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일 때마다 이슈를 만들어 내는 가수 신해철이 7개월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이번에 들고 온 것은 3CD 라이브 앨범과 영화음악 ‘세기말’.
97년 11월 그룹 ‘넥스트’를 해체하고 영국 유학을 떠났던 그는 그 사이 영국 생활을 접고 근거지를 미국으로 옮겨 그 동안의 음악적 변화가 관심거리다.
라이브 앨범은 지난 4월 ‘Monocrom’ 앨범을 발표하고 가졌던 전국 투어 실황.‘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머야’‘Go With The Light’같은 ‘Monocrom’ 앨범 수록곡과 ‘그대에게’‘재즈 카페’, ‘날아라 병아리’ 등 ‘무한궤도’부터 ‘넥스트’ 때의 곡까지 총망라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팬들을 설레게 하는 것은 라이브 앨범의 세 번째 CD ‘Homemade Cookies’.음반의 컨셉트와 맞지 않았거나 작업 시간이 촉박해 기존 앨범에 수록하지 않았던 미발표곡 4곡을 새로 손질해 모았다.
‘그들만의 세상’, ‘너네가 뭔데’, ‘여름은 쉽게 가버렸다’, ‘민물장어의 꿈’이 그곡들.히트곡 ‘일상으로의 초대’는 피아노 반주에 맞춘 어쿠스틱 발라드로 탈바꿈했다.
“‘Homemade Cookies’는 일종의 팬 서비스예요.굳이 미발표곡을 택한 이유는 그만큼 창작시간이 줄어들기 때문이죠.멜로디를 새로 만들 시간을 테크놀로지에 투자했어요.‘넥스트’ 시절 퀄리티를 추구한다고 음반 한 장에 2억원을 써가면서 깨달은 게 있었어요.대중음악은 퀄리티보다 유니크함이 중요하다는 거지요.유니크함을 추구하면 저 예산으로도 얼마든지 음악이 가능합니다”
‘Homemade Cookies’는 작사·작곡과 연주,편곡,사운드 엔지니어링, 믹스 전 과정을 자신의 작업실에서 혼자 했다는 뜻으로 붙인 이름.
혼자 작업한 이유에 대해서는 자신의 머리 속에 있는 것을 소비자에게 전달하기까지의 모든 과정에 다른 사람이 끼어 드는 것을 최대한 배제함으로써 자신의 개성을 온전히 전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Homemade Cookies’의 타이틀 곡이자 편곡을 바꿔 세가지 버전으로 실은 ‘그들만의 세상’은 영국에서 완성했던 ‘Crom’s Techno Works’와 ‘Monocrom’의 연장선상에 서있는 테크노곡이다.요즘 가요계를 휩쓸고 있는 테크노를 이미 2년 전에 그가 선보였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게 와닿는다.
“누가 먼저 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얼마나 잘 했느냐가 문제죠.전 아직도 제가 테크노 뮤지션이 아니라 록가수라고 생각합니다.전에는 록을 하는 방법을 일렉트릭과 어쿠스틱 두가지만 알고 있었는데 이제 ‘일렉트로닉’이라는 세 번째 방법을 얻은 것뿐이죠”
신해철이 선보일 두 번째 프로젝트는 ‘넘버 3’로 데뷔했던 송능한 감독의 영화 ‘세기말’의 음악이다.‘세기말’은 시나리오 작가, 원조교제를 하는 여대생,바람둥이 시간강사 등이 등장하는 사회비판 드라마.신해철은 12월11일 개봉에 맞춰 그 동안 작업했던 OST를 출반할 계획이다.그로서는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정글 스토리’, ‘영혼기병 라젠카’에 이은 네 번째 영화음악 작업이다.
“송감독의 제안이 멋져서 넘어가긴 했지만 영화음악 작업은 시간에 쫓기고 워낙 고생스러워요.저는 계속 음악을 줄이자고 했지만 송감독이 자꾸 더 깔자고 해서 소테마까지 34곡이나 들어갔어요.영화 자체가 복합적이다 보니 음악도 여러 장르를 사용하게 됐구요”
신해철은 12월3일로 예정된 ‘세기말’ 시사회에 참석한 후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 OST의 끝손질을 할 생각이다.지난 8월 뉴욕 근처에 ‘Cromotron Studio’라는 작업실을 마련했다는 그는 아무래도 새 천년은 미국에서 맞게 될 것 같다고.
“원래 날짜 개념이 없어서 2000년이라고 따로 의미를 두는 건 없어요.그저 하고 싶은 걸 열심히 하면 되겠죠.하고 싶은 일이 산더미처럼 쌓였거든요.그동안 가수하면서 작곡도 하고 컴퓨터도 만지고, 요즘엔 레코딩 엔지니어도 하면서 필요 없는 짓을 계속하고 있잖아요.아직 뚜렷한 목표를 밝힐 단계는 아니지만 지금까지 안해본 것을 해보려고 해요.이러다간 수많은 일 중에서 ‘가수도 한다’가 될 것 같아요,하하…”
한국에서 더 자주 얼굴을 보고 싶어하는 팬들이 많다는 질문에 “팬들은 내가 더 자유롭게 살기를 바란다” 는 대답이 돌아왔다.이렇게 말하는 그이지만 이 메일을 통해 팬들과의 끈은 놓지 않고 있다.
“가끔 작업을 하다 메일함을 열어보면 편지가 잔뜩 와 있어요.음악에 대한 얘기보다 격려해주고 자기 고민을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요.어쨌든 저는 제가 몇몇 귀족의 후원을 받는 중세 시대의 음악가가 아니라 자본주의 시대의 음악가라는 게 자랑스러워요.얼마를 벌든 팬들이 판을 사준 돈으로 생활을 영위하는 당당한 전업작가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