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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된 시간의 헌책방
강 숙 려
희미한 그림자가 후르르 지나가는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온 흔적 같다 꼭
그 곳은.
지나간 시간에 집착하고
그 흔적을 열망하는 이곳엔
누군가의 사랑의 추억이 담겨진 연필로 쓴
희미한 고백이 첫 장에 그려져 있다
때론 노스탤지어의 아득한 독백이
연기처럼 흘러나온다.
옛 시간의 흔적이 엉켜 붙은 추억을 찾고자
외로운 시간의 정점에서 만난
읽다만 책갈피에 꽂힌 꽃잎의 애잔함 같이
금방이라도 가다만 여행길을 찾으려 들어올 것 같은
기다림의 시간으로 세월을 죽이는 곳이다
기억 멀리 잊혀 진 책
이미 절판 되어 애태우든 책
그림 같이 서가의 한 모퉁이를 장식하든 책들이
흘러나와 쌓여있는
거미 함께 시간의 줄을 치는 곳이다
겹겹이 쌓인 먼지만큼이나 무심함이 풀풀 묻어나는
종이시간의 세월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자체로 매력적인 공간이기에
오늘 내 영혼을 깜짝 빛나게 하는 등불을 찾게 된다면
벗이여 황홀한 이 기분을 나누고 싶네 그려
비도 오시어 날도 궂은데
우리 묵어 쾌쾌한 옛 시간 여행을 떠나보지 않으시려나?
2014. 11. 8. 밴조선일보 게재
시인이여, 시인이여!
강 숙 려
바람들 모아 향기들 모아 그리움이라 이름하고 가슴자락에 매달리는 애달픈 것들 휘저어 맑히는 너는 이 땅의 시인이다
이파리 끝에 잠시 머문 이슬의 찰나에, 출렁이는 일몰의 타는 어지러움에, 백억 광연에서 울려오는 미세한 한 조각 소리를 붙들어 노오란 빛으로 조각하는 너는 시인이다.
은바늘 하나로 지구의 자전을 멈추게 하고 황홀히 서서 출렁이는 바다를 건너고 어둠의 골짝에서 별들의 밀어를 줍는 너는 시인이다.
어지러운 세상에 서서 뜨겁고 무거운 역사의 조각들을 교차(較差)하고 전설 같은 애잔한 사랑을 노래하는 이 땅의 아픈 시인들이여!
더 무엇이 되어 우리는 세상의 희망인가 흙으로 아담을 빚으신 손으로 작파(斫破)하고픈 이 땅의 슬픔들 부디 용서하시길 기도하는 타는 가슴으로 추하고 버려진 것들 모아모아 거듭남의 향기로 피워볼까 쓰리고 아픈 편린(片鱗)들 모아 영롱한 한 알의 진주로 엮어나 볼까
시인은 자지 않는다 시인은 눈을 뜨고도 시가 되는 꿈을 꾸고 시와 더불어 시 속에서 영원을 비단실로 엮으며 하얀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오른다.
2014.8.2밴조선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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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당신 그리고 나
강 숙 려 |
아, 3월의 하늘이여!
강 숙 려
3월엔 온통 천지에 붉은 꽃이 피어난다 뚝뚝 핏빛으로 떨어지는 열기로 펄펄 피어난다 슬프도록 눈부신 햇살아래 아오내 골을 적시며 유관순열사의 만세소리 쩌렁쩌렁 울린다 정의의 불이 된 열여섯 꽃다운 청춘의 붉은 얼이 타 올라 꽃으로 피는 한(恨)의 3월! 3월은 훨훨 목마른 불꽃으로 진 님들의 못다 핀 꽃들로 온통 붉어라
자주독립을 외치든 애국의 깃발이 하늘 가득하구나 36년의 먼 날을 짓밟히고 짓눌리든 동토(凍土)의 대한(大韓) 겨레의 한 줄기 푸른빛으로 온몸을 던졌든 열사들의 붉은 피가 흔들며 3월의 꽃은 온통 핏빛이어라
한 송이 들꽃으로 오늘도 우리의 가슴에 뜨겁게 피어나는 일제강점(日帝强占) 울분의 애국선열들이여, 최후의 일인 최후의 일각까지 투쟁한 우리의 붉은 순국의 기라성 같은 애국지사들이여, 불러도 불러도 어찌 다 부를 수 없는 안타까운 열사들이여, 자주독립을 위하여 기꺼이 불이 된 겨레의 햇불들이여!
3월의 하늘 문이 열리고 우리의 님들은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한 투쟁의 불로 탔느니 나라가 없는 국민은 한갓 슬픈 짐승이라 우리는 결코 선진들의 뜨거운 발자취를 잊을 수 없는 분노의 칼을 갈아야 하나니 젊은이들이여 분발하여 그날을 상기하라 지금도 틈틈이 노리는 야욕에 찬 침략자의 모략을 결코 잊지 말지라
국력은 힘이라 우리의 국력이 이제 날로 발전하니 두 주먹 불끈 쥐어라 역사는 오늘을 반성하고 내일을 예측하는 눈이거늘 아직도 자만에 빠져있는 바다건너 오만불손을 우리는 결코 용서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 시퍼렇게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보여야 하느니 세계 속 질타의 눈을 외면하는 그들을 우리는 젊은 두 눈으로 지켜 볼 일이다
우리의 타오르는 기상이, 대한의 얼이 결코 지켜 내리라 내 조국의 영원한 안식을! 이제 고이 잠드시라 거룩한 독립투사들이여!
3월의 하늘엔 붉게 붉게 우리의 가슴에 피맺혀 하나가 되게 하는 뜨거운 열기의 꽃이 활활 피어난다
아, 3월의 하늘엔 님들의 영전에 반짝이며 펄럭이는 대한의 기상 태극기를 높이높이 더 높이 흔들 일이다 우리는!
***일제감정기(日帝强占期) : *1910년 8월29일부터 1945년 8월15일 광복(光復)까지. *우리나라가 일본에게 국권을 빼앗겨 통치당하든 암울했든 시대. *1919년 기미년 3월1일은 손병희 이하 33인들이 우리대한은 자주독립국임을 선언한 날. 유관순열사는 만세를 부르다가 일본인들의 창칼에 죽임 당함.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은 연합군에 의하여 참패하게 됨. . 2014. 3.1 밴조선게재 |