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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성남시 최고의 명문태권도 원문보기 글쓴이: 전설의민사범(꽃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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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맨몸투기로서
- 스포츠로서
- 교육적 수단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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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의 역사 |
- 중세.2
- 현대
태권도의 정신 예의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지켜야 할 도리를 말한다. 2. 염 치 (廉 恥) 염치는 인간이 지니고 있는 심성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잘못된 일을 하였을 경우 스스로 3. 인 내 (忍 耐) 자기수련을 통하여 심신을 단련하려면 어떤 힘든 일이나 장애를 극복하고 반드시 목표를 달성한다는 특히 현대에는 생활이 편리해지면서 힘든일은 피하여도 된다는 생각을 가지기 쉬워지므로, 4. 극 기 (克 己) 자기자신의 약해짐이나 유혹을 이겨내는 힘이다. 5. 백절불굴(百折不屈) 태권도인은 평소 겸손하고 정직함은 물론이나, 불의에 대해서는 조금도 두려워하거나 주저함이 한민족고유의 무예로서 오랫안 성행되고 발전된 사실은 고구려 시대의 고분벽화에서도 실증된다. 그 이전에는 우리 조상들이 삶을 영위하기 위하여 맹수와 겨루어야 했던 시기부터 무예가 시작되었다. 예를 들면 수도를 단련하면 칼로, 손끝을 단련하여 송곳으로 정권을 단련하여 망치로 사용할수 있으며 발을 단련하면 몽둥이를 대신할수 있었다. 백제 시대 기록에 의하면 무예를 장려하여 말타기, 궁술, 맨손 격투 등이 군인이나 평민사이에 인기가 있었으며 신라시대 에는 우리나라의 무예가 극에 달하여 신라는 백제와 고구려를 정복하여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 하였다. 삼국통일의 원동력은 진흥왕이 창안한 화랑도라 할수 있는데 호랑도는 귀족의 젊은 자제들로서 구성되어 몸과 마음을 수련하여 상부정신을 길러주었다. 특히 세속오계를 지켰으며 이 세속오계는 무예의 철학적 배경으로 성장하여 왔다. 화랑도는 수박도로 시작하였다. 즉 맨손으로 무형의 무예를 익혀 연속적인 동작으로 하여 심신의 단련은 물론 군사적인 훈련에도 동원되었으며 이것이 발전 계승되어 우리고유의 무도 수박도가 체계적으로 왕실의 지원을 받아 조직적이고 체 계화된 기술을 증강하여 군인과 사범들의 피눈물나는 노력을 보급 발전시키게 되었다. 그러나 1392년 조선왕조의 건국으로 군사훈련이나 체력단련, 군사방위력의 증강에 대한 관심이 낮아졌으며 특히 태조 이성계의 집권으로 국교가 불교에서 유교로 바뀌어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에 빠져 천민층에만 무예와 체육활동을 하게 하였다. 조선 시대에 이르러 우리의 무예는 침체의 늪에 빠진 셈이다. 그러나 다행하게도 정조때 고유무술에 관심을 보여 1790년 이덕무 장군을 통하여 무술형의 교재를 만들게 한결과 무예 보통지도를 발간 보급시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