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 일시 : 2011년 9월 17일 08시 35분 - 18시 07분
산행 구간 : 북지장사에서 북지장사로..
산행 거리 : 23.23km
총소요시간 : 9시간 32분
평균이동속도 : 시간당 약 2.45km
산 행 자 : 나홀로..
주요 구간별 산행 시간:
북지장사 입구(08:35)- 북지장사(08:58)- 인봉(09:57)- 주능선(11:15)- 선본사(12:00)- 묘봉암(13:04)- 백흥암(13:37)- 기기암(14:09)- 원효암(14:33)- 갓바위(16:42)- 유스호스텔 등산로 기점(17:07)- 북지장사 입구(18:07)
산 행 지 도

시골로 이사 오면서 지은 집이 부실시공이라 마음이 어수선하다.
시공업자에게 아무리 연락을 취해봐도, 책임있는 대답이 없다.
하~~
스트레스는 날로 쌓이네. 날은 점점 추워지는데..ㅠ
오늘 지역 산방이 정기산행을 가는 날이다.
함께 가기로 약속을 해놓았는데 무언가 착오가 있었는 지, 내 이름표가 없다..
허! 이런 일이..
그렇지만 별로 기분이 나쁘지도 않다.
이번 산행 보다 더 가고 싶은 산행지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으니까..ㅎ

칠곡신협 본점에서 회원들과 헤어지고 바로 도착한 오늘의 산행기점.
도학동 마지막 도로포장 부분..

북지장사 솔밭길이 넘 행복하다..
어떻게 이런 길이 아직도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까? ㅎㅎ

넘 행복한 솔밭길이다..^^

20여분 올라가니 북지장사가 객을 기다리고 있다..
이곳 북지장사 솔숲길이 대구 올레길이란다.
올레가 무슨 뜻인지?

팔공산 지장신앙의 발원지 북지장사
본 절은 신라 소지왕 7년(485) 극달화상이 세웠다 한다.
팔공산 관봉의 서쪽 지역인 노적봉(해발 600m) 남쪽 기슭에 자리해 있으며, 대한불교조계종 제 9교구 동화사의 말사이다.
북지장사는 보물 제 805호인 대웅전과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 6호인 삼층석탑 2기, 제 15호인 석조지장 보살좌상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북지장사 "지장보살도"라는 탱화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북지장사는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변한 것이 없어 보인다.
이런 보물들을 많이 가지고 있으면서도, 신도들이 없는 것일까?
물질적으로 많이 부족해 보인다.






이 산령각 뒤로 산길이 열려 있다.
팔공산 인봉능선의 인봉으로 올라간다.

인봉

인봉에서 보는 동화사 통일대불과 팔공산 정상부

가장 높이 보이는 부분이 노족봉
인봉 바위에서 자라는 소나무

지나 온 북지장사


돌아보는 인봉
이 인봉에서 보는 경치가 그만이다.

제일 높이 보이는 산이 도덕산. 그 앞 옴폭한 곳이 들미재

팔공산 골프장


이제 노적봉이 가까이 보인다.

방아덤도..

방아덤, 노적봉, 도장바위

노적봉 서면의 이끼들..

팔공산 주능 15번
이제 팔공산 주능에 진입한다.

방아덤 오르는 돌구멍

방아덤 연못?ㅎ

가까이서 보는 도장바위

절경이다.
은해사에서 연무가 피어 오른다.

멋진 경치에 마음은 황홀해지고..
아~~


방아덤 돌구멍을 나와 선본사로 내려 간다.


17번 능선이 선본사로 내려가는 길..

선본사 암릉 능선길이 전혀 오염되지 않은 청정지역이다.

선본사(경북 경산시 와촌면 대한리 587)
팔공산 관봉 아래에 자리한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직영사찰로 속해 있다.
선본암 중수기문과 여러 자료를 통해 491년 신라 소지왕 13년에 극달화상이 창건하였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그뒤 수청스님이 1641년 인조 19년에 중창하였다.
그 이후로도 1765년 영조 41년에 기성스님의 중창을 포함하여 여러차레 중수를 통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사찰내 모든 성보 문화재는 모두 신라후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선본사 삼층석탑을 둘러보고 선본사 뒤 계곡쪽으로 진행..

어느 분의 부도탑일까?
수청스님? 아님 기성스님?
예사로워 보이지 않는다.

은해사 능선길
선본사 뒷 능선에서 오르는 길과 만난다.

삼거리
여기서 오른쪽으로 진행..
묘봉암으로 간다..

산객을 반기는 묘봉암 표시등
반갑다..ㅎ
이 능선따라 계속 내려가면 백흥암으로도, 기기암으로도 내려갈 수 있다.

묘봉암
묘봉암은 833년(흥덕왕 8)에 심지(心地)왕사께서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그 뒤 오랫동안 관음기도처와 수행처로 전승되어 오다가 1485년(성종 16)에 죽청(竹淸)과 의찬(義贊)이 중창하였고 1780년(정조 4)에 다시 중창하였으며, 최근에 6·25사변 당시 폐사된 것을 법운(法雲)스님께서 중수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관음기도와 신신기도처로 유명하고 과거에는 나라에 큰일이 있거나 큰절에 행사가 있을 때에는 은해사 대중스님들이 모두 올라오셔서 산신기도를 올렸다고 전해지며, 산령각 옆 석간수는 불치의 병도 낳게한다는 신비의 약수로 유명하다.

법당 내에 어떻게 이런 큰 바위가..

법당 내 석간수
신기하기도..

원통전과 요사채
원통전은 과거 석굴에서 기도를 해왔던 곳으로 석굴 위에 건물을 지은 것이다. 높이가 매우 높아 정사각형의 모양에 가까운데 이는 내부에 큰 돌이 뻗어 있어 그 아래에 관세음보살상을 안치하고, 왼쪽 위에 2층을 만들어 석가모니불을 봉안하였기 때문이다. 은해사의 산내 암자 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절이기도 하다.

법당내부에는 큰 바위가 있고 그 아래에 불상을 봉안한 특이한 구조의 전각이다

묘봉암을 둘러보고, 임도길을 따라 백흥암으로..

묘봉암과 중암암 갈림 삼거리

백흥암
팔공산의 은해사 산내 암자로 니구니 스님들의 수도도량이다.
1년중 부처님 오신날과 백중일, 딱 2일만 산문을 연다.
백흥암의 사기에 의하면 이 절은 국사 혜철스님이 861년 (경문왕 1년)에 착공하여 873년에 완공하였으며, 절 주위에 잣나무가 많다하여 松旨寺라 하였다고 한다.
그뒤 1546년(명종 1년)에 백흥암으로 개칭하였고, 1651년(효종 2년)에 중건하였으며, 1677년(숙종 3년)에 중수하였다.
1730년(영조 6년)에는 보화루를 중건하였고, 1858년 (철종 9년)에는 청봉스님이 영산전을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때 이 절은 수백명이 수도하였다고 하며, 규모도 암자로서는 매우 큰 편이다.




주 전각이 극락전인 것을 보니 아미타불을 모신다.
건물의 고색을 보니 백흥암의 역사를 보는 듯 하고..

백흥암을 나와 기기암으로..
이 전봇대있는 곳을 살펴보면 기기암으로 넘어가는 산길이 열려 있다.
백흥암에서 묘봉암 가는 길로 50m..

물은 막힘없이 흐르고..


신기사바(身寄娑婆) 심기극락(心寄極樂)의 기기암
寄寄庵이란이란 사명은 '몸은 사바에 머물고 있지만, 마음은 극락세계에 머문다'는 '身寄娑婆 心寄極樂'이란 말에서 유래한다
오른 쪽 새로 신축한 건물은 스님네 참선 공부방..

귀룽나무(구룡목)
선원 아래를 지나자 기기암 현판을 단 법당이 나온다.
특이하게도 ㄱ자 법당이다.
기기암은 대한불교 조계종 제10교구본사인 은해사의 산내암자이다.
신라 현덕왕 시절에 정수대사라는 분이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지금의 전각은 폐사지에 남아 있던 부재들을 사용해서 1970년대에 중건했다고 하네..

법당에는 대세지 보살상만 모셔져 있었다.
신중단은 법당에서 나와 마루를 겸한 복도를 ㄱ자로 꺾어 들어가자 따로 모셔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