도착하기 전 후백제군이 먼저 경주를 점령하여 경애왕을 자결하게 하고 경순왕을 새 왕으로 세웠다. 이에 왕건은 5000명의 군사를 이끌고 후백제군을 격파하기 위해 출전했다.
[편집] 전투 과정
왕건은 대구 공산 아래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이 틈을 노려 견훤군이 왕건군을 기습 공격했고 5000명의 고려군을 우왕좌왕하며 혼란에 빠졌다. 왕건의 부하 신숭겸이 왕건의 복장으로 왕건을 대신해 싸우다가 전사했고 부하 김낙도 왕건을 자신의 말에 태우고 가다가 화살에 맞아 죽었다. 이어 전의갑과 전이갑 형제도 싸우다가 전사했다. 왕건은 겨우 탈출했으나 8명의 장수를 잃고, 5000명의 군사 중 4930명이 전사하고 불과 70명만 살아돌아왔다.
[편집] 결과
고려는 이 전투에서 건국 이래 최대의 패전을 당하게 되고 왕건은 후에 930년 고창 전투에서 승리하여 전세를 뒤엎는다.
이후 태조는 신숭겸의 시신을 찾아내어 통곡하며, 광해주 비방동(현, 춘천시 비방동)에 예장한 다음 직접 제례를 지내고 그 자리에 순절단(殉節壇)을 모시고 대구지방에 지묘사(智妙寺)라는 절을 지어 공의 명복을 빌게 하였고, 세개의 봉분을 만들었다고 한다.
또한 1120년(예종15)에 신숭겸과 감락장군을 추모하는 도이장가(悼二將歌)라는 향가를 지어 찬양케 하였다. 현재 곡성의 덕양서원과 용산재, 대구의 표충사, 춘천의 도포서원(道浦書院), 평산의 태백산성사(太白山城祠), 동양서원 등에 배향되고 있다.
평화로워 보이는 이곳 표충사터가 옛날에는 치열한 전투장이라는군요.
얼마나 많은 군사들이 죽었을 지..ㅠ
날이 참 덥더이다.
물도 많이 쓰이고..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습니다.
오늘도 늘 주변의 분들로 부터 힘을 얻습니다.
님들이 부처님이고, 하느님이십니다.
늘 즐산안산하시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