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이 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저 친구는 큰 일 "할" 사람이야!”라는 말과 “저 친구는 큰 일 ‘낼’ 사람이야!”라는 말이 있다.
비슷해 보이지만 이 두 말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다같이 “큰 일”을 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지만, “큰 일 할 사람”은 장차 훌륭한 업적을 내고 이름을 빛낼 사람을 뜻하지만, “큰 일 낼 사람”은 범법 행위 등으로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킬 사람이란 말이다. 글자 한 자 차이일 뿐이지만 그 의미에는 실로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다.
서양 역사의 한 시대를 일컫는 “중세”라는 말도 곰곰이 새겨보면 그 안에서 중요한 의미를 이끌어 낼 수 있다. 서양 역사에서 서기 500년경부터 1000년경까지의 시기를 흔히 “중세(Middle Ages)”라고 부른다.
그리고 중·고등학교에서 세계사 공부를 해 본 경험이 있는 독자라면 누구나 중세와 같은 뜻으로 사용하는 말로 “암흑시대(Dark Ages)”를 떠올릴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암흑시대[Greek Dark Ages]와 혼동하지 말기 바란다.)
우리가 다 알다시피 암흑시대라는 말은 물론 긍정적인 의미, 칭찬하는 의미로 쓰인 것이 아니다. 암흑과 미신, 무지와 야만, 폭력과 추악함, 천박함과 더러움에 찌든 시기였다는 뜻이 그 안에 숨어 있는 것이다.
중세가 그토록 부정적인 의미로 간주되어 왔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중세”라는 말 안에 심상치 않은 의미가 있으리라는 점을 쉽사리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번 생각해 보자. 서양에서나 동양에서나 “중(中; middle)”이란 말은 모두 긍정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예를 들자면, 서양에서든 동양에서든 “중용(中庸; middle course)”이란 말은 모자라거나 지나침이 없는 경지를 가리키는 말로써 모든 사람이 마땅히 이상으로 삼아야 할 덕목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서양 역사의 한 시대를 일컫는 “중세”라는 말에는 이렇듯 부정적인 뜻이 배어들게 되었을까? 그 이유는 근대 초기에 활동했던 역사학자들이 자기들이 속한 시대에 대해 품었던 특별한 감정 때문이다.
17세기의 역사학자들은 자기들의 시대가 중세와 확연히 구분되는 새로운 시대라고 믿고 있었다. 그들은 로마 제국의 멸망과 더불어 고대 그리스·로마의 찬란한 고전 문명이 소멸된 것으로 보았다.
화려했던 고전 고대의 황금시대가 로마 제국의 멸망과 더불어 붕괴한 다음 무지와 야만의 1천년이 지속되었고, 근대 초기에 접어들어서야 비로소 그 위대한 문명이 새롭게 “부활”되었다는 것이다.
“부활”이란 말은 무슨 의미인가? 말 그대로 죽었던 생명이 다시 살아났다는 뜻이다. 절정에 달했던 고전 문명이 1천년의 죽음 끝에 다시 살아났다는 뜻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르네상스(Renaissance)”란 말이 원래 “부활(rebirth)”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었음을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황금시대가 다시 살아났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17세기 역사학자들은 서양 역사에서 두 개의 황금시대가 존재한다고 보았다. 첫 번째 황금 시대인 “그리스·로마의 고전 고대,” 그리고 부활한 황금시대인 “르네상스 시대”가 바로 그것이다.
여기에 이르러 우리는 비로소 “중세”라는 말의 의미를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첫 번째 황금시대와 두 번째 황금시대 사이에 낀 보잘것없는 암흑의 1천년이라는 뜻이다. 위대한 두 시대 사이에 낀, 축 처진 “중간 시대(Middle Ages)”―이것이 17세기 역사학자들이 생각한 중세였다.
2. 서양사의 시대구분
여기에서 잠깐 시대구분법에 대한 이야기를 하도록 하겠다. 서양사학자들이 서양 역사를 시간적으로 구분해서 생각할 때 가장 널리 사용하는 구분법은 3분법이다. 3분법이란 역사의 전 시기를 고대·중세·근대의 세 시기로 나누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시대구분법이 처음 등장한 것은 17세기였다. 우리가 꼭 알아두어야 할 것은, 이 3분법에서 가장 핵심적인 요소가 중세라고 하는 점이다. “중세”를 사이에 두고 “고대”와 “근대”가 각각 그 앞과 뒤로 설정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이나 중국 등, 유럽과 역사적 경험을 크게 달리하는 지역의 역사에 대해 고대·중세·근대의 3분법적인 시대구분을 적용한다는 것이 얼마나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지를 알 수 있다.)
요컨대 중세라는 말에서 “중”이란 말은 결코 긍정적인 의미로 쓰인 것이 아니다. 위대한 두 시대 사이에 위치한 초라한 시대이다. 첫 번째 황금시대를 죽음으로 몰아넣고 두 번째 황금시대가 부활할 때까지 유지되었던 암흑의 시대라는 것이다.
이상이 17세기의 역사학자들이 생각했던 중세 개념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살던 시대가 제 2의 황금시대라는 확신에 차있었고 그들의 앞 시대를 이렇듯 경멸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중세 개념은 서양의 식자층 사이에서 19세기에 이르기까지 별다른 문제 제기 없이 통용되어 왔다.
3. 찬란한 문명을 창조한 “중세”
그러나 오늘날의 역사학자들은 더 이상 중세를 암흑시대로 생각하지 않는다. 17세기의 역사학자들과는 달리 현대의 역사학자들은 중세를 경멸하지 않는다. 현대 역사학자들은 중세가 시작한 500년경부터 1500년경 사이에는 암흑시대라는 한마디 말로 단순화할 수 없는 중요한 발전과 업적이 이루어졌다고 본다. 그 예를 들어보기로 하자.
서유럽의 경우를 보기로 하겠다. 오늘날 전세계 수많은 국가들에 산재해 있는 대표적인 고등 교육기관인 “대학”의 역사를 옛날로 소급해 보면 그 기원은 중세 유럽에서 찾을 수 있다.
프랑스의 파리 대학은 1200년경에 출범했다. 파리 대학은 이미 1250년경에 매년 약 7,000명가량의 학생 수를 유지했다고 하니, 오늘날과 그 당시의 인구를 견주어 볼 때 그 학생 수가 얼마나 많은 것인지를 쉽사리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처럼 많은 인구가 고등 교육을 받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중세를 함부로 암흑시대라고 단정할 수 없을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시기에 파리 대학에서는, 오늘날 전 세계 모든 대학에서 시행되고 있는 것처럼, 학사·석사·박사 학위를 수여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전공 분야는 오늘날처럼 많지 않아서 문학, 신학, 법학, 의학의 4개만 있었다.
두말할 나위 없이 중세 파리 대학에서 시행되고 운영되었던 각종 조직과 기구는 그 후 영국, 독일, 미국 등 서양의 대학들은 물론, 궁극적으로 한국, 중국, 일본 등의 대학들에서 계승·발전되어오고 있다.
또 한 가지 예를 들기로 하자. 로마 카톨릭 교회는 고대 로마 시대에 비롯되었지만, 역사학자들은 카톨릭 교회의 각종 교리와 전례가 “본격적”으로 확정된 것이 13세기경이라는 데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동정녀 마리아에 대한 경배라든가, 일곱 가지의 성사(세례, 견진, 고해, 신품, 혼배, 성체, 종부)가 카톨릭의 교리로 정착된 것이 바로 이 시기라는 것이다.
실로 카톨릭 교회의 입장에서 볼 때 중세는 역사상 전무후무할 정도의 전성기였다. 중세 사상의 정수라 할 수 있는 스콜라신학(Scholasticism)이 완성된 것도 바로 이 때였다. 스콜라신학의 완성자인 토머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는 앞에서 말한 파리 대학을 졸업하고 파리 대학 신학부에서 평생을 연구하고 가르친 중세의 대표적인 사상가였다.
끝으로 이슬람 문명의 예를 들어보기로 하자. 무하마드가 창시한 이슬람교는 그 신도수가 오늘날 전세계 인구의 약 7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지리적으로는 아프리카, 중동, 러시아 독립국가 연합을 거쳐 인도,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에 이르기까지 광대한 지역에 걸쳐 있다.
그런데 이 거대한 이슬람 문명이 탄생하여 젊음을 구가한 화려한 시대는 바로 중세였다. 7세기 초에 아라비아 반도에서 출발한 이슬람 문명은 불과 1세기 동안에 북아프리카를 휩쓸고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이베리아 반도(지금의 에스파냐와 포르투갈)를 정복했다.
그 후 1492년에 이베리아 반도에서 완전 철수할 때까지 이슬람 문명은 군사적인 면에서뿐만 아니라 사상과 학문에 이르기까지 놀라운 업적을 이룩했다. 중세의 이슬람 문명을 암흑시대라고 한다면 그보다 더 잘못된 일도 아마 없을 것이다.
4. 중세: 가치중립적 용어
예를 들자면 끝이 없지만, 이제 중세를 도매금으로 암흑과 무지의 시대로 몰아붙일 수 없다는 점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짚고 넘어가도록 하자. 과연 중세 유럽이 그토록 대단한 문명을 건설한 것이 분명하다면 어째서 21세기를 맞이한 지금까지도 “중세”라는 말이 일반인은 물론 학자들 사이에서조차 널리 쓰이고 있을까?
그 대답은 이렇다. “관행(慣行)의 힘” 때문이다. 즉 이 용어는 오랜 동안 너무나도 널리 사용되어서 이제는 다른 용어로 바꿀 수 없는 고정된 역사 술어가 되고 만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하다. 오늘날에는 어떤 역사가도 예전처럼 그 말을 경멸적으로 사용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중세라는 “말”은 여전히 남아있지만, 그 말속에 담겨 있는 “의미”는 커다란 변화를 보이게 되었다.
즉 경멸적인 뜻은 사라지고 중립적인 의미가 새로이 담겨진 셈이다. 그것은 오늘날에는 단지 한 시대를 가리키는 말로써만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첫댓글 좋은 공부하고 가네요. 많이 배웁니다. 나의 시야가 확 넓어지는 느낌입니다. 감사합니다. 모든 글을 읽고 다른 분들에게도 소개하고 싶군요.
이거 10년 전에 쓴 글인데...모아서 책으로 낸다하면서 아직도 못내고 있습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