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서영희(미자)는 왜 거기 남아있었나.
나중에 밝혀진 사실에 의하면 거기에 있는 사망자들의 1차사인은 모두 독극물 중독이다. 영화컷에서도 나오듯 만찬 자리에서 케익과 술을 마셨을때 피를 토하면서 다들 쓰러진다. 설사 독극물 중독으로 바로 사망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렇게 피를 토했고 1차사인으로 꼽힐정도면 반항할 능력은 전혀 없다고 보는게 타당하다. 유일하게 독극물에 중독되지도 죽지도 않은 선생님의 경우엔 이미 쇠약해진 몸으로 휠체어 신세를 지고 있는 상황에서 서영희에게 어떤 피해를 끼치긴 힘들다.
그런데 서영희는 경찰이 올때까지 그 자리에 남아 있다가 병원까지 간다. 병원에 가서 나중에 다시 오겠다는 형사를 붙잡고 사건의 전말을 이야기해준다(물론 서영희의 지어낸 이야기)
여기까진 크게 무리가 없었다고 생각한다. 범인을 소심이에게 몰아가면서 완전범죄를 만들어서 자기는 무죄로 빠져나가겠다는 의도로 예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뒤에 서영희씨는 선생님 앞에서 자살을 한다. 어떻게 보면 그게 오미희(선생님)에게 주는 가장 큰 상처가 될수있기에 이해할수 있다. 하지만, 어차피 죽을꺼라면 왜 경찰이 올때까지 기다려서 병원까지 가서 쓸데없는 거짓말을 실컷 늘어놓은 다음 자살한건가.
그냥 독극물에 중독된 사람들을 자신의 분이 풀릴때까지 처벌한다음.. 오미희 앞에서 자살하면 깔끔하게 해결되는 문제이다. 굳이 시체더미속에서 경찰을 기다릴 이유도, 병원까지 갈 이유도, 나중에 오겠다는 형사를 붙들고 몇시간에 걸쳐 구라를 깔 이유도, 힘들게 병원에서 탈출해 다시 거기로 돌아가서 자살할 이유도 없다.
아무 이유도 없다. 굳이 이유를 찾자면, 감독이 반전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2. 예측 못할 반전인가?
아니다. 충분히 예측할수 있다. 그 방법과 자세한 내용까지 유추해 낸다는건 불가능에 가깝겠지만, 서영희가 범인이라는건 충분히 예상할수 있다.
왜? 어떻게 예상하느냐고. 곰곰히 생각을 해보자. 가죽잠바는 성추행(이것도 명확하게 나오진 않는다)을 당한 기억이 있는것 같고, 반장-부반장은 가난해서 무시당하고, 이지현은 뚱뚱하다는 이유로 모멸감을 느껴야했고, 박효준(운동잘하는뚱뚱한애)은 자기의 무릎을 망가뜨린 원한이 있다. 소심이는 수업시간에 덩 쌌다고 치욕을 당해야했고 학교까지 관뒀다.
그런데 미자는? 왜 유독 미자만 원한이 없을까. 미자의 원한은 뭘까. 왜 다들 선생님을 미워하는데 미자만 선생님을 감싸고 모시고 보살필까.
그리고 최초에 형사에 진술을 시작할때 미자가 말한다. 1년전쯤 오갈데 없는 저를 선생님이 따스하게 맞아주셨다고.
피붙이도 없이 외로이 살고 몸이 불편한 선생님 입장에선 찾아온 제자를 받아줄수 있다. 그런데 미자는 뭐하는 앤데 20대중반에 오갈데가 없는 신세가 된건가. 가정형편이 많이 어려운가? 아무리 어려운 가정형편이라도 요즘 세상에 입에 풀칠은 하고 산다. 무슨 범죄라도 저지르고 도망다니는 입장인가? 아니면 빚이라도 지고 도망다니는 건가? 그런게 아니라면 20대 중반의 젊고 예쁜 여자가 오갈데 없는 신세가 될 일이 뭐가 있는가.
거기에 대한 얘기도 전혀 안나온다. 미자의 과거는 의심은 잔뜩 가는데 단 한번도 언급되지 않는다.
간단히 얘기하자면, 미자는 영화 내내 "튄다" 다른 아이들과 달라서 튀고, 쉽게 이해할수 없는 사정으로 인해 튄다. 계속 튀는 인물이 하나 있다면 그쪽으로 계속 관심이 가고 의심이 가는건 당연한 얘기 아닌가.
그래서 스승의 은혜의 반전은 그다지 놀랍지도 않고 서영희가 범인이라는걸 아주 쉽게 예측할수 있다. 차라리 한번 더 꼬아서 튀는 서영희가 아닌 다른 쪽으로 결론 지었다면 진짜 반전일수도 있었겠지만, 서영희를 잔뜩 튀게 만들어 놓곤 서영희를 반전의 범인이라고 한다면 놀랍지가 않다.
3. 공감대가 약한 아이들의 원한.
사실 딱 이해되는건 서영희가 가진 원한 밖에 없었다. 여러 원한들이 뒤섞인데다가 결정적으로 오해받은 초경으로 인해 자신의 눈앞에서 어머니가 사망했으므로.
하지만 다른 아이들의 원한은 공감이 크게 되질 않는다. 반장의 원한은 제대로 회상씬 한번 나오지 않고 반장의 대사 "선생님이 예전에도 그러셨죠. 유독 우리반만 반장-부반장이 모두 가난해서 참 잘어울린다고" 그 말 하나가 다다.
차라리 부반장은 낫다. 정성껏 준비한 선물이 금전적 가치가 없다고 애들 앞에서 비웃음 당했다는 것. 그런데 그게 평생을 짊어지고 가고 사람을 죽이고 싶을 정도의 원한일까?
가죽잠바의 원한은 제대로 나오지도 않는다. 대충 분위기로 볼때 성추행 쪽인것 같은데 편집의 문제인지, 소재가 너무 민감해서인지 어슴프레하게만 보여줄뿐 보여주지 않는다.
박효준의 원한은 제대로 말해진다. 운동잘하던 아이가 인대를 다침으로서 병신으로 평생을 산다는것. 그런데 제대로 보여지지가 않는다. 이어달리기 하다가 넘어졌다는 이유로 상처 받을순 있겠지만, 그의 직접적인 원한은 지나친 체벌(오리걸음) 때문에 인대가 다친거다. 그런데 그건 말로만 표현될뿐 관객들에게 와닿을 정도로 보여지지 않는다.
이지현의 원한 역시 제대로 보여지지 않는다. 좀더 직선적이고 과장된 회상씬이 필요했다. 그리고 영화내내 썬글라스를 끼고 있는 이지현의 눈에 많은 사람들이 기대를 했을꺼다. 그런데 실제로 선글라스를 벗은 모습은 어땠나. 약간 부은 눈에 장난치듯 그려놓은 바늘자국뿐이다. 훨씬 더 심하게 표현했어야 한다. 지나친 과장일수 있다고? 선풍기 아줌마 못봤는가. 성형중독과 거듭된 성형의 폐해는 영화에 표현된것 보다 훨씬 심할수 있다.
꼭 반전에 목을 메어야 했을까. 반전이란건 참 흥미로운 소재이기도 하고 영화의 한 트렌드 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정도 밖에 안되는 반전이라면, 차라리 아이들의 상처 부분에 더 집중한 심리 스릴러 쪽으로 가는게 더 좋지 않았을까.
예고편을 첫번째 보았을 때.
워낙 빠르게 지나가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몇가지 확실한 이미지들을 가지고 나름대로 재조합해볼수 있었습니다.
우선 교실의 이미지 였는데요,학생들을 양쪽에 두고 교실 한가운데를 가르는 강이 있었죠.종교 사원같은 분위기에서 어두운 권력의 힘이 느껴졌고, 선생은 다리 뿐만 아니라 말도 제대로 할수 없을 정도로 압박되어 있었습니다. 선생도 그 권력의 힘에 속박되어 있었죠.
보통 아이들이라면 교실 한가운데 강이 흐르면 그 속에서 뛰어놀고 할텐데 그럴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그때 권력의 칼날에 베인듯 뺨에 피를 흘리는 남자아이가 어떤 눈빛을 보내자 두명의 어린 아이들이 강의 한복판에서 칠판 앞을 향해 마주섰죠.
그러자 선생의 체벌이 시작되었습니다.매는 낫으로 변하더니 무릎꿇고 있던 남자아이의 다리를 관통한것 같았고 선생도 자기가 휘두루는 힘의 정체를 알자 비명을 질러댑니다.
그 두명의 아이들은 사슴이 머리가 잘린채로 박제되는것 처럼 벽에 걸려 권력에 대한 도전에 대한 댓가를 치루고 선생은 들판에 버려집니다.
아무도 없는 들판에서 외로움과 두려움에 떠는 선생의 모습과, 다리를 다친 학생의 슬픈 모습이 보여지며 예고편은 끝납나다.
이 예고편을 보고 야 ! 굉장한 영화가 나왔구나.하는 느낌에 리뷰도 한편 올렸었죠.
그러나 예고편을 두번째 보았을때.
완전히 착각이었습니다.내 기대감에 맞추어 영화를 기억해내 재편집 한거였죠.
우선 강위에선 두명의 아이들은 하나의 똑같은 여자아이 였는데 이 이미지는 이중인격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예고편 중간중간 그 여자아이가 카타칼과 콤파스로 친구들 그림을 찔러대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걸 보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선생은 아무것도 모른채 이용당한 것 같이 도움을 청합니다.결국 예상해보면 이 영화는 초등학교에서 벌어지는 폭력의 사회적 고찰을 다룬 내용이 아니라 어떤 사이코 여자애가 선생을 이용해 친구들에게 벌이는 복수극 같다는 느낌이 불현듯 떠올랐습니다.
물론 내 개인적인 추론이라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내 예상이 빗나가 주기를 간절히 바래봅니다.사회적 공감과 변화를 일으킬만한 좋은 소재를 다루고 있는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살아가며 타인에게 하는 나쁜 행동이 몇가지나 될까
내가 살아온 삶을 반추 해보면
내 작은 습관 작은 언행 행동이
나와 관계를 가진 수 많은 이들의 마음에
알게 모르게 상처를 주었을 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를 보면 참 사람이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데스티네이션 시리즈가
너가 안전불감증에 걸려 부주의하게 거리를 다니면
조만간 피떡이 된다는 감동 깊은 교훈을 주었다면
이 영화는 너가 가진 나쁜 생각, 습관, 행동으로
타인에게 상처를 준다면
언젠가 피의 살육으로 되돌아 온다는 훈훈한 교훈을 준 영화다
우리가 사회 생활을 하며 수 많은 사람을 만나지만
그래도 사회라는 공간에서 만나는 사람은 나와 비슷한 위치의 성인을 지칭한다
학교라는 공간에서 선생이 만나는 수 많은 학생 그 인연의 횟수는 얼마나 될까?
선생중에는 자질에 문제가 있는 사람도 있겠고
물론 엄격한 교육관이 요구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사실 대다수의 학교 문제는
익히 듣는 선생도 인간이기에 라는 말로 시작되는.
인간과 인간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인간과 인간이 만나는 과정도 순탄하지 않건만.
한 선생과 수많은 제자들 간에 이루어지는 관계는 얼마나 많은 사연이 있을까
거기에 우리나라 특유의 권위주의와 물질주의가 함쳐지만
더 많은 불협화음이 알게 모르게 우리 기억에 만들어 질터
너무도 지겨운 선생에 대한 이야기 누구나 가진 안좋은 기억들.
그 말을 하고자 하는 것 같은데
처음 학생들이 모이고 이미 조금씩 보여주는 안좋은 학창 시절의 모습과 함께
위선에 찬 대사들이 조만간 뭔가 일을 내겠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극단적인 학살극...은 좀 충격이랄까.
도대체 어린시절 교실에서 똥을 쌌다고 놀린 것이 뭐 그리 큰 죄악이길래
20년이 지나서도 가슴에 품고
그 녀석들을 찾아 면도칼로 긋고 호치키스로 눈을 봉하고
몽둥이로 패죽이는 잔혹극을 만드는지 이유를
그래도 정상적인 삶을 살아온 나에겐 의아스런 스토리 전개이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그 감수성도 깊고 가능성이 무한한 지라.
지극히 감수성이 예민한 인간도 존재함을 알겠고
그나마 이해를 해보려 하였다.
문제는 선생이라는 소재를 볼모로 잡고 벌이는 이 영화의 공포극이
공포영화의 최대의 미덕이라는
긴장감이라는게 없다는 것이다.
스크림을 기억하는가? 첫 장면이 멋진 이유는
주인공 여자를 잔혹하게 죽였다는 것이 아니라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를 보여주고 그 분위기를 관객이 공감하게
유도하며 장면을 전개했기에 명장면이 된 것이다.
이 영화가 말하는 공포란
지난 억하심정이 있으면 말로 풀지~~ 왜??
정도의 의문이 아니라
분명 영화 초반 부에 학생들이 어려운 핍박을 겪은 피해자인데?
왜 제네들이 죽어??
이 질문이기 때문에 관객이 헷갈린다는 거다.
더욱 어처구니 없는 것은
공포영화에서 죽음의 공포라는 것이
서서히 다가오는 그 무엇이 아니라
정말 영문도 모르게 끌려가서
짜증날 정도로 잔인하게 죽이는 과정에서
발견하는 혐오감
이 혐오감이 영화가 보여주는 공포의 정체인 것이다.
사실 피해자인 학생들이 죽어가는 것이 이해가 안되고
전개와 구성에서 허술한 점을 떠나
왜 이런식으로 밖에 표현 못하는가가 너무 짜증나
그만 보려고 했다.
하지만 영화를 끝까지 본 이유는
이 영화가 망하지 않으려면 최소한의 어떤 배려라도 했을터
그 살인의 이유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이제 부터는 인내심의 영역이라 불러도 좋다.)
그리고 역시나 나오는 극적인 반전.
미자가 사실 존재하지 않고
영화 전부가 꾸며난 이야기일 뿐이며
남자였던 정원이가 그 미자로
과거의 앙심으로 품고 선생에게 복수하기 위해
애들을 죽이고 자살한다는 내용.
우리가 몰랐던 사실은
똥을 싸 놀림을 당한 정원이가
사실은 여자였고
똥이 아니라 여자의 마법에 처음 걸렸던 것
억울한 놀림과 그 것을 항의하러간 어머니가 교통사고를 당했고
결국 죽자 그 앙심을 푸는 과정이였다는 것.
너무 가슴아픈 반전이다.
결국 선생이 교육자로써 엄격한 도덕률을 지키지 않고
분별없이 행동하면
말년에 인간으로써 상상하기 힘든 처참한 꼴로 벌을 받는다
그게 결말이다.
물론 이런 발상은 마치 초등학생이 미워하는 나쁜녀석이
죽기를 바라는 마음과 흡사하단 생각이 든다.
어른들이 보는 영화이기에 좀 잔인하게 포장했지만.
아무튼 하고자 하는 초등학생이 가지는 분노
그 이야기가 아닌가?
다시 생각해 본다.
학교라는 공간이 지니는 문제들의 의미는
선생이라는 인간이 증오스러운 것이 아니라
다수의 인간이 만나는 공간에서
인간적인 관계가 성립 되지 못하게한(선생이 통제 가능한 학생의 수는 최대 30명)
보통 40~60명 정도를 몰아 넣은 구조와
인간이 인간을 대하는 방식 이전에 권위주의와 추상적인 도덕률
개인간의 경쟁심을 가르친 이 사회의 교육제도에 있는 것이지
선생이라는 개인의 문제가 될까?
인간과 인간의 만남에 굴곡이 있고 그 과정에 상처를 우린 받는다
하지만 우리가 세상을 피의 학살극으로 대하지 않는 것은
자신의 상처를 타인에게 쉽게 전가시키기 이전에
그 대상을 이해하는 마음과 타인의 부당함 앞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존엄을 스스로 지키는 인격이 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성인인 것이고 이 사회가 유지되는 것이다.
선생이라는 인간도 역시 사람이고
그의 삶이 완전체에 가까울 수는 없다.
영화가 보여주는 스승의 은혜의 세계관을 한번 떠올려 보자
당신은 타인에게 상처를 주지 않은 완전한 인간인가?
선생이 정말 죽일 년이고
상처입은 피해자 정원이는 동정이 가는 인물인가?
시체들 밖에 남지 않는 이 영화의 결말
영화의 내용이 정말 이해가 되는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