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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픽션은 2000년도 태권라인 무토 등 각종 인터넷 매체 및 태권도신문에 연재되어 전세계에 알려진 태권도인 최초의 자전소설로서 태권도사에 있어 경기 규정 등 기술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인정받았던 자전소설입니다.
이루지 못한 약속
1. 첫 사랑의 약속
1978년 8월 대회를 앞두고
1) 어려운 도 대표선발전
1979년
10월 16일!
어둠 속.......죽음을 위한 나의 勇氣(용기)는 밤하늘의 구름사이 수많은 별들을 보는 瞬間(순간) 사라지고 말았다. 나는 두 주먹을 굳게 쥐고 연화봉에서 떠오르는 붉은 태양을 보며 스스로의 意志(의지)를 다지기 위해 은메달을 목에 걸어 가슴 깊이 넣고 소백산으로 향했다.
무덥고 기나긴 여름 속의 彷徨(방황)이었다.
1977년 고등학교 3학년 이었던 나는 마지막 機會(기회)인 전국체전 충북대표 선발전에 출전하였다. 하지만 決勝(결승)에서 경기는 이기고 판정에 지는 不當(부당)함에 失望(실망)하여 쉬고 있는데 영월 박실광 사범이 영월대표로 강원도민체전 겸 전국체전 대표선발전에 나가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하여 1978년 초에 주소를 영월 쌍용으로 옮기고 강원도민체전에 출전하여 우승하였으나 전국체전에는 출전치 못하였다. 그리고 고향으로 돌아온 1979년 7월 신흥고교 실내체육관에서 전국체전 일반부 대표선발전을 앞두고 있었다.
나의 첫 상대는 3월 전국종별태권도선수권 대회에서 준우승한 지민규 선수였다. 그를 응원하는 청주시 선수단의 일방적인 함성 속에 1회전이 시작되었다. 기합을 멋들어지게 넣고 처음부터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나는 시간차공격을 구사하기로 결정했다.
헛동작으로 오른발을 한 걸음 내 디디니 상대는 예상대로 뒤로 물러난다. 이어진 나의 왼발 빗차기에 이은 뒤차기를 보고 상대는 다시 일보 더 빠졌다가 오른발 몸통 빗기로 공격을 해 오는 찰라 나는 뒤차기를 외발 자진걸음으로 평소 보다 한 걸음 더 깊게 밀어 찼다. 기분 좋은 감촉이 발끝에 전해졌다고 느끼는 순간, 받아 차려던 상대방의 몸이 공중으로 붕- 떴다 바닥으로 나딩굴었다. 잠시 적막이 흘렀다.
고요함을 깬 것은 나의 기합소리였다.
- 이~얏 !
기합소리의 여운이 장내에 메아리치며 여운을 남기는 순간, 함성이 들려 왔다. 바라보니 제천의 선후배들이었다. 다운을 당한 상대는 당황하며 일어나 거칠게 나를 몰아 부치기 시작했다. 나는 여유 있게 거리를 유지하며 그의 사정권 밖에 있다가 그가 들어오는 순간, 그의 몸통과 얼굴을 번갈아 받아 차며 경기를 풀어 나갔다. 득점차가 벌이지기 시작했다.
3회전 중반 상대의 피곤한 눈동자와 마주친 나는 승리를 확신했다. 경기가 끝나자 지민규 선수의 패배가 믿기지 않은 듯 장내는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강적을 보기 좋게 제압한 탓인지 이어진 준결승 결승전에서는 주눅이 든 상대를 여유 있게 제압하며 충북대표로 선발이 되었다.
신흥고 실내체육관 밖으로 나왔다. 플라타너스 잎사귀를 스치는 칠월의 바람이 싱그러웠다. 싱그러운 바람에 흔들리는 잎사귀를 보며 나는 그녀를 생각했다.
2) 첫 만남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1977년 8월 강원도 사북에서 개최된 국회의원배 중부 영동지구 태권도대회에서였다.
기차에서 내려 처음 디뎌 본 사북은 온통 까맣게 채색된 탄광촌이었다.
절망 속에 찾아온 사람, 마지막 희망을 안고 찾아온 사람들로 도시는 또 다른 세계였다.
사북초등학교 운동장을 빗자루로 깨끗이 쓸고는 백회 가루로 라인을 친 맨땅에서 경기를 하는데 말이 맨땅이지 이건 숫제 연탄을 뿌려 놓은 것 같았다. 바닥만이 아니었다. 뜨겁게 내려 쬐는 한 낮의 태양은 경기에 몰두할 수 없게 만들고 있었는데 아마도 나의 태권도 선수 생활 중 최악의 환경 조건 속에 치러진 대회로 기억된다.
예선 첫 경기는 시작한지 30초 만에 끝이 났다. 나를 노려보던 긴장한 상대는 내가 슬쩍 오른 자세에서 왼 자세로 바꾸자 오른 발로 나의 몸통을 노리고 공격한다. 순간 나는 왼 발 뒤돌려 차기를 시도하였다. 턱을 강타 당한 상대는 그대로 주저앉으며 일어 날 줄 몰랐다. 주심이 카운트 없이 나에게 승리를 선언하고 상대는 그대로 기절한 가운데 경기장에 준비된 의무석으로 실려 나갔다.
준결승전!
1회전 중반 치열하게 공방을 주고받던 내가 상대의 얼굴을 들어 찍기로 가격하자 상대의 오른쪽 눈 주위가 발 도장을 찍은 듯 온통 까맣게 발바닥 자욱이 나 버렸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내가 마구 웃으니 주심이 주의를 준다.
- 청! 웃지 마!
하지만 주의를 주던 주심이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지 덩달아 웃어 버리고 말았다.
- 하하하하…….
- 아~하하하…….
그 바람에 갑자기 관중들도 더는 못 참고 모두들 배꼽이 빠지라 웃는다. 경기장이 온통 웃음바다가 되어 버렸다.
결승에서 나는 사북의 희망이라는 박규상 선수와 경기를 치렀다. 박 선수는 지난해 전국체전에서 우승하였던 선수를 예상 밖으로 제압하고 도 대표로 전국체전에 출전하였었고, 올해도 강원도대표선수로 전국체전 출전을 앞두고 있는 선수였다. 모든 관계자들이 그의 우승을 예상했으나 순발력에서 내가 앞섰다. 박 선수는 몇 차례 다운을 당하며 무릎을 꿇고 말았다. 판정이 내려진 순간, 탄식소리와 함께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경기장을 빠져 나와 수돗가로 가는데 한 소녀가 서 있었다. 무심코 바라보니 소녀는 꽃 한 송이를 들고 서있었다. 소녀를 보는 순간 온 세상이 환해지는 듯 했다. 넋을 잃고 바라보는데 소녀가 다가오며 말했다.
- 오빠 축하해요. 원래 이 꽃은 규상이 오빠 축하해 주려고 했었는데…….
- ......
꽃을 건네주는 소녀의 눈과 마주쳤다. 얼굴이 화끈거리며 얼떨결에 꽃을 받았다.
용기를 내어 나는 소녀에게 물었다.
- 이름이 뭐지?
하지만 소녀는 대답 대신 살짝 미소를 지으며 그냥 돌아서 뛰어 갔다. 그렇게 사라지는 소녀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는 나를 보고 정열이가 말한다.
- 형 뭐해요?
하지만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밤하늘을 수놓은 수많은 별들과 어둠 속을 가로지르는 은하수! 그림처럼 아름다운 밤하늘에서 수많은 별들 중에 하나가 내려오듯 소녀는 나를 배웅하러 사북 역으로 나와 주었다. 그리고 막차에 올라서는 나에게 소녀는 살며시 웃으며 말했다.
- 오빠! 내 이름은 SK야, SK…….
나는 머리를 끄덕이며 얼른 가방에서 볼펜을 꺼내 주소를 적어 주며 말했다.
-
편지 해~
쪽지를 전해 받은 SK는 맑은 미소를 뛰면서 손을 흔들었다.
밤차를 타고 제천으로 돌아오는 내내 SK의 미소는 어둠 속의 혜성처럼 나의 마음속 깊이깊이 비수처럼 파고들고 있었다.
3) 지옥 훈련
제60회 전국체전까지 약 100여일! 지도자 없이 훈련계획을 스스로 세워야 했다.
나는 영화 록키를 떠올렸다. 그리고 록키처럼 불굴의 투지를 키우고자 힘썼다.
2분 3회전을 쉬지 않고 뛸 수 있는 심폐력 강화와 지구력을 위해 왕복 8km의 달리기를 시작했다.
새벽 6시에 일어나 록키 주제곡을 들으며 계란을 세 개씩 깨 유리컵에 넣고 소금을 넣은 다음 한 번에 쭉 들이켜고 준비운동 후 신당교까지 달렸다. 신당교에서 되돌아오노라면 동녘의 가창산에서 솟아오르는 황금빛 태양은 지쳐 있는 나에게 무한한 용기 불어 넣어 주었다.
오전 운동은 10시부터 12시까지 두 시간 동안 기본 발차기와 보법, 방어법과 오른발이 나올 때, 왼발이 나올 때, 돌아 나올 때, 주먹이 들어 올 때, 붙었다 떨어질 때, 받아 차는 상대와 공격하는 상대에 대한 기본 대응 법을 집중적으로 훈련하고 연구하였다.
오후 운동은 득점발차기 및 겨루기에 중점을 두었으나 늘 아쉬운 것은 겨루기 상대가 없는 것이었다. 나는 상대를 가리지 않고 여러 무술도장을 찾아 다녔다. 그러나 제천에서 다른 무술 수련생들을 나의 상대되지 못할 뿐더러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훈련을 시작한지 한 달이 지나자 불청객인 슬럼프가 찾아 왔다. 훈련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더욱 힘든 것은 나의 수준을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전국대회를 몇 번 뛰어 보았으나 훈련 부족과 코치 없이 출전하는 경우가 많았다……. 장점과 단점을 파악할 수 없었다. 그렇게 슬럼프에 접어들 무렵 인천대에 다니는 후배 종규가 왔기에 겨루기를 하다 왼발 엄지발가락이 탈골 되었다. 하지만 쉴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치료를 하며 훈련을 계속 하였으나 조수 같이 밀려 오가는 불안감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석 삼재라고 했던가? 부상은 계속 이어졌다. 전국체전에서 수차례 입상하였던 선배가 군에서 제대하여 같이 겨루기를 하다 왼손 중지에 금이 가는 부상을 당했다.
이어진 허리부상! 그것은 나의 의지를 결정적으로 무너뜨렸다. 그런 가운데 나에게 불굴의 투지를 일깨워 주는 것은 매일 같이 오는 SK의 편지였다. 나는 SK의 편지를 읽으며 스스로 다짐했다.
- 그래! 죽기로 하자. 훈련하다 죽어도 좋다. 이것이 SK를 위한 길이라면…….
4) 약 속
1978년 2월 놀랍게도 SK는 친구들과 나를 찾아왔다.
편지하라고 작년 8월 사북에서 전해준 나의 주소를 보고 친구들과 찾아 온 것이었다.
보고 싶던 SK의 얼굴을 한참 바라보다 너무 창백하다고 생각되었다.
- SK! 어디 아프니?
- 응…….아니야, 오빠! 아프지 않아!
-
하지만 네 얼굴이 너무 창백한데…….
- 그런가? 참 오빠! 부탁이 하나 있는데…….
나는 물끄러미 바라보며 미소를 뛰었다.
- 오빠! 전국체전 금메달이 갖고 싶어!
- 금메달! 그거 쉬운 일이 아닌데…….
내 말을 들은 SK는 금방 시무룩해진다. 그 모습을 본 SK 친구가 말했다.
- 오빠! SK가 오빠 이야기 많이 했어요. 그리고 SK가 많이 아파요.
SK를 바라보자 SK는 검지를 입술에 댄다. 그 모습을 본 나는 더 이상 묻지 않고 말했다.
- 그래 약속할게! 꼭 우승해서 금메달을 선물할게!
나의 말을 들은 SK는 환하게 웃으며 과일을 들었다. 그 모습을 보자 나는 또 한 번 온 세상이 밝아지는 것을 느끼며 가슴이 설레었다.
5) 아버지의 선물
1979년 9월 7일 새벽! 눈을 뜨니 부모님께서 나의 팔을 잡고 계셨다. 걱정스러운 얼굴로 바라보던 어머니가 묻는다.
- 승동아! 무슨 몹쓸 꿈을 꾸었니?
-
......!
대답대신 나는 어머니의 팔을 꼭 잡았다. 그러나 차마 나는 SK가 병원에서 하얀 가운을 덮은 채 영안실로 실려 가는 꿈을 꾸었다고 솔직히 말씀을 드릴 수가 없었다.
나는 벌떡 일어나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한 참 울리더니 SK가 전화를 받는다. 나는 SK의 목소리를 듣고 한숨을 쉬며 수화기를 힘없이 떨어뜨렸다. 그 모습을 본 어머니께서 말하셨다.
- 승동아! 괜찮겠니?
- …….
다음날 오후에 아버지께서 부르셨다. 안방으로 들어가니 아버지는 책을 주신다.
- 요즘 많이 힘든가 보구나? 하지만 몸 상하지 않게 휴식을 취해 가면서 훈련해라.
- 예, 알겠습니다.
- 내가 젊었을 때 참 재미있게 읽었던 책인데 초한지란다.
- 네! 고맙습니다.
아버지가 주신 책을 받아 방으로 돌아와 읽다 나는 눈이 번쩍 뜨였다. 그것은 한신 장군이 유방을 만나 병법에 관하여 설명하는 대목에서였다.
[ 以靜制動 以動制靜 ] 이정제동 이동제정
고요함으로 움직임을 제압하고 움직임으로 고요함을 제압한다.
오후에 부모님께 편지를 한통 써놓고 태백선 열차에 몸을 실었다. 태백선 열차는 언제나 만원이었다.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기며 모두들 제각기 사연이 많은 것처럼 보였다. 증산역에서 기차를 갈아타고 나전으로 향했다.
이 열차를 타고 SK는 나전에서 정선으로 통학을 하였고, 집으로 돌아와 매일 같이 나에게 편지를 써서 보냈다. 읽어 보면 매일 같이 내용이 달랐다. 지난 초여름 그녀의 창 밖에는 개구리 울음소리가 많이 들려 잠을 못 이룬다고 했다. 그래서 오빠에게 매일 편지를 쓴다고 했다. 나는 편지를 읽으면서 그녀와 같이 개구리 울음소리가 듣고 싶었었다. 그래서 나는 기차를 탔다. 들을 수 없음을 알면서도…….
창 밖에서 SK의 모습을 보았다. 그녀는 아마도 나에게 편지를 쓰고 있는 중이리라.
편지를 쓰는 정성 어린 SK의 마음을 본 나는 SK의 모습을 잠깐 본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며 마지막 열차를 타기 위해 창가에 도복을 입고 있는 나의 사진을 살짝 끼워 놓고 나전역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나전역 플랫 홈의 푸르스름한 가로등은 왠지 나의 마음을 안타깝게 만들었다. 지금 막차를 타고 떠나면 SK 이를 다시는 못 볼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더욱 더 미칠 것 같았다. 하지만 무정하게도 기적을 울리며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하며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기차 난간에 서서 하염없이 나전역 입구를 바라보는데 SK이가 뛰어 오는 것이었다.
- 오빠! 오 ~ 빠 !
- SK! 다시 올게~~
밤차는 점점 속도를 더했다. 기차가 속도를 낼수록 점점 멀어져 가는 플랫홈 네온등 아래 홀로 서있는 SK의 멀어져 가는 모습을 보며 나는 다짐했다.
- SK! 꼭 다시 올게 금메달을 가지고…….
무심한 밤차는 이내 어둠 속으로 빠르게 질주하기 시작했다.
6) 제60회 전국체전
대전 시내는 온통 꽃밭이었다. 선배들이 긴장도 풀 겸 영화구경을 가자고 했다. 영화를 보고 숙소로 돌아오니 대진표가 나와 있었다. 첫 경기는 부전승 이였고 두 번째 경기는 14일이었다.
샤워를 하고 자리에 누웠지만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어릴 때 나는 잠자리에 누우면 늘 불안했다. 그것은 땅이 빙- 돌다가 확 뒤집히면서 반쪽이 나 버리면 어떻게 하나 하는 두려움이 엄습 해 오곤 했기 때문이었다.…….지금이 꼭 그렇다.
10월 13일! 나의 상대가 될 부산대표와 경북대표의 경기를 보았다. 모두 키가 컸고 오른발을 잘 쓰는 경북대표가 노련하게 많은 점수 차로 승리하는 것을 보았다.
10월14일 경기가 가끔 중단 되었다. 판정에 대한 시비로 시도에서 심한 어필을 하다못해 난동으로 이어지곤 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경북대표와의 준결승 진출을 놓고 신중하게 경기에 임했다. 다행이도 부상당한 곳이 아프지 않았다.
2회 상대의 아랫배에 허점을 보고 빠르게 찬 나의 왼발 몸통 앞 돌려 차기가 보기 좋게 성공하였다. 실점을 한 상대는 조급한지 강렬하게 공세를 취했으나 적절하게 거리를 조절하며 상대의 공격을 흘리는 전법에 별 소득없이 경기를 마무리 짓고 승리하며 4강(준결승)에 진출하였다.
4강에서 대적할 경기도대표와 재일동포 대표선수의 시합을 관전했다.
1회전 중반! 경기도대표의 강력한 앞돌려 차기가 작렬하자 경기가 싱겁게 끝났다.
저녁에 팀 미팅시 회장단에서 모두들 기분이 좋아 크게 격려를 하였다. 나를 비롯한 마상현 한재구 이동준 등등 많은 선수가 입상권에 진출하여 상위권입상이 기대 되기 때문이었다. 정만순 교수님이 나를 보고 질문한다.
- 승동아! 아까 정말 잘 했다. 그리고 내일 대적할 선수는 강적인데…….전력파악은 했겠지?
-
네!
-
믿는다.
-
.......
10월 15일
새벽 계체시 저울에 올라서니 몸무게가 55.4kg이 나갔다. 재일동포를 1회 KO로 이기고 올라온 경기도 대표는 54kg으로 통과를 하였다.
영광을 향한 선수들의 집념은 건강마저도 해칠 정도로 강했다. 어떤 헤비급선수는 큰 주전자를 입에 물고 물먹는 하마처럼 꿀꺽 꿀꺽 마시다 힘이 드는지 주저앉아 있다 고참의 호통에 다시 마시는 촌극도 보였고, 경량급의 어떤 선수는 땀복을 입고 운동장을 뛰는 모습도 보였으며 체중을 통과한 어떤 선수는 저울에서 내려오기도 전에 토하여 날벼락을 맞은 경기위원들이 낭패를 당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렇게 영광을 향한 선수들의 집념 속에 나는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생각했다.
나는 아침 식사를 하지 않고 땀복을 입고 운동장에서 달리기를 하며 몸을 풀었다. 치열한 시도간의 과열 경쟁에 의하여 유난히 무승부 경기가 많이 나온 관계로 몸무게로 승부를 가르는 경우가 많았다. 대비를 해야 했다. 땀을 흘리고 나서 간단하게 계란에 소금을 얹어 먹고 경기장으로 향했다.
1회전!
상대와 마주 서니 쇄골이 눈에 들어왔다. 나와는 10cm이상 차이가 났다.
주심의 구령과 함께 1회전이 시작되었다. 때론 황소처럼 무지막지한 공격이 효과적일 때가 있다. 이렇게 키가 큰 선수들에겐........
1회전 중반, 바람 가르는 소리에 급히 머리를 뒤로 젖혔다. 그 찰라 상대의 발이 나의 턱을 강타하며 지나갔다. 주심이 카운트를 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
카운트 여섯에 간신히 일어나 자세를 잡았다. 주심의 구령과 함께 상대가 뛰어 드는 것이 보였다. 순간 나는 뒤차기를 시도했다. 상대는 방심한 듯 그대로 나의 뒤차기를 맞고 뒤로 밀려났다. 그것을 보고 시도한 360도 회전 앞돌려 차기(돌개차기)가 그의 옆구리에 꽂혔다. 이어진 나의 주먹 공격에 상대가 코치 석까지 밀려가기에 쫓아가며 차려는데 주심이 갈려를 선언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점점 흥분하고 있었다. 주심의 구령과 함께 오른발 왼발 주먹 되는 대로 마구잡이로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그 때 어디선가 귀에 익은 소리가 들려 왔다.
"승동아! 침착해"
번쩍 정신이 들었다. 그렇다. 급할수록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천천히 침착하게 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타일렀다. 1회가 끝나고 코치 석으로 갔다.
- 승동아! 네가 반 박자 더 빠르니 모션(헛동작)을 주고 차는 것이 좋을 것 같다.
- 그게 좋겠네요. 모션을 주고 다가서서 접근 전을 하겠어요.
- 상대가 무릎을 접어서 찍어 차는 것이 좋으니 정면으로 들어가지 말고 옆으로 돌아들어 가늘게 좋겠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경기장 안으로 향했다.
2회! 자신만만하게 경기장으로 들어오는 상대를 보았다.
모션을
주니 상대가 왼발로 빠르게 뛰어 앞돌려 차기를 시도한다.
나는
오른 팔로 막는 동시에 왼 주먹으로 가슴을 지르며 앞에 있는 왼발을 재빠르게 바꿔 상대의 오늘 옆구리를 찼다. 뻥~하는 경쾌한 소리가 났다.
이어 오른 발 몸통 빗차기로 상대를 공격하는 순간,
턱밑에
섬뜻한 느낌이 들어 머리를 뒤로 젖혔으나…….
간발의 차로 나의 얼굴을 스치며 상대의 발이 지나가자 주마등처럼 지난 시간들이 스쳐 간다.
나전을
떠나 제천으로 온 나는 의림지를 지나 용두산에 올랐다.
소나무
아래에 서 있자니 새벽의 서늘한 바람이 턱 밑을 스쳐 간다.
나는 소나무를 향해 발을 뻗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어느 순간에 나의 발등에 감각이 없었다. 발등을 보니 온통 새빨간 피가 떠오르는 햇살에 반사되어 붉게 빛나고 있었다. 산을 내려오면서 나는 아기똥풀을 뜯어 노란 액을 발등에 발랐다. 엄청난 고통이 따랐다. 아기 똥풀을 바르면 아무리 지독한 상처도 삼사일이면 낫는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주심이 나의 팔을 잡았다. 나의 팔이 올라갔다. 상대를 바라보니 그의 팔도 올라갔다.
-무승부- 체중으로 승패를 갈라야 했다.
자신 만만하게 저울에 올라가는 상대를 보았다. 하긴 뭐 아침 계체 시에 나보다 1kg이상 덜 나갔으니…….
충남여고 실내체육관 계단에 앉아 장내 아나운서의 계체 결과 발표를 들었다.
- 충청북도 박승동선수의 계체 승입니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깊은 생각에 잠겨 앉아 있는데 경기도 대표가 올라왔다.
나는 일어나 손을 내미며 말했다.
- 아쉬운 경기였습니다. 기회가 있으면 한 번 더 좋은 승부를 바랍니다.
경기도대표가 악수를 하며 말한다.
- 축하합니다.
-
고맙습니다.
고개를 떨어뜨리며 말없이 돌아 서서 가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노라니 저 만치서 팔뚝으로 눈물을 훔치며 걸어가고 있었다.
10월16일!
결승전! 패자에게 변명은 어울리지 않았다. 다만 최선을 다하지 못한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러나 아쉬웠다. 경기장을 나서며 충남여고 실내체육관 천장을 쳐다보았다. 어지러웠다. 현기증이 일면서 지난 일주일의 열전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간다.
밤차가 터널로 들어 섰다. 차창 밖은 온통 어둠이었다. 갑자기 어둠도 빛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그래! 저 어둠의 세계에서는 아무 것도 느낄 수가 없을지도 몰라. 그녀와의 지키지 못한 약속도 저 어둠의 세계에서는 괜찮을지도 몰라. 차라리 저 어둠의 세계로 가는 것이 더 편할 지도모르겠어…….”
빠~~~앙~~~~
기적소리에 문득 정신이 들었다. 레일 위로 밤차의 바퀴 굴러 가는 소리가 들려 왔다. 심호흡을 하고 별이 빛나는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이대로 끝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은메달을 손에 쥐고 나는 다짐했다.
“ 그래, 지금 나는 잠깐 멈춘 것뿐이야! 멈추었다 다시 출발하는 밤차처럼 오늘의 패배를 내일의 승리로 바꾸기 위해 노력 하는 거야.”
1. 첫사랑의 약속 [끝]
[약속은 지킬 때 더욱 아름답다.
그러나 이루지 못한 첫사랑의 약속은 서산에 검붉은 구름이 수놓은 노을처럼 되돌아 갈 수 없는 처절한 아름다움을 머금고 있다. 그것은 고독이 스며드는 진한 그리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