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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악산(華嶽山)의 줄기가 남으로 뻗어 내려와 우령산(牛齡山), 종남산(終南山)에 이르고, 다시 종남산의 줄기가 서남쪽으로 뻗어 내려와 덕대산(德大山)에 이른다. 또 우령산의 줄기가 서쪽으로 뻗어 저정산(猪頂山)에 이르고, 다시 저정산의 줄기가 서남쪽으로 힘차게 뻗어 함박산에 이른다. 그 사이에 산곡분지를 형성하여 봉황리(鳳凰里), 덕산리(德山里)가 자리잡고 있다. 봉황리에서 발원한 초동천(初同川)이 그 가운데를 지나 멀리 낙동강으로 흐른다. 초동천을 경계로 하여 동쪽에는 덕대산을 등에 지고 신월리, 성만리, 신호리, 검암리, 금포리 등이 자리잡고 있고, 서쪽으로는 함박산을 등에 지고 오방리, 범평리, 명성리, 대곡리, 반월리 등이 자리잡고 있다.
이 면은 북쪽으로 산을 첩첩이 등지고 있으며, 남쪽으로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다. 이 면의 동쪽 경계는 우령산, 종남산, 덕대산을 사이에 두고 부북면 사포리와 상남면 남산리와 연접해 있으며, 서쪽으로 청도천을 사이에 두고 창녕군 부곡면과 군계를 이루고 있다. 남쪽에는 하남읍 수산리와 또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창원군 대산면과 군계를 이루고 있으며, 북쪽으로는 저정산과 함박산의 능선을 경계로 하여 무안면과 인접하고 있다. 비록 북쪽으로는 첩첩이 산으로 둘러 싸여 있으나, 이 면의 젖줄인 초동천을 중심으로 넓은 초동평야가 열려 있고, 동쪽으로는 옛 국농소(國農所)의 넓은 들판이 있어서 산 좋고 물이 맑아 살기 좋은 고장으로 평판이 높은 곳이다.
초동면은 하남읍과 함께 옛 수산현에 속하였으나, 조선시대에는 밀양도호부(密陽都護府)에 예속되었다. 이때는 상서면(上西面)이었다. 그 위치가 밀양부의 서남쪽에 있다고 하여 상서면이라고 했다. 이것은 부의 서남쪽을 상서면, 서북쪽을 하서면으로 이름을 붙인 것과 대비가 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1769년(영조 45년) 경에 본군의 방리 개편에 따라 상서면은 다시 상서초동면과 상서이동면으로 분리되었다. 이 때 본면에 소속된 방리로는 오방, 벌음, 대곡, 반월, 검암, 금포, 성만, 구령동, 신월, 신호, 삼손, 송림, 와지, 대고지 등의 기록이 나오고 있다. 그 후 1895년에 와서 상서초동면이 초동면으로 개칭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에 12개 법정리를 두었고, 오방리에 면사무소를 두었다. 그러다가 1961년에 반월리에서 차월이, 1976년에 명포리에서 신포리가 각각 분동이 되었다. 오늘날은 12개 법정리, 24개 행정리로 구성되어 있다.
초동면은 옛 수산현의 유지여서 역사적으로 많은 유적이 남아 있다. 봉황리, 범평리, 신호리, 성만리 등에는 선사시대의 지석묘 유적이 있고, 수산제(守山堤), 이궁대(離宮臺), 오산(鰲山), 덕대산성(德大山城) 등의 왕적지(王蹟地)도 있다. 또 옛 국농소(國農所), 음곡소지(陰谷所址), 동대(同臺), 변씨삼현(卞氏三賢)의 비각(碑閣), 봉명대(鳳命臺), 강동구(江東邱), 모선정(慕先亭) 등의 사적과 고담(高談)이 곳곳에 남아 있다.
1. 오방리(五方里)의 지세와 연혁
밀양군의 서쪽에 있는 함박산을 등에 지고 좌.우로 뻗은 산줄기가 감싸주어 하나의 분지를 형성하고 있다. 동남쪽으로는 넓은 초동평야를 바라볼 수 있는 탁트인 마을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에 범평리의 일부를 병합하여 오방리라는 법정리를 이루었다. 동으로는 신월리, 남으로는 범평리와 이웃하고 있으며, 북으로는 함박산의 능선을 경계로 하여 무안면 성덕리, 연상리와 연접해 있다. 서로는 청도천을 사이에 두고 창녕군 부곡면과 군계를 이루고 있다. 지금 마을 앞으로 지방국도가 남·서로 달리고 있어서 교통도 편리한 곳이다. 원래는 웃마, 양지마, 절골마, 아래마 등 네 땀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중에서 아래마는 1914년에 범평리에 병합되었다. 행정리는 오방리라 한다.
(1) 오방리 (五方里, 五榜里, 五坊里)
종래의 웃마, 양지마, 절골마 등을 합친 마을이며 오방리의 본동이다. 오방리의 옛 이름은 오방동이다. 일찌기 이 마을에서 살았던 박씨가문에서 5형제가 한꺼번에 과거에 동방급제하여 그 영광을 기리기 위하여 5형제의 '五'자를 따고, 동방(同榜)이라는 '榜' 자를 따서 오방동(五榜洞)이라고 했다고 한다. 구체적인 사실에 대해서는 문헌에 남아 있지 않아 알 수가 없다. 밀주지에는 생원 박림장(朴林長)이 소거한 사실이 있으나, 그 사적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가 없다. 조선 명종 14년(1559)에 취원당(聚遠堂) 조광익(曺光益)이 창원부(昌原府) 지개동(芝介洞)에서 이곳으로 이거한 후 지금까지 창녕조씨 일파가 세거해 오고 있다. 또 현종 때 윤계삼(尹啓三)이 청도에서 이곳으로 이거한 후 지금까지 파평윤씨 일파도 세거해 왔다. 지금은 여러 성씨가 모여 함께 살고 있다. 재사로는 오봉서원(五峯書院)과 조중문 양대 사부자(曺重文兩代四父子)의 유덕을 추모하기 위한 영모당(永慕堂)이 보존되고 있다. 또 파평윤씨 시천조 묘하재숙소인 오산재(五山齋)가 보존되고 있다. 그리고 이 마을에는 전대미문의 미담이 얽혀져 있는 효자 취원당 조광익 지려(孝子聚遠堂曺光益之閭)와 강동구(江東邱)의 사적이 전한다. 또 면사무소와 경찰지서가 위치하고 있으며, 아래 마을인 범평리에는 초등학교와 농업협동조합, 시장이 있어서 초동면의 행정 중심지가 되고 있다.
■ 웃마
오방리의 위쪽에 있는 마을이다.
■ 양지마
오방리의 양지쪽에 있는 마을이다.
■ 절골마(寺谷)
오방리의 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이곳에 광제암이 있다.
■ 조효자문(효자 취원당 조광익 지려 : 孝子聚遠堂曺光益之閭)
오방리 동구 앞 길가에 있으며, 취원당 조광익의 출천(出天)의 대효(大孝)를 현창(顯彰)하는 정려이다. 원래는 취원당의 출생지인 창원부에 정려를 세웠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 1634년에 오한 손기양(孫起陽)의 발문으로 사림에서 취원당의 이거지인 이곳으로 옮겨 중건하였다. 그 후 여러 차례에 걸쳐 보수를 하였으며, 창녕조씨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 강동구(江東邱)
오방리 동구 밖 한길가에 있으며, 취원당 조광익의 효행과 우애를 표창하고, 그 덕풍을 기념하는 비각도 있다.
취원당 조광익은 효행으로서나 형제간의 우애에 있어서도 남다른 행적을 남겼다. 그 아우인 지산(芝山) 조호익(曺好益)이 선조 때 경상도사 최황(崔滉)에게 반항했다고 하여 모함을 받고, 평안도 강서(江西)로 유배되었다. 형인 조광익(曺光益)은 그 아우를 못잊어 평안도사를 자원하여 취임해 가다가 아우의 귀양지에서 형제가 서로 만나 시주(詩酒)로써 정회를 풀다가 이내 병을 얻어 객관(客館)에서 별세를 하고 말았다. 강동 사람들이 취원당과 지산 두 형제의 우애와 덕의에 감복하여 그곳의 흙을 싸가지고 수천 리 길을 걸어 장례에 참배하려고 이곳에 오니, 이미 장례가 끝난지라 싸 들고 온 흙으로 묘 앞에 둔덕을 쌓아 대나무를 심고 갔는데, 후인들이 그 뜻을 기념하여 강동구라 불렀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을 기록하여 후세에 전하고자 헌종 연간에 강동구비를 세웠다. 근년에 후손들이 강동구를 수축·단장하고 비각도 중수하였다.
■ 오봉서원(五峯書院)
오방리의 서쪽 산기슭에 있다. 오봉이라고 부른 것은 이 서원을 중심으로 그 주위에 있는 함박산, 덕대산, 종남산, 화악산, 화왕산 등 다섯 명산이 바라보고 있는 형상이라고 하여 이름을 붙였다고 전한다. 오봉서원의 사적에 대해서는 밀양루정록(密陽樓亭錄)에 실려 있다.
■ 함박산(芍藥山)
오방리 마을 뒷산이다. 이 산에 함박꽃나무가 많이 자생하고 있어서 붙여진 지명이다. 또 작약산이라고도 하는데, 함박꽃나무가 바로 작약이기 때문에 이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 운산(雲山)
오방리 동쪽에 있는 산이다. 이 산의 형상이 마치 구름같이 보인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 앞분등
오방리 마을 동쪽에 있는 산등성이이다. 마을의 동쪽 제일 앞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이 등의 아래쪽에 쌍유등이 있다.
■ 쌍유등(雙乳嶝)
앞분등의 아래쪽에 있는 산등성이이다. 이곳이 바로 오방동의 안산이다. 이 등이 젖가슴같이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 솔밭등(松田嶝)
절골의 왼쪽에 있는 산등성이이다. 이곳에 소나무가 많이 있었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 동네골(洞內谷, 동네앞골)
오방리 마을 동쪽에 있는 골짜기로서 동네 앞에 있다고 해서 동네앞골이라고 부른다. 또 이곳에는 옛날에 절이 있었다고 전하나, 그 창건 연대와 폐사 연대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
■ 새갓등(新山嶝)
백성골(白姓谷)의 오른쪽에 있는 산등성이이다. 이곳에는 초목이 무성하여 땔나무가 많이 있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 삼발등(三發嶝)
광제암의 위쪽에 있는 산등성이이다.
■ 가는등(細嶝)
절골 서쪽에 있는 산등성이이다. 이 등의 등성이가 가늘게 내려 왔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 너븐등(廣嶝)
절골(寺谷)의 동쪽에 있는 산등성이이다. 이 등은 등이 넓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 고사리등(고사리밭등)
굴밭등 아래쪽에 있는 산등성이이다. 이곳에는 고사리가 많이 자생하고 있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일명 고사리밭등이라고 한다.
■ 살맷등
가는등의 서쪽에 있는 산등성이이다. 이 등은 그 형상이 마치 썰매를 닮았다고 하여 썰매등이라고 했는데, 이것이 살맷등으로 변음이 된 것이다.
■ 굴밭등(窟巖嶝, 굴바우등)
오방리 뒷산 정상부 애기바위 밑에 있는 산등성이이다. 이곳에는 굴바우(窟巖)가 있다고 해서 굴바우등 혹은 굴밭등이라고 한다. 이 바위에는 굴(窟)이 있고, 또 그 안에는 약샘이 있다. 이 샘물을 마시면 속병이 완치된다고 전해오고 있다. 애기바우는 생긴 모양이 마치 애기를 업은 것 같이 보이기도 하고, 탕건을 쓴 모양 같기도 한데 만약 탕건바위라고 불렀다면 이 마을에 많은 관원이 배출되었을 것이라는 전설도 있다.
■ 무등(茂嶝)
오방리 마을 뒤쪽에 있는 산등성이이다. 이곳에 초목이 무성하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 큰등
함박산이 오방리 마을 뒤에서부터 서쪽 인교쪽으로 길게 뻗어 있는 산등성이이다. 이 등의 등성이가 크게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붙여진 지명이다.
■ 백성골(百姓谷, 백산골)
무등과 갓등의 사이에 있는 골짜기이다. 이곳은 옛날에 평민들이 살았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일명 백산골이라고 한다.
■ 홍두깨등
백성골 위쪽에 있는 산등성이로서 그 형상이 홍두깨를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 갓등
백성골의 서쪽에 있는 산등성이이다. 이 등이 마을에서 가쪽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 참나무등
갓등의 서쪽에 있는 산등성이로서 참나무가 많이 있었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 가매실고개(轎峴)
오방리의 동쪽에 있으며, 신월리 듬밑 마을로 넘어 가는 고개이다. 옛날에는 가마(乘轎)를 타고 이 고개로 오르내렸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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