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초기교단 건물 「세심원」복원- 양정교당 김명덕 교도
원불교신문 [816호] 1995년 01월 20일
세심원(최초 동하선을 났던 곳, 전음광 대봉도의 사가) 복원 준공식이 있기까지
물심양면으로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김명덕 주무(73세, 양정교당).
『초창기 건물을 복원하는데 조그마한 힘이라도 된 것이 무엇보다 기쁩니다』라고 말하는
김교도는 그 동안 알게 모르게 교단의 크고 작은 일에 앞장서서 일을 해 왔다.
초창기 서면교당을 비롯
개포ㆍ양정ㆍ호주 시드니 교당과
삼동원(신도안ㆍ벌곡),
중앙훈련원(원불교 대학원),
중앙총부 뒷편 부지 확보에도 김 교도의 정성이 배어 있다.
또한 김교도는 교당 주무로서 남다른 면을 보여왔다.
교당 교도 중 어렵게 생활하는 사람이 있으면 자신의 수용품을 아낌없이 주는 한편
교당 교화를 위한 자모 역할을 지금까지 쉬지 않는다.
『어려운 형편 중에서도 법회 참석할 때와
교도들이 신심이 나서 교당 일을 열심히 할 때 기쁩니다』라고 미소를 머금는
김 교도는 수행면에서도 철저하다.
원기42년 김대현 원로교무의 연원으로 서면교당에서 입교한 김 교도는
좌선과 기도생활에 매우 철저하다.
김장원 재무부장은
『이번 세심원 건물 복원을 권면했을 때
대단한 신심이 지극하신 분임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습니다』고 말했다.
남의 앞에 좀처럼 나서기를 꺼리는 김교도는
세심원 준공식이 있기 전 중앙총부 법회시간에
조정근 교정원장으로부터 공로패를 받고
『많은 대중들 앞에서 공로패를 받게 되어 부끄럽기만 합니다.』고 몸둘바를 몰라했다.
김교도의 이 말 속에서
평소 무상보시를 생활 신조로 삼고 있는 깊은 뜻이 숨어 있음을 엿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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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타원 김명덕 대호법 열반
원불교신문 [1117호] 2001년 09월 07일
서타원 김명덕 대호법(양정교당)이 31일 익산 원의원에서 노환으로 열반.
3일 중앙총부에서 원불교교단장으로 발인식을 거행했다. 유해는 영모묘원에 안치했다.
서타원 대호법은 1923년 울산에서 3남4녀중 셋째딸로 출생,
21세에 결혼하여 슬하에 1남3녀를 두었으며, 원기 42년 36세 되던해 서면교당에서 입교했다.
서타원 대봉도는 천성이 지혜롭고 후덕하였으며,
입교한 후로는 초지일관 두 마음 없이 교당 교무의 지도에 순응하고
위로는 스승님의 법에 귀의하여 양정교당 신축불사에 대희사주로 중추적 역할을 다했다.
또한 교단내 크고 작은 불사에 동참하는 등 순일한 공부심과 공심으로
복과 지혜를 장만하는 일에 누구보다 앞장서 행하였고,
어려운 교도는 흔적없이 도움의 손길을 건내는 등 출가자의 심법으로 호법정신의 모범을 보였다.
특히 인재육성에도 특별한 관심을 기울였으며, 평소 근검과 베품의 생활로 보살의 행을 나투었다
. 이에 각 교당, 기관에서는 고인의 영로를 축원하기 위해 9일 추도식을 거행한다.
세수는 79세, 공부성적 정식법강항마위, 사업성적 정특등5호, 원성적 정특등.
종재는 10월 18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