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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일시 : 2014년4월12일 토요일
전북 임실군 관촌면 회봉리 상회마을 도착[11:24] - 출발[11:33] - 마재[11:46] - 610봉(국사봉 갈림봉)[] - 정수사 갈림봉(600m)[12:17] - 625봉[12:26] - 관음봉 정상[12:32] - 699봉(정수사 갈림봉)[12:46] - 725봉(정수사 갈림봉)[12:51] - 745봉(만덕산 갈림봉)[12:57] - 만덕산(763m)[13:03~13:06] - 745봉(만덕산 갈림봉)[13:12~13:27; 점심] - 암봉(우측 사면길은 정맥길이 아니고 암봉을 오르거나 사면길로 접어들면서 잠시 후 좌측으로 암봉을 올라서 가야 정맥길)[13:30] - 제2쉼터[13:46] - 무명봉 삼각점[13:48] - 원불교훈련원 갈림길 안부[13:51] - 오두재[14:05] - 곰재(432m)[14:34] - 전적비[14:39~14:40] - 607봉 갈림길[14:56] - 곰티재[15:24] - 571봉[15:38] - 514.5봉[15:48] - 적내재[16:15] - 497봉[16:25] - 모래재 갈림길[16:46] - 헬기장[17:03] - 3정맥 분기봉[17:06~17:10] - 조약치[17:13] - 전주공원묘지[17:20] - 모래재 전주공원묘지 식당 앞[17:27]
마재(馬峙)
: 전라북도 완주군의 상관면 마치리와 관촌면 회봉리 상회마을을 잇는 고개이다. 북쪽으로 만덕산이 주변에 있으며, 진안 · 마령 사람들이 말을 타고 지나던 길목이어서 '마재'라 칭하였고, 이를 한자어로 '마치(馬峙)'라 했다. 고개를
중심으로 상관면과 임실군 성수면에는 마재의 한자어 표기인 마치(馬峙)라는
이름을 가진 마을이 있다. '마치'의 마을인 마수대(馬水大)는 마치(馬峙), 정수(淨水), 대판(大板)에서 한 자씩을 취하여 만든 이름이다. 이들은 마재 지명과 관련이 있는 마을 이름이다. [지명유래 ; 진안 마치 참조]
완주군 상관면 마치리와 완주군 관촌면 회봉리 상회마을을 잇는 고개이다.
600m봉(삼면봉) : 완주군 상관면, 진안군 성수면, 임실군 관촌면을 경계 짓는 삼면봉이면서 세 개의 군 경계가 되는 봉이기도 하다. 600m봉 좌측 능선은 국사봉으로 이어지고 호남정맥 마루금은 직진을 하여 내려서면 마치로 이어진다.
국사봉(國師峰) : 전라북도 진안군 성수면 용포리에 있으며, 나라의 스승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만덕산(萬德山)
: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과 진안군 성수면에 걸쳐있는 산으로 높이는 762m로 일명 부처산이라고도 하는데, 만 가지에 달하는 덕을 가진
이는 부처뿐이라는 뜻에서 기인한다. 호남정맥에서 제일 먼저 솟아오른 봉우리로, 암봉과 육산으로 조화를 이룬다. 가을에는 단풍, 겨울에는 설경의 풍치가 펼쳐진다. 특히 동남쪽 기슭에 위치한 미륵사
일대의 경관은 일품이며, 높이 50m의 만덕폭포와 그 주변의
풍광도 뛰어나다. 만덕산의 명칭은 만덕사(萬德寺)에서 유래한다. 만덕사는 고구려 때 보덕이 산자락에 개창한 사찰이다. 임진왜란 때 웅치싸움이 일어났던 역사적인 전적지이며, 6·25전쟁
때 빨치산의 침몰이 심했던 곰치재를 지킨 수문장과 같은 산이다.
오두(烏頭)재 : 전라북도 진안군의 성수면 중길리에 소재한 고개이다. 성수면 중길리 상달길과 부귀면과 완주군 소양면 사이에 위치한 재로 까마귀의 머리처럼 생겼다고 하여 유래된 지명이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 참고자료한국지명유래집 전라 · 제주편-
웅치전적지 : 웅치는 현재 우리가 말하는 곰티재의 한문표기이다. 웅치전적지는 전북
완주군 소양면 신촌리 산 1번지에 위치하고 있으며,1976년 4월 2일 전라북도기념물 제25호로
지정되었다. 이곳은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때 조선의 관군과 의병이 전라도로 진출하려던 왜군을 맞아 장렬한 공방전을 전개하였던 격전지이다. 왜군은 해로를 통해 곡창지대인 전라도를 장악하려고 했으나, 이순신의
활약으로 해로가 막히자 육로로 침공할 계획을 세웠다. 왜적은 무주, 금산, 진안 등지에 군대를 집결시키고 선조 25년(1592) 7월 8, 9일에 웅치로 쳐들어왔다. 충청남도 금산에 주둔하고 있던 왜군이 2진으로 나뉘어 전주를 공략하자
광주목사 권율이 이치에서 적의 1진을 맞아 격파하고, 김제군수
정담·해남현감 변응정·나주판관 이복남이 이끄는 의병은 웅치에서
적의 2진을 맞아 격파하였다. 다음날 새벽 왜군은 전열을
가다듬고 다시 공격해옴으로써 웅치 수비는 무너지고 말았다. 3일간에 걸쳐 전개된 이 전투는 임진전란사에
손꼽히는 대격전이었고 특히 조선군의 주장인 정담은 포위당한 백병전으로 적을 무찌르다 순국하였다. 그리하여
웅치 수비는 중과부적으로 비록 무너졌지만 왜군도 많은 희생자를 내고 큰 타격을 받아 전주성을 직접 공격하지 못하고 물러갔다. 웅치 싸움이 끝난 후 왜군은 조선군의 충성심과 용맹에 깊이 탄복하여 용전하다 순사한 조선군의 유해를 모아 무덤을
만들고 ‘조선의 충신 의사들의 영혼을 조상하노라(조조선국
충간의담 : 弔朝鮮國忠肝義膽)’이라는 표목을 세워 조선의
충신과 의사의 영혼을 조상하기도 하였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잃었던 선열들의 혼이 가슴 깊이
느껴지는 곳이다. 1979년에 전라북도는 정부의 지원을 받아 웅치전적비를 세웠다. -출처; 네이버 지식 in-
곰티재(곰치재) : 전라북도 완주군의 소양면과 진안군 사이의 고개이다. 서쪽의 가파른 고갯길을 넘어서면 진안고원의 평지와 이어준다. 임진왜란 때에는 웅치 전투가 있었던 곳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전주)와 『여지도서』(전주)에는 '웅현(熊峴)'이라고 기재하고 있다. 이는 곰을 한자어인 '웅(熊)'으로 표기한 것이다. 곰치재는 한자어와 우리말의 합성으로 '치'와 '재'는 둘 다 고개를 의미하고 있다. 『완산지(完山誌)』에는 "전부주의 동쪽 47리의 진안현과의 경계에 있는데, 정유재란 때 김제군수 정담(鄭湛, ?~1592)과 해남현감 변응정(邊應井, 1557~1592)이 앞장서서 의병을 거느리고 고갯길을 가로막고 종일 대전을 벌여 적을 무수히 죽였으나 해도 저물고 화살도 다하여 두 사람 모두 죽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정유재란은 임진왜란의 오기이다. -출처; 한국지명유래집 전라 · 제주편-
적천(笛川)재 : 전라북도 진안군의 부귀면 세동리에 소재한 고개이다. 군의 부귀면 세동리 적내 마을과 완주군 소양면 화심리 송정 사이의 재이다. 적천재는 웅치와 더불어 전주와 진안을 연결하는 주요 통로로 이용되었다. 『해동지도』(진안)에 '적천치(賊川峙)'로 기재되어 있고, 그 옆에 '적로요충처(賊路要衝處)'라는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 이로 미루어 적천치는 웅치(곰티재)와 더불어 '외적을 막는 중요한 고개'라는 의미가 있다. 『1872년지방지도』에는 '적전치(笛田峙)'로 되어 있어 '피리를 만드는 주재료인 대나무밭'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현재의 적천재(적천치)는 이 둘의 의미를 함께 내포하면서 변화된 것으로 추정된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 참고자료한국지명유래집 전라 · 제주편-
삼정맥 분기봉(565m) : 실질적인 금남호남, 금남, 호남의 3정맥 분기점으로 전북 완주군 소양면 해월리와 전북 진안군 부귀면 세동리를 잇는 고개 위에 있는 봉우리이다. 3정맥 분기점을 조약봉(鳥躍峰)이라고도
부르고 있는데, 이는 분기점에서 금남호남정맥을 따라 50여m정도 내려가면 조약치(鳥躍峙)가
나오는데 그 고개명을 인용하여 조약봉이라 부르고 있는 것 같다. 아울러 565m봉을 주화산 또는 주즐산이라고 부르는 것은 좀 더
확인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한국의 산하』 '우리산
바로알기'와『거인산악회』 '자유게시판'에 올린 "주화산은 없다 전주김"님의 논리에 따른 것으로 그 개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도표는
생략하였으며 도표가 필요할 시는 출처란에 기재된 싸이트에서 확인요망).
[11:24] : 전북 임실군 관촌면 회봉리
상회마을 버스정거장 도착하여 준비운동 후
[11:33] : 상회마을을 출발하여 마재를 향해 도로를 오르다가
[11:35] : 우측의 낙석방지 철책이 끝나는 지점에서 마재를 향해 오른다.
[11:46] : 마재(마치)에 도착하니
거대한 고목 한그루가 있다. 우측으로 방향을 잡아 오름길을 진행하는 호남정맥 첫 발걸음이 3정맥 분기봉을 향한 역진행으로 시작된다.완만한 마루금을 오르다가
[11:51] : 첫 봉우리를 넘고 다시 오르는 길에
[11:53] : 묘지 1기가 있는 지점을 지난다.
[11:54] : 두 번째 봉우리에 올라 완만한 마루금을 진행하다가
[11:59] : 봉우리에 닿는데 리본들이 달려있고 봉우리 중앙부분에 고사목이 한 그루있다. 내림길을
한동안 내려가다가 다시 오른
[12:05] : 봉우리를 지나 오르면서
[12:06] : 봉우리를 지나, 완만한 마루금을 진행하면서 오름길을 가는데
[12:12] : 바위들이 있는 지점을 지나 오른 봉우리가
[12:13] : 610봉으로 국사봉 분기봉이다. 우측은 국사봉으로 이어지는 지능선이고
정맥길은 좌측 내림길이다. 한동안 내려가서 완만한 머루금을 진행하는데
[12:17] : 정수사와 성수면으로 갈라지는 사거리 안부의 7번 이정목(정상 1Km /상관면 / 성수면 / 정수사 2.0Km)은
해발600m 지점임을 알리고 있다. 마루금을 이어가다가
[12:21] : 도착한 봉우리 정상에는 낮은 바위들이 나무들 주변에 박혀있다. 봉우리를
넘어 내려갔다가 다시 오른 봉우리가
[12:26] : 625봉으로 3개씩 조립되어 있는 플라스틱 등받이 의자가 2 Set가 있다. 그리고 나뭇가지에는 리본들이 달려있고, 6번 이정목에는 모두 같은 방향인 "정수사2.1Km, 상관면, 죽림온천"만
이정목 좌측으로 달려있고 우측은 아무런 방향 표시도 없다. 완만한 내림길을 가다가
[12:28] : 안부에 내려서고 다시 오르니
[12:30] : 암릉지대에 닿는다(암봉 아래에 암봉 우측 사면으로 이어지는 우회길이 있다). 철고리를 연결해 만든 철줄을 잡고 암봉을 오르기 시작한다. 남쪽
방향의 호남정맥 마루금이 조망되는 암릉 둔덕에서
[12:32] : 2차적인 암릉 오르기가 시작된다.
[12:33] : 관음봉 정상인 암릉 꼭대기에서 다시금 걸어온 길과 앞으로가야 할 호남의 줄기들을 조망해본다. 암릉길을 진행하다가 다시 조금 더 높은
[12:37] : 암릉지대를 지난다. 암릉지대의 칼등을 계속 이어가다가
[12:44] : 암봉을 만난다. 암봉을 올라서 마루금을 가는데
[12:46] : 5번 이정목이 정수사 갈림길이며 해발 699m지점임을 알리고 있다. 이정목의 방향판에는 정수사까지 2.3Km를 표시하고 있다.
[12:47] : 바위들이 있는 봉우리를 넘어 마루금을 이어가는데
[12:51] : 커다란 바위가 길을 막고 있는 정수사 갈림길로 그 앞에는 4번 이정목(정상0.2Km / 상관면 / 정수사2.3Km)이 해발725m를
알리고 있다. 커다란 바위를 우회하여 오르고 바위들 사이를 지나 오르면
[12:57] : 통신시설과 이정목(정수사2.5Km / 소양면(미륵사), 소양면(헬기장)이 있는 만덕산 분기봉인 745봉에 도착한다. 대략 200m정도 점랙길에서 벗어나 있는 만덕산을 향해 간다.
[13:03] : 만덕산에 도착하니 이정표에 만덕산 정상 763.3m를 표시하고 있고 이정표를
받쳐주는 돌들이 삼각점을 덮고 있어 관심없이 보면 삼각점이 있는지조차 모를 정도이다. 완주군 방향의 산자락들과 이정표가 있는 지점에서 조금 더가면 바위 전망대가 있는데 익산·포항간 고속도로가 보이고 그
뒤로 연석산과 운장산이 희미하게 보인다.
[13:06] : 만덕산을 출발하여
[13:12] : 745봉인 만덕산 분기봉에 되 돌아와서 점심식사를 한다.
[13:27] : 점심 식사 후 출발하여 마루금을 이어간다. 만덕산 분기봉에서 우측 방향으로
내려서니
[13:30] : 암봉을 만난다. 우측 사면으로 우회로가 보이지만 암봉을 올라서 진행해야
알바의 위험에서 벗어나게 된다(계속 사면로를 진행하면 원불교 만덕산성지로 가게된다). 사면으로 나 있는 길로 진행하게 되면 서너 발자국(암봉 정상 부근) 가다가 좌측으로 올라서야 정맥길로 합류할 수 있고 능선에 닿으면
[13:34] : 이정표(정상0.5Km / 헬기장2.8Km)를 만난다. 이어서 좌측으로 리본들이 달려 있는 내림길을
가면
[13:38] : 암릉지대에 닿고 가파른 내림길이 시작된다. 내림길에 전북 완주군 소양면
신촌리가 익산·포항간
고속도로 넘어로 보인다.
[13:41] : 산죽지대를 지나 암릉지대를 지나니 급경사 내림길이 계속 되는데 내림길은 산죽지대이다. 긴 내림길이 끝나고 완만한 마루금은
[13:46] : 긴의자 2개가 있는 제 2 쉼터에
닿는다. 쉼터를 지나 이어지는 내림길은 산죽지대를 지나고
[13:48] : 바위들이 있는 암봉에 도착하는데 삼각점(No.55)이 있다. 완만한 능선길에 이어
[13:49] : 바위들이 박혀있는 봉우리를 넘어 내려가니
[13:52] : 원불교훈련원으로 갈라지는 능선 갈림길이다. 이정표는 (헬기장1.6Km / 정상1.7Km
/ 원불교훈련원0.7Km)를 알리고 있다. 앞의
봉우리를 향해 오르니
[13:53] : 바위들이 있는 봉우리로 봉우리 정상에는 중간 정도 크기의 바위 2개 사이에
나무 한 그루가 있다. 이어서 내려가는 듯 하면서 오른
[13:55] : 바위들이 있는 봉우리이다. 봉우리에 있는 바위들을 넘어 내려가고, 앞의 봉우리를 향해 오르는데
[13:56] : 산죽지대이다. 산죽지대를 지나 오른
[14:00] : 봉우리에는 리본들이 제법 달려있다. 잠시 진행하니
[14:01] : 정맥길은 능선에서 90도 좌측으로 틀어져서 오두재를 향한 내림길이 이어진다. 직진하는 방향으로는 나뭇가지를 이용하여 정맥길이 아님을 알리는 표식을 해놓았다.
[14:03] : 내림길이 끝나갈 즈음에 내림길 앞으로 건물과 공터같은 둔덕들이
보인다. 그리고 이어서 전기울타리 표지판이 달린 전기철책선이 산 전체를 감싼 듯이 보인다.
[14:06] : 고사리밭조성 등산로 방향 표시를 한 나무판자가 나무와 폐가구 사이에 끼어 있는 지점을 지나는데 이 지점을 오두재로
보아야 할 것 같다(원래의 정맥길은 전기울타리 안을 지나야 한다). 완만한
오름길을 올라.
[14:09] : 봉우리에 닿는데 정상까지 안 오르고 정상 부근에서 우측 사면으로 진행하여 능선길을 이어간다. 아마도 이 아래로 익산·포항간 고속도로 터널이 지나가는 듯 싶다.
[14:10] : 등로에 바위가 듬성듬성 있는 곳을 지나니 원래의 정맥길이 이어지는 지점에 고사리밭조성 등산로 화살표시가 된 나무판이
나무사이에 달려있다. 완만한 오름길을 진행하여
[14:12] : 봉우리에 닿는다. 완만한 내림길을 가다 오른
[14:14] : 봉우리를 넘어 내려가서 완만한 능선길을 진행한다.
[14:17] : 소나무 한그루가 멋지게 서있고 리본들이 달려있는 봉우리에서 내려섰다가 다시 완만한 능건길을 진행하면
[14:19] : '흑염소 방목지 / 고성방가금지 / 전기감전조심' 이라고 쓴 팻말이 전기울타리에 달려 있는 지점을 지나 앞의 봉우리를 향해 오른다.
[14:24] : 봉우리에는 리본들이 달려있고, 우측으로 신정호가 보인다. 잠시 주변을 둘러보고 다시 내림길을 가는 정맥길은 완만한 능선길로 이어지고 다시 내려서는데 건너편 산자락에
있는 웅치전적비가 보인다.
[14:34] : 비포장 도로에 내려서니 전북 완주준 소양면 신촌리에서 진안군 부귀면 신정리로 이어지는 도로로 도로안내판은 '곰티로 875→1'을 표시하고 있는 곰재(432m)이다. 단청한 기와로 덮은 웅치전적지 안내판 옆에는 해발432m를 알리는 수준점이 있다. 그리고 그 옆길 건너편에는 웅치전적비가
있다. 주변을 둘러보고
[14:42] : 오름길을 출발한다. 곧 이어 문중 묘지지대를 지나서 계속 오른
[14:56] : 봉우리에서 갈림길이 나오는데 정맥길은 좌측으로 진행한다. 우측으로 진행하면 607봉이다. 내려가는 듯하면서 오른
[14:57] : 봉우리를 지나는데 연리지 같은 나무가 있다. 내림길이 이어지고 완만한
마루금으로 변한 길은
[15:08] : 봉우리를 좌측 사면 우회로로 진행한다. 이어서 계속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름길은
[15:09] : 임도를 만난다. 임도 우측 오름길로 접어들었다가 곧 이어 우측 봉우리를
향해 임도를 버리고 산으로 오른다.
[15:12] : 봉우리에 닿아 주변을 둘러보나 잡목지대로 조망은 없다. 다시 내려가는데
우측은 그물철망이 설치되어 경계를 표시하고 있다.
[15:14] : 임도에 다시 접속하고 곧 이어
[15:14] ; 임도 5거리 고개에 닿는다. 여기가
옛웅치길이다. 우측은 진안군 부귀면 세동리로 내려가는 길이고, 좌측은
완주군 소양면 신촌리로 내려간다 . 정맥길은 직진한는데 11시
방향이 아닌 리본이 달린 12시 방향으로올라야 한다.
[15:20] : 봉우리에 올라서고 완만한 임도길을 이어가는데 우측으로는 그물철조망이 계속 함께 한다. 그러다가 검은막으로 둘러친 지점도 지난다.
[15:22] : 임도가 내림길로 바뀌는 지점에서 우측 둔덕으로 올라 내려가고, 곧
이어 다시 우측 내림길로 내려가면
[15:23] : 곰치재에 닿는다. 안부에는 돌무더기가 있는 듯한 둔덕이 있고 둔덕으로
오르면
[15:24] : 곰치재 안내판이 있는데 곰티재의 내력과 웅치전적지에 대한 안내가 기록되어 있다. 기록에는 "이 재는 예전 신작로가 나기 전 진안-전주 간의 주요 교통로로
이 길로 약 1.5Km 쯤 내려가면 완주군 소양면 월상리 신촌마을에 다다르고, 옛 고갯마루에는 의례 그러하듯 이곳에도 서낭당 돌무더기가 있다"고
하며 웅치전적지에 대한 내용도 담고 있다. 오름길에 닿은
[15:26] : 봉우리에서 완만한 마루금을 진행하면 다시
[15:29] : 봉우리에 닿는데 갈림길이있다. 정맥길은 직진 방향으로 진행하여 내림길을
가다가 완만한 능선길을 걷다가
[15:33] : 봉우리를 지나 완만한 오름길을 진행한다. 오름길 도중에 작은 바위들이
몰려 있는 지점을 지나 오르면
[15:38] : 571봉인 갈림길 봉우리에 닿는다. 우측은 나뭇가지로 길을 막은 듯 하고
좌측으로는 리본들이 정맥길임을 알려주고 있는 내림길이다. 내려가면서
[15:43] : 두릅나무들이 있는 지점을 지나고 이어지는 오름길을 오르니
[15:48] : 삼각점이 있는 514.5봉이다. 잠시
내려갔다가
[15:51] : 봉우리 우측으로 우회하는데 완전히 휘감아 도는 듯한 느낌이 든다.
[15:55] : 빨간색 리본 한 개가 달려있는 봉우리를 넘어 한 동안 완만한 마루금을 진행하다가 오름길에 오른
[16:00] : 봉우리에도 리본들이 달려있다. 또 내림길이 이어지다가 완만하게
[16:06] : 봉우리를 넘고
[16:08] : 산죽지대에 들어선다. 계속 산죽지대인
[16:10] : 봉우리에 올랐다가 내림길도 산죽지대로 이어진다.
[16:11] : 우측으로는 출입금지라고 검은장막에 써서 울타리를 형성하고 있는 봉우리를 향해 오르고
[16:13] : 도착한 봉우리에는 리본들이 많이 달려있다.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림길이
안부에 다달을 즈음에
[16:15] : 대한광업공사에서 설치한 표지석을 만난다. 이어 옛 길인 적내재에 닿는다. 완만하게 오르니
[16:16] : 임도에 접속하고 임도 길 따라 계속 직진하여 오른다. 좌측 옆으로는 산죽지대가
따라오다가 커다란 봉우리인 497봉 우측으로 이어지던
임도는 정상부근에서 좌측 숲길로 진입하여(계속 임도를 진행하면 임도 고개부분부터 철조망이 설치되어 진행이
불가하다)
[16:25] : 497봉 정상에 닿는다. 여기도 어김없이 리본들이 달려있다. 이어지는 내림길은 안부에서 완만한 마루금을 이어주고
[16:30] : 바위들이 있는 능선길을 진행한다. 능선을 올라
[16:34] : 봉우리에 닿고, 또 내림길이 이어지면서 전주공원묘지가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한다. 완만하게 이어지던 마루금에서
[16:40] : 봉우리에 오르니 공터가 조금 있고 모래재와 전주공원묘지가 시야에 잡힌다. 내림길을
진행하다가
[16:45] : 쓰러진 전신주 있는 지점을 지나 이어지는 내림길은
[16:46] : 모래재 전주공원묘지로 내려갈 수 있는 갈림길을 만난다. 녹색철망이 둘러쳐진
마루금을 지나 오르고
[16:58] : 봉우리 사면에 있는 이정목 있는 삼거리 갈림길을 만나는데 좌측은 편백나무 숲으로 가는 길이다.
[17:03] : 헬기장에 도착하니 꽤 넓다. 주변을 둘러보고 헬기장을 직진하여 20m 정도 진행하니
[17:06] : 삼정맥 분기봉에 닿는데 이정목과 삼정맥분기 지점을 알리는 스테인리스 방향 표시판이 있다.
[17:10] : 삼정맥 분기봉을 출발하여 세봉임도로 내려간다.
[17:13] : 세봉임도에 도착하여 우측 도로따라 전주공원묘지를 향해 내려간다. 공원묘지
입구를 나서니
[17:26] : 모래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