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창단해 각 종 대회에서 발군의 성적으로 제주축구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는 제주중. 섬 지역의 팀이라는 핸디캡을 딛고 꾸준하게 강팀의 이미지를 쌓아가며 제주의 매운 맛을 톡톡히 보여주고 있다. 현역시절 K리그 대표 스트라이커로 이름을 날렸던 신병호 감독의 지도력을 빼놓고 제주중의 선전을 얘기하기 어렵다.
신 감독은 2008년 11월부터 모교인 제주중 체육교사 겸 축구부 감독으로 재직하며 제2의 인생을 활짝 열어젖히는 중이다. 신 감독의 부임과 함께 제주중은 전국대회 3위 3번을 비롯, 지난해 제주 리그 18전 전승 우승 등 각 종 대회에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남기면서 만만치 않은 경쟁력을 뽐내고 있다.
지난해 제주 리그에서 사상 초유의 18전 전승 우승이라는 대위업을 수립한 제주중이 올 시즌 전까지만 해도 강세를 보일 것이라고 평가한 이는 드물었다. 지난해 리그 전승과 함께 탐라기와 오룡기 8강을 이끌었던 주축 선수들이 졸업하면서 전력이 크게 약화됐다. 그 사이에 타 팀들의 전력은 성장하면서 쉽지 않은 한 해가 예상됐다.
그러나 제주중은 탄탄한 조직력과 정신력을 앞세워 약체라는 주변의 평가를 멋지게 잠재웠다. 올해 추계연맹전에서는 전국 내로라하는 강팀들의 틈 바구니 속에서도 당당히 3위에 오르며 제주축구의 위상을 드높였다. 제주 리그에서도 안정된 공-수 밸런스로 서귀포중에 이어 2위로 왕중왕전에 오르는 등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는 속설을 그대로 증명했다.
지난해에는 화려한 스쿼드를 앞세워 '승승장구'를 거듭했다면 올 시즌은 특유의 조직력에 저학년 선수들의 성장이 더해지며 풍족한 한 해를 거뒀다는 평가다. 올해로 7년째 제주중을 지휘하고 있는 신 감독도 위기 상황때마다 뛰어난 임기응변능력과 지략 등을 선보이며 지도자로서 완숙미가 철철 흐른다.
"올 시즌 전 제주 지역에서 최약체로 평가받았었다. 그러나 시즌 전 평가는 선수들의 투지를 끌어올리는 자극제였다. 선수들이 열심히 해준 덕분에 각 종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다. 올 시즌 골도 많이 넣고 실점도 최소화할 수 있어 선수들에게 너무 고맙다.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 학교와 열성적으로 뒷바라지 해주시는 학부모님들께도 감사하다."
2008년 11월 고향팀 제주에서 현역 은퇴 이전까지 K리그 통산 150경기에 나와 35골을 기록한 신 감독은 1998프랑스월드컵과 2000 아시안컵 상비군 등을 거친 한국축구의 대표 스타플레이어. 건국대 졸업 이후 신인드래프트 거부 파동 등으로 한동안 홍역을 치렀으나 2003년에는 16골을 퍼부으며 마그노(당시 전북), 도도(당시 울산) 등 쟁쟁한 외국인 선수들과의 경쟁에서도 밀리지 않았다.
"현역 은퇴 후 중학교 시절 은사님이시던 고영수 선생님께서 정년 퇴임을 하시게 되면서 후임으로 감독직을 맡게 됐다. 선수 시절에는 운동만 열심히 하고 컨디션 조절을 최상으로 만들면 됐지만, 지도자는 책임감과 함께 팀을 이끄는 리더십 등 여러 가지 부분이 필요하다. 선배 지도자들의 노하우와 경험 등을 보고 지도자로서 고충도 느끼고 있다."
사실 중학교는 프로 산하 유스팀과 일반 학원팀의 격차가 꽤 벌어져있는 상황이다. 우수선수 스카웃 경쟁에서 프로 산하 유스팀보다 불리한 여건이다보니 선수들의 경기력도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각 구단마다 적극적인 투자가 더해지면서 일반 학원팀은 어려움이 더 가중되고 있다. 그러나 제주중은 선수 개개인의 기량 열세를 조직력으로 메워서 내년 시즌에는 기필코 우승컵을 들어올린다는 각오다.
"모든 지도자들의 꿈은 전국대회 우승이다. 프로 산하 유스팀보다 개인 기량은 떨어지지만, 한 번 도전해보고 싶고 열심히 해준다면 충분히 좋은 결과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올 시즌도 3학년 7명이라 전력 차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골도 많이 넣고 실점도 최소화했다. 내년 시즌은 좀 더 공격적인 경기를 펼칠 것이다. 상대 팀에게 골을 많이 넣는 전략을 구상하고 있다."
최근들어 학원 스포츠에서 '공부하는 운동선수' 육성 열풍이 거세다. '지.덕.체'를 동시에 갖춘 인재를 육성해 장차 한국 스포츠의 미래 가치를 더욱 끌어올린다는 전략이다. 제주중도 최근 흐름을 잘 구현하고 있다. 2학년 고명준은 일반 학생들과의 경쟁에서도 당당히 전교 6위를 차지하며 남다른 학구열을 뽐내고 있다. 1학년 선수들도 중.상위권 이상의 성적을 유지하며 공부와 운동을 충실히 병행하는 중이다.
"축구 선수들도 공부를 해야하는 시대가 왔다. 지금 선수들이 모두 프로와 대표 선수가 될 수 없기 때문에 선수들에게 공부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한다. 한자와 영어 공부를 틈틈히 시키면서 선수들의 학습력 제고에도 힘쓰고 있다. 사춘기의 선수들이라 힘들면 포기하고 싶은 경향이 많았는데 잘 따라주면서 선생님들도 많이 좋아해주신다. 최근 트렌드를 따라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축구를 한창 배워가는 사춘기의 선수들이 가장 중요하게 갖춰져야할 덕목은 바로 인성이다. 축구선수 이전에 인격체로서 인성적인 부분이 잘 갖춰져야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선수들에게 가장 많이 강조하는 부분이 인성이다. 인성적인 부분이 갖춰지지 않으면 축구선수가 될 수 없다. 인성이 갖춰져야 축구선수는 물론, 사회 생활에서도 여러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다. 선수들이 내 요구 사항을 잘 따라주고 있다.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면 하고자하는 의욕이 강하다는 것도 느낀다."
제주중은 정규 규격의 운동장이 갖춰지지 않아 한동안 '떠돌이 신세'를 면치 못했다. 제대로 된 훈련이 진행되기 어려운 것은 물론, 매일 훈련장에 이동해야하는 부담감도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지난해 2월 학교에 인조잔디구장이 신축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변종현 교장을 비롯한 학교 측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선수들이 조금이나마 안정된 여건에서 운동에 전념하게 됐다. 자연스레 훈련의 능률도 좋아지며 좋은 성적까지 따라오는 순환 구조가 이어지는 중이다.
"교장선생님이 인조잔디 운동장 신축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항상 축구부에 적극적인 지원을 해주셔서 감사드린다. 제주중 선수들은 제자 이전에 후배들이다. 선수들이 어떻게 성장할지 생각을 많이 하고 축구부의 발전 방향에 대한 연구도 많이 한다."
"선수 시절 때부터 선수들과 소통이 가능한 지도자가 되고 싶었다. 선수들의 어려움을 같이 공유하고 대화를 통해 풀어가려고 하고 있다. 평소 선수들과 재밌게 지내고 운동 시간에는 몰입도가 높은 지도자가 되는 것이 나의 방향이다. 선수와 학교, 학부모님들과 관계도 더욱 돈독히 할 것이다." -이상 제주중 신병호 감독
섬 지역이라는 핸디캡을 딛고 전국에 제주축구의 저력을 널리 뽐내고 있는 제주중. 모교에서 참된 인재 육성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신 감독이 있기에 당분간 전국무대에서 '회오리 바람'은 계속 될 것이다.
◇다음은 신병호 감독 프로필.
▲생년월일=1977년 4월 26일, ▲출신학교=제주서초-제주중-대기고-건국대, ▲주요 경력=1998프랑스월드컵 대표 상비군, 2000아시안컵 1차 예선 국가대표, 2000시드니올림픽 예선 대표, 요코하마 F. 마리노스(일본. 2000), 미토 홀리호크(2001.6~2001.12), 울산 현대(2002.1~5), 전남 드래곤즈(2002.5~2005.12), 경남FC(2005.12~2006.12), 제주 유나이티드(2007.1~2008.11), K리그 통산 150경기 출전 35골-7도움, 제주중 체육교사 겸 축구부 감독(2008.11~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