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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번역 작품>
※ 시는 한편 전체를 번역하여 한글 작품 밑에 넣어 주십시오.
대관령의 소나무 눈꽃
강정식
동서를 잇는
대관령 정상 소나무에
눈꽃이 피었다
무슨 사연이 그리 있어
춥고 바람 센 날에
저리도 곱게 피었나
만나야 할 사람 오지 않고
기다려봐야 만나지 못하는
그 사람 그리워
눈꽃은 조용히
피었다 지는구나
눈부처
권혜진
하늘빛 부시던 시월의 마지막 날
당신 눈 속 깊이 나를 심었습니다.
그대가 있어 삶이 온전할 수 있었으므로
당신 눈 깊은 곳 흔들리지 않는
부동의 섬이 되고 싶었습니다.
비워 둔 시선 안에 서로의 모습을 채우고
한 번의 눈 깜박거림에도 그리워하며
그대와 나
원 없이 마주보며 살고 싶었습니다.
눈 속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작은 섬이고 싶었습니다.
장물
김동겸
벼루에 하얀 구름이 떠 돈다
아버진 하얀 구름을 찍어
글을 쓰신다
까만 글씨
하얀 구름 위를 노닌다
검정 벼루 위 구름 노니는 것처럼
장물은 우리를 순하게 살라네
하얀 구름이 적당히
순리대로 살라네
디딜방아
김왕제
해거름 무렵 두메산골 초가에는
백발이 성성한 노부부가
바구니에 벼를 한 됫박 담아
방아확에 살며시 넣고는
나란히 방아다리 하나씩 밟고
쿵더쿵 쿵더쿵 방아를 찧는다
할머니가 키질을 시작하며 까부르면
할아버지는 혼자서 방아를 찧는다
쿵더쿵 쿵더쿵 방아소리에 맞춰
꽃 같은 해가 먼저 저 산을 넘어가네.
사월
김 종 호
화르르
화르르
벚꽃 진다.
지금쯤
저승 꽃길에
와글와글
꽃망울들 터지고 있겠다.
어느 봄날
김찬윤
문득 신경과 의사친구의 말이 스친다.
연식이 다 되어서 아프다는 어깨와 팔, 쓰지 말라 했고
그렇게 하면서는 살수 없다는 생각에
허허허 웃는 나도 어느새 연식이 다 되어서 그렇구나!
그래, 흘러가는 것이 어디 강물뿐이더냐,
다시 숙련된 솜씨로 십수년을 함께한
낡은 승용차 올라 시동을 켠다
비틀거리다 일어나 걷는 낡은 나이지만
병원 밖을 나서는 입가엔 봄볕이 환하다.
종소리
김학주
창문만 바라보는
폐교의 종소리
바람이 흔들릴 때마다
잊혀진 아이들의 발소리가 들린다
어디론가 사라졌던
웃음소리
텅 빈 교실에 밀어 넣고
창밖에서 서성인다
낮은 햇살은
날개짓하며
바람 속을 걷는다
떠도는 바람처럼
녹슨 종이 울리지만
해바리기 꽃은
더욱 고개가 무겁다
다 어디로 가고 없나
김학철
그 따스했던 햇살의 고요
아름다워, 아름다워 눈부셨던 볼 붉은 처녀애들,
이제 다 어디로 가고 없나
함께 다 어디로 가고 없나
함께 어울리며 함께 부딪쳤던 사람의 냄새
슬그머니 가버린 꽃들의 향기.
날마다 조금씩 허물어지며 사라지는 것을
망설이며, 망설이며 눈에 담을 수 있을까.
山村
남진원
시골집 아궁이
나무 타는 연기
멀어지면
산길 걷는 발아래
낙엽 냄새
소올 솔‥‥
굽이 돌아가니
들려오는
청아한 바람 소리
새소리
물소리는 저 만치 먼저 앞서나간다.
소록도에서
선우미애
살이 썪는 아픔보다
손가락 마디마디 잘려나가는 아픔보다
숨이 문드러지는 고통을 견뎌온
굽이굽이 아린 인생길
칠흑 같은 어둠을 휘감아 돌고나니
외로움이 끔찍하게 달라붙어 목을 조인다
파르르 날아가는 고단한 나비
지나는 바람에도 마음 조아리니
아픔 서린 작은 섬 하나, 어린 사슴의 눈망울이다
소금기에 절여진 슬픈 역사의 기억과
물리고 뜯겨온 아슴한 세월을
하늘도 바다도 다 알 수 없다
반쯤 눈을 뜨고
올망졸망 하늘을 보니
별의 파편이 된 사내가 울먹인다
그 가냘픈 영혼
한 입 베어든 초승달이 외롭다
나그네
심우천
천고송(天鼓頌)이 따로 있나
빈손이면 극락인 걸
산여울 바람 소리
귀를 열면 신선(神仙)이네
오욕락 지린 봇짐
훌훌 털면 무아인 걸
괜스리 꽁꽁 묶여
혼란스레 살았구나
뒤 안 보고 앞만 보면
이렇게도 홀가분한 것을…….
네 탓 내 탓 떨쳐내면
고고한 불사조네.
집 한 채로 서다
심 재 교
뇌성벽력의 채찍인들 없었을까
마음이 열릴 때까지의 아픔이었지
아득한 절벽 서늘하게 선 장송 長松
어느 인연이 와 닿은 뿌리일까
내 안의 빛으로 세상을 찾아가는 동안
산문 밖에서
윙윙거리는 알 수 없는 소리
균열을 퍼 나르는 소음이
가지 끝을 흔든다 한들
한자리에서만 머물러 온
고고한 장송의 신앙 같은 긴 침묵
그 안을 채워 온 고독처럼
오래도록 말없이 스스로를
가꾸어 온 이를 들일
집 한 채로 서다.
산마루에 걸 터 앉아
심재칠
산이 부른 적 없고
나 또한 산 그를 알지 못하니
산과 나 서로 잊고 마주 앉아
말없어도 잊은 듯 되살아나는
한가로움이 참으로
별미로구나
냉이꽃
정원대
가재 도롱뇽 살고 있는 너브내
가는 곳마다 냉이꽃 냄새 가득하다
어디서 날아 온 노랑나비 한 마리
햇볕에 앉아 날갯짓 하는 걸 보니
봄인가 보다
봄은 꽃망울처럼 봉긋할까
입 다문 바람은
꽁꽁 얼어붙은 가슴을 풀어헤치는데
얼굴이 유난히 희었던
그 소녀가 생각난다
난(蘭)
조영웅
어제 못 봤는데
어느새 키가 불쑥 자랐다
사랑인 듯
미움인 듯
삐죽이 올라와 있다
모르게 일어난 일은
신기하다
남의 일이라 생각하다가
뭉클할 때
사람까지 신비하다
없는 듯 서운하다가
문득 새침하게 돌아앉은
너를 보면
그냥 좋다
저, 풀꽃
조영웅
저, 풀꽃
바람 지나가자
오래 흔들린다
마치
바람이라도 되는 양
온몸으로 흔들린다
천둥 요란하던 밤
그 사람
많이
무서웠던 모양이다
초승 달
주재남
누님!
누님!
이제 그만 내려오세요
기다려도 그분은 돌아오지 않아요
누님!
누님!
커피한잔
주재남
호수 위에 하늘이 내려와
푸른 침실에
별들이 뚝뚝 떨어져 함께 눕는다
초저녁 말이 없던
눈썹달이 눈빛만 던져주고 가버렸다
삶을 자맥질 하던 철새들 초야에 잠들었나
시간의 등 뒤에서
바람은 늘 시린 눈물을 닦아 주고
밤이 되어도 잠들지 못하는
강물 따라 어디론가 끝없이 가고 싶다
그 곳에 가면 유연에 이파리들이
기다리고 있으리
허허로운 빈 가슴 채울 때 까지
그녀의 포근한 뜰에서
헤즐레 커피 한잔 마시고 싶다.
<시조>
월은정(月銀亭)
류각현
달빛도 은하수도
호수에 취해 있고
여유 찾은 마음마다
웃음꽃 피는 밤에
물결은
시심(詩心)을 안고
행복으로 출렁인다
당신의 눈 속에는
내 모습 들어 있고
내 마음 깊은 곳엔
당신 생각 가득한데
행복이
여기 있다고
속삭이는 고운 입술
갈잎 아리아
박영권
마지막 남은 한 잎
하늘 자락 가르며
갈바람 연주하는
비애의 아린 선율
애잔한 갈잎 아리아
귀를 밝힌 산울림
흐느끼는 나그네
박지은
황홀한
꽃그늘 아래
혼절한 강대인가
사무치는
그리움에
피멍든 화석처럼
밤이면
달무리 안겨
흐느끼는 저 나그네.
고기가 좋아
이 흥 우
어머니는 늘 그랬다. 난 비린 게 안 좋다고
나물에 된장국에 그러면 된다면서
생신 상 고깃점 뒀다 다시 내던 내 밥상.
생선도 못 먹겠다. 북어도 대가리만
어머니는 고기라면 어느 것도 못 드시고
오로지 식물 식성에 그런 줄만 알았다.
암에 걸려 말라가며 “불고기가 먹고 싶다.”
뜻 밖에 하신 말씀 고기 집에 모셨는데
채 한 점 못 드시면서 “원랜, 좋아 고기가.”
유럽의 하늘
정정용
할일 없이
보이는 데도
끝없이 흘러가는 강물
날지 않을 수 없기로
운명 위를 날으는 새
흘러서
당도한 바다
날아서 꿈꾸는 하늘.
석류
정정조
뙤약볕에 익어가는
진초록 잎새마다
참매미가 뿌려놓은
따가운 빨간 선율
그 소리 날아간 자리
알알 석류 벌었다.
화려한 벚꽃사랑
채윤병
환한 봄날 손님맞이 상춘객을 유혹하나?
몸맵시 가다듬고 곳곳마다 뛰쳐나와
보란 듯
꽃비를 내려
길손들을 사로잡네.
들끓는 깊은 정념 마구발방 솟구치고
타는 불길 어른거려 붉은 넋에 취해는 듯
천지가
어리벙벙해
주저앉고 말겠다.
풍겨대는 꽃향기와 참사랑에 홀짝 반해
뼛속까지 사무치어 단잠도 설치겠네.
저 연정
심장을 달궈
힘찬 맥박 절로 튀고.
<동시 •동요 •동시조>
자등 무지개 꿈빛
김양수
예쁜 마음으로 어깨동무 해볼까?
얘들아,
자등리에서 뛰어놀던 우리만의 꿈 빛깔
주머니 속 깊숙이 감췄다가
어른이 되어서 너도 꼭 꺼내 볼 거지?
그 속에 아름다운 우리 이야기 보이거든
여기에 다시 무지개 뜨나 보러오자.
먼 훗날 약속지켜 우리 다시 만나면
얘들아,
자등리에서 키워오던 우리만의 꿈 빛깔
정말로 그대론지 변했는지
어른이 되어서 나도 꼬옥 꺼내어 보여줄게
추억의 아름다운 무지개를 재잘재잘 바라보며
세계를 향한 새로운 꿈빛 그려보자.
홍 시
엄 순 영
한여름
더위 먹고
새파랗게 질 리 엇나,
찬 이슬에 멱 감다가
몸살이 덧 낳나,
진종일
땡볕 쐬더니
얼굴 빨개졌구나.
지는 해 대신 해서
붉은 등 내다걸고,
고샅길 밝히려고 상치 끝에 달아 뒀나,
산 까치
허기 젓는지
몰래 와서 먹고 가네.
숲길
이주영
봄 안개 피어나는
아침 숲길을
무슨 빛깔 보면서
걸어가나요?
노란 얼굴 양지꽃
보라 얼굴 반지꽃
숲속의 그림 전시
눈이 즐겁죠.
솔바람 불어오는
저녁 숲길을
무슨 소리 들으며
걸어가나요?
바람소리, 새소리
개울물 소리
숲속의 음악 연주
귀가 즐겁죠.
풀밭을 걸을 땐
이 화 주
풀밭을 걸을 땐
발끝으로 걸어도
뒤꿈치로 걸어도
풀꽃에게 미안해
풀밭을 걸을 땐
내 발이
아기 새 발이면
참 좋겠다.
짚 신
임 교 순
할아버지는
짚신 신고
지개 지고
산마을에서
해와 같이 밭 매고
달과 같이 짚신 삼고
그렇게 사셨습니다.
지개 목발도 닳고
짚신 도갱이도 찌그러진
그 어느 해
뜰 돌 위에
짚신 두 짝만 두고
맨발로 저승길 떠나셨습니다.
바람 부는 날
정민시
바람이 찾아와서 대문을 흔들어요
밀어보고 발로 차고 떠밀어 보고
쓰레기를 꾀어서 힘을 보태 보았지만
삐거덕 삐거덕 아픈 소리 내면서도
대문은 대문은 제자리를 지키지요
바람이 대문을 열어 달라 흔들어요
이리 꽝 꽝 저리 꽝 꽝 밀어도보고
종이와 낙엽 꾀어 힘을 보태고서도
바람은 떠나가고 종이들만 남아있는
바람은 바람은 얄밉기만 하지요
안테나
조무근
‘오늘
파도가 무척 세겠는 걸‘
안테나 눈 곧추세워
귀 기울여 알아맞히는
바닷게 좀 봐
‘오늘
소나기가 한차례 쏟아지겠는 걸‘
안테나 더듬이 곧추세워
일기예보 알아맞히는
달팽이 좀 봐
애기풀꽃
진 호 섭
꽁꽁 얼어붙었던 땅 속
어디에
숨어 있었을까?
고렇게도 앙증맞게 귀여운 얼굴
보드라운 살결
봄볕이 꼭 껴안고
뽀뽀를 하면
자주 옷깃 쫑긋 세워
생글생글
노란 해님 머리에 이고
하늘하늘 봄바람 따라
나들이 가는 애기풀꽃
참 예뻐요.
연 필
최복형
노란 옷을 입어도
파란 옷을 입어도
빨간 옷을 입어도
하얀 옷을 입어도
언제나
까만 발자국만 남긴다.
<동화> ※ 산문은 문단이나 단락별로 번역하여 한글 작품 밑에 넣어도 됩니다.
희망초등학교 교장 선생님
이 갑 창
“어린이 여러분! 여러분들은 오늘부터 희망을 가지고 학교생활을 해도 좋습니다. 여러분들이 희망과 꿈을 활짝 펼 수 있도록 교장인 제가 신명나는 학교를 만들 기 위해 열심히 노력할 것입니다.”
희망초등학교에 교장 선생님이 새로 오셨습니다.
“정말 우리 학교가 달라질까? 여느 때의 교장 선생님과 많이 다른 것 같아.”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했어. 너무 큰 기대 갖지 마. 뭐 특별한 게 있겠어? 처음 오셨으니까 그런 희망적인 이야길 하는 것이겠지. 두고 보라고.”
마치 이러한 소곤거림을 듣기라도 했다는 듯 아이들의 눈을 휘둥그렇게 할 사건이 희망초등학교에 일어났습니다. 학교에 등교한 아이들은 모두 자기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교문 앞 게시판에 붙여진 안내문 때문이었습니다.
『어린이 여러분! 오늘부터 아침공부는 없습니다. 대신 2층 다목적실에 게임실을 마련하였으니 게임을 하고 싶은 어린이는 마음껏 해도 됩니다. 축구공, 배구공, 농구공도 각각 30개씩 준비해 놓았으니 쉬는 시간에 운동장이나 체육관에서 신나게 뛰어 놀아도 됩니다. 또 각 교실마다 여러분들이 꼭 읽어야 할 책도 100권씩 마련해 놓았으니 틈나는 대로 읽어주세요. 즐겁게 학교생활을 하세요.』
교정에는 교장 선생님이 직접 틀어준 아이들이 좋아하는 가요가 신나게 울려 퍼져 등굣길의 아이들을 환영해 주었습니다. 교장 선생님은 교문 앞에서 등교하는 아이들에게 활짝 웃으며 사탕 한 알씩을 손에 꼭 쥐어 주십니다.
“만세!”
“희망초등학교 만세!”
“멋쟁이 교장 선생님 만세”
아이들의 얼굴엔 금방 웃음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 활기찬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단번에 학교에 생기가 돌며 신바람 나는 학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아이들처럼 좋아하는 건 아닙니다. 선생님들과 학부모들은 여간 걱정이 되는 게 아닙니다.
“교장 선생님. 의욕은 좋으시지만 저희들은 많은 우려를 가지고 있습니다. 교육 을 인기 위주로 하셔서야 되겠습니까?”
걱정스런 나머지 직원협의 시간에 선생님들이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내었습니다. 그러자 교장 선생님은 껄껄껄 웃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선생님들이 걱정하시는 뜻 잘 압니다. 하지만 저를 믿고 일 년만 참아주세요.”
학부모들도 자꾸만 불만이 쌓여지게 되었습니다.
“우리 이럴 것이 아니라 교장 선생님을 만나 항의라도 합시다. 이러다간 아이들 모두 망치게 될지도 몰라요. 총회를 소집하여 확실하게 따져야 하겠어요.”
학부모 대표들과 운영 위원들이 입을 모아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총회를 열자고 하였습니다. 아이들도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전교 어린이 임원들도 회의에 참석하기로 하였습니다.
선생님들은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하며 모두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러나 교장 선생님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아침이면 가요를 틀어 등교 길을 도와주었고, 게임실과 운동장에선 아이들의 활기차고 신나는 모습이 이어졌습니다. 벌써 책을 30권이나 읽은 아이도 있습니다.
회의 날이 되자 학교엔 긴장감이 맴돌았습니다. 교장 선생님이 희망초등학교에 부임하신 지 석 달 만에 일어난 일입니다. 신문 기자들과 방송국에서도 학교로 몰려와 회의 모습을 지켜보게 되었습니다.
“우리 이번에 교장 선생님을 그만 두게 해야 한다고요. 이러다간 우리 아이들 장 래 다 망치겠어요.”
학부모들과 운영위원들은 단단히 벼르고 왔습니다. 선생님들은 많은 걱정이 되었습니다. 유능한 교장 선생님이 너무 의욕을 앞세우다 크게 다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교장 선생님! 도대체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하실 작정입니까? 안 그래도 각종 방송 매체들로 인하여 공부는 안하고 유행에 빠져 노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 는 데 학교에서까지 그들이 좋아하는 것만 하려고 하니 장차 그 아이들이 자라 서 무엇이 되겠습니까?”
학부모 대표가 강력하게 항의하였습니다.
“여러분들이 염려하고 걱정하는 게 무엇인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 를 믿고 일 년만 참아 주십시오. 그리고 오늘 이렇게 오셨으니 제 계획을 들어 보시고 아이들을 위해 여러분들이 좀 도와주십시오.”
교장 선생님은 얼굴에 미소를 띠고 아주 침착하고 차분하게 얘기하셨습니다.
기자들이 어린이 대표에게 의견을 물었습니다. 모두들 어떤 말이 나올지 온 신경을 집중해서 귀를 기울였습니다.
“저희들은 정말 신이 납니다. 등굣길이 즐겁고 학교에 와서도 우리들이 하고 싶 은 걸 맘껏 할 수 있으니 신나고 즐거워 공부 시간에 공부도 훨씬 잘 됩니다. 즐 겁고 신나는 학교생활을 하고 있는데 왜 어른들은 자꾸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회의를 마치고 난 뒤 신문과 방송에선 난리가 났습니다. 그리곤 다음과 같은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실렸습니다.
『희망초등학교엔 게임실이 설치되어 있다. 앞으로 학교 뒷동산에 놀이기구 도 들여온다. 등산로도 만들고 자전거를 탈 수 있는 길도 만든다. 겨울엔 눈 썰매장도 만들어 아이들의 체력도 길러주고 극기훈련도 시킨다. 이것은 학교 교육가족 모두가 적극 추진하기로 총회에서 결정한 사실이다.』
<수필>
화구 골목
황 장진
<花邱>는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월송3리의 자연부락이름이다. 진달래와 철쭉꽃이 아름다운 언덕이 있는 마을이라서 <화구>라 불렀다. 관동팔경의 하나로 아름드리 송림이 울울창창한 월송정이 있는 마을, 나의 제2고향이다. 논에는 나락(벼), 밭에는 보리·서숙(조)·콩·옥시기(옥수수)를 주로 심던 전형적인농촌마을이었다.
국도 7호선 평해읍에서 5리쯤 북향해서 왼쪽으로 한 마장 들어가면 60호농가가 옹기종기 모여 살던 곳이었다. 대문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 봐도 찾을 수 없는 동네였다. 솔가지 울타리나 돌담, 토담이 골목길이나 옆집과 경계를 이루고 있을 따름이다.
우리 집은 방 넷, 대청마루, 부엌, 마구간, 뒷간이 딸린 집으로 4대 8명의 식구가 오순도순 살았다. 암소와 송아지도 한 지붕 밑에서 살았으니 작지는 않은 초가 집이였다. 이집 뒤로 초군들이 풀 한 짐 그득히 지고가도 풀 한 잎 안 보일 정도의 돌흙 담 뒤로 긴 골목길이 남북으로 나 있었다. 동네에선 제일 번화한 골목이었다. 수레하나 다닐 수 없는 좁은 길, 허나 나의 눈엔 꽤 넓은 길로 보였다. 어머니는 안방에서 담을 타고 넘어오는 목소리만 들어도 누군지 척척 알아냈다.
“너품댁이 논에 피 뽑으러 가나 보지.”
“하마(벌써) 금강댁 새댁이 물 길러 오는 가 봐.”
이 길은 이모 댁 다니는 심부름 길, 인수 네 집이나 호동 댁 사랑으로 놀러 다니는 길이였다. 초등학교 다닐 때는 잔등이 필통 달그락대던 등하교길이기도 했다. 술래잡기를 하려면 한참을 뛰어야했다. 비교적 길이 곧기 때문이다.
봄·여름·가을, 초목들과 학동들이 소를 몰고 다니던 공동방목 길이였다. 이 길에는 소들이 쭉쭉 싸고 간 배설물들이 무덕무덕 늘어서 있을 때가 많았다. 그러나 이것들은 굳기도 전에 누구의 퇴비장으로 갔는지 곧바로 없어지곤 했다. 보송보송하고 하얀 흙길이 되어 맘 놓고 뛰어 다녀도 돌에 부딪쳐 넘어지거나 고무신이나 짚신에 달라붙는 게 없는 좋은 길이였다. 장마철 폭우가 쏟아지면 물살 빠른 물길이 되고, 담장이 무너지거나 감나무나 대추나무 잎이 떨어질 때는 어수선한 길이 되기도 했다.
담장 밖 골목위로 붉은 감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날 잡아봐라’ 놀려대도 손 한 번 뻗지 못하고 입맛만 다시던 양심길이였다. 길 들머리에서 엿장수의 가위질 소리가 ‘쨍그랑 쨍그랑’ 하기 시작할 때는 맨발에 봉당으로 헛간으로 헌 고무신, 빈 유리병, 쇠붙이 찾기에 눈에 불을 켰던 달콤한 길이었다.
뒤 배미 논에서 쓰레질 하시는 아버지께 농주 한 주전자와 짠지 한 통 들고 종종걸음 치던 바쁜 길이였다. 까까머리들과 어울려 엽전재기차기를 하거나 짚으로 만든 공이나 고무공으로 축구하던 놀이터였다. 자치기하다가 월담하거나 장독을 깨고서 꾸중 듣던 훈육길이였다. 아버지와 둘이서 20리길 산에 가서 땔 나무 가득 싣고 오거나, 볏단을 집채만큼 실은 달구지 뒤를 낑낑거리며 밀고 오던 고마운 길이였다. 큰길에서 집까지 들어오는 골목길은 우물의 허드렛물이 나가는 도랑에 달구지 바퀴 하나를 넣고 오면 들어 올 수 있는 한길이었다. 순이, 옥이가 이 길에서 깨금발하며 담 너머로 공기돌이나 생감 던지기를 자라목이 빠지도록 기다리던 애틋한 길이였다. 나 또래 예쁜 여시가(여자아이)가 지나칠 때는 못 본척하다가도 골목을 꺾어 돌아 새까만 치마가 안 보일 때는 왜 그리 짧은 몽당 길이었던지······.
나를 키우던 골목, 나의 놀이 터 화구 골목을 매정하게도 수 십 년 동안 찾지 못하고 살아왔다. 이제 옛 이웃 찾아뵙고 아버지께서 즐겨들던 막걸리 몇 사발 주고받다가 이 골목 저 골목 어슬렁거려나 볼까.
“아저씨, 순이 옥이 잘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