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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2월 7일 현재 전자책 판매 금액= 251,040원
영화 수필 3편
1)흘러간 영화들
2)돌아오지 않는 강
3)'내가 마지막 본 파리'(The last time I saw Paris. 1954)
1)흘러간 영화들
요즘 버스나 전철 타면 젊은이가 좌석을 양보해주는 일 많다. 늙은 티 나서 그런 모양이다. 그러나 우리도 꽃같은 시절이 있었다. 한 편의 흘러간 영화처럼 아름답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 우리는 국산영화는 보지 않았다. 화질과 음향이 시원찮고 스토리가 천편일률적으로 '최류탄 영화'기 때문이다. 국산은 식순이 공순이 전용이고, 우리는 그런 영화는 무시하고 외국 영화에만 박사였다.
제목 대면 즉각 주연 이름 튀어나왔고, 반대로 주연 이름 대면 제목 튀어나왔다.
찰리차프린 하면 '모던 타임스', 카트리느드뉘브 하면 '셀브르의 우산',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 하면 '부베의 연인' '가방을 든 여인', 아란드롱 하면 '태양은 가득히',
잉그릿드버그만 하면 '카사불랑카'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가 튀어나왔다. 제니퍼존스 하면 '모정','무기여 잘있거라'. 스잔헤이워드 하면 '나는 살고 싶다'. 폴뉴먼 하면 '영광의 탈출' '상처뿐인 영광'이 나오고, 엘리자베스태일러 하면 '클레오파트라' '자이언트'가 나왔다.
오도리햅번 하면 '로마의 휴일'이 나오고, 나탈리우드 하면 '초원의 빛', 그레이스켈리 하면 '상류사회', 마리린몬로 하면 '신사는 금발을 좋아한다' '나이아가라'가 나왔다.
죤웨인 하면 '역마차', 그레고리펙 하면 '백경' , 마론브란드 하면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대부'가 나오고, 월리엄홀덴 하면 '콰이강의 다리', 제임스딘 하면 '에덴의 동쪽' '자이언트' 나오고, 스티브맥퀸 하면 '빠삐옹' '황야의 7인', 율브린너 하면 '왕과 나', 쑌코넬리 하면 '007 두번 죽지 않는다'가 나온다.
반대로 영화제목 대면 주연 이름 술술 나온다.
'닥터지바고' 하면 오마샤리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하면 클라크케이불, '에덴의 동쪽' '자이안트' 하면 제임스딘, '노인과 바다' 하면 안소니퀸, '셀브르의 우산' 하면 까뜨린느 드뇌브, '십계' 하면 챨튼헤스톤. '테스' 하면 나타샤킨스키가 나온다.
그 당시는 서부영화가 많았다.
'세인'(The call of the faraway hill), '하이눈'(High noon), '알라모 요새', '역마차' '오케목장의 결투'(Gunfight at the OK corral), '리오브라보', '엘마칸트리', '빅칸트리', '라라미에서 온 사나이', '베라쿠루스', '부라봐도스' '7인의 무법자'(The magnificent seven), '돌아오지 않는 강'(River of No Return)이 기억에 남는 영화다. 서부 영화 좋아하던 소년들은 주로 청바지를 입었다.
유명 감독 이름과 영화사 내력도 훤히 뀌고 있었다. '파라마운트', '유니버샬', '워너부라더스', 'MGM사', '컬럼비아', '20세기 폭스' 내력 훤히 알았고, 감독들 작품도 대충 알았다.
조지쿠크 감독하면 '가스등', '마음의 행로' 하면 마빈 르로이 감독, '모던타임스 (Modern Times)'하면 거기서 주연, 제작, 각본, 음악, 감독 맡았던 챌리채프린이 나온다.
'역마차'하면 존 포드 감독, '오르페' 하면 쟝 콕트, '로마의 휴일' 하면 월리엄와일러' 감독, '자전거 도둑' 하면 '비트리오데시카',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와 '새'를 감독한 '알프레드히치콕'이 나온다.
'바람과 함깨 사라지다' 하면 '빅터프레밍' 감독, '워터프론트' '에덴의 동쪽' 하면 '엘리아카잔' 감독, '테스' 하면 '로만폴란스키'가 나오고, '하이눈' '지상에서 영원으로' 하면 '프레드진네만' 감독, 떠돌이 인생 짐파노와 젤소미나를 그린 '길' 하면 '페델리코페리니' 감독이 나온다.
영화 음악도 박사였다. 가사를 원어로 줄줄 외웠다.
아란랏드 주연한 '세인'의 주제곡 'The Call of faraway hills'는 그냥 시 아니던가? 악한 목장주 라이카를 쌍권총 속사로 물리치고 황야로 말머리 돌려 떠날 때, '쎄인!가지 말아요' 뒤에서 외치는 소년 모습과 이때 감미롭게 깔리던 음악, 'Shadows fall on the prairie, Day is done and the sun is slowly fading out of sight.(프레이리에 어둠이 덮히면 날은 저물고 해는 서서히 시야에서 사라진다)는 그 음율은 마약처럼 우리를 빨려들게 했다.
'The green leaves of summer'는 또 얼마나 좋았던가? 멕시코 영토였던 알라모 요새를 지키던 죤웨인이 이끌던 민병대 200명이 13일간 처절한 수비 끝에 인디안에게 전멸되기 전날 밤, 알라모 요새에 울려퍼지던 그 장중한 코러스 음악의 가사내용 알고는 울지 않을 자 없었다.
A time to be reapin', a time to be sowin'
The green leaves of summer are callin' me home.
'Twas so good to be young then, In the season of plenty,
When the catfish were jumpin' as high as the sky.
추수하던 그 시절, 씨를 뿌리던 그 시절
여름날의 푸른 잎새들은 나를 고향으로 부르고 있답니다
젊었던 그 시절 풍성한 계절은 참으로 좋았어요
메기가 하늘높이 뛰어오르곤 했던 그 시절 말입니다.
'하이눈'도 잊을 수 없는 영화다. 보안관 게리쿠퍼가 애미와 결혼식을 올리고 이 거리를 떠나려 할 때, 5년전 이 마을에서 체포된 흉악범 밀러가 형을 마치고 정오에 도착한다는 소식이 온다. 곧 정오였다. 케인은 유서를 써 놓고 죽은듯이 조용한 거리로 나선다. 그때 음악 나온다.
Do not forsake me oh my darling on this our wedding day.
Do not forsake me oh my darling Wait, wait along.
나를 저버리지 말아요, 내사랑이여 우리의 결혼식날인데.
나를 저버리지 말아요, 내사랑이여 변함없이 기다려줘요.
커크다그라스와 버트랑카스트 주연한 '오케목장의 결투'도 이런 식이다.
O K Corral, O K Corral. There the outlaw band, make their final stand.
O K Corral Oh, my dearest one must die.
이때 듣던 배경음악들은 얼마나 근사하던가? 그 영향으로 당시 우리는 황야의 총잽이 같았다. 인근 학교 학생과 시비 붙으면 언제 어디서 결투할 것인가 약속한다. 그리고 약속 시간과 장소에 나타나 결투를 했다.
이밖에 '엘비스프레슬리'의 'Love me tender'. '앤디월리암스'의 'Moon river', '페기리'의 'Johnny Guiter', 디미트리 티옴킨의 '자이안트', 레오나드로젤만의 '에덴의 동쪽' 등도 감명 깊은 음악이다.
그러나 이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곡이 '돌아오지 않는 강'(The river of no return)이다.
거기서 마리린 몬로가 하얀 치아를 내보이며 뇌살적인 입술로 'There is a river, called the river of no return(돌아오지 않는 강이라 불리우는 강이 있지요). Sometimes it's peaceful and sometimes wild and free(때로 강은 평화롭지만 때로는 사나운 폭풍우가 불기도 하지요)' 하고 노래한다.
사랑하던 남자가 총에 쓰러지자 카페에 돌아온 몬로가 노랠 부른다. '거기엔 돌아오지않는 강이 있었네 (There is river of no return). 사랑은 돌아오지않는 강 위의 나그네이네'(Love is traveler on the river of no return)
세월 많이 흘렀다고 어찌 그런 명장면을 잊겠는가?
그 당시 나는 대학생이라 주머니에 돈이 없었다. 개봉관은 못 갔고, 버스비 아까워 가까운 극장 걸어다녔다. 안암동에서 출발, 동대문의 계림극장, 청계극장, 동대문극장엘 갔다. 일주일에 두편 동시상영하는 영화 두 편씩 보았다. 일주일 네 편 본 셈이다. 못본 영화 있나 싶어 학교도서관 신문 하단 영화광고 늘 살피던 일, 답십리 청량리 광화문 퇴계로 청파동까지 원정 갔던 일이 기억난다. 지금 동대문극장은 없어지고, 계림극장은 굳모닝시티 상가로 변했다. 청계극장은 신발도매상가 되었다.
그시절 딱 한번 지금은 없어진 중앙청 앞 설매다방에서 데이트한 여학생 있었다. 나는 가난했고, 그는 모 국회의원 딸이었다. 서로 영화 이야기 많이 했다. 늦은 밤 삼청동 집까지 바래다 준 적 있다. 우린 꽃같던 시간이 있었다. 만약 영화같은 일이, 그를 만나는 일이 생긴다면, 그에게 물어볼 말이 있다. '돌아오지 않는 강'(The river of no return)이 혹시 기억나시는지?
2)돌아오지 않는 강(The River of No Return)
< 거기엔 강이 있었네. 그 강은 '돌아오지 않는 강'으로 불린다네. 강은 때로는 평화롭지만, 때로는 사납고 제맘대로예요. 만약 그대가 들으려 한다면, 강이 그대를 부르는 소릴 들을 수 있어요.
사랑은 '돌아오지 않는 강' 위로 흘러가는 여행자예요. 이리저리 휩쓸리다 영원히 폭풍의 바다
위로 사라지지요. 철썩, 철썩. 만약 당신도 들으려 한다면, 강물이 당신을 부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요. 난 그 강에서 사랑하는 연인을 잃어 버렸어요. 영원히 그를 그리워 합니다.>
영화 '돌아오지 않는 강'(The River of No Return) 주제곡 가사는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 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이다.' 밖에 모르던 나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거기 청바지 입고 나타난 여자도 마찬가지다. 최은희 도금봉 하고는 달랐다.
고등학생 시절 내가 청바지 입고 진주 시내 누볐는데 그건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마리린몬로 때문이었다. 진주 남강에서 대를 쳐서 뗏목 만들어 구포에 가서 팔아 용돈을 벌어보자고 한 적 있는데, 그건 로버트 미쳠이 록키 산맥 격랑을 헤치고 뗏목을 모는 그 장면 보고난 후다.
나와 같이 대나무 뗏목 만들어 구포 가려던 그 친구는 스물살 때 주약동 턴넬에서 철도자살 했다. 지금 서장대 건너편 '당미 언덕'에 화장한 재를 뿌렸다. 그 아래 '메기통'은 나와 그가 따이빙하고 놀던 곳이다. 거기 메기가 많던 '메기통'은 지금도 여전하지만 그 강은 이젠 추억 가득한 '돌아오지 않는 강'이 되고 말았다.
50년만에 '돌아오지 않는 강' 을 보면서 세가지 놀랬다. 첫째 오토 프레밍거 감독이다.
록키산맥의 험난한 격류를 헤쳐나가는 뗏목 촬영은 예사 일 아니었을 것이다.
물결은 뱃전을 휩쓸고 폭포에 가서 배를 통채로 물결에 휩쓸리는 장면 너무나 과감하다.
조금만 잘못하면 세기의 연인으로 불리우던 마리린 몬로의 목슴도 위태했을 것이다.
쫒아온 인디안 화살이 뱃전에 탁탁 꽂히는 장면과 인디언이 말 타고 물 속까지 달려드는 장면도 박력있었다.
영화 스토리는 매튜 콜더(로버트 미첨 분)는 잃어버렸던 9살난 아들 찾아 서부의 한 작은 마을로 찾아온다. 그곳은 금광을 찾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매튜는 술집에서 술 심부름을 하고 있는 아들 마크를 찾는다. 함께 산으로 가 농사를 짓고 살기로 한다.
한편, 이 마을 선술집에서 노래를 하며 살던 매춘부 케이(마를린 몬로 분)는 애인이자 도박꾼
웨스턴이 도박판에서 금광 소유권을 따내자 소유권 등록을 하기 위해 함께 '카운슬시'로 떠난다.
그러나 케이와 웨스턴은 급류에 휩싸이게 되고 이 광경을 본 매튜가 두 사람을 구해준다.
위기에서 가까스로 살아난 웨스턴은 매튜에게 말과 총을 빌려줄 것을 요구하지만 매튜는 거절한다. 근처 인디언이 언제 공격해올지 모르기 때문에 말과 총이 없으면 죽은 목숨이기 때문이다.
이때 웨스턴은 매튜에게서 총과 말을 빼앗아 혼자 카운슬시로 떠난다. 매튜는 무기가 없는 걸
눈치챈 인디언들이 곧 공격해올 것을 대비해 아들 마크, 그리고 케이와 뗏목을 타고 웨스턴을
찾아 카운슬시로 떠난다.'돌아오지 않는 강'이란 별명이 붙어있을 만큼 물살이 거세고 위험한
강을 따라 세 사람의 여행이 시작된다.
매튜와 케이는 아옹다옹 싸움을 하는 가운데 매튜가 전에 등 뒤에서 사람을 쏘고 감옥에 간
사실을 폭로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아버지는 설명하지만, 아들은
아버지에 대해서 한없이 실망한다.
마침내 카운슬시에 도착하자 케이는 웨스턴을 만나 매튜에게 사과할 것을 부탁하지만 웨스턴은
매튜에게 총을 겨누며 위협한다. 이때 웨스턴은 한 발의 총성으로 쓰러진다. 아버지의 위험을
목격한 아들 마크가 뒤에서 총으로 쏜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아들은 등 뒤에서 사람을
쏜 것이다.
그 다음에 마지막 인상적인 장면이 나온다. 케이는 연인 웨스턴이 쓰러지자 다시 옛날처럼
싸롱에 나가 '돌아오지 않는 강'을 노래 부른다. 그때 매튜가 찾아와 그녀를 안고 나온다.
매튜가 케이를 마차에 태우자 케이가 묻는다.'어디로 가느냐?' 이때 매튜가 대답한다.
'home' '집'으로 간다는 말이다. 이렇게 매튜와 마크, 그리고 케이 세 사람이 마차를 타고
떠날 때 툭! 마차 뒤에 뭔가 떨어진다. 케이가 사롱에서 노래할 때 신던 빨간 화려한 신발이다.
케이는 과거를 청산하고 새 삶을 찾아 남자를 따라 떠난 것이다.
3)내가 마지막 본 파리(The last time I saw Paris. 1954)
내가 마지막 본 파리(The last time I saw Paris. 1954)
고등학생 때 밤거리를 돌아다니며 남의 집 벽에 붙은 영화포스타를 수집하곤 했다. 그걸 책가방에 넣고 다니며 친구들한테 자랑하곤 했다. 그때 인기있던 건 게리 쿠퍼, 카크 다그라스, 오디 머피 같은 총잽이 사진이었지만, 마리린 몬로나 에리자베스 태일러 사진도 소중했다. 나는 당시 몬로가 '돌아오지 않는 강'에서 입었던 청바지 즐겨 입었고, 시골 소도시 길가에 내놓은 우리집 평상에서 몬로가 기타를 치며 쎅시한 입술로 노래 부르던 '돌아오지 않는 강' 주제곡 흉내낸 기타 연주를 하곤 했다.
70 넘어 방에만 콕 박힌 '방콕'은 좋을게 없다싶어, 간혹 전철 타고 종3에 가서 흘러간 영화를 보고온다. 대개 5-60년 전 것이라 영화가 곰팡내 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오히려 평범한 사람과 평범한 이야기 나누는 일보다, 한 시대 풍미한 명감독 명배우 만나는 일이 더 보람있다.
'The last time I saw Paris'(내가 마지막 본 빠리)'는 우선 제목만 봐도 뭔가 낭만적인 일이 일어날 것처럼 근사하다. 영화던 소설이던 타이틀이 좋아야 우선 반은 성공한다.
여배우 에리자베스 태일러는, 영화야 어쨌던간에 그 얼굴만 감상하고 와도 본전 뽑는다. 그동안 산전 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어본 몸이다. 50년 서울 살면서 한양의 미인이란 미인은 물론, 새침데기 깍쟁이까지 대충 다 만난 셈이다. 에리자베스 태일러는 말 그대로 군계일학 이다.
리즈는 가슴의 융기와 늘씬한 종아리도 일품이지만, 가장 신비한 부분은 눈섶이다. 몸이 천량이면 눈이 9백냥이다. 리즈의 눈동자는 자세히 보면 초록 에메랄드 빛이다. 멜라닌 색소의 침착에 의한 보라빛과 초록색이 섞인 것이라 한다. 눈빛이 실크로드의 월아천(月牙泉)처럼 신비롭다. 그 신비로운 월아천 위를 덮은 것이 그 쎅시한 눈섶이다. 그런 눈섶은 '모나리자'의 화가 레오날드 다빈치 같은 천재도 그려내지 못한 눈섶이다. 동서고금 수많은 천재들의 미인도를 아무리 살펴보아라. 그런 눈섶은 없다. 인류가 생긴 이래 수천수만의 여인들이 틈만 나면 거울을 보고 눈섶을 그렸다. 지금도 전철 타면 젊은 아가씨가 중인환시 속에 콤팩트 꺼내놓고 얼굴에다 뭔가 열심히 그린다. 그러나 리즈처럼 눈섶 그림에 성공한 사람 별로 본 적 없다. 리즈의 눈섶은 미간(眉間)에서 뭉툭하게 진하게 시작되어, 끝에서 가늘게 휘감아돌면서 얼굴 전체 인상을 요염하게 만든다. 쎅스어필 하게 만든다. 그런 눈섶, 그런 눈으로 남자 눈동자에다 한번 초점을 맞춰보라. 보통 남자는 고압 전류에 감전된듯 홀라당 기절하고 만다.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얼굴 붉히고 정신 잃거나 더듬거린다. 지구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런 눈을 컴컴한 극장에서 60분 이상 부담 없이 요리저리 마음대로 뜯어보면서 감상할 수 있는 건 관객의 권리다.
각설하고 영화 이야기로 가보자. 첫장면은 마빈 르로이가 감독한 '애수'와 비슷하다. '애수'에서 워터루부릿지에 군복 차림의 로버트 태일러가 나타나 죽은 여인을 회상하듯, 빠리의 한 카페에 옛날 거기 단골이던 한 남자(반 존슨)가 나타나 위스키 잔을 앞에 놓고 이제는 이 세상을 떠난 아내를 회상한다.
화면이 옛날로 돌아가면, 2차 대전 끝난 빠리의 상제리제는 환호의 물결 속이다. 모르는 남녀가 서로 껴안고 키스 세례 퍼부었다. 그 와중에 종군기자 월스는 아름다운 아가씨를 만난다. 헬렌은 그에게 키스를 퍼부었고, 둘은 다시 종전축하 파티에서 만나 결국 결혼에 이른다.
웰스는 낮에는 통신사에서 일하고 밤에는 소설은 쓴다. 그러나 출판사에서 계속 외면당하자 좌절한다. 반면 헬렌은 파티와 향락을 추구하는 스타일이다. 헬렌은 새 연인을 사귄다. 그런 어느 날 웰스가 만취하여 집에 돌아와 계단에 쓰러져 잠을 잘 때, 헬렌이 비를 맞고 돌아와 문을 열라고 했으나 열어주지 않자, 헬렌은 남편이 자기를 내쫒은 것으로 오해한다. 헬렌은 찬 비를 맞으며 언니집으로 간 것이 잘못되어 폐렴에 걸리고, 다음날 폐렴으로 급사하고 만다. 몇 년 후 웰스는 미국으로 돌아가 작가로서 성공하여 빠리로 찾아온다. 헬렌을 만나던 단골 카페에 와서 옛 일을 회상한다.
이 영화는 물질만능이 먼저 생각나는 미국인 이미지를, 애수와 낭만 가득한 한 아메리카 작가 이미지로 바꾸어 놓았다.
영화는 대략 이렇게 정리되어 있고, 뒷부분에 사족이 하나 달려있다. 헬렌에게는 언니가 있다. 웰스는 언니집에 맡겨둔 딸을 데리고 미국으로 갈려고 하나, 언니가 반대한다. 비오는 날 동생을 내쫒아 폐렴으로 죽게 만든 것이 겉으로 내세운 이유지만, 실은 그도 처녀 적에 웰스를 사랑했던 것이다. 못이룬 연정이 복수심으로 바뀐 것이다. 마침 그의 남편이 모든 사실을 눈치채고, 아내를 설득하여 웰스는 딸을 데리고 미국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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