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는 라이트형제가 비행기를 만든 시점이다. 아관파천이후 러시아가 한국에서 한방 물러났으나
1900년 의화단사건을 계기로 제국주의 열강과 공동 출병한 러시아군은 만주를 점령, 조선을 일본과의 완충지대로 삼으려 했다.
일본은 1902년 1월 영국과 동맹을 체결했으며, 러시아도 4월 만주철병을 내용으로 하는 만주환부조약을 체결했다. 이 조약에 의해 1902년 10월 제1차 철병을 단행했으나,1903년 4월로 예정된 제2차 철병을 거부하는 대신에 오히려 만주에 군대를 증파했다.이후 러시아는 봉황성·안동성 일대를 요새화했으며, 같은 해 7월 동청철도를 완성했다.8월 아무르 지역과 관동지역을 동아시아 총독부의 설립을 발표했으며, 1903년 4월 압록강 하류 용암포를 점령하였다. 이에 일본은 더이상 협상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고 전쟁을 결의했다. 일본은 1904년 2월 4일 대(對)러 교섭 단절과 아울러 개전을 결정했다. 2월 8일 뤼순항을 기습 공격하여 전함 2척과 순양함 1척을 파괴하고, 9일 인천항에 정박중인 러시아 함대를 격침시킨 다음 10일 선전포고를 했다. 이러한 방식은 진주만기습에서도 적용하는 방식이다
객관적으로 상대가 안될줄 알았지만 일본 뒤에는 영국의 전함이 있었고 미국의 전폭적이 지원이 있었기에
전쟁이 이루어진 것이다.러시아내부의 사정으로 러시아의 반격이 없었기에 망정이지 일본이 승리한 전쟁은 아니다.
즉 러시아는 10만정도의 병력손실을 입었으나 일본은 20만이 넘었다. 러시아의 기관총앞에 무수히 죽어나갔다.전쟁비용은 미국과 영국이 전폭지원해주었지만 일본은 러일전쟁직후 내각이 바뀌게된다.
이당시 일본 총병력이 100만이라고 하는데 엉청난 손실이다.
1904년 전쟁중 다른 외교를 펼쳤다면 을사능욕을 바로 벗어나지 않았을까 한다.
너무나 안일한 외교로 카쓰라테프트밀약이 이루어지고 난 다음 움직인 조선의 국책이 아쉽다하겠다.
이철 (李哲, 일본식 이름: 靑山 哲 아오야마 히카리 , 1903년 6월 9일 ~ 1944년)은 일제 강점기의 기업인, 음악가로, 한국 음반사업과 연예사업의 선구자이다. 아명(兒名)은 이억길 (李億吉)이다. 연희전문학교출신
이창수 (李彰洙, 일본식 이름: 松本彰, 1903년 7월 3일 ~ 1968년 5월 21일)는 일제 강점기의 조선귀족이다. 본명은 이인흥 (李仁興)이며 본적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화동이다. 생애 남작 이원호의 장남
윤인구 (尹仁駒, 1903년 11월 1일 ~ 1986년 1월 25일)는 경상남도 부산 출신의 대한민국의 종교인이자 교육자이다. 부산대학교의 초대 총장과 연세대학교의 제3대 총장을 역임하였다.
이승만 (李承萬, 1903년 ~ 1975년)은 대한민국의 서양화가, 연극무대장치감독, 삽화가이다.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호는 행인(杏仁)이다. 서울 출생이며 1922년 서양화가로 데뷔했고 1925년 토월회(土月會) 소속
김진섭 (金晉燮, 1903년 8월 24일 ~ ?)은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 건국 초기의 문학평론가, 수필가, 시인, 문인이며 독문학자, 방송인이다. 아호는 청천(聽川)이다. 학력 경성 양정고등보통학교 졸업
양주동 (梁柱東, 1903년 음력 6월 24일 ~ 1977년 2월 4일)은 대한민국의 시인, 문학평론가, 국문학·영문학자, 번역문학가, 수필가이다. 본관은 남해(南海)이며 호는 무애(无涯)로, 경기도 개성에서 태어났다
박흥식 (朴興植, 1903년 8월 6일 ~ 1994년 5월 10일)은 일제 강점기의 대표적인 기업인이다. 광복 이후에는 사업에서 손을 떼었지만 1950년부터 1980년까지 30년동안은 다시 기업인으로 활동하였다. 화신백화점을 운영하였고 학도병을 독려하기 위해 조직한 종로익찬위원회의 회원이 되었다.1944년에는 전투기 생산 기업인 조선비행기공업주식회사를 설립할 정도로 친일파였다
장기영 (張基永, 1903년 10월 20일 영월 - 1981년 5월 17일)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외교관, 정치인이다. 일제 강점기 당시 독립운동에 투신,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
이정희 (李正熙, 1903년 12월 9일~1981년 9월)는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관료, 교육자, 정치인이다. 1922년 경상북도 교원양성소를 거쳐 경북사범고등학교 강습과(慶北師範高等學敎 講習科)를 졸업
이기세 (李埼世, 1903년 ~ 1992년)는 대한민국의 행정가이자 사업가이다. 1970년 5윌 그의 아들인 이종성이 충남방적주식회사 사장에 취임하자 그는 회장을 역임하면서 사업에 뒤늦게 몸담았다
이우영 (李宇英, 일본식 이름: 天田宇英, 1903년 ~ ?)은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천도교 지도자이다. 생애 출신지는 함경남도이다. 일찍 천도교에 입문하여 천도교 북부교구에서 일
정민조 (鄭民朝, 일본식 이름: 松永光弘, 1903년 7월 14일 ~ 1972년 9월 14일)는 일제 강점기의 관료로, 본적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신문로동이다. 생애 1928년 일본 도쿄 제국대학 법학부 정치학과
이근직 (李根直, 1903년 1월 12일 ~ 1964년 3월 16일, 경북 김천)은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관료이다. 생애 일본에 유학하여 법학을 공부하였다. 1928년에 대학을 졸업한 뒤 강원도에서 조선총독부 관리
고재욱 (高在旭, 1903년 5월 3일 ~ 1976년 6월 22일)은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언론인으로, 동아일보사의 주필, 사장, 회장 등을 역임했다. 김성수의 처조카로, 그의 본처 고광석의 조카였다. 호 심강(心崗)
조진만 (趙鎭滿, 일본식 이름: 朝家庸夫, 1903년 10월 20일 ~ 1979년 2월 12일, 인천)은 일제 강점기부터 활동한 대한민국의 법조인이다. 본관은 배천이다. 생애 1923년 경성법학전문학교를 졸업한 뒤. 1925년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일본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하였다. 1927년 해주지방법원판사, 1929년 평양지방법원판사, 1930년3월 평양복심법원판사, 1933년 대구복심법원판사, 1939년 대구지방법원부장판사를 역임한 뒤 1943년변호사를 개업하였다
권태호 (權泰浩, 1903년 9월 16일~1972년 2월 29일)는 대한민국의 성악가이다. 기본 정보 대한제국 경상북도 안동에서 태어나 같은 장소에서 사망했다. 직업은 성악가(테너), 작곡가이고 종교는 개신교
이원홍 (李源弘, 1903년 합천 또는 성동구 - 1976년 4월 7일)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초대, 제6대 국회의원이다. 약력 전북공립사범학교강습과수료 보성전문학교 법과졸업 한국민주당창당발기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