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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삼문 선생의 일지총으로 1... (성삼문 선생을 그리며)
‘곧고 곧은 외소나무(貞貞獨松) 늠름한 것이 외로운 충신일세.(凜凜孤忠) 백년을 서로 의지하리니,(百年相依) 만고의 뛰어난 풍격이로다.(萬古高風)’ 은진현감 정효성이 1615년 매죽헌 성삼문 선생의 묘소가 이곳 은진현에 있음을 뒤늦게 알고 지은 묘송시(墓頌詩)다. 그는 은진현감에 부임한 후 6년 만에 자신의 관할 지역에 성삼문의 묘소가 있음을 우연히 알고 개탄(慨嘆)하는 마음으로 이 시를 지었다고 전한다. 그는 곧바로 묘소를 찾아갔는데 墓가 쑥대밭 사이로 섞여 있으면서도 기(氣)가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었단다.
죽음으로 매화(梅)의 지조와 대나무(竹)의 절개를 지킨 성삼문... 그래서 호가 매죽헌(梅竹軒)이란다. 그는 외가인 홍성에서 아버지 성승과 어머니 죽산 박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집현전 학자로서 음운 연구를 위하여 요동에 13번이나 왕래하였다. 음운을 정확하게 기한 끝에 훈민정음을 반포케 하였다. 세조가 왕위를 찬탈(簒奪)하자 단종의 복위를 모의한 사육신... 김질의 밀고로 체포되어 친국(親鞫)을 받고 능지처사(陵遲處死)되었다. 한번 옳다고 여긴 신념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지키려고 했던 산봉우리의 낙락장송(落落長松)같은 곧고 맑은 지조야말로 조선 선비들의 의리 정신을 보여준 거울이다.
단종 복위 사건에 연루된 사육신은 단근질(灼刑) 등 가진 고문을 당하였고 특히 성삼문 일가는 아버지 성승과 그의 아들과 아우까지 남자라는 남자는 젖먹이까지도 살해되는 멸문지화(滅門之禍)를 겪었다. 처 연안 김씨와 딸 효옥은 운성부원군 박종우(朴從愚)의 노비가 되었다. 후손으로는 무안 박씨 임경에게 시집간 효옥과 엄씨에게 시집간 딸, 유자미의 며느리가 된 손녀 등이 유일하게 살아남았을 뿐이다. 처 연안 김씨는 손수 써서 만든 성삼문 신주(神主)를 노속(奴屬)으로 안고 가서 제사를 모셨다고 전한다.
20년 만에 풀려난 숙부인 연안 김씨는 딸의 집에 의탁하여 살다가 돌아가셨다. 성삼문 신주는 둘째 외손 박호(朴壕)에 의하여 봉안, 제사를 모셨고 그 뒤 연연히 이어오다가 1903년 고종의 명에 의하여 봉사손을 성주영으로 지정, 세종시 금남면의 달전리 달전사(達田祠)(現 文節祠)로 이안(移安), 지금껏 문화행사와 더불어 제사를 지내고 있다. 오늘 향사(享祀)를 지내는 논산시 가야곡면 양촌리... 일지총(一肢塚)... 성인각(成仁閣)이라는 사당을 짓고 매년 음력 10월 20에 제사를 모시고 있어 그곳으로 떠났다.
성삼문 선생의 일지총으로 2... (양촌면을 지나며)
몸의 한 부분인 일지총(一肢塚)... 이곳 가야곡에 묻히게 된 이유는? 거열형(車裂刑)에 의하여 능지처사(陵遲處死)를 당한 후 그 시신(屍身)을 지게에 지고 전국을 돌며 조리돌리기를 하였다. 조리돌리기를 하던 짐꾼이 무겁게 느끼면서 투덜거리니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리... ‘이곳에 묻으라.’고 하여 이곳에 묻었다고 전한다. 한편 조리돌리기는 마을의 규범에 어긋난 짓을 한 사람을 등에 북을 달아매고 죄상을 적어 붙인 다음 농악을 앞세우고 마을을 몇 바퀴 돌면서 그 죄를 주민들에게 알리는데서 유래하였다.
서대전 사거리에서 출발한 여행길... 진잠을 지나면서 외후손인 무안 박씨인 박철희 선생님이 성삼문 선생의 외손(外孫) 봉사(奉祀)에 대한 시말(始末)을 설명하였다. 박선생님은 10여 년간 성삼문 선생의 유적지를 찾아다니면서 연구에 매진하였음은 물론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는 관계기관에 지적하는 등 우리 창녕 성씨 가문에서 하여야 할 일을 대신하였으니 고마움은 물론 죄송한 마음이다. 또한 오늘 여행일기를 쓰는데 그분이 가지고 있던 자료를 참고하였으니 우리 일가(一家)에서도 관심을 가진 전문가가 나오기를 빌어본다.
진잠을 지난 여행길... 연산면과 양촌면을 지나 가야곡면으로... 양촌면에도 양촌리가 있고 가야곡면에도 양촌리가 있으니 초행길에는 혼돈하기 쉽다. 인근에 같은 이름이 있으면 고쳐야 하는데 아쉬움이다. 양촌면의 양촌리는 내(川)의 양쪽에 있어 붙여진 이름인데 훗날 양촌(陽村)으로 변하였고 가야곡면 양촌(陽村)리는 마을이 양지쪽에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양촌면을 지나 가야곡면으로 가기 직전 쌍계리에 쌍계사가 있다. 쌍계사하면 하동의 쌍계사가 생각나지만 이곳 쌍계사는 화려하지도 않아 조촐한 맛을 느낀다.
고려 충숙왕 때 이암(李嵒)이 창건한 쌍계사... 화재로 모두 소실되고 지금의 건물들은 영조 때 중수(重修)하였다. 보물로 지정된 대웅전의 꽃 창살... 모란 연꽃, 국화 등으로 무늬들이 섬세하게 조각, 채색되어 있어 건물이 화려하게 보인다. 특히 오른쪽 세 번째 기둥은 칡덩굴로 세운 것으로, 노인들이 이 기둥을 안고 기도하면 죽을 때 고통을 면하게 된다고 한다. 성삼문 일지총에 도착한다. 입구에 저수지가 있는데 저수지 안내 간판... 문화재가 있는 입구에 간판은 반대쪽으로 이전해야한다고 오늘 참배객 중에 한 분이 말씀하는데 공감이 간다. 매우 추운 날씨에 신발을 벗고 뜰 안에서 제사를 모신다.
성삼문 선생의 일지총으로 3... (일지총에서)
향사(享祀)를 지내는데 그 업무 분담표가 게시 되어 있다. 그 중에서 새로 익혀야 할 단어들... 제관(祭官)이 술잔을 신위에게 올리는데 그 순서인 초헌관, 아헌관, 종헌관... 제사 때에 홀기(笏記)를 읽는 집례(執禮), 제사를 거행하면서 예의(禮儀) 순서인 절차대로 도와 인도하는 찬인(贊引), 제사를 지낼 때 순서를 읽는 찬창(贊唱), 제사 음식을 차리는 진설(陳設), 제사 때 헌관을 도와 잔을 올리는데 양 옆에서 도와주는 우집사(右執事), 좌집사(左執事), 조직에서 그날의 질서 유지를 책임지고 보살피는 직일(直日) 등이 있다. 한편 笏記란 혼례나 제례 때 의식의 순서를 적은 글을 말한다.
享祀가 끝난 후 음복(飮福)을 한 후에 성묘(省墓)를 하였다. 제사에 참석한 후손들이 제수(祭需)나 제주(祭酒)를 먹는 飮福... 이는 신의 음덕을 입어 자손들이 잘 살게 해달라는 뜻과 음식을 나누어 먹음으로 가족의 일체감을 형성하는 의미도 담고 있다. 한편 올해 들어 10월 10일 세종시 금남면 달전리에서 성삼문 선생 추모제가 열렸고 11월 13일 건양대학교에서 성삼문선생 충효사상 조명 학술대회도 있었다. 이 학술대회는 성삼문의 절의와 한국 정신사적 의의, 조선 후기 성삼문의 복권과 추숭(追崇), 지역 문화 콘텐츠 활용과 성삼문 콘텐츠화 방안에 대한 연구 발표도 있었다.
인터넷이나 컴퓨터 통신 등을 통하여 제공되는 각종 정보를 전기 통신망에서 사용하기 위해 디지털 방식으로 제작한다는 콘텐츠(contents)... 사당하나만 달랑 있는 묘소 주변을 성역화하여야 할 것이다. 마침 건양대학교와 뜻있는 인사에 의해 성역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장성에 홍길동, 남원에 춘향, 남양주에 정약용, 예산의 김정희, 아산의 이순신, 홍성의 최영, 성삼문, 한용운, 김좌진 장군 등 역사 인물에 대한 축제 및 성역화를 생각한다면 늦은 감이 있으며 실없는 사람들의 행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실없는 사람 하니 실제 실없는 사람이 있다. 바늘만 가지고 있는 사람이란다. 사람은 자기 능력을 키워야 한다. 온실의 화분은 밖으로 나가면 죽을 확률이 있지만 밖에서 키운 화분은 온실에 넣으면 절대 죽지 않는다. 제비는 새끼에게 모이를 주면서 주둥이에 넣었다 뺏다하면서 걸음마를 가르친다. 그러면서 걸음마가 어느 정도 이루어지면 둥지에서 땅으로 떨어트리면서 활개 치는 것을 가르친단다. 오늘 성삼문 향사를 마치며 여행을 마친다. 고맙습니다.
문절사에서 진행된 추모제
건양대에서 열린 충효사상 조명 학술대회
가야곡면 양촌리의 성인각과 묘비
위 내용들은 향기가 머무는 정원 성샘여행일기에서 옮긴 내용 임 |
첫댓글 아이고 저 같은 둔재를 이곳에 소개하여 주시니 고맙습니다. 매죽당(梅竹堂)의 외손 암천처사 朴增 파조의 행적을 모으다 보니 진외조부의 일이 늘 마음에 걸려서 결국 우계 학보에 성삼문 선생 연보를 게재하였습니다. 혹 잘못하여 누가 될지 몰라 걱정이랍니다. 우계기념재단에 연락하시면 2015년 제33호를 얻어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얼굴은 기억이 안나지만 저를 아실테니 우선 반갑습니다.
한가지만 수정하여 주시면 좋을 듯합니다. 위에서 3단락에 [엄씨에게 시집간 딸은 잘못 고증된 것] 입니다. 삭제하시면 어떨까요? 만약 딸 [효옥]이 당시 17세라면 박임경에게 시집오신 제 16대선조모 이고요, 둘째 어린 딸 이라면 그 행방 미상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