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속으로/가격 바닥…준고랭지 배추농가 ‘한숨’
“값이 안나오니 3주 만에 내린 비도 달갑잖아”
자료출처 : 한국농어민신문 2014. 09. 30. 김경욱 기자

▲올해 배추 농가들은 낮은 시세와 물량 증가로 한숨뿐인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 여파가 내년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횡성의 배추 재배 농가 정락철 씨가 배추 밭을 바라보고 있다.
단비여야 했다. 24일 새벽부터 강원도 횡성 둔내 준고랭지 일대에 제법 굵은 비가 내렸다. 9월 4일 이후 3주 만에 찾아온 비. 10월 들어서며 본격적인 수확과 출하를 해야 할 배추와 이를 기르는 농가 및 산지유통인들에게 이 비는 예년 같았으면 단비가 맞았다. 수확을 앞두고 가물면 배추의 경우 잘 자라지 않고 칼슘결핍이나 끝 마름 증상 등 각종 병에 노출될 위험도 컸기 때문이다. 실제 최근 가을가뭄으로 배추산지에서 배추 품질이 크게 무너져 내리기도 했다.
상등품 5000~6000원 불과
김장철 생산될 물량까지 타격
산지유통인 자금력 떨어져
내년 봄 계약 이뤄질지 걱정
하지만 올해는 3주 만에 찾아온 이 비를 그저 반갑게 맞이할 수만은 없었다. 가뜩이나 시세가 안 나오는데 물량은 크게 늘어나 시세는 더 떨어질 것으로 우려되기 때문. 횡성 둔내 일대 준고랭지 지역의 배추 유통을 맡고 있는 김성규 영동농업유통 대표는 “현재도 상등품 기준 시세가 잘 나와야 5000~6000원 수준”이라며 “가을 가뭄으로 배추 품질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비가 이를 해결해줄 것이란 것은 알지만 한편으로는 배추의 특성상 수확 직전에 비가 오면 물량이 많이 늘어나는데 이로 인해 시세가 더 떨어질까 걱정된다”고 전했다.
이날 찾은 둔내 지역은 준고랭지 배추 재배지다. 고랭지 여름배추와 김장용 겨울배추를 이어주는 중간다리 역할을 하는 가을배추의 주산지가 횡성과 평창 등 준고랭지 지역이다. 9월 말부터 출하가 이뤄져 10월 초순에 절정을 맞는다. 이곳이 무너지면 겨울배추, 아니 다음 한해 배추까지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올해엔 계속 배추 시세가 좋지 못하면서 산지유통인들의 자본력이 낮아져 내년 봄까지 진행될 배추 계약이 제대로 성사되지 못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곳에서 만난 배추 재배 농가이자 산지유통인인 정락철 씨(55)는 “시세가 나오지 않으면 출하시기를 늦추는 경향이 강하고 김치공장에서도 이 배추를 이용해 절임배추로 저장해 놓는 경우가 많아 김장에 맞춰 나올 배추까지 영향을 받는다”며 “특히 올해 시세가 계속 안 좋으면서 산지유통인들이 무너져 내년 봄까지 진행될 배추 계약이 제대로 이뤄질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 씨는 “예전 같으면 이 지역이 배추밭뿐이었는데 이제 브로컬리나 양상추, 감자 등 다른 작목으로 전환한 면적이 많아 물량이 크게 줄었음에도 불구, 배추 시세가 안 좋은 걸 보면 배추산업이 경제논리(공급물량이 줄면 값은 상승)로도 따질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 같다”고 답답해했다.
시장에서도 산지에서 느끼는 어두운 전망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다.
가락시장 대아청과의 오현석 경매차장은 “배추를 김치로 담는 시기는 김장시즌과 더불어 추석이 주시즌이고 이 시기에 고랭지 배추의 80% 이상을 소비해야 했는데 올해 추석엔 전혀 그렇지 못했다”며 “고랭지 배추 대기물량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 조만간 본격적으로 나올 준고랭지 물량까지 맞물리면 서로 영향을 받을 수 있고 이 여파가 김장시즌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배추재배 농민들과 관련 유통인들은 그동안 정부가 행했던 수급조절과 물가대책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최근 배추 농가들의 이 같은 심정을 표출시키게 하는 발표가 정부 산하기관으로부터 발표됐다. 공정거래위원회 산하기관인 한국소비자원은 최근 ‘상반기 주요 생필품 가격 안정적’이라는 제하의 발표를 통해, 상반기 주요 생필품 가격이 안정적이었다는 것을 강조했다. 정부의 물가정책이 나름 성공했다는 지표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 하지만 이 안을 자세히 살펴보면 가공식품이나 공산품 등 대부분의 품목이 2% 내외로 조금 상승했지만 유독 채소 분야만 10.76% 감소했다. 이중에서도 배추의 경우 ‘-40.32%’로 하락폭이 가장 큰 품목이었다.
횡성에서 만난 한 배추재배 농가는 “배추 값 조금 오르면 정부에선 중국산 수입해 들여온다 하는데 올해 상반기 배추 값이 반 토막 날 때 정부에선 대체 어떤 대응을 했는지 모르겠다”며 “무조건 농산물 값은 오르지 않으면 되는 건지 묻고 싶다”고 토로했다.
모 산지유통인은 “배추를 비롯한 농산물 시세는 한해 안 좋으면 다음해 좋아지는 등 주기를 타는 경향을 보였는데 최근 몇 해 동안은 계속해서 배추 시세가 좋지 못했다”며 “배추산업에 대한 중장기적인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경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